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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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세웅 신부 등이 모여 1974년에 결성된 기독교 계통 사회주의 모임. 이름이 길기 때문에 언론 등지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 등으로 줄여 부른다.[1]
한때, 문민정부의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정남[2] 은 <이 사람을 보라 - 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49명의 인물과 함께 단체로는 유일하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암흑 속의 횃불'이라는 제목의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가졌었다.
이와 정반대의 대척점 포지션을 가진 단체로 우익 성향의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이 있고, 정의구현사제단과 유사한 포지션으로는 개신교의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실천 협의회'''가 있다.
1974년 당시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이었던 지학순 다니엘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3] , 이를 계기로 함세웅 신부 등의 주도로 결성되어 9월 26일 시국기도회 때 제1 시국 선언의 발표와 함께 만들어진다. 이때 한국 최초의 촛불집회가 진행되었다. # 이후 각종 민주화 운동 등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이들의 업적 중 하나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여 정권 교체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 있다. 이들은 진보 성향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 한국사회에 민주주의가 이룩되자 좌우 정치이념에 있어서 종교적 중립을 최대한 견지한 김수환 추기경과 달리 역대 추기경을 직접 비난할 정도로 정치적 입장을 보여왔으며,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30년이 넘은 긴 활동 연혁에 비해, 규율이나 조직 체계는 간단히 말하자면 대학교 동아리 수준이다. 사제들 중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여 적당한 장소에서 매주 회의와 토론을 갖는 것이 평소 정규 활동의 거의 전부고, 정해진 사무실도 없고 회비도 없다. 따로 가입이나 탈퇴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향력으로 본다면 사회적 책임이 없는 임의 단체라는 사실은 놀랍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아무개 신부가 "A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다"라고 교회 측에 알리면, 교회에선 전국 사제단에 "아무개 신부가 A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싶어한다. 같은 뜻을 가진 신부들은 어디로 모이시오"라고 하면 뜻이 맞는 홍길동 신부, 김철수 신부 등이 모여서 작은 모임을 갖고 참여한 사제들이 "이 정도면 된 것 같다"하면 해산하는 비정규적 모임이지, 무조건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 색을 띄고 활동하는 단체도 아니고, 어디에 연고를 두고 있는 정규 모임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인이 생각하는 단체는 "정의평화위원회"이다. 정평위는 각 교구별로 설치가 되어있는 정규 단체이다.
이들은 가톨릭 산하의 '''공식적인 사제 단체가 아니며''', 엄밀히 말해 사제들의 사적 모임에 해당한다. 사제들에게는 순명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4] 원칙적으로 소속 교구의 교구장인 주교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또한 각자의 자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서로의 행동을 규제하지 않고 기본 소양에 충실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교구장의 권리를 수용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탈피하는 현상은 없다.[5]
이러한 여러 특성으로 인하여, 고유 조직 배경과 자금줄을 갖추며 특정한 사상적 지향점을 쫓게 마련인 시민 사회 단체와는 달리, 사제단은 규율이나 조직 체계, 사상적 측면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편으로 여겨지곤 한다.
2008년 이후 사제단의 활동 방향 및 동향에 대해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있다.
1970년대에는 웬만한 민주화 단체들이 다 죽어 지내고 있을 때, 정면으로 유신을 비판하여 한국의 종교 계열 민주화 운동의 큰 줄기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대표적인 활동으론 3차례에 걸친 대규모 시국선언, 유신 헌법 반대 운동,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이 있다.
1980년대에는 폭동으로 위장 보도되던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가장 먼저 알린 단체 중 하나로, 전두환 정권 내내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특히 정권이 덮으려고 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폭로는 6월 항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대한민국 군부 독재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199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퇴진 후 진행된 민주화로 평화통일 운동 및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에 나서나, 전반적으로 80년대보다 수위를 낮춘 활동 위주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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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X파일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선택한 이유를 '매수당하지 않고, 권력에 쉽게 밀리지도 않는 사람들이다'로 밝혀 '매수당할 개신교'와 '한줌에 밀릴 민노당'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삼성 X파일 사건은 검찰과 특검 수사 결과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시몬 신부는 소속 교구인 서울대교구로부터 중징계성 인사로 볼 수 있는 무기한 안식년 조치를 받았다.[6] 이에 대해 가톨릭 교계 내에서도 삼성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어서 이런 인사가 내려진 게 아니냐 하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지만, 해당일의 중심에 서 있던 전종훈 신부를 비롯해 인사 발령을 받은 사제단 소속 신부들은 교구의 명에 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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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8년 대규모 촛불 집회에 나서기도 하였으며, 용산 철거민들을 위한 기도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 미사 등을 집전하였다.
4대강 정비 사업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0년대 들어 1990년대에 진행하다 중지한 북한에 관련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2019년에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4대 종단 성직자와 수도자 4천인 선언' 기자회견에 신부 947명과 수녀 1323명을 포함해 2270명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인 박요환 신부는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과 검찰의 무리한 압수수색 과정을 지켜보며 검찰 권력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됐다"면서 "조국 장관 임명을 거부하기 위해 벌였던 검찰의 행위는 이제 우리가 검찰 개혁을 이야기할 시간임을 알려줬다"고 밝히면서 검찰개혁을 지지했다. 뉴스
2020년 7월에는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참여한 제1449차 정기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정의연 사태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을 친일 매국 세력이라 비난하며 검찰 수사 또한 비판했다. 뉴스 12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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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비판은 해당 단체가 신부(종교인)이면서도 특정 집단을 옹호하며 특정 국가를 비난하는 성향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지학순 주교와 김수환 추기경 등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천주교 지도자들이 문민정부 등장과 함께 사회적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판단하고, 정치적인 입장을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돌아선 것과는 확연히 차이를 드러내며, 종교가 주장해야 할 군사정권 때의 인권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되었다고 선언한 김수환 추기경의 언급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행동이자 근본 교리에 있어서 바티칸의 입장과도 충돌하는 과격한 행동이다. [7]
사제들의 정치 관여는 정교분리의 위반이며, 정의사제구현단은 적극적으로 종교인의 입장을 활용하여 사제로서 '''신자들을 자신들의 정치 신념에 참여시키고 있다.''' 비록 사제들이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신념을 그대로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는 드문 반면 정의구현사제단은 '''사제의 권위를 이용해 신도들을 현혹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회의 복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톨릭에 있어서 이단이나 다름없는 해석이며, 이는 최대 파문까지 받을 수 있는 중죄다.
