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동네
1. 소개
난개발의 결과 형성된 일종의 슬럼, 빈민촌. 판자촌이라고도 한다. 토막촌, 텐트촌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버전.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촌향도 현상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영어로는 그냥 슬럼(slum)이라고도 하지만 판잣집으로 된 달동네는 'shanty tow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영어의 슬럼에는 파벨라 같이 치안이 굉장히 안 좋은 지역이란 의미가 강하게 내포돼 있지만 한국의 달동네는 치안보다는 고지대라는 지리적 환경이나 난개발 구조에 방점이 찍혀 있다.
2. 명칭
달동네라는 명칭이 널리 퍼진 것은 1980년 TBC 동양방송[3] 의 드라마 '달동네'가 방영되고부터이며, 해당 드라마 방영 이전 시기의 신문 자료에서는 이 키워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달동네의 '달'이 가리키는 어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 지구의 위성인 '달(月)'을 뜻한다는 설
밤하늘에 뜬 달과 관련된 의미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달을 보면서 사는 동네라는 의미로 알려진 경우와 달과 가까운 마을이라는 의미로 알려진 경우가 있다.[4]
- 시간의 단위인 '달'에서 유래했다는 설
달세(월세)방이 많아서 달동네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달세는 월세의 부산 사투리다. 실제로 이런 달동네가 시작한 곳이 부산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한국전쟁 당시 판잣집을 '하꼬방(일본어로 '상자'를 뜻하는 箱(はこ, 하코) + 방.)'이라 불렀고, 이 하꼬방들이 모인 동네를 하꼬방촌이라 부르다가 언어순화 과정을 거치면서 달세방촌, 달동네로 되었다는 것이다.
- 고대 한국어 어휘인 달(達; 들)에서 유래했다는 설
사람이 살 만한 지대를 뜻하는 고구려어의 '달(達; [tara])을 따서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산'의 고어로도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 '달'은 산지와 평지를 가리지 않고 사람이 살 만한 지대를 뜻했다. 이 때문에 마을이 곧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지켜야 할 지역과 동일시되었던 고대 사회 특성상 '달(達)'이 곧잘 '성(城)'으로 번역되곤 했다. 그리고 이 '달'의 현대어가 '들(들판)'로, '마을', '고을' 등 다양한 단어들이 쓰임에 따라 의미가 축소된 예이다. 그러나 이 '달'은 삼국시대에 쓰이다가 이후에 사장된 고어이기 때문에 1980년대에 유행한 '달동네'의 어원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3. 특징
대중적으로는 '못사는 동네'와 거의 동급으로 쓰인다. 실제로도 낡은 집이나 구불구불하고 지저분한 골목, 가로등도 몇개 없는지라 밤만 되면 어두침침해져서 치안에도 문제가 있는 등 아무리 봐도 잘사는 동네는 아니다. 물론 달동네의 정의가 빈민촌이 아니라 '산동네 중 빈민촌'이기 때문에 평지에 있는 빈민촌(대표적으로 서울 강남구 비닐하우스촌 등)은 달동네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국에 산과 언덕이 있는 관계로 오히려 평지에 빈민촌이 형성되는 경우는 드물며, 부산 사상구나 사하구 신평[5]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있더라도 지금은 대부분 고층 아파트로 재개발되어 빈민촌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다. 결국 아직까지 남아있는 빈민촌의 대부분은 달동네이다.
시골처럼 매체상에서 곧잘 미화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TV 광고에서 달동네 풍경이 나오면 어딘지 모르게 푸근해지거나 평화롭게 느껴지는 것이 그 예. 그러나 현실은 열악한 인프라 때문에 원주민들도 기회가 있다면 동네를 떠나고 싶어한다.
달동네와 유사한 단어로는 쪽방촌, 판자촌, 빈민가가 있다. 그러나 쪽방촌, 판자촌, 빈민가, 달동네는 의미가 약간씩 다르다.
먼저 빈민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의미적 범위가 가장 크다. 빈민가 안에는 쪽방촌, 판자촌, 달동네가 모두 포함된다. 쪽방촌, 판자촌, 달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민이기 때문이다.
판자촌은 제대로 된 건축자재가 아닌 비닐하우스용 자재, 합판, 두꺼운 천 등으로 만든 집들이 모여 있는 판잣집이 모여 있는 빈민가를 일컫는다. 빈민가에서 제일 열악하고 급조된 형태에 가깝다.
쪽방촌은 집 면적과 관련있다. 한 평 조금 넘는 조그만 방이 모여있는 곳을 주로 쪽방촌이라고 한다. 고시원도 일종의 쪽방촌이라 볼 수 있다.
달동네는 산기슭을 따라 생성된 빈민가다. 달동네는 마을이 위치한 지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달동네는 쪽방촌일 수도 있고, 판자촌일 수도 있으나, 쪽방촌이 아닐 수도 있으며, 판자촌이 아닐 수도 있다. 달동네라 해서 반드시 판자집이 바글거리는 것은 아니다. 아래 예시로 나온 서울의 달동네 대부분이 판자촌과는 거리가 먼 단독주택 및 저층 빌라, 원룸 건물이 모여 있는 동네다.[6] 서울의 대표적인 판자촌이라면 송파구 화훼마을 및 강남구 구룡마을이 있다. 또한 달동네에 있는 집이 무조건 고시원 방 한 칸 급으로 좁은 것은 아니다. 넓은 집은 나름대로 마당도 있고, 좁은 집도 5~8평 정도는 된다. 또한 쪽방촌은 집 면적과 관련된 개념이기 때문에 도심 같은 곳에 존재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고 뉴스에도 종종 보도되는 쪽방촌은 종로3가역 근처에 있다.[7]
4. 지형
달동네는 산을 깎아 만들어 사람이나 차가 다니기 힘든 비탈에 세워진다. 이런데에 있는 이유는 그냥 간단하게 땅값이 싸기 때문. 한국의 경우 1960~70년대 산업화 시절 난개발로 인해 평지에 있는 동네들은 아파트다 산업단지다 상가다 뭐다 세우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땅값이 비싸져서 돈있는 사람들 외에는 못 살고, 돈 없는 서민들은 땅값 싼 산동네 비탈길에 집짓고 살다 보니까 이런 동네가 형성된 것이다. 주로 꼭대기로 올라갈수록 교통 접근성이 취약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땅값이 싸진다.
