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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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성북구, 북악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한 동. 이름의 어원은 한양도성(城)의 북(北)쪽이란 뜻이며, 성북구의 어원이기도 하다. 이 행정동 내의 가장 큰 법정동명 (성북동[3] ) 이 행정동명과 같다. 성북동1가, 동소문동 1가와 4가 지역도 행정동 성북동 관할이다. 동소문동은 원래 법정동 돈암동의 일부였으나, 1963년 동소문동 1~7가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일제강점기까지 성북동은 본래 한적한 교외 지대에 가까운 곳이었다. 조선 시대엔 국왕이 누에 사육이 잘 되도록 비는 제사를 하던 선잠 단지가 있었으며, 풍광이 좋아서 몇몇 양반들의 별장이나 저택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과수원과 밭이 있는 곳이었다. 성북동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1960년대부터로, 삼청터널과 북악산길이 개통된 뒤 서울 도심과의 교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면서 급속도로 개발이 이루어졌다. 이 당시의 개발 광풍을 비판적으로 묘사한 시가 유명한 '성북동 비둘기'[4] 다.
한남동과 마찬가지로 대기업 '''회장들'''의 저택이나 외교관 대사관저들이 대거 분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롯데그룹, GS그룹, 현대백화점, 두산그룹, 효성그룹, 코오롱그룹 등의 일가들이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명박 前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국회의원 또한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고, 성북동 내의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총 25개소 정도 존재한다. 중심 도로 이름부터가 대놓고 '''대사관로'''이다. 장소가 장소인 만큼 각종 사설 미술관, 카페, 고급 레스토랑이 많이 있으며, 한국 최고의 사립 미술관으로 꼽히는 간송미술관 또한 이 곳에 위치해 있다. 90년대 당시 시가 1천억 원에 달하는 최고급 요정 대원각이었다가 법정 스님이 시주를 받아 절이 된 길상사가 이곳에 있다.
2. 전통의 부촌
전통적인 부촌으로 알려진 동네다. 성북동에 거주로 알려진 재벌 및 유명인을 보면 입이 벌어진다. 대표적으로 김영무 김앤장 대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일가, 조양래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회장 일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신문재 전 교보문고 대표,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 이수영 OCI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 박용곤 두산그룹 전 회장, 변종은 스타엠 대표, 이우영 그랜드서울호텔 회장,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 김영훈 대성그룹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허완구 승산그룹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등등의 회장님 집결지로, 정보석, 배용준, 신현준 같은 연예인도 몇몇 거주한다.
길상사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성같은 저택들이 즐비한 저택촌이 형성되어 있는데, 실제로 가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담장 높이가 최소한 3~4 미터는 되는 저택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뭘 해야 이런 곳에 살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 부유층들이 많이 살아 눈이 내리면 도로에 쌓인 눈이 서울에서 가장 빨리 사라지는 동네 중 하나라는 소문이 있다. 참고로 클라라(배우)의 소속사인 일광폴라리스 모기업 일광그룹 회장인 이규태 회장이 이 곳에 거주한다. 시가 약 80억 원 (...) 그는 원래 거물급 무기중개인이다. 그가 입주할 때 성북동 주민들이 심기가 불편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3. 중산층 자택 밀집지
일각에서는 성북동을 최고의 부촌과 달동네의 공존으로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온상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주거에서 느껴지는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서울 도처에 산재하며, 무엇보다 이러한 무지는 성북동에는 중산층의 고급 자택이 없을 것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체적으로 부촌의 이미지는 대로인 성북로 이북 한정이다. 간단하게 '''성북동 330번지'''가 성북동을 대표하는 부촌 대명사다. 그러나 '''성북로 4길'''과 '''성북로 8길''', '''선잠로길''', 그리고 '''성북로23길 초입'''과 '''성북로 23가길'''에 중산층의 고급 주택이 즐비하다.
4. 달동네
부촌과 중산층 자택지와 달리 '''성북로 23길 윗부분''', 즉 한양도성 성곽 자락에 위치한 동네인 일명 북정마을은 아직도 도심 인근에 위치한 몇 안 되는 달동네 중 하나이다. 인근에 위치한 만해 한용운의 거처였던 심우장에서 관찰해보면 도로를 기준으로 빈부격차를 한눈에 파악할 수가 있다. 다른 달동네와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재개발 이야기가 나와서 심할 때는 동네 분위기가 험악해질 때도 있었다. 다만 2011년 이후 일반적인 재개발 사업이 아닌 현 주민들의 터전을 유지하는 마을 공동체 복원 사업으로 바꾸면서 수그러지는 분위기다.
5. 생활 권역
성북동은 크게 두 생활권역에 교차 포함된다.