30년 전쟁 이전까지 정치는 도덕의 실현의 장이었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에서 도덕은 곧 종교였다. 이런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 폭군방벌론이다. 폭군방벌론에 의하면 도덕적이지 못한 군주, 즉 신교측 입장에서의 구교 군주나 그 역의 경우에 신도는 군주를 축출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였다. 그리고 이 폭군방벌론은 프랑스 종교전쟁과 30년전쟁의 주요 원인이 됐고, 따라서 30년전쟁의 종결의 결과물로써 탄생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집단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사제단의 사제들은 당연히 자연인이고, 정치에 참여할 권한이 있다. 그들에게도 역시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부여되어야 한다. 그들은 집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자연인으로서만 일어나야 한다. 그들이 수단을 입는 순간, 그들은 자연인이 아닌 종교인,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사제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정치에 참여하고 싶다면 개인 자격으로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하지만 사제 자격으로는 절대 그래선 안 되고, '''사제단'''이라는 교회 내 사조직으로서는 더욱 그래선 안 된다.
종교 단체로서 사회 불의와 부정에 입장을 밝히는 것까지도 비판할 수는 없으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치이슈에 직접 개입해 한결같은 진영 논리를 펼쳐온 것은 비판의 여지를 사제단이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제단의 존재가 종교 차원의 목소리가 아닌, 정치집단의 한결 같은 주장이 되어버린 것은 패착이다. 이는 패망 직전 월남의 천주교 사제단을 보는 듯 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며, 당시에 정의구현사제단과 유사 단체[8] 가 존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사제 개인의 정치 참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제의를 벗고 교회를 떠나라는 소리. 참여정부 이래, 사제단이 극단적인 좌파성향에 함몰된 것은 사실이다. '효순미선 사건'부터 '박근혜 탄핵'까지 거의 모든 이념충돌의 중심에서 좌파 편향의 입장을 강경하게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 종교적 진리를 정치적 성향에 묻었다는 비판이다.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사퇴한 시점에서 열린 4대종단 성직자가 참여한 검찰개혁 촉구 선언에 정의구현 사제단이 참여했고,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옹호하기도 했다.
일부 극단적인 사제들은 미사 때 특정 정치 성향에 편향되어 있는 견해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처럼 매도하고는 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되어 있다. 물론 군사 독재와 같은 사례는 어떠한 면모로 보더라도 현대적인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며 그렇기에 김수환 추기경의 사례에서 보듯,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많은 정치적 주제들은, 군사 독재처럼 명백하게 선악을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제 개인이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그 미사에 참례한 일부 신자들을 매도하는 게 과연 옳을까?
특히 이 경우 많은 사제들은 자신의 개인적 정치 신념과,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을 구분하지 않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의견이 하느님과 보편교회를 대표하는 듯이 말한다. 이 경우 일부 교리에 무지한 신자들은, 사제의 개인적 정치 성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는 한다.[9][10] 아무리 종교는 명백하게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교리를 근거로 부자 감세를 반대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신자들을 그리스도인 답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제는 성경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말이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은 아니며, 다만 교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의구현사제단 내에서 대교구장 또는 관구장 주교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러한 주장이 옳다, 또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에 대한 교구장 사임 요구 건의 경우, 4대강사업과 같은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비판과 토론이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교구장직 사임 요구는 세속적인 문제를 넘어선 문제, 즉 교도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해, 추기경의 발언을 비판하는 선을 넘어선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김수환 추기경의 탄핵 반대 촛불 집회 자제 요청에 대해 함세웅 신부가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해서 큰 논란이 됐었다. 논란을 일으킨 발언을 비판한 정도에서 멈췄다면 정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이를 넘어서 교구장직을 사임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교회의 근간인 교도권에 항명하는 행위이다. 애초에, 주교품 성직자의 서품. 즉 교구장의 임명은 교황에게만 유보된 특수 권한이다. 당연히 교구장의 교체 역시 교황의 고유 권한이라는 사실. 게다가 이미 정진석 추기경은 75세가 넘은 주교는 사의를 표명하고 은퇴한다는 관례에 따라 이미 여러 차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의를 표명한 바가 있고 교황이 사의를 계속 반려하고 있는 상황인데[11] ,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단의 이런 행동은 교황의 교도권에 도전을 하는 교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제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 구조나 사회 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며,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며 비판하였는데12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원로 인사이자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장[12]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염 추기경의 강론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며 성서적 기초도 없는 강론', '가톨릭 교리를 아전인수 식으로 왜곡했다' 라며 비판했다.출처 문제는 이런 식의 발언이 '''순명을 거부한다는 발언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13]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치적 목적을 설파하더라도, 사제들로서 근본적인 천주교의 교리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려고 하며, 특수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직접적인 행동은 자제하기 때문에 좌/우 논쟁과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의견이 있다. 공식적으로 특정 정치 성향이나 정당과 연대하는 것을 강령 등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들의 행보는 대중의 시선에서 보더라도 명백히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편향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그 특성상 근본적으로 북한에 동조할 수 없는 것인데, 정의구현사제단이 연평도 포격 사태 등 남북간의 갈등에 대해 보여준 지나친 양비론적 입장은 대중들에게 종북은 아닐지언정, 친북적이라고 인식될 여지가 충분하다.
'''군사독재정부 시절'''과는 달리,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엄연히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정치를 하고 있는만큼 굳이 종교에서 개입할 필요는 없다. 이는 가톨릭과 기독교를 비교하는 경우 제일 많이 인용되는 부분 중 하나이며, 사제단이 자신들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의 대척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월남 패망 당시 민주진영 분열의 원인이 된 짠후탄(Tran Huu Thanh) 신부[14] 의 '''구국평화회복반부패운동'''에 비유되기도 한다. 사회와 정치 비판에는 앞장 서면서 정작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사제단의 모순적 입장이 비판의 여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즉, 정의구현사제단의 지나친 극단적 편향성은 가톨릭 교회의 성격에 맞지 않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이다. 즉 자유지상주의자, 신자유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 왕정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이 모두 믿을 수 있는 가톨릭한(Catholic, 보편된) 교회이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9장 19~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자의 교회일지언정, 가난한 자'''만'''의 교회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기에 부자에게는 부자의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같은 원리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신자유주의자의 교회가, 사민주의자에게는 사민주의자의 교회가, 왕정주의자에게는 왕정주의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사에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토마스를 위하여 다시 한번 나타났고, 토마스에게 자신의 상처를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토마스의 하느님, 토마스의 주님'(요한 20, 28)이었다.
