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스카이라인 G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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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SSAN Skyline GT-R'''
'''日産 ・スカイライン GT-R'''
닛산 스카이라인의 한 트림에서 출발한 자동차로, 스카이라인의 고성능 라인업이었다.
1965년 출시된 스카이라인 GT-B[1] 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등급이었으며, 현재 이 라인업은 닛산자동차의 최상위 트림으로써 닛산 GT-R이라는 독자 라인업으로 분리되어 있다.
동시대 JDM 스포츠카들 중 압도적인 배기량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성능과 레이싱에서의 성공, 엄청난 덩치와 카리스마있는 외관으로 일본제 스포츠카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차량.[2] 하지만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수출이 이루어진 240SX나 NSX나 수프라[3] 나 RX-7[4] 과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전 모델이 수입 거부된 차량이기도 하다. 수출이 된 국가도 영국이나 호주, 홍콩 등 우핸들 좌측 통행 국가들에만 소수 수출이 된 지라 좌핸들 버전이 없어서[5] 모든 모델이 우핸들. 직수입을 하려 해도 미국의 자동차법 특성상 수입이 거부된 차량은 생산된지 25년이 지나기 전 까진 매우 까다로운 규정을 거쳐야만 허가가 나기 때문에[6] 미국에서 스카이라인 GT-R은 환상종 취급을 받았고[7][8] 덕분에 미국에서 스카이라인의 인기를 높이는 데에 한 몫 했다. 이러한 미국 자동차 팬의 한(?)은 닛산 GT-R이 정식으로 미국에 수입되면서 다소 해소되었고, 이후 2015년 R32 스카이라인과 2018년 R33 스카이라인의 직수입 제한이 허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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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등장한 2000GT를 기반으로 1969년 도쿄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최초의 GT-R. 1966년 일본 그랑프리에 참전한 프린스 자동차 최후의 경주차인 R380에 쓰인 GR8엔진을 개량한 S20형 2리터 직렬 6기통 엔진으로 160마력을 냈다. 본래는 세단형으로 시작했지만, 71년부터 리어스포일러와 오버펜더를 추가한 쿠페형이 생산된다.
이 시절 일본 그랑프리에서 49연승 및 50승을 기록했는데, 50연승이 좌절된 것은 당시 만만치 않은 경쟁자였던 마쯔다의 최신예 로터리 스포츠카 사바나(수출명 : RX-3) 때문이었다고 한다.[9] 이니셜D에서도 소개되는 '불패신화의 R'이란 명성과, 마쯔다 로터리 스포츠와 GT-R 사이의 신경전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애칭인 하코스카는 일본어로 상자를 뜻하는 하코와 스카이라인의 스카에서 따온 별칭. 당시 스카이라인의 각진 생김새에서 유래했다. 비단 GT-R뿐만 아니라 C10 세대의 스카이라인 전반을 일컫는 애칭이다.
츠치야 케이이치가 프로 레이스 데뷔 전 처음 구입한 차량이다. 2도어 쿠페를 구입하고 싶었으나 돈이 모자라 4도어를 구입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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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데뷔. C110형 스카이라인의 섀시를 기초로 생산된다. 전대와 같은 S20형의 2000cc 직렬 6기통엔진을 이용했으며, "켄과 메리의 스카이라인"이라는 광고카피로 "켄메리 GT-R"이란 애칭이 있다. 생김새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미국차의 영향을 받은 직선적이고 쭉 뻗은 디자인을 반영하는 카피였다.
하지만 73년의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총 197대만 생산되고 당초의 개발 목적이었던 레이스에는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이로부터 1989년 BNR32 스카이라인 GT-R이 부활할 때 까지 GT-R의 계보는 끊기게 된다.
상남2인조의 카데나 나오는 이 차를 탄 거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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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출시. 그룹 A 투어링카 레이스 호몰로게이션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다. RB26DETT (2,568cc)[12]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했으며, 후륜구동을 기초로 한 4륜구동 시스템인 ATTESA E-TS[13] 와 4륜 조향 시스템인 HICAS 등 당시의 최신기술이 다수 채용되었다.[14] 이 모델부터 뉘르부르크링에서 개발 시험을 거쳤으며[15] , 8분 22초의 랩 타임을 기록. 레이스에서의 성공과 출중한 성능을 바탕으로 총 4만여대가 생산되었다. 호주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Wheels'의 기사에서 '고지라'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으로도 유명한 세대. 이니셜D의 나카자토 타케시가 탄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기본 성능도 고성능인데, 이게 순정에서는 의도했는지 아니었는진 모르지만 출력이 잠겨있었다.[16][17] 반대로 말하자면 잠재력이 무지막지했던 차량이라, 단순히 흡배기에 부스트를 조금 올리거나 인젝터만 좀 용량이 큰 것으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순식간에 400마력을 상회하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차량으로도 유명했다. 거기다 주철 블록의 RB26 엔진도 500마력 이상, 극단적으로는 1천마력에 육박하는 하드코어 튜닝도 곧잘 버텨냈기에 여러모로 유명했다. 레이스에서나 공도에서나 '고지라'란 별명에 걸맞는 포텐셜을 가졌던 차량. 후대의 GT-R들과 비교하면 R32가 가장 크기가 작고 가볍지만, 첨단 4WD 구동계와 길쭉하고 무거운 주철제 직렬 6기통 엔진을 대체 어떻게 실어야 할지 고심해야 했던 초창기 모델답게 무게배분이 좀 심하게 앞으로 쏠려 있었다는[18] 단점이 있었다.
