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 대학농구연맹전
1. 개요
1998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 승패 동률로 공동순위
- 90년대 초 대학농구를 양분하며 폭발적인 인기몰이의 중심이었던 연세대-고려대의 양강 구도는 이른바 "마지막 승부 세대"의 "마지막" 라이벌 서장훈(연세대)-현주엽(고려대)이 졸업하면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된다. 두 대학의 라이벌 구도속에서도 나름대로 착실한 리쿠르팅을 해왔던 다른 대학교들은 서-현의 졸업한 연-고대의 전력 약화를 틈타 대권경쟁에 뛰어들만한 전력을 갖추게 되었고, 특히 98학번 랭킹 1,2,3위인 장신 3인방 김주성(205cm,C,부산동아고), 김태완(203cm,C,휘문고), 정훈(198cm,F,낙생고)이 모두 연고대 진학을 거부하고 각각 중앙대, 한양대, 성균관대를 선택하면서 본격적인 전력평준화가 예고되었다.
- 시즌초 팬들의 예상은 기존의 연-고대 양강구도에 1997-98 농구대잔치 준우승 멤버가 대부분 잔류한 경희대가 도전하는 구도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연-고대의 전력 약화는 예상보다 훨씬 심했고, 오히려 슈퍼 루키들을 보강한 중앙대와 한양대가 강호로 치고 올라왔다. 1998 시즌 열린 3개 대회(MBC배, 대학연맹전, 전국체전)에서 총 5개의 우승팀이 배출되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였고, 결국 시즌 마지막 대회인 1998 농구대잔치를 중앙대가 가져가면서 1998 시즌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2. 대회결과
2.1.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3월)
1998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항목 참조
- MVP: 강혁(경희대)
2.2. 대학농구연맹전 (7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산하 10개 대학팀이 모두 참가하였다.
3) 결선리그[2]
2.3. 전국체전 (10월)
2.4. 1998 농구대잔치
1998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 단국대를 제외한 대학 9팀에 상무가 참가하였다..
- MVP: 조우현(중앙대)
3. 시즌 결산
- 1998년은 서장훈(연세대), 현주엽(고려대)의 졸업으로 연-고대 양강구도가 깨지기 시작한 첫 시즌이었다. 농구대잔치 전까지 3개 대회에서 5개 우승팀이 나오는,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경쟁끝에 시즌 마지막 대회이자 아마농구 최고 권위 대회인 1998 농구대잔치를 청룡군단 중앙대가 가져가면서 1998년 최강의 자리에 오른다.
- 고교시절부터 농구용품을 지원해주는 등 심혈을 기울인 스카웃 끝에 고교 랭킹 1위의 센터 김주성을 입학시킨 중앙대는 1년전 랭킹 1위 송영진과 김주성을 동시에 내세우는 고공 농구로 내심 김유택-한기범 시절의 영광 재현을 기대했다. 그러나 중앙대는 시즌 첫대회인 MBC배에서 센터없는 농구로 나선 연세대와 중위권팀 명지대에 연달아 패하며 허무하게 예선탈락했고, 나름 괜찮은 스쿼드임에도 지난 농구대잔치 6위를 비롯, 2년간 한개의 타이틀도 따내지 못한 책임을 물어 지난 3년간 팀을 지도했던 천정렬 감독을 전격 경질한다.
후임으로 여자농구계에서 잔뼈가 굵은[3] 고졸출신 감독 김태환이었는데, 중앙대 출신 "순혈"라인을 강조하던 그동안의 분위기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시즌 도중인 4월에 부임한 김태환 감독은 학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스타군단 중앙대를 혹독하게 조련하여, 데뷔무대인 7월 대학농구연맹전에서 중앙대에 1993년 2차 연맹전 이후 5년만의 연맹전 우승(고려대-한양대와 공동우승)을 안겼고, 1998 농구대잔치에서도 예선부터 결승까지 무패로 우승하며 청룡군단 전성시대 제 2기의 막을 연다.