만약 교회가 가난한 자'만'의 교회 또는 부자'만'의 교회가 된다면 그 교회는 보편적이지 않다. 즉 가톨릭(Catholic, 보편)하지 않은 교회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노끈이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복음서 19, 24)"라고 말하고는 했으나, 여기서의 부자는 세속적인 의미의 부유층이라기 보다는 탐욕을 부리는 자, 수덕적 의미의 청빈을 도외시 하는 자 등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신약에서는 많은 가난한 이들이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덤을 기꺼이 내어준 아리마태아의 요셉(루카 27, 57),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의 귀부인들(사도행전 17, 4) 역시도 보여준다.
물론 교회가 가난한 자를 박대하고, 중산층이나 부유층만을 품으려고 한다면 비판을 들어야 마땅하다.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가톨릭 교회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역사상 꾸준히 강조하여 왔으며,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강조해야만 한다. 그러나 교회를 특정한 정치성향이나, 계급투쟁론에 연결시키는 것은 가톨릭 교회를 가톨릭하지 않게 만드는 행위일 뿐이다.
이러한 편향성 때문에 사제단의 정치적 입장 그 자체, 또는 그 이념적 편향성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제단을 이른바 "소수 좌파 신부" 의 집단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초기 타파의 대상이었던 군사 독재 정권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을 계속하는지, 또한 그 방식이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대와 유사한 시위, 투쟁의 형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삼성 특검 사건에 대한 개입을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된 사건에 종교 단체가 부당하게 개입, 민간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였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한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검찰개혁이나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은 철저하게 진영논리에 머물고 있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박창신 베드로 신부가 2013년 11월 22일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위한 시국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한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정확하게 박 신부가 했던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다.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논란은 뒤로 하고 가장 중요한 건 '''민간인을 상대로 포격을 했다는 것을 박창신은 끝까지 말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되지 못한다. 살인에 동조하는 명백한 범죄이다. 북이 어떠한 명분으로 포격을 했던 간에, 민간인이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범죄적 행위이자 정의구현사제단 본인들이 섬기는 예수가 가장 뒷골잡고 쓰러질 행위이다. 카톨릭 신부라는 사람이 '''사랑과 평화'''라는 기본 교리조차 내던져버리고 민간인을 대포로 폭사시켜 죽이는 행위를 옹호한 점에서 이들은 신부는 커녕 교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천주교 수원교구 광교1동성당 '''한만삼''' 요한 주임신부가 지난 2011년 11월 18일, 남수단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여성 신자를 성폭행하려 했던 사실이 피해자의 "미투" 증언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해외선교 중 사제가 성폭행 시도” 천주교 신자, 7년 전 일 ‘미투’ 폭로
가해자 한 신부는 이태석[21] 신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에도 등장했던 나름 네임드라 여파가 상당할 듯.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는 개소리를 하며 재차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신부는 수원교구에서 모든 직무를 정지당했고, 정의구현사제단도 자진 탈퇴했다. [단독] 가해 신부 ‘모든 직무 정지’…정의구현사제단 ‘탈퇴’
2018년 2월 25일, 정의구현사제단은 전 소속 신부 성폭행 시도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문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인 천주교 대전교구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가 '한만삼 신부는 7년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용서해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정의구현사제단인 것을 강조하며 이 얘기를 꺼낸 의도가 의심스럽다.'라 발언하였다가, 피해자 측이 가해자 한만삼 신부와 단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며 항의하자 2월 27일 사과했다.# 박원순 사례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미투사건 대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좌파들의 성추행 사건에 의례 나오는 그들만의 왜곡된 윤리의식과 제 식구 감싸기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74년 결성 이후, 이듬해 75년에 '한국 천주교 정의 신자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사제단의 기도 집회를 '위장 정치 집회'로 단정하며 규탄했던 적이 있다. 이때 '횃불'이라는 유인물이 뿌려졌는데, 해당 유인물을 제작한 분이 '''공동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해당 공동체의 부회장 직위를 넣은 채로 배포했다가 공동체 소속원들의 반대로 인해 결국 부회장 자리를 사퇴하게 됐다'''는 안습한 과거가 존재한다. 일단 해당 조직에 '''지도 신부도 2분 정도 계셨다'''고 한다.
2010년 들어 '정치 사제들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한국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가 신문광고를 통해 돌연 나타났는데, 기도회에서 확인된 해당 단체의 인원수는 대략 70명 정도라고 한다. 정체는 뉴라이트계 천주교 조직으로, 08년 촛불 정국 때 '''주교회의 인준 단체인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이름을 도용'''했다가 정정 광고를 실었던 적도 있다. 해당 조직의 창설자는 김현욱 전 자민련 의원이며, 동조하는 사제들은 김계춘 도미니코 신부(부산교구), 박홍 루카 신부(예수회)의 '''2명'''이라 한다.# 이 조직은 2013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으로 개편됐다.
이에 대해 일선 사제들 사이에서는 불쾌하다는 입장이 강한데, 일단 천주교 신자를 자처하면서도 천주교 내부에서의 소통과정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 주교 회의의 결정에까지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확실히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사제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선 의문의 시각이 꽤 있다. 일례로 가톨릭 언론인 평화신문에 종교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옹호한 글이 실리자# 바로 종교인의 정치 참여가 올바른지 반박하는 기고문이 올라왔는데# 사제들이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신자들 사이에 있는 것도 사실인 것.
1990년대 극우성향 잡지인 한국논단에서 빨갱이라고 비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편집인 이도형이 집을 날린다. 정의구현사제단 뿐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등 주요 시민 단체들이 고소하였다.