하나는 이 성북동을 포함해 삼선동, 동소문동은 종로, 혜화가 옆동네이고 진입도 엄청 편한 등 종로구와는 확실히 영향을 많이 주고 받는 종로 생활권역이다. 특히 삼선동과 이 성북동은 1975년에 '''종로구로 편입시킬려고도 했다.''' 하지만 성북동은 명칭 때문에, 삼선동은 성북구청이 있어서 무산되었다. 삼선동, 동소문동에선 3~6가만 가깝지만, 성북동에서는 삼청터널을 지나면 1, 2가 및 광화문도 금방이다. 다른 한편으로 바로 옆 지역인 성신여대입구역 근처의 돈암 생활권역이다.
성북구에서도 본래이자 현재 성북구의 중심지인 삼선동, 동소문동, 성북동, 동선동과 편입과 분리를 거쳐 재편입이 된 길음쪽이랑은 상당히 다른 생활 권역으로, 이 성북동을 포함한 중심 지역은 종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종로 생활권역에 속하고, 길음, 종암, 월곡쪽은 강북구의 영향이 강한 미아, 수유쪽 생활권에[5] , 안암 쪽은 동대문구 (신설동, 제기동) 생활권에 속한다.[6] 실제로 종로구가 중구 다음으로 같은 생활권으로 가장 많이 엮이는 곳이 성북동을 포함한 성북구 서부이다. 그런 면에서 종로구-성북구 서부의 관계는 중구-용산구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전화 국번도 종로구, 중구의 국번을 쓴다.
6. 상권
200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문화 상업 구간으로 떠오르는 상태이다. 간송미술관 성북동 내에 점점이 위치한 미술관이나 문화재 등과 서울 성곽 인근에 위치한 대학로와의 연계로 문화 공간으로서 개발되고 있는 것. 메인 스트리트 격인 성북로를 중심으로 각종 카페, 음식점, 공예품점 등이 들어서고 있다.
의외로 오래된 기사식당들이 여럿 위치해 있다. 주로 돈가스나 연탄에 구운 돼지 불고기 백반 등을 판매하는데, 일찍부터 유명해져서 소문 듣고 찾아온 손님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근처에 병원이나 약국 등의 시설은 부족한 편이다.
7. 교통
애초에 이곳에 대사관들이 자리 잡은 이유가 위치 때문일 정도로 도로 자체는 잘 뚫려있고 교통도 좋다. 대사관로는 삼청터널을 통해 바로 청와대 및 종로 등 서울의 중심부로 이어진다. 남쪽의 삼선교(한성대입구역) 또한 미아, 수유, 도봉, 노원, 의정부에서 서울 도심으로 최단거리로 갈 때 대부분 경유하게 되는 교통의 요지이다.[8] 출근 시간대에는 정릉동 서울 버스 171 종점 부근부터 줄지어있고, 퇴근 시간에는 반대 차선이 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아리고개와 성신여대입구역을 지나는 길이 심하게 막히기 때문에 성북동을 지나려는 차들이 몰린다.
그럼에도 정작 동네의 명성과 도로 교통에 비해 대중교통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이, 일단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한성대입구역까지 최소 1km 이상 떨어져 있다. 대사관로는 명색이 중심 도로이자 삼청터널을 거쳐 서울 중심부(청와대 등)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이나 다름 없는데, 그 흔한 시내버스 노선 하나 없어서 무조건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네이버 지도 등에서 종로구 삼청동의 삼청테니스장과 성북동의 주한일본대사관을 연결할 경우 자동차로는 '''4분''', 대중교통으로는 '''1시간'''이 나오는 괴랄한 상황을 볼 수 있다. 부촌이 다 그렇지만 대중교통 수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사관로 주변에 밀집한 저택들은 대부분 대사관이나 재벌집, 고급 레스토랑들인데 버스가 왜 필요하겠는가.
게다가 중요성에 비해 왕복 2차로 밖에 안 되다보니 러시아워에는 어마어마하게 막힌다. 단, 이는 유사시 적들이 해당 길을 통해 대한민국의 심장부를 향해 순식간에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실제로 인근에 군부대들도 있다.
서울다원학교 근처까지 걸어나가야 겨우 버스 노선 두 개(1111번, 2112번)가 있는데, 그래도 그나마 버스들이 자주 오는 편이고 특히 1111번이 자주 오는 데다 성북동 초입의 경우 삼선교까지 금방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덜하고, 서울 도심부 (한양도성 내부) 와 직선거리는 가깝다. 서울 도심 생활권에 속할 정도로 교통은 좋으나, 수요가 없어서 대중교통은 좋지 않다.
