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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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체육인, 정치인. 막내아들 민병환은 이명박 정부 때 국가정보원 제2차장을 역임하였다. 종교는 불교이다.
2. 생애
1918년 5월 3일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의 전신인 수원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194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42년 교토대학 농림화학과를 졸업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선 직후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사사오입 개헌에 반발하였다가 제명되었다. 이후 호헌동지회, 정우회 등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9월 민주당에 입당하여 김영삼, 박준규 등과 구파에 속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12월 구파 출신들과 민주당을 탈당하여 신민당을 창당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부터 1971년까지 대한체육회장을 지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 송원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공화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신민당 송원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부터 1974년까지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71년 6월 4일 문교부장관으로 임명된 것은 민관식이 김종필 라인인 점이 작용해서였다.[2] 당시 신임 국무총리는 김종필 민주공화당 부총재였다. 한편 문교부장관이던 1973년 4월 기생관광을 옹호한 발언을 했다는 논란이 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종로구-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정대철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초 여당 몫의 국회부의장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연말 백두진이 국회의장직을 사퇴하자 국회의장 직무대리를 역임하였다. 이후 민정당부터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상임고문을 지냈다.
대한체육회장을 비롯하여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대한축구협회 회장, 서울아시안게임 조직위원장 등을 맡아 한국 스포츠의 근대화에 이바지하였기 때문에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평가를 받는다.[3]
노태우 정부 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냈다.
3. 여담
- 생전에 테니스 덕후였다. 중고등학생 선수 대상의 소강배 테니스 대회가 2020년 현재에도 열리고 있다.
- 경기고등학교 출신인데, 이 학교에서는 매년 민관식배 마라톤 대회를 열었었고 생전의 민관식 선생이 직접 나와 개회선언(?)을 했었다. 특히 사망하기 몇년 전에는 이미 80대 후반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젊은 오빠(...)라고 호칭하는가 하면 "다른 동창생들은 다 죽었지만 나만큼은 살아있어!"라는 사자후로 까마득한 후배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었다. 물론 체육복까지 갖춰입고 함께 뛰는 모습은 덤. 사망한 후에는 대회 분위기가 다소 느슨해졌으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민관식배 걷기 대회'로 통칭될 정도.
- 농구선수 하승진의 아버지인 하동기가 현역 농구선수이던 시절 100m 달리기로 하동기를 가볍게 이겼다고 한다. 더군다나 민관식은 전문 체육인 출신도 아니고 문돌이 출신 행정가였던 데다 이때 50대였음에도...물론 하동기가 키만 컸지 운동선수로써는 모든면에서 낙제점인게 컸긴 하다.
- 경기고등학교 졸업기수는 33회이나, 32회로 입학했다가 일제 시대 때 독립운동으로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졸업이 늦어졌다.
4. 둘러보기
5. 소속 정당
[1] 백두진의 국회의장 사퇴로 인해 국회의장 권한대행 수행 (1979년 12월 18일 ~ 1980년 10월 27일)[2] 다만 민관식은 김종필계였지만 과거 백남억, 박준규 등과 민주당 구파였던지라 4인방과도 나름 친분이 있었다.[3] 말년에 중앙일보에 회고록을 연재했는데, 체육에 관심이 많았고 지원도 해준 전두환은 호평일색이나 상대적으로 체육계에 관심도 적고 지원도 미비했던 노태우는 슬몃 깠다. 사족으로 이 회고록 연재를 끝마치고 몇달 후 세상을 떠났다.[4]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5]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