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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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2003년 개봉한 장편영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로 대종상[2] , 대한민국 영화대상, 춘사대상영화제,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 감독상을 휩쓸고, 모스크바 영화제 감독상과 로테르담 영화제 특별언급상까지 거머쥔 이후 가장 차기작이 기대되는 감독 중 하나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작품성으로 성공했다해도 상업적으론 성공하지 못 했다. 고작 7만에 그쳤고, 이 흥행참패와 차기작 선정이 늦어지면서 한동안 영화업계에서 보기 힘들어졌다.(...)[3]
그러다 2013년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가 239만 명을 동원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손익분기점은 돌파했다.[4]
그리고 2017년 ‘1987’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손익분기점을 넘어, 720만을 동원하면서 드디어 흥행작을 내놨다. [5] 이런 행보로 봐선, 앞에서의 적자가 너무 컸지만, 대체로 수작인 데다, 점점 평가는 물론 대중들과 가까워지는 대기만성형 감독이라 할 수 있다. 차기작까지 성공하면 친구 사이인 봉준호 못지않게 충무로에서 촉망받는 감독이 될 수 있다.
여담으로, 성이 '장'인데 실제로는 '정'으로 헷갈리는 사람이 있다.
2.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 실패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한 2003년 거의 모든 신인감독상을 다 휩쓸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면에서는....
원인은 '지구를 지켜라!'가 워낙 해괴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일부러 코미디 영화로 잘못 홍보되었기 때문이다. 코미디라 생각하고 보러갔던 관객들에게 시대를 초월하는[6] 문화충격을 선사해 입소문으로 관객들의 거부감이 생겨 망했다고. 하지만 주석에 서술했듯 그 시기엔 블랙 코미디가 먹히는 시기가 아니었다. 블랙 코미디, 게다가 데뷔작. 신하균, 백윤식 빼고는 이름이 딱히 내세울 만한 배우도 없는 영화를 배급사가 코미디로 홍보하지 않았으면 간판조차 걸지 못했을 거라는 의견도 높다. 부기영화에서는 차라리 영화제에 먼저 출품되는게 나았을 거라고 평했다.
반면에 동기인 봉준호 감독은 같은 해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수작으로 흥행면에서나 작품성에서나 승승장구를 했고, 장준환 감독은 그걸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함께 올라온 사진 졸업 사진으로 추정된다.
역시 같은 해에 박찬욱 감독은 한국영화의 희대의 걸작 '올드보이'를 개봉해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미술상, 음악상 등을 국내에서 휩쓸고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전국 관객 326만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고 일본 및 세계 많은 나라에 수출되었으며 미국에서 200만 달러가 넘는 흥행을 거둬들이고 해외에서도 흥행 및 비평으로 푸짐한 대박을 거둬들였다...
박찬욱이 '복수는 나의 것' 이전에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흥행작을 먼저 만들었던 것처럼 장준환도 '지구를 지켜라!' 이전에 흥행작을 하나 만들었었으면 '지구를 지켜라!' 이후에 기회가 주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를 지켜라!'는 그의 '''데뷔작'''이었고, 그렇게 고생길이 열리게 되었다.[7]
3. 재기
장준환은 곧 다시 기운을 차리고, 재기에 나섰다. 하지만 2004년에 단편영화 '털'을 만든 이후 소식이 줄어들었다.
싸이더스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인어에 대한 영화[8] , 방귀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파트맨'이라는 슈퍼 히어로 영화[9]# 2006년 당시 기사(씨네21)를 기획했으나 '''차례로 엎어졌다. '''
그리고 2006년 12월 24일에 문소리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후 2007년 최동훈 감독의 '타짜'의 속편인 '타짜 2' 등등 여러 프로젝트들을 준비한다고 했으나# 당시 기사, 안습하게도 '''이 역시 모두 엎어졌다.'''[10] 이후 감독보다 문소리 남편이란 게 더 유명하다(...)라는 수모를 듣기도 했다. 2009년 즈음 시나리오까지 나왔지만 판권을 가지고 있던 싸이더스 FNH가 엎어지면서 감독들이 사실상 해고 당한 것이 컸다. 이 사실은 2010년 밝혀졌다.
