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보병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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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 제2군단 제7보병사단 예하 '''제5보병여단'''. 별칭은 '''독수리부대'''.
남조선국방경비대 연대들이 창설될 당시 두번째로 창설된 연대[1] 이며, 1948년 여수·순천 10.19 사건 당시 (안좋은 의미로 유명한) 김종원이 1대대를 이끌고 여수로 돌입해 졸전을 펼쳤다. 반면 영천·신녕전투에서는 자양에서 대대적으로 얻어맞은 뒤 26연대와 함께 경주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며 북한군 15사단 포병연대를 괴멸시키기도 했다.
전후 7사단을 따라 강원도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다 현재는 강원도 화천군과 철원군(옛 김화군) 전방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로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돼 5보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5보병여단으로 격상되었다.
2. 근무환경
2.1. G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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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2]
'''군견도 낙오하는 곳.''' 상대적으로 8여단보다는 쉬운 섹터를 가지고 있지만 소초를 중심으로 M, V, W형[3] 으로 오르락 내리락하는 GOP 지형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4]
또한 금성 전투 및 425고지-406고지 전투의 결과인지 GOP 부대 중 군사분계선에 가장 가까운 초소를 가지고 있다. 이게 어느정도냐면, 모 소초의 대공 초소에선 '''육안'''으로도 적 GP가 보이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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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고지대 부대들이 그러하듯 이곳 GOP도 안개가 낄 무렵 구름이 낮게 끼기도 하는데, 비록 시야를 가리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절경을 구경할 수 있다.
2.2. FEBA
여단 명물(?)로는 FEBA 장병들이라면 이를 부득부득 갈 정도로 악명높은 장고봉,[5] 주파리 사거리[6] 에서 시작되어 수색대 앞을 거쳐 승하차 구간이 두번 이상 있는 경사로를 거쳐 백암 OP 및 뒷자리 소초들로 이어지는 단결로, 옛 연대 본부 부지였던 어두운골~백마령[7] 등이 있다.
게다가 짐승급 훈련량과 신조차 버릴 정도로 힘든 3, 8여단은 우선적으로 관심을 받아 후방까지 신막사로 교체된 반면, 이 여단은 별로 힘든 게 없다는 이미지가 박혔는지 GOP 쪽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동안 8,90년대에 지어진 시설들을 (창고든, 휴게 시설이든) 계속 쓰고 있었다. 물론 최근 뒤늦게나마 관심을 받아 군데군데 공사가 진행중이라고는 하나, 진척 속도가 매우 느리다.
3. 예하부대
3.1. 여단 직할대
3.1.1. 본부중대 ~ 본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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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축에 의해 해체된 (구)4대대 부지인 덕비끼네에 있다.[8] 하지만 산골짜기 깊숙히 외떨어져 있기에 도보로 수십분을 올라가야 한다.[9]
게다가 부지 자체도 양지바른 산비탈을 깎아 만든 곳이기에 각 병영간 연결로 경사가 3~40도로 가파르고, 그렇기에 최고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고지대 병영 두개는 연대 본부로 전환된 이후로는 치장창고로 쓰거나 버려진 상태다. 그 위에 알게 모르게 구축된 시설들은 말할것도 없고.
여담으로 사진 속 독수리 상 중 하나의 날개가 부러져 접합한 흔적이 있다고 하나, 잘 위장했는지 아님 황동색 실리콘(?)으로 깃털 부분을 떼운게 와전되었을 수도 있다.
3.1.2. 수색중대(GP)
주파리 사거리의 독립중대 중 하나. 후방CP 의무대와 비상설 PX, 화천 버스 27의 종점으로부터 멀지 않기에 외출/외박에 용이하다. 여러모로 8여단의 수상령과 유사하다.
하지만 백암산 전투의 무대였던 백암산 진입로에 있기에 전역자나 산악회 모임 때 단골로 찍히기도 한다.[10]
3.1.3. 포병대 (구: 전투지원중대)
지원중대 시절에는 연대본부 울타리 중 구석탱이에 외떨어진 독립중대[11] 였고, 이곳 역시 주간 경계근무와 '''작업에 종종 동원된다.'''
GOP 후방 소초로 단결포가 있다. 일단 시설은 신막사라 비교적 깨끗한 편이나 막사 일대가 지뢰지대이고, 여기에 한국전 당시 쓰였거나 아니면 군사정권 시기 버려진 듯한 개런드 탄창이나 수류탄까지 나뒹구니 통행에 요주의.
3.1.4. 통신중대
연대본부 밑 병영을 쓴다. 부대 특성상 상당수가 대대에 파견나가 있으며, 생활관 상당수가 기기와 자재 창고 및 PX로 전환되었다.
