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야마 아키라
[clearfix]
1. 개요
일본의 만화가 겸 게임원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대표작은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다. 일본 만화계를 대표하는 전설이며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일본 최초로 만화가로서 납세금액 Top 10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2. 상세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의 작가이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크로노 트리거』, 『블루 드래곤#s-4』에서도 원화를 맡았다. 그림 활동을 할 때의 저작권 표기에서는 보통 BIRD STUDIO의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다.[4] BIRD STUDIO의 BIRD는 토리야마(鳥山)의 토리에서 따온 것.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만화가로 서구권에서도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당연히 한국내에서의 인기도 절대적이다. 1982년도에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가 나왔다'''고 발언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화가 있다. 이 일화 때문에 한국에선 토리야마를 2대 만화의 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용 되는 별명은 아니다. 데즈카 오사무의 후계자라는 호칭 자체는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발언했기 때문에,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토리야마는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일본 만화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도 유명하며[5] 일본 내에서 10대 부자[6] 중 한 명에 속해있다. 오죽하면 '''세금 때문에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도 못 가게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 물론 실제로는 정말로 못 가게 하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집 앞에 공항 직통 도로를 깔아줬다는 도시전설은 사실이 아니지만, 이러한 도시전설이 생길 만큼 토리야마가 내는 납세액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건 틀림이 없다. 일본뿐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만화가로서 이 정도 부자는 엄청 드물다. 만화가는 궁핍한 직업으로 꼽히는데 토리야마 아키라는 직업 시장의 패러다임을 깨부수고 계산 외의 수입을 얻은 사례이다. 그 예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미국 만화가의 최고 갑부인 찰스 M. 슐츠(<피너츠>의 원작자)보다 더 부자인 만화가라며 토리야마를 취재한 적도 있다. 아울러 나가이 고 이후로 '''천재 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인물로,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년만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3. 생애
대충 얼마나 대단한 양반인지 알고 싶다면 이쪽을 참조.
첨부된 글을 읽고 경악할 사실 중 하나가 15년간 작품을 연재하면서 '''펑크를 낸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는 점.''' 더구나 블로그에서도 밝힌 것이지만 귀차니즘도 가지고 있고 모든 작업을 단독으로 하며, 거의 몰아치기 식인데도 이렇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다.
3.1. 데뷔 전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학창 시절에는 포스터로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유년기에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열중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화나 TV드라마에 빠져들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접할 기회가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도 있어서, 공업고등학교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 끝에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때려치고[7] 놀고 있다가 금전적으로 심각하게 쪼들리게 된다. 그때 마침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 광고를 보고 '''우승 상금 50만 엔을 받을수 있다!'''는 이유로 투고작을 그렸다.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을 목표로 투고작을 그렸지만, 시간에 맞추지 못해 매주 투고작을 접수받는 소년 점프로 가져갔다고 한다.[8]
3.2. 데뷔에서 첫 연재까지
당시 유행하던 스타워즈 같은 SF물이던 첫 투고작에서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데생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의 구도를 사용해서 대상을 그렸다는 점과 효과음 등을 영어로 표현한 센스가 당시 점프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 눈에 띄어 새로운 원고를 가져와 보라고 권유받아 1년간 500페이지 이상이라는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뒤 1978년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했다. 다만 당시 인기순위는 최하위를 먹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바쿠만>에서 나왔던 일화인 '편집자가 만화가의 원고를 칭찬한 뒤, 눈앞에서 갈아버렸다'의 주인공이 바로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라는 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
또 다시 엄청난 분량을 폐기당한 뒤 내놓은 단편이 <걸 형사 토마토>. 이 단편이 독자의 호응을 얻자 정식 연재가 결정됐다. 이 단편의 세계관을 활용해서 캐릭터들의 디자인을 조금 바꾼 뒤 동물, 로봇, 인간, 외계인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닥터 슬럼프>로 큰 성공을 거둔다. 원래는 만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재 과학자인 '닥터 슬럼프' 노리마키 센베가 주인공이었지만, 토리시마는 1회용 캐릭터였던 노리마키 아라레가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었다. 그리하여 여자 아이가 주인공인 단편을 하나 그려 반응이 좋으면 토리시마의 뜻대로, 반응이 좋지 않으면 토리야마의 뜻대로 가기로 했는데 독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 아라레가 주인공으로 확정되었고 닥터 슬럼프는 대대적인 히트작이 되었다. 어느 정도냐면 일본 만화가 사상 처음으로 납세자 순위 10위권에 들어갈 정도였다. 일본 만화계의 전설인 테즈카 오사무도 하지 못했던 기록을 거둔 셈. 1983년에는 TV 토크쇼에 단독 출연하기도 하는 등, 20대 후반에 이미 유명 만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연재 당시만 하더라도 코미디 만화에 있어서는 아키다쇼보의 소년 챔피언이 독보적 위치에 있었으나 그 독자층을 소년 점프로 끌어오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서 소년 점프 1차 중흥기의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이 때부터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연재 1년째에는 사흘에 한 번밖에 못 잤다거나 철야를 6일 연속으로 한적도 있다고 하고, 작업한 기억이 아예 없는 회도 있었다고 한다. 5년 정도 연재를 이어 가지만 소재와 아이디어의 고갈을 이유로 들며 1984년 연재종료를 하게 된다. 나중에 토리시마가 밝히길, 닥터 슬럼프는 매 화마다 주제가 바뀌는 형식의 만화였던데다가, 토리시마가 해당 회차의 개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딱지를 놓으면 그 회차 전체의 스토리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토리야마가 매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엄청 고생하긴 했지만, 데뷔하고 2년 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화풍이 이미 정립되었음이 보인다. 이후로 그림체가 자주 변하기는 해도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변하는 것에 가깝다. 그림 실력은 있었어도 만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던 문외한이 2년여의 수련으로 완전체에 가깝게 성장한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토리야마는 처음 만화가가 될 때,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일을 접겠다고 자신의 부모님과 약속했었는데 2년 만에 당당히 성공을 이룬 것이다.
