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예선

 


<colcolor=#fff><colbgcolor=#005daa> '''정예선'''
'''Jung Ye Sun'''
''' 본관 '''
하동 정씨
''' 출생 '''
1996년 3월 15일 (28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 학력 '''
세검정초등학교[1] (전학)
경기초등학교[2] (졸업)
청운중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이화·금란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철학과 (군휴학)
''' 신체 '''
187cm
''' 직업 '''
대학생
''' 가족 '''
아버지 정몽준, 어머니 김영명
''' 가족 '''
2남 2녀 중 넷째[3]
정기선(1982년생)
누나 정남이(1983년생), 정선이(1986년생)
1. 개요
2. 생애
3. 논란
3.1. 미개 발언
3.1.1. 여파
3.2. 비슷한 발언들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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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연세대학교의 대학생이자 정몽준의 차남.

2. 생애


정몽준의 막내아들[4]로 1996년 3월 15일 출생했다. 늦둥이여서 그런지 3월생인데도 불구하고 1년 빨리 입학하거나 월반해 1995년생과 같은 학년인 것으로 추정된다.[5] 모종의 이유로 정몽주니어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하지만, 본명은 정예선이다.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6]에 입학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미개하다"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범 현대가의 다른 3세 남성들처럼 돌림자인 베풀 선(宣)자를 쓴다. 정몽준이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3. 논란



3.1. 미개 발언


강남대성학원에서 재수하던 중인 2014년 4월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래와 같은 글을 올렸다.
[image]
위의 글은 '''국개론, 국까, 시민의식 비하''' 등의 문제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논란이 되었다. "이 나라는 미개해서 그렇다."는 식의 자국 혐오성은 물론이고, 발언 자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서 했던 발언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분노로 몰아갔다.[7]
그리고 추가로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발언은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시기상 좋지 않았다"고 발언해 아들과 마찬가지로 구설수에 휩싸였다. 동료 의원들은 그걸 또 틀린 말이 아니라고 맞장구 쳤다고...
결국 이 발언을 한 직후에 세월호 유가족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고, 정몽준 의원이 직접 유가족들에게 찾아가 머리 숙여 사과하며, 간신히 고소가 취하되기에 이르렀다.