산지가 아니더라도 빈민들이 외곽으로 밀려나는 것은 신흥공업국이거나 한때 신흥공업국이던 국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는 북미/서유럽/일본의 도시 구조와는 완벽하게 정반대이다. 북미/서유럽/일본은 대체로 도심에 가까울수록 서민들이 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이 지나다니기 불편한 지형을 극복하기 위해 달동네에 복지 차원에서 야외형 에스컬레이터[8] , 엘리베이터[9] , 모노레일[10] , 케이블카[11] 를 설치하기도 한다.
5. 형성 과정에 따른 분류
달동네는 자연발생적 달동네와 인위적 달동네로 나눌 수 있다.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위에서 언급한것처럼 땅값이 싼 곳에 영세민들이 집 짓고 살던 곳인데 과거 서울의 길음동, 월곡동 같은 지역들이 그러하다. 반면에 인위적 달동네는 정부 차원에서 도심지에서 무허가 판자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을 강제 이주시켜 형성된 곳인데 주로 국가 소유 국유지가 평지보다는 산지에 있어서 그곳으로 이주시키다 보니 달동네가 되었다. 서울의 미아동, 봉천동, 신림동 등이 대표적.
두 종류의 달동네 차이는 이렇게 보면 된다. 자연적으로 생긴 곳은 제멋대로 땅을 차지하여 집을 지었기 때문에 집 크기가 제각각이다. 그러니 간혹 달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위치는 불량주택 밀집지역이지만 50평 이상의 평수가 큰 주택이 종종 등장한다. 반면에 인위적 강제 이주지역은 행정기관이 한 집당 10평 정도의 규격화된 대지분할을 했기 때문에 집 크기가 규칙적이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재개발 완료되어 이 차이를 알아보기는 힘든데 특성상 후자의 지역이 먼저 재개발되었다. 전자의 지역은 대형 평형 주택소유주들의 동의가 어렵기 때문. 참고로 한국의 달동네 재개발사업 구조는 큰 평수 소유주들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감정가가 실거래가에 한참 못미치지만 이를 배정받는 아파트의 프리미엄으로 보충하는 구조인데 대지지분이 7평이던 70평이던 아파트 1채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아동, 신림동 산동네 국유지에 강제 이주 시키다가 아예 더 큰 스케일로 이주시킨 곳이 바로 '광주대단지' 광주대단지사건 참조.
서울에서 인위적 달동네는 도심부개발사업이 진행되던 1960~70년대 도심 판자촌을 밀어버리며 시 외곽 국유지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생겨났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노원구 백사마을, 성북구 정릉골 등이 있다. 이런 곳의 대표적인 특징은 집 평수가 거의 7~10평 남짓이며 집 크기가 규칙적이고 집들이 마당 없이 벽을 경계로 붙어있다시피 늘어서 있다는 점이다. 강제 이주시킨 후 땅에 백묵으로 선만 그어놓고 알아서 집을 짓고 살라고 했기 때문에 발생한 특징이다. 단, 시간이 흐르면서 공가도 생기고 다른 집을 매입하기도 하고 조금 있는 빈 자리에 집을 확장하기도 하면서 이런 특징이 많이 없어지기는 했지만, 잘 찾아보면 이런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곳이 아직 남아 있다. 또한 마을 곳곳에 공용화장실 및 그 흔적이 있다. 상하수도 시설을 깔아놓고 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이주시켜놓으면 거기에서 사람들이 알아서 어떻게 할 거라고 일단 옮겨놓고 방치해버렸기 때문에 좁은 실내면적 문제와 더불어 하수 처리 문제로 인해 공용화장실이 군데군데 설치된 것이다.
한편,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다시 형성 과정에서 자연발생적 달동네와 슬럼화되어 달동네가 된 경우 - 이렇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1980년대까지 당시 기준으로 중산층들도 사는 멀쩡한 동네였다가 슬럼화가 진행되며 달동네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첫 번째는 서울에서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대체로 늦어도 한국전쟁 직후부터 토막촌, 판자촌으로 시작해 거주민들이 집을 개보수하며 판자집 형태에서 벗어난 경우다.
두 번째는 과거에 멀쩡한 동네였는데 슬럼화가 진행되며 달동네로 전락한 경우다. 서울의 경우 도시 내부에 언덕, 산이 상당히 많아서 많은 동네가 비탈을 따라 건물을 올릴 수 밖에 없다.[12] [13] 1990년대부터 중산층들이 대거 아파트로 이주하기 시작하면서 단독주택, 빌라, 연립주택 등에 빈민들이 들어와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언덕과 비탈이 많다는 지리적 특성과 슬럼화가 맞물리면서 과거에는 멀쩡한 동네였으나 현재 달동네 소리 듣는 동네들이 이때부터 꽤 생겨났다. '비탈을 따라 높은 곳까지 형성된 마을 + 슬럼화 = 달동네' 라는 공식이 적용된 것이라 보면 된다. 대구 남구도 대략 이런 양상인데 앞산 인근에는 집들이 큼직큼직 하지만 80년대부터 슬럼화되어 지금의 달동네가 되었다.
자연발생적 달동네에서 기원에 따라 자연발생적 달동네인 곳과 슬럼화로 인해 달동네로 전락한 곳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좁고 낮고 건물에 슬레이트 지붕 및 시멘트 기와 지붕이 올라가 있는 집들이 있다는 것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14] 인위적 달동네와 자연발생적 달동네는 외관상 뚜렷한 차이가 존재하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존재하는지를 찾아보면 구분할 수 있지만 자연발생적 달동네의 하위 분류인 기원에 따른 자연발생적 달동네와 슬럼화로 인한 달동네를 동네 외관만 보고 구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달동네들은 외관이 거의 똑같다. 그저 이후 땅주인이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빌라, 원룸을 올렸느냐, 예전 형태 그대로 단독주택이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 정도의 차이다.
서울의 경우, 자연발생적 달동네에서 기원에 따른 분류는 서울의 발전 과정을 참고해 몇몇 지역에 대해 대략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도심인 종로와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위치한 달동네는 슬럼화로 인해 달동네가 된 경우라 볼 수 있다. 1960-70년대에 도심부개발사업 및 도심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도심에서 가까운 달동네는 싹 다 밀어버렸기 때문이다. 마포구, 서대문구, 종로구, 중구에 존재하는 달동네들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한편, 혐오시설 (미군기지 등) 주변에 있는 달동네는 기원 자체가 자연발생적인 곳이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용산구 한남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6. 한국 달동네의 특징
비록 저소득층이 한국의 달동네 인구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치안은 무법천지나 다름없고 물도 전기도 제대로 안나오는 상당수 외국의 슬럼가(가령 브라질의 파벨라)와는 거리가 멀다.[15]
경사가 심해서 생활하기 불편하다는 단점에 비해 장점도 있는데, 대부분 고지대에 위치해 있다보니 전망이 좋고 장마철에도 침수를 피해간다. 그렇다보니 서울 종로구의 평창동과 성북동, 용산구의 이태원동, 한남동 처럼 상류층과 공존하는 달동네도 있다. 경사도가 심해서 걸어다니기엔 힘들지만 고급주택이나 대사관 등이 다수 위치해있다. 부촌과 저소득층 지역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통행로의 상태를 들 수 있다. 부촌의 경우 잘 관리된 도로처럼 되어있는 반면, 저소득층 지역은 계단이 많고 콘크리트를 대충 바른 듯한 데다 차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곳도 있다.
