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영화)

 

''' 역대 아카데미 시상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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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어 영화상 '''
<color=#373a3c> ''' 제63회
(1991년) '''
<color=#373a3c>
<color=#373a3c> ''' 제64회
(1992년) '''
<color=#373a3c>
<color=#373a3c> ''' 제65회
(1993년) '''
희망의 여행

'''지중해'''

인도차이나

1. 개요
2. 줄거리
3. 평가
4. 한국어 성우진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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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terraneo
1991년 이탈리아 영화. 한국에선 1993년 늦게 개봉했다.
감독은 가브리엘 살바토레. 여담으로 제작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여담으로 실제로 2차대전 당시 이런 작은 섬(무인도였다.)에 소규모 부대를 보냈다가 통신장비가 고장나고 본국이 잊어버려서 지원도 아무것도 없어서 부대원들이 그 섬에 눌러앉아서 농사짓고 물고기 잡아가면서 한참을 살던 실화가 있다! 그러다가, 지나가던 영국 어부가 섬에 들어와 전쟁 끝난지 오래라고 알려줘서 비로소 전쟁이 끝난 걸 알게되었고 비로소 독일과 영국이 조사하여 부대원들이 독일로 돌아간 적이 있는데 바로 영국령 채널 제도에서 나치 독일군들이 겪은 실화이다.