- 98학번 랭킹 2위 김태완을 스카웃한 한양대의 돌풍도 매서웠다. 중앙대의 송영진-김주성 콤비가 프로급의 기동력과 탄력을 자랑하는 트윈타워라면, 한양대의 김종학-김태완은 탄탄한 웨이트를 바탕으로 몸싸움으로 상대를 제압하던 파워형 트윈타워였다. 빅맨들의 스피드는 다소 느렸지만, 슈터 김성모, 성준모 외에 빅맨 김종학까지 3점을 쏴대는 불꽃농구를 자랑했고, 골밑의 김태완이 리바운드를 제압하며 일약 대학무대 탑클래스 센터로 올라섰다. 3년만의 연맹전 우승에 이어 농구대잔치에선 김병철, 박재일 등 프로선수들이 즐비한 상무를 제압하고 결승까지 오르는, 한양대 역사상 최고의 한해를 보낸다. 이제 겨우 1,2학년인 김태완-김종학 트윈타워의 존재 덕분에 한양대는 당분간 중앙대와 대학농구계를 양분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 지난 농구대잔치 준우승 당시 멤버[4] 가 건재한 "자줏빛 군단" 경희대가 시즌 첫대회인 MBC배를 가져가며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리는...가 싶었으나, 연-고대만 엄청 강했고 다른 대학들은 다 비리비리했던 지난 시즌까지와는 달리, 1998년도 들어 경희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팀들이 전력 보강을 한 상황이라 삼일상고 출신 4학년 콤비 강혁-김성철 말곤 평범한 수준의 선수들로 구성된 경희대는 다시금 중위권으로 추락하고 만다.
- 현주엽-신기성 콤비가 졸업한 고려대는 원래대로라면 4학년이 되었어야 할 95학번 선수들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5] 3학년 이규섭-2학년 전형수를 주축으로 선배들의 공백을 메웠고, 특히 일약 대학 No.1 센터로 떠오른 이규섭의 엄청난 활약속에 7월 연맹전에서 송영진-김주성 트윈타워의 중앙대를 격파하며 공동우승을 가져간다. 하지만 이제 겨우 2학년, 1학년이었던 송-김 트윈타워의 성장세는 멈추지 않았고 11월 농구대잔치 4강에서 다시만난 중앙대의 장신벽에 막히며 13점차로 대패했고, 이후 1999년에도 청룡과 호랑이의 천적관계는 이어졌다.
- 고려대가 현주엽-신기성의 졸업 공백을 어느정도 잘 메웠던 것에 반해, 국보급 센터 서장훈과 김택훈, 구본근이 동시에 졸업해버린 연세대의 골밑은 그야말로 답이 없었다. 미국에서 스카웃해 왔던 장신센터 최종규(200cm,4학년)는 그냥 키 큰 일반인 수준이었고, 중앙대와의 김주성 스카웃 전쟁에 집중하다가 김주성은 물론 김태완, 정훈, 이한권 등 98학번 센터 유망주들을 모두 놓치는 바람에, 지난 3년간 벤치에서 웜업점퍼를 벗어본적이 없던 송도고 출신 단신 파워포워드 이재훈(193cm,4학년)이 그나마 가용할수 있는 유일한 빅맨이었다.