3.3. 드래곤볼과 그 전설
닥터 슬럼프의 성공을 거둔 뒤 내놓은 작품이 바로 <'''드래곤볼'''>. 위에 언급된 아이디어 문제로 토리야마가 닥터 슬럼프를 그만하고 싶어 하였으나 당시 닥터 슬럼프의 인기는 상당했고 이것을 갑자기 끝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토리시마가 이를 윗선에 전달하자 총 편집자는 '''닥터 슬럼프보다 재미있는 걸 가져오면 허락하겠다'''는, 당시 닥터 슬럼프의 인기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했던 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토리야마는 일주일 내내 매달리던 닥터 슬럼프 작업을 5일 만에 끝내고 나머지 2일을 단편들을 그리는 데에 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내놓는 단편들마다 별 반응을 얻지는 못했고 토리시마는 회의를 위해 직접 나고야에 있는 토리야마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보통 라디오나 음악 등을 들으며 작업을 하는 다른 만화가들과는 달리 토리야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성룡의 영화를 틀어놓고 원고를 그리자 이를 본 토리시마는 그렇게 성룡이 좋으면 그런 식의 무술 만화를 그려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한다. 그리고 추가로 서유기에서 아이디어를 따와 나오게 된 것이 <드래곤 보이>라는 단편으로, 이 만화는 드래곤볼의 시초가 된다.
다만 드래곤볼은 연재 시작 극초기에는 인기 순위가 연재작 중 15위권으로 상당히 인기가 적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연재가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나, 당시 애니메이션 <닥터 슬럼프>의 '''말도 안 되는 성공'''[9] 을 뽑은 후지TV는 이미 연재 전부터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은 무조건 애니메이션화 한다'''는 계약을 이미 체결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연재 시작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제작이 들어갔다.[10][11] 편집부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작품을 그냥 끝내버릴 수도 없었기에 결국 드래곤볼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하며, 토리시마와 토리야마 두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회의한 결과, 오공과는 정반대인 '''야비하고 얄미운 한 캐릭터'''를 투입시키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이는 신의 한 수가 되어 오공과 크리링이 거북하우스에서 수련을 한 이후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참가하는 편이 전개되면서 드래곤볼의 인기는 급격히 치솟게 되었다. 또한 이전 드래곤볼의 악당들은 확실한 빌런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는 악당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였는데, 그러던 와중에 토리시마가 언급한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에서 영감을 얻어 상대방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악당 캐릭터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피콜로 대마왕이었다. 이렇게 토리야마는 만화의 장르를 자연스럽게 개그 모험물에서 액션물로 변경, '''그리고 드래곤볼은 전설이 되었다.'''
그 결과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일개 만화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커져 버려 연재를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달했고 연재를 쉬기라도 했다간 슈에이샤 매출에 치명타를 맞고 점프 편집부, 애니메이션 제작진, 완구회사 직원들까지 죄다 밥벌이를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피콜로 대마왕부터 늘어난 작업량은 더욱 더 증가.[12][13] 셀 편 종료때 일본 문부성 차관이 토리야마를 찾아 연재를 계속 이어가달라고 부탁했다는 전설이 존재한다. 역시 만화가인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외엔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러면서도 10여년간 '''연재 펑크가 한 번도 없었다.'''[14]
심지어 드래곤볼 연재 기간 중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의 게임 캐릭터, 몬스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부정기 단편 연재, 그 외에도 자동차 디자인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 작업 의뢰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15]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나 본인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무리한 스케줄로 만화가들의 직업병인 건초염이 생긴데다 15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만화만 그린 것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장기 연재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 가끔씩 단편 연재만 하고 있다. 이 단편 역시도 점프 계열의 새 잡지 창간 기념 등을 이유로 출판사에서의 요청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실상 실질적인 작가 활동은 드래곤볼을 끝으로 그만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디자인 관련 작업 등 다른 작업은 아직 활발한 편이다.
2009년 말에는 완전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긴 했으나, 드래곤볼 신극장판, 드래곤볼 슈퍼의 스토리 원안을 담당하고 있고, 직접 드래곤볼의 프리퀄인 은하패트롤 쟈코라는 단행본도 냈다.[16]
여담으로 작중 천하제일 무술대회에서 본인을 모티브로 한 '''쉔'''이란 캐릭으로 참가했었다.
4. 특징
'''솔직히, 나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17]
만화가 연재되는 동안, 계속 그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일본 소년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뿐이었다. 나의 만화의 역할은 오락의 작품이 되는 것이다. 나는 감히 내 작품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 이상,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 토리야마 아키라, 2013년#
4.1. 화풍
독특한 화풍으로도 유명한데, 스크린톤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잘 살리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이것은 과거 1년간 500쪽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능력 아닌 능력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람은 처음 데뷔했을 때 이미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천재라고 일컫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능보다는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다져진 인물이다. 사실 500쪽의 원고를 퇴짜맞고도 또 도전할수 있는 끈기의 노력의 재능만 보자면 천재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다만 여기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래서 자잘한 작화 미스가 많은 편. 드래곤볼의 에피소드별 비판점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화질의 하락인데, 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이 짝다리나 짝눈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꽤 생기는 편이다. 프리저 에피소드와 마인 부우 에피소드를 비교해 보면 확 드러나는 부분이다.
과감한 생략과 데포르메를 사용하면서도 양감 있는 화풍을 가꾸어내는 그만의 감각과 맛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얼핏 단순해보이는 그림체는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시점과 복잡한 장면에서도 의외로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가 그리는 등장인물은 어떤 각도로 그려도 웬만해서는 해당 등장인물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비롯한 기계같은 사물을 묘사하는 능력도 정평이 나 있는데, 돈이 없던 시절 갖고 싶었던 물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만족하던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디자인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화나 채색 등에서 균형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배경 등을 그리지 않아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력과 디자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토리시마는 평가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일류 메카 디자이너 못지 않은 탁월한 수준이다.[18]
드래곤볼 연재 종료 후부터는 Mac을 사용하기 시작. 이후 제작 과정에서는 CG를 사용한 것이 상당히 많고 화풍이나 채색등에서 이전과는 다소 바뀌었다. 이는 드래곤볼의 연재 후반부부터 팔에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PC가 없었다면 펜을 놓았을지도 모른다고. CG를 사용한 작품으로는 네코마인과 카지카[19] ,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8부터.
