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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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에 위치한 4년제 사립 여자대학교. 개신교 미션스쿨이다. 슬로건이 “잘 가르치는 대학”일 정도로 커리큘럼이 탄탄하며 “작지만 강한 대학”이다.
2016년 인서울 여자대학 중 최초로 소프트웨어 중심대학에 선정, 현재 관련 학과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주택가에 위치한데다가, 바로 앞 육군사관학교가 있기 때문에 주위에 유흥가가 하나도 없어[1] , 주변이 매우 조용한 편이다. '에코캠퍼스'[2] 를 표방하고 있어서 그런지, 교정이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대학교로는 가까운 순서대로 육군사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삼육대학교, 광운대학교,인덕대학교가 있다.
부속어린이집, 부속유치원, 부속초등학교(화랑초등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2. 설립
1923년 대한예수교장로회가 제12회 총회에서 여자대학 설립을 결의, 1924년 설립인가를 신청하였으나 보류되고, 1956년 재차 기성회를 조직하여 1960년 서울여자대학(4개 학과) 설립을 인가받았다. 이듬해인 1961년 개교하여 고황경 박사가 초대 학장으로 취임하였고 1979년에 대학원이 설치되었으며, 1988년 단과대학에서 지금의 종합대학으로 개편되었다. 교육목적은 지(智), 덕(德), 술(術)을 갖춘 여성지도자 양성이다.
3. 홍보 영상
4. 역대 총장
4.1. 설립자 고황경
바롬 '''고황경'''(1909~2000) 박사는, 세브란스 병원의 의사이자 남대문교회의 장로인 고명우[3] 의 딸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된다. 일제강점기 후반에 여러 친일단체에 가담하여 협조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37년 조선총독부 학무국에 의해 조직된 친일 단체 ‘조선부인문제연구회’에서 주관하는 순회강연에 참여하였다. 여자들의 금비녀·금가락지를 뽑아 일제의 국방비로 헌납하자는 전쟁협력단체 ‘애국금차회’가 조직되자 여기에 간사로 참여하였다. 1941년 조선 최대 민간 전쟁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이 결성되어 참여하였고, 이들은 조선의 청년과 처녀를 전쟁터와 '''정신대'''로 보내자고 주장했다.[4]
이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여대에서는 고황경의 호인 '''바롬'''을 바롬기념관, 바롬인성교육, 홍보바롬이, 바롬예비대학, 바롬국제프로그램, 바롬갤러리 등 각종 명칭에 적극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바롬''' 정신을 함양하겠다는 원대한 포부까지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롬이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한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나,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설립자의 호를 이 정도로 남발하는 것은 역사의식의 큰 결여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기념하는 행보는 교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립자의 호를 기념하고자 하는 동문들의 의지가 큰 것은, 고황경 박사의 학장 재임 시절 학생들과의 깊은 유대와 관계 때문이다. 고황경 박사는 학장 재임 시절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방을 매일 방문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는 등, 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진정성이 학생들로 하여금 고황경 박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의지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진정성이 있다고 해서 친일행적을 포장할 수는 없다. 고황경 박사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조선의 처녀들에게 근로정신대를 강조한 사람이다. 여자대학교를 설립해 인성교육을 이끌어가고자 한 시대의 교육자가 시대의 비극에 놓인 당시 여성들에게 근로정신대에 가도록 권장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에 무시할 수 없는 친일 행적을 가진 고황경 박사의 호가 붙는 것이 모순적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아직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역시 기만하고 있다는 의견 또한 존재한다.[5]