이에 최희암 감독은 김택훈, 구본근과 같이 94학번으로 입학했으나 1학년 도중 팀을 이탈하여 돌연 실업팀 현대전자로 입단했던 부산중앙고 출신 파워포워드 김수환(191cm)을 휴학 뒤 복학하는 모양새로 팀에 복귀시켰는데, 이 수가 맞아들면서 3월 MBC배에서 김수환은 중앙대 김주성, 한양대 김태완을 상대로 괜찮은 수비력을 보여주며 연세대의 골밑을 지켜냈고, 연세대는 골밑 열세를 딛고 두 장신팀들을 연이어 꺾고 승자결승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한양대 전 승리 후 최희암 감독을 제외한 다른 9개 대학 감독들이 모여 실업팀 출신 선수 김수환의 출전자격을 문제삼으며 농구협회에 제소했고, 당시 대한농구협회는 유권해석을 통해 "1) MBC배에서의 연세대 승리는 무효이므로 모두 몰수패", "2) 김수환의 대학 농구대회 출전 자격 박탈", "3) 최희암 감독 직무 자격정지 1년"을 선언해 버린다.[6] 연세대는 그나마 쓸만하던 빅맨 김수환을 잃고 MBC배에서 몰수패한데 모자라 팀의 수장 최희암 감독마저 잃게 되었고, 이후 7월 연맹전부터는 최희암 감독이 관중석에서 무전기를 들고 벤치의 김남수 코치와 교신하며 작전지시를 내리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연세대는 96-97, 97-98 농구대잔치 2연패의 주역이자 대학 최고의 백코트로 불렸던 황성인-조동현-조상현 트리오가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밑의 공백이 번번히 발목을 잡았고, 나중에는 장신 포인트가드인 3학년 은희석(189cm)을 빅맨으로 쓰는 고육지책까지 들고 나왔다. 센터없는 팀 답게 트렌지션게임과 폭발적인 3점을 무기로 전국체전 금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농구대잔치에선 결국 허약한 골밑이 발목을 잡으며 상무, 고려대, 성균관대에 연패, 농구대잔치 3연패를 노린다는 당초 목표가 무색하게 허무하게 예선탈락하며 초라했던 1998 시즌을 마무리한다.
특히 연세대의 98학번 신입생들은 연세대 농구부 역대 최악의 학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가드 신동경이 4학년이 돼서야 그럭저럭 출전 시간을 부여받은 것을 빼면 존재감이 없었다. 그나마 신동경도 예상을 깨고 드래프트에 지명받지 못했고.
연세대는 96-97, 97-98 농구대잔치 2연패의 주역이자 대학 최고의 백코트로 불렸던 황성인-조동현-조상현 트리오가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골밑의 공백이 번번히 발목을 잡았고, 나중에는 장신 포인트가드인 3학년 은희석(189cm)을 빅맨으로 쓰는 고육지책까지 들고 나왔다. 센터없는 팀 답게 트렌지션게임과 폭발적인 3점을 무기로 전국체전 금메달을 따내긴 했지만, 농구대잔치에선 결국 허약한 골밑이 발목을 잡으며 상무, 고려대, 성균관대에 연패, 농구대잔치 3연패를 노린다는 당초 목표가 무색하게 허무하게 예선탈락하며 초라했던 1998 시즌을 마무리한다.
특히 연세대의 98학번 신입생들은 연세대 농구부 역대 최악의 학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가드 신동경이 4학년이 돼서야 그럭저럭 출전 시간을 부여받은 것을 빼면 존재감이 없었다. 그나마 신동경도 예상을 깨고 드래프트에 지명받지 못했고.
- 이밖에 전 국가대표 출신 진효준(고려대 졸) 감독 부임후 강력한 수비의 팀으로 거듭난 명지대가 MBC배에서 준우승하며 역시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고, 만년 하위팀인 동국대도 매직키드 김승현의 맹활약 속에 농구대잔치에서 무려 2승을 거두며 6강 결선리그까지 진출하는 기대이상의 성적을 거두었다.