2.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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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이탈리아군 소대 9명이 그리스에 있는 외딴 섬으로 파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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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는 작은 마을이 있지만 사람들은 죄다 피난가서 이나 남아있을뿐. 전투같은 건 없고 그저 대기하고 있던 와중에 그날 밤, 이들을 섬으로 태워준 구축함인 R.N. 가리발디함이 영국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밤중에 펑소리가 나서 놀란 이들이 쌍안경으로 보니 멀리서 대기하던 구축함 자리가 뭔가가 불타는 흔적이 보이고, 배 이름이 적힌 구명 튜브나 잔해가 떠올라 있었다. 무전을 해도 배에서 받지 않고, 상부에선 주인공 일행도 같이 꼬르륵한지 알고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가운데 불안한 일행들은 섬으로 올때 물품을 운반할 용도로 데려온 당나귀를 실수로 오발해 죽이고 당나귀를 아끼던 사병 스트라자보스코[1]가 흥분하여 싸우던 도중 무전기를 내던지는 통에 무전기까지 고장나서 바깥으로 연락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마을 사람들이 돌아오는데, 늙은이들과 여자와 아이들 뿐. 이탈리아어를 아는 마을 정교회 신부에게 물어보니 독일군이 주둔한 적이 있는데 그때,남자들을 다 끌고 갔다고 한다. 주인공 일행이 왔을때 독일군이 다시 온 줄 알고 도망쳤지만, 이탈리아군이란 걸 알고 돌아왔다고.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형제...라는 신부의 환빠스런 말[2]을 반갑게 받아들인 주인공 일행은 담담히 섬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엔 순찰도 돌고 하다가[3] 다들 죄다 풀려서 어렵게 농사도 짓고 닭도 잡아먹으면서 지루하지만 평화스럽게 세월을 보낸다. 마을 사람들과는 아직 서먹서먹하여 따로 떨어져 살긴 하지만.
그러다 지나가던 터키인 밀매상[4]이 찾아와서 배를 빼앗고자 했으나 문득 나가봐야 전선에 또 갈뿐이니 이들은 지겨운 전쟁이 싫어서 그냥 포기한다.
다만 일행 중 코라도라는 사병 홀로만 이탈리아로 가고 싶어[5] 그만은 이 를 빼앗자고 열심히 건의하지만, 선거 결과 다수결로 남자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에 소대장인 몬티니 중위는 거부한데다 처음에는 전선으로 가야 한다던 부소대장까지 약빨고 헤롱대는 통에 묻혔다. 일행이 밀매상이 주고 간 아편에 헤롱헤롱 하는 사이, 밀매상은 일행의 무기와 시계, 현금, 귀중품에 철모까지 싸그리 훔쳐가서 이건 아편값이라며 가지고 튄다. 이때 배에 숨어 있던 코라도는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밀매상이 바다에 빠트려 버린다.
아무튼 무기를 몽땅 털리고 망연자실해 하는 일행에게 신부가 그리스인답게 '그러게 터키인을 왜 믿었냐'며 비웃는다. 그리고 무기 걱정을 하는 주인공들에게 독일군 몰래 숨겨둔 무기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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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마을 사람들과 차츰 정도 나누고 마을에서 머물면서 사람들 일도 돕고 아예 마을 사람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군복도 총도 내팽개치고 수류탄물고기 잡는데 쓰인다. 고장난 무전기는 아예 새집이 되었다. 다만 오로지 코라도 1명만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일뿐. 마을에서 살면서 전쟁도 뭐도 다 잊고 평화롭게 살아가며 일행 중 유일한 고아인 병사 파리나는 마을에서 매춘일을 하며 살아가던 여성 바실리사[6]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나중에는 동료인 콜라산티[7]가 손님으로 찾아오자 경고 사격을 하는데 이제 그녀는 창녀같은게 아니니 그녀 건드리면 나에게 죽는다고 으르렁거린다.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난 부대원이 소대장인 몬티니 중위에게 찾아와 어찌해보라고 하고, 중위가 찾아가자 "그녀를 창녀라고 한다면 아무리 소대장님이라고 해도 용서못한다."고 으르렁거리는 통에 겨우 그를 진성시킨다. 그리고 여러 사정을 듣던 신부의 중재로 둘은 나중에 신부의 주례로 결혼식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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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이들과 마을 사람들이 어울려 신나게 축구를 하고 있던 중에 소형 비행기 1대가 불시착한다. 비행기 조종사는 바로 이탈리아인. 섬에 잠깐 머물면서 비행기를 고치던 그 조종사에게 군인들은 이탈리아 본국에 대하여 이거저거 질문하는데 조종사는 뭐 이런 사람들이 있냐며 마구 웃는다. 이미 독재자 무솔리니는 죽은 지 오래이며 자국민들이 파르티잔이 되어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데다가 전쟁은 끝나서 영국, 미국과 한편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것. 비행기를 고치고 그는 떠나는데 또 비행기에 몰래 숨어타던 코라도는 들켜서 조종사에게 내쫓겨난다.[8]
조종사가 다녀가고도 일행의 생활에는 딱히 큰 변화가 없다. 그런데 여느날처럼 허탈하게 해변으로 나와 수류탄으로 고기를 잡던 코라도가 마을 사람들이 숨겨놓은 보트를 발견, 파리나와 바실리사가 결혼하던 날에 얼씨구 좋다 하면서 배를 타고 섬을 탈출한다.
코라도가 찔렀는지 몰라도 얼마 후 섬에 영국 해군이 찾아오고, 독일군에 끌려갔던 마을 남정네들도 돌아온다. 그리고 나머지 일행도 이제 이탈리아로 돌아가자며 마음을 먹고 있는데 파리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찾아도 파리나가 보이지 않자, 문득 뭔가가 생각난 부소대장이자 부사관인 니콜라가 간 곳은 마을 공용 창고. 거기서 여기저기를 찾아보니 빈 올리브통에 파리나가 숨어있었다. 왜 여기 있냐는 말에 '''"난 이탈리아로 가봐야 기다리는 사람도 없어요, 하지만 여기에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있습니다. 그녀를 버리고 가라고요? 이젠, 여기가 내 고향이고 내가 살아갈 곳입니다! 절대로 이탈리아에는 안 가겠어요!"''' 라고 따져든다.
결국 그를 놔두고 나머지 7명은 이탈리아로 가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다.
40여년이 지나서 이제 아무리 봐도 70대 할아버지가 된 몬티니가 이 섬으로 돌아온다.
인생에서 이 섬에서 지내던 그 몇년처럼 행복하던 시절이 없었다면서 이제 얼마 살지도 못하는 삶, 여기서 죽고 싶다고 중얼거리며 섬으로 돌아온다. 40여년이나 지나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래도 옛날 흔적 여기저기가 곳곳에 남아서[9] 섬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그는 회한에 젖는다. 그러다가, 성당을 둘러보다가 그 쪽에 있는 마을 공동묘지를 보고 깜짝 놀라는데 바로 바실리사 사진이 있는 무덤이었다. 착잡한 얼굴을 하며 잠깐 명복을 빌던 몬티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데 아직도 파리나는 살아서 마을에서 작은 이탈리아 식당을 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오니 한 노인음식 만들 준비를 바쁘게 하고 있었다. 반갑게 들어가서 이름을 부르자 놀란 그 노인이 고개를 들고보니 역시나 할아버지가 된 파리나였다. 잠깐 누군지 몰라하다가 소대장님? 이라고 기억한 파리나에게 몬티니는 반갑게 회포를 풀고 식당을 둘러보다가 놀라는데 이미 식당에는 부소대장인 니콜라가 있었다. 니콜라도 처음에는 누군지 몰라보다가 몬티니를 알아보는데 니콜라도 이미 몬티니랑 똑같이 이 섬에서 늘그막을 지내고자 찾아와 파리나의 식당에서 일하면서 같이 살고 있었던 것. 몬티니도 일거리를 달라고 하면서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고 하면서 셋이서 가벼운 술자리를 나누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3. 평가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온 작품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제법 흥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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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1993년 7월 31일, 코아아트홀 극장에서 개봉, 서울관객 8만 7천명이 보았다. 이 당시 흥행한 영화 관객수를 보통 10만으로 기준을 삼았던 걸 생각하면 대박은 아니지만 당시 수입가도 비싸지 않았고 감독이나 배우들은 듣보잡인데다가, 홍보도 안하고 단관극장에서 소리소문없이 개봉하던 걸 생각하면 로드쇼같은 영화 월간지에서도 꽤 흥행작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시네마 천국과 더불어 1980년대에 몰락해 가던 이탈리아 영화 산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4. 한국어 성우진