3.1.1. 여파


본인의 위의 발언으로 당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했던 아버지 정몽준에게 심각한 타격을 줬다. 그렇잖아도 박원순 후보에 여론조사상 10%가량 뒤처진 상태에서 판세를 반전시킬 모멘텀을 만들어도 부족할 판에 아들이 이 사건을 터뜨리면서 판세를 반전시킬 기회는 완벽히 사라졌고, 결국 그의 아버지는 선거에서 비교적 큰 격차로 낙선했다.
'''결국, 정몽준은 낙선을 하게 되었고, 이 패배는 정몽준의 공직 선거에서 첫 패배였다. 게다가, 이로 인해 사실상 정계은퇴나 다름없는 지경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로 인해 보통 '아버지의 오랜 꿈을 일거에 무너뜨린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는다.[8] 정몽준의 지지자들은 아버지 정몽준이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도 않았고 정치인으로서 깨끗하게 살아왔는데 철부지 아들의 발언 때문에 꿈이 무너졌다며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정몽준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다른 면에서 논란은 있을지언정, 일단 재산이 재산인 만큼 어지간한 정치인들이 휩싸여있는 지저분한 유착관계 같은 돈과 관련된 구설수가 일절 없다는 점은 인정할 정도. 사실 "무슨 연좌제도 아니고 아버지가 뭔 죄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들의 발언의 질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언급하진 못했다고 한다.
다만, 정예선의 발언이 정몽준의 정치적 경력에 끼친 타격을 지나치게 고평가할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애초에 6대 지선 자체가 새누리당이 우세한 선거는 아니었고, 서울 자체가 민주당세가 상당히 강한 지역이었다. 무엇보다도 위에 설명된 것처럼 이 사건 이전에도 정몽준 후보는 박원순 후보에게 이미 10% 이상의 격차로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뒤쳐진 상태였다. 박원순이 50~52 정도라면, 정몽준은 39~41을 왔다갔다 했었을 정도. 게다가 정몽준 후보의 선거전략 자체가 한때 대권후보로 거론되던 정치인의 선거전략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조잡했다. 박원순 후보의 선거 포스터에 정면이 아닌 측면 사진을 사용한 것이 <떳떳하지 못해서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공격하고, 후보 부인의 행보가 적다는 이유로 <부인 잠적설>을 주장하는 등 정치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고 상식 이하로 수준낮은 네거티브 공세를 퍼부으면서[9] TV 토론에서는 "내 질문에 예/아니오로만 대답하라"고 억지를 부리면서 박원순 후보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상대를 자극하고 대답을 재촉하는 등 초등학생 말싸움 수준의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었다. 차라리 정예선의 문제 발언은 "아직 판단능력이 미숙한 어린 학생(미성년자)의 실수" 라고 봐준다거나, "비하적이고 모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이나 유가족이 격분할 수 밖에 없던 상황에 대한 몰이해는 변명할 수 없지만, 감정에 휩쓸려 격하게 반응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의 수준에서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의견이 아니냐"는 변명이 가능하기라도 하지, 정작 정몽준과 정몽준 캠프의 선거전략은 이런 변명거리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이었다. 물론 대중적인 공분을 일으킨 발언인 만큼 정예선 사태가 정몽준 후보의 입지에 타격을 입혔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버지의 오랜 꿈을 일거에 무너트린 불효자"라고 하기에는 과연 그 시점에서 정몽준의 꿈이 아직 안 무너지고 서 있기는 했는지 자체가 의문이라는 것. 물론 정몽준 지지자의 입장에서야 선거전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 역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정몽준 후보 및 캠프의 행적 자체가 정몽주니어보다 그리 낫다고 하기도 힘든 수준이어서는 못난 자식에게 화를 내기도 민망한 셈이다.
그러나 정예선의 발언이 아버지를 선거에서 직접적으로 끌어내린 것은 아니더라도, '''결국 정몽준의 이미지를 박살냈다는 점'''은 사실이다. 정몽주니어 사건으로 정몽준의 지지율은 '''30% 초반'''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본인이 사과를 하고 본인 입장에서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대처를 해서 그 이상 지지층이 이탈하는 건 막았긴 하다만, 이미 경력에 흠집이 난 건 돌이킬 수 없었다.

3.2. 비슷한 발언들


의외로 한국 사회에 대해 정몽주니어와 비슷한 지적을 했던 사람들은 옛날에도 많이 존재했다. 구한 말 조선인의 민도를 질타했던 유길준, 민족개조론이광수와 그 외 윤치호, 안창호, 서재필, 박중양 등이 그런 사례. 아니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교육받은 엘리트 기득권 계층이 일반 대중에 대해 선민의식을 가지고, 극단적으로 나아가면 '무지한 대중'이라며 경멸하기도 하는 것은 근대적인 시민 사회가 형성되기 전까지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안창호유길준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국개론으로까지 발전했다. 물론 이들은 대놓고 미개하다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취지의 지적들을 남겼다.
2016년 7월에는 본인의 연세대 선배인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비슷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타당성을 떠나) 정예선의 망언, 그리고 나향욱의 망언은 당연히 차원이 다르다. 정예선의 발언의 경우 당시 고작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자신의 SNS에 되는대로 쓴 글에 불과하지만, 그저 재벌이자 시장 후보인 정몽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그 여파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것이고, 나향욱은 '''상위 공직에 있다는 작자'''[10]가 그런 되도 않는 특권의식과 선민의식을 나타낸 것이기 때문.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훈민정음을 반포하려던 세종대왕에게 '어차피 무지한 백성들은 교화가 안되는데 그깟 글자 만들어서 뭐하냐'고 대들던 정창손이 있다. 당연하지만 파직됐다. [11]
『세종실록』 1444년 2월 20일 원문
여담으로 정예선의 발언이 웃긴 이유 중 하나는 저런 선민의식을 가질 만한 인물도 못된다는 것도 있다. 구한말이나 조선시대의 국민의식이나 교육수준은 현재와 많이 달랐고, 위에 언급된 구한말 지식인들은 다수의 대중들이 수준높은 교육을 받지 못하던 시대에 고등교육을 받은 인물들이었다.[12] 물론 엘리트 지식인들이 선민의식을 갖고 대중들을 경멸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 맞다.''' 그러나 저런 잘못된 발언과 별개로 상대적으로 저들이 지칭한 대중이 교육수준의 낮았던 것은 사실이 맞긴 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의 전반적인 교육수준이나 국민의식은, 아직 문제가 적잖게 있긴 하지만 스무살 재수생이 "미개하다"며 비웃을 수준이 아니다. (물론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비웃어도 된다는 소리나 선민의식을 가져도 된다는 당연히 아니다.) 즉, 위의 언급된 발언들은 모두 똑같이 잘못된 발언이긴 하지만 최소한 구한말 지식인이나 조선시대 관료는 일반대중에 비해 명확히 구분되는 선민의식을 가질 수도 있는[13] 교육수준을 갖고 있는 사람인 반면, 정예선은 발언 당시 그럴 위치도 지식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 게임 역전재판 2에 재수생인 주제에 자신을 '브랜드 명품'이니 '일류니'하면서 허구헌날 다른 사람들을 삼류라고 깔보는 인물이 나오는데 딱 그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4. 여담