CG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흑백만화의 작법도 매우 많이 바뀌었다. 기존 펜촉보다 마찰력이 적은 태블릿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펜터치가 완전히 바뀌어, 드래곤볼 후반부의 직선적인 화풍이 아닌 곡선적인, 어찌 보면 토리야마 초창기 작품인 닥터 슬럼프에 가까운 펜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프로그램의 손떨림 보정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지 태블릿의 인식 문제로 선이 살짝 떨리는 그림이 자주 보이고 있다. 스크린톤 또한 사용이 늘어, 최신작 은하패트롤 쟈코의 경우 페이지당 2~3종류 이상의 톤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톤이 들어가지 않은 페이지를 찾기가 정말 힘들 정도.
긴 만화인생을 통해 화풍이 세 차례 변신을 하였으나 변화가 아주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에 꾸준히 읽는 독자는 그의 화풍이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나 데뷔 당시 화풍(소위 1기 화풍)과 지금의 화풍을 비교해보면 같은 만화가의 그림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올드팬들은 닥터 슬럼프 연재 후기~드래곤볼 프리저 편 때까지의 부드러운 화풍인 2기 화풍을 최고로 치며, 드래곤볼 Z를 통해 유입된 팬들은 Z 후반부와 비슷한 인조인간 편과 마인 부우 편 때의 3기 화풍을 가장 선호한다. 현재의 4기 화풍은 컴퓨터로 작업하기 편하도록 선이 간결한 것이 특징인데, 2기의 아기자기한 느낌이나 3기의 역동적인 느낌에 비해 다소 뒤떨어진다는 불평을 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그림체를 떠나 기본기와 구도, 전투씬의 타격감은 여전하다.
4.2. 취미
취미는 모델건 수집과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며 피규어 제작 실력도 수준급이다. 바쁜 일정 중에도 타미야의 1/35인형 개조 콘테스트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참가했고 수 차례 수상한 경력도 있다. 당연히 자기 작품 캐릭터의 피규어는 본인이 직접 감수한다고 한다. 또한 상당한 메카 페치에다 중증 밀덕후라 자동차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밀리터리 잡지에 기고한 사례도 있다. 파인 몰드에서 발매한 본인 디자인의 1/12 월드 피규어 컬렉션을 보면 고강한 밀덕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프라모델 만드는 시간을 내기 위해 마감을 꼭 지켰다는 이야기도 했다. 닥터 슬럼프 연재 끝무렵에는 "나이를 헛먹었는지 갑자기 오토바이에 빠졌다"고 오너캐를 통해 털어놓기도. 덕분에 작품에도 다양한 로봇이나 탑승물이 나오고 있는데 닥터 슬럼프 연재 당시에는 차를 너무 그려대서 편집자인 토리시마가 이 만화는 자동차가 주인공이냐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스타워즈같은 SF영화 팬이기도 하지만 차량에 대해서는 한때 오토바이 레이서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다는 듯하다. 작품 전반에서 중국풍 느껴지는 드래곤볼에서 보여주듯이 중국무술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성룡영화[20] 와 이소룡영화를 수십번씩 돌려볼 정도였다고 한다. 드래곤볼의 머슬 타워 에피소드를 보면 이소룡의 사망유희에 나오는 탑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동물 애호가이기도 하다. 서브 캐릭터로 동물을 많이 그리는 것도 인간 캐릭터만 그리면 얼굴을 나누어(서로 구분할 수 있게 디자인을 달리해서) 그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체 동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때 부모님께 말과 침팬지를 기르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하고 개와 고양이를 시작으로 토끼, 새, 물고기 등의 사육을 취미로 하고 있다. 단행본의 작가의 말 코너를 보면 기르는 동물(특히 개)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이나 나온다. 유일하게 쥐만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졸라서 기르기 시작한 햄스터 영향으로 이쪽도 괜찮아진 듯.
4.3. 성향
좀 특이한 사람이라 만사를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외로 그게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서 비 내리는 걸 그리는 게 귀찮다고 결혼해서 아내가 그려주기 전까진 '''펭귄 마을에 절대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드래곤볼에서 마을이고 별이고 죄다 한 방에 박살나는 이유는 배경 그리기 귀찮아서 [21] 배경이 궁전말고는 아예 없는 정신과 시간의 방도 만듬), 스크린톤을 잘 안쓰는 이유도 자르고 붙이기 귀찮아서,[22] 초사이어인의 노란색 머리도 귀찮아서 노란색(만화책에선 흰색)으로 만들었다는 말이 있지만[23] 본래 검은색으로 땜빵하면 끝났던 오공의 머리를 입체감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마냥 편한것만은 아니였다고. 물론 전체적 작업량 감소에는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머리를 검게 칠하는 시간에 선몇개로 끝나고, 특히 트랭크스를 등장시킬때는 계속 초사이어인 상태를 유지시켰다고. 사실 전술한 연필 밑선 안그리기도 귀찮아서 펜선으로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고, 연재 작품의 컬러 페이지는 아마도 매번 잉크를 사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지 '''수성 사인펜을 접시에 바른 후에 그걸 붓으로 적당히 물을 풀어서 칠한다'''고 한다. 그런 것이 어느새 그만의 매력으로 정착되었다.
