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FIFA 월드컵 미국/C조
1. 개요
1994 FIFA 월드컵 미국의 C조 경기 내용을 다루는 문서
2. 1경기: 독일 1:0 볼리비아 (솔저 필드)
3. 2경기: 대한민국 2:2 스페인 (코튼 볼 스타디움)
SBS 뉴스 공식 유튜브 채널의 골 장면 하이라이트
SBS 스페인전 경기 하이라이트
MBC 스페인전 경기 하이라이트
한국의 미국 월드컵 첫 경기는 댈러스 코튼 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전. 클레멘테 스페인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대한민국 정도는 5:0으로 이기겠다."라고 장담하자 대한민국의 김호 감독은 '''"그럼 우린 딱 1:0으로 이기겠다."'''라고 응수했는데...임주완: 네,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한 스페인인데요. 홍명보, 스루패스! 황선홍, 이어받습니다. 홍명보, 오른쪽으로!
임주완: '''자, 서정원 슈웃!! 골인~!! 골인!!''' (신문선: '''골인~!! 서정원~!!''') '''서정원, 골인!!'''
신문선: '''기적입니다!'''
임주완: '''기적적인 동점을 일궈내고야 말았습니다! 동점골, 서정원!'''
신문선: '''홍명보, 황선홍, 서정원이에요!''' (임주완: 아, 그렇습니다!)
'''정말 파란이 일어났다.''' 한국이 전반 초반 크로스 상황에서 스페인 수비진이 거둬낸 공을 잽싸게 받아찬 이영진의 기습적인 슛을 시작으로 전반 내내 스페인을 상대로 주도권을 장악했고 전반 25분, 스페인의 미겔 앙헬 나달[1] 이 퇴장을 당해 수적 우위까지 받으면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은 것. 그러나 고질병인 골 결정력 부족과 스페인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자레스의 선방에 막혀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으며, 결국 후반 6분과 10분 연달아 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예상대로 스페인이 쉽게 승리할 것으로 보였으나, 경기 종료가 멀지 않은 후반 38분, 프리킥 찬스에서 대한민국이 '''홍명보의 슈팅으로 1골을 만회''' 하면서 전면적인 총공세를 시작했고, 당황한 스페인은 4년 전과는 달라진 한국의 수준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후반 45분, 교체 투입된 서정원이 홍명보의 패스를 받아 동점골을 터뜨리며 기적적인 무승부를 일궈냈다.[2] 실점 장면에서 조금만 더 집중력을 보여줘서 한 골만이라도 막아냈다면 사상 첫 월드컵 승리를 기록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도 들지만, '''2골 차를 극복하고 승점을 따냈다는 기쁨'''이 너무나 큰 대목이었다.
4. 3경기: 독일 1:1 스페인 (솔저 필드)
5. 4경기: 대한민국 0:0 볼리비아 (폭스버러 경기장)
SBS 볼리비아전 경기 하이라이트
MBC 볼리비아전 경기 하이라이트
보스턴 인근의 폭스보로에서 열린 2차전은 볼리비아 전. 한국은 3개 팀 중 그나마 약체인 볼리비아를 상대로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더구나 볼리비아는 당시 골잡이었던 마르코 에체베리아가 전 경기에서의 어이없는 퇴장[3] 으로 한국전에 출전할 수 없어서 한국의 입장에서는 첫 승을 거둘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예상대로 볼리비아전에서는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한국이 경기 내내 주도권을 쥐었다. 그러나 한국의 맹렬한 공세는 늘 마무리가 부족하여 무위로 그쳤고 한국은 첫 클린시트 경기에 만족해야 했다.[4] 참고로 이 경기는 주심이 추가시간을 너무 과하게 줘서 선수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전반전때도 추가시간을 5분가량 줘서 과한거 아닌가? 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는 무려 8분 가량을 추가시간을 줘서 선수들의 진을 뺐다.[5] 그래서 진이 빠진 선수들이 이상한 장면도 연출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 골키퍼 최인영이 볼리비아 선수에게 공을 굴려 패스하고(!) 또 그 공을 받은 볼리비아 선수는 '이걸 나에게 왜줘?'라는 식으로 다시 골키퍼에게 차줬다(...). 당시 화면을 보면 그 장면을 지켜보던 한국 수비수만 엄하게 깜짝 놀라서 죽어라 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링크
