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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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인 뮤지컬 음악감독 및 연출, 배우.
2. 성장 배경
칼린의 한국인 아버지 박근실은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전쟁 때문에 온 나라가 쑥대밭이 된 1950년대에 미국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유복한 집안의 엘리트 학생이었다.[3] 대학 재학 중, 5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가정의 칼린의 어머니 아이린을 만났다. 무릎팍도사 출연 당시 칼린의 말로는 아버지가 동양인인데도 키가 190cm가 가까울 정도로 건장한 체격이어서[4]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유독 눈에 띄었으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놀리기 위해 아버지 앞에서 노래한 아리랑을 계기로 인연이 생겼다고 하였다. 또한 조국이 전쟁을 겪었고 둘 다 해외로 이주한 이방인이라는 공통점 역시 통했다고 한다.
그렇게 둘이 만나 낳은 세 자매 중 막내 칼린은 미국에서 출생하고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5] 3살 때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온 가족이 귀국 했고 10살까지 부산에서 살았으며, 다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초등학교 4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하여 LA 헐리웃 지역에서 성장했다. 중간에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6] 다시 미국으로 가서 고등학교와 캘리포니아 예술대학(클래식 첼로 전공)을 졸업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와서 서울대학교 대학원 음악과에서 국악 작곡[7] 을 전공한 이후 한국에서 예술음악인으로 살며 계속 거주하고 있다.
영어와 한국어 모두 능통하게 구사하지만 가끔은 한국어 발음이 약간 불명확하며 한국 말투에 서양식 말투가 약간 섞여 있는 듯한 느낌도 난다. 대표적인 것이 'Umm...'이나 'OK'의 잦은 사용이다. 언어적으로는 영어가 더 편하고 정서적으로는 한국인에 가깝다고 말하였다. 클래식과 국악을 모두 전공했으며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성장했다”
일찌감치 부산 지역에서 자라서 부산식 동남 방언과 그 지역의 문화[8] 를 잘 알고 있다. 원래는 부산 사투리를 사용했으나 한국에서 연기를 하다 보니까 표준말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판소리의 명창인 박동진의 제자였는데 실제로 박동진이 그녀를 자신의 판소리 직계 전수자로 삼고자 했으나 칼린이 한국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이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으며 이 일로 박동진은 매우 서운해 하였다. 하지만 박칼린은 "네가 외국 국적인 게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는 박동진의 말 한마디에 모든 마음이 풀렸다고 한다. 방송에서 말하길 만약 그 일이 성사되었다면 자신은 판소리의 길로 아주 깊이 빠져들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의 회고에 따르면 박동진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아따 저 양년 참 한국말 잘하네잉"(...) 이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서울대학교 국악과에서 국악을 전공 중이던 그녀는 하와이에서 열린 국악 공연에 국악계 인사들의 통역(...) 자격으로 따라갔었는데, 그녀가 국악을 전공했다는 것도 알지 못했던 박동진 이 불현듯 "자네는 소리를 해야 쓰것네."라며 그녀를 제자로 삼았다고.
방송이나 저서와 인터뷰에서 미국 LA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부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세 곳을 다 한번씩 돌아가면서 고향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3. 활동
연극배우로 잠시 활동한 경력이 있어 연기가 되는 편이며 실제로 오래 전, 한국 드라마에서 약간의 개그 캐릭터로 나온 적이 있다. 현재 그녀의 가장 대표적인 활동 분야는 역시 뮤지컬 음악감독(musical supervisor)[9] . '대한민국 1호 창작뮤지컬'로도 유명한 명성황후의 음악감독을 맡은 것이 시작이었다. 즉, 한국 뮤지컬 음악감독들 중에서도 1세대다. 뮤지컬 명성황후의 작사/작곡가였던 양인자/김희갑[10] 과의 인연이 화제가 되기도. 특히 김희갑은 그녀에게 노발대발하며 '당장 나가라'고 소리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박칼린 본인의 말에 의하면, 절대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11]
주로 신시컴퍼니에서 렌트, 시카고[12]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작 뮤지컬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특히 렌트의 경우 한국 초연부터 2011년 공연까지 모든 공연의 음악감독직을 맡았으며, 2011년 공연에서는 연출을 맡았다.