일단 많은 개발도상국들과 달리 한국은 선진국이고 국가의 행정체계가 제대로 잡혀있기 때문에 치안은 한국 내 기준에서는 몰라도 세계수준으로 본다면 매우 좋은 축에 들며, 지자체가 인프라 관리를 하고 있으며 거주인구에 대한 행정관리 역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거주자들 또한 인생을 사실상 포기한 외국 슬럼 인구와 달리 주류사회로의 편입을 위한 열망과 의지를 가지고 있고 교육서비스 또한 상위 소득층에 비해 질의 차이가 있을 뿐 양호하게 이루어지며 국가에서 보장하는 의료 서비스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허나 이런 환경으로 변한 시기 역시 그리 오래 전이 아니어서, 198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달동네하면 인프라가 잘 깔려있지 않는 등 치안을 제외하면 외국의 슬럼가와 크게 다를바 없었다. 이 당시의 경제상황을 보면 이상할것도 없지만 말이다. 맨몸으로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사람이나 철거민들, 일용직 노동자들같은 당대의 돈없는 서민들이 달동네에 많이 살았다. 이런 모습은 한국 문학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수많은 한국의 현대 문학 작품[16] 에서 주로 비참한 서민들이 사는 곳으로 묘사되곤 했다. 슬픈 사실이지만, 실제로도 그런 동네였기도 하였다. 서울의 경우 강북구의 미아동, 성동구의 금호동, 옥수동쪽이 달동네의 메카라 불릴 정도로 달동네가 많았지만 재개발이 되었다.
본 사진의 장소는 부산 감천문화마을이다.
실제로 70년대에 그 많던 달동네들은 8~90년대의 집중적인 재개발 붐으로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6.25 전쟁 때 피난민들이 형성한 마을로 시작된 상당수의 달동네가 분포한다. 부산광역시에서도 서구 충무동처럼 대규모 뉴타운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워낙 험난한데다가 위의 역사적 가치도 있고 해, 사업이 진행이 더디다. 현재 시행이 되는 곳을 굳이 꼽자면 뉴스테이로 선정된 남구 감만동의 감만1구역 정도다.
부산 동구의 수정동과 좌천동 북부지역의 경우는 특이한 경우인데, 1970년대 전반적인 도심계획개발을 위해 수천가구의 판자촌을 철거하고, 원 거주민을 해운대구의 재송동 일부지역과 반여동 반송동 같은곳으로 강제이주 시키고 시에서 새로운 거주민들에게 저렴한 아파트 단지, 혹은 구획별로 계획된 단독주택지를 보급했으나, 이 역시도 낡아지면서 90년대 중반부터 대규모 개발의 필요성이 꾸준히 언급 되었으나, 위치가 시내와 가까워 평균적인 지가와 토지매입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 사실상 수익성이 나지않아, 대규모 재개발이 불가능 해졌고, 설상가상으로 해운대구 지역의 신도시개발까지 이루어지면서, 재 슬럼화가 이루어진 것. 이 이외의 달동네 마을은 6.25전쟁으로 부터 그대로 이어져온다 보면 된다.
동구의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사하구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 같이 재개발을 하지 않고 원형 그대로(까지는 아니지만) 보존하는 경우도 있다. 부산의 달동네는 영화 사생결단의 로케지로도 쓰였다. 특히 감천2동 감천문화마을의 경우 알록달록하게 칠해놓으니까 주변의 풍광과 어우러지며, 감천문화마을 도시재생사업 프로젝트가 대성공하여 상당히 유명해졌고, 한국의 산토리니라며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 있을정도에 이르렀고 부산 뿐만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몰려온다. 심지어 럭셔리 여행잡지인[17] 콘데 나스트 트레블러에서 까지 주목하며, 연간 1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흰여울문화마을도 유명하다.
인천광역시에서는 과거 달동네였던 곳(동인천역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을 세웠다. 이쪽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체크해보자. 구청에서 세운 박물관이기 때문에 입장료도 성인 1000원, 청소년 700원, 어린이 500원 4세 이하나 65세 이상은 무료로 저렴하다. 홈페이지
무당집이 같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물론 달동네 뿐 아니라 슬럼화된 단독주택가들도 마찬가지. 이런 이미지 탓에, 한국에서는 단독주택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나쁘다. 하지만, 새로이 개발되는 단독주택 단지와 개성있는 디자인의 재건축하는 단독주택 그리고 기존 정원있는 단독주택이 리모델링된 카페로 인해 많이 개선되고 있다.
7. 현재 달동네인 곳
7.1. 서울특별시
7.1.1. 강북권
산이 많고 구도심인 강북 지역 특성상 강북에 많이 몰려있다. 서대문구 동쪽 - 종로구 북서쪽 - 성북구 서쪽으로 이어지는 북한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지역은 온갖 거주 형태가 모여있는 가히 서울 달동네의 메카...라 할 만하다. 역사가 꽤 오래된 마을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실향민 및 이촌향도 현상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와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달동네가 된 곳도 여러 곳 있다는 점이 강북권 달동네의 특징이다. 또한 강남권에 비해 형성 시기가 이른 편이고 형성이 마무리된 편이 빠른데다 정부에서 집중적인 판자촌 확장 단속 및 관리를 시행했고, 강남권 달동네보다 이른 시기에 재개발되었기 때문에 재슬럼화가 발생해 다시 달동네가 된 지역도 여러 곳 존재한다는 점도 특징이다. 종로구는 관할구역 안에 산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다 청와대 때문에 개발제한이 걸린 곳도 있고 문화재도 산재해 있어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개발이 가로막혀 낙후된 상태로 머무르다보니 달동네로 전락한 동네가 많다. 노원구 달동네는 1960년대 말부터 서울 도심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도심에 존재하던 판자촌을 대대적으로 철거하고 경기도 양주군 국유지로 강제이주시켰던 곳들이 서울로 편입된 케이스다.