  • 취미는 힙합. 연세대 힙합동아리 RYU에서 활동했었다.영상[14]
  •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 동창들의 말에 의하면, 재벌 3세라는 사실을 티내지 않고 매우 평범하게 지낸다고 한다.
  • 재수학원을 다닐때 다른 재벌 자녀와 달리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고 한다. 평소 잠이 많지만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 차남을 위해 정몽준이 배려해 준 것이라면 등교시 차량 혜택뿐. 이 차량 또한 수입차가 아닌 국산 SUV[15]이며 가족들이 등교를 도와 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교 시에는 친구들과 지하철 및 버스를 이용했다. 물론 정몽준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 똑같이 이랬었다. 왜냐면,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기 때문.
  • 강남대성 학원에 다닐때 모의고사에서 빌보드 50위 안에 들어서 자신의 목표였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충분히 진학할 수 있었지만, 미개 발언 이후 학원을 몇달 쉰게 점수에 영향을 준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합격한다.
  •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군 방공포병 798기로 입대, 기훈단 수료를 마치고 특기학교공군방공포병학교에서 교육받은 후 그대로 근무지가 고정되어(직배자) 방포교에서 평범한 군생활을 했으며 2020년 12월에 만기전역했다.(코로나 때문에 미복귀 전역을 했을 것이다)[16]
  • 유튜버 Kinetic student[17]영상에 출연했다.[18]
  • 학창시절에 등교할때 이용한 차는 베라크루즈이다.
  • 형제들 중에 얼굴이 가장 괜찮다는 평가가 많다.
  • 어릴 때 차범근 축구교실에 다녔었다.

