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 대학농구연맹전
1. 개요
1997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 승패 동률로 공동순위
연세대가 1997년도에 열린 4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사상 첫 시즌 전관왕 (4관왕)'''에 올랐다.
대학부에서의 대회만 따진다면 1995년도에 고려대도 출전한 5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한바 있지만, 당시 고대는 1995-96 농구대잔치에서는 4강에서 떨어지며 최종 3위에 머물렀었다.
다만 KBL의 출범으로 인해 1997년도부터 농구대잔치는 대학팀 및 상무만 참가하는 대회로 규모가 축소되는 바람에, 1995-96 농구대잔치는 물론 바로 전년도에 연세대가 우승한 1996-97 농구대잔치 때보다도 권위가 낮아져, '"아마추어 레벨의 최고 권위의 대회" 정도로만 인정받게 되었다.
2. 대회결과
2.1.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3월)
1997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항목 참조
- MVP: 서장훈(연세대)
2.2. 전국체전 (10월)
2.3. 대학농구연맹전 (12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대학농구연맹 산하 10개 대학팀이 모두 참가하였다.
※승패동률 시 승자승으로 순위 결정.
3) 결선리그[1]
- MVP: 조상현(연세대)
- 기록부문
2.4. 1997-98 농구대잔치
1997-98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 1997년 KBL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농구대잔치로서, 이때부터 실업팀들이 빠지고 대학팀 및 상무만 참가하는 대회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997-98 대회에는 상무가 참여하지 않고 대학 10개팀만 참가하였다.
- MVP: 서장훈(연세대)
3. 시즌 결산
4. 1997년 대학선발팀
4.1. 이상백배 한-일 대학농구대회 (5월)
4.2. 1997 멜버른 22세 이하 남자농구선수권대회 (8월 1일~10일)
감독: 최부영
- 가드: 신기성(고려대 4), 강혁(경희대 3), 황성인(연세대 3), 박영진(건국대 4)
- 포워드: 김성철(경희대 3), 현주엽(고려대 4), 조상현(연세대 3), 김택훈(연세대 4), 최성우(한양대 4)
- 센터: 서장훈(연세대 4), 윤영필(경희대 4), 이규섭(고려대 2), 구본근(연세대 4)
4.3. 1997 시칠리아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8월 19일~31일)
감독: 최부영
- 가드: 신기성(고려대 4), 강혁(경희대 3), 황성인(연세대 3), 김희선(수원 삼성), 정진영(대전 현대)
- 포워드: 김성철(경희대 3), 현주엽(고려대 4), 추승균(대전 현대), 조상현(연세대 3), 김택훈(연세대 4)
- 센터: 서장훈(연세대 4), 윤영필(경희대 4)
5. 1998 KBL 드래프트 결과
6. 그때 그 선수들
항목이 개설되지 않은 4학년 선수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6.1. 건국대
- 박영진(4학년,G,182cm): 대구계성고 졸. 대전현대(98-99)-전주KCC(02-03)-인천전자랜드(03-05)-울산모비스(05-06). 4시즌.
- 김상우(3학년,G,182cm)
- 손창환(3학년,F,192cm)
- 황문용(4학년,F,191cm): 대경상고 졸. 부산기아(98-00)-서울삼성(02-03)-울산모비스(03-05). 5시즌.
- 변청운(4학년,F,192cm): 대경상고 졸. 광주나산/골드뱅크/여수코리아텐더/부산KTF(98-00,02-04)-전주KCC(04-07)-원주동부(06-10). 10시즌.
- 김완수(2학년,G,180cm)
- 이영준(2학년,F,192cm)
6.2. 경희대
- 하상윤(3학년,G,180cm)
- 강혁(3학년,G,187cm)
- 양은성(3학년,G,186cm)
- 김성철(3학년,F,195cm)
- 윤영필(4학년,C,193cm): 휘문고 졸. 안양SBS(98-00,02-08)-인천전자랜드(08-10). 10시즌.
- 박성훈(1학년,F,196cm)
- 윤훈원(2학년,C,195cm)
- 김중길(1학년,C,197cm)
- 신현웅(1학년,G)
6.3. 고려대
- 신기성(4학년,G,180cm): 송도고 졸. 원주나래/삼보/TG(98-01,03-05)-부산KTF/KT(05-10)-인천전자랜드(10-12). 12시즌.