대한성공회 내에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정의평화사제단'''이 존재한다.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스탠스가 서로 비슷해서 크고작은 현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성공회의 규모가 너무 작아 눈에 잘 안 띌 뿐.[22] 차이점이 있다면, 정의구현사제단은 천주교 내에서 비주류의 위치에 있지만, 대한성공회에선 정의평화사제단이 주류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23]
개그맨 양원경의 동생인 양인경 알폰소 신부(천주교 광주대교구)가 이 사제단 소속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이름만 약간 다를 뿐, 하는 일은 유사해 보이는 '정의 실현 사제단'이 등장한다. 영화 내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최준호 아가토 부제가 김범신 베드로 신부로부터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찾아가 박태근 마태오 수사를 만나 돼지를 받아 오라"는 말을 듣고 받으러 갔을 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나온다.
1. 개요
함세웅 신부 등이 모여 1974년에 결성된 기독교 계통 사회주의 모임. 이름이 길기 때문에 언론 등지에서는 정의구현사제단 등으로 줄여 부른다.[1]
한때, 문민정부의 청와대 교육문화사회수석비서관을 지낸 민주화운동의 대부 김정남[2] 은 <이 사람을 보라 - 인물로 보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49명의 인물과 함께 단체로는 유일하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암흑 속의 횃불'이라는 제목의 부록에서 소개하고 있을 정도로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가졌었다.
이와 정반대의 대척점 포지션을 가진 단체로 우익 성향의 '''대한민국 수호 천주교인 모임'''이 있고, 정의구현사제단과 유사한 포지션으로는 개신교의 '''전국 목회자 정의평화 실천 협의회'''가 있다.
2. 역사
1974년 당시 천주교 원주교구 교구장이었던 지학순 다니엘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자[3] , 이를 계기로 함세웅 신부 등의 주도로 결성되어 9월 26일 시국기도회 때 제1 시국 선언의 발표와 함께 만들어진다. 이때 한국 최초의 촛불집회가 진행되었다. # 이후 각종 민주화 운동 등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이들의 업적 중 하나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폭로하여 정권 교체의 전기를 마련한 것이 있다. 이들은 진보 성향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문민정부 수립 이후, 한국사회에 민주주의가 이룩되자 좌우 정치이념에 있어서 종교적 중립을 최대한 견지한 김수환 추기경과 달리 역대 추기경을 직접 비난할 정도로 정치적 입장을 보여왔으며, 북한 인권에 대한 입장에 있어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3. 조직
30년이 넘은 긴 활동 연혁에 비해, 규율이나 조직 체계는 간단히 말하자면 대학교 동아리 수준이다. 사제들 중 뜻을 함께 하는 이들이 모여 적당한 장소에서 매주 회의와 토론을 갖는 것이 평소 정규 활동의 거의 전부고, 정해진 사무실도 없고 회비도 없다. 따로 가입이나 탈퇴 절차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영향력으로 본다면 사회적 책임이 없는 임의 단체라는 사실은 놀랍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아무개 신부가 "A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싶다"라고 교회 측에 알리면, 교회에선 전국 사제단에 "아무개 신부가 A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싶어한다. 같은 뜻을 가진 신부들은 어디로 모이시오"라고 하면 뜻이 맞는 홍길동 신부, 김철수 신부 등이 모여서 작은 모임을 갖고 참여한 사제들이 "이 정도면 된 것 같다"하면 해산하는 비정규적 모임이지, 무조건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 색을 띄고 활동하는 단체도 아니고, 어디에 연고를 두고 있는 정규 모임도 아니다. 오히려 일반인이 생각하는 단체는 "정의평화위원회"이다. 정평위는 각 교구별로 설치가 되어있는 정규 단체이다.
이들은 가톨릭 산하의 '''공식적인 사제 단체가 아니며''', 엄밀히 말해 사제들의 사적 모임에 해당한다. 사제들에게는 순명의 의무가 있기 때문에[4] 원칙적으로 소속 교구의 교구장인 주교의 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또한 각자의 자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서로의 행동을 규제하지 않고 기본 소양에 충실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교구장의 권리를 수용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탈피하는 현상은 없다.[5]
이러한 여러 특성으로 인하여, 고유 조직 배경과 자금줄을 갖추며 특정한 사상적 지향점을 쫓게 마련인 시민 사회 단체와는 달리, 사제단은 규율이나 조직 체계, 사상적 측면에 있어 비교적 자유로운 편으로 여겨지곤 한다.
4. 활동 연혁
2008년 이후 사제단의 활동 방향 및 동향에 대해서는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있다.
4.1. 1970년대
1970년대에는 웬만한 민주화 단체들이 다 죽어 지내고 있을 때, 정면으로 유신을 비판하여 한국의 종교 계열 민주화 운동의 큰 줄기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 대표적인 활동으론 3차례에 걸친 대규모 시국선언, 유신 헌법 반대 운동, 긴급조치 무효화 운동이 있다.
4.2. 1980년대
1980년대에는 폭동으로 위장 보도되던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을 가장 먼저 알린 단체 중 하나로, 전두환 정권 내내 민주화 운동의 중요한 부분을 맡았다. 특히 정권이 덮으려고 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폭로는 6월 항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대한민국 군부 독재 역사의 종지부를 찍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4.3. 1990년대
1990년대에는 군사정권의 퇴진 후 진행된 민주화로 평화통일 운동 및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등에 나서나, 전반적으로 80년대보다 수위를 낮춘 활동 위주로 진행됐다.
4.4.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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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에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X파일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다.
특히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선택한 이유를 '매수당하지 않고, 권력에 쉽게 밀리지도 않는 사람들이다'로 밝혀 '매수당할 개신교'와 '한줌에 밀릴 민노당'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삼성 X파일 사건은 검찰과 특검 수사 결과 사실상 무죄 판결이 내려졌고,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시몬 신부는 소속 교구인 서울대교구로부터 중징계성 인사로 볼 수 있는 무기한 안식년 조치를 받았다.[6] 이에 대해 가톨릭 교계 내에서도 삼성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어서 이런 인사가 내려진 게 아니냐 하는 음모론을 들고 나왔지만, 해당일의 중심에 서 있던 전종훈 신부를 비롯해 인사 발령을 받은 사제단 소속 신부들은 교구의 명에 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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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08년 대규모 촛불 집회에 나서기도 하였으며, 용산 철거민들을 위한 기도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기리는 장례 미사 등을 집전하였다.