- 강북구 - 삼양동[18]
- 노원구 - 상계동 (양지마을, 합동마을, 희망촌)[19][20] , 중계본동 (백사마을)[21][22]
- 도봉구 - 도봉동 (무수골, 안골마을)[23]
- 동대문구 - 이문동, 회기동, 휘경동
- 마포구 - 공덕동, 대흥동, 도화동, 서강동, 신수동, 아현동, 염리동, 용강동
- 서대문구 - 북아현동, 천연동, 홍은동 (호박골마을), 홍제동 (개미마을)[24]
- 성동구 - 금호동 재개발 취소 지역[25] , 마장동 (꽃담벽화마을), 사근동[26]
- 성북구 - 정릉동 (정릉골), 성북동 (북정마을)[27] , 삼선동 (낙산 일대, 장수마을)[28] , 장위동[29]
- 용산구 - 이촌동, 삼각지역, 용산역[30] 인근 등을 제외한 구 대부분[31][32]
- 은평구 - 갈현1동 일부, 녹번동, 대조동 일부, 불광동, 수색동[33]
- 종로구 - 숭인동, 이화동, 충신동, 창신동, 혜화동[34]
- 중구 - 다산동(구 신당2동), 필동[35]
7.1.2. 강남권
강남 지역에서는 관악구에 많은 편이다. 관악구는 달동네가 워낙 대규모로 존재하다보니 일반적인 자료에서 보통 마을 단위로 다루는 다른 구와 달리 동 단위로 다룬다. 서초구, 강남구, 송파구는 1980년대부터 생긴 판자촌, 비닐하우스촌이 여기저기 산재해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구로구, 금천구, 영등포구는 달동네보다는 쪽방촌으로 유명한 편이다.
- 강남구 - 개포동 (재건마을, 구룡마을, 달터마을)[36][37]
- 관악구 - 신림동 (난곡동, 난향동, 삼성동, 서림동)[38] , 봉천동 (청림동, 은천동 등)
- 구로구 - 가리봉동, 고척2동
- 동작구 - 상도동 (새싹마을)[39][40]
- 서초구 - 방배동 (성뒤마을, 윗성뒤마을, 국회단지, 두레마을)[41]
- 송파구 - 장지동 화훼마을[42][43]
- 영등포구 - 대림동, 도림동, 신길동
7.2. 부산광역시
부산의 달동네는 대부분 6.25 전쟁 당시 피난민 정착촌으로 형성되었으나, 60년대 이후 부산으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생긴 곳도 있다.
- 금정구 - 서동, 금사동, 부곡동 일부
- 남구 - 문현동(돌산마을), 우암동(금골마을), 대연4동(우룡산공원 동쪽), 용당동
- 동구 - 구의 서부 지역 [44] 현재는 북항재개발로 인해 대부분 철거 후 아파트 단지로 개발중이다.
- 동래구 - 명장2동, 복산동[45]
- 부산진구 - 개금동, 범천1동, 부전동 양정동과 전포동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
- 북구 - 구포동[46] , 만덕동[47]
- 사상구 - 주례2동, 주례3동, 엄궁동 일부 [48]
- 사하구 - 구평동, 감천동(감천문화마을), 괴정2동, 신평동, 장림동
- 서구[49] - 남부민동, 초장동, 아미동 대부분, 부민동, 암남동, 충무동, 서대신동 일부
- 연제구 - 연산2동(물만골마을), 연산3동 일대
- 영도구 - 거의 전체[50]
- 중구 - 보수동, 영주1동, 영주2동, 대청동
- 해운대구 - 중동 일부, 반송동, 우1동 북쪽지역, 재송동 동부지역, 반여2,3동, 센텀(센텀시티 아님)
7.3. 인천광역시
7.4. 대구광역시
1960~1970년대만 해도 중, 상류층이 거주하던 부촌이었으나 이면도로망이 부실함에 따라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스스로 쇠락한 곳이다.[53]
경대로19길, 경대로서19길이 대표적이다. 단층의 오래된 단독주택 위주인데 특이하게 여러 집이 한 지번을 공유하는것이 많다.
산 위에 조성된 서민 동네인데 비산7동은 불법주차가 심해서 그렇지 길은 잘 나있는데 재개발 이전의 원대동과 현재의 비산1,2,3,6동은 길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있다. 골목을 낸다며 집의 일부를 잘라놓거나[54]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구 최고의 부촌이지만, 대구여자고등학교 뒤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서민들의 판자촌이 있다. 크지는 않고 달서구 미로마을과 비슷한 크기다. 1~2층 단독주택으로 이루어졌으며 골목은 매우 좁은데다 고저차도 심하고 불법주차가 심하다. 세부적으로는 달구벌대로 488길의 서쪽은 낡은 단독주택가이고, 동쪽은 묘지로 추정되는 야트막한 산과 도로보다 낮은 그 산기슭에 몇채의 낡은 단독주택과 텃밭이 있다. 판자촌 뒷편으로 두산위브더제니스가 보이는 모습은 착잡함을 느끼게 해준다.
7.5. 울산광역시
- 남구 - 야음동신화마을, 장생포, 두왕동, 무거1동 와와마을
- 중구 - 태화동,서동, 동동, 우정동, 북정동
- 북구 - 강동동, 정자동, 농소1동 [55] [56] , 농소2동 [57]
- 동구 - 대송동, 화정동, 일산동의 일부 고, 저지대 지역 [58]
7.6. 대전광역시
7.7. 충청북도
7.8. 강원도
7.9. 경상남도
7.10. 전라남도
7.11. 전라북도
8. 한때 달동네였던 곳[64]
8.1. 서울특별시
- 관악구 청림동: 1980년대-1990년대 당시만 해도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하나였다.
- 중구 신당동(약수동) 서울 지하철 6호선 버티고개역 일대: 1994년 재개발되어 아파트촌으로 변했다.
- 중구 황학동: 1998년부터 시작된 도로공사나 재건축, 롯데캐슬 건설로 많이 헐렸지만 그래도 일부나마 그 흔적이 남아있다.
- 종로구 충신동 현 낙산공원 일대: 시민아파트 주변은 헐렸지만 아직도 일부 남아있다. 특히 이화동 방향으로.
- 강북구 미아동: 미아뉴타운 사업으로 많이 헐렸지만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 성동구 - 금호동, 행당동: 행당동은 금호동 인근에 일부 흔적이, 금호동은 신금호역 근처에 일부 남아있다.
