이노우에 다케히코

 


''' 이노우에 다케히코 '''
'''井上 雄彦(いのうえ たけひこ|Takehiko Inoue'''
'''본명'''
나리아이 다케히코 (成合 雄彦(なりあい たけひこ)
'''국적'''
일본 [image]
'''출생'''
1967년 1월 12일 (57세)
가고시마현 이사시
'''직업'''
만화가, 화가
'''서명'''
[imag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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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가고야마현립 오오구치고등학교 (졸업)
구마모토대학 (중퇴)
'''데뷔'''
'''단편''' 카에데 퍼플 (1988년)
'''활동 기간'''
1988년 – 현재
'''장르'''
소년만화
청년만화
'''혈액형'''
B형

1. 개요
2. 생애
3. 화풍
4. 논란
4.2. 극우 논란
4.3. 화가로서
5. 작품 목록
6. 수상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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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만화가이자 화가이다.

2. 생애


초·중학교 시절에는 검도부에 속해 있었지만, 가고시마현립 오오구치고등학교 입학 후에 검도부에 친형이 있어서 쑥스러운 것도 있고 구기 종목을 해보고 싶단 생각에 농구부에 입부. 처음에는 농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친구에 의해 어쩌다보니 들어갔다는 발언도 있었기 때문에 친구의 권유가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이후 농구부의 주장을 맡게 되고, 키가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에[1] 보통 포지션은 가드를 맡았다고 한다. 이후 작품 활동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고교 시절이 이노우에에게 하나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이다. 고교 3학년 때, 예대 진학을 목표로 미술학원에서 여름강습을 받지만, '돈이 든다'는 이유로 진로를 변경, 가까운 쿠마모토 대학에 진학한다.
21세 때 주간 소년 점프에 투고한 작품이 편집자 나카무라 타이조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기 위해서 상경하게 되고, 당시 시티헌터를 연재하던 호조 츠카사의 문하에서 입문. 어시스턴트로 10개월 정도 근무하면서 만화의 기초를 배웠다. 그러다 1988년 비연재 단편 '카에데 퍼플'[2]로 데즈카 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여 1989년 스토리 작가 와타나베 카즈히코와 함께 카멜레온 자일을 최초 연재했으나 큰 호평은 받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부터 연재한 슬램덩크가 단행본 판매 1억부를 돌파하며 1990년대가 낳은 최고의 만화가로 등극한다.
처음에는 그저 흥미 위주로 시작했지만 점점 농구에 대한 애정이 커져갔고, 자신의 농구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그린 작품이 '''슬램덩크'''. 농구에 대한 작가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이 당시 만화에 온 자본이 집중된 사회구조와 맞물려(당시 드래곤볼의 영향으로 점프가 600만부를 찍어 기네스에 오르는 시대였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단행본 판매수 1억부가 넘었을 때는 일본 6대 주요 일간신문 1면에 '''자비 1억 6000만 엔을 털어''' 감사 광고를 싣기도 했다.# 그리고 농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자 스포츠 장학금의 설립을 구상하고, 마침내 2006년에 '슬램덩크 장학금'을 설립했다. 대상자는 프로농구 선수를 목표로 하는 고등학생으로, 미국의 프렙스쿨로의 유학을 지원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획으로 "그로부터 10일 후…."란 슬램덩크의 후일담을 한 폐교에서 '''칠판에 도우미 없이 혼자서 이틀만에 그려냈다.''' 이후 사흘 간 팬에게 일반 공개되는데, 표면에 코팅 처리를 하지 않아 물리적으로 쉽게 지워지는 그림이었고, 팬들의 관람에 방해가 된다 하여 경비원도 두지 않았지만 전시 기간 동안 '''한 군데도 훼손되지 않았다.'''[3] 심지어 전시가 끝나고 그림을 다시 지워야 되는 상황이 되자 스태프들 중 아무도 그림에 손을 대지 못해 모두 이노우에 다케히코 본인이 지워야 했을 정도(…).

