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쇼크

 

1. 개요
2. 전개
3. 다른 나라의 오만 쇼크
3.1. 중국도 당했다
3.2. 호주도 당했다
3.3. 이란도 당했다
3.4. 쿠웨이트도 당했다
3.5. 과연 우연인가?
3.6. 오만도 당했다(…)
4. 다른 나라의 쇼크
5. 오만과의 재회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개요


대한민국 축구흑역사 중 하나로 2003년 10월에 2004 아시안컵 2차 예선을 위해 오만 원정 경기에서 겪은 충격적인 패배를 가리킨다.
물론 이전에도 쇼크라고 불릴 만한 사건이 있긴 했다. 참조. 1996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해당 대회 8강전에서 이란에 2-6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리고 2000년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은 레바논 대회에서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에게 패배했다. 이를 한데 묶어 '''중동 쇼크'''라고 하기도 하는 모양.

2. 전개


  • 시작: 베트남 쇼크
당시 뉴스.
당시 3연승[1]으로 사기가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충천해있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오만 원정으로 조 1위를 확정짓겠다는 마음으로 출국했다가 원정 첫번째 경기인 베트남전에서 '''슈팅을 16개나 날리고도 한 골도 넣지 못하고 오히려 베트남의 역습 한번에 무너지면서 0:1로 패'''해, 1959년 메르데카컵 이후 '''44년 만의 패배'''라는 굴욕적 결과를 초래했다. 이걸 '''"베트남 쇼크"'''라고 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이쪽이 더 쇼킹하다. 당시 탈락 위기의 베트남은 아시안컵은 포기하고 11월말에 시작될 동남아시아게임을 대비해 23세 이하 선수단을 출전시켰다. 베트남은 이 경기에서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23세 이하+와일드카드 3명으로 출전했다.
  • 정점: 오만 쇼크
당시뉴스
하지만 이 패배도 나락의 끝은 아니었으니...
이어진 오만전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선제골을 넣고도 급격히 무너지면서 3:1 역전패를 당했다'''. 이 경기에서 경기 내내 선방을 보여준 오만알리 알 합시 골키퍼는 이후 노르웨이 리그를 거쳐 프리미어리그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했다.
이 패배로 인해 당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던 움베르투 코엘류경질 위기까지 갔다. 또, 선수들도 패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치욕의 2연패는 월드컵 4강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렸으며, 기자들은 이 사태를 1973~1974년, 1978~1980년 2차례에 걸쳐 전세계를 강타한 '''오일 쇼크'''에 빗대어 이 표현이 만들어냈다. 더군다나 2002년 프랑스의 희대의 개그가 준 비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03년에 벌어진 참사라 굉장한 멘붕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그 여파는 마지막 네팔과의 경기까지는 지속되진 않았다. 사실 네팔의 전력이 바닥 오브 바닥이었던지라 만약 그 때 네팔을 상대로도 역전패를 했다면...
2004년 2월 14일,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오만 국가대표팀을 울산문수축구경기장으로 불러들여 '''5:0'''으로 대파, 전년도의 치욕을 설욕했다.
당시뉴스
그러나 2004년 3월, '''대한민국은 최약체 몰디브와의 축구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찍었다. 결국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은 3단 쇼크 크리로 2004년 4월, 전격 해임되었다.''' 원체 전력이 너무 약했던 몰디브로서는 대한민국전 무승부를 아주 큰 이변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참고로 몰디브가 이리도 약체인 것은 국제 축구계에 1990년대부터 나섰기 때문이다. 2002 월드컵 예선당시 중국은 몰디브 원정에서 1:0으로 신승했다고 무진장 욕처먹었고 안방에선 심기일전하여 10:1로 크게 이겼음에도 1골 먹었다고 욕먹었을 정도다.
몰디브 역시 오만 때와 같이 그날이 국가 휴일이 되었다고도 한다. 물론 그 뒤에 한국이 베트남에 2회 연속 승리를 거두면서 몰디브 쇼크를 털어내고 있던 반면, 몰디브는 레바논한테 2번 연속으로 개 털리는 바람에 한국전 무승부 이변은 조루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3. 다른 나라의 오만 쇼크