어쨌든 1989년 데뷔 이후 강력한 파워와 4륜 구동의 막강한 트랙션, 안정성을 무기로 일본 그룹 A 레이싱에서 29전 29승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하코스카 시절의 '불패신화', '불패의 R'의 전설을 사람들에게 다시 상기시켰다.[19] 일본 바깥에서도 호주 투어링카 시리즈나[20] 유럽의 스파-프랑코샹 서킷 24시간 내구레이스[21] 등을 승리하며 고지라의 위용을 뽐냈다. GT-R 이전까지 그룹 A의 최강자는 포드 시에라 RS500[22] 이나 E30 BMW M3등이었으나, GT-R의 등장과 함께 왕좌를 내주고 만다. 다만 4륜구동이나 트윈터보 등 당시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GT-R의 독주로 개발 비용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그룹 A는 서킷 레이싱에서 사라지고 랠리 전용으로 남게 되었다.[23] 일본 국내에서는 JGTC(전일본 GT 선수권)[24] 나 N1 내구레이스 등에 참전하면서 '불패신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기껏해야 마카오 그랑프리 같은 아시아권의 레이스들에서나 가끔 모습을 드러낼 뿐 유럽이나 호주 등 해외 투어링카 무대에서는 GT-R을 볼 수 없게 된다. 특히 호주는 아예 V8 Supercars 라는 내수 8기통 차량 전용 레이싱 리그를 만들어, GT-R 뿐만 아니라 유럽산 투어링카들을 아예 호주 레이싱 리그에 발붙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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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GT-R이라는 오명을 얻기는 했지만 잠재력은 R32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액티브 LSD 등 당대의 최신 제어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갔으며 무게배분의 개선과 신형 후륜 조향 시스템인 슈퍼 HICAS의 탑재로 인해 R32의 문제로 지적되던 언더스티어와 프론트헤비 문제도 개선했다. 실제로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을 20초 이상 단축해 일본차로서 8분대의 벽을 최초로 뚫은 게[29] 바로 R33이다. 또한 길어진 휠베이스 때문에 고속 안정성이 모든 모델 중에 제일 안정적이라 일본 수도고속도로에서 최고속 튜닝이 활발할 때 많이 쓰였던 모델이기도 하다. 이미지 때문인지 중고차 가격대 역시 비교적 낮게 형성되어 튜닝하기는 더욱 좋았던 차. 현재도 32까지는 아니지만 34에 비하면 확실히 저렴하다. 드래그 레이스에서 드래그 머신으로 튜닝된 차량을 종종 볼수 있으며, 총 생산량은 1만 6천여대.
코너링은 둔하지만 고속 안정성이 좋다는 특성 때문인지 최고속으로 달리며 칼치기를 위주로 하는 최고속 튜닝을 다룬 완간 미드나이트 시리즈에선 비중있게 등장하지만 반대로 고갯길 코너링과 드리프트가 중심이라 기민한 코너링 성능이 중요한 이니셜D에선 찬밥 신세다. GT-R을 4대나 탄 신의 발도 33이 나올 당시 33을 타보고 '쓰레기' 라 비난하며 다시 구형 32를 샀다고 한다. 그 외에는 무간도에서 마약상의 차량 중 한 대로 등장한다. 배우 폴 워커도 북미에 4대밖에 없는[30] 일본내수형 R33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31]
프론트 미션 도그라이프 앤드 도그스타일 2권 '사냥개들'에서 파손된 차량이 O.C.U 육군 대반처팀의 엄폐물중 하나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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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32와 마찬가지로 완간 미드나이트와 이니셜D에서 동시 출연한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는 일본제 튜너 차를 선호하는 브라이언 오코너의 단골 차량으로 나오는데, 2편과 4편에 R34가 나오고 5편의 거대한 도둑질 성공 후 닛산 GT-R로 바꾼다.[35] 폴 워커가 사망한 후 4편에서 촬영용으로 썼던 34모델 중 하나가 경매에서 10억원 상당의 가격에 낙찰된 적이 있다. R34 GT-R의 경우 일본에서 중고가가 상당히 높다.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은모델도 기본 700만엔 정도하며 2002년 최후기형 V스펙 뉘르같은경우는 1,500만엔까지 호가한다... 비슷한 연식의 RX-7이나 수프라보다 2~3배 가량 높은편.[36]
여담이지만, 2000년 8월에 등장한 V SPEC II 이후로는 생산 공장이 도치기현으로 변경되었다.
Z-tune은 닛산의 워크스 튜너이자 모터스포츠 컨스트럭터인 니스모의 축척된 기술과 노하우를 전부 투입하여 '세계 최강의 로드고잉 차량' 'TOP of GT-R' 을 목표로 제작한 컴플리트카다. 컨셉은 2000년에 발표하였으며, 2003년에 뉘르부르크링에서의 테스트를 거쳐 니스모 창립 20주년인 2005년 발매. 총 20대를 만들기로 예정된 프로젝트였지만 실제로 판매된 모델은 19대. 니스모에서 엄선한 무사고, 일정주행거리 이하[40] 의 상태좋은 중고차로 제작. 가격은 1,774.5만엔. 또한 일반 GT-R을 Z-tune으로 튜닝도 가능하며 이 때의 제작가격은 1,312.5만엔.