3. 화풍


전체적으로 데포르메가 적은 인체를 그리며[4] 곡선보다는 직선적인 묘사가 주가 되는 남성적인 작화도 특징. 배가본드의 연재를 하며 히라타 히로시의 영향을 많이 받아 유선 묘사 등에서 히라타의 영향이 보이기도 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좋아했던 만화는 미즈시마 신지의 '도카벤', 그 외에 영향을 받은 작가로 이케가미 료이치의 '오토코구미'(작품명)[5], 코바야시 마코토 등의 이름을 들고 있다.

'''uno TVCM 「DRAW THE AIR」making'''
대단한 데생 능력으로 유명한데, 3~4미터짜리 벽화 정도는 별다른 계측 장비 없이 그 자리에서 그려내는 등, 그림 실력은 이미 잘 알려져있다. 그와 더불어 연출 기법과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게 탁월하다는 평.
그러나 데뷔 초반의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기본 실력은 출중했지만 지금의 작풍과는 천지차이였다.[6] 그러나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 지금의 데생 능력을 갖추게 된 것으로 엄청난 노력가라고 할 수 있다. '그리면 그릴수록 앞으로 갈수록, 보이는 것은 내 부족함 뿐이다'라며 자신을 더욱 더 채찍질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완성형에 가까워보였던 슬램덩크 후반부와 달리, 베가본드 후반부를 보고 초반부를 다시 감상한다면 작가의 작화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그걸 다시 극복해내서 베가본드가 진행될 수록 2차 성장을 해낸 것이다.
현재는 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맛이 들려 배가본드를 그리다보니 화가의 영역에 들어섰다. 작품도 만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시회도 자주하는 편. 페피타라는 책을 보자면 디지털 작업도 능수능란하게 하고있는 듯하다.

4. 논란



4.1. 트레이싱 논란


슬램덩크를 그리며 NBA 화보를 트레이싱한 전례가 있다. 상세는 슬램덩크 항목을 참고. 이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인터뷰에서 잠깐 언급했을 뿐,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비단 이것만으로도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으나 더욱 더 큰 문제가 된 것은, '''정작 슬램덩크가 표절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엄근진한 태도로 일관하는 내로남불의 표본'''인 행동을 보여준 점에 있다. 에덴의 꽃[7]이라는 순정만화 연재분에서 몇 컷 정도 자신의 작품 구도를 비슷하게 도용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행동에 나서 출판사의 사과를 받아내고 해당 작품 및 작가가 기존에 출판한 전 작품을 절판 조치하는 사태를 야기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개입했다는 말도 있으나, 이노우에는 어떠한 언급이나 처벌 요구도 하지 않았고, 출판사에 제보가 많이 들어오자 출판사 단독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말도 있다. 어쨌든 이는 지금도 주요 비판거리가 되고 있다.

4.2. 극우 논란


자신의 트위터에 '자위대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죽인 사람보다 살린 사람의 수가 많은 군대다. 이것은 긍지다'라는 트윗을 리트윗한 건으로 인해 한국 인터넷상에서 극우 논란이 일어났었다. 쿠보 타이토도 이것 때문에 까였다.
자위대/역사항목에 자세히 나와있지만, 자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군을 해체시키고 신설된 군사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구 일본군에서 군무했던 장교나 부사관이 '''아무런 제재 없이''' 자위대에 재입대하거나, 욱일기를 그대로 사용[8]하는 등 엄연히 구 일본군을 계승했다. 그렇기 때문에 해당 트윗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들을 전부 은폐하고, '우리 자위대는 아주 훌륭하다!'라는 무조건적인 찬양의 의도로 보일 수 있어서 문제가 크다. 게다가 자위대는 매년 야스쿠니 신사[9]에 집단 참배한다. # 당시 정교분리 위반이라 까였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우익 정당이 주로 참배하고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질색한다.# 애초에 아베 전 총리가 총리 재임 당시 참배하자 미국이 실망했다고 강력 비판을 할 정도.# 미국이 현충원 노릇을 하게 권장하는 멀쩡한 국립묘원도 이미 있다. 덧붙여 일본 자위대 퇴역 간부 조직인 '안전보장간화회'가 극우와 커넥션이 있고 회장을 맡고 있는 니시하라 마사시는 지난 위안부 강제연행은 한국이 날조한 역사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일각에선 '자위대는 일본군을 계승하고 있지 않으며, 구 일본군과의 연계를 편집증적으로 거부하는 조직이며 해당 트윗도 자위대의 평화지향적임을 칭찬하는 내용이라 문제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여러 차례 내한하여 팬미팅을 하는 등 한국 팬들과의 소통에도 힘을 쓰는 편이라고 그를 변호한다.[10]
덧붙여 슬램덩크(만화)에도 욱일기가 여러 번 나온 게 회자됐다. 슬램덩크(만화)/논란를 참조.