- 아마농구팬들의 로망이었던 "낙생고 트리오"(정훈-진경석-이한권)가 함께 입학한 성균관대는 기대완 달리 모든 대회에서 예선탈락하며 성인 농구의 높은 벽을 절감해야했다. 하지만 신입생 3인방은 데뷔 첫해부터 모두 팀의 핵심멤버가 되었으며 특히 정훈은 부족한 공격능력에도 불구, 내외곽을 넘나들며 팀의 키 플레이로 맹활약, 농구팬들에게 "실사판 윤대협", "페니의 재림"이란 극찬을 받으며 김주성과 함께 향후 한국 농구를 이끌어나갈 재목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4. 1998년 대학선발팀
4.1. 제21회 이상백배 한-일 대학농구대회 (5월)
감독: 이종호(한양대)
- 가드: 이홍수(한양대 4), 강혁(경희대 4)
- 포워드: 조상현(연세대 4), 김성철(경희대 4), 정훈(성균관대 1), 최훈석(명지대 4), 송태영(동국대 3), 송영환(경희대 2)
- 센터: 김주성(중앙대 1), 이규섭(고려대 3), 김태완(한양대 1), 장영재(명지대 4)
5. 1999 KBL 드래프트 결과
6. 그때 그 선수들
항목이 개설되지 않은 4학년 선수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6.1. 건국대
- 김완수(3학년,G,180cm)
- 김상우(4학년,G,182cm): 송도고 졸. 대구동양(00-02)-인천SK(02-03). 3시즌.
- 이영준(3학년,F,192cm)
- 손창환(4학년,F,192cm): 대구계성고 졸. 안양SBS(99-03). 4시즌.
- 문혁주(1학년,C,194cm)
- 박성철(1학년,G,192cm)
- 최원호(1학년,F,188cm)
6.2. 경희대
- 하상윤(4학년,G,180cm): 군산고 졸. 부산기아/울산모비스(99-02,04-11). 10시즌.
- 강혁(4학년,G,187cm): 삼일상고 졸. 수원/서울삼성(99-01,03-11)-인천전자랜드(11-13). 12시즌.
- 양은성(4학년,G,186cm): 광주고 졸. 수원삼성(99-01). 2시즌.
- 김성철(4학년,F,195cm): 삼일상고 졸. 안양SBS/KT&G(99-02,04-06)-인천전자랜드(06-10)-안양KT&G/KGC(09-13). 12시즌.
- 윤훈원(3학년,C,195cm)
- 고태원(1학년,G,183cm)
- 박성훈(2학년,F,196cm)
- 송영환(2학년,F,192cm)
- 손인보(2학년,F,197cm)
- 김중길(2학년,C,197cm)
- 김세중(1학년,C,195cm)
6.3. 고려대
- 한정훈(1학년,G,186cm)
- 이건우(1학년,G,185cm)
- 정선규(1학년,G,180cm)
- 오광택(3학년,F,186cm)
- 김경록(1학년,F,185cm)
- 김대환(2학년,C.193cm)
6.4. 단국대
- 이정길(1학년,G,180cm)
- 김지윤(2학년,G)
- 김동환(3학년,G,187cm)
- 김보관(1학년,F,190cm)
- 이두훈(2학년,C,195cm)
- 남현태(1학년,F,190cm)
6.5. 동국대
- 송서정(1학년,G,185cm)
- 이상훈(1학년,F,190cm)
- 서영권(1학년,F,193cm)
- 김동명(1학년,F,194cm)
6.6. 명지대
- 김진호(2학년,G,187cm)
- 최훈석(4학년,F,180cm): 휘문고 졸. 창원LG(99-00). KBL 출전 없음.
- 이병석(3학년,F,190cm)
- 길도익(4학년,F,191cm): 대전고 졸. 대전현대(99-00)-부산기아(00-01)-창원LG(01-02). 3시즌.
- 장영재(4학년,C,196cm): 경복고 졸. 울산모비스(01-03)-부산KTF(03-04)-원주TG삼보/동부(04-06)-부산KTF(06-08). 7시즌.
- 박성운(1학년,G,180cm)
- 박영민(1학년,F,189cm)
- 최경철(1학년,F,195cm)
- 박종덕(3학년,C,198cm)
6.7. 성균관대
- 김종흥(3학년,G,185cm)
- 이한권(1학년,C,197cm)
6.8. 연세대
- 황성인(4학년,G,180cm): 대전고 졸.
- 조동현(4학년,G,186cm): 대전고 졸.
- 조상현(4학년,F,188cm): 대전고 졸.