승점을 따긴 했지만 충분히 이길 만한 상대를 잡지 못했으니 비난도 뒤따랐는데, 특히 공격수 황선홍이 앞선 스페인전에 이어 이날 경기에서도 '''수많은 찬스마다 계속해서 똥볼을 차올리며 득점 기회를 죄다 날려먹는 바람에''' 전국민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6] 이 볼리비아전 한 판으로 개발, 똥볼의 대명사가 될 정도.[7][8] 또한 황선홍 못지 않게 하석주도 만만찮게 욕을 먹었는데, 후반 추가시간에 황선홍의 힐패스를 받아 결정적인 1:1찬스를 맞았지만 이때 왼발로 찬 슛이 골키퍼에 막히고 만 것. 사실 황선홍처럼 똥볼도 아니었고 잘 못 찼다기보다는 키퍼가 잘 막은 거였지만 시간대가 시간대이고 16강 진출 여부가 달린 중요한 경기였던지라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9] 스페인전에서의 화끈한 프리킥 득점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홍명보는 이 경기에서는 무조건 실점을 막으라는 김호 감독의 특명을 받고 수비에만 전념했다. 볼리비아가 한국 입장에서는 1승 제물이기도 했겠지만 절대 져서는 안 되는 상대였기도 했기에 나왔던 결정.
그렇게 첫 승을 올릴 절호의 기회를 날렸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한국은 2무로 당시 한국의 월드컵 도전 사상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한국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이었고, 90년과 다르게 무승부시 승점은 그대론데 승리시 승점이 3점이 되면서 3무로는 16강에 진출하기가 힘들어졌기에[10]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마지막 경기를 이겨야 했다.
6. 5-1경기: 볼리비아 1:3 스페인 (솔저 필드)
7. 5-2경기: 대한민국 2:3 독일 (코튼 볼 스타디움)
SBS 뉴스 공식 유튜브 채널의 골 장면 하이라이트
SBS 독일전 경기 하이라이트
MBC 독일전 경기 하이라이트[11]
그러나, 마지막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었다. 16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하필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나게 되어버린 것. 한국은 부담을 안고 경기에 임했고, 이어진 경기에서 역시나 독일은 강력했다. 황금 폭격기 위르겐 클린스만이 이끄는 독일 공격진은 사정없이 한국 선수들을 농락했고, 클린스만은 경기 시작 12분 만에 환상적인 볼 컨트롤 후 멋진 터닝 발리슛으로 묘기에 가까운 선제골을 뽑아냈다. 스페인 이상으로 강한 독일에 한국 수비수들은 제대로 대응조차 하지 못했고, 실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흐발트의 골대를 맞고 나온 슛을 리들레가 받아 넣으면서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 후 선제골을 넣은 클린스만이 다시 한 골을 추가해 전반을 0-3으로 마치게 되자 한국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고, 전반전의 졸전은 "역시 독일에겐 안되는가..." 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사실 실점 장면을 보면 당시 한국의 수문장이었던 최인영 골키퍼의 어이없는 실책들이 주 원인이었다. 정면으로 오는 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거나 리들레에게 내준 두번째 실점 전에 있었던 부흐발트의 골대를 맞고 나오는 슛의 세컨 볼의 위치를 잡지 못하는 등 집중만 잘 했어도 막을만한 골까지 못 막고 그대로 헌납하는 일까지 벌어진 것. 어찌 되었던 독일은 3골 차 리드로 여유있게 전반을 마쳤고, 당시 독일의 중계진이나 관중들은 싱거운 승부에 '앞으로 몇골이나 더 넣을까?'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지경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후반전에 결국 골키퍼 자리에 최인영을 빼고 당시 경희대학교 3학년 학생 신분이었던 이운재를 전격적으로 기용하며 수비를 재조직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사실 이운재는 멀쩡한 상황이면 기용하지 않았을 후보 키퍼였으나, 일단 최인영이 너무 부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경기의 추가 이미 기울어진 판국이니, 차기 월드컵을 위해 경험을 쌓아주려고 출전시키게 된 것.