참고로 생산이 19대에서 그친 이유는, 선발 기준에 맞는 20번째 차량을 구할 수 없어서 '''프로젝트 자체를 19대에서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기준에 미달된 결격 사유로 인한 트러블 때문에 '최후의 스카이라인 GT-R 컴플릿 튜닝카'라는 Z-TUNE의 의미 자체가 퇴색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Z-TUNE에 대한 NISMO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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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의 GT-R이란 이름에 걸맞게 엔진은 RB26DETT를 기반으로 2,800cc까지 배기량을 늘린 RB26DETT改Z2 사양의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최대출력은 500마력이상, 토크는 55kgm을 넘어선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내구력을 달성하기 위해 각 부품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가공하고 제작하였으며 JGTC GT500에 출전한 스카이라인의 부품들[41] 을 차용하기까지 하였다. RB26DETT改Z2 엔진에는 20개 모두 일련번호가 있으며, 니스모의 데이터 수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BNR32) (1989~1995)
'''NISSAN Skyline GT-R'''
'''日産 ・スカイライン GT-R'''
1. 개요
닛산 스카이라인의 한 트림에서 출발한 자동차로, 스카이라인의 고성능 라인업이었다.
1965년 출시된 스카이라인 GT-B[1] 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등급이었으며, 현재 이 라인업은 닛산자동차의 최상위 트림으로써 닛산 GT-R이라는 독자 라인업으로 분리되어 있다.
동시대 JDM 스포츠카들 중 압도적인 배기량을 기반으로 한 강력한 성능과 레이싱에서의 성공, 엄청난 덩치와 카리스마있는 외관으로 일본제 스포츠카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차량.[2] 하지만 미국에서도 활발하게 수출이 이루어진 240SX나 NSX나 수프라[3] 나 RX-7[4] 과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자동차 천국이라는 미국에서는 전 모델이 수입 거부된 차량이기도 하다. 수출이 된 국가도 영국이나 호주, 홍콩 등 우핸들 좌측 통행 국가들에만 소수 수출이 된 지라 좌핸들 버전이 없어서[5] 모든 모델이 우핸들. 직수입을 하려 해도 미국의 자동차법 특성상 수입이 거부된 차량은 생산된지 25년이 지나기 전 까진 매우 까다로운 규정을 거쳐야만 허가가 나기 때문에[6] 미국에서 스카이라인 GT-R은 환상종 취급을 받았고[7][8] 덕분에 미국에서 스카이라인의 인기를 높이는 데에 한 몫 했다. 이러한 미국 자동차 팬의 한(?)은 닛산 GT-R이 정식으로 미국에 수입되면서 다소 해소되었고, 이후 2015년 R32 스카이라인과 2018년 R33 스카이라인의 직수입 제한이 허용되었다.
2. 역사
2.1. Skyline GT-R(PGC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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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등장한 2000GT를 기반으로 1969년 도쿄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최초의 GT-R. 1966년 일본 그랑프리에 참전한 프린스 자동차 최후의 경주차인 R380에 쓰인 GR8엔진을 개량한 S20형 2리터 직렬 6기통 엔진으로 160마력을 냈다. 본래는 세단형으로 시작했지만, 71년부터 리어스포일러와 오버펜더를 추가한 쿠페형이 생산된다.
이 시절 일본 그랑프리에서 49연승 및 50승을 기록했는데, 50연승이 좌절된 것은 당시 만만치 않은 경쟁자였던 마쯔다의 최신예 로터리 스포츠카 사바나(수출명 : RX-3) 때문이었다고 한다.[9] 이니셜D에서도 소개되는 '불패신화의 R'이란 명성과, 마쯔다 로터리 스포츠와 GT-R 사이의 신경전은 여기서 시작된 것이다.
애칭인 하코스카는 일본어로 상자를 뜻하는 하코와 스카이라인의 스카에서 따온 별칭. 당시 스카이라인의 각진 생김새에서 유래했다. 비단 GT-R뿐만 아니라 C10 세대의 스카이라인 전반을 일컫는 애칭이다.
- PGC10 (S20 2000cc 직렬6기통, 160hp)
- KPGC10 (S20 2000cc 직렬6기통, 160hp)
츠치야 케이이치가 프로 레이스 데뷔 전 처음 구입한 차량이다. 2도어 쿠페를 구입하고 싶었으나 돈이 모자라 4도어를 구입했다고...
2.2. Skyline H/T 2000 GT-R(PGC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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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년 데뷔. C110형 스카이라인의 섀시를 기초로 생산된다. 전대와 같은 S20형의 2000cc 직렬 6기통엔진을 이용했으며, "켄과 메리의 스카이라인"이라는 광고카피로 "켄메리 GT-R"이란 애칭이 있다. 생김새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미국차의 영향을 받은 직선적이고 쭉 뻗은 디자인을 반영하는 카피였다.
하지만 73년의 배기가스 규제로 인해 총 197대만 생산되고 당초의 개발 목적이었던 레이스에는 출전조차 하지 못했다. 이로부터 1989년 BNR32 스카이라인 GT-R이 부활할 때 까지 GT-R의 계보는 끊기게 된다.
상남2인조의 카데나 나오는 이 차를 탄 거로 나온다.
- KPGC110 (S20 2000cc 직렬6기통, 160hp)
2.3. Skyline GT-R(BNR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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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출시. 그룹 A 투어링카 레이스 호몰로게이션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었다. RB26DETT (2,568cc)[12]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사용했으며, 후륜구동을 기초로 한 4륜구동 시스템인 ATTESA E-TS[13] 와 4륜 조향 시스템인 HICAS 등 당시의 최신기술이 다수 채용되었다.[14] 이 모델부터 뉘르부르크링에서 개발 시험을 거쳤으며[15] , 8분 22초의 랩 타임을 기록. 레이스에서의 성공과 출중한 성능을 바탕으로 총 4만여대가 생산되었다. 호주의 유명 자동차 전문지 'Wheels'의 기사에서 '고지라'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으로도 유명한 세대. 이니셜D의 나카자토 타케시가 탄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다.