고황경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 고황경은 1937년 28살 때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로 채용되었고, 이때부터 광복 전까지 친일행적이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그는 20대 후반~30대 전반의 조선인 여교수였다. 게다가 같은 학교에 자신보다 10살이 많으면서 동일하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훨씬 더 권력지향적인 입장에서 친일활동에 참여했던 이화여자대학교의 김활란이 있었던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고황경은 여성계의 친일활동을 주도할 입장에 있지도 않았고, 몸 담고 있었던 조직의 지시를 거스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냥 정상참작 정도의 사유일 뿐, 고황경이 친일활동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황경과 김활란의 차이는 광복 이후에 더욱 두드러진다. 김활란은 해방 이후 이승만의 남한단정을 지지했으며, 제헌국회의원으로 직접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1961년 5.16 쿠데타로 박정희가 집권하자 한경직 목사와 함께 미국에 가서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의 군사정변을 인정해주도록 탄원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으나 미국 정부에 의해 자진출국이라는 형식으로 강제출국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김활란은 여성계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개신교+반공+독재라는 한국 보수세력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고황경은 광복 직후 미군정 교육국에 참여한 것 외에는 권력의 중심에 참여하려 한 일이 없다. 1961년 서울여자대학교를 창립한 이후에는 전 재산을 서울여대에 기탁하고 학생들과 숙식을 하면서 교육활동에 전념했다. 2000년 사망할 당시 남겨진 개인재산이 동전 몇 개가 다였을 정도로 외곬수의 삶이었다. 고황경이 일제강점기 친일행적에 대한 명확한 반성은 보이지 않았으나, 최소한 친일반민족행위자로서 획득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공보수세력과 결탁하여 대한민국의 주류로 군림하려 했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고황경 비판론에 대한 반론은 그녀의 친일행적에 면죄부를 주기 위함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국민 다수가 납득할 만한 친일청산을 완료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주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진상을 밝히는 것은 분명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친일파들이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어 온 것도 사실이다. 이같은 대한민국의 '결손된 역사'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위해서도 친일파에 대한 보다 자세한 연구와 분류가 필요하다. 한국현대사에서 친일파 청산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친일세력들이 일제강점기 때 구축했던 힘을 갖고 반공보수세력 및 권위주의 정권과 결탁하여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일파를 비판할 때에는 일제강점기에 그들이 했던 행동 못지않게, 광복 이후에 그들이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그런 점에서 서울여자대학교 설립자이자 교육자로서의 고황경의 업적은 나름대로 평가해줄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문서를 만들 것을 제안한다.
5. 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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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기준 재단의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이 11.2%로 전국 하위권에 속한다. 자산 96억에 연수입이 2억대. 이러한 이유로 법정부담금 0%대 학교의 목록에 매해 이름을 올린다.
2015년 사립대학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12.7%로 많이 낮은 편이다. (전국 평균 56.9%)
2014년 사립대학 등록금 의존율 현황 운용 수입 중 등록금 비율이 66.0%로, 전국 평균 63.2%보다 조금 높다.
6. 상징
특이하게도 심볼이 2개이다. 메인심볼은 각종 증명서나 공문서, 임명장, 위촉장 등 공식적인 용도로 사용되며, 서브심볼은 안내문, 공고문, 온라인 배너, 학교팬시 등 다소 캐주얼한 용도로 사용된다. 메인심볼은 성경을 상징하는 알파와 오메가, 월계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브심볼은 서울여대의 이니셜 SW와 붉은 마름모로 구성되어 있다.
7. 교통
거리상으로 화랑대역(서울여대 입구)과 가장 가까워, 도보로 갈 때는 화랑대역 4번 출구(정문 방향) 또는 3번 출구(남문 방향)를 이용하면 된다. 그러나 15분가량 걸리는데다 남문(후문)으로 갈 경우에는 언덕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전철-버스간 환승제도를 이용하여 1호선 석계역이나 6·7호선 태릉입구역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더 편리하다.
버스 73, 202, 1225, 1155, 1156번 등은 정문, 1132번[6] 은 후문 쪽으로 간다. 태릉입구역 7번 출구에는 스쿨버스가 다니고 있어 많은 서울여대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석계역에도 스쿨버스가 다니지만, 태릉입구역에 비해 수요가 적어 배차간격이 좀 더 길다. 자세한 사항은 스쿨버스 운행 시간표를 참고할 것.