3.1.5. 의무중대
본부중대와 같은 막사를 쓰고 있으며, 상당수가 대대에 파견나가 있어 소수만 있으며, 대대나 직할대의 입실 환자들도 받아 보통 의무병 반, 환자 반 상태다.
3.2. 예하 대대
2010년대 초반에는 예하 3개 대대가 1년 주기로 FEBA 막사와 GOP를 밀어내기 교대하였고, 2010년대 중반에는 4개월 주기로 교대하였다. 그러다가 2010년대 말부터 관리의 편의를 위해[12] 후방 3여단처럼 각 대대 주둔지들을 고정시켰다.[13] 덕분에 전역이나 전출 때까지 계속 한곳에 있게 돼서 새로운 장단점도 생겨났다.
3.2.1. 군수지원대대 (구: 연대 수송대)
연대 수송대 시절에는 을지포병대대랑 '일정 간격을 두고' 붙어있는 독립중대[14] 였었다.
게다가 을지포병대대가 2006년 사단 FEBA부대 중 최초로 신막사가 된 데 반해 수송대는 (여단급 개편에 맞춰) 대대급으로 격상되는 와중에도 구식 일자형 생활관을 아둥바둥 쓰고있어 대비되기도 했다.
3.2.2. 제1대대
1대대는 민통선 안의 주파령 일대를 전담한다. 하지만 민통선 안이라 면회도 불가능하고 주변에 이렇다 할 가게도 없어 사제음식을 쉽게 접하지 못한다. 게다가 FEBA 대대들이 그러하듯 도로와 오솔길을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훈련이 연이어 있고 여전히 수십년 된 병영을 쓰기에 대대 장병들은 심신의 피로를 호소한다. 게다가 2022년에 3여단 1대대와 합병 "예정"이라는 풍문도 돌고,[15] 간부들 사이에서 1대대는 "이미 죽은 부대"라는 멸칭이 있을 정도로 악명이 높은 듯 하다.
3.2.3. 제2대대
2대대는 GOP 축선을 전담한다. 이 때문에 외출이 쉽지 않으며, 복무 중 문제가 생기거나 상부에서 지침이 내려오지 않는 한 말년까지 실탄 탄창을 받고 가파른 계단을 매일 오르내려야 한다. 그나마 격오지 수당이 주어지고 2004~5년도에 만들어진 침대형 막사라는 게 몇 안되는 위안거리.
3.2.4. 제3대대
3대대는 장고봉 일대(마현리와 주파리)를 전담하는데, 이 대대도 주파령 대대와 엇비슷한 시기에 건축되어 시설이 낙후되어 있다. 게다가 1대대와 마찬가지로 훈련이 연이어 있고, 그때마다 십중팔구 장고봉을 올라야 한다. 그나마 '''주파리를 제외하면''' 민통선 이남에 있기에 면회도 가능하고 외출도 비교적 자유로워 사방거리나 화천 시내로 많이 나가 볼 수 있다는게 장점아닌 장점이다.[16] 그래서 간부들 사이에선 주파령 대대가 "이미 죽은 부대"라면 마현리 대대는 "죽어가는 부대"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한다.
4. 출신인물
4.1. 여단장
4.2. 장교/부사관
초급 간부시절 전북에 있던 3연대에서 훈련받았으며, 한국전 당시 5연대 부연대장으로 발령받았는데 연대장 전사 후 다들 이 자리를 기피해[19] 별 수 없이 후임 연대장이 되어 백석산 전투의 일익을 맡았다. 이후 파월 한국군 지휘관, 제12대 제2작전사령관을 역임했다.
대위 시절 5연대에서 GOP중대장을 맡았었다.
3대대 9중대 1소대장이었다.
4.3. 병
5연대 2대대에서 PX병으로 복무했다. 당시 늦은 나이에 입대하여 나이짬 대우를 어느정도 받았고, 새치기하는 간부들에게 줄 서라고 화낸 적이 많아 간부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안좋기도 했다고 한다. 손호준이 근무하던 PX는 가벽으로 분리되어 현재는 인사과와 체력단련실로 쓰이고 있다. 마지막 휴가 복귀 보고시 '응답하라 1994' 오디션을 보고 왔다고 보고했다고 한다.
1980~1983년간 5연대 4대대[20] 복무.
5. 기타
화천 버스 27번이 2011년부터 민통선 안 주파리 사거리까지 연장 운행하고 있다.[21] 또한 1991년 10월 18일 해당 연대 담당지에 조성된 칠성전망대가 2013년 4월에 새롭게 개장한 뒤# 출입 절차도 완화돼 상서면 산양리에 있는 안내소[22] 에 출입자 정보를[23] 기제 후 군인 인솔자가 동승하면 민통선 위병소를 지나 전망대 밑[24] 까지 주행[25] 할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민간인들과 높으신 분들이 더 자주 찾아오게 되었으니 담당 병사들로선 작계지와 막사, 그리고 그 위에 조성된 시설들[26] 까지 깔끔하게 관리해야 하기에 그저 죽을 맛. 하지만 전망대 개장과 함께 '''PX도 생겨서'''[27] 그럭저럭 버티는 중.