기본 성능도 고성능인데, 이게 순정에서는 의도했는지 아니었는진 모르지만 출력이 잠겨있었다.[16][17] 반대로 말하자면 잠재력이 무지막지했던 차량이라, 단순히 흡배기에 부스트를 조금 올리거나 인젝터만 좀 용량이 큰 것으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순식간에 400마력을 상회하는 괴물이 되어버리는 차량으로도 유명했다. 거기다 주철 블록의 RB26 엔진도 500마력 이상, 극단적으로는 1천마력에 육박하는 하드코어 튜닝도 곧잘 버텨냈기에 여러모로 유명했다. 레이스에서나 공도에서나 '고지라'란 별명에 걸맞는 포텐셜을 가졌던 차량. 후대의 GT-R들과 비교하면 R32가 가장 크기가 작고 가볍지만, 첨단 4WD 구동계와 길쭉하고 무거운 주철제 직렬 6기통 엔진을 대체 어떻게 실어야 할지 고심해야 했던 초창기 모델답게 무게배분이 좀 심하게 앞으로 쏠려 있었다는[18] 단점이 있었다.
어쨌든 1989년 데뷔 이후 강력한 파워와 4륜 구동의 막강한 트랙션, 안정성을 무기로 일본 그룹 A 레이싱에서 29전 29승 무패 행진을 기록하며 하코스카 시절의 '불패신화', '불패의 R'의 전설을 사람들에게 다시 상기시켰다.[19] 일본 바깥에서도 호주 투어링카 시리즈나[20] 유럽의 스파-프랑코샹 서킷 24시간 내구레이스[21] 등을 승리하며 고지라의 위용을 뽐냈다. GT-R 이전까지 그룹 A의 최강자는 포드 시에라 RS500[22] 이나 E30 BMW M3등이었으나, GT-R의 등장과 함께 왕좌를 내주고 만다. 다만 4륜구동이나 트윈터보 등 당시의 첨단기술이 집약된 GT-R의 독주로 개발 비용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그룹 A는 서킷 레이싱에서 사라지고 랠리 전용으로 남게 되었다.[23] 일본 국내에서는 JGTC(전일본 GT 선수권)[24] 나 N1 내구레이스 등에 참전하면서 '불패신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기껏해야 마카오 그랑프리 같은 아시아권의 레이스들에서나 가끔 모습을 드러낼 뿐 유럽이나 호주 등 해외 투어링카 무대에서는 GT-R을 볼 수 없게 된다. 특히 호주는 아예 V8 Supercars 라는 내수 8기통 차량 전용 레이싱 리그를 만들어, GT-R 뿐만 아니라 유럽산 투어링카들을 아예 호주 레이싱 리그에 발붙일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25]
- E-BNR32 Skyline GT-R (RB26DETT 2,568cc 트윈터보, 276hp, ATTESA-ETS)
- GT-R NISMO - 1990년 그룹 A 참가에 맞추어 500대 한정으로 생산된 호모로게이션 한정 모델.
- V-Spec - 1992년 2월 출시. 기본 차량의 전륜 브레이크 로터 직경 확대, 대형 BBS 휠 장착 및 서스펜션과 ATTESA-ETS 재설정.
- N1 - 1991년 7월 19일 출시. N1 내구레이스 (현 슈퍼 내구) 참가를 바탕으로 출시한 모델. GT-R NISMO와 같이 편의장비 및 ABS는 미장착. 색상 또한 크리스탈 화이트 한 종류.
- V-Spec II - 1994년 2월 출시. 코너링 성능 향상을 위해 V-Spec 보다 커진 고성능 타이어로 교체.
2.4. Skyline GT-R(BCNR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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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출시. 새 플랫폼을 사용하면서[27] 차체의 사이즈가 커져 조종 안정성이 향상되었으나, 역대 GT-R 중 둔해진 핸들링 감각 때문에 '''역대 최악의 GT-R'''로 불리기도 한다. 특히 베스트 모터링에서 33 리뷰를 했을 때 츠치야 케이이치가 사비를 털어 구매한 자신의 33과 사측에서 제공한 '리뷰용 스톡' 33의 성능이 확연하게 달랐던 부분이 결정타였는데, 알고 봤더니 스톡이 아니라 하부 튜닝을 상당히 빡쎄게 해 놓은 통칭 '홍보모델'[28] 이었기 때문. 결국 리뷰용 스톡 모델이 아니라 마이카를 대여해서 벌인 '진짜 시판차 매치'에서 NSX-R 모델에게 판정패했고, 그 때문에 BCNR33은 까야 제맛인 네타성 차량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다.'''"그건 실패작이야!!!"'''
'''호시노 코조''', R33의 둔한 핸들링을 평하며.
최악의 GT-R이라는 오명을 얻기는 했지만 잠재력은 R32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 액티브 LSD 등 당대의 최신 제어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갔으며 무게배분의 개선과 신형 후륜 조향 시스템인 슈퍼 HICAS의 탑재로 인해 R32의 문제로 지적되던 언더스티어와 프론트헤비 문제도 개선했다. 실제로 뉘르부르크링 랩타임을 20초 이상 단축해 일본차로서 8분대의 벽을 최초로 뚫은 게[29] 바로 R33이다. 또한 길어진 휠베이스 때문에 고속 안정성이 모든 모델 중에 제일 안정적이라 일본 수도고속도로에서 최고속 튜닝이 활발할 때 많이 쓰였던 모델이기도 하다. 이미지 때문인지 중고차 가격대 역시 비교적 낮게 형성되어 튜닝하기는 더욱 좋았던 차. 현재도 32까지는 아니지만 34에 비하면 확실히 저렴하다. 드래그 레이스에서 드래그 머신으로 튜닝된 차량을 종종 볼수 있으며, 총 생산량은 1만 6천여대.