귀차니즘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에 별다른 애정이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다만 이건에 있어서는 점프 특유의 작가 마음대로 작품에 개입할수 없는 영향이 큰듯. 애초에 드래곤볼 같은 경우는 노선이 꽤 자주 바뀌고, 완전히 바뀐 노석에서 피콜로와의 무술대회를 끝으로 종영할 계획이었지만 편집부의 입김으로 계속 살을 붙여 연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수익성을 바라본 장기노선에서 대다수의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이 식는 경우가 많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렇지만 특히 국내에 잘 알려진 오다 에이이치로와의 대담 인터뷰[24] 를 보면, 무슨 기억상실증에 걸린 토리야마의 기억을 오다가 각성시켜 나가는 정신치료 상담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연재 당시에는 일정 때문에 정신없이 작업을 해서 거의 기억에 남는게 없었을 것이고,[25] 작업 이후에도 자신의 작품을 잘 보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26] 덕분에 원작자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발언을 독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별 생각없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답을 하기 때문에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인터뷰 때마다 달라질 때도 있다.[27] 다만 '''정말로 작품에 애정이 없다기보다는 방임주의 부모 같은 느낌에 가깝고 원치않은 기간동안 장기간 연재하게 된 게 큰 이유일듯''' 자식 같은 캐릭터들이 도박에 사용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고 파칭코화에 대해서만은 거부했던 일화를 봐도 작품에 애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28]
히로인이 없는 만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드래곤볼에도 여성 캐릭터는 종종 등장하며 닥터 슬럼프의 주인공인 노리마키 아라레는 소녀 캐릭터였지만, 이들은 여성 캐릭터일 뿐 히로인이 아니다.[29] 다시 말해 토리야마의 작품들은 연애 요소가 사실상 전무한 것이다. 작가 자신도 "연애 이야기는 관심도 소질도 없다"고 단언했을 정도이며, 드물게 연애나 결혼 이야기가 등장하더라도 대충 때우고 넘어가거나 매우 어색하다. 일례로 드래곤볼에서 18호와 크리링의 연애, 베지터와 부르마의 결혼하기까지의 과정, 부르마와 야무치의 교제, 손오공과 치치의 결혼생활, 손오반과 비델의 교제가 얼마만큼의 비중을 두고 그려졌었는지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30]
독자에게서 받은 팬티가 누레질 정도로 담배를 피우는 대단한 골초라고 한다. 하루에 많으면 세 갑, 마감 전에는 100개비 이상을 피울 때도 있다고 하며 빡빡한 일정과 본인의 성격상 이것 말고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술은 거의 못해서 맥주 한 잔 정도가 한계라고 한다.
스토리에 대해선 본인 외에 초대 담당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많은 조언을 해줬으며, 오공이 계왕을 웃기기 위해 썼던 개그나 퓨전의 아이디어 등은 카츠라 마사카즈가 생각해 냈다고 하는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다. 스토리 진행은 즉흥적으로 짜는 편이며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 일부러 느슨하게 설정을 짠다고 한다. 그러는 편이 설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다, 스스로도 어떻게 되어갈지 몰라서 두근거리면서 그릴 수 있다고. 또한 막상 작업을 하다보면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과는 달라져 버리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스토리 진행에 한해서이고 하나의 큰 스토리 라인을 시작할 때, 이런저런 캐릭터의 모습이나 설정, 배경 스토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설정을 짜놓고 작업을 하는 편이다. '''꽤 많은 뒷 설정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설명같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그리지 않았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작품의 뒷 설정을 만드는 것도 비교적 재미있다고 했다. 실제로 만화에는 묘사되지 않는 역사나 세계관에 관한 설정, 스토리의 공백 기간 동안의 캐릭터의 생활 등의 메모와 자료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드래곤볼 대전집에서의 인터뷰나 점프 특집 인터뷰 등에서 작가 본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 사실 이런 배경을 미리 짜지 않았다면 작화뿐만 아니라 떡밥 회수와 반전, 연출로도 그야말로 최고의 경지라 할 수 있는 드래곤볼 Z 프리저전 같은 스토리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닥터 슬럼프 때는 '''어차피 대단한 내용의 만화도 아니라 스케치북만 지그시 보고 있으면 스토리가 떠오른다'''고 한 적이 있다. 참 쉽죠?
『스타워즈』의 대단한 팬이며 데뷔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패러디 만화 등을 자주 그렸다고 하며 그 외에도 SF 작품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공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이소룡이나 성룡을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하고[31] , 아이들과 슈퍼전대 시리즈를 보고서 패러디로 기뉴 특전대를 등장시켰다.
언론 등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인터뷰 기사나 본인의 사진이 공개, 게재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워낙 유명인인 관계로 사진도 이름도 연락처도 대부분 다 알려져 있다[32] . 넉살좋은 아저씨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낯가림이 심해 가족, 친구, 지인 외에는 사람 대하는게 서툴다고 한다. 어찌보면 만화가가 천직인 듯. 실제로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도 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장난기 많고 순수한 사람으로 닥터 슬럼프의 보너스 페이지에 묘사된 모습을 보면 어린애 같은 일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내와 만나게 된 계기가 자신이 건 장난전화 때문이라고 하며, "그 센스와 지식에는 당할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특이하게 개그트리오 니분노고(ニブンノゴ)의 보케인 오오카와 토모히데와 친분이 깊어서, 드래곤볼의 할리우드 영화화에 대한 상담을 했다고 한다. 니분고노는 97년 데뷔 이후 전혀 뜨지 못하고 있는 망한 개그맨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10년에 가깝게 사귀어온 듯 하다.[33]
드래곤볼 연재 당시엔 유달리 2인 1조로 나오는 캐릭터들이 많은데[34] , 이는 2인 1조의 경우 내레이션을 쓰지 않고도 상황 설명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5년 골든 위크에 공개되는 드래곤볼 Z 극장판 관련 토리야마 코멘트에서 사실은 화려한 액션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드래곤볼 이후에 제작된 단편들을 보자면 환경이라던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도 꽤나 심각하게 여기는듯 하다. 특히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은 작가로 데뷔한 시절부터 꾸준히 등장하는 테마이다. 토리야마가 그리는 이상향은 원시에 가까운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과 테크놀로지가 동식물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이며, 닥터 슬럼프의 배경인 “펭귄 마을”이 바로 그런 곳이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인간이 동물들과 동등한 지위에서 공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드래곤볼 세계관에서는 동물들이 말을 하며 인간과 함께 살고, 지구를 다스리는 왕은 테리어종의 개다.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 연재 말기에 등장한 “우주의 신”의 입을 빌어 자신의 사상을 토로한 적이 있는데, “인간이 지금처럼 자연을 파괴하며 문명을 쌓아올리다가는 반드시 멸망한다”는 경고였다.
