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타 이스라엘

 


[image]
[image]
1. 개요
2. 역사


1. 개요


Beta Israel 또는 Ethiopian Jews
아프리카에 '''베타 이스라엘''' 또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이라 불리는 흑인 유대인. 상당히 많은 편이다. 대부분이 이스라엘에 살며 에티오피아와 미국에도 살고 있다. 전세계에 15만 명이 있는데 이스라엘에 13만 명, 에티오피아에 4천 명이 산다. 미국에서 거주하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유학생(학사/석사/박사/연수)이나 자영업자(상업/공업/광업/예술) 위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에리트레아에서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과 이탈리아계 유대인들과 예멘계 유대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아라비아 반도반유대주의 폭동멩기스투 공산정권국유화 정책 및 에티오피아 내전에리트레아 전쟁이 유대인들의 의식주에 매우 큰 타격을 주었으니, 예멘계 유대인들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1948년부터 1990년대까지 이스라엘 본토로탈출하는 작전에 참가하여 이스라엘 본토에 재정착했고, 재산이 넉넉한 이탈리아계 유대인들은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사비를 털어서 미국이탈리아영국프랑스로 이민했다.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에서는 이스라엘 국가공무원(외교공관)들과 이스라엘 상인(수출입/무역/여행사/해운)들을 제외하고 유대인들이 없다.
간혹 팔라샤(Falasha) 또는 팔라샤스라고 표기하는 매체도 있다. 15세기 즈음에도 쓰인 말로 '땅없는, 방랑자', '이방인'이란 모욕적인 뜻이다.