코너링은 둔하지만 고속 안정성이 좋다는 특성 때문인지 최고속으로 달리며 칼치기를 위주로 하는 최고속 튜닝을 다룬 완간 미드나이트 시리즈에선 비중있게 등장하지만 반대로 고갯길 코너링과 드리프트가 중심이라 기민한 코너링 성능이 중요한 이니셜D에선 찬밥 신세다. GT-R을 4대나 탄 신의 발도 33이 나올 당시 33을 타보고 '쓰레기' 라 비난하며 다시 구형 32를 샀다고 한다. 그 외에는 무간도에서 마약상의 차량 중 한 대로 등장한다. 배우 폴 워커도 북미에 4대밖에 없는[30] 일본내수형 R33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31]
프론트 미션 도그라이프 앤드 도그스타일 2권 '사냥개들'에서 파손된 차량이 O.C.U 육군 대반처팀의 엄폐물중 하나로 사용된다.
- E-BCNR33 Skyline GT-R (RB26DETT 2600cc 트윈터보, 276hp, ATTESA-ETS)
- V-Spec (ATTESA-ETS pro 탑재)
- V Spec N1 - R32 GT-R과 같이 N1 내구레이스 참가를 바탕으로 출시한 모델.
- V-Spec LM limited - 1996 년 5 월 르망 24 시간 레이스 참가 기념으로 기간 한정으로 판매된 특별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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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ech Version 40th ANNIVERSARY - 스카이라인 탄생 40 주년을 기념하여 1997 년 10 월에 개최된 제 32 회 도쿄 모터쇼에서 전시 후 주문 생산 차량으로 판매되었다. 1998년 1월에 정식 출시 되었으며, 가격은 498만 5000엔. 차량형식은 "BCNR33改" 이 차량은 카나가와현 경찰과 사이타마현 경찰이 각각 2대씩 도입하였다.총 생산대수는 442 대.
- NISMO 400R - 400R 이라는 이름은 차량 최고출력인 400마력에서 유래. 당시 판매가격은 1200만엔. 99대 한정판매 예정이었지만 실제로는 55대를 판매하였다.
- NISMO GT-R LM - 1995년 닛산이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 참가를 위해 제작한, 단 한대만 존재하는 그룹 GT1 호몰로게이션 차량. 당시 ACO 규정에 따라 반드시 한 대 이상의 시판차량을 등록해야 했기 때문에 한 대만 제작하여 영국에서 등록하였다. 당시 르망24시간 내구레이스 규정에 '동일 차종에 4도어 모델이 있으면 안된다'는 규정을 지키기 위해 '스카이라인' 이라는 이름은 빠져있으며 역시 레귤레이션상의 문제로 4륜구동이 아닌[32] FR 구동계를 탑재했다.
2.5. Skyline GT-R(BNR34)
1999년 1월 출시. R33에 비해 약간 차체가 컴팩트해지고 휠베이스가 줄었다. 엔진은 큰 변화가 없지만 컴팩트해진 차체로 더 나은 기동성을 얻었고, 당시 양산차로서는 드물게도 차바닥을 완전히 덮는 언더커버와 디퓨저를 탑재해 상당한 다운포스를 얻어내는 진보된 공력성능을 지녔다. 전통의 강점인 강력한 차체강성과 첨단 4WD 구동계 등도 여전히 막강한 성능을 발휘했지만, 2002년을 끝으로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시키지 못해 생산종료되었다.[34] 이후 닛산 GT-R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人に翼を'''
사람에게 날개를[33]
R32와 마찬가지로 완간 미드나이트와 이니셜D에서 동시 출연한다. 영화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는 일본제 튜너 차를 선호하는 브라이언 오코너의 단골 차량으로 나오는데, 2편과 4편에 R34가 나오고 5편의 거대한 도둑질 성공 후 닛산 GT-R로 바꾼다.[35] 폴 워커가 사망한 후 4편에서 촬영용으로 썼던 34모델 중 하나가 경매에서 10억원 상당의 가격에 낙찰된 적이 있다. R34 GT-R의 경우 일본에서 중고가가 상당히 높다.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은모델도 기본 700만엔 정도하며 2002년 최후기형 V스펙 뉘르같은경우는 1,500만엔까지 호가한다... 비슷한 연식의 RX-7이나 수프라보다 2~3배 가량 높은편.[36]
여담이지만, 2000년 8월에 등장한 V SPEC II 이후로는 생산 공장이 도치기현으로 변경되었다.
- GF-BNR34 Skyline GT-R (RB26DETT 2,600cc 트윈터보, 276hp, ATTESA E-TS Pro)
- GT-R V-spec - 일반 모델의 에어로 파츠를 개량하고, ATTESA E-TS의 세팅을 일반 GT-R 모델과 다르게 함. 일반 모델에 비해 츠쿠바 서킷에서 약 1초 정도 빨랐다. 총 1,308 대가 제작되었다.
- GT-R V-spec II - 2000년의 마이너 체인지 때 V-spec을 대신해 등장. 탄소섬유 본네트를 비롯, NACA 덕트 장비(터보 냉각용)와 에어로 파츠를 개량한 사양.[39]
- GT-R N1 - 엔진밸런싱을 한 레이스를 위한 베이스카 모델로, 총 45대만 제작되었다. 에어컨을 비롯한 편의장비가 없다.
- GT-R M-spec - 가죽시트를 비롯한 각종 편의장비를 장착한 버젼. V-spec II와 정 반대(GT 성향)의 세팅.
- GT-R V-spec II Nür - V-Spec II 를 기초로 N1사양을 적용. 총 750대가 제작되었다.
