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기

 


1. 소개
2. 기록과 추론
3. 창작물
3.1. 소설


1. 소개


洪天起. 생몰년 미상. 조선의 유일한 여성 화원으로 추정되는 인물.

2. 기록과 추론


그에 대한 기록은 성재의 용재총화연려실기술 등에 남아있는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안견(安堅), 최경(崔涇)이 이름을 가지런히 하였는데, 안견의 산수화와 최경의 인물화는 모두 신묘한 경지에 들었다. 요새 사람들이 안견의 그림을 금옥(金玉)처럼 사랑하여 보관하고 있다. 내가 승지가 되었을 때에 궁중에 감수된 〈청산백운도(靑山白雲圖)〉를 보았는데 참으로 훌륭한 보배였다. 안견은 항상 “평생의 정력이 여기에 있다.” 하였다. 최경도 또한 만년에 산수와 고목(古木)을 그렸으나 마땅히 안견에게는 양보하여야 한다. 그 밖에 홍천기(洪天起), 최저(崔渚), 안귀생(安貴生)의 무리가 산수화에 이름이 있으나 모두 용품(庸品)[1]

이다. - <용재총화 제1권>

화사(畫史)[2]

홍천기(洪天起)는 여자인데, 그 얼굴이 당대 절색이었다. 마침 일을 저질러 사헌부에 나가 추국(推鞫)을 받을 때, 서달성(徐達城)[3]이 젊었을 적에 여러 연소한 패들과 같이 활를 쏘고 술을 마시다가 또한 잡혀 와 있었다. 서달성이 홍천기의 옆에 앉아서 눈을 떼지 않으니, 이때 상공(相公) 남지(南智)가 대사헌이었는데, 보다 못해 말하기를, “유생이 무슨 죄가 있느냐. 속히 놓아주어라.” 하였다. 서달성은 나와서 친구들에게 말하기를, “무슨 공사(公事)가 이처럼 빠르냐. 공사는 마땅히 범인의 말을 묻고 또 고소장을 받아서, 곡직(曲直)을 분별해서 천천히 해야지, 어찌 이렇게 급하게 하는가.” 하였다. 이것은 다 홍천기의 옆에 오래 있지 못한 것이 한스러워 한 말이므로, 친구들이 듣고 모두 웃어 마지 않았다. - <용재총화 제6권>