2. 역사


원래 에티오피아 왕조의 탄생 자체가 에티오피아의 세바 여왕솔로몬 왕을 만나 동침한 뒤 임신하여 낳은 아들을 시조로 보고 있다. 이 아들의 이름이 메넬리크 1세다. 이 아들이 이후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아갔고 아버지인 솔로몬 왕은 아들이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도록 7개 직능 부족에서 각 1천 명씩 징발하여 아들에게 데려가라고 내주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에티오피아에 살던 유대인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그래서 에티오피아인들은 농담조로 '''"다른 데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도 다 유대인의 자손이다."''' 라고 말한다.
구약성서 열왕기 상권 10장 1절에 "세바라는 곳에 여왕이 있었는데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는 그를 시험해 보려고 아주 어려운 문제를 준비하여 방문 온 일이 있었다." 하는 구절이 있다.
일단 이러한 내용은 사실적인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고 설화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이다. 에티오피아의 유대인 관련한 기록은 서기 4세기 이후부터 등장한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제국 헌법은 구약에 나온 설명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메넬리크 1세부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1892-1975)까지 왕통이 연면했음을 규정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 내에 거주할 때 다른 흑인들과 완전히 다른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이스라엘족이라 자처하고 안식일을 지키고 희생을 바쳐 제사를 지내는 등 유대인 고유의 풍습을 지켜왔다.1970년대에 이르러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 영토에서 비유대인 인구의 증가에 불안을 느끼고 유대인 인구의 배가를 위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유대인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문제는 이를 눈치 챈 당시 에티오피아 공산정권이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걸핏하면 이들을 볼모로 이스라엘에 같잖은 협박을 해댔다는 것. 당시 에티오피아가 위낙에 돈이 없던 나라이다보니 앵벌이짓을 한것이다. 결국 빡친 이스라엘 정부가 이스라엘 외무부모사드이스라엘 해군이스라엘 공군을 총동원해 조지 H. W. 부시의 협조와 함께[1] 여섯 차례에 걸쳐[2]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약 10만 명)을 이스라엘 본국으로 수송하여 이스라엘 국민으로 대접했다. 에티오피아에서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마을은 그 독특한 문화 때문에 온 세계에 관광지로 유명했으나, 정작 거주자인 흑인 유대인들이 전부 떠나버리고 난 뒤에는 거의 그냥 폐허로 전락했다(...) 물론 그렇다고 에티오피아의 모든 흑인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떠난 것은 아니라서 에티오피아인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다. 예를 들면 친족들의 분쟁으로 격분해서 남은 이도 있고, 에티오피아 땅에서 예전처럼 사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서 남은 이도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1984년에 있었던 모세 작전에서 약 8천여 명을 옮기는 것을 시작으로 직접 엄청난 인구를 들어 옮겼다. 그리고 직접 정부 관계자(대통령국무총리 및 장차관과 국과장)들이 마중나가 따뜻하게 환영했지만... 실제로는 말도 다르고 피부빛이 다른 그들은 시간이 지나자 무형의 차별을 받았다.[3]
특히 1996년에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헌혈하면, 정부가 그 피를 '''전량 폐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항의하는 에티오피아계 흑인 유대인들은 인종차별이 아니냐며 대대적으로 시위를 벌였지만, 이스라엘 보건 당국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에티오피아 출신자들 중에 에이즈 환자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실제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아프리카에이즈 감염율과 보건 실태를 감안하면 틀린 말이 아니라, 일단 흑인 유대인들의 시위도 사그라들기는 했다. 하지만 평소 이스라엘 사회에서 차별받고 살던 흑인 유대인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느낀 좌절감과 박탈감을 표출하며 각종 사회 운동에 대거 참여했다. 지금은 에이즈가 확산된 이후에 에티오피아에 산 적이 있는 경우에 헌혈을 배제하는데, '영유아 시기에 이스라엘로 입국한 경우'까지 에이즈 음성으로 판정되어도 헌혈 배제 대상으로 분류해 인종차별 논란이 남았다. 당연히 이스라엘 보건부와 이스라엘 국회에서 에이즈 문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2013년 기준으로 이들 흑인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약 10만 명이 좀 넘는 인구를 유지하고, 이들이 대거 거주하는 지역의 2개 의석에선 반드시 이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출신이 의원으로 꼬박 꼬박 뽑힌다. 그리고 또한 전통적으로 하층민을 형성하며 먹고 살기 위해 군에 말뚝을 박거나 군복무 경력을 통해 경찰이 되곤 하던 흑인 유대인들이 요근래 자체적으로 학력을 높이려 노력하여 IT 관련 업종에 진출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과 인종차별에 시달려서 그들의 삶은 아직까지도 험난한 편이고, 이스라엘 정부도 그들의 의식주와 복지혜택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래도 에티오피아 본토에 사는것에 비하면 이스라엘에 사는것이 더 낫다고는 할수있는데 1970~80년대의 에티오피아가 정국은 소말리아와의 전쟁과 내전, 학살 등으로 매우 혼란하던 시절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경제가 제대로 성장할리가 없었다. 