무엇보다 일반인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맡게 되면서였다. 방송 이후 곳곳에서 '훌륭한 리더십'의 사례로 꼽혔고 여타 방송이나 광고 출연도 늘어난 듯. 이후 남자의 자격 합창단 시즌 2를 이끄는 자리는 고사했다.[13]
2011년 11월부터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 배우로 출연했다. 뚜껑 열리기 전에는 캐스팅 소식을 듣고 경악한 뮤덕들이 꽤 되었으나 뚜껑 열린 후 취향 맞는 사람들은 달렸다. 작품도 수작인 편이었으며 참고로 극중 아들 역 더블캐스팅 중 하나가 바로 아래 항목에도 나오는 최재림.
2011년과 2012년에 방송되었던 코리아 갓 탤런트 심사위원을 역임했는데, 심사평이 굉장히 냉정하고 까다로웠던 탓에 웬만한 실력의 참가자들은 십중팔구 불합격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영화 고지전 마지막 부분에서 병사들의 합창 부분을 지도하기도 했다. 크레딧을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사실.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 개/폐막식 연출 감독과, 미스터 쇼의 연출을 맡았는데, 작품평이 영 좋지 않은데다, 인터뷰 등지에서 "한국 남자들 이런 거에 신경 쓸 시간에 몸이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며 미스터 쇼에 대한 비판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인 탓에 구설수에 올랐다.
2016년 1월 29일에는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인터뷰하였다. 인터뷰 영상
2018년 5월 22일 개막한 뮤지컬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 역을 맡아 연기 중이다. 항상 음악감독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오디션 제의를 받았을 때 본인도 의아했다고 한다.
3.1. 뮤지컬
- 명성황후
- 오페라의 유령
- 사운드 오브 뮤직
- 페임
- 렌트
- 시카고
- 미녀와 야수
- 노틀담의 꼽추
- 아이다
- 한여름 밤의 꿈
- 파리의 연인
- 넥스트 투 노멀
- 에어포트 베이비
3.2. 연극
- 가스펠
- 스타가 될 거야
- 여자의 선택
- 불의 가면
- 맥베스
3.3. 방송
- 2010년 KBS 2TV 해피선데이 -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하모니편
- 2011년 MBC 무릎팍도사
- 2011년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 2011~2012년 tvN 코리아 갓 탤런트 심사위원
- 2012년 SBS 고쇼
- 2011년 tvN SNL 코리아 시즌1
- 2011년 아리랑TV Heart to Heart MC
- 2013, 2020년 MBC 라디오 스타
- 2014년 국악스캔들 꾼
- 2020년 MBC 트로트의 민족
3.4. 영화
- 2010년 김종욱 찾기. 뮤지컬부문
3.5. 앨범
- 2013.12.16 Merry Christmas
- 2014.12.11 박칼린의 크리스마스 캐롤
- 2016.11.23 박칼린 캐롤
3.6. 도서
- 2012.11.09. 안녕 다정한 사람. 달
- 2014.02.24 사는 동안 멋지게 (박칼린 에세이) 달
- 2015.07.07. 그냥 :)
4. 경력
- 1991년 ~ 1999년 뮤지컬 극단 에이콤 음악감독
- 1994년 ~ 1996년 에이콤 뮤지컬 아카데미 강사
- 2005년 ~ 동아방송대학 공연예술계열 뮤지컬전공 전임교수
- 2010년 호원대학교 방송연예학부 뮤지컬전공 주임교수
- 2010.12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홍보대사
- 2011.05년 ~ 전주세계소리축제 상임위원회 집행위원장
- 2012.01년 KAC한국예술원 뮤지컬학부 학부장
- 2012.08년 희망서울 홍보대사
- 2012.09년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 2014년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개폐회식 총감독
- 2015년 킥 뮤지컬 아카데미 대표
5. 수상
- 1984 전국청소년연극제 연기상
- 1989 미주 MBC가요제 대상
- 1990 연극 '불의가면' 작곡상