이 2개의 기록이 홍천기에 대한 유일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기록들을 통해 추측해보자면, 우선 그에 대해 여자(女子)나 홍녀(洪女)로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는 여성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기록에서 그를 추국하게 된 인물로 나오는 대사헌 남지는 조선의 개국공신 남은의 형이자 태조-태종 때의 공신인 남재의 손자로, 세종, 문종 때에 활동한 인물인데,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그가 대사헌이 된 시기는 세종 20년 4월이며, 다음 해인 세종 21년 10월에 호조참판에 제수되었으므로, 따라서 위에 언급된 사건은 그 사이에 일어났으며, 그런 만큼 홍천기가 활동했던 시기는 세종 때였음을 알 수 있고, 그 당시도 그러하나 지금도 유명한 화가인 안견, 최경, 강희안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홍천기의 그림 실력 자체는 그리 좋지 않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안귀생이란 화가가 단종 때는 세조강희안, 양성지 등과 더불어 서울 및 팔도의 지도를 만드는 데 참여한 것은 물론, 세조가 명나라 사신인 정통에게 준 금강산도를 그가 전달한 걸로 봐서는 이 또한 그가 만들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성종 때에는 소헌왕후와 세조, 예종, 의경세자의 어용(어진)을 그리는데 참여하였는데, 이후 성종이 당시 그 작업에 함께 참여했던 최경과 더불어 대간의 반대를 무릅쓰고 당상관에 제수시켰다고 할 정도로, 화원이었음에도 이러한 기록들을 조선왕조실록에 남겼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봐서는, 그처럼 홍천기도 안견이나 최경보다는 약간 모자라지만, 그에 못지 않은 뛰어난 화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관노 출신의 기술자로써 그 시기에 유명했던 인물이었던 장영실의 등용문제에 대해서도 허조조말생 간의 논쟁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여성인 홍천기가 어떤 방식으로든 관직에 올랐던 것은 장영실 이상으로 큰 화제가 되었을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는 그에 대한 그 어떠한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임진왜란-정유재란 시기에 소실된 기록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거나, 용재총화와 같은 여기저기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모은 야사집의 특성상 허구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가 화원이 된 과정이나 등용 전후 활동이 그 당시 시각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있어서, 홍천기의 존재를 흑역사라고 판단하여 그에 대한 사초를 실록에 수록하지 않았거나, 기록 자체를 지웠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물론 실록이 편찬되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보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일단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서 홍천기가 겪었을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추측해볼 수 있는데, 2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조정의 동의 하에 세종의 명으로 여성의 신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도화원의 화원이 되었으나, 어떠한 사건으로 사헌부에 끌려왔을 가능성이다.
물론 장영실을 비롯해서 능력만 있다면, 특히 그 능력이 조선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것이라면 반드시 등용했던 세종의 모습을 생각해보자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사실 천민 출신이 높은 관직에 오르는 일은 그리 흔치않은 일은 아니었다. 혼란스러운 난세였던 점이 있었다고는 해도 조선 초에 바로 근접해있던 고려 말에도 평민이나 천민 출신인 이들이 관직에 진출한 경우가 많았고, 세종 때만 해도 장영실은 물론이고 모친이 무당이었으나 집현전의 요직에 오른 김문도 있었으며, 뒤의 일이지만 홍천기와 같이 이 시기부터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가 최경도 부친이 안산에서 소금을 만들던 염부였으나, 성종당상관에 가까운 승진을 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도 반석평, 유극량, 정충신 등 적지 않은 수의 인물들이 등용되기도 하였다. 물론 거기에 이르기까지 등용한 왕이나, 임명된 본인이 양반 계열의 다른 관료들로부터 적지 않은 비판과 편견에 의한 차별을 받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길이 열려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홍천기는 여성이었다. 물론 현대인들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심각하게 묘사된 조선 사회의 모습은 전기보다는 후기의 일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약간 과장된 측면이 있었다고는 해도 조선시대 이전부터 여성의 활동범위는 제한적인 부분이 많았고, 조선시대에는 의녀다모를 통해 여성들을 치료, 수사하였을 정도로 이성 간의 접촉을 규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과연 세종이라도 그녀를 정식으로 화원으로 임명하는 게 가능했을지...... 천한 직업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지만, 엄연히 조정의 관원이라고 볼 수 있는 도화원의 화원이었으니......물론 기록을 보면 왕실의 여성들도 어진을 남겼던 것으로 추정되니, 그녀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남성 화원보다는 여성 화원이 낫다고 여겨 한번쯤 시행해보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위에서 적었듯 최경이나 안귀생 등이 다른 왕들과 더불어 소헌왕후의 어진을 그린 것으로 상을 받았다는 기록을 보면 그랬을 가능성도 낮으니......
또 다른 하나는 남장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도화원에서 활동했다가, 어떠한 이유로 사헌부에 발각되어서 끌려왔을 가능성이다.
당시 사회를 생각해보면 그럴 듯한 방법이긴 하다. 그녀의 이름인 홍천기만 해도 그런 것이, 남성이 여성적인 이름을 사용한다든가, 반대로 여성이 남성적인 이름을 사용하던 사례가 지금이나 과거에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긴 했고, 지금과는 달리 과거에는 다르게 쓰였던 이름이 존재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성별에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만큼 홍천기라는 이름을 여성이 사용한 것은 상당히 이색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天(하늘 천)자가 들어간데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홍씨의 하늘이 일어난다>는 식의 의미[4]로도 해석할 수 있으니...... 어떠한 생각으로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민 이하의 남성의 이름은 물론이고 여성의 이름이라고 보기도 힘드므로, 아버지나 남자형제와 같은 가족의 이름이나 자기 스스로 만든 가명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드라마소설 등 여러 매체에서 보면 의심없이 잘 속아넘어가기는 하지만, 기술이 발달한 현재도 웬만한 외모나 위장 능력이 없는 이상 남장이나 여장을 해도 다 티가 나는 게 현실인데, 과연 그 시절에 남장을 하고 관원 생활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특히나 하급기관인 도화원이라고 해도 엄연히 조정의 일부이며, 어진 제작 등의 업무로 인하여 경계가 삼엄한 궁궐 깊숙한 곳까지 들락날락하는데 말이다. 다만 당시 사회상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정체를 감추고 활동했을 가능성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쪽이었든 남성 중심 사회였던 과거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리 좋은 결말을 맞지는 않았을 듯 싶다. 최소한 파직이나 신분 강등을 당했다거나, 전자일 때도 죄의 경중에 따라 그럴 수 있지만, 후자일 경우에는 왕실과 조정을 속인 죄로 유배형 혹은 사형에 처해졌을 수 도 있다.