1996년 3월 31일 KBS-1 명화극장에서 더빙 방영하기도 했다.
몬티니 중위 성우는 이정구. 파리나 성우는 김환진. 그 밖에는 코라도는 설영범, 고 오세홍 외.
더불어 엑스트라인 비행기 조종사 성우는 강수진.
당연하지만 극중 여자 가슴 노출씬이 편집되었다...
이후 2003년 3월 23일 MBC에서 방영했다.
'''성우진(MBC)'''

[1] 때문에 동료들에겐 말박이 취급(...)이다. 나중에 마을에서 새로운 노새를 만나 이름을 가리발디로 짓고 같이 이탈리아로 돌아간다. 노새를 태우면 안된다니까 오만 생떼를 쓰다가 된다고 하자마자 바로 고분고분하게 태도가 돌변한다(...)[2] 사실 그리 틀린 말도 아니다. 그리스인들이 고대에 이탈리아에 식민도시를 운영했으니, 사실 남유럽 국가 거의 대부분이 역사적으로 자국과 원수진 나라빼고는 아무 나라 사람한테나 형제라는 말을 자주 쓴다. 터키인들부터가 우리나라나 일본보고 허구헌 날 형제드립을 치며 친하게 지내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3] 쌍둥이 형제가 산에서 정찰을 성실히 수행했는데, 사실 이것도 양치기 아가씨랑 눈이 맞았기 때문. 이 양치기 아가씨는 형제들이랑 사귄 끝에 누구 씨인지도 모르는 아기를 배어 낳는다.[4] 그것도 아편밀매상이었다. 처음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터키와 그리스는 형제!'(...) 주인공 일행이 '우린 이탈리아 사람이야.'...라고 하니까 한동안 말이 없다가 '터키와 이탈리아는 형제!'(...)드립을 친다. 참고로 터키와 그리스의 사이는 한국일본 사이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악화된거라고 보면 된다.[5] 고향에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어서라는데 섬에 오기 전에도 탈영을 일삼던 상습범이었다. 때문에 마누라에게 꾸준히 편지를 썼지만 다 귀찮았던 부소대장이 배송요청을 싹다 씹어버린다. 근데 마누라 그리워하는 건 별외인지 동료들과 섬에 있는 유일한 매춘부인 바실리사를 찾아가는 것은 빠지지 않았다.(...)[6] 섬 출신은 아니고 독일군들이 데려온 매춘부다. 왜 매춘부가 되었냐고 파리나가 묻자 그녀 왈, "엄마도 매춘부였고, 할매도 매춘부였고, 그 위에 할매도..."(...)[7] 양성애자이다. 나중에 니콜라에게 고백했다가 보기좋게 차인다.(...)[8] "편지는 전해줄 수 있잖아, 개스키야!"...라고 울부짖은 코라도의 모습이 불쌍하면서도 웃기다.[9] 부대원들을 모델로 해서 본인이 그린 성당 벽화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