- 은희석(3학년,G/PF,189cm)
- 이재훈(4학년,F/C,193cm): 송도고 졸. 인천신세기(99-00). KBL 출전 없음.
송도고 출신 단신 파워포워드로 고 3때 김상우(180cm,G,건국대), 민병희(197cm,C,한양대) 등과 함께 송도고를 2차례 전국대회 4강에 올리며(쌍용기, 종별선수권) 빅맨 자원이 유난히 적었던 95학번 중에서 빅맨 중 가장 상위권 대학(연세대)으로 스카웃 된다. 하지만 연세대에는 이미 서장훈, 김택훈, 구본근 등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바람에 이재훈은 대학 3학년때까지 벤치와 한몸이 될 정도의 만년 후보선수였고 심지어 웜업점퍼를 벗은 모습을 보는 것도 힘들 지경이었다. 연세대가 이후 3년간 빅맨 수급에 완벽히 실패하면서 4학년이된 이재훈은 갑자기 주전 센터로 나섰지만, 센터로서 너무도 작은 키에 기량도 그닥이라 장신화가 이루어진 1998년도 대학농구에서 거친 파울성 수비 말고는 할수 있는게 없었다. 오히려 시즌 중반부터 골밑 파트너로 나온 장신가드 은희석(189cm)이 빅맨으로서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KBL 드래프트에선 예상보다 꽤 높은 순위( 2라운드 13순위)에 연세대 출신 최종규 감독[9] 이 이끌던 인천 대우 제우스[10] 에 지명되나, KBL에서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고 시즌후 은퇴, 현재는 뉴질랜드에 거주하면서 농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 허중(2학년,G,180cm)
- 신동경(1학년,G,184cm)
- 이형주(2학년,G,185cm)
- 최병훈(3학년,F,187cm)
- 박재성(1학년,F,192cm)
- 최종규(4학년,C,202cm): 미국 허쉬고 졸. 청주SK(99-00). 1시즌.
93학번 서장훈, 94학번 구본근을 스카웃했던 연세대는 이규섭(대경상고 졸, 96학번)을 고려대에, 송영진(마산고 졸, 97학번)을 중앙대에 뺏기면서 센터 후계자를 급구하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최희암 감독의 레이더에 걸린게 미국 에모리 대학교 치대에 다니다 귀국하여 영어강사를 하던 2m의 재미교포 최종규였다. 고교때까지 농구를 했었다고 하고 덩크가 가능할 정도의 탄력도 있어 제 2의 박재헌이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연세대로 편입시켰는데...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명문대인 에모리 대학교에 성적으로 입학할 정도로 수재였던 최종규는 공부 잘하고 키 큰, 그러나 농구는 그냥 일반인 수준이었다. 서장훈, 김택훈, 구본근의 동시 졸업 후 팀내 최장신임에도 불구, 실전에 전혀 나설수 없는 정도의 기량이었고, 이바람에 연세대는 장신 포인트가드 은희석을 빅맨으로 쓰는 고육지책을 꺼내들기도 했다. KBL 드래프트 전 트라이아웃에도 전혀 뛰지 않으면서 프로진출의 의지가 없었음에도, 연세대 동문팀(;;)이던 청주 SK 나이츠에 2라운드 19순위로 지명되었고, 99-00 시즌 청주 SK 우승멤버에 이름을 올린뒤 한시즌만에 은퇴한다.
6.9. 중앙대
- 임재현(3학년,G,182cm)
- 황진원(2학년,G,188cm)
- 조우현(4학년,F,190cm): 부산동아고 졸. 대구동양(99-00)-창원LG(00-06)-인천전자랜드(06-08)-전주KCC(08-10). 11시즌.
- 송영진(2학년,F,198cm)
- 김주성(1학년,C,205cm)
- 박지현(1학년,G,183cm)
- 박준석(4학년,F,187cm): 경복고 졸. 원주삼보(99-01). 2시즌.