[12] 그런데 이렇게 출전한 이운재는 우려와 다르게 독일 대표팀의 주장인 로타어 마테우스의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세컨 볼을 받아찬 중거리 슛부터 클린스만의 1대1 찬스를 막아내는 등 오히려 주전이었던 최인영보다 안정적으로 골문을 막아냈다.[13] 신예 골키퍼인 이운재가 이렇게 안정적으로 골문을 막아내면서 한국은 반격의 서막을 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후반 7분만에 '''황선홍이 1:1 찬스에서 침착한 칩 슛으로 독일의 골문을 갈랐다.'''[14] 이 때까지만 해도 경기의 흐름이 크게 뒤바뀔 정도는 아니었으나, 불과 10분만인 후반 18분 리베로 '''홍명보가 벼락같은 중거리 슛으로 독일의 골망을 흔들면서'''[15] 본격적으로 경기 양상이 뒤집히기 시작한다. 0-3에서 2-3으로 점수차가 줄어들자, 한국이 갑자기 어디서 힘이 솟아났는지 경기를 주도하며 맹렬하게 공격을 퍼부었고,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던 독일은 눈에 띄게 경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경기가 열린 댈러스 코튼 볼 스타디움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릴 정도로 엄청난 폭염에 시달려야 했고, 그 때문인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독일은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으나 한국은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맹공을 퍼부으며 독일 선수들을 압도했다. 독일은 점수차를 벌리는건 고사하고 리드를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수비전술을 쓰며 우주방어에 급급해지기 시작했는데, 경기를 지켜보던 관중들은 대추격을 시작한 한국을 향해 응원을 퍼붓기 시작했고, 수비에만 급급했던 독일을 향해서는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16] 그럼에도 독일은 계속해서 한국에 속수무책으로 휘둘릴 수 밖에 없었으며, 한국의 공격을 선수들의 육탄방어와 보도 일그너 골키퍼의 선방쇼로 간신히 막아내야 했다.
그러나 한국의 추가 득점은 끝내 나오지 않았고, 2:3으로 석패하며 최종 2무 1패로 월드컵을 마친다. 비록 한국은 염원하던 첫 승과 16강 진출은 달성하지 못했으나 경기 내용 면에서는 가히 16강급이라는 외신의 평가가 연이어졌고, 이 경기에서 멀티골을 뽑으며 승리의 주역이 된 클린스만은 '''"한국 팀이 전반전에도 저런 경기력을 보였거나 경기 시간이 만약 5분만 더 있었더라면 정말로 우리가 졌을지도 모른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그만큼 전반전에 너무 위축되어 있었던 것이 아쉬운 대목. 한편으로 이 경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그저 독일 입장에서 보기에 승점셔틀밖에 안되는 만만한 팀이었으나, 역전패가 떠오를 정도로 맹렬한 추격을 해오고 이로 인해 자국 공격수까지도 무력화시킨 이 날 경기 이후로 독일은 한국 팀을 쉽게 얕잡아보지 않게 되었다.[17][18]
'''이로부터 24년 후 그 날,''' 대한민국과 독일은 다시 한 번 같은 조에 배정되고 3차전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데... '''클린스만의 말대로 경기 시간이 6분 더 주어지자 독일이 졌다. 그리고 독일은 이 패배로 인하여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로 조 꼴찌로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쓴맛까지 제대로 맛봤다.'''[19]