2009년 말 일본, 대만, 태국에 옴니버스 영화 '카멜리아'에 수록된 세 편의 단편들 중 강동원, 송혜교 주연의 '러브 포 세일 (Love for Sale)'이라는 단편 영화를 만들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결국 다음 해인 2010년 제작하여 10월 15일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첫 상영되었고, 일본에서는 동년 10월 25일 제23회 도쿄 국제 영화제에서 상영되었다.[11] 위백 항목 참조. 국내개봉의 조짐이 보여 많은 영화팬들을 설레게 만들었지만, '''결국 개봉되지 못했다.'''
2012년 10월 신작 준비 소식이 등장했고, 2012년 12월 10일, 드디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가 크랭크인했다. '''《지구를 지켜라!》 이후 9년 만의 장편영화 복귀작이다.''' 범죄 집단에게 길러진 17살 킬러의 이야기로, 킬러는 여진구, 범죄 집단은 김윤석, 조진웅, 장현성, 김성균, 박해준이 캐스팅되었다. 상당히 어둡고 센 작품이었으나, 239만 관객을 돌파하여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
2017년 9월, 아내 문소리가 감독한 여배우는 오늘도에 본인 역으로 잠깐 출연했다.
2017년, 4년 만의 복귀작인 6월 민주 항쟁의 배경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관한 영화 '1987'을 연출했다. 주연으로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김태리, 조연으로 박희순[12] , 이희준, 박경혜, 특별출연으로 설경구, 강동원, 여진구[13] 가 있다. 이후 강철비나 신과함께-죄와 벌이라는 경쟁자들 속에서도 작품성과 내용으로 인정받으며 마침내 저주받은 걸작 《지구를 지켜라!》의 흥행참패를 설욕해냈다.
2020년, 해외에서도 많은 인정을 받았던 지구를 지켜라!의 영어 버전 리메이크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 제작은 유전과 미드소마의 감독으로 유명한 아리 애스터가 맡는다. 아리 애스터는 평소에도 한국 영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특히 미드소마가 지구를 지켜라!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 이번 리메이크로 지구를 지켜라!에 씌워진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
4. 작품 특징
어두운 분위기와 잔인하게 묘사되는 살상장면, 외계인이나 괴물 같은 게 보이거나 믿을 정도로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망상, 선악구도가 모호하고 비이상적인 주인공들, 납치 사건이 전개의 주를 이루는 점, 젊은 주인공과 나이가 든 두 주인공의 대립, 이 대립을 망가트리는 형사 한 명과 악의 축으로 나오는 회사 대표라는 설정이 자주 등장하며, 이런 특징은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들어난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어두운 분위기와 안 어울리게 아기자기하게 연출된 장면이 곳곳이 있다.
다만 지구를 지켜라!와 화이 사이에 생긴 공백기 10년 동안 많이 변했다는 평가가 많다.[14] 젊은 초기때 만든 지구를 지켜라!는 주인공(병구)만큼 불안정한 카메라워크와 빠른 편집, 유쾌한 분위기지만 불편한 블랙 유머,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엉뚱한 상상력의 소재, 찜찜한 살상 장면이 자주 보이는 비상업적인 영화라는 평이면, 화이 이후부터는 조금 더 정적인 촬영과 편집, 블랙 유머가 아닌 어두운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소소한 유머,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수위 등 더 상업영화에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많다. 이를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지만, 관객과 맞춘 노력 덕분에 후에 만든 두 작품인 화이와 1987는 흥행에 성공했다.[15]
위와 같은 점 때문에 만약 지구를 지켜라!가 성공했으면 어떤 감독이 되었을지 상상이 안 된다는 평가가 많다. 실제로 털(2004)이라는 단편 영화나 방구맨(...)이라는 타이틀의 시나리오를 볼때 이렇게 망하지 않았으면, 지금 같은 영화가 아닌 완전히 B급 예술 영화 감독이 되었을 거라는 추측이 만무하다.[16] SF, 블랙코미디라는 장르 등 한국의 테리 길리엄이라 봐도 될 정도로 성향이 닮았다.[17] 이런 영화들은 못 보게 됐지만, 그래도 10년 후에도 상업 영화계에서도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이면서, 평단과 관객에게 좋은 평을 듣는 영화를 내놓는 것을 보면, 나쁘게만 생각할 점은 아니다.