정문 쪽에 철도역인 화랑대역(경춘선)이 있었으나, 2010년 수도권 전철 경춘선 개통으로 성북 - 화랑대 구간이 폐선되면서 폐역되었다. 역사(驛舍)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었으나 선로는 대부분 철거되었고, 최근에 옛 경춘선 철길을 공원화하는 사업이 진행되면서 6호선 화랑대역 근처까지 철길 공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정식 명칭은 "경춘선 숲길".
8. 캠퍼스
서울여자대학교/캠퍼스 문서 참조.
9. 학과
서울여자대학교/학과 문서 참조.
10. 학사제도
10.1. 필수과목
'바롬인성교육'이라는 특수한 교양필수 과목이 존재한다. 바롬은 '바르다'라는 순수한 우리말로, 초대 학장 고황경 박사의 호이기도 하다.
바롬1은 자아정체성, 바롬2는 공감적 의사소통, 바롬3는 사회참여가 주제로 각자의 개성을 찾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점진적으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의식을 다듬어가도록 짜여져 있다. 1학년 때는 3주, 2학년 때는 2주간 합숙과 함께 교육과정을 이수하며, 3학년 때는 합숙 없이 프로젝트형 수업을 한다. 각 1학점이나, 웬만한 3학점짜리 과목 못지않게 할 게 많아 시험 전 과제폭탄 기간과 겹치는 시기에 입사하게 될 경우 고생을 꽤 하게 된다. 전교생이 총 5주간 필수적으로 기숙생활을 해야한다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나 이것도 많이 축소된 것으로, 개교 당시에는 1년(!)이었다. 1961년-1981년에는 현재의 국제생활관 건물에서 생활관 교육, 가정관리 실습을 통해 실기와 생활예절을 배웠으며, 1982년-1999년에는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변화한 것을 고려해 여성리더 양성을 목표로 한 학기 동안 걸스카우트 훈련, 4H 지도자 훈련, Y-teen 지도자 훈련, 사회구조 연구 훈련 등을 했다.
2000년도부터 현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창의적 여성리더 양성 프로그램으로 개편, 진화하여 바롬1, 바롬2, 바롬3의 3개 과정으로 나뉜 현재와 같은 커리큘럼이 되었다. 국내 최초의 레지덴셜 칼리지이자 전인교육의 시초로 그 역사가 긴 만큼, 학교 측에서는 바롬교육을 서울여대의 정체성의 큰 부분이자 자랑거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교육적 의의와는 별개로 친일인물의 호를 내걸고 있다는 점은 친일 미화 논란의 소지가 몹시 크다. 한 때 바롬I에 고황경 박사를 기리는 박물관인 바롬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 학생들의 계속된 반발 끝에 50주년기념관 건설 후에는 50주년기념관 앞을 방문하는 것으로 변경되기도 했다.
프로그램 자체는 중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진로 탐색 교육+단체 액티비티 정도로 느껴진다. 신입생들은 입사하기 전에는 온갖 꼼수를 부려 빠지려 하거나 굉장히 욕을 많이 하지만, 대다수는 입사 동안 혹은 입사 후 태도가 어느 정도 바뀌게 된다.(...) 이유는 축소된 통학시간과 타과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친해질 수 있다는 점. 또한 강제로 7시부터 2시간 가량동안 실시하는 바롬인성교육도 생각보다 알차고 재밌다는 게 그 이유. 그러나 합숙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나 외부활동이 힘들다는 점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들도 많다.
바롬 1, 2, 3 이외에 대학영어 1, 2와 기독교개론, 채플이 교양필수 과목이다. 현재는 대학영어 1, 2는 대학영어(말하기 듣기)와 대학영어(읽기쓰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채플 수업은 출석으로만 평가하는 Pass/Fail 과목으로 총 6학기를 수강해야 한다. 수업 내용의 대부분은 교내 개신교 동아리의 공연 또는 외부 인사의 강연이다. 매년 2학기마다 션이 초청되어 '션을 3번 보면 곧 졸업한다'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2015년 기준으로 무려 13년째라고. '기후변화와 녹색성장'이라는 또 하나의 필수과목이 있었으나 15학번부터 폐지되었다.