또한 단편인 샌드랜드나 카지카를 비롯한 진지하게 연재했던 작품들을 보자면 대부분 인간들은 잔인하고 어리석은 존재들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훗날 드래곤볼의 사실상 프리퀄 역할인 은하패트롤 쟈코에서도 어김없이 나온다. 왕도중의 왕도라고 할정도로 인간과는 다른 종족이 나오는 만화의 클리셰리긴 하지만 유독 토리야마는 이런 주제를 많이 써왔다 생각해보면 드래곤볼에서도 그런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5.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연루 논란
2017년 11월에 조세회피처에 대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의 보고서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2000년 다른 일본인 11명과 함께 미국의 부동산 임대 사업에 투자를 하면서 탈세를 했다는 내용이며 2005년 일본의 조세 당국은 이들의 범죄 혐의를 포착해 조사 후 탈세로 결론내리고 추징과세했다.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의혹과 관련한 언론의 질문에 토리야마 아키라는 '''"매일 바쁘게 사는 탓에 세금 관련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놓고 있어서 정말 아무런 할 말도 없습니다."'''라고 서면 답변했다. 주변 다수의 반응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했다는 후문이 있다.
6. 작품 목록
- 닥터 슬럼프
- 드래곤볼
-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 디자인·일러스트
- 크로노 트리거의 캐릭터 디자인·일러스트
- 토리야마 아키라 ○작 극장[35]
- VOL.1
- 원더 아일랜드
- 원더 아일랜드2
- 걸 형사 토마토
- POLA&ROID
- MAD MATIC
- CHOBIT
- CHOBIT2
- VOL.2
- 오늘의 하이라이트(ハイライ島)
- ESCAPE
- PINK
- 기룡소년(드래곤 보이)
- 톤프 대모험
- Mr.호
- 켄노스케님
- SONCHOH
- VOL.3
- 마메지로군
- 카라마루군 일본맑음
- 저금전사 캐시맨
- DUB&PETER1
- GO!GO!ACKMAN
- VOL.1
- COWA!
- 카지카
- 네코마인
- 샌드랜드
- 은하패트롤 쟈코[36]
- 토리야마 아키라 만한전석 - '토리야마 아키라 ○작 극장'에 '우주인 페케 '가 추가되었다.[37]
- 토리야마 아키라의 서투른 만화연구소[38] - 사쿠마 아키라와 합작한 만화 창작 지도서
7. 수상 경력
- 제27회 쇼가쿠칸 만화상 소년 소녀 부문 수상 (닥터 슬럼프 / 1981년)
- 제4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디지털 아트 인터랙티브 부문 대상 수상 (드래곤 퀘스트 VII 에덴의 전사들/ 2001년)
-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 만화 부문 3위 (드래곤볼/2006년)
- 제40회 앙굴렘 국제 만화 축제 40주년 기념 특별상 수상 (2013년)
- 프랑스 예술 문화 훈장 1등급 슈발리에 (2019년)
8. 기타
- 토리야마는 오늘날까지도 단순히 그림 실력 뿐만이 아니라 훌륭한 컷 분배를 통한 가독성으로도 매우 큰 호평을 듣는다. 이는 토리시마가 본인이 토리야마에게 가르쳐준 것이라고 밝혔다. 만화의 속도감을 올려줄 수 있도록 공부해서 토리야마에게 전수해줬는데 감이 좋아서 빠르게 캐치했다고.
- 원피스 작가인 오다 에이이치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오다 본인이 드래곤볼 광팬인건 유명하고[39] 원피스 10주년 당시 둘이서 대담했을 때 상당히 들떠있는게 보이며# 토리야마가 잊고 있던 설정도 죄다 기억해서 역으로 설명할 정도(...) 소년 점프에 만화가로 지원한것도 토리야마와 드래곤볼 영향이 크다고 한다.#[40] 애니메이션도 같은 회사에서 제작되었고 방송사와 방영 시간대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41] 오다는 성공한 팬인 셈
- 키는 174cm라고 한다.
- 1982년에 만화가인 미카미 나치와 결혼했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자식들은 둘 다 아버지의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 아들같은 경우에는 아기이던 시절 단행본에 사진도 실렸었다. 은혼에 보낸 축전에 따르면 딸이 어느날 드래곤볼을 읽고있길래 웬일로 자기 만화를 읽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알고보니 은혼에 나온 드래곤볼 패러디를 이해하려고 본 것이었다. 알고보니 딸이 은혼의 굿즈도 모을 정도로 엄청난 팬이어서 토리야마가 은혼 작가인 소라치 히데아키에게 씁쓸한 감사의 코멘트를 전했는데 이때 소라치의 대답: "나와라 신룡! 난 구슬이 2개 밖에 없는데도 소원을 이뤘다고오오오오!! 토리야마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님... 이랄까 공주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 동네를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데[42] , 어느 정도냐 하면 마감을 어기면 도쿄로 올려보낸다고 편집부가 엄포를 놓았는데 딱 한번 편집자(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마감이 위험했을 때 작업하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정좌하고 기다렸던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 도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감을 칼같이 지킨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사람 대하기 힘들어 하는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화. 지금은 애들을 도시에서 키우기 싫어서 나고야를 고집하는 듯.[43] 그가 고백한 실책 중의 하나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모르고 본명으로 데뷔한 것인데,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어서 전화 번호가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데뷔 초에 생각했던 필명은 미즈타니 키사쿠.
- 드래곤볼은 인조인간편에서 마치려고 한 것[44] 을 일본 문화부 차관[45] 이 와서 제발 연장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했던 전설이 있다. 드래곤볼 항목에도 있지만 드래곤볼이 연재 종료한 다음 주 소년 점프의 발매부수 100만 부가 날아갔다. 거기에 관련 업종, 미디어믹스 등의 손실은 막대했다.