- 박준용(3학년,F,189cm)
- 정종선(4학년,F,187cm): 용산고 졸. 대전현대(99-01)-창원LG(01-04)-울산모비스(03-04)-대구오리온스(04-05)-창원LG(05-06)-인천전자랜드(06-07). 8시즌.
- 신동한(2학년,F,190cm)
- 손준영(1학년,F,193cm)
- 정훈종(3학년,C,205cm)
6.10. 한양대
- 이홍수(4학년,G,179cm): 부산중앙고 졸. 창원LG(99-02)-여수코리아텐더/부산KTF(01-02,04-07)-인천전자랜드(07-10). 9시즌.
김수환(191cm,F,연세대 중퇴), 박도경(202cm,C,중앙대)의 부산중앙고 1년 후배로, 고 2때 출전한 쌍용기 예선에서 부산중앙고가 현주엽이 이끌던 고교 최강 휘문고를 격파했을때 23점을 퍼부으며 맹활약하기도 했고,[11] 3학년때는 팀을 혼자 이끌다시피 하면서 부산중앙고를 1994년 종별선수권 4강까지 올려놓기도 했다.
한양대 진학 후 선배 정락영, 강기중 등과 함께 1학년때부터 팀의 주축가드로 뛰었는데, 이들 중 득점력은 이홍수가 가장 좋았다. 대학팀들만의 대회로 축소된 첫번째 농구대잔치였던 1997-98 농구대잔치에서 이홍수는 대회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하며 팀을 4강으로 이끌며 황성인과 함께 95학번 중 손꼽히는 포인트가드 자원으로 주목받게 된다.
1999 KB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창원 LG 세이커스에 입단, 첫시즌부터 베테랑 오성식의 백업 포인트가드로 쏠쏠하게 활약했으나, 00-01 시즌 공격농구 신봉자 김태환 감독이 부임한 뒤 슈터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조우현을 1번 자리에 중용하면서 오성식, 이홍수 모두 출전시간이 줄어든다. 이후 01-02 시즌 중반 창원 LG-여수 코리아텐더간 성사된 메가톤급 "4:4 트레이드"에 끼어[12]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적했고, 당시 여수 코리아텐더의 역동적인 3가드 백코트 정락영-전형수-황진원을 지원사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한양대 진학 후 선배 정락영, 강기중 등과 함께 1학년때부터 팀의 주축가드로 뛰었는데, 이들 중 득점력은 이홍수가 가장 좋았다. 대학팀들만의 대회로 축소된 첫번째 농구대잔치였던 1997-98 농구대잔치에서 이홍수는 대회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하며 팀을 4강으로 이끌며 황성인과 함께 95학번 중 손꼽히는 포인트가드 자원으로 주목받게 된다.
1999 KBL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창원 LG 세이커스에 입단, 첫시즌부터 베테랑 오성식의 백업 포인트가드로 쏠쏠하게 활약했으나, 00-01 시즌 공격농구 신봉자 김태환 감독이 부임한 뒤 슈터이자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던 조우현을 1번 자리에 중용하면서 오성식, 이홍수 모두 출전시간이 줄어든다. 이후 01-02 시즌 중반 창원 LG-여수 코리아텐더간 성사된 메가톤급 "4:4 트레이드"에 끼어[12]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적했고, 당시 여수 코리아텐더의 역동적인 3가드 백코트 정락영-전형수-황진원을 지원사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 -02 시즌 종료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부산 KTF 매직윙스로 바뀐 팀으로 복귀, 대학선배 정락영의 백업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부산 KTF가 04-05 시즌 정규리그 4위에 오르는데 기여하지만, 다음시즌 국가대표 포인트가드이자 전시즌 MVP 신기성이 합류한데다 추일승식 포워드 농구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후보 포인트가드인 이홍수의 기회도 줄어든다.
07-08 시즌을 앞두고 이홍수는 인천 전자랜드가 뽑은 신인 김영환이 포함된 2:2 트레이드[13] 에 포함되어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하지만, 여기서도 후보로만 뛰다 3시즌 후 은퇴한다.