4대강 정비 사업 반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4.5. 2010년대
2010년대 들어 1990년대에 진행하다 중지한 북한에 관련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2019년에는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4대 종단 성직자와 수도자 4천인 선언' 기자회견에 신부 947명과 수녀 1323명을 포함해 2270명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인 박요환 신부는 "조국 장관 인사청문회 과정과 검찰의 무리한 압수수색 과정을 지켜보며 검찰 권력의 속살을 들여다보게 됐다"면서 "조국 장관 임명을 거부하기 위해 벌였던 검찰의 행위는 이제 우리가 검찰 개혁을 이야기할 시간임을 알려줬다"고 밝히면서 검찰개혁을 지지했다. 뉴스
2020년 7월에는 정의기억연대와 함께 참여한 제1449차 정기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정의연 사태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을 친일 매국 세력이라 비난하며 검찰 수사 또한 비판했다. 뉴스 12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개혁의 최대 걸림돌이 되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
5.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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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비판은 해당 단체가 신부(종교인)이면서도 특정 집단을 옹호하며 특정 국가를 비난하는 성향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지학순 주교와 김수환 추기경 등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천주교 지도자들이 문민정부 등장과 함께 사회적 체제로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고 판단하고, 정치적인 입장을 정교분리의 원칙으로 돌아선 것과는 확연히 차이를 드러내며, 종교가 주장해야 할 군사정권 때의 인권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되었다고 선언한 김수환 추기경의 언급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행동이자 근본 교리에 있어서 바티칸의 입장과도 충돌하는 과격한 행동이다. [7]
5.1.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는가?
사제들의 정치 관여는 정교분리의 위반이며, 정의사제구현단은 적극적으로 종교인의 입장을 활용하여 사제로서 '''신자들을 자신들의 정치 신념에 참여시키고 있다.''' 비록 사제들이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는 있어도, 그 신념을 그대로 신도들에게 강요하는 경우는 드문 반면 정의구현사제단은 '''사제의 권위를 이용해 신도들을 현혹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회의 복음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가톨릭에 있어서 이단이나 다름없는 해석이며, 이는 최대 파문까지 받을 수 있는 중죄다.
30년 전쟁 이전까지 정치는 도덕의 실현의 장이었다. 그리고 기독교 세계에서 도덕은 곧 종교였다. 이런 맥락에서 생겨난 것이 폭군방벌론이다. 폭군방벌론에 의하면 도덕적이지 못한 군주, 즉 신교측 입장에서의 구교 군주나 그 역의 경우에 신도는 군주를 축출하는 것이 하나의 의무였다. 그리고 이 폭군방벌론은 프랑스 종교전쟁과 30년전쟁의 주요 원인이 됐고, 따라서 30년전쟁의 종결의 결과물로써 탄생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의 원칙은, 종교집단이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사제단의 사제들은 당연히 자연인이고, 정치에 참여할 권한이 있다. 그들에게도 역시 집회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부여되어야 한다. 그들은 집회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적 주장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자연인으로서만 일어나야 한다. 그들이 수단을 입는 순간, 그들은 자연인이 아닌 종교인,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사제가 되는 것이다. 그들이 정말로 정치에 참여하고 싶다면 개인 자격으로 얼마든지 그래도 된다. 하지만 사제 자격으로는 절대 그래선 안 되고, '''사제단'''이라는 교회 내 사조직으로서는 더욱 그래선 안 된다.
5.2. 사제로서의 교리 위배
종교 단체로서 사회 불의와 부정에 입장을 밝히는 것까지도 비판할 수는 없으나, 논쟁의 여지가 있는 정치이슈에 직접 개입해 한결같은 진영 논리를 펼쳐온 것은 비판의 여지를 사제단이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제단의 존재가 종교 차원의 목소리가 아닌, 정치집단의 한결 같은 주장이 되어버린 것은 패착이다. 이는 패망 직전 월남의 천주교 사제단을 보는 듯 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며, 당시에 정의구현사제단과 유사 단체[8] 가 존재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사제 개인의 정치 참여를 비난하는 것이 아닌, 제의를 벗고 교회를 떠나라는 소리. 참여정부 이래, 사제단이 극단적인 좌파성향에 함몰된 것은 사실이다. '효순미선 사건'부터 '박근혜 탄핵'까지 거의 모든 이념충돌의 중심에서 좌파 편향의 입장을 강경하게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 종교적 진리를 정치적 성향에 묻었다는 비판이다. 최근에는 조국 법무부장관이 사퇴한 시점에서 열린 4대종단 성직자가 참여한 검찰개혁 촉구 선언에 정의구현 사제단이 참여했고,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옹호하기도 했다.
일부 극단적인 사제들은 미사 때 특정 정치 성향에 편향되어 있는 견해를 밝히는 것을 넘어서서, 마치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진짜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 처럼 매도하고는 한다. 이는 명백히 잘못되어 있다. 물론 군사 독재와 같은 사례는 어떠한 면모로 보더라도 현대적인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며 그렇기에 김수환 추기경의 사례에서 보듯, 강하게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많은 정치적 주제들은, 군사 독재처럼 명백하게 선악을 판단하기 모호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사제 개인이 자신의 정치 성향과 맞지 않는다고 그 미사에 참례한 일부 신자들을 매도하는 게 과연 옳을까?