4.3. 화가로서


논란이라기보다는 실적이 없다 정도의 이야기인데, 근 10년 가까이는 만화가로서의 활동을 거의 접고 화가로서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개인전을 열거나, 화집을 발행하는 등의 화가로서의 활동에 주력하는 편이다. 덕분에 현재 만화가로서 연재중인 배가본드는 거의 무기한 연재중단 상태. 만화가로서 진행중인 작품을 연재중단 상태로 방치해두고 다른 활동에 매진하는 것이 옳으냐는 도의적인 문제는 차치하고[11] 그렇게 주력하고 있는 화가로서의 화업에서도 딱히 실적이 없다는 것도 비판점. 전시회는 열심히 열고 있는데 화가로서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그림은 한 장도 없다. 뎃생력이 뛰어난 것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지만 리얼리즘미술에서 경쟁력을 잃어버린 지는 벌써 200년이 다 되어가며, 이노우에가 개인전에 내놓는 그림은 대부분 수묵화 스타일이나 수채화 스타일의 인물화로, 모두 3~400년 전의 고전적인 작풍으로 본인이 새로운 화풍이나 미의 기준을 작품으로 제시한 적은 한 번도 없기에 화가로서는 고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는 것. 대세적인 미감이 고전주의 정도에 머물러 있고 어디까지나 그림만이 아닌 '이야기'를 함께 전달하는 것이 메인인 만화가로서는 충분할 지 모르나 소위 말하는 순수미술가에게 요구되는 영역은 다른 영역인데, 이노우에는 이 영역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간단히 말해서 기존에 나와있는 것은 똑같이 잘 만들지만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창조한 적은 없다는 것.
뭐 화가라는 게 사실 자격증이 있는 건 아니라 본인이 여태까지 그린 그림 갤러리 빌려서 전시하고 나 화가요 하고 명함파면 그게 화가인 만큼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사실 이건 돈만 있으면 동네 백수도 가능한 일인데 그렇다고 명함 한 장 팠다고 동네백수 형을 화가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어느정도 화가로서의 실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노우에는 아직 화가로서 평단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을 그려낸 적이 없고, 개인전에도 만화의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어 10년 가까이 만화를 접다시피 한 상태임에도 화가로서 자립을 못 하고 만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명성에 기댄 이도저도 아닌 활동만을 하고 있다는 것이 주된 비판점.
개인전이나 화집도 대부분 화가로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배가본드, 슬램덩크의 신작 일러스트를 끼워넣는 것으로 기존 만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 팬의 지갑을 열게 하는 형태를 이루고 있어 '화가'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아닌 '만화가'로서의 명성에 기대는 것들이 많아 진짜 진지하게 화가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느냐는 비판은 덤. 아니, 이게 메인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화가를 지망하기엔 실력이 없지만[12] 소위 말하는 '고상한 순수예술가' 로서의 이미지를 가지고 싶어하는, 소위 말하는 홍대병에 가까운 행보가 아니냐는 점이다.