- 이정래(2학년,G,189cm)
- 오광택(2학년,F,186cm)
- 현주엽(4학년,F,195cm): 휘문고 졸. 주SK(98-00)-광주/여수골드뱅크/부산KTF(99-01,03-05)-창원LG(05-09). 9시즌.
- 이규섭(2학년,C,198cm)
- 전형수(1학년,G,180cm)
- 강대협(1학년,G,187cm)
- 김기만(2학년,F,192cm)
- 김대환(1학년,C.193cm)
6.4. 단국대
- 김동환(2학년,G,187cm)
- 남진우(4학년,C,195cm): 단대부고 졸. 서울삼성(98-99,01-03)-부산KTF(03-07). 7시즌.
단대부고 3학년때 최성우(191cm,F, 한양대)와 더블포스트를 이루며 팀을 춘계연맹전 4강까지 올려놓았다. 단국대 진학후 팀의 독보적 에이스였던 김정인(190cm,G/F)을 보좌하며 묵묵히 골밑을 지켰으나, 대학 시절 단한차례도 대학농구연맹전 예선통과를 한적이 없을 정도로 팀이 워낙 약체였다. 그래도 대학무대에서 어느정도 골밑 존재감을 보인 덕분에 1998 신인드래프트에서 당시 빅맨 구인난에 시달리던 수원 삼성 썬더스에 선발되지만, 기존의 박상관, 강양택에 드래프트 동기 김택훈, 간염 치료후 복귀한 이창수까지 가세하며 갑자기 팀내 빅맨진이 포화상태가 되는 바람에 출장기회를 얻지 못하고 상무에 입대한다. 제대 후에도 여전히 썬더스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던 남진우는, 상무 시절 감독이었던 추일승 감독의 부름을 받아 03-04 시즌을 앞두고 부산 KTF 매직윙스로 무상이적하면서 본격적으로 기회를 잡기 시작한다.
서울 삼성 시절 총 3시즌간 16경기 출장이 전부였던 남진우는 이적 첫시즌에 시즌 중 절반에 가까운 24경기에 출장했고, 김기만과 함께 번갈아가며 2쿼터용 토종 빅맨으로 나서게 되었다. 부산 KTF에서 두시즌간 쏠쏠한 활약을 펼친 덕분에 2005년 첫 FA가 되었을때 전시즌보다 무려 31%나 상승한 연봉 5500만원에 부산 KTF와 1년 재계약할 수 있었고, 05-06 시즌에는 송영진과 함께 팀내 비중있는 토종 빅맨으로 활약하며 팀이 정규리그 4위까지 오르는데 보탬이 되었고, 이 덕분에 2006년 부산 KTF와 다시 1년 재계약한다.
06-07시즌에도 정규리그 38경기에 출전하며 백업빅맨으로 활약, 팀이 챔피언 결정전까지 오르는데 기여했지만 남진우 본인은 이한권, 임영훈 등 후배들에 밀려 기회가 다소 줄어들었고, 챔피언 결정전 종료 후 팀선배 김희선과 함께 은퇴했다.
은퇴 후 부산 KT팀 매니저, 2군 코치 등을 지냈다.
통산 평균출장시간이 5분도 안되는 무명선수였지만 단국대 출신 선수 중 KBL 최다시즌 출장기록(7시즌)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다. 17-18 시즌 박구영이 8시즌째를 맞으며 깨졌다. [3]
서울 삼성 시절 총 3시즌간 16경기 출장이 전부였던 남진우는 이적 첫시즌에 시즌 중 절반에 가까운 24경기에 출장했고, 김기만과 함께 번갈아가며 2쿼터용 토종 빅맨으로 나서게 되었다. 부산 KTF에서 두시즌간 쏠쏠한 활약을 펼친 덕분에 2005년 첫 FA가 되었을때 전시즌보다 무려 31%나 상승한 연봉 5500만원에 부산 KTF와 1년 재계약할 수 있었고, 05-06 시즌에는 송영진과 함께 팀내 비중있는 토종 빅맨으로 활약하며 팀이 정규리그 4위까지 오르는데 보탬이 되었고, 이 덕분에 2006년 부산 KTF와 다시 1년 재계약한다.
06-07시즌에도 정규리그 38경기에 출전하며 백업빅맨으로 활약, 팀이 챔피언 결정전까지 오르는데 기여했지만 남진우 본인은 이한권, 임영훈 등 후배들에 밀려 기회가 다소 줄어들었고, 챔피언 결정전 종료 후 팀선배 김희선과 함께 은퇴했다.