비단 한국에게만 오만 쇼크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3.1. 중국도 당했다


오만 쇼크 이후 8년 후, 2012 런던 올림픽/축구(남자)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도 오만 쇼크가 터졌다. 오만이 2차 예선에서 자신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던 중국을 꺾어버린 것. 중국이 홈인 1차전에선 오만의 1:0 승리로 중국이 탈락 위기에 몰리는 양상이 되었다. 오만이 홈인 2차전에선 후반 24분 중국에서 선제골이 터져 최종예선 진출의 희망을 살렸고, 후반 추가시간에 추가득점을 올려 중국의 최종예선 진출이 확정되는 줄 알았더니 오프사이드로 판정나면서 득점 인정이 안 됐다.[2] 그래서 중국이 이기긴 이겼는데 그냥 1:0 승리로 90분 종료되고, 그 결과 1:1로 원정 득점에서도 동률을 이루어 연장전에 돌입, 연장 30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냐면, 오만의 동점골이 터졌다. 중국의 선제골이 희망고문화되는 순간...그래도 여기서 중국이 1골만 더 넣는다면 승부차기로 갈 수 있지만..., 오히려 오만이 2골을 더 몰아쳐 중국은 완전히 새 되고 말았다. 게다가 오만의 3번째 골이 터진 시점이 연장 후반 13분. 중국으로서는 최소한 2분 안에 3골을 넣어야 했다. 하지만 오만 수비진이 삽질하지 않는 이상 중국이 이렇게 촉박한 시간에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리 없잖아? 더군다나 오만 입장에선 승리를 굳힌 상황이니 침대축구 같은 걸 시전하나? 결국 오만의 짜릿한 3:1 역전승. 합계 4:1로 오만의 최종예선 진출로 낙착되었다. 대륙축구 망했어요!
8년 전 한국은 안방에선 오만을 깼지만 여기서의 중국은 안방에서도 오만한테 깨졌다. 그리고 8년 전 한국은 그래도 본선에 갔지만 여기서의 중국은...눈물 좀 닦고. 그리고 그 오만을 한국이 최종예선에서 격파하고 그 한국과 일본이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나란히 4강에 올라가자 중국 축구팬들은 다시 한번 오만 쇼크를 되새기며 시샘해야 했다.

3.2. 호주도 당했다


2011년 11월 11일, 한국이 UAE2014 브라질 월드컵 3차예선을 치르고 있을 때, 오만과 원정경기를 가진 호주는 전반 18분에 아마드 알 호스니에 불의의 일격을 맞고 결국 0:1로 패했다. 이 경기로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하려던 호주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겼고, 오만은 최종예선 진출에의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오만은 3차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을 상대로 2:0 승리, 마침 호주에 3분새 3실점을 허용하며 무너진 사우디아라비아를 따돌리고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3.3. 이란도 당했다


이란도 당했다. # '''그것도 한국과 똑같이 오만에서 3:1(...)''' 2013년 5월 23일 오만과의 원정 평가전에서 후반 15분까지 내리 3골을 내주고 종료 직전 프리킥 골을 넣었지만 결국 3:1로 져서 그로부터 '''꼭 10년 전 한국과 똑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다.''' 이란은 AFC 챔피언스리그 16강에 진출한 에스테그랄 선수들이 이번 경기에 뛰지 못했고 주포인 칼라트바리나 테이모리안 등이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차출되지 않았으며 알리 카리미은퇴하는 등 노장 선수들의 노쇠하가 또렷해 이에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주축 선수들이 대거 뺀 채 젊은 선수들 중심으로 선수단을 꾸렸지만 힘을 쓰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3.4. 쿠웨이트도 당했다