특히 이 경우 많은 사제들은 자신의 개인적 정치 신념과,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을 구분하지 않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의견이 하느님과 보편교회를 대표하는 듯이 말한다. 이 경우 일부 교리에 무지한 신자들은, 사제의 개인적 정치 성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는 한다.[9][10] 아무리 종교는 명백하게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교리를 근거로 부자 감세를 반대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신자들을 그리스도인 답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 사제는 성경을 인용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쉽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말이 교회의 보편된 가르침은 아니며, 다만 교리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식으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정의구현사제단 내에서 대교구장 또는 관구장 주교에 대해 반발하는 목소리가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그러한 주장이 옳다, 또는 지나치다는 의견이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에 대한 교구장 사임 요구 건의 경우, 4대강사업과 같은 '세속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비판과 토론이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교구장직 사임 요구는 세속적인 문제를 넘어선 문제, 즉 교도권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해, 추기경의 발언을 비판하는 선을 넘어선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2004년 3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김수환 추기경의 탄핵 반대 촛불 집회 자제 요청에 대해 함세웅 신부가 "그분의 사고는 다소 시대착오적이라고 판단한다."라고 말해서 큰 논란이 됐었다. 논란을 일으킨 발언을 비판한 정도에서 멈췄다면 정당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이를 넘어서 교구장직을 사임하라는 요구를 하는 것은 교회의 근간인 교도권에 항명하는 행위이다. 애초에, 주교품 성직자의 서품. 즉 교구장의 임명은 교황에게만 유보된 특수 권한이다. 당연히 교구장의 교체 역시 교황의 고유 권한이라는 사실. 게다가 이미 정진석 추기경은 75세가 넘은 주교는 사의를 표명하고 은퇴한다는 관례에 따라 이미 여러 차례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사의를 표명한 바가 있고 교황이 사의를 계속 반려하고 있는 상황인데[11] ,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단의 이런 행동은 교황의 교도권에 도전을 하는 교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안드레아) 추기경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제들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정치 구조나 사회 생활 조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가 할 일이 아니며, 이 임무를 주도적으로 행하는 것은 평신도의 소명으로 강조하고 있다' 하며 비판하였는데12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원로 인사이자 안중근 의사 기념 사업회장[12] 함세웅(아우구스티노) 신부가 염 추기경의 강론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며 성서적 기초도 없는 강론', '가톨릭 교리를 아전인수 식으로 왜곡했다' 라며 비판했다.출처 문제는 이런 식의 발언이 '''순명을 거부한다는 발언으로 보기 충분하다'''는 것.[13]
5.3. 이념적 편향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치적 목적을 설파하더라도, 사제들로서 근본적인 천주교의 교리와 기본적인 틀을 유지하려고 하며, 특수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직접적인 행동은 자제하기 때문에 좌/우 논쟁과는 별로 연관이 없다는 의견이 있다. 공식적으로 특정 정치 성향이나 정당과 연대하는 것을 강령 등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제 그들의 행보는 대중의 시선에서 보더라도 명백히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편향되어 있다. 가톨릭 교회는 그 특성상 근본적으로 북한에 동조할 수 없는 것인데, 정의구현사제단이 연평도 포격 사태 등 남북간의 갈등에 대해 보여준 지나친 양비론적 입장은 대중들에게 종북은 아닐지언정, 친북적이라고 인식될 여지가 충분하다.
'''군사독재정부 시절'''과는 달리, 현재 대한민국 정부는 엄연히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정치를 하고 있는만큼 굳이 종교에서 개입할 필요는 없다. 이는 가톨릭과 기독교를 비교하는 경우 제일 많이 인용되는 부분 중 하나이며, 사제단이 자신들의 행위는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의 대척점이기도 하다.
때문에, 월남 패망 당시 민주진영 분열의 원인이 된 짠후탄(Tran Huu Thanh) 신부[14] 의 '''구국평화회복반부패운동'''에 비유되기도 한다. 사회와 정치 비판에는 앞장 서면서 정작 북한인권에 침묵하는 사제단의 모순적 입장이 비판의 여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즉, 정의구현사제단의 지나친 극단적 편향성은 가톨릭 교회의 성격에 맞지 않다.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인 교회이다. 즉 자유지상주의자, 신자유주의자, 사회자유주의자, 사민주의자, 왕정주의자, 아나키스트 등이 모두 믿을 수 있는 가톨릭한(Catholic, 보편된) 교회이다.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 1서 9장 19~2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교회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가난한 자의 교회일지언정, 가난한 자'''만'''의 교회가 되어서도 안된다. 그렇기에 부자에게는 부자의 교회가, 가난한 자에게는 가난한 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같은 원리로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신자유주의자의 교회가, 사민주의자에게는 사민주의자의 교회가, 왕정주의자에게는 왕정주의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매사에 신중하고 의심이 많은 토마스를 위하여 다시 한번 나타났고, 토마스에게 자신의 상처를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는 '토마스의 하느님, 토마스의 주님'(요한 20, 28)이었다.
만약 교회가 가난한 자'만'의 교회 또는 부자'만'의 교회가 된다면 그 교회는 보편적이지 않다. 즉 가톨릭(Catholic, 보편)하지 않은 교회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가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노끈이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복음서 19, 24)"라고 말하고는 했으나, 여기서의 부자는 세속적인 의미의 부유층이라기 보다는 탐욕을 부리는 자, 수덕적 의미의 청빈을 도외시 하는 자 등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신약에서는 많은 가난한 이들이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에게 무덤을 기꺼이 내어준 아리마태아의 요셉(루카 27, 57),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의 귀부인들(사도행전 17, 4) 역시도 보여준다.
물론 교회가 가난한 자를 박대하고, 중산층이나 부유층만을 품으려고 한다면 비판을 들어야 마땅하다.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가톨릭 교회는 가난한 자에 대한 사랑을 역사상 꾸준히 강조하여 왔으며,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강조해야만 한다. 그러나 교회를 특정한 정치성향이나, 계급투쟁론에 연결시키는 것은 가톨릭 교회를 가톨릭하지 않게 만드는 행위일 뿐이다.
이러한 편향성 때문에 사제단의 정치적 입장 그 자체, 또는 그 이념적 편향성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사제단을 이른바 "소수 좌파 신부" 의 집단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목소리도 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은 초기 타파의 대상이었던 군사 독재 정권의 종식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지속적인 정치적 활동을 계속하는지, 또한 그 방식이 과거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대와 유사한 시위, 투쟁의 형식으로 나타나야 하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삼성 특검 사건에 대한 개입을 "결과적으로 무죄 판결된 사건에 종교 단체가 부당하게 개입, 민간 기업의 이익을 침해하였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또한 조국 전 장관과 관련된 검찰개혁이나 정의기억연대 사태에서 보여준 모습은 철저하게 진영논리에 머물고 있기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6. 논란거리
- 다수의 민주화, 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비난과 맥락을 같이하여, 사제단에 대하여 "한국의 인권과 민주화를 지나치게 따지면서 막상 그보다 열악한 북한의 인권에는 침묵한다"는 이른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일관성 없는 단체" 라는 비판이 존재한다.[15]
- "정의" 구현 사제단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일부 지나치게 정치 편향적인 발언이나 추문 등이 종종 거론되곤 한다. 사제단의 중직을 맡고 있는 사제가 KAL기 폭파 음모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문정현 바르톨로메오 신부[16] 는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으로 "인간백정 주한미군을 반드시 참수할 것" "미군부대만 지나면 살인의 마음이 든다" 이라고 하였으며,# 이 발언이 사제단의 성격을 대표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참고로 이 발언은 단순히 당시 사건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며, 문정현 자신이 평소에도 '조폭 신부'라고 불릴 정도로 굉장히 강한 욕설과 저주를 즐겨 사용하던 양반이라 그랬다는 의견도 많다. 다만 문정현 자체가 사제단의 중추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듯.