그밖에도 가곡 <비목>의 작사가인 한명희 전 서울시립대 교수가 학군사관 임관 후 백암산 인근 GOP에서 복무하다 양지쪽 산모퉁이에 한국전쟁(백암산 전투) 당시의 돌무덤과 녹슨 철모가 얹어진 썩은 비목(나무 비석)을 보고 '비목'의 가사를 작사하게 된 일화는 유명해 백암 OP 정상부 비석에도 가사와 함께 쓰여있을 정도.
참고로 8여단은 이 여단을 미지의 방콕 내지는 유령 부대로 취급한다. 3여단[28] 는 대대 위치가 지리적으로 가깝고 화천읍에서 외출/외박할 때도 15, 27사 아저씨들과 마찬가지 빈도로 볼 수 있으나, 이 여단은 서쪽으로 외떨어진데다 (수십분 거리인 화천읍에 비하면)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사방거리라는 앞마당[29] 에서 휴가나 외출/외박을 상당 부분 해결해와[30] 분대장교육대 같은 일정이나 5, 8 여단끼리 작계지를 맞바꿔가며 공/방 혹은 사단급 이상 훈련이나 행사를 않는 한 서로 마주칠 일이 적었던 게 이유.
5.1. 기타 영상
KBS 현장르포 제3지대 2002년 방영판.[31]
박격포 훈련
5.2. 여단가
6. 사건사고
7. 여담
[1] 1946년 1월 15월 1연대 태릉, 1월 29일 5연대 부산, 2월10일 7연대 충북, 2월 15일 4연대 전남, 2월 18일 6연대 대구, 2월 26일 3연대 전북 익산, 2월 28일 2연대 대전, 4월 1일 8연대 강원 춘천, 11월 16일 9연대 제주도.[2] 다만 똑같은 험지인 옆동네 사단(15 ~ 21사단) 관계자들도 자기네 섹터 찍은 거라고 주장하여 논란 아닌 논란이 있다.[3] 이와 같은 지형을 근무자들 은어로 '''죽음의 맥도날드'''(다만 이는 비슷한 섹터를 가진 옆동네 제15보병사단에서 자주 불린다.) 등으로도 부른다.[4] 참고로 8여단은 네발 계단을 지나 소초 몇개 지난 뒤에 나머지 섹터는 완만한 편이나, 이 동네는 전망대 소초를 제외한 전체가 이 모양이다.[5] 마현리 대대 뒤편에 위치한 돌산인데, 대대의 중대장들이 심심하면 이곳으로 체력단련을 보낸다. 게다가 대대급 이상 훈련시 무조건 완전 군장으로 올라간다. 문제는 산 중턱부터 경사가 환장할 정도로 높아지며, 돌산답게 크고 작은 자갈들이 발에 채여 밑으로 굴러내리기에 오르면 오를수록 늘어나는 헛발질 만큼 돌아버릴 수준. 게다가 일부 구간은 8여단의 네발계단 수준으로 가팔라 등산용 로프를 걸어놓았고, 특히 정상부는 정말 답이 없어 트럭 타이어와 벽돌 등을 포개듯 쌓아 옹벽(혹은 네발계단)같은(...) 계단처럼 만들어 놓았다. 물론 주파리나 주파령에서 산 능선에 난 오솔길(다만 표지판이 없고, 여름엔 수풀도 우거져 지도와 감에 의존해야 하는데다 사방이 지뢰 의심지역이다.)을 따라 타이어 계단 부근에서 마현리 등산길을 타고 오르는 방법도 있는데, 능선 정상까지 오르기까지 경사 뿐만 아니라 거리도 좀 되지만 자갈길 등산보단 한결 낫다.[6] 이따금 지뢰 폭음이 뒷산에서 들릴 정도로 사방이 지뢰이나 '''민가가 없고 요충지이기에''' 인근 부대가 훈련을 위해 여기로 오기도 한다. 특히 인근에 포사격 훈련장이 있어 포병들이 와서 저녁에도, 아침에도 포격을 해 막사가 울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게다가 포사격 훈련장을 포함, 부지도 적당히 넓어서 이따금 별들이 여기다 본진을 차리기도 한다. 실제 2006년도에 양구의 제2보병사단이 그 먼 거리를 마다하고 (민통선 한복판인) 여기까지 와 그곳을 담당하는 독립중대 연병장에 '''사단 본부를 설치하고''' 여기에 K9 자주포까지 들러리(?)로 와 7보다 2사단 간부들에게 경례를 더 많이 하는 불편한 동거가 며칠간 이어졌다.[7] 주파령 우회로라 정비 1중대가 독립중대로 선점하기도 했으며, 이름만큼 음산하고 을씨년스럽다.[8] 참고로 이 시설들도 후술할 주파령, 마현리 대대와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서 똑같이 노후화돼 있다.[9] 그래서 제설작전 때 경비소대 2~6명이 오전 내내 쓸기도 하며, 2010년 초까지 콘크리트 포장길이었으나 노후화 때문인지 2017년 아스팔트로 재포장됐다.