- 양천구 - 신월동(신월6동)
- 성북구 길음동, 안암동, 종암동, 하월곡동 - 세 곳 모두 대규모 재개발로 상당수 헐렸으나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 성북구 돈암동
- 성북구 보문동: 재개발 예정이나 진척이 느리며,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 동대문구 제기동, 청량리동: 1990년대 후반에 상당수 재개발로 헐렸으나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 성동구 옥수동, 금호동 일부: 서울의 달 촬영지로 유명한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였으나, 부분 부분 재개발로 많이 헐렸다. 그러나 여전히 곳곳에 제법 남아있다.
- 마포구 공덕동, 아현동: 현재는 마포 래미안 푸르지오 아파트를 포함한 아현뉴타운이 들어서 있다.
- 관악구 신림동(난곡동): 서울 시내 최후의 달동네였던 동네 중 하나. 현재 관악산휴먼시아 및 푸르지오아파트, 삼성산 주공아파트 일대 지역이 전부 달동네였다. 2002년 경 철거가 시작되어 현재 대부분 지역이 철거, 지금은 삼성동(舊신림6, 10동)지역에 일부 남아있다. 일부 남은 지역도 신림뉴타운 지역으로 묶여있긴 한데... 언제 될 지는 기약이 없어 보인다.
- 관악구 봉천동: 숭실대입구역에서 서울대입구역으로 넘어오는 길 양편에 생긴 아파트들은 대부분 달동네를 재개발한 곳이다. 현재도 국사봉터널 입구 인근에 일부 흔적이 남아있다.
- 금천구 시흥동(시흥2동): 현재의 벽산아파트.
- 동작구 상도동(상도4동) 밤골마을
- 동작구 사당동(사당2~3동): 1980년대 중후반에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되었다.
- 서초구 서초동(서초3동) 산청마을: 1970년대 영동지구택지개발사업으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서초3동 산 160번지 일대에 판자촌을 형성한 것이 그 기원. 2010년에 화재로 마을이 전부 불타버렸고, 이를 계기로 서초구가 이곳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으로 옮겨갈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했다. 그 결과 2013년에 이주가 완료되어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 송파구 거여동(거여2동) 개미마을: 서대문구의 개미마을과는 이름만 같은 별개의 마을이다. 거여마천뉴타운 사업으로 철거되었다.
- 은평구 - 응암동, 진관동 : 응암동의 경우 백련산재개발사업구획에 포함되어 달동네 일대가 전부 아파트로 바뀌었다. 진관동 또한 북한산이 있어서 달동네가 많았지만 은평뉴타운 사업으로 동 전체가 재조성되어 달동네들이 사라졌다.
8.2. 부산광역시
- 해운대구 우2동 해운대공업고등학교 주변: 원래 낙후된 주택들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으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해운대자이 1차, 2차 아파트가 들어섰다.
- 해운대구 중동 롯데캐슬 마린 아파트 서쪽: 마찬가지로 노후 주택 밀집 구역이었으나 롯데건설에서 해당 지역의 주택들을 모두 매입해서 해운대 롯데캐슬 스타 아파트를 건설중이다.
- 남구 용호4동 농협하나로마트 뒷편: 슬레이트 지붕이 포함되어 있으며 붕괴 위험이 있는 위험한 주택들이 산재한 곳이었으나 재개발 이후 용호예가 아파트가 들어섰다.
- 남구 용호2동 운산초등학교 인근: 2018년 초까지만 해도 매우 열악한 판자촌들이 밀집된 지역이었으나, 대단지 아파트로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었다.
- 남구 용호2동 오륙도 인근 : 원래 한센병 환자들이 돼지와 닭을 치면서 모여살던 지역이었고, 노후한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었으나, 개발이 진행되면서 모두 철거되고 오륙도는 부산의 자연 관광지가 되었고 인근에는 최고 47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인 오륙도 SK뷰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 남구 대연3동 경성대학교 동쪽: 이전한 군수사령부와 주택들이 혼재해 있었으나, 재개발과 혁신도시 사업이 진행되면서 대연 롯데캐슬 아파트와 대연 힐스테이트푸르지오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 남구 대연6동 남구청 서쪽: 다양한 종류의 주택들이 모여있던 곳이었으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대연 롯데캐슬 레전드 아파트가 들어섰다.
- 수영구 민락동 민락역 인근: 낙후된 주택들이 모여있었으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더샵 센텀포레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 동구 범일동 매축지마을: 부산에서 손꼽히는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철거 후 48층 규모의 오션브릿지 아파트가 건설되어서 2017년 입주가 되었으며, 이후 2019년엔 오션브릿지 앞쪽 주택가도 철거되고 49층 규모의 두산위브 더제니스 하버시티 아파트가 건설중이다. 제니스 하버시티 옆쪽의 남은 주택가도 철거 후 56층 규모의 아파트가 들어올 예정. 매축지 마을 옆쪽의 한진택배가 위치하던 부지도 대우건설에게 매각되어서 60층 이상의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이 추진중이다.
- 동래구 사직동 사직역 주변: 원래 오래된 중저층 주거지였으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롯데캐슬 더 클래식, 삼정그린코아, 아시아드 쌍용예가 등 아파트들로 개발되었다.
- 동래구 명륜동: 2010년대 들어서 재개발이 진행되며 아파트 단지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 연제구 거제2동: 소위 거제리 안동네라도 부르던 곳.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듯이 형성된지 오래된 달동네였고 주거지 외에는 공장들과 군부대[65][66] 가 위치해 있었다. 1998년을 전후하여 부산시청이 중앙동을 떠나고 경찰청도 함께 이사를 준비함과 동시에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본래 부지에 있었던 향토사단 부대를 민 다음 지어지면서 법조타운이 형성, 거제2동의 평지 부분 대다수가 개발되었다. 남은 부분도 야금야금 재개발이 진행되다가, 마지막으로 남은 산동네(아시아드대로 기준 좌측)부분을 '거제2구역주택재개발정비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철거가 거의 이루어졌다. 이제 옛날의 흔적이라고는 재래시장인 거성시장 인근과 롯데마트로 예정되어 있는 검찰청 옆 구역 밖에 남지 않았다.
- 금정구 장전동 금정초등학교 서쪽: 슬레이트 지붕으로 구성된 낡은 주택들이 많던 달동네 였으나 재개발이 되면서 래미안 장전 아파트가 건설되었다.
- 북구 구포1동 구포초등학교 주변: 낡은 주택들이 백양대로 주변에 형성되어있었으나 반도건설에서 주택들을 매입하여 반도유보라 아파트를 건설중이다.