-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박창신 베드로 신부[17] 가 18대 대선 개표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설파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박창신 신부는 각종 시국미사에서 한영수가 출판한 '제18대 대통령 부정선거백서'를 인용하면서 계속 국정원이 주도하고 선관위가 협력한 정권차원의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주장은 실체적 근거가 전혀없는 그야말로 짜집기 음모론에 불과하다는게 대체적인 평가이다. 야당과 좌파/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 같은 정권의 선거개입[18] 을 비판할 따름이지, 무슨 후진국 마냥 조직적인 개표부정으로 선거결과가 뒤집혔다는 음모론과는 확실히 선을 긋고 있다. 좌파 성향 언론들도 음모론은 외면하고 있으며, 기껏해야 김어준 정도가 인터넷에서 떠드는 정도다.
-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은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부터 계속해서 천안함 음모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합조단 최종보고서는 F학점” 천안함 사건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뒤에도 국방부의 조사보고서에 대해선 계속 불신을 표명해왔으며, 이에 대해선 입장 변화나 의견 제시는 없다.
6.1.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포격 사태 발언 논란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인 박창신 베드로 신부가 2013년 11월 22일에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위한 시국미사를 집전하던 도중 연평도 포격 사태에 대한 발언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정확하게 박 신부가 했던 해당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자기 땅이라고 독도에서 훈련하면 우리 어떻게 해야 돼요, 대통령이? 쏴버려야죠. 안 쏘면 대통령 문제 있어요. 그러면 NLL(서해북방한계선),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 군사 운동을 계속하면 북조선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그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에요."
연평도 사건 3주기 시점에서 북의 포격으로 인해 피해를 본 군 장병들과 민간인들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도 없이, 북한의 입장과 유사한 주장을 단정적으로 내뱉으면서 천주교 내에서도 '''"지나친 발언이다"''','''"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의 신부냐?"'''라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19][20]"NLL은 유엔군 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조선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거예요. 북조선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휴전 협정에도 없는 거예요."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논란은 뒤로 하고 가장 중요한 건 '''민간인을 상대로 포격을 했다는 것을 박창신은 끝까지 말하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되지 못한다. 살인에 동조하는 명백한 범죄이다. 북이 어떠한 명분으로 포격을 했던 간에, 민간인이 공격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명백한 범죄적 행위이자 정의구현사제단 본인들이 섬기는 예수가 가장 뒷골잡고 쓰러질 행위이다. 카톨릭 신부라는 사람이 '''사랑과 평화'''라는 기본 교리조차 내던져버리고 민간인을 대포로 폭사시켜 죽이는 행위를 옹호한 점에서 이들은 신부는 커녕 교인이라고도 할 수 없다.
6.2. 소속 한만삼 신부의 신자 성폭행 미수
천주교 수원교구 광교1동성당 '''한만삼''' 요한 주임신부가 지난 2011년 11월 18일, 남수단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여성 신자를 성폭행하려 했던 사실이 피해자의 "미투" 증언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해외선교 중 사제가 성폭행 시도” 천주교 신자, 7년 전 일 ‘미투’ 폭로
가해자 한 신부는 이태석[21] 신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에도 등장했던 나름 네임드라 여파가 상당할 듯. “내가 내 몸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달라.”는 개소리를 하며 재차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해당 신부는 수원교구에서 모든 직무를 정지당했고, 정의구현사제단도 자진 탈퇴했다. [단독] 가해 신부 ‘모든 직무 정지’…정의구현사제단 ‘탈퇴’
2018년 2월 25일, 정의구현사제단은 전 소속 신부 성폭행 시도에 대해 사과했다. 사과문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인 천주교 대전교구 김유정 유스티노 신부가 '한만삼 신부는 7년간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으나 용서해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정의구현사제단인 것을 강조하며 이 얘기를 꺼낸 의도가 의심스럽다.'라 발언하였다가, 피해자 측이 가해자 한만삼 신부와 단 한번도 연락한 적이 없다며 항의하자 2월 27일 사과했다.# 박원순 사례를 비롯한 유명인사들의 미투사건 대부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좌파들의 성추행 사건에 의례 나오는 그들만의 왜곡된 윤리의식과 제 식구 감싸기를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7. 그 외의 사항
74년 결성 이후, 이듬해 75년에 '한국 천주교 정의 신자단'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체가 사제단의 기도 집회를 '위장 정치 집회'로 단정하며 규탄했던 적이 있다. 이때 '횃불'이라는 유인물이 뿌려졌는데, 해당 유인물을 제작한 분이 '''공동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해당 공동체의 부회장 직위를 넣은 채로 배포했다가 공동체 소속원들의 반대로 인해 결국 부회장 자리를 사퇴하게 됐다'''는 안습한 과거가 존재한다. 일단 해당 조직에 '''지도 신부도 2분 정도 계셨다'''고 한다.
2010년 들어 '정치 사제들의 퇴진을 요구'한다는 한국천주교나라사랑기도회가 신문광고를 통해 돌연 나타났는데, 기도회에서 확인된 해당 단체의 인원수는 대략 70명 정도라고 한다. 정체는 뉴라이트계 천주교 조직으로, 08년 촛불 정국 때 '''주교회의 인준 단체인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이름을 도용'''했다가 정정 광고를 실었던 적도 있다. 해당 조직의 창설자는 김현욱 전 자민련 의원이며, 동조하는 사제들은 김계춘 도미니코 신부(부산교구), 박홍 루카 신부(예수회)의 '''2명'''이라 한다.# 이 조직은 2013년 '대한민국수호천주교인모임'으로 개편됐다.