비록 아랍 지역 축구 대회이지만 걸프컵은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아랍 최강 자존심이 걸린 대회라서 아시안컵 이상의 어마어마한 인지도인기를 자랑하는 대회이다. 이 걸프컵 최다 우승 10번을 거둔 쿠웨이트가 2014년 11월 20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걸프컵 조예선에서 오만에게 '''0:5''' 참패를 당했다. 이는 쿠웨이트 역사상 걸프컵 최다 실점패인 굴욕이다.
B조에 속한 쿠웨이트는 1차예선에서 역사적으로 원수지간인 이라크를 1-0으로 이기며 4년만의 대회 우승으로 가는 듯 했으나 2차예선에서는 과거 걸프컵에서 6-0으로도 이겨본 적(1974년 쿠웨이트 대회)도 있던 아랍에미리트와 2-2로 비겨버렸다. 그래도 마지막 3차 예선에서 오만을 이기거나 최소 비기면 4강전에 올라갈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웬걸, 전반 종료 직전 2골을 헌납하고 후반들어 2실점.그리고 막판 90분 넘어서 5실점을 기록하며 허무하게 탈락했다.
참고로 오만은 1976년 3월 29일 카타르에서 열린 걸프컵에서 쿠웨이트에게 무려 0:8 대참패를 당했는데 이게 걸프컵 역대 최다 실점패 기록이다. 그렇게 70년대 걸프컵에서 꼴찌를 도맡던 오만이었지만 90년대에서는 조금 중위권으로 올라왔며 발전했으나 1998년 11월 9일 바레인 걸프컵 대회에서 또 쿠웨이트에게 0-5로 참패했다. 그리고 16년만에 쿠웨이트를 상대로 5-0으로 설욕했다. 2009년 오만은 자국에서 열린 걸프컵에서 처음으로 우승도 했지만 조예선에서는 쿠웨이트랑 무재배를 기록했다. 여하튼 쿠웨이트로서는 난리법석인 굴욕이자 오만 쇼크.
더불어 오만은 2009년 자국대회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거둔 4-0 승리 이후로 걸프컵 최다 골득승 기록을 갱신했다.


3.5. 과연 우연인가?


대한민국의 경우와는 달리, 위에 언급한 다른 나라의 오만 쇼크는 모두 시기적으로 '''2011년 이후''' 나타났음을 주목해야 한다. 즉 '''아시아 축구의 평준화''' 현상이 조금씩 성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상대가 오만이 아니어서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 시기 일본 대표팀도 좋은 꼴은 못봤다. 호주와 같은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 일본은 3승 1무 2패 '''조2위'''의 성적으로 진출한다. 이때 조1위 팀이 바로 우즈베키스탄. 5승 1무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했다.
일본이 기록한 2패가 북한과 우즈베키스탄전이란 것도 놀라운데, 평양 원정에서 패한 것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 홈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패한 것은 쇼크일 수밖에 없다.
즉 아시아 3차 예선에 올라온 팀이라면 적어도 '''홈에서 준비만 잘하면''' 대한민국 이란 일본 호주는 한 번쯤 때려잡을만한 실력을 갖춘 것이다.

3.6. 오만도 당했다(…)



오만 역시 이변의 희생양이 되었는데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투르크메니스탄에 일격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 패배로 조 1위 자리를 차지한 이란과의 승점 차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더나아가 오만은 이보다 앞서 최약체인 하고도 득점없이 비긴 적이 있다. 아무튼 이 패배로 당시 감독이었던 폴 르갱해고당했다.
결국 오만은 조 2위를 했지만, 승점이 낮아 최종예선 진출이 무산되었다.