- GT-R M-spec Nür - M-Spec을 기초로 N1사양 적용. 총 250대가 제작되었다.
- GT-R NISMO R-tune
- GT-R NISMO Z-tune
Z-tune은 닛산의 워크스 튜너이자 모터스포츠 컨스트럭터인 니스모의 축척된 기술과 노하우를 전부 투입하여 '세계 최강의 로드고잉 차량' 'TOP of GT-R' 을 목표로 제작한 컴플리트카다. 컨셉은 2000년에 발표하였으며, 2003년에 뉘르부르크링에서의 테스트를 거쳐 니스모 창립 20주년인 2005년 발매. 총 20대를 만들기로 예정된 프로젝트였지만 실제로 판매된 모델은 19대. 니스모에서 엄선한 무사고, 일정주행거리 이하[40] 의 상태좋은 중고차로 제작. 가격은 1,774.5만엔. 또한 일반 GT-R을 Z-tune으로 튜닝도 가능하며 이 때의 제작가격은 1,312.5만엔.
참고로 생산이 19대에서 그친 이유는, 선발 기준에 맞는 20번째 차량을 구할 수 없어서 '''프로젝트 자체를 19대에서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기준에 미달된 결격 사유로 인한 트러블 때문에 '최후의 스카이라인 GT-R 컴플릿 튜닝카'라는 Z-TUNE의 의미 자체가 퇴색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Z-TUNE에 대한 NISMO의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
[image]
최강의 GT-R이란 이름에 걸맞게 엔진은 RB26DETT를 기반으로 2,800cc까지 배기량을 늘린 RB26DETT改Z2 사양의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최대출력은 500마력이상, 토크는 55kgm을 넘어선다. 뿐만 아니라 원하는 내구력을 달성하기 위해 각 부품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가공하고 제작하였으며 JGTC GT500에 출전한 스카이라인의 부품들[41] 을 차용하기까지 하였다. RB26DETT改Z2 엔진에는 20개 모두 일련번호가 있으며, 니스모의 데이터 수집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3. 경쟁 차량
(BNR32) (1989~1995)
- 혼다 - NSX NA1(1990~2001)
- 마쓰다 - RX-7 FC3S(1985~1991) >> RX-7 FD3S(1991~2002)
- 미쓰비시 자동차 - GTO(Z16A, Z15A, Z15AM)
- 스바루 - 알시오네 SVX
- 포르쉐 - 911 964(1989~1993) >> 911 993(1993~1997)
- 토요타 - 수프라 JZA70(1986~1993) >> 수프라 JZA80(1993~2002)
- 혼다 - NSX NA1(1990~2001)
- 마쓰다 - RX-7 FD3S(1991~2002)
- 미쓰비시 자동차 - GTO(Z16A, Z15A, Z15AM)
- 스바루 - 알시오네 SVX
- 토요타 - 수프라 JZA80(1993~2002)
- 포르쉐 - 911 993(1993~1997)>>911 996(1997~2004)
- 혼다 - NSX NA1(1990~2001) >> NSX NA2(2001~2005)
- 마쓰다 - RX-7 FD3S(1991~2002)
- 미쓰비시 자동차 - GTO(Z16A, Z15A, Z15AM)
- 스바루 - 알시오네 SVX
- 토요타 - 수프라 JZA80(1993~2002)
- 포르쉐 - 911 996(1997~2004)
4. 둘러보기
[1] 스카이라인의 차체에 한 급 위 대형차이던 프린스 글로리아의 직렬 6기통 2리터 엔진을 때려박은 고성능 버전으로, 도저히 4기통용으로 설계된 스카이라인의 엔진룸에 6기통 엔진을 넣을 방법이 없자 아예 앞 차체(와 휠베이스)를 20cm 늘려 어거지로 탑재시켰다. 1964년 후지 일본 그랑프리 경기에 참여한 본격 레이싱카인 포르쉐 904를 잠시나마 앞선 것으로 스카이라인 전설의 시작을 알렸으나, 여기엔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당시 드라이버였던 테츠 이쿠자와의 회고에 따르면, 친구였던 904의 드라이버에게 한 바퀴 앞서게 해달라고 하였고, 성능이 훨씬 좋은 포르쉐 드라이버의 승낙으로 인해 프린스가 앞서 나가는 광경에 관중들이 열광하게 된 것이다. '''즉, GT-R의 시작은 어찌보면 승부조작이었던 셈이다.''' 애초에 스카이라인은 일반 세단을 개조한 반면 포르쉐 904는 전용 설계를 갖춘 제대로 된 프로토타입 레이싱카였으니, 대등한 승부는 불가능한 것이었다.[2] 기껏해야 1.5-2L의 엔진에 160-200 마력을 넘나드는 당시 스포츠카와는 달리 혼자서 2.6L 씩이나 얹고 터보도 두개나 장착되어있으며 순정마력이 280부터 시작하고, 아테사의 도입으로 어느 속도에서든 영리하게 굴러가니 성능이 정말 압도적이었다. 당시 차량 중 붙어볼 수 있는 차라고는 스바루 임프레자나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정도. 그마저도 둘다 배기량에서 차이가 심해서, 정말로 같은 체급, 같은 성능으로 붙을 수 있는건 슈퍼카 취급인 혼다 NSX 였다.[3] 1998년 중단[4] 1995년 중단[5] 해외에서 차주들이 DIY해서 좌핸들로 마개조한 사례가 있으나, 대부분 핸들 밸런스가 무너진다고 한다. 하지만 대시보드의 규정이 있는 국가들은 어쩔수가 없다.