[10] 안보상 당연히 현장이나 검열단에서 제제해야 하겠지만 '''안보관광 활성화를 위해 백암산 전망대까지 신축 예정이라''' 부대를 이전하거나 민통선 이남 부대들처럼 담을 높게 쌓는 것 말곤 답이 없는 상황.[11] 자체 탄약고와 병사식당, 연병장 등 독립중대의 여건을 갖췄다.[12] 일단 한번 교대할 때마다 대이동이 시작되고 인수인계 절차도 필요하다.[13] 물론 특정 부대에 문제가 생기거나 티스푼의 기적으로 새 병영이 완공돼서, 혹은 윗분이 결심을 해서 또 바뀔수도 있으니 유의.[14] 그래서 자체 연병장과 식당, 비상설 PX가 있다.[15] 사실 예전 군축 때도 뒷번호인 4대대부터 없앴기에 1대대만 합병하는 건 가능성이 낮다. 다만 27사단이 해체 예정이기에 제2보병사단이 그랬듯 27사단 예하 부대들이 7사단과 15사단에 분산, 합병되거나(다만 이 경우도 3,5,8 여단 모두 27사단 여단들보다 앞번호이기에 2사단 17여단처럼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뺄 가능성은 낮다.) 여단 등으로 재편돼 GOP 일대를 맡고, 7사단은 6사단처럼 후방 예비사단으로 전환한다는 게 와전되었을 수 있다.[16] 그래서 똑같이 낙후되었어도 산골짜기에 외떨어진 여단본부와 주파령 대대에 비하면 양호하다며 위안을 삼고 있다.[17] 이게 대단한 게 '''국방부 장관을 시키기 위해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았는데 예편 처리시킨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2007년 12월까지 재임해야 하지만 2006년 12월에 전역했다.[18] 대장까지 진급하여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예편[17] , 국방부 장관까지 올랐다. 2013년 2월 신설된 국가안보실의 초대 실장에 임명되었다.[19] 정확히는 연대장 부임 후 얼마안가 부상이나 전사, 책임을 지고 계속 떠난다는 징크스가 있었다.[20] 90년대 이후 군축에 의해 해체.[21] 다만 해당 방면 부대원이거나 사전에 허락받은 게 아니라면 1차 민통선 검문소에서 하차해야 한다.[22] 월요일 휴무.[23] 단체시 대표자 서약서 추가.[24] 여담으로 소초 부지가 좁은 탓에 민간 차량은 진입로 중간까지만 올 수 있다.[25] 다만 전망대까지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기에 차량은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26] 한 블로거가 탐방한 당시엔 1층은 병영, 2층은 겔러리카페, PX, 3층은 전망대 구성이다.[27] 사실 황금마차 항목에도 언급됐듯, GOP 전체를 통틀어 PX 있는 소초는 찾기 힘들다.[28] 5여단에 가까운 1대대는 제외.[29] 5연본 삼거리를 지나 3여단 1대대 정문으로부터 5~7분 정도 행군하듯 걸어가면 된다. 해서 거리로 따지자면 3여단 1대대가 더 앞마당이라 주장할 수 있다.[30] 이는 시간이 아쉬운 외박자 입장에서 화천까지 왕래하는데 드는 시간도 아깝고, 군기 위반 단속하는 헌병이 잘 돌아다니지 않는 장점이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인근 부대 간부들도 마찬가지라 일과 시간이 끝나면 사복 차림의 간부나 가족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예사고, 심할 경우 '''짬밥 먹을 시간을 놓쳤거나 사제 중국 음식이나 치킨, 매운탕이 땡긴다고 운전, 당번병을 대동하고 순찰(?)중인 여단~대대장과도 마주칠 수 있다'''.[31] 영상 내에 등장한 닷지 번호가 이 부대이며, 나레이션이 소초 번호까지 언급함으로서 확인사살한다. 사실 예나저나 옆 8여단에 비해 접근 및 섹터 난이도가 '''그나마 무난하기에''' 7사단 GOP 취재하러 오면 보통 여기를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