5. 작품 목록


  • 카멜레온 자일-2권 완결.슬램덩크가 출간 된 뒤 함께 출간되었다.
  • 슬램덩크-31권 완결. 누계 1억 2천만부 발행.
  • 리얼-14권, 연재중. 누계 약 1400만부 발행.
  • 배가본드-37권, 연재중. 일본내 누계 6천만부, 해외 약 2200만부, 합계 8200만부 발행.
  • 버저 비터-웹 연재. 4권 완결. 국내에도 출간되었으나 2000년대 초반 절판되었다.
  • WATER, MUK[13]-화보집.
  • 페피타-이노우에 가우디를 만나다
  • 공백-인터뷰집
  • 만화가 시작된다-인터뷰집

6. 수상


  • 2002년 제6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 대상 (배가본드)
  • 2001년 제5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우수상 (리얼)
  • 2000년 제4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대상
  • 2000년 제24회 코단샤 만화상 (배가본드)
  • 1995년 제40회 소학관 만화상 (슬램 덩크)

7. 기타


  • 스토리를 짤 때 스스로가 어떠한 긍정적인 요소를 넣지 않는 작품은 읽을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조금씩 긍정적인 요소를 추가한다. 가령 사람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배가본드의 경우에도 엑스트라들에게 백스토리를 조금씩이라도 넣어주는 이유가 단순 개죽음으로 묘사하기 싫어서다.
  •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애착을 가지는 편이다. 예로 인터뷰에 물어보는 사람이 캐릭터의 이름을 못 기억할 때 작가가 아 그 캐릭터 하고 자주 설명하고, 슬램덩크에 나온 수많은 캐릭터 들의 이름도 아직까지 외우고 있는 모양. 본인이 밝히기를 자신의 만화 속 캐릭터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면 중 하나를 극대화 시키거나 끄집어내서 만들기에 기본적으로 모든 캐릭터 애착을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윤대협같은 경우는 본인도 이 캐릭터 생각을 잘 모르겠다고. 그렇다고 캐릭터를 너무 감싸고 돌지도 않는것이 강백호의 경우 결국 복귀가 불가능할 수도 있고 복귀하더라도 이전의 역량을 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부분은 작가가 강백호에 대한 애정이 없다거나 한 것이 전혀 아니다. 강백호가 만화 내용 중에 안 감독에게 자신을 투입하는 것을 강행해 달라고 하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영광의 시대가 지금이다."라고 말한 것에 대한 존중이기 때문이다. 안 감독 뿐만 아니라 분명히 강백호도 자신의 부상 심각성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고 경기에 계속 나가다가 농구를 평생 못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한 말이다. "자기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위해서 자신의 재기 가능성마저 던진 것이다. 그런데 속편이나 작가의 말로 갑자기 다시 재기한다면 그 순간에 대한 작가의 설정과 미학이 모두 파괴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던 것이다.[14]
  • 슬램덩크의 TV 애니메이션을 보고 실망한 전례가 있어 그 이후로는 자신의 작품이 애니메이션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지간하게도 맘에 들지 않았는지, 리얼의 한 대목을 통해서 슬램덩크의 애니메이션을 깠다.[15] 6000만부가 넘은 배가본드에도 수없이 애니메이션화 오퍼가 들어왔지만 본인이 거절. 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뀌었는지 2021년 슬램덩크 극장판 애니화를 허락하고 직접 SNS에 영화화 소식을 알렸다.