은퇴 후 부산 KT팀 매니저, 2군 코치 등을 지냈다.
통산 평균출장시간이 5분도 안되는 무명선수였지만 단국대 출신 선수 중 KBL 최다시즌 출장기록(7시즌)을 가지고 있었던 선수였다. 17-18 시즌 박구영이 8시즌째를 맞으며 깨졌다. [3]
6.5. 동국대
6.6. 명지대
- 표명일(4학년,G,182cm): 양정고 졸. 부산기아(98-00)-전주KCC(02-07)-원주동부(06-10)-부산KT(10-12). 12시즌.
- 최훈석(3학년,F,180cm)
- 박재일(4학년,F,190cm): 상산전자고 졸. 대구동양(00-05). 5시즌.
- 길도익(3학년,F,191cm)
- 장영재(3학년,C,196cm)
- 이우정(1학년,G,180cm)
- 김진호(1학년,G,187cm)
- 황인성(4학년,F,185cm): 휘문고 졸. 안양SBS(98-00). 2시즌.
185의 단신이지만, 농구대잔치 올스타전 덩크 콘테스트에 매년 고정참가할 정도로 운동능력이 좋았던 스윙맨.
- 이병석(2학년,F,190cm)
- 박종덕(2학년,C,198cm)
6.7. 성균관대
- 이흥배(2학년,G,180cm)
- 김종흥(2학년,G,185cm)
- 이현준(1학년,F,193cm)
- 임영훈(1학년,F,193cm)
6.8. 연세대
- 황성인(3학년,G,180cm)
- 조동현(3학년,G,186cm)
- 조상현(3학년,F,188cm)
- 김택훈(4학년,F,193cm): 홍대부고 졸. 수원/서울삼성(98-00,02-05)-인천전자랜드(05-07). 7시즌.
- 서장훈(4학년[4] ,C,207cm): 휘문고 졸.
- 은희석(2학년,G,189cm)
- 허중(1학년,G,180cm)
- 이형주(1학년,G,185cm)
- 최병훈(2학년,F,187cm)
- 송태균(4학년,F,191cm): 명지고 졸. 청주/서울SK(98-02). 4시즌.
- 구본근(4학년,C,197cm): 대전고 졸, 대전현대/전주KCC(98-02). 4시즌.
6.9. 중앙대
- 임재현(2학년,G,182cm)
- 구병두(4학년,G,187cm): 부산동아고 졸. 창원LG(98-02)-울산모비스(02-07). 9시즌.
부산동아고 시절엔 팀의 에이스로 뛰며 1993년 동국대총장기 우승과 MVP를 석권하기도 했으나, 중앙대 진학 후 중대 특유의 전방압박 수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퍼리미터 디펜더로 활약하며, 김영만, 김희선, 등 쟁쟁한 멤버들 속에서도 1학년때부터 팀의 주전 백코트 한자리를 차지하였다. 90년대 당시 기준으로 2번 치고 장신인데다 3점슛도 갖추어 공수전반에 쓰임새가 많았고, 활동량도 워낙 좋아 상대팀 슈터들을 주로 매치업하였다. KBL 입단 후에도 주로 수비요원으로 뛰며 9시즌 동안 평균 13분씩 꾸준한 출장시간을 보장받던 키 식스맨이었다. 특히 울산 모비스에서 뛴 마지막 시즌엔 양동근, 김동우 등 젊은 선수들 속에서 보이지않는 활약을 하며, 울산 모비스의 2년연속 정규리그 1위에 공헌하기도 한뒤, 은퇴했다.
은퇴 후 제물포고 농구부 코치, WKBL 청주 KB 스타즈 코치,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코치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물포고 농구부 코치, WKBL 청주 KB 스타즈 코치,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 코치를 역임했다.
- 조우현(3학년,F,190cm)
- 송영진(1학년,F,198cm)
- 이은호(4학년,C,196cm): 상산전자고 졸.
- 김병천(4학년,G,180cm), 용산고 졸. 광주나산/여수골드뱅크/코리아텐더(98-02)-창원LG(01-02)-안양SBS(02-03). 5시즌.
심판계의 악의 축 황순팔을 정의의 주먹으로 응징한 전설의 그 분.