- 북구 만덕1동 만덕중학교 이북 지역: 고지대에 낙후된 주택들이 상당수 있었으나, 재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강제철거된 후 LH와 대림산업에서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건설중이다.
8.3. 대구광역시
- 달서구 - 두류1.2동 내 달서구 파도고개로10길부근(일명 미로마을). 대구 사람들도 거의 모르는 곳이다. 부산 수준의 달동네가 아닌 그냥 나지막한 언덕에 조성되어 있었으며, 마을이라기보단 한 블럭 정도로 좁은 구역이었다.[67] 내부 골목은 좁고 아주 복잡하며,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많아서 위험한 곳도 있었다. 약간 높은 지대에 있어 시야가 탁트이는 장소도 있었는데, 바로 앞에 83타워가 있어 판자촌과 큰 대비가 되었다. 미관증진을 위해 美로마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3년을 전후하여 벽화가 여기저기 칠해지기도 하였다. 2020년 초반부터 두류 4구역 개발 구역에 포함되어 헐렸다. 헐린 부지에는 KCC 스위첸 아파트가 세워진다.
8.4. 경기도
- 성남시 중원구 은행1동: 과거 자혜촌이라는 이름으로 판자촌이 있었으나, 1990년대에 현대아파트와 주택가로 재개발되었다.
-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과거 퉁수바위 마을이라고 불리웠던 수원의 마지막 달동네가 있던 곳이었지만 2009년 주민들의 보상 및 퇴거 이후 철거되어 동공원이 조성되었다.
- 광명시 철산4동: 남쪽 지역 대부분은 도덕파크, 브라운스톤[68] 등으로 재개발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일부 흔적(재개발 안 된 일부 북쪽)이 남아있다.
- 부천시 범박동: 과거 신앙촌으로 있던 곳은 2000년대 초반부터 범박동 현대홈타운[69] 으로 재개발되었고 그 이외의 지역은 아직 달동네가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부천 일루미스테이트라는 고급 아파트촌으로 재개발 중이다. 그리고 계수대로를 기준으로 아래쪽은 옥길지구로 재개발 중이다.
8.5. 인천광역시
8.6. 경상남도
-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2동 율림지구: 2014년 까지만 해도 근처 메트로시티, 한일4차 등 아파트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이러니한 달동네였으나 2015년 재개발로 인해 코오롱 아파트가 건설되고 2016년 2~3분기에 완공되어 조금 나아졌다. 다만 한일로타리 버스 정류장에서 고작 한 정류장 차이인 정우맨션 주변의 분위기는 매우 다른데, 한일로타리 정류장 앞에는 2020년 현재 경남에서 가장 높은 아파트인 메트로시티 2단지가 있는데 비해 정우맨션 정류장에 내려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오래되어 영업을 그만둔 허름한 상점들이 즐비하다.
9. 외국의 달동네(셴티타운)
사실 이런 '달동네' 스타일의 마을은 세계적으로 찾아봐도 많이 있다. 2010년초 일어난 아이티 지진은 지진 방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달동네쪽에서 일어난게 특히 수많은 인명/재산피해를 냈었다. 그 밖에도 1999년 벌어진 터키 이즈미트 대지진도 게제콘두라고 불리우는 달동네 사람들이 2만명 가까이나 목숨을 잃었었고 2011년 반 대지진에서도 역시 달동네 사람들이 주로 목숨을 잃거나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브라질 등 개발도상국에 있는 달동네들은 '''치안이 안좋은 국가 내에서조차도 가장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9.1. 남아프리카 공화국
'''타운십(Township)'''이라 부른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홈랜드 구역으로 추방되지 않고 계속 남아공 국적을 유지한 흑인들이 주로 살았다. 요하네스버그 근교의 '소웨토'(SOWETO)가 대표적인데,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된 이후로도 타운십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9.2.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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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파벨라(favela). 예수상 등 '''뒤편에'''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예수상을 중심으로 주변 사진을 찍을때 항상 앞으로만 찍는다. 경찰병력이 모자른데다가 부패하기까지도 하며 당연하겠다면 당연하겠지만 길도 좁아터지기 때문에 종종 마약조직이나 범죄조직들이 근거지로 삼기도한다. 구룡성채 수준으로 내부가 복잡하고 음침해서 길을 잃기 딱 좋다. 어둡고 습하고 좁은데다 애초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 파벨라에 주거하다보니 불결하기까지 해서 전염병 환자들도 많다고. 브라질 정부는 일부 파벨라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공권력이 미치는 곳에는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They Don't Care About Us의 뮤직비디오가 바로 이곳. 보면 경찰이 아니라 평화유지군이 마이클 잭슨을 경호하고 있는걸 볼수 있으며 중간의 난입한 팬에게 마이클 잭슨을 보호하는 모습도 나온다.
파벨라 중 한 곳에는 "코레야" 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한국을 뜻하는 단어지만 왜인지 듣기에 괜찮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자기네 동네 이름을 그걸로 정했다고.
9.3. 콜롬비아
2011년 콜롬비아의 메데진에 있는 한 달동네에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큰 화제가 되었다. 에스컬레이터의 총 길이는 약 384m, 높이는 건물 28층 정도 이다. 걸어서 35분 걸리던 비탈길을 '''6'''분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됐다고(...)[70] 이 메데진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는 굉장한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마약거래와 범죄의 온상이었던 도시의 치안이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개선되었고. 월 3만명 정도의 관광객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공원, 도서관 같은 생활 SOC가 조성된건 덤. 이러한 성과로 2016년에 도시행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느낌의 도입이 이루어졌다. 비록 모노레일이지만, 부산광역시 동구는 초량동 168계단에 모노레일을, 중구는 영주동에 모노레일을 건립,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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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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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프랑스나 남유럽 지역에도 달동네가 있다. 현재는 주로 이민자들이나 집시가 많지만 전에는 백인 빈민층들도 굉장히 많이 살았었다. 사진은 유럽에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달동네, 슬럼 판자촌인 마드리드 외곽 옛 목축용 도로를 따라 나 있는 스페인의 까냐다 레알 갈리아나. 프랑스에도 과거엔 '비동빌'(bidonville)이라 해서 구룡마을 비슷한 판자촌이 있었지만 70년대부터 정부에서 이들을 지금의 방리유 영구임대아파트로 이주시키면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다만 그들이 이주한 임대아파트 단지 자체, 혹은 임대아파트들이 많은 지역 자체가 다시 슬럼화 되어버린게 함정.