- 현재의 소년 점프 연재 만화가들은 대부분이 토리야마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세대라 스크린톤을 잘 쓰지 않는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을 잘 보면 토리야마처럼 펜선으로 명암을 표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만화가가 된 것이 아닌 만큼, 드래곤볼 이후로 장편 연재는 하지 않고 가끔씩 단편 연재는 하는 편인데,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가벼운 개그물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마저도 점프에서는 감지덕지인지 <네코마인>의 경우, 단행본 발간시 처음부터 완전판으로 발매가 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신작이 완전판의 판본으로 처음부터 출간된 것은 아직까지는 네코마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지 드래곤볼 캐릭터 이름들이 대부분 패러디란 것은 유명한 이야기고, 악역 이미지도 담당 편집자들하고 많이 비슷하다. 초기 담당인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닥터 슬럼프의 메인 악역인 닥터 마시리토와 드래곤볼 초기 악역인 피콜로 대마왕의 모델이 되었고, 2대 담당인 콘도 유는 프리저의 모델, 3대 담당인 다케다 후유토는 마인 부우의 모델이다. 위의 이미지는 드래곤볼 대전집에서 가져온 것인데, 사진 옆에 캐릭터를 배치해 놨다. 본인 말로는 의도해서 이렇게 그린 건 아니지만 평소에 시달린 무의식이 만화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유사성을 인정했다.
-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 몬스터 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은 토리야마는 슈에이샤 이외의 출판사의 출판물에 일러스트를 투고할 수 없는 전속 계약[46] 에 묶여 있으므로, 게임의 표지나 패키지 수록 메뉴얼 일러스트, V점프 부록 일러스트까지는 그릴 수 있지만 스퀘어에닉스가 출간하는 드퀘 관련 공략본까지는 그림을 게재할 수 없어서, 그런 류의 서적엔 본인 일러스트가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토리야마 본인의 스케쥴 문제도 있고 해서 보통 대부분 드퀘 일러스트는 토리야마의 그림체를 똑같이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대신 그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론 나카츠루 카츠요시, 무라카미 유미코 등이 있다. 드퀘의 경우 위저드리같은 서양 RPG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호리이 유지의 성향 때문에 처음에는 리얼한 형태의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토리야마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슬라임으로 대표되는 드퀘 특유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호리이 유지의 러프 스케치를 보면 크리처 디자인이 그냥 대놓고 서양식 RPG였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슬라임 계열 모에화의 선구자. 다만 서양 RPG의 경향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소스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 2013년 제 40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40주년 기념 특별상을 수상했다.
- 2017년 1월초에 건강이 나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의 탈세건으로 인해 기자가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보면 3년 전에 비해 상당히 살이 빠지고 얼굴이 수척해졌다. 드래곤 퀘스트 11 제작 당시에도 앞으로 (드퀘의 디자인을)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하고 공적 활동이 많이 줄어서 진짜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토리야마와 동시기의 작가들이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는 걸 보면 의아할 수 있는데 토리야마는 데뷔가 상당히 느린 작가로 나이도 꽤 많은 편이고 무엇보다 위에 언급한대로 심각한 골초였다.
- 미스터 초밥왕에 츠키오카 아키라 캐릭터가 이 사람의 이름을 모티브로 했다 한다.
- 2019년 1월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네셔널에서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아이스너상(Eisner Award)의 명예의 전당에 후보로 지명됐다. 아쉽게도 헌액에는 실패했다.
- 2019년 5월 말과 함께 6월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 문화 훈장[* Ordre des Arts et des Lettres / (英) Order of Arts and Letters]을 표창 받았다. #[47]
[1] 한국에서는 종종 한자 그대로 읽어서 '''조산명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드 스튜디오는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2] 2017년도 모습이다.[3] 오너캐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밀짚모자와 방독면을 쓴 로봇의 모습. 작가의 가장 큰 성공작인 드래곤볼의 화폐에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름은 '토리봇'. 이외에 닥터 슬럼프 초기에는 새 모습으로 나오다가 나중에 가면 방독면 쓴 로봇으로 나와 갓짱에게 먹혔다. 갓짱한테 먹힌 뒤 센베가 개조해준 이후엔 저 주둥이에서 포탄도 나온다. 드래곤볼 점프 40주년 기념판 애니에서도 오반 컴퓨터 아이콘으로 나왔다.[4] 이는 세금 문제 때문으로, 비슷한 경우가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 스튜디오. 저작권 문제로 정반대의 포지션을 취할 때도 있는데, 야츠데 사부로나 야다테 하지메 같은 케이스가 있다.[5] 뉴타입에 공개된 토리야마 인터뷰에 따르면 드래곤볼 프리저 편 기준, 550만 엔 즉, 한 회당 2015년 기준 환율로 약 5000만 원. 심지어 실수령 액수이다. 셀 편에서는 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공개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마저도 단행본 판매 수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 당시와 지금의 물가 차이를 고려하면 이 차이는 더 벌어진다.