이에 대해 일선 사제들 사이에서는 불쾌하다는 입장이 강한데, 일단 천주교 신자를 자처하면서도 천주교 내부에서의 소통과정에는 일체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 주교 회의의 결정에까지 반발하고 나서는 것은 확실히 교회의 일치를 깨뜨리는 행위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평신도들 가운데서도 사제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선 의문의 시각이 꽤 있다. 일례로 가톨릭 언론인 평화신문에 종교인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옹호한 글이 실리자# 바로 종교인의 정치 참여가 올바른지 반박하는 기고문이 올라왔는데# 사제들이 정치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신자들 사이에 있는 것도 사실인 것.
1990년대 극우성향 잡지인 한국논단에서 빨갱이라고 비난했다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해 편집인 이도형이 집을 날린다. 정의구현사제단 뿐 아니라 참여연대, 경실련 등 주요 시민 단체들이 고소하였다.
대한성공회 내에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 '''정의평화사제단'''이 존재한다.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스탠스가 서로 비슷해서 크고작은 현안에 대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 성공회의 규모가 너무 작아 눈에 잘 안 띌 뿐.[22] 차이점이 있다면, 정의구현사제단은 천주교 내에서 비주류의 위치에 있지만, 대한성공회에선 정의평화사제단이 주류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23]
개그맨 양원경의 동생인 양인경 알폰소 신부(천주교 광주대교구)가 이 사제단 소속이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 이름만 약간 다를 뿐, 하는 일은 유사해 보이는 '정의 실현 사제단'이 등장한다. 영화 내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최준호 아가토 부제가 김범신 베드로 신부로부터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찾아가 박태근 마태오 수사를 만나 돼지를 받아 오라"는 말을 듣고 받으러 갔을 때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식으로 나온다.
8. 관련 문서
[1] '정구사'라는 줄임말은 논란이 있어서 일단은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 정구사는 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한 '멸칭'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이처럼 이니셜링해서 부르는 다른 사례도 충분히 많아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선다.[2] 영화 1987에서 설경구가 맡은 역이 이 사람이다.[3] 정작 지학순 주교는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5공 이후에 민주화 활동이 상당히 부실해져서 대표적 5공 변절자 윤천'''지'''강에 이름을 올렸다는 아이러니한 일화가 전한다.[4] 성직자와 수도자뿐 아니라,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순명할 의무가 있다.[5] 서울대교구 사제 인사 이동 중에 촛불 집회에 참여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에게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을 위시한 서울대교구가 휴직계를 발표하자 순명한 일도 있다.[6] 2020년 현재는 휴양 중이다.[7] 정작 종교적 근본인 북한인권과 여성인권에 대한 사제단은 교리와 반대되는 입장을 들고 있으며, 이는 진영주의에 파묻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8] 짠후탄(Tran Huu Thanh) 신부의 자유월남 구국평화회복반부패운동[9] 원래 신부가 영대(종교의례 중 목에 거는 끈)를 걸거나 제의(미사 등에 입는 예복)를 입음은 '보편교회를 대신하여' 종교 의례를 거행한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이런 인식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10] 참고로 정당하게 사제품을 받은 성직자가 올리는 미사는 미사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하지 않는 한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하고 합당한 미사이며 정의구현 사제들의 미사도 엄연한 미사이다.[11] 김수환 추기경이나, 베네딕토 16세가 '라칭거 추기경'이던 시절에도 이랬었다. 두 분 다 여러 차례 사의를 표명했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은퇴 시기가 한참 지나서야 사의가 받아들여졌고''', 라칭거 추기경은 사의가 받아들여지기 전에 교황이 사망해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12] 함 신부는 2004년에 영화 도마 안중근의 자문에 참여했다.[13]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성직 서품을 받을 때 교구장과 그 후임들에게 존경을 맹세한(1990년판 사제 서품 예식서) 함 신부가 서울대교구장의 의견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천주교 교리상 중죄인 항명으로도 볼 수 있다. 함세웅 신부는 정진석 추기경이 은퇴하자 자신도 은퇴 신청을 하여 2012년 8월부로 서울대교구 청구성당 주임 직책을 내려놓고 은퇴하였다출처. 그러나 서울대교구장과 그 후임들에 대한 충성의 의무는 현역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지속된다.[14] 정작 짠후탄 신부는 베트남 통일 직후 공산당에 의해 처형되었다.[15]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에 앞장서 황장엽으로부터 "진정 삶의 권리와 정의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북한 인권을 위해 여태껏 촛불을 들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황장엽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는 의문이나 천주교 사제단 쪽이 이쪽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은 다른 이들도 가지고 있는 듯. 참조. 물론 이는 (북한 인권 단체를 제외한) 다른 인권 관련 단체들도 반대파로부터 받는 비판이긴 하다.[16] 전주교구 원로사목자[17] 전주교구 원로사목자[18] 실제 두 기관이 집권여당에 유리한 쪽으로 댓글 공작 등 선거에 개입한 것은 실체가 어느 정도 밝혀지기도 했다.[19] 사실 NLL은 휴전협정에 없는 내용이며, 유엔군사령관이 한국 해군의 북진을 저지하고자 일방적으로 선포한 경계선이란 두번째 내용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런 기원때문에 북방한계선(NLL)의 실체와 효력에 대해선 국내외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 심지어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주한미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북방한계선(NLL)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피력한 적도 있을 정도이다. 자세한 내용은 북방한계선(NLL) 항목 참조.[20] 앞 각주의 설명은 진중권 교수가 변희재와 NLL 관련하여 사망유희 토론할 때 주장하다가 신랄하게 까인 논리이다. 자세한 것은 유튜브에서 사망유희 다시 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보자.[21] 세례명 세례자 요한.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생몰년 1962~2010.[22] 물론 교회를 규모로만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대한성공회는 교인이 5만 정도로 교세가 한국 가톨릭의 교구 하나보다도 작다.[23] 적어도 비주류라고 할 수는 없는 위치에 있다. 대한성공회 소속 사제가 200여명밖에 안 되다 보니, 이런 사제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에 아무래도 영향을 꽤 크게 받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