9.5.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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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앙카라에 있는 게제콘두(Gecekondu).[71] 서울 거주 중장년층이라면 위 두개 사진을 어디서 많이 본 것과 비슷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진짜 별 차이 없다. 애초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한국에서 상당한 공감을 얻은 이유도 바로 이런 유사점 때문.
하지만 이로 인하여 터키에서 종종 벌어지는 강력한 지진에 게제콘두가 그야말로 몰살당하는 사례가 많다. 그야말로, 건축 전문가가 아닌 민간인이 몰래몰래 가장 싼 재료나 그야말로 재활용 재료로 대충 지은 집이라 강력한 지진에는 그야말로 집이 통째로 무너져 온식구가 생매장되는 사례가 많다. 1999년 이즈미트 대지진때도 게제콘두가 무너져 사망자가 많았었다.
10. 관련 문서
- 낙후지역
- 도시
- 도시공학
- - 이름처럼 달에 세워진 최초의 우주 식민지로 작중 배경이 26세기다 보니 우주 구석구석에 식민지가 생기고 슬럼가로 전락해버린것으로도 모자라 헬게이트까지 열렸다.
- - 구장 위치도 그렇고 구단 로고 때문에 한국에서 주로 산동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 달동네(드라마)
[1] 대부분은 아파트가 들어서도 도로가 정비되며 대중교통이 더 가까이 연결되어 주거지역이 쾌적해진 정도지만 일부 지역은 산의 절반을 날려 버리고 평지로 만들었다든가 하는 곳도 있다. 가령 신림동 달동네 일부 지역이 그렇다.[2] 'shanty'가 판잣집을 뜻한다.[3] 얼마 못 가 언론통폐합으로 강제 폐국된 후에는 KBS1에서 이어서 방영하였다.[4] 산을 깎아서 만들어지기에 지대가 높아져서 그런듯하다.[5] 둘 다 예전에는 공단이 있어서 평판이 썩 좋지는 못했지만 현재는 서서히 고쳐나가는 중.[6] 아래 예시로 나온 서울 달동네 상당수가 시작은 판자촌 및 토굴이 모여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판자촌이 한 자리에 제대로 정착하면서 나름대로 제대로 된 건축자재로 개보수하며 판자촌 형태에서는 거의 다 벗어났다.[7] 일반 대중들이 '쪽방촌'이라는 용어에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사용하지 않지만, 고시원이 밀집해 있는 곳도 엄연히 쪽방촌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상당수 고시원이 도시 빈민들의 거주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 달, 심지어는 일 단위 계약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도시에 유휴지가 많아 무허가 건물들이 올라가 판자촌을 형성하고 달동네가 되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고시원, 원룸 등이 과거 판자촌, 달동네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8] 홍콩의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나 콜롬비아의 메데진 등[9] 포르투갈 리스본의 엘레바도르 산타 후스타,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엘레바도르 라세르다 등[10]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중구의 영주동 오름길 모노레일 등[11] 볼리비아 라파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브라질 리우데자이루 콜롬비아 메데진[12] 이는 현재 서울의 번화가라 불리는 강남3구도 해당한다.[13] 심지어 현재까지도 재개발하는 지역을 보면 언덕 하나 전체를 평탄화하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고 오히려 이렇게 할 경우 여러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건물 지을 자리만 평탄화시키고 건물을 올리고 있다. 최신 아파트가 언덕 꼭대기 언저리에 세워져 있는 것을 떠올리면 정확하다.[14] 이런 집들도 나름 부촌에 위치한채 겉은 다 쓰러져 가지만 내부는 리모델링을 했다면 생각보다 서민적인 가격을 보여주지 않는 집들도 많다. [15] 하지만 한국도 1980년대까지는 공동수도, 공동 화장실을 써야했던 곳이 많았으며 시설도 재래식이라서 좋다고 할수없었다. 물론 이 당시에는 수세식화장실이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지라 공중화장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바는 없었기는 했던 시절이지만 화장실은 아직도 공동 화장실을 쓰는 달동네가 존재한다.[16] 조세희 선생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작품은 읽어 보지 못했어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정도다.[17] 전용기 보유자들을 위한 섹션까지 있을정도로 호화여행에 중점을 두는 잡지이다[18] 박원순 서울특별시 시장이 2018년 옥탑방 한 달 살이한 곳. 그러나 일반적인 달동네라기 보다는 달동네 + 일반주택가로 보는게 맞다. 신축빌라도 꽤 있으니까.[19] 양지마을, 합동마을, 희망촌은 상계 3.4동에 있다.[20] 신림동과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난곡동 일대는 판자촌이 아주 많아서 상당히 악명 높은 지역이었다.[21] 일명 서울 최후의 달동네로 유명한 그 곳이다. 다른 달동네들과 달리 좀 외진 곳에 뚝 떨어져 있고 규모가 꽤 되어 1,500세대 3천여명 가량 거주하느라 그런 이름이 붙은듯하다. 다만 이쪽도 곧 재개발 예정이다.[22] 노원구 양지마을, 합동마을, 희망촌, 백사마을은 서울도심재개발사업 당시 판자촌을 밀고 강제이주시켜 만든 달동네들이다. 그래서 인위적으로 형성된 달동네 특징이 매우 잘 나타나는 곳이다.[23] 도봉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들이다.[24] 2001년 3월 4일 이곳에서 주택 화재로 소방관 6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25] 1-2구역, 21구역, 23구역, 응봉 2-1구역.[26] 청계천변 판자촌이 마장동 달동네까지 쭉 연결되어 거대한 달동네를 이루다시피 했으나 지금은 많이 재개발되어 군데군데 조금씩 산재해 있다.[27] 흔히 성북동하면 부촌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부촌을 이루기 전에도 있었던 곳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북동은 빈부격차가 극심한 지역으로 손꼽힌다. 북정마을 역시 삼선동 장수마을처럼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방향을 바꾼 편. 그 밖에도 성북로16길-선잠로2길-선잠로2가길-성북로14길에 둘러싸인 지역(성북3주택재개발지구)도 상태가 좋지 못하다.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으나 난항을 겪고 있다.