슛이 좋았던 단신 슈팅가드로, 용산고 2학년이던 1992년 학산배 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당시 청소년대표팀 합류로 빠진 3학년 이세범(180cm,G), 전재경(195cm,C)의 공백을 메우며 맹활약, 용산고에 시즌 두번째 우승컵을 안김과 동시에 김병천 본인은 대회 MVP에 오르기도 했다.[5] 하지만 중앙대 입학 후 쟁쟁한 가드진들의 틈바구니 속에 단신 2번이던 김병천은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고 대학시절 내내 주로 백업 또는 로테이션 멤버로만 뛰었다.
1998 신인드래프트에서도 2R 17순위로 광주 나산에 지명될때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당시 모기업 나산그룹의 부도로 재정난에 시달리던 팀이 주득점원이던 김상식을 안양 SBS로 현금 트레이드(2억원)하는 바람에, 98-99 시즌 김병천은 졸지에 팀내 유일한 3점 슈터가 되었고 시즌초반부터 주전급으로 출장하며 경기당 평균 1.3개의 3점슛(성공룔 37.4%)를 꽂는 등 기대이상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9년 3월 7일 대전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억울한 파울을 선고받은 뒤 심판에게 항의하다 곧바로 테크니컬 파울을 받자 심판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려는 '포즈'를 취했고, 당시 황유하 감독과 동료들이 급히 말려 실제 폭력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김병천은 무려 1년간 출장정지에 벌금 200만원이라는 초 중징계를 먹고 만다.당시 신문기사 이때 폭력 당사자는 그 유명한 황순팔(현 황현우) 심판이었다.
다행히 징계는 감면되었지만, 그가 코트를 떠난 사이 골드뱅크에 매각되면서 광주 골드뱅크로 새출발한 팀은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조상현, 트레이드로 합류한 정진영, 그리고 외국인센터로 뽑은 에릭 이버츠까지 3점 슈터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김병천의 입지는 그단적으로 좁아졌고, 결국 2001-02 시즌 도중 여수 코리아텐더-창원 LG간 실시된 4:4 트레이드[6] 에 포함되어 창원 LG로 이적했으나 별로 뛰지 못했다. 02-03 시즌을 앞두고 가드난에 시달리던 안양 SBS에 트레이드[7] 로 합류하여 강대협, 김상식, 박성운 등과 로테이션으로 포인트가드를 맡아 평균 14분가량을 뛰며 4.4득점 1.8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팀은 리그 8위에 그쳤고, 김병천은 시즌 종료후 FA 계약이 결렬되면서 은퇴했다.
은퇴 후 돌상준 감독 시절 중앙대 코치를 맡기도 했고, 2019년 현재 수원제일중학교 농구부 코치로 있다.
슛이 좋았던 단신 슈팅가드로, 용산고 2학년이던 1992년 학산배 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당시 청소년대표팀 합류로 빠진 3학년 이세범(180cm,G), 전재경(195cm,C)의 공백을 메우며 맹활약, 용산고에 시즌 두번째 우승컵을 안김과 동시에 김병천 본인은 대회 MVP에 오르기도 했다.[5] 하지만 중앙대 입학 후 쟁쟁한 가드진들의 틈바구니 속에 단신 2번이던 김병천은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고 대학시절 내내 주로 백업 또는 로테이션 멤버로만 뛰었다.
1998 신인드래프트에서도 2R 17순위로 광주 나산에 지명될때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당시 모기업 나산그룹의 부도로 재정난에 시달리던 팀이 주득점원이던 김상식을 안양 SBS로 현금 트레이드(2억원)하는 바람에, 98-99 시즌 김병천은 졸지에 팀내 유일한 3점 슈터가 되었고 시즌초반부터 주전급으로 출장하며 경기당 평균 1.3개의 3점슛(성공룔 37.4%)를 꽂는 등 기대이상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9년 3월 7일 대전 현대와의 원정경기에서 억울한 파울을 선고받은 뒤 심판에게 항의하다 곧바로 테크니컬 파울을 받자 심판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려는 '포즈'를 취했고, 당시 황유하 감독과 동료들이 급히 말려 실제 폭력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에도 김병천은 무려 1년간 출장정지에 벌금 200만원이라는 초 중징계를 먹고 만다.당시 신문기사 이때 폭력 당사자는 그 유명한 황순팔(현 황현우) 심판이었다.