  • 자신의 작품의 2차 창작도 좋아하지 않는다. 남이 자신의 작품에 손대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듯. 심지어 강백호의 머리를 민 것이 동인녀들이 동인지를 못 그리게 하기 위해서라는 루머도 있다. 슬램덩크 연재 종료 후 자신의 작품의 저작권을 자신이 직접 관리하는데, 본인의 말로는 소년점프에서 슬램덩크 캐릭터를 상품화할 때에 '강백호는 저런데 어울리지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어 본인이 직접 관리한다고 한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실질적인 이유는 . 실제로도 많은 만화가들이 저런 핑계를 대며 법인 회사를 세워 본인의 저작권을 관리한다. 만화가가 법인 설립시 가장 서류에 써내기 좋은(=실제로는 아무런 일을 안 해도 유령회사라 증명하기 어려운) 업무이면서 만화와 관련있는 업무가 저작권 관리업무이기도 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기 작가들은 본인 명의의 저작권 관리 회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최고의 이유는 세금. 법인세와 소득세는 아시다시피 퍼센테이지 차이가 나며 고급 자동차나 주택을 법인차 등으로 등록하여 싼 값에 사용할 수도 있고(사실 개인용도로 타면 불법이지만 알다시피 실제 사장님들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만화가는 전가의 보도인 취재용이라는 핑계가 있다) 각종 법인 지원금도 받을 수 있으며 어시스턴트들 인건비도 비용처리로 면세받을 수 있는 등 돈이 확 아껴진다. 이런 식의 대표적인 법인 회사로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버드 스튜디오나 코노미 타케시의 TK WORKS 등등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노우에는 IT 플래닝이란 명의의 법인회사를 가지고 있다.
  • 2009~2010년에 전시회 "이노우에 타케히코 최후의 만화전"을 일본 전역을 순회하며 개최. "최후의 만화전"이라는 타이틀과 내용이 거의 배가본드에 관련된 것이었던 것, 배가본드의 향후 전개를 눈치채게 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는 것으로 보아 배가본드가 그의 마지막 출판 만화가 될 거라고 짐작되는 상황.(반쯤 취미 생활인 리얼은 예외로 치고) 인터뷰 등으로 미루어 아티스트의 길을 걷는 것이 희망인 것 같다.[16] 다만 본인의 건강 악화로 안 그래도 부정기 게재였던 배가본드의 연재가 더 기약없이 미뤄짐에 따라 2010년 완결은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었다.
  • 슬램덩크의 후속작이 나올 것인지는 영원한 떡밥인데, 일단 배가본드의 연재라는 문제만 종료되면, 그가 슬램덩크를 그리지 못하도록 막는 외적인 문제는 어디에도 없다. 1억부 클럽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에서 1억부를 넘긴 만화는 초장기 연재가 되거나 아니면 속편이 나오거나 좌우간 둘 중 하나이다. 슬램덩크는 초장기도 아니었고 속편도 없어서 명백한 예외이며, 이노우에가 살아있는 한 슬램덩크 속편의 유혹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그동안 배가본드가 가장 큰 걸림돌이었는데 그게 앞으로 수 년 안에는 끝난다고 보면, 연재 재개를 위한 환경 자체는 거의 갖추어져 있는 셈이라 기대를 가져볼 수 있다. 하지만 배가본드도 계속해서 연재 중단인 상태라.. 한 인터뷰(1997)에서는 '(속편을 그린다면)30년 후에 그리고 싶다'라는 말을 남겼는데, 그때만 해도 현실성없이 까마득해보이던 30년은 이제 점점 다가오고 있다(...)
  • 방한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닭 한 마리'라는 짧은 글과 함께 닭요리 사진을 올렸는데, 한국의 한 트위터리안[17]이 그 사진을 보고 한국, 그것도 동대문으로 장소를 추측해내고, 근성으로 동대문을 뒤져서 찾은 후(!) 기념사진을 찍은 일화도 있다.(참고) 그리고 닭 한 마리 일화(…)에 고무된 또다른 팬은 기어이 경기장까지 직접 찾아가 사인을 받은 일도 있었다.(참고) 사실 팬 입장에서 보면 팬질일지 몰라도 작가 개인 입장에서는 스토킹이나 다름없다. 면식도 없는 사람이 개인 SNS에 올린 사진을 추적해서 밥먹는데 불쑥 찾아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 부모님이 어린 시절 이혼하여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 슬램덩크 연재시절에는 점프만화는 거의 안 읽었다고 한다. 단, 유일하게 로쿠데나시 블루스는 즐겨 읽었다고 한다. 슬램덩크를 봐도 영향을 좀 받은게 보인다.