10.2. 기타
- F학점이 이수학점에 포함되지 않는 동시에 평점 평균에도 영향을 준다. 그러니 정 수업을 못 따라 가겠으면 학기 초에 수강정정이나 수강중도포기를 하자. 예전에는 성적포기 제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기 때문에 낮은 학점을 처리하고 싶다면 재수강밖에는 방법이 없다. 게다가 재수강한 과목은 성적증명서에 기록이 고스란히 뜬다. 단, 12학번 이전 학번은 해당되지 않는다.
- 서울여대의 학위와 해외 대학의 학위를 동시에 취득할 수 있는 복수 학위제도가 있다. 2011년도에는 美 인디애나 퍼듀 대학교와, 2013년도에는 美 카네기 멜런 대학교와 복수학위 협정을 체결했다. 2016년도에는 日 리츠메이칸대학과 복수학위 과정, 교환학생 및 취업 연계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일본 SW전문가 트랙의 운영 협약을 맺었다.
- 교내 프로그램이 다양한 편이다. 서울여대의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인 SWELL[7] 은 학기 중에는 시간별 프로그램을, 방학 중에는 합숙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합숙 SWELL은 학교에서 지내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부 영어만 공부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회화 능력에 효과가 상당하다고. 타 학교 학생도 입사가 가능하다. 본교 재학생의 경우는 TOEIC 700점 이상일 경우[8] 학교에서 일부 등록금을 지원해주기도 한다.(>과거 장학금을 지급했으나 현재는 마일리지 형식으로 바뀜) 이외 지역사회기관 봉사활동 프로그램인 '서비스러닝(S-L)', 해외 문화교류 겸 봉사활동 프로그램인 '세계문화체험과 봉사', 외국인 교환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며 진행되는 한국학 프로그램 BIP(Bahrom International Program), 일본의 협력대학들과 서로의 캠퍼스를 방문하여 문화탐방 기회를 갖는 BSA(Bahrom Summer Abroad) 등의 프로그램이 있다.
11. 성과
작지만 강한 대학을 지향해 내실이 좋은 편이다. 최근 정부기관에서 주관하는 대학 재정지원사업 및 평가에서 다수의 실적을 얻고 있다.
- 2010년 잘 가르치는 대학(ACE대학) 선정(140억)
- 2014년 잘 가르치는 대학(ACE대학) 연속 선정(64억)
- 2014년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 전국 6위, 중소형규모 대학 전국1위 선정(16억)
- 2014년 대학 특성화사업(CK사업) 5개 사업단 선정(90억)
- 2014년 교육부 지정 정보보호 영재교육원 선정(매년 2억)
- 2015년 정보보호 특성화대학 지원사업 선정(6년간 총 33억)
- 2015년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 선정(11억)
- 2015년 대학구조개혁평가 A등급
- 2016년 소프트웨어 중심대학 선정(110억)
- 2016년 고교교육 정상화 기여대학 지원사업 선정(9억)
- 2016년 대학 특성화사업(CK사업) 중간평가 결과 5개 사업단 전체 '우수'
12. 출신 인물
서울여자대학교/출신 인물 문서 참조.
13. 이야기거리
13.1. 학생활동 관련
- 과거에 학부생들을 슈먼이라 지칭했으나 요즘 들어서는 학생들끼리 슈니[9] 라는 호칭을 더 많이 사용한다. 주로 익명게시판에서 서로를 칭하는 말은 슈니이며, 학교의 공식 프로그램 같은 곳에 쓰이는 말은 슈먼 혹은 슈를 넣은 명칭이 많은 편. 이는 서울여대의 영문명인 Seoul Women's University의 이니셜 SWU를 응용한 것으로, 입학멘토그룹인 슈가멘토, 국제학생 서포터즈 슈버디 등 다양한 그룹명칭에 응용된다.