- 2006 제19회 기독교문화대상 뮤지컬부문
- 2007 제13회 뮤지컬대상 음악상
- 2010 제3회 스타일 아이콘 어워즈 문화 예술 부문
- 2010 올해의 여성문화인상
- 2010 제6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문화 예술 부문
- 2010 KBS 연예대상 특별상
- 2020 MBC 방송연예대상 특별상 (트로트의 민족 심사위원단 단체 수상)
6. 인터뷰
- 2017.09.12. 음악감독 박칼린
7. 인적 네트워크
[1] Kolleen은 아일랜드의 소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라고 한다. 영어식으로 읽으면 '콜린'과 '칼린'의 중간쯤 되는 발음에 가깝다. 실제론 Colleen이 보편적인 스펠링이지만 칼린의 언니들의 이름이 모두 K로 시작하기 때문에 C를 K로 고쳐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2] 1년간 재학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3] 당시 해외 유학생이 20명 정도였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카드를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이 해외 유학생들에게 직접 써서 보냈다고 한다.[4] 지금도 무지하게 큰 축에 드는 키인데, 당시에는 미국인들도 평균 키가 173cm 정도였다. 한국인 평균은 165cm 이하. 정말 큰 키다.[5] 이유는 ESL(English as Second Language) 교사로서 언어 교육에 경력이 있는 박칼린 어머니가 자식들이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잘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부산에 김해공항도 없을 시절 해운대구 수영 비행장에 한국어도 모르는 아이린이 먼저 시어머니를 뵈러 남편 없이 혼자 세 딸을 데리고 왔다고 한다.[6] 방학 때 한국을 방문한 후 언니들은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칼린은 혼자 남아서 한국 고등학교를 다녀보고 싶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11살 때 미국으로 이사했을 때도 문화충격에 시달렸지만, 당시 부산 경남여고를 다닐 때 역시 미국학교와 너무 달라서 다시금 문화충격 때문에 놀랐다고 한다.[7] 10살 이후로는 학창시절 대부분 미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는 미국 쪽이 더 편하지만, 자신이 음악을 할 때만큼은 한국의 정서가 자꾸 흘러나왔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도 한국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대충 알아서는 안되고 전문적으로 한국 음악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였다.[8] 요새 젊은 부산 사람들은 모르는 옛날식 부산 사투리와 옛날 부산에서 먹던 음식 등[9] 뮤지컬에서 모든 음악 분야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연출자, 제작사와 함께 배우 캐스팅 권한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직책. 연주자와 앙상블 캐스팅 권한은 전적으로 음악감독에게 있다. 공연 전에는 배우와 연주자들에게 곡을 가르치며, 실제 공연 때에는 대개 지휘를 맡는다.[10] 작사가 & 작곡가 부부로 한국 대중음악사를 논할 때 반드시 언급되어야 하는 분들이다. 수많은 명곡들을 작업했으며, 그 명곡들 중 하나가 바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11] 이 당시 김희갑은 이미 최고의 작곡가였으며 박칼린은 겨우 20대 후반. 당장 나이 차이만 해도.[12] 2014년에 했던 시즌까지 음악감독을 맡았으며, 이후에는 오민영 음악감독이 시카고의 음악감독과 지휘를 맡았다. 2018 시카고 프레스콜에서는 2013년까지 시카고의 음악감독을 맡았다고 했지만 2014년 시카고의 소개글에 '박칼린이 이끄는 14인조 빅밴드' 라고 써있는 것을 보아 사회자가 잘못 말한 듯 하다.[13] 훗날 라디오스타에서 본인은 시즌1까지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