[6] 비단 스카이라인 GT-R 말고도 미국에선 이 자동차법 때문에 이름을 날린 스포츠카임에도 수입이 거부된 차들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아우디 RS2 아반트, 스바루 임프레자 1세대(1995년부터 북미수출),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 포르쉐 911 964가 있다.[7] 반면에 바로 윗 동네인 캐나다는 규정이 15년 정도로 널럴해서 일본 중고차를 직수입을 해서 타고다니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물론 미국에서도 어떻게든 규정을 뚫고 수입해서 타고다니는 사람도 극소수 있었다. R33 항목의 폴 워커 각주 참고.[8] 이때문에 센트라는 SE-R V-Spec이 아닌 Spec V로 팔렸다.[9] R100이란 이름으로 수출되었던 파밀리아 로터리 쿠페의 도전은 이겨냈지만 1971년 12월 12일, 일본 후지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후지 투어리스트 트로피 레이스에서 갓 출시된 사바나가 하코스카 GT-R을 잡으면서 승기를 챙긴다. 이때 마쯔다는 RX-2라는 명칭으로 수출되던 카펠라 로터리 쿠페도 동원했었으나 카펠라 로터리 쿠페로서는 경쟁력이 떨어짐을 알아차린다.[10] 지금은 폐쇄되어서 사라진 무사시무라야마 공장에서 만들어졌다.[11] 차량 자체의 무게에 연료, 윤활유, 냉각액, 적재 장비를 포함한 무게[12] 이 배기량은 당시 그룹 A 규정상 터보 엔진의 배기량은 원래 배기량의 1.7배로 계산했기 때문에 책정된 것이다. 닛산자동차는 원래 4,000cc 클래스에 참여하고자 2.4L 엔진을 만들려고 했지만, 4WD 등을 얹은 차를 만들어보니 생각보다 무거워져 4,500cc 클래스에 참가하기로 하고 2.6L 엔진을 얹기로 결정했다. 페라리 288 GTO의 엔진 배기량이 정해진 것과 비슷한 이유.[13] 이후 GT-R의 상징과도 다름없는 시스템이 된다. 최신작인 GT-R R35도 장착하고 있는 시스템.[14] 스티어링 휠을 틀면 후륜도 작은 각도로 돌려서 차가 틀어졌을때 원점으로 복귀시키는 것을 도와주는 시스템. 이러한 구동계의 최신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닛산은 포르쉐 959를 사서 뜯어보았다고 한다. 단 HICAS는 기술적인 복잡함 때문에 잔고장이 많아서 사후적으로 빼는 오너들이 많았다고.[15] 외장은 실비아로 위장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한 번 달려보고 점심 후에 끝낼 생각이었으나, 이 프로토타입은 뉘르부르크링의 수많은 블라인드 코너와 가혹한 주행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과열에 시달리다 결국 엔진 블로우를 겪는다. 심지어 구형 폭스바겐 비틀이 추월해갔다고도 한다. 테스트 드라이버는 공포에 떨었고... 이 충격 끝에 닛산 개발진은 생각을 고치고 전면적으로 뉘르에서 버틸 수 있는 차를 만들기 위해 시제품을 완전히 뜯어고치면서 강도높은 시험에 들어갔다. 그래도 뉘르 공략을 통해 닛산자동차는 많은 노하우를 얻어갔고, R34를 개발할 때 즈음이 되면 닛산 개발진도 뉘르부르그링 죽돌이들(...)로 인정받아, 동시기에 개발되던 E39 BMW M5의 개발진과 교분도 쌓고 성능에서의 라이벌리를 형성하기도 하고 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고 한다.[16] 페어레이디 Z Z32가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는데 당시 일본 운수성에서 당시 일본산 양산차들의 출력이 급격히 너무 강해지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고 한다. 이후 20여년 가까이 일본 메이커들은 자율적으로 280마력의 마력규제를 시행하게 된다.[17] 실제로 당시 닛산은 사내의 개발 프로젝트였던 '901 운동'의 산물들인 페어레이디 Z Z32, 스카이라인 GT-R R32, 인피니티 Q45를 300마력 트리오로 마케팅해나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901 운동'은 '90년대 세계 제일의 운동성능을 지닌 섀시를 만들자'는 목표로 80년대 중후반 닛산 사내에서 진행되던 기획으로 알려져있고, 위의 '300마력 트리오' 외에도 GTi-R 모델이 그룹A WRC 무대에서 활약한 4세대 닛산 펄사, 유렵형 준중형 세단 1세대 닛산 프리메라 등이 901 운동의 산물로 거론된다. 프리메라도 유럽 시장에서 스포티한 핸들링으로 호평받았고 그룹 A 투어링카 무대가 폐지된 뒤에는 그 후속의 투어링카 규격이라 할 수 있는 2리터 슈퍼투어링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어떤 의미로는 프리메라가 GT-R의 레이싱카로서의 바통을 이어받은 셈.[18] 60:40. 후대의 R33과 34는 55:45 정도로 맞추는 데 성공했다.[19] 나카자토 타케시가 줄곧 말하는 '불패신화의 R'도 직접적으로는 이 29연승 0패 기록을 말하는 것이다. [20] 윈필드의 스폰서를 받은 깁슨 모터스포츠 팀이 R32를 채택하여 짐 리처즈와 마크 스카이프 드라이버 듀오와 함께 1990~1992 시리즈 쓰리핏과 1991, 1992 백투백 배서스트 1000 승리를 달성했다. 