[1] 당시 바르셀로나의 주전 중앙 수비수였고, 8년 뒤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도 한국전에 출장한 선수다. 테니스 선수 라파엘 나달의 삼촌으로 알려져 있다.[2] 서정원은 이후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날따라 이상하게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골을 넣었기에 망정이지 지금 보면 혼자 너무 오버를 했다고 생각한 부분도 많았다"'''라고 밝혔다.[3] 한국전을 대비한답시고 독일전에서 후반 막판에 컨디션 조절차 교체 출전했는데, 이 선수와 교체되어 나와야할 선수가 착각하여 피치에서 나오지 않아 12명으로 플레이하였다는 사유로 들어가자마자 퇴장당했다.[4] 1954년 대회부터 9경기 연속으로 매 경기 실점을 기록했는데 통산 10번째 경기인 이 경기 결과로 인해 한국의 첫 월드컵 클린시트가 기록되었다.[5] 당시는 추가시간을 따로 표시해서 알려주지 않고 주심의 재량으로 적용했던 시절이라 가능했다.[6] 황선홍은 훗날 무릎팍도사에서 '''"스페인 전 때 1대1 찬스를 날렸던 것이, 결국 이날 경기에 악영향을 미치고 말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7] 당시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축구하다가 홈런을 날리거나 똥볼을 차면 '아 이런 황선홍같은!!'(...)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 후 황선홍은 2002년 월드컵에 출전해서 폴란드전에서 선제골을 득점함으로써 겨우 이 오명을 벗을 수 있었으며, 그 후 이 불명예스러운 오명은 10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결정적 찬스를 날려먹은 염기훈 그리고 16강 우루과이전에서 1대1 찬스를 놓친 이동국에게 넘어갔다 14년 박주영으로 이어진다.[8] 한국에서는 한번 실수한 것 갖고 미개하게 죽어라 까다 잘하면 칭찬한다고 냄비라고 까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한국 뿐만 아닌 전세계 모든 국가, 심지어 축구 강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브라질에서는 1998 프랑스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승전에서 0-3으로 진 것 때문에 놀랍게도 '''청문회'''까지 했고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8강에서 프랑스에 져서 탈락하자 호나우지뉴 동상이 파괴되기까지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월드컵 준우승 및 코파아메리카 준우승을 연속으로 기록하자 리오넬 메시(!!!) 를 축구 못한다고 깠던데다 잉글랜드는 1998 프랑스 월드컵 때 데이비드 베컴이 퇴장당해 아르헨티나와의 16강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 패배하자 22명의 사자들과 '''하나의 멍청이'''라는 제목의 신문 헤드라인이 나온 적이 있었다. 물론 전세계가 그런다고 똑같은 짓을 옹호하지는 말자. 막상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패배 선수들을 징계한다고 하자 미개하다 했으면서 우리나라가 스웨덴전에서 패배하자 똑같이 징계 소리를 하는걸 보면...[9] 당시 어린 나이였던 하석주는 심적 충격이 너무 커서 그 때문에 김호 감독에게 독일전을 못 뛰겠다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왼발 킥을 엄청 연습해서 후에 '왼발의 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다음 대회인 1998년 월드컵 멕시코전에서 그 왼발 프리킥으로 득점도 올렸으니 하석주 개인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한 셈이 되었다. 여담으로 이 경기에서 골을 넣은 직후 상대에게 백태클을 잘못해서 퇴장을 당하는 바람에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가린샤 이후에 월드컵 경기에서 득점을 하고 퇴장당한 선수는 하석주가 36년만에 최초였다. 가린샤 클럽을 창시하는 주역(...)이 되기도 한 셈.[10] 실제로 90년 월드컵에선 3무와 1승 1무 1패의 승점이 3점으로 같았으나 94년부터 1승 1무 1패는 승점이 4점이 되고 1승 2패가 승점이 3점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90년 월드컵에선 3무로 실제로 16강 진출을 쟁취해낸 팀이 있었으나, 94년 월드컵에서 16강 진출 커트라인은 결국 승점 4점 이상이었다.[11] 원래 썸네일은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사진도 손가락 부분만 검열해서 올렸으나 문제가 생겼는지 없어졌다.