[6] 정확히는 1981년에 만화가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개인 세금 납부자 10위권에 들어갔다. 닥터 슬럼프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였는데 드래곤볼은…. 참고로 다른 9명의 세금 고액 납부자들은 모두 재벌 오너들이었다고 한다.[7] 이유가 가관인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어서.[8] 이 사건을 계기로 소년 매거진은 땅을 치고 후회했으며(...) 매월 받던 투고작을 매주로 바꾸게 된다. [9] 평균 시청률 23.8%, 최고 시청률 36.9%를 기록. 역대 점프 원작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아직도 유지 중이며,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시청률 4위를 기록하고 있다.[10]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처사로 원피스가 원작 8권 분량, 나루토가 원작 10권 분량이 진행되고 나서야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된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원피스와 나루토는 분명 대단한 작품이지만 신인 작가가 내놓은 히트작이고 토리야마는 이미 닥터 슬럼프로 인해 점프를 대표하는 거물급 작가 중 하나였으니 위치가 다르긴 하다.[11]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제작하는 결정 때문에 연재가 진행될 수록 애니판의 진행 속도가 원작의 진행을 압도적으로 추격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너무 빈번하게 발생하는 나머지 애니판 제작진도 애니판의 진행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 많은 오리지널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머리를 싸매면서 창작하여야만 했고 이게 액션씬이 월등하게 많아진 Z에 와서는 '''기 모으고 변신하다가 끝나는 만화'''(...)로 평가 받을 만큼 시청자 여론이 나빴다.[12] 다만 닥터 슬럼프 때의 경험치 덕분인지 이 때의 철야 작업의 빈도는 그나마 줄었다고 한다.[13] 작업량 때문인지 원작 후반부를 보면 유독 배경이 썰렁한 경우가 많다. 이전까지는 레드리본군, 거대도시 등 다양한 배경과 다양한 조연/단역들이 등장했으나 일단 많은 참가인원과 관중들을 일일이 그려야 하는 천하제일무도회부터 줄었고, 라데츠, 베지터와 모두 황야에서 싸우며, 나메크성에선 아예 별 자체가 사막처럼 황폐하고 그나마 적은 인구도 몰살된 상태란 설정이 있다. 셀 편에선 초반에 셀이 인간들을 흡수하는 몇 장면을 빼곤 전부 황야에서 주인공들이 셀과 싸우고, 마인부우 편에서도 초반에 잠깐 천하제일무도회에 들린 걸 제외하면 황야→지상의 인간이 전부 몰살당한 후 폐허→사람이 아무도 없는 계왕신의 영역으로 이어가며 계속 사람 없는 데서만 싸운다.[14] 닥터 슬럼프 연재 종료 2개월 후 드래곤볼의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15년 정도다. 물론 이때 토리야마도 휴가를 가게 되었는데 휴재를 하지 않고 미리 2회 분량의 원고를 그렸다고도 한다(...)[15] 사실 말이 15년이지 작업 대부분을 혼자서 하는데다가 휴재도 거의 없었고,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작업도 대충 그림만 슥슥 그리는 것이 아니다.[16] 토리시마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사실 토리야마는 2008년에 이미 반다이로부터 드래곤볼 신작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었으나 이 때는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하였고, 그 대신 드래곤볼 카이가 2009년에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후 악명 높은 드래곤볼 에볼루션이 원작자인 자신의 조언을 깡그리 무시하자 앞으로 스스로가 더 나서서 관여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17] 드래곤볼의 성공에 대한 대답.[18] 토리야마 아키라는 액션만큼이나 메카닉 묘사도 아주 실험적이고 독보적이었다. 스카우터나 어택볼 등 드래곤볼 시리즈에 나오는 수많은 특수장비들과 탈것, 로봇들의 디자인들은 매우 심플하면서도 메카적인 특성이 아주 잘 살아나는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19] 98년도에 연재했던 단편 만화. 전 12화 완결[20] 실제로 성룡과 만났다.[21] 파편은 적어도 흩날리는 것만 그리면 그만이지만, 배경은 구도에 맞춰서 일일이 그려야 하기 때문에 작가 입장에서는 그냥 구도 신경쓰지 않고 부숴서 파편만 그리는 쪽이 편하다고 볼 수 있다.[22] 시간 절약을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그 덕분에 비교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단편인 <COWA!>에서는 스크린톤을 많이 사용했다.[23] 정확히는 전후가 반대로, 노란색으로 설정하고 보니 결과적으로 먹칠할 필요가 없어서 편해졌다고 발언했다.[24] 원피스 Color Walk vol.1 권말 수록. 이 인터뷰를 보면 토리야마가 '''정말 자기 만화에 별 감상이 없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대범한 점이 거장답기도 하지만.[25] 사실 닥터 슬럼프가 완결되고 바로 드래곤볼을 연재를 시작하면서 마쥬니어까지 연재될 만화가 편집장, 독자, 정부의 요구로 마인부우편까지 연재하는등 보통 작가가 하기에는 힘든 일정이다.[26] 드래곤볼 완전판 발매 당시에 표지를 새로 그리기 위해서 원작을 다시 읽어 봤다고 하는데 이때 인터뷰를 보면 원작 종료 이후에 한 번도 자기 작품을 안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27] 예를 들면 드래곤볼 연재 종료 후의 천진반과 런치의 관계. 처음 관련 인터뷰에서는 "결국 둘이 결혼에 골인했다"고 했지만 2013년 인터뷰에서는 "런치가 농사하고 있는 천진반을 찾았지만 런치는 농사에 흥미가 없고 천진반은 연애에 흥미가 없어 서로 이어지진 못했다"라고 이야기한 것.[28]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불명이지만 파칭코화가 안되는 것은 본인의 의사가 분명할 것이다. 