다만 갑툭튀한 일제 슈퍼 머신이 BMW는 물론 호주인들이 사랑하기 그지없는 자국산 포드와 홀덴도 말 그대로 씹어먹어서 대부분의 팬들에게는 매우 인기가 없었다고 한다. 프로레슬링의 악역 레슬러같은 대우를 받았다고.[21] 1990년 그룹 N/클래스 5로 참가하여 종합 11위, 클래스 우승. 1991년에는 그룹 A/디비전 3로 참가하며 종합 우승.[22] F1 엔진으로 유명한 영국의 컨스트럭터 코스워스가 개발에 참여했다.[23] 이후 FIA에서 인증하는 모든 온로드 서킷 레이싱 클래스는 4륜구동 금지를 필수적으로 달아놓는다. 90년대에는 그래도 DTM이나 JGTC에서 4륜구동 GT카를 볼 수 있었지만 비용이나 전력균형 문제로 역시 사라진다. 현재는 뉘르부르크링 24시간 이나 일본 내수 슈퍼 다이큐와 같은 내구 레이싱의 몇몇 카테고리들에서 4륜구동차들이 서킷을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24] 현재의 Super GT의 전신. 초창기에는 아예 그룹 A 폐지로 갈 곳이 없어진 그룹 A R32들을 가져다가 에어로파츠를 더 다는 등 규정상의 소소한 개조만 거쳐서 GT500 클래스에 참전했을 정도였다.[25] 유럽산 투어링카는 2019년이 되어서야 TCR 오스트레일리아 출범과 함께 다시 발을 들였다.[26] 차량 자체의 무게에 연료, 윤활유, 냉각액, 적재 장비를 포함한 무게[27] 본래는 쿠페의 휠베이스를 세단보다 짧게 만들려고 했으나, 비용절감을 이유로 세단과 동일한 휠베이스를 사용하게 된다. 후술할 조종성 문제의 근원이 되는 이유.[28] 1등인 (순정 상태라며 제공했던) 사측 제공 V-spec과 꼴등인 츠치야 마이카인 V-spec 사이의 츠쿠바 서킷 라인 공략 자체가 완전히 다른 패턴으로 전개된다. 이는 서스펜션과 브레이크에 손을 댔기 때문인데, 특히 (역시나 순정 상태라며 제공했던) 노멀 GT-R마저 2등을 먹었다는 부분을 감안하면 완벽한 사기 레벨.[29] '마이너스 21초의 로망'이라는 광고 카피를 내걸기도 했다. 2018년인 지금도 300마력대 출력으로 8분의 벽을 뚫는 양산차는 그리 많지 않은데, 그걸 타이어나 차체제어, 공기역학 등의 기술도 지금과 많은 격차가 있던 1995년에 해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다만 전술한 조종특성의 차이도 있고 '최신의 GT-R이 최강의 GT-R'이란 점을 대대적으로 어필한 닛산의 마케팅, 그리고 위에 쓴 홍보모델 사기(...)도 있고 해서 일부 R32와 R33 애호가들의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다고 한다.[30] R33이 생산되던 당시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R34도 단종을 맞아가던 2002~5년 경에 수입된 것이다. 캘리포니아에 있던 모터렉스(Motorex)라는 야심찬 중고차 수입업체가 미국의 환경과 안전규제에 맞는 개조는 물론 충돌실험(!)까지 해가며 R33 GT-R의 미국 정식수입 허가를 얻었지만, 이 허가를 가지고 R32/R34도 편법으로 수입하던 것이 걸리고 업주의 조직폭력배 연루설마저 도는 등 온갖 잡음에 시달린 끝에 2005년 말에 허가가 박탈되었다. 닛산 GT-R 정식수입 이전까지 미국에 '합법적으로' 수입된 스카이라인 GT-R은 대부분 이 경로를 통해 들어온 것. 미국 자동차잡지 기사 스캔을 읽어보자.[31] 실제로 그의 차는 분노의 질주 1편에서 레온(조니 스트롱)의 차로 등장했다.[32] 이 4륜구동 금지 조항은 2020년 현재도 유효하다.[33] 광고의 마지막 장면에 쓰이는 문구이다.[34] 같은 이유로 토요타 수프라, 마쯔다 RX-7, 닛산 실비아 등 유수의 일제 스포츠카들이 단종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35] 다만 이 때 실제 레이싱에 썼던 건 FR 모델인 25GT-T 사양의 ER34이고, 레이싱 장면이 아닌 경우에만 BNR34를 사용했다.[36] RX-7의 경우 로터리 엔진 특성상 감가가 심하다.[37] 중기형까지는 무사시무라야마, 공장 폐쇄로 인해 후기형부터 도치기현으로 이동.[38] 차량 자체의, 무게에 연료, 윤활유, 냉각액, 적재 장비를 포함한 무게[39] 제작 대수는 5,512대로, BNR34, 그러니까 GT-R(R34)의 모든 버전 중 가장 많이 제작 된 버전이기도 하다. 일반 GT-R(R34)는 3,965대가 제작되었다.[40] 29,000km(18,000miles)라고 한다. (위키피디아 출처)[41] 사실 GT500에 참전하는 스카이라인은 2002년 시즌 제3라운드부터 자나비 니스모팀이 RB엔진이 아닌 V6 3리터 VQ30DETT 엔진을 탑재하기 시작, 5라운드부터 전 팀의 차량이 V6 엔진을 사용했다. RB엔진의 우수한 내구성과 신뢰성에도 불구하고 주철 블록의 무게, 직렬 배치의 길이로 인한 무게배분상 단점이 레이싱카로서의 경쟁력을 저하한다고 본 것. 알루미늄 블록의 V6인 VQ 엔진은 가벼운 무게에 보다 낮고 차 전체의 무게중심에 가까운 곳에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후 닛산은 RB를 끝으로 승용 직렬 6기통 엔진을 만들지 않고, 이후의 닛산 GT-R에도 V6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