- 동아리 활동으로 유명한 학교라고는 말할 수 없으나 활발할 동아리에서는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특히 댄스동아리와 밴드동아리가 활발하며 각종 준동아리나 새로운 동아리가 생겨나는 등 점점 활동이 왕성해지고 있다. 33개의 동아리와 여러 준동아리가 있으며, 학과 내 소학회도 200여개로 상당히 활성화되어 있다.
- 서울여대생만을 위한 커뮤니티인 슈먼닷컴이 있다. 특히 쉬크릿은 익명 닉네임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어 학교 생활 이외에도 진로, 가정사 등 개인적인 고민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 허나 요새는 슈먼닷컴보다는 에브리타임을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13.2. 학교기관 관련
-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명단 발표로 이슈가 되었던 대학가 친일 문제와 관련해 서울여대도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야말로 흑역사. 초대 학장 고황경 박사는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이며, 초대 이사장 전필순 또한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인물. 그러나 학교 측에서는 본교의 설립자므로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
- 이광자 총장(서울여대 사회학과 61)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3번 총장을 연임했다. 4선에 출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부 교수진이 반대 성명서를 제출하여 논란이 되었으나, 2013년 2월을 끝으로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사로 재임 중이다. 현재 7대 총장은 전혜정 총장(서울여대 가정학과 68)이다.
- 대학로 캠퍼스가 있으나 실질적인 의미의 이원화 캠퍼스는 아니다. 재학생보다는 동문과 외부인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인 플로라 아카데미(보타니컬 아트, 꽃꽂이 강좌 운영), 세미나 등을 위한 보조적인 장소로만 이용되기 때문이다. 대학로 캠퍼스의 존재를 모르는 학생도 많다.
13.3. 기타
- 이 학교 2대 총장이었던 정구영 총장은 총장 취임 당시[10] 최연소 총장이었다. # 다만, 이후 정 총장은 개인적으로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분류하는 이재록의 만민중앙성결교회에 들어가게 되면서[11] 학교에서는 약간 흑역사 취급하는 분위기이다. 실제로 학교 홈페이지의 역대 총장란에 다른 총장들의 프로필은 현재의 프로필로 갱신이 되지만, 유일하게 정구영 총장의 프로필만은 총장 재임 당시의 프로필에서 멈춰 있다. 개신교 대학으로써 이단 교회에서 활동하는 사항을 게제할 수는 없기 때문.[12]
- 서울여대는 육군사관학교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서울여대는 육사랑 미팅 많이 할테니 육사 생도와 사귀는 서울여대생이 많겠다'는 시선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육사는 외출하는 일이 따로 있기 때문에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뿐더러 사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많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성문제로 얽히기 싫어 여자대학교에 진학했더니, 인근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육사의 예비신부 취급을 받는다"며 불쾌감을 드러내는 학우들도 많다.
- 서울여대 정문엔 소라분식이라는 매우 오래된 분식집이 있었는데, 80년대 즈음 주변에 상권이라고는 소라분식 하나밖에 없던 시절 이 곳에 쪽지를 남겨 서울여대생들과 소개팅이나 미팅을 하려는 타 대학교 남학생들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서울여대생들은 쪽지를 남기는 메모판을 보며 재미있어 할 뿐, 답쪽지를 남긴다거나 쪽지의 연락처로 연락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성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거의 배달시켜 먹는 요즘 학생들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이다. 현재는 남문 쪽으로 이사갔다.
- 정문에는 정말 소라분식, 테르미니, 비바리 등 음식점과 육군사관학교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상권은 남문 쪽이 정문보다는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어디까지나 '정문보다는' 이며, 후문에는 여러 음식점과 쥬씨가 있다. 그 흔한 코인노래방 하나 없어, 학생들은 술을 마시거나 놀러갈 때는 가깝게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문 앞에 가서 놀거나 노원역, 석계역, 건대입구역 근처에 가서 노는 편이다.