5. 관련 문서




[1] #, #[2] #, #[3] 아래에도 적혀있지만 엄청난 늦둥이다. 형과는 '''14살''', 둘째 누나와도 10살 차이가 난다. 참고로 큰 사촌형과는 26살 차이나며 사촌형의 자식(본인에게는 5촌조카)과 나이가 같다. 범 현대가 직계 3세중 나이가 가장 어리다.김영명이 마흔에 얻은 아들이다. 게다가 부모인 정몽준과 김영명 둘 다 아버지와의 나이차이가 적지 않아 정예선과 친할아버지(1915년생), 외할아버지(1918년생)와의 나이차이는 웬만한 증조-증손간 나이차에 가깝다.[4] 정몽준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첫째인 정기선과 나이차가 상당히 난다. 정기선은 현대중공업에서 현재 부사장으로 재직 중인데, 외부인은 물론이고 현대중공업 내에서도 가끔씩 정기선과 이 정몽주니어를 헷갈려서 정기선이 후술할 발언을 했다고 욕을 먹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쨌든 인지도는 형보다 월등하게 높다. 심지어 현대중공업 내에서도.[5] 대체로 저런 경우는 막내인 경우가 꽤 흔하다. 왜냐하면 나이 드신 부모가 힘이 들까봐... 자녀를 되도록이면 빨리 보낼려고 하기 때문. 유시민의 막내아들도 1년 일찍 조기입학했다. 하지믄 꼭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3, 4월생이 조기입학을 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빠른 년생도 욕을 먹는 마당에 조기입학인 경우 더욱 피곤해질 일이 많아 잘 밝히지 않을 뿐. 3월생은 음력 기준 1월과 2월에 해당하기 때문에 빠른 년생 입학이 가능한 경우가 훨씬 많다. 년도에 따라 같은 3월 생이어도 음력 2월이 아닌 음력 1월이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6]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목표로 재수 끝에 연세대학교에 입학함.[7] 글 중 "국무총리가 물병 맞은 사태"는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세월호 사건 다음날 새벽에 정홍원 총리가 실종자 가족들이 있는 진도 체육관에 방문해 구체적인 구조계획도 없이 "책임있게 하겠다"는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는 보여주기식 행정에 분노가 폭발한 실종자 가족들이 물병을 던진 것. # 즉, 전복 직후 배 안에 생존자들이 아직 있다고 알려진 시점이었는데 (실제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안타깝게도 이때 이미 전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어쨌든 이 시점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대부분 이들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었다.) 가족들 입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구조작업을 해도 부족한 시점에 총리가 찾아와서 뻔한 얘기만 하며 최선을 다하는 시늉만 내니 화가 안 날 수가 없다. 실제로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는 노화하고 마개조한 선박 문제는 넘어간다 쳐도 구조 과정 자체가 하나부터 열까지 수준 이하였던 비극이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처한 피해자 가족이 슬픔과 분노가 폭발한 것을 두고 "국민의식이 미개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비난한 것. 자식 목숨이 경각에 처했는데 냉정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8] 따지고보면 할아버지의 꿈에도 포함된다.[9] 물론 선거전에서 네거티브 공세라는 것이 썩 바람직하지 못하게 여겨지기는 해도 효과는 분명 있고, 그런만큼 사라지기도 힘든 것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정몽준 후보의 네거티브 공세는 도저히 상대 후보에게 타격을 입힐만한 수준이 아니고 오히려 자기 자신만 우습게 만들고 있었기에 대체 저걸 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당혹감을 안겨주었다.[10] 무려 2급에 해당되는 직책이었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는 공무원의 급수가 2급 까지다.[11] 참고로 당시 이 망언을 들은 세종대왕은 극대노했다.[12] 일제시대 때만 해도 보통학교도 못 나오던 사람들이 넘쳐나고, 고등보통학교만 나와도 지식인 취급을 받던 시절에 유학까지 간 사람은 엘리트가 맞다.[13]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선민의식 자체를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교육수준이 더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현명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 예를 들어 황희정승과 농부의 일화처럼 평생 글자도 못 배운 농사꾼이 평생 공부만 한 관료보다 훨씬 현명한 경우도 많고,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도 쌓인 지식만 많은 헛똑똑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나향욱만 하더라도 엘리트라고 불릴만한 위치의 사람이지만 저 행동은 본인만 스스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멍청한 짓이었다. 그리고 교육수준이든 뭔든 떠나서 선민의식 자체가 잘못된 것이 맞다. 그리고 '가질 수 있는'이란 것은 '높은 교육수준 때문에 스스로 현명하다고 착각해 저런 선민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이지, 선민의식을 가질 자격을 갖췄다거나 그런 의미가 당연히 아니다.[14] 영상 속 가운데가 정예선이다.[15] 형제의 난이니 뭐니 해도 큰아버지사촌형무슨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다(...). 큰 아버지네랑도 사이가 괜찮은 편이고.. [16] 정몽준 등 정씨 일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 집안은 재벌가임에도 병역의무만큼은 철저하게 지키기로 유명하다. 아버지인 정몽준도 육군 학군장교 만기전역이였고, 자신의 형인 정기선도 학군사관으로 임관하여 대한민국 육군 보병 소대장으로 병역을 마쳤다.[17] 같은 연세대학교동문이다.[18] 키네틱 구독자중 소수만 알아챘다. 대부분 평범한 후배로 생각하는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