정국이 혼란한데 관광수입으로 언제까지 먹고살지도 의문이었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물가가 비싸고 차별이 심한 등 이런저런 부조리가 있다해도 이스라엘에서 사는것이 생계에서나 교육면에서 확실히 유리했고, 배도 확실히 채우는 방법이었다, 에티오피아가 2000년대에 어느정도 안정화되면서 괄목할 정도의 경제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빈민층들도 배를 넉넉하게 채우고 중등교육까지 받을정도로 소득수준이 올라올려면 한참 멀었기도 했다. 그러하니 저임금노동자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에 사는것이 배를 채우고 자식들 공부시키는데에 있어서 더 나은 선택인 셈이다.
2013년에는 흑인 유대인 여성이 미스 이스라엘에 뽑혀 극심한 반대에 시달리기도 했다. 국외에서는 미스 이스라엘 역사 최고의 몸매와 미모를 가진 여성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그놈의 피부색은 여전히 벽으로 다가오는 듯. # 기실 이스라엘 시민사회에서 60년 전에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이 예멘계 유대인들의 도움으로 이스라엘 국민으로 활보하기 시작했고, 40년 전에도 이스라엘 본토에서 흑인 유대인은 낯선 존재였다. 흑인 유대인의 역사에 대하여 이스라엘 초중고등학교에서 상세하게 가르친 것도 메나헴 베긴 정권이 들어선 시점부터였다.
요즘은 이들과 외모, 언어, 혈통이 비슷한 에리트레아 출신 이슬람 난민들이 이스라엘로 대거 밀입국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가 베타 이스라엘이고 누가 에리트레아 난민인지 혼동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에티오피아의 철천지 원수인데다 종교적 분쟁도 심각한 에리트레아 난민의 재정착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2019년에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The Red Sea Diving Resort라는 영화는 이 베타 이스라엘들을 이스라엘로 탈출시키기 위해 1979년부터 1985년 사이에 행해진 'Operation Brothers'를 다룬 작품이다.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가 주인공이자 탈출팀의 리더인 아리 역을 맡았다. 다만 영화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나쁜 편이다.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에 대한 더 많은 자료는 아셰르 나임(이스라엘 외무부의 국가공무원)의[4] 회고록(잃어버린 부족 구하기)에 나와 있으니 시군구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가 있다. 1990년대 이후의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출신 이스라엘 지식인들의 입장은 구글을 통해서 벨라이네쉬 제바디아(에티오피아 주재 이스라엘 대사)와 체카 멜라쿠(이스라엘 방송공단라디오 방송국장)와 쉴로모 몰라(이스라엘 국회의원)의 기자회견 전문을 입수해 읽으면 되겠고, 이스라엘 국민으로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의식주에 대하여 시청각 자료는 이스라엘 공보청 홈피유튜브플리커를 통해서 영문으로 찾아보면 된다.
[1] 당시 그는 미국 하원 국회의원유엔 주재 미국 대사CIA 국장→미국 부통령미국 대통령을 연속으로 재임했기 때문에 중국덩샤오핑에 버금가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미국 국무부미국 국방부미국 연방의회CIA로 하여금 이스라엘 정부에 협력하라고 지시했다. [2] 대규모 탈출 작전 3회+소규모 탈출 작전 3회 [3] 이스라엘 유대인 공동체 내부의 인종차별은 미국프랑스의 인종차별과 달리 이라크수니파시아파의 대립처럼 유대교 분파의 교리에 따르는 종파주의 차별의 색채를 띠고 있다. 실제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이 따르는 유대교 분파는 아슈케나짐/미즈라힘/세파르딤 유대인들이 따르는 유대교 분파와 교리가 다르다. 당연히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이 따르는 유대교 분파도 세파르딤 유대인들이 따르는 유대교 분파 및 미즈라힘 유대인들이 따르는 유대교 분파와 교리가 다르지만, 상호 교류의 역사가 깊어 차이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고대 유대교의 전통을 계승한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자국민으로 인정하는 결단을 내렸지만, 한족회족의 문화에 동화중국계 유대인은 유럽 문화권의 유대인들(아슈케나짐/미즈라힘/세파르딤)과 학연/지연/혈연으로 이어진 연고자들만 자국민으로 인정했을 뿐이다. [4] 무솔리니 시절의 이탈리아령 리비아에서 태어난 세파르딤 유대인이다. 1945년1948년반유대주의 폭동에 격분해 이스라엘 건국전쟁참전용사로 변신했으며,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를 졸업하고, 이스라엘 외무부에 입부하여 일본/케냐/미국의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주핀란드 이스라엘 대사→주에티오피아 이스라엘 대사→주유엔 이스라엘 대사→주한 이스라엘 대사를 지냈으며, 러시아계 유대인 100만명의 탈출과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10만명의 탈출에 결정적으로 관여했고, 유엔 총회에서 이스라엘 국가의 현실을 왜곡하는 유엔 총회 결의안 3379호를 뒤엎고 이스라엘 국가의 화평론을 반영한 유엔 총회 결의안 4686호로 대체하는 업적을 남겼다. 정년퇴직한 뒤에도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의 출세를 후원했다. 처음에는 일본통이자 이탈리아통으로 유명했고, 나중에는 한국통이자 에티오피아통으로 유명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