4. 다른 나라의 쇼크


  • 사우디아라비아 : 사우디아라비아2002년 월드컵에서 독일에게 0:8로 쳐발린 것을 시작으로 해서 카메룬아일랜드에게 각각 0:1과 0:3으로 쳐발리며 3전 전패에 무득점 12실점으로 광탈하는 수모를 당했다. 나아가 32개국 중 꼴찌라는 창피한 순위였다. 하지만 이건 다음에 나올 투르크메니스탄쇼크에 비하면 장난이었다. '스탄'으로 끝나는 두 나라에 직격탄을 맞고 '크'로 끝나는 나라에 결정타를 맞고 떡실신당한 것이다.
2004 AFC 아시안컵 중국 당시 사우디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등과 한 조가 되었다. 비록 대회 전부터 일부 주전들이 부상을 당하며 제대로 된 팀을 꾸리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지만, 그래도 누가 봐도 강력 우승 후보들 중 하나인 사우디가 1라운드 정도는 거뜬히 통과하리라 예상되었다. 하기야 1시드였으니... 그러나... 사우디는 첫 출전한 약체 투르크멘에게 선제골을 내 주더니 동점골과 역전골을 성공시켜서 다 이겨 놓고 경기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해 2:2로 무승부. 처음에는 그냥 투르크멘이 단순히 돌풍을 일으키려는 조짐인 것 같아 보였는데, 그 다음 경기에서 우즈벡한테 0:1로 덜미를 잡혔다(!). 순식간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사우디... 자력 진출은 완전 불가능해져서 바레인 쇼크 직후의 대한민국 마냥 경우의 수 드립을 쳐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버렸다. 이라크를 상대로는 최소한 이겨야만 우즈벡과 투르크멘의 경기 결과를 보고 8강에 갈 지 말 지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사우디는 이 마지막 경기마저도 이라크에 이기기는 커녕 1:2로 지면서 바로 광탈했다.
최종 결과는 1무 2패. 그리고 투르크멘과 다득점에서도 밀렸다.

승점
경기





득실차
'''우즈벡'''
'''9'''
3
3
0
0
3
0
+3
'''이라크'''
'''6'''
3
2
0
1
5
4
+1
투르크멘
'''1'''
3
0
1
2
4
6
−2
사우디
'''1'''
3
0
1
2
3
5
−2
이 이후 사우디는 심기일전하여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지만, 그럼에도 사우디 축구는 이 쇼크를 기점으로 점점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대한민국/북한 등에 밀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대회에서는 꿀조였음에도 불구하고 3전 전패 1득점 8실점,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0:5라는 희대의 스코어로 대패를 하는 등의 굴욕적인 기록들을 세우며 광탈했다. 자세한 사항은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를 참고하기 바란다.
  • 프랑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 이쪽은 오리지널 오만 쇼크보다도 1년이나 앞선 2002년에 당했다. 2002년 월드컵의 개막전을 봤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세네갈 쇼크. 당시 프랑스는 1998년 월드컵유로 2000, 그리고 2001년 컨페더레이션스컵 이렇게 3대회를 석권한 킹왕짱이었는데, 개막전 징크스의 희생양이 될 줄이야... 프랑스 대표팀은 개막전 상대인 세네갈을 맞아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으나 번번이 실패하였고, 급기야 전반 30분에 터진 부바 디우프의 결승골 한방에 0:1로 패했다. 프랑스 대표팀의 팬들은 침통함을 금하지 못했고, 세네갈을 비롯한 아프리카 전역에서는 광란의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리고 프랑스 대표팀은 세네갈 쇼크의 여파가 계속 지속되었는지 우루과이와 0:0 무승부, 덴마크에 0:2 패배로 1무 2패에 무득점 3실점이라는 굴욕적인 성적표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3] 다음 대회인 2006년에는 조별리그에서 부진하다가 토너먼트에서 스페인, 브라질 등을 차례대로 잡고 호날두가 버틴 포르투갈까지 내치며 결승에 올랐으나, 결승 상대이던 이탈리아는 이기지 못하면서 준우승을 거두면서 화려하게 부활하는가 싶었지만, 2010년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개막장팀의 모습을 보이며 남아공 쇼크라는 더한 흑역사를 또 남겼다.
그러나... 스페인은 비교적 만만하게 여겼던 일본한테 전반 33분 코너킥 상황에서 오츠 유키에게 의외의 일격을 얻어맞은 데다가 몇분 뒤 하비 마르티네스가 퇴장당해 10명이 경기하는 안습한 상황을 보여준 끝에 0:1 통한의 패배를 당하고 만다. 뭐 처음에는 그냥 일본이 단순히 돌풍을 일으키려는 조짐인 것 같아 보였는데... 스페인 입장에서는 거의 최고 쓰레기로나 여겼던 온두라스에게도 전반 7분 실점하면서 결국 0:1로 충격패를 당면서 2연패로 광탈]이 확정되었다. 마지막 3차전에서 그나마 1승이라도 뽑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1무 1패의 모로코와 0:0 무재배를 하며 마무리도 영 좋지 않게 끝났다.
최종 결과는 1무 2패. 그것도 무득점. 결국 D조 최하위로 밀려 졸지에 가봉 한테 진 모로코와 대한민국이 4:0으로 떡실신시킨 온두라스만도 못한(!) 한심한 팀이 되고 말았다.