- 서울여대 3대 바보가 있다. 첫 번째는 특정 교수님에게 생일축하를 받아보지 못한 학우, 두 번째는 슈냥이(학교 길냥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학우, 마지막은 청솔모를 한 번도 보지 못한 학우다.
14. 사건사고
14.1. 체육학과 막장 규정 및 내부고발자 색출기도 사건
흔히들 대학가 똥군기 등의 대명사(...)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폭로된 대덕대학교 군사학과나 용인대학교 경호학과처럼 직접적인 폭력이 가해진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체육학과 내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각종 부조리나 불필요한 생활 규정 등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네티즌들의 질타를 받았다.
공개된 규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기까지였다면 여느 체육대학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예절이나 군기 등을 빙자한 상식 선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범위의 맛 간 규정 논란 중 하나였겠지만, 이를 유포한 자를 "경찰서까지 가는 한이 있더라도 잡아내고 말겠다"며 벼르는 추태까지 보여 큰 논란이 일었다. 서울여대 체육학과 '막장 규정' 이어 "경찰서 가도 잡겠다" 논란 그러나 어째 다른 대학들의 폭력적인 군기문화에 슬며시 묻어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유야무야. 안습 서울여대 측에서는 "진상조사 후 결과를 발표하겠다"고만 하며 말을 아꼈다.
참고로 이 문단은 관련 인물이 계속 주시하고 있는지 이 단락이 추가된 2014년 리그베다위키 시절부터 꾸준히 내용 통삭제 반달이 수십번에 걸쳐 일어났으며, '''2018년에 이어 2020년에도 반달당한 적 있다.'''#, ## 반달한 기록까지 전부 남는데다, 어줍잖게 반달하면 할수록 더 내용이 보강된다는 위키의 특성을 모르는 듯 하다.
14.2. 현수막 철거 사건 & 학보 1면 백지 사건
2015년 5월 대학 축제기간 중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터뜨린 병크로 알려져 있다.
아몰랑, 우린 축제 해야 돼. 진짜 기사 제목이다(...)
이 당시 서울여대의 청소 노동자들은 임금삭감 논란으로 인해 파업 중이었고, 관련 현수막을 캠퍼스 곳곳에 설치하였다. 그런데 학교 축제가 5월 20일에 열리기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총학은 노동조합에게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축제기간 동안 현수막을 철거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노동조합은 현수막을 방치했고, 결국 20일 총학은 이 현수막들을 철거하였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총학 측에서 일방적으로 현수막을 철거한 것도 문제지만, 공지로는 철거한 현수막을 노동조합에게 주었다고 하였으면서 정작 현수막들이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것이다. 더구나 같은 시기 덕성여대 축제에서는 청소 노동자 아주머니들을 돕는 행사를 진행한 것과 대비되어, 서울여대는 더욱 비판을 받았다.
다만 이 사건은 서울여대 총학이 의견 수렴 없이 단독으로 벌인 사건이고, 학생들도 이 사건으로 인해 총학을 가열차게 비판하고 있는 만큼, 비판의 대상은 총학이어야 하며 학생 전체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여대 내에서도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는 있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졸업생 143인 성명서가 서울여대 학보 1면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학교 측에서 반대하면서 1면을 백지로 출간하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반대의 주동자는 주간 교수로, "졸업생 143명이 졸업생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론이라고 보기 어렵고 학보사는 중립적이어야 한다" 며 "성명서를 실을 경우 학보 발행을 허가하지 않겠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학보사 측에선 "학보사는 중립을 떠나 학내 대표 언론기관으로서 자성의 목소리를 낼 필요성을 느꼈다"며 "졸업생 143인이 졸업생을 대표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성명서 내용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싣고자 한 것"이라고 밝히고, 편집권 침해에 항의한다는 의미에서 백지를 1면에 올린 것. 기사1 기사2
이 사건은 5월 28일 노조, 청소용역업체, 학교의 3자대화 협상을 통해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종결되었다. 기사
14.3. 합격축하 문자 소동
2016년 1월 8일 서울여대 입학처에서 정시모집에 지원한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합격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합격자에게만 발송되어야 할 이 메시지가 최종불합격자, 예비합격자, 실기전형을 앞둔 예체능계 지원자에게까지 전부 오발송되었다는 점이다. 원인은 일전에 정시모집 지원자들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지원자 전원을 명단에 올려놓고 메시지 발송 대행업체에 부탁해 보냈는데 합격축하 메시지를 보낼 때 대행업체의 실수로 명단을 교체하지 않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 그래서 학교 측에서 뒤늦게 정정 메시지를 보내는 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에 대해 당연히도 지원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한 사람은 "서울여대에 추가 합격한 줄 알고 다른 학교 입학을 취소하기라도 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는 반응을 보였다. 또 몇몇 지원자는 밑에 있는 총장의 축하 메시지로 연결되는 URL 때문에 스미싱인 줄 알고 조심하라는 글을 올리기까지도 했다. 기사
15. 동아리
서울여자대학교/동아리 문서 참조.