실제로 드래곤볼은 파칭코화에 대한 요청이 대단히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슈에이샤에서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 사실상 토리야마의 의사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29] 즉 캐릭터의 여성성이 스토리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 작가의 작품에는 남녀간의 애정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거나 해소되는 전개가 전무하며, 소위 색기와 관련된 부분이나 아기의 출산 정도를 제외하면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로 바꿔도 극의 전개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을 정도.[30] 간단히 얘기하면 18호와 크리링은 적이던 시절 18호가 장난삼아 크리링의 볼에 뽀뽀, 18호/17호가 생각만큼 악인은 아니라고 생각한 크리링이 18호를 파괴하는 걸 주저/용신에게 그들 몸의 폭탄 제거를 부탁→이걸 들은 18호가 츤츤거리면서도 "또보자"라는 말을 남김→'''결혼''', 베지터는 나메크 성편 이후 집도 절도 없어진 베지터에게 부르마가 "당신도 갈 곳 없으면 같이 가자!"라고 하고 여기에 베지터는 여자답지 못하게 목소리 크다고 질색→'''결혼''', 부르마와 야무치는 서로 (이성교제를 잘하기 위해) 드래곤볼 찾던 도중 같이 포로로 잡힙→'''커플''', 손오공은 어렸을때 (이성개념이 없어) 아무에게나 사타구니를 팡팡 쳐서 남녀를 구분하던 시절 치치의 사타쿠니를 팡팡 침, 순진한 치치는 이 소년과 결혼할 수밖에 없다고 여겨 "날 신부로 맞으러 올거지?"라고 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오공은 그러겠다고 함, 16세가 된 둘이 천하제일무도회에서 만나 치치가 이 약속을 얘기하고 오공은 뭘 모르면서도 그러겠다고 동의해서 '''결혼''', 손오반은 비델에게 무술을 가르치던 도중 머리를 자르라고 조언하자 비델이 "오반은 머리 짧은 여자를 좋아하니?"라고 홍조를 띈 묘사가 '''한번 나옴''', 그리고 마인부우 전 끝나고 10년 뒤로 간 시점에 둘이 '''결혼해있음.''' (굳이 하나 더하면 비델이 쳐맞을 때 분노하고 부상당한 그녀를 걱정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일반적인 친구한테도 할 만한 일이다) 참고로 위의 서술은 중간과정을 생략한게 아니라 그나마 연애스러운 장면을 전부 모은게 저 정도이다. 그나마 저 중에 커플 묘사가 가장 충실히 된게 18호/크리링이다. 서로 마음이 있다는 건 확실히 묘사됐으니... 그리고 오반과 비델은 오반이 둔하긴 하지만 그나마 둘이 서로 정드는 과정이 묘사된 편. (갑자기 친구가 부부된건 생뚱맞지만) 반면 부르마와 야무치는 둘 다 남자/여자를 좋아하는 성격이란 것만 묘사됐으나 커플될만한 사람이 따로 없으니 자동으로 된 거고, 손오공/치치 부부는 그런 과정도 전혀 없고 베지터/부르마는 그냥 갖다붙힌 수준이다. 실제로 사이어인 편 당시에 베지터는 "트랭크스의 아버지"란 면이 강조되지 "부르마의 남편"이란 부분은 마인부우 전과 그 이후에서나 부각된다. 의외로 "아버지로서 손오공,"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베지터" 등 가족애 묘사는 좀 있는 편이지만 연애 부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31] 무천도사는 천하제일무술대회 출전 당시 쓴 가명부터가 "재키 춘"이고(성룡의 미국이름이 "재키 챈"이다) 실제로 취권을 쓰며, 초기의 익살스런 권법은 성룡을 연상시킨다. 또한 손오공의 기합이 들어간 얼굴은 어느정도 이소룡을 연상시키고, 여러 무술의 디테일한 동작(발차기를 할 때 손모양이라든지)는 이소룡과 많이 닮았다.[32] 다만 사진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지만, 2000년대 들어서 찍은 사진은 거의 없다. 198,90년대 연재하던 시절 사진들이 대부분이고, 문서 최상단 사진은 개인이 찍은 사진.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도 저 사진이 올라가 있을 정도이다.[33] 사족이지만 굳이 니분고노 아니여도 묘하게 97년에 데뷔한 게닌들 중 인기 있는 게닌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아메토크에서 '망한 97년 데뷔 게닌'이라는 기획을 두 번이나 했을 정도...[34] 오공과 부르마, 야무챠와 푸알, 베지터와 내퍼 등등[35] 한국에는 해적판으로 발매 된 적이 있다.리뷰글. 그중 저금전사 캐시맨같은 만화는 슈에이샤의 V점프와 기사제휴를 한 대원미디어의 V챔프라는 게임잡지에서도 정식번역연재된 적이 있다.[36] 시대적 배경으로는 드래곤볼의 프리퀄인 셈.[37] 2015년 12월 서울문화사 정발[38] 鳥山明+さくまあきら 鳥山明のヘタッピマンガ研究所[39] 다만 의외로 닥터 슬럼프는 당시 보지 않았었다고 한다.[40] 여담으로 해당 인터뷰를 보면 위에서 말한 토리시마 편집자가 원피스를 연재시키지 않고 계속 떨어뜨렸던 일화가 나온다. 토리시마라고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정황상 토리시마의 소행이 확실하다. 토리시마 카즈히코 문서 참조[41] 원피스 애니 참고[42] 태어난 고향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일본어 위키에 의하면 집이 나고야 인근의 키요스시로 되어 있다. 아마도 집이 나고야시에 가까운 키요스시 외곽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아이치현 사람들은 일일이 설명하는게 귀찮아서, 아이치 현xx시 거주, 혹은 출신이여도 '나고야 출신(거주)입니다' 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다.[43] 다만, 나고야가 있는 아이치 현도 중심이 되는 나고야의 도시 규모를 보면 시골이라고 볼 수도 없다. 굳이 따지자면 대구나 울산 정도 포지션.[44] 피콜로 대마왕편에서 치치와 결혼하고 종료 → 프리저편에서 우주 최강자 → 인조인간편 → 마인부우편까지 장기연재되었다.[45] 장관 바로 밑의 실세로 장관이 왔었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소문이 나서 만화가 박성우가 이게 진짜인지 확인하려, 일본 업계 편집 기자에게 물어봤었는 데 '에이~ 설마 장관이 왔겠어요?' 라는 들었었고 그래서 '그럼 그렇지~' 라 생각하고 '그럼 뭐 높으신 분이 오셨다는 이야기는 왜 나온거죠?' 라고 하니깐 문화부에서 오시긴 오셨습니다. 장관님 대신 차관님이였죠.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문화부의 높으신 분들중 한명이 만화의 연재를 연장해달라고 온 것은 사실이었던 것.[46] 연간 약 1억 엔 정도라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놀고 있기만 해도 12억 원 정도를 받는 셈. 전속계약 자체는 인기 작가로서는 별로 특별한 건 아니지만 연재도 안 하는 작가가... 이미 토리야마의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슈에이샤의 브랜드가 돼버렸다는 의미도 되겠다.[47] 토리야마가 직접 오지는 않고 드래곤볼 담당 편집자인 이요쿠 아키오가 대리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