승점
경기





득실차
'''일본'''
'''7'''
3
2
1
0
2
0
+2
온두라스
'''5'''
3
1
2
0
3
2
+1
모로코
'''2'''
3
0
2
1
2
3
−1
스페인
'''1'''
3
0
1
2
0
2
−2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2년 후인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는 네덜란드, 칠레, 호주 등과 함께 B조에 배치되었다. 네덜란드만 잘 넘기면 남은 칠레, 호주 따위는 제물이라 생각하고 16강 진출은 이미 따 놓은 당상이었다.실제로 조편성 직후 대부분 16강 진출 국가로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꼽았었다. 거기다 월드컵 시작 전 스페인은 디에고 코스타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를 귀화시켰고, 노쇠화에 대한 약간의 우려도 있었지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라고 여전히 세계 최고의 미드필드를 지닌 우승후보로 평가받고 있었다.
하지만... 첫 상대 네덜란드를 상대로 무려 '''5-1'''이라는 희대의 스코어로 학살을 당하고, 이후 칠레에게 0-2로 연달아 무너지면서 월드컵 디펜딩 챔피언 징크스를 극복하지 못했다. 게다가 스페인은 '''역대 디펜딩 챔피언 최다실점 패배와, 대회에서 1순위로 탈락 확정'''이라는 굴욕까지 겪었다.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국의 체면이 완전히 구겨지는 결과였다. 이후 탈락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른 마지막 경기이자 같이 탈락이 확정된 호주와의 대결에서 레전드 다비드 비야의 국대 은퇴전 마지막 출전과 함께 3-0으로 이겼으나, 간신히 체면치레만 했을 뿐이었다. 참고로 스페인이 5골 이상의 실점을 겪는 일은 약 반세기만에 다시 겪는 일. 결국 탈락의 책임을 지고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이러한 졸전으로 브라질 월드컵 후 사임한다는 추측이 있었으나, 스페인왕립축구협회는 그동안의 성과를 감안하여 유로 2016까지 스페인을 이끈다고 발표하였다. 유로와 월드컵 우승을 이룬 커리어를 감안해서 자국민들도 어느 정도 넘어갔다.

5. 오만과의 재회


아이러니하게도 그 굴욕을 안긴 오만과 한국은 2015 AFC 아시안컵 호주에서 재회했다. 조별예선 첫경기가 바로 오만과의 경기. 브라질 월드컵에서 최악의 실패를 한 한국 입장에선 오만이 객관적 전력에선 한 수 아래라 해도 불안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오만과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여 오만 쇼크가 재현되는 일은 없었다만... 이긴 게 이긴 것 같지 않다는 평. 그래도 한국이 27년만에 결승에 올라가 준우승을 거두면서 대회 자첸 성공적이긴 했다.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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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당시 인천에서 있었던 네팔과의 경기는 무려 '''16:0'''으로 이겼다. 이 기록은 대한민국 A매치 최고 점수차 기록이다.[2] 골문 앞에 2번째 골을 넣으려는 중국 선수들과 막으려는 오만 선수들이 떼로 몰려들어 애매한 상황이었다. 심판이 아마도 골 넣기 전 패스를 할 때 중국 선수 한 명이 오프사이드 위치로 넘어간 것으로 본 모양이다.[3] 이건 사실과 다르다. 월드컵 우승팀의 차기 대회 자동진출권 폐지는 이미 2001년 11월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확정된 것으로, 2002년 월드컵 본선에서 프랑스가 죽을 쑨 것과는 별개로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