- 김성모(3학년,G,182cm)
- 성준모(2학년,F,190cm)
- 김종학(2학년,C,198cm)
- 김태완(1학년,C,203cm)
- 김승호(2학년,G,180cm)
- 강준구(1학년,G,185cm)
- 김경석(2학년,F,192cm)
- 박유진(1학년,F,195cm)
- 안종호(3학년,F,192cm)
- 민병희(4학년,C,197cm): 송도고 졸. 원주삼보(99-00)-청주SK(00-01). KBL 출전 없음.
이재훈(193cm,F,연세대)과 함께 송도고 골밑을 지키던 몇안되는 95학번 센터였으나, 센터진이 그리 강하지 않았던[14] 한양대에서도 4년 내내 백업일 정도의 기량이었다. 1999년 KBL 드래프트의 유일한 3라운드 지명자로 원주 삼보에 지명되었으나 한게임도 못뛰고 시즌 종료 후 청주 SK로 이적했으며, 여기서도 한게임도 못뛰고 은퇴했다.
[1] 승자결승까지 진출했던 연세대가 대회 도중 부전선수 출전으로 인한 몰수패로 탈락하면서, 패자준결승 승리팀 명지대가 자동으로 패자결승에 진출하였다.[2] 예선에서의 전적을 가지고 간다.[3] 국민은행의 농구대잔치 우승과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 금메달을 이끌었다.[4] 센터 윤영필만 졸업했을뿐, 하상윤-강혁-양은성-김성철 등 주전 4인방이 그대로 4학년이 되었다.[5] 주희정은 잘 아는 것처럼 일찌감치 프로로 진출했고, 서장훈과 현주엽 이후 휘문고의 포스트를 지켰던 이규열도 중도에 농구를 그만두었다.[6] MBC배 종료 직후 98-99 시즌부터 KBL 수원 삼성 썬더스 감독을 맡을 예정이던 최희암은 이 자격정지로 인해 수원 삼성 감독직에서 낙마했고, 수원 삼성은 부랴부랴 당시 안양 SBS에서 총감독으로 물러나있던 김동광을 후임감독으로 임명했다. 한편 김수환은 3년 가까운 시간을 허송하다가 2000년 가을에 있었던 신인 드래프트에 도전했으나 지명을 받지 못했고 빅스(현 전자랜드)에 수련선수로 들어갔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조용히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7] 1998년 실시한 원주나래-부산기아 간 트레이드(원주나래 get: 허재 ↔ 부산 기아 get: 정인교, 1999년 1R 신인)에 의해 드래프트 직후 부산 기아로 이적했다. KBL 사상 첫 신인지명권 양도이긴 했는데, 당시 KBL은 신인지명권 트레이드를 공식 인정하지 않는 바람에 장영재는 드래프트장에서는 원주 나래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했다;;; 이런 우스꽝스런 모습들은 2016-17 시즌에 이르러 지명권양도가 공식 인정되면서 비로소 사라지게 되었다. 참고로 장영재는 드래프트 되자마자 상무에 입대하여 데뷔가 2년 미뤄졌다.[8] 이상민의 홍대부고 동기(91학번)로 대학 졸업 후 실업팀 시절의 대우증권에 입단했으나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고 군입대했다.[9] 아래의 연세대 동기 최종규와는 동명이인이다.[10] 99-00 시즌부터 "인천 신세기 빅스"로 팀명을 바꾼다.[11] 하지만 부산중앙고는 결승에서 재격돌한 휘문고에 대패하며 1993년 쌍용기 준우승에 그쳤다.[12] 여수 코리아텐더 get: 에릭 이버츠, 말릭 에반스, 황진원, 이홍수 ↔ 창원 LG get: 마이클 매덕스, 칼 보이드, 김병천, 김동환[13] 인천 전자랜드 get: 이한권, 이홍수 ↔ 부산 KTF get: 김영환, 박세원[14] 그래서 190cm의 스몰포워드 추승균이 대학 내내 4번을 봐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