  • 위에 언급된 대로 시티헌터의 작가 호조 츠카사의 밑에서 어시스턴트 활동을 한 인연 때문인지, 공적인 자리에서 스승님이라 부르며 존경을 표시한다. 실제로 사적으로도 친분이 두터워 시티헌터의 주인공 우수한의 데이트 상대로 북산고의 매니저 이한나(일본명 아야코)가 카메오 출연한 적이 있다. 실제로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이노우에의 첫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카멜레온 자일이다.[18]
  • 1on1 Government 라는 게임의 캐릭터 일러스터를 하였다.
[1] 167cm[2] 이 작품에서 서태웅(루카와 카에데)가 최초로 등장한다.[3] 이노우에 타케히코는 당시에 다가가지 마시오라는 푯말과 데드라인을 세울까도 생각했지만 굳이 그렇겐 하지 않았는데 나중에 그림이 단 한 곳도 지워지지 않아있는것을 보고 만약 그렇게 했다면 나의 패배였을 거라며 감동했다.[4] 데포르메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주로 개그장면에서 쓰인다.[5] 이 작품의 스토리 작가가 바로 카리야 테츠... 맛의 달인 그 작가 맞다.[6] 데뷔작 카에데 퍼플과 카멜레온 자일 초반부를 보면 인체비례는 물론이고 펜터치나 표현 능력 등 모든 면에서 아마추어 티가 팍팍난다. 그러나 자신의 아주 초기 작품이 그렇다는 의미일 뿐 슬램덩크 초반에서도 이 작가는 상당히 섬세하고 디테일한 그림을 그렸었다.[7] 스에츠구 유키의 만화로, 스에츠구는 나중에 치하야후루로 복귀했다. 스에츠구의 복귀에 슬램덩크의 트레이싱이 작용했다는 설이 있다.[8] 육자대는 약간 변형해 쓰나 '''해자대는 완전히 같다.'''[9] 태평양 전쟁 A급 전범 여러명을 포함해 신으로 모신 신사.[10] 슬램덩크가 인기 있는 해외 국가는 한국과 대만이 양대산맥인데, 알다시피 대만의 인구는 한국의 절반 정도라 실질적으로 한국이 가장 큰 해외시장이나 다름없다.[11] 사실 인기만화의 독자들 입장에서 아쉽긴 하지만 만화가 때려치고 다른 일 하는 건 이노우에 개인의 직업선택의 자유이긴 하다[12] 물론 여기서 말하는 건 뎃생력이 아니라 새로운 미적 사조를 창조하거나 최소한 현재 메타를 이해하며 이를 따라가고 미감을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 화가로서의 실력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노우에 타케히코보다 그림실력이 훨씬 떨어지지만, 후기인상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의 최전선을 열었다는 점에서 화가로서는 훨씬 위대한 화가다.[13] 일본판은 SUMI.[14] 참고로 강백호의 진짜 이름은 "사쿠라기 하나미치', 곧 벚꽃을 의미한다. 작가가 벚꽃의 이미지를 슬램덩크 이전이나 이후에도 계속 자기 작품에 넣으며 좋아했던 걸로 보아 강백호에게 그 강하게 빛나고 잔잔하게 막내리는 청춘이라는 설정을 한 것이이고, 이것이야말로 강백호라는 캐릭터에 대한 작가의 진심어린 애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한다면 벚꽃은 진 다음 다시 같은 나무에서 '피어나기' 때문에 강백호는 재활 이후 더 아름답게 빛났을 거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15] 주인공이 한 농구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저렇게 긴 코트가 어딨냐?"라고 비웃는 장면이 나온다. 직접 슬램덩크라고 저격하지는 않았지만 농구 애니가 얼마나 있겠는가?[16] 2000년대 중반에 한 인터뷰에서 "궁극적으로는 그냥 화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17] '360 Sounds'의 멤버 'Make-1(메이크 원)'. 과거 CB Mass 1기이자 Leo Kekoa, 한남잭슨과 함께 Ill skills로 활동한 1세대 힙합 뮤지션이다.[18] 다만 어느 정도 비슷할 뿐이지 주인공이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고 상대방의 성별까지도 바꿀 수 있는 등 허무맹랑한 설정 등이 많이 있어 직접적인 비교는 하기가 민망한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