어찌되었든 신사임당, 허난설헌 등 적지 않은 수의 뛰어난 여성 예술가들이 활동하긴 했지만, 궁녀, 의녀, 다모 같은 직업이 아닌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관직에 어떤 식으로든 등용되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볼 수 있겠다.

3. 창작물



3.1. 소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 등을 쓴 정은궐 작가가 그녀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상하권 구성의 소설인 <홍천기>를 썼다. 그녀에 대한 용재총화의 기록을 조금 비틀어 세종실록의 기록[5]을 적절하게 섞은 뒤, 뛰어난 화가와 그의 그림을 찾아다니는 화마라는 존재와 터주신 등의 판타지적인 요소를 덧붙인 작품으로, 여기서의 홍천기는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승인 백유화단주와 동기인 화공들의 보호 아래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펼치는[6][7], 호랑이를 그리겠다고 산 속에서 몇날 몇일을 노숙하며 버티는 털털하고 당찬 소녀로 자라난다. 그러다가 불의의 사고로 맹인이 된 서운관 시일 하람과의 우연한 만남에 이어 그녀와 그녀의 그림에 호감을 가진 안평대군 이용과 아버지의 또 다른 친구인 안견 등과 마주치게 되고, 안평대군이 세종의 허락 하에 연 블라인드 테스트+경매 형식의 대회에서 1등을 함으로써, 재상들의 동의 하에 세종의 명으로 도화원에 정식으로 등용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포천, 해동총화, 오성X한음을 그린 만화가 팬텀 하록이 그녀의 이야기를 과거의 야사들에 대해서 다룬 작품인 해동총화에 단편으로 수록한 것에 이어서, 카카오페이지에 그 기록을 모티브로 한 <화사 홍천기>라는 제목의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중이다. 이 작품에서는 세종 때 도화원에 있던 고려 왕실의 영자초도를 불태운 기록을 중심으로 그림을 지키려는 안평대군과 이를 막으려는 수양대군 사이에 끼게 된 홍천기의 이야기를 다룰 듯 하다. 일단 여기서의 홍천기도 잘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첫 화에서의 서거정과 친구와의 대화를 보면 그녀가 홍녀라는 이름의 유명한 여성 화원으로 불리는 걸로 봐서는 정식으로 등용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을 지키다가 손에 심한 부상을 입은 안견을 대신해 돕는 조건으로 안평대군의 도움을 받으며, 남장을 한 상태로 평소 원했던 도화원에 입성할 것으로 보인다.

3.2. 드라마



2018년 중에 SBS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미루어지고 2021년 상반기 방송된다고 한다. 바람의 화원, 뿌리깊은 나무(드라마) 등을 연출한 장태유 감독이 연출을 맡았으며 홍천기 역에 김유정, 하람 역에 안효섭이 출연을 확정지었다.
[1] 낮은 품계. 혹은 품질이 낮은 물건을 의미한다.[2] 조선 시대에 왕실의 어진 등을 제작했던 부서인 도화원(도화서)의 관직[3] 기록으로 추측되는 그녀가 활동했던 시기에 존재했던 인물들 중에서 당시 과거에 급제한, 세종-성종 때에 활동한 문신인 서거정이 그 인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4] 정은궐 작가의 소설인 <홍천기>에서도 이러한 점을 이용해, 홍천기가 쓰러진 하람에게 먹일 음식을 찾으러 가기 전에,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묵고 있던 지인의 빈 집에 있던 붉은 염료로 그의 옷에 자신의 이름을 써놓고 나가는데, 나중에 하람을 발견한 안평대군이 이를 보고 반란을 의심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5] 태종이 불태우라고 명을 내렸지만, 세종이 은밀히 보관해온 태종의 어진에 대한 기록이 이에 해당한다.[6] 다만 악귀를 쫓는 데 쓰이는 처용화 등을 주로 그리는데, 이는 혹시나 그녀의 정체가 드러나서 여인이란 이유로 그 재능을 못 펼치고 꺾일 것을 우려해 백유화단주가 세운 조치다.[7] 그러나 안견은 백유화단주가 홍천기를 감춘 건, 좋은 그림과 화공만을 쫓는 화마가 찾아올 정도로 뛰어난 재주를 지닌 홍천기의 천재성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서, 남성 화원들로 구성된 도화원에 갈 경우 재능이 꺾일 것이라 생각해 그리한 것이라고 보았고, 백유화단주는 이를 부정하진 않았다. 그의 그런 반응에 안견은 화마를 본 뒤로 광인이 된 홍천기의 아버지의 사례를 언급하며, 재능이 꺾이는 한이 있어도 그녀를 세상에 보내야 한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