대사관로를 통과하는 것이 서울 중심과 최단거리로 연결되는 방법인 정릉 일대의 대중교통이 매우 불편해졌다. 정릉에서 서울 중심부로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눈 앞에 있는 대사관로를 냅두고 동쪽으로 둘러 길음과 혜화를 거치든가, 아니면 아예 북쪽으로 북악터널과 평창동을 지나 북악산을 돌아가는 괴이한 루트를 택해야 한다. 단, 정릉 쪽은 도로망의 특성상으로도 거리 상으로도 대다수 동네가 혜화, 성북동, 삼선교, 성신여대입구역보다 길음역, 미아사거리역이 도로도 더 잘 뚫려 있고 접근하기가 눈에 띄게 편하다. 당장 길음역이나 미아사거리역은 쭉 내려가기만 하면 되고 가는 길목도 넓지만, 성신여대입구역이나 한성대입구역, 혜화역을 가려면 미아리고개 못지 않게 경사가 높은 아리랑고개를 넘어야하며 길목도 좁다...(...) 사실 정릉 쪽은 원래 앞에서 서술했다시피 미아사거리가 성북구의 중심가보다 접근하기 더 편하기 때문에 불편해졌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 네이버 지도 등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2015년 초에 서울 버스 성북02가 노선을 연장해서 선잠로 쪽으로 운행하고 있다. 성북구의 검토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성북동 거주민들의 교통 편의보다는 길상사 및 박물관 방문객들의 교통 편의를 위함에 더 가깝다.
8. 교육
- 초등학교 - 성북초등학교,
- 중학교 -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동구여자중학교
- 고등학교 -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동구마케팅고등학교
- 대학교 - 한성대학교,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 특수학교 - 서울다원학교
9. 기타
주변 시설로 심우장, 간송미술관, 길상사 등이 있다.
김신조 침투로가 2000년대 후반에 개방되어 산책로로 쓰이고 있다. 이 산책로는 북악 스카이웨이 산책로와 연결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원어민 교수인 Hans Alexander Kneider(한스 알렉산더 크나이더) 교수가 명예 동장을 맡고 있다. 독일인이지만 한국에 거주한지 오래돼서 한국어를 잘 한다.[9] 성북동 세계 맥주 축제 때 사회를 맡기도 했다.
가수 김필의 노래중 '성북동' 이란 노래가 존재한다.
일제 강점기 소설가인 이태준의 소설 <달밤>의 배경이 이 곳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이다.
[1] 2021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2] 성북동 188-18[3] 원래 법정동 성북동 2가였으나, 1975년 '2가'를 떼고 그냥 성북동으로 개칭되었다.[4] 김광섭 지음[5] 석관-장위 쪽은 성북 중심가랑은 거의 연관이 없고, 동대문구의 이문동 생활권에 속한다. 석관과 장위의 경우 노원과도 인접해 있다. 다만 석관-장위쪽도 미아사거리랑은 가까운 편. 정릉의 경우 직선상 거리로는 비슷비슷하지만 아리랑고개로 인해 미아생활권에 속한다[6] 동대문구 신설동과 많이 연결된 생활권이긴 하지만 성신여대입구역과도 꽤 가깝다.[7] 또한, 돈암 지역에서 미아사거리, 길음으로 도보 혹은 자전거로 가려고 하는데 미아리고개를 넘기 싫다면 신설동 제기동 근처로 해서 진입하면 경사 없이 평지로 갈 수 있다. [8] 지금은 그렇지만, 미아리고개의 도로가 공사 후 개량되기 전까지는 미아리고개를 넘어 돈암, 삼선교, 혜화로 가는 루트보다 종암을 거쳐서 청량리로 조금 우회해서 가는 루트를 더 많이 이용하는 편이었다. 그 이유는 돈암-삼선교, 혜화를 경유할 경우 미아리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종암-청량리를 경유할 경우 경사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아사거리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할 시, 두 루트를 모두 이용해 보면, 돈암 ~ 삼선교, 혜화 ~ 종로의 경로로 갈 경우, 올라갔다 내려가는 미아리고개를 넘어가야 하지만, 종암 ~ 청량리 ~ 신설동 ~ 동대문 ~ 종로의 루트로 서울 도심으로 진입할 경우, 약간 우회하긴 하지만 경사가 전혀 없는 평지임을 확인 할 수 있다.[7] 그래서 예전에는 미아 지역에서 서울 도심으로 진입 시, 미아리고개를 넘어 삼선교 혜화를 경유하는 경로보다 종암 ~ 청량리를 경유하는 경로를 주로 이용했다. 실제로 현재 종암로의 경우 중앙차선은 없지만, 동소문로보다 종암로가 차선이 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9] 수업 혹은 공식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에 의하면 80년대 초반에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연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기간이 더 길고 독일에는 1년에 한 두 차례나 몇 차례 방문하는 정도다. 서울대에서 한국학 박사 과정을 밟았기 때문에 학생들보다 한국사에 대해서 더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