다행히 징계는 감면되었지만, 그가 코트를 떠난 사이 골드뱅크에 매각되면서 광주 골드뱅크로 새출발한 팀은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조상현, 트레이드로 합류한 정진영, 그리고 외국인센터로 뽑은 에릭 이버츠까지 3점 슈터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김병천의 입지는 그단적으로 좁아졌고, 결국 2001-02 시즌 도중 여수 코리아텐더-창원 LG간 실시된 4:4 트레이드[6] 에 포함되어 창원 LG로 이적했으나 별로 뛰지 못했다. 02-03 시즌을 앞두고 가드난에 시달리던 안양 SBS에 트레이드[7] 로 합류하여 강대협, 김상식, 박성운 등과 로테이션으로 포인트가드를 맡아 평균 14분가량을 뛰며 4.4득점 1.8어시스트를 기록했으나 팀은 리그 8위에 그쳤고, 김병천은 시즌 종료후 FA 계약이 결렬되면서 은퇴했다.
은퇴 후 돌상준 감독 시절 중앙대 코치를 맡기도 했고, 2019년 현재 수원제일중학교 농구부 코치로 있다.
- 황진원(1학년,G,188cm)
- 정종선(3학년,F,187cm)
- 신종석(4학년,F,193cm): 경복고 졸, 원주나래/삼보/TG(98-05)-대구오리온스(05-06)-안양KT&G(06-07)-모비스(07-08)- 안양KT&G(08-09)[8] . 10시즌.
- 정훈종(2학년,C,205cm)
- 박도경(4학년,C,202cm): 부산중앙고 졸. 청주/서울SK(98-01)-창원LG(00-02). 4시즌.
6.10. 한양대
- 정락영(4학년,G,183cm): 삼일상고졸. 대구동양(98-00)-여수골드뱅크/코리아텐더/부산KTF(00-06)-서울SK(05-09). 11시즌.
- 이홍수(3학년,G,179cm)
- 김성모(2학년,G,182cm)
- 최성우(4학년,F,191cm): 단대부고 졸. 창원LG(98-00,02-03). 3시즌.
단대부고 시절 센터로 뛰며 1993년 춘계연맹전 4강까지 올랐다. 한양대에선 포워드로 변신, 고학년이 되면서 출장기회를 점차 늘려가며 4학년때는 팀의 주포로 활약했고, 제 2회 1997 FIBA U-22 세계선수권대회[9] 대표팀에 현주엽, 신기성, 김성철, 강혁 등 호화멤버들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창원 LG 입단 후 박재헌, 박훈근 등에 밀려 자주 기용되지 못하다 2000년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금방 은퇴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모교 단대부중 코치로 재직한바 있다.
창원 LG 입단 후 박재헌, 박훈근 등에 밀려 자주 기용되지 못하다 2000년 상무에 입대했고, 제대 후에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금방 은퇴했다.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모교 단대부중 코치로 재직한바 있다.
- 김종학(1학년,C,198cm)
- 강기중(4학년,G,180cm): 대경상고 졸. 인천대우/신세기/SK(98-02)-원주TG/동부(04-07). 7시즌.
- 김승호(1학년,G,180cm)
- 성준모(1학년,F,190cm)
- 안종호(2학년,F,192cm)
- 김경석(1학년,F,192cm)
- 민병희(3학년,C,197cm)
[1] 예선에서의 전적을 가지고 간다.[2] 시즌 4개대회를 모두 석권하며 사상최초로 전관왕에 올랐다.[3] 박구영, 김현민, 김상규가 데뷔하기까지 단국대 출신으로 KBL에 이름을 남긴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로 철저히 약체팀이었다. 그런 단국대가 2017 대학농구리그에서는 4강을 넘어 우승을 노리고 있으니 정말로 격세지감;;;[4] 1995년 미국 유학(or 연수?)로 인해 1년 휴학처리 되었다.[5] 원래 학산배 대회는 해당년도 고교 대회에서 상위권에 오른 팀들의 왕중왕전 개념으로 열리던 대회였으나, 1992년 10월 당시 자카르타 U-18 선수권대회가 열리던 시점이라 서장훈, 현주엽(휘문고), 추승균(부산중앙고), 이상영, 이종호(대경상고) 등 각 팀의 에이스들이 모조리 빠진 상황이었다. 이른바 빈집털이 우승이라고 할수 있을만한 상황;;;[6] 창원 LG get: 마이클 매덕스, 칼 보이드, 김병천, 김동환 ↔ 여수 코리아텐더 get: 에릭 이버츠, 말릭 에반스, 황진원, 이홍수[7] 안양 SBS get: 강대협, 김병천 ↔ 창원 LG get: 표필상[8] 이적후 08-09 시즌 개막전 은퇴[9] 1993년 1회대회부터 4년마다 열렸으나 2005년 4회 대회를 끝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