이야기의 메시지를 포함하면서 색과 빛을 잘 활용한 연출이 호평을 받는다. 세 작품 모두 스타일은 다르지만 연출적인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듣는다.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감각적이면서 무거운 메시지를 담은 연출을 호평을 받았다면, 1987에서는 메시지를 담은 연출을 연륜있게 묘사해 호평을 받는다. 오히려 연출로 따지면 지구를 지켜라!보다도 14년 후의 작품 1987에서 더 발전되었다는 평가도 보인다. 지루할 수도 있을 드라마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빛과 구도로 메시지를 표현한 휼륭한 연출과 아름다운 영상미로 지루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18] 이런 점은 샘 멘데스가 연상되기도 한다. 샘 멘데스도 1917로 대중과 평론에게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렇듯, 10년의 차이를 두고 연출에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이야기의 측면에서 장준환의 메세지는 '권위에 대항할 것'에 대해 일관적으로 다룬다는 주장도 있다. <지구를 지켜라!>에서 노동자 병구가 자본가인 강 사장에게 대하는 폭력은 '자본'으로 상징되는 권위의 전복을 노리는 것으로, <화이>에서 화이가 석태를 비롯한 아버지에게 저항하는 것은 '가부장적' 권위에 저항하여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것으로, <1987>에서는 독재의 폭력을 휘두르던 '국가'라는 권위에 저항하여 시민의 권리를 쟁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상업 영화로 길을 돌린 것으로 보이나, 할리우드에서 지구를 지켜라!의 리메이크를 맡게 되면서, 장준환 감독의 독특한 개성을 다시 뽐낼 수 있어서 기대가 된다는 골수 팬들이 많아졌다.
5. 기타
-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 원래 성격이 좀 느리고 태평해서 그렇다고 한다.
- '지구를 지켜라!' 촬영 때 노란 머리에 귀걸이를 하고 촬영장에 나타나서 스태프들에게 "외계인 같아요."라는 소리를 들었다고도 한다. 이 영화 무대인사에서는 관객들 앞에서 작품에 나온 외계어로 인사를 올리기도 했다(...).
- 여담으로 아내인 문소리와는 서로 존댓말을 쓰고 있는 모양이다. 문소리의 런닝맨 출연 당시 전화 통화 중에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는 모습이 나왔고,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문소리와 장준환이 잠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서로 존댓말을 사용한다. [19]
- 문소리와 연애하던 시절에 지인들 앞에서 넌지시 "내가 문소리랑 사귀면 어떨 것 같아요?"라고 했다가 "7만 감독이 미친 거 아니냐? 700만도 아니고."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문소리와 장준환의 공동 지인인 류승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절대 아니라고 화를 내며 "스캔들을 내려면 차라리 나랑 내라"고까지 했지만 다음날 결혼 발표가 나자 엄청나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 김태용 감독이랑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영화감독으로서는 드물게 여배우랑 결혼했다는 점과 차기작 공백 기간이 심하다는 점(...),[20] 최동훈, 봉준호처럼 흥행성이 짙은 감독에 가깝지 않다는 점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사례가 다른데, 김태용은 예술영화라 상업적인 흥행작이 없는 경우지만, 장준환 감독은 예술 영화 감독이기 보단, 지구를 지켜라!가 망한 후(...), 상업 영화를 찍었다. 위에서 서술했듯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도 실적이 괜찮은 편이다. 봉준호도 흥행 감독이긴 하지만, 예술성도 지닌 감독인 걸 생각하면 상업적인 부분은 봉준호를 더 닮았다.