16. 장로회 둘러보기
[1] 주로 후문 쪽에 맛집, 카페들이 있으나 번화하지 않다. 놀려면 석계역, 노원역 등으로 나가야 한다. 이마트 방향은 말 그대로 이마트 월계점이 종착지다.[2] 환경부가 추진하는 그린캠퍼스 사업. 선정 대학교는 서울대, 인천대, 한양대, 상명대, 경기대, 고려대 등이 있다. [3] 농촌에서 의료 봉사도 하였다. 6.25 전쟁 중 납북되었다고 한다.[4] 고황경의 주요 발언: "어머니 자신이 먼저 황국신민(천황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된 신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자장가 속에라도 나라의 관념을 넣어 주며 길렀으면 합니다. 즉 어머니의 재교육이 필요합니다" (매일신보, 1942.06.01 '임전보국단 부인대 주최 좌담회2-자장가 들릴 때에도 충군애국의 뜻 담아’ )[5] 근로정신대는 일본군 위안부와는 다르다. 위안부가 sex slave라면, 근로정신대는 노동징집의 일종이었다. 일본의 침략행위였던 것은 맞지만 '시대의 비극에 놓인 당시 여성들'만의 문제도 아니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이 남아있는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조선 여성을 근로정신대로 모집해놓고 위안부로 보내는 사례도 있었으나 고황경이 이를 알았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본문의 서술은 독자들로 하여금 고황경이 위안부를 직접 모집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6] 노원역 방향과 월계동 이마트 방향이 있는데, 노원역 방향으로 잘 보고 타야 한다.[7] Seoul Women's University English Language License[8] 졸업인증제도를 실시하는 학과들의 어학성적 커트라인이 TOEIC 750점 또는 800점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후한 조건이다.[9] SWU+언니[10] 취임 당시는 단과대학이었으므로 정확히는 학장.[11] 정구영 총장이 만민교회에 등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90년대 중반에도 이미 만민교회는 최초 소속교단(예수교대한성결교회, 약칭 '예성')으로부터 이단으로 제명되어 이재록 목사가 목사직에서도 파직된 후였다. 다만, 그렇게 소속교단으로부터 제명된 후에도 이재록 목사는 교계에서 부흥사로 이름을 떨쳤고, 기독교방송과 극동방송 등에 라디오 설교를 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에는 만민교회가 이단인 줄 몰랐을 수도 있다. 만민교회가 한국의 개신교계와 완전히 교류가 끊기게 된 것은 MBC 습격 사건이 발생한 1999년 이후이다.[12] 만민교회 등록 당시 집사였던 정 총장은 이후 권사 직분을 받고, 이후에는 만민교회의 교단인 예수교대한연합성결교회(약칭 '예성연합')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현재는 만민교회의 무인가신학교인 MIS의 총장직을 맡고 있다. 참고로 만민교회의 또 다른 무인가 신학교인 연합성결신학교와는 전혀 다른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