[12] 비슷한 연유로 당시 유망주였던 조진호도 추후의 월드컵을 위해 독일전에 출전했는데, 사실 보통 월드컵에 나가는 대표팀들은 엔트리 중 한두 자리 정도를 이렇게 미래를 위해서 유망주에게 내주곤 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브라질의 호나우두와 카카도 이런 식으로 첫 월드컵을 경험했다. 한국도 90년엔 황선홍과 홍명보, 94년엔 조진호와 이운재, 98년엔 이동국, 02년엔 최태욱, 현영민 06년엔 박주영, 백지훈, 10년엔 이승렬, 김보경 등이 미래를 보고 데려간 유망주들이다. 18년엔 이승우가 이런 케이스로 추가됐다.[13] 하지만 최인영이 대표팀에서 물러나고 1인자가 될 줄 알았던 이운재는, 이후 경쟁 상대로 서동명을 만나 한 번 밀렸다가 다시 또 김병지에게 밀리는 등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기어코 간염으로 쓰러져 버려 다음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다. 월드컵이 끝나고 건강을 회복한 이후 비로소 2002년 월드컵에서 결국 주전을 차지하며 먼 길을 돌아온다.[14] 하지만 황선홍은 골을 넣고도 좋아할 수 없었다. 당시 경기 영상을 봐도 도저히 골 넣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표정이 어둡다. 물론 아직도 2골이나 리드당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하필 왜 이제야 들어가는 거야..."'''하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고.[15] 참고로 이 골은 미국 월드컵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성공시킨 골이다. 그리고 멋진 인생 골을 성공시키고도 담담하게 손가락으로 1을 가리키는 홍명보의 세레머니가 인상적이었다.(사실 골을 넣자마자 기뻐서 방방 뛰었는데 그건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본인의 자서전에 나온 컬러 사진 중에 그 사진이 있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시 동네에서 축구를 하던 꼬마들이 많이 흉내내곤 했다.[16] 그 와중에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독일의 미드필더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관중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는 물의를 일으키며 즉시 교체당했고, 이 대회 이후 국가대표로서 메이저 대회에는 발탁되지 못한다.[17] 실제로 2002년 독일은 월드컵 준결승에서 자국의 상대 팀이 한국으로 확정되자 독일 언론에서 '''달갑지 않은 팀'''이라는 반응을 보인 바 있다. 독일 축구팬들의 대체적인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독일이 이기긴 할 것 같은데 확실히 장담은 못하겠다."''' 정도가 그나마 긍정적인 의견이었고 대부분 '''"한국에 질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이 상당히 많았다. 실제 경기 역시 이들의 예상대로 한국과 독일의 준결승전은 매우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독일은 1994년의 맞대결처럼 골키퍼 올리버 칸의 선방쇼에 힘입어 고전 끝에 겨우겨우 한국을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다만 당시 독일이 결과적으로 준우승을 하긴 했지만 경기력이 안 좋아서 자국에서도 비난을 받던 시기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18] 그리고 이 경기에서 2골을 득점하며 승리의 주역이 된 위르겐 클린스만은 이후 독일 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2004년 12월 19일 한국과 친선 경기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동국의 환상적인 터닝슛과 이운재의 페널티킥 선방에 힘입은 한국에 3-1로 완패하고 만다. 특히 이 경기에서 한국의 공격수 차두리가, 독일 최고의 측면 수비수였던 필립 람을 제치고 드리블로 독일의 측면을 뚫는 장면은 그야말로 전율이 흐를 정도. 참고로 독일은 이때 아시아 팀에 처음으로 패배했고 이 경기만 놓고 진지하게 분석하는 토크 쇼까지 있었을 정도였다.[19] 실제로 24년만에 거둔 복수극이 열린 날짜는 2018년 6월 27일이다. 당시 한국 시간으로 6월 27일 밤 11시였고 경기가 종료된 시간은 6월 28일 새벽 1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