6. 필모그래피
7. 수상
[1]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 작품이다.[2] 공교롭게도 아내인 문소리도 다음해 41회 대종상에서 바람난 가족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3] 이전 버전에는 잊혔다고 서술되어있으나 지구를 지켜라로 형성된 매니아층이 있었고 이로 인해 화이는 비교적 화제가 되었다. 정말로 잊혀진 감독이라면 차기작이 화제가 될 리가 없고 영화판에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거다.[4] 영화는 수다다 화이 편에서 장준환 감독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구를 지켜라!가 관객이 총 7만이 들었는데(...), 이 기록이 화이 개봉 첫날 오전 9시에 깨졌다고 한다; [5] 어찌보면, 지구를 지켜라!가 너무 망해서 그렇지, 장준환 감독이 흥행 운이 그렇게 나쁜 감독은 아니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만 봐도 장준환 감독의 개성에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감미했기에, 240만 명 정도의 상업 청불영화 치고도 괜찮은 성과를 보였다.[6] '조폭 마누라' 같은 코미디물이 판쳤던 2000년대 초 당시라는 걸 생각하자! [7] 하지만 박찬욱 감독 역시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을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참패하며 대차게 말아먹고, 중간에 시나리오도 몇 편 쓰고 삼인조라는 영화를 찍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흥행과 비평에서 참패. 이런 그가 양지로 나오게 된 것은 공동경비구역 JSA 때부터.[8] 부산 기장군 앞바다에서 시체로 발견된 게 시작이라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이었다고 한다(...) [9] 원래 지구를 지켜라! 개봉 당시 특집 기사에 의하면 원래 데뷔작으로 생각해둔 게 방구맨이었으나 제작비가 많이 들 것 같아 소박하게 만들려고 한 게 지구를 지켜라!였다고 한다. 파트맨은 이미 데뷔 때부터 생각해둔 작품인 듯 [10] 정작 타짜 2는 다른 감독이 만들었다. 그러나 장준환 감독의 타짜 2는 타짜 4부를 기반으로 만들어지려던 것으로 전해진다.[11]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12] 데뷔작인 "2001 이매진"으로 인해 친해지게 되고 지금에 이르렀다.[13] 박종철 역[14] 실제로 화이와 1987를 보고 그를 안 관객들이 지구를 지켜라!를 보고 충격받았다는 평이 많다.(...)[15] 초기작인 지구를 지켜라!에서는 단독으로 각본을 썼지만, 화이와 1987에서는 다른 사람이 각본을 맡았다. 이런 점 때문에 두 후속작에서는 위의 특징보다는 연출적인 특징이 도드라진 듯. 여담으로 화이의 각본가는 후에 천만 영화인 부산행의 각본을 쓴다.[16] 장 감독이랑 같이 일한 사람들 말로는 감독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굉장히 독특하다고 한다. 장준환 감독이랑 대화하다가, 인어로 통조림을 만드는 소재의 차기작 얘기도 들었다고.(...)[17] 테리 길리엄도 흥행에서 고전하다가 진지한 SF 영화인 12몽키즈로 큰 흥행 성공을 거두었다.[18] 휼륭한 배우들의 연기의 공이 컸다고 하지만, 등장하는 수많은 배우들의 호연을 이끌었다는 점과 연출솜씨 등 감독의 역량 또한 무시 못한다.[19] 여배우는 오늘도에서 나온 대사인데. 이 영화를 리뷰하던 유튜버 거의없다는 '장준환 감독이 훌륭한 감독은 맞지만 돈을 잘 버는 감독은 아니었다.'라고 슬쩍 깠고 이를 방구석1열 스튜디오서 지켜보던 장준환 감독과 문소리는 빵 터져버렸다.[20] 이거는 데뷔작의 참패가 컸지, 항상 그런 건 아니며,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서 1987으로 컴백할 때는 공백이 4년밖에 안됐다. 이후로 지구를 지켜라!의 해외 리메이크도 맡는 등 바쁜 편. [21] 나와 통하는 다음검색 필름페스티벌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