[28] 문화재 보호(한양도성, 삼군부 총무당 등)로 아직까지 재개발을 하지 못했다. 주변지역은 이미 오래전에 재개발이 끝났다. 때문에 전면 재개발 대신 주민들의 터전을 보존하는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었다.[29] 한때 구 전체가 달동네이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2000년대에 정릉동, 성북동, 삼선동 장수마을을 제외한 모든 동네에 아파트를 엄청난 속도로 마구 지어서 그런 면모는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자연을 고스란히 살린 엄청난 경사는 여전하다. 최근에는 그런 지형을 활용한 형태로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30] 용산역 근처의 경우 최근 고층 건물들이 빠른 속도로 들어서고 있으나 아직 달동네가 남아있다.[31] 용산동2가(해방촌), 한남동(한남 힐스테이트 뒷편에 위치한 한남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구역들에 해당). 한남동은 재벌들이나 재력가들이 거주하는 최고급 대형 저택들과 국내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중 하나인 한남 더힐같은 최고급 아파트와 한남 힐스테이트, 한남 하이페리온 등 고급 아파트들도 위치하고 있다보니 국내 최고의 부촌과 달동네가 공존하는 동네이기도 하다.[32] 사실 달동네라기보단 구축과 신축이 공존하는 빌라촌이 압도적으로 많다.[33] 은평구 내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달동네들이다. 불광동의 경우 은평구와 종로구를 오가는 터널인 구기터널이 있는 곳이고 무엇보다 도로 경사가 성남 본시가지급으로 미친 곳이라서 겨울에 눈이라도 조금 내리면 일대 교통이 완전히 마비된다. 녹번동의 경우 대로변이 있는 곳은 좀 덜하고 경사도 불광동에 비해 덜한 편이지만 산 거의 끝까지 주택이 퍼져 있어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은평구 전역이 시야에 잡힐 정도다.대조동의 경우 대조 1구역쪽의 일부만 달동네이나 누더기도로의 파장이 너무 컸는지 전부 다 달동네 취급받고 있다. 여기 학생들이 싫어한다는 슬레이트 지붕은 여기에 다 모였다(...)[34] 해당지역들은 모두 낙산을 포함한 한양도성 성곽 주변에 걸쳐진 동네다.[35] 구립중구노인요양센터 인근[36] 전부 판자촌이다.[37] 현재까지도 적용되고 있는 서울특별시 주택국에서 1997년 7월에 작성한 '무허가 건축물 단속 및 관리실무'에서 규정한 법적으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무허가 건축물에 대한 요건에 의하면 1982년 이전에 존재가 확인된 무허가 건물은 소유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구룡마을, 달터마을, 재건마을은 이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치가 강남구이다 보니 투기꾼들도 꽤 많이 들어와 있는 상태라 상당히 복잡한 상황이다.[38] 상계동하고 상당히 비슷하다. 실제로 상계동 철거민들이 개발 이후 신림동으로 가장 많이 이주했다고 한다. 그래서 두 지역의 교류가 상당히 잦다.[39] 새싹마을은 인근 주민들에게 속칭 쓰레기산이라 불리고 있다. 상도4동에 언덕이 있는데 그 넓은 부지 전체가 버려진 곳이다. 사실 200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하여도 이곳은 평범한 노후 주택이 밀집한 전형적인 달동네였지만, 2010년 경, 상도4동 산65-74번지 일대를 상도11구역으로 지정해서 재개발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해서 현재까지 철거의 흔적만 남아 있다. 현재도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40] 아이러니한 것은, 일부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2017년 2월 서울시 '주택월세계약조사'에 따르면 이 쓰레기산 바로 앞 지역인 상도4동 지역 '평당' 월세 수준이 인근 노량진동과 함께 전국 최고라는 것. 공시 광풍으로 공시생이 급증하였으나, 노량진동만으로는 이 공시생 수요가 감당이 되지 않아, 자연히 차선책으로 도보가 가능한 이 지역 월세수준이 폭등한 케이스. 강남권이나 타 지역처럼 교통이나 주거환경이 좋아서 월세가 비싼것이 아니고, 속칭 버려진 쓰레기산 지역 바로 옆 동네의 월세 수준이 높은, 굉장히 아이러니한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41] 성뒤마을과 윗성뒤마을은 합쳐서 크게 성뒤마을이라고 보기도 하고, 둘을 갈라서 보기도 한다. 지리적으로는 방배 체육공원을 경계로 갈라져 있다.[42] 복정역과 외곽순환도로 사이에 위치해 있다. 단, 여기는 빈민촌일수는 있지만 평지이기 때문에 달동네는 아니다.[43] 엄연한 판자촌이지만 여기 있는 판자집은 모두 영농시설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다음, 네이버에 모두 현재 화훼마을은 기업으로 분류되어 있다.[44] 물론 서울 용산, 한남 과 같이 지역 내 격차가 있기는 하나 대부분 고도가 높다.[45] 복산동은 행정동. 법정동 복천동과 칠산동을 관할.[46] 특히 부산과학기술대학교와 성도고등학교가 위치한 구포3동 일대. 이쪽은 고저차와 급구배가 매우 심한지라 도시철도도 닿지 않으며 오직 태진여객 소속 노선들에 의존해야만 한다.[47] 동네 자체가 해발고도가 꽤 높은 곳에 위치해있으며 만덕1동 구만덕 지역과 만덕2동 신만덕 지역의 경우 최근 재개발이 진행중에 있다.[48] 엄궁 롯데캐슬 리버 등 아파트 단지는 제외.[49] 중구, 동구와 마찬가지로 부산에서 난개발로 악독하기로 유명하다.[50] 거의 전체인 이유에는 이 동네 자체가 섬이라 평지가 거의 없어서 산과 언덕에 주거하는 탓도 있다. 육지와 연결되는 대교동과 봉래동 근처는 평지다. [51] 용현2동, 용현5동 제외[52]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촬영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철거되고 재개발 중이다.[53] 실제로 이하 지역들은 20평 미만내지는 10평도 안되는 집들이 많은 반면 남구는 집들이 큼직큼직하다. 특히 캠프워커 인근이나 앞산 기슭으로 갈수록 아파트도 많아지고 집들이 낡은것 치고는 꽤 좋은편이다.[54] 반쯤 잘리고 남은 지붕아래 평상을 두거나 자전거 주차장으로 쓰는 경우도 있었다.[55] 시장2리 사거리 남쪽과 호계역 사이에 난개발이 존재한다. 호계역의 오랜 역사가 불러온 결과인데, 끄트머리에 속하는 부분에 아파트 건설로 인하여 조금씩 구획정리와 신축빌라 건축이 시작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노년층 및 저소득자의 거주가 많다.[56] 시장2리 사거리 북쪽에는 구획정리가 되어있고 신축 원룸과 각종 인프라가 마련되어 있으나 그 원룸이 임대주택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아 넓은 의미의 달동네로 볼 수 있다.[57] 농소2동 행정복지센터 주위와 약수암 주변 지역으로 한정하며, 나머지는 단순 농지이며 재개발로 인한 신축 아파트와 구획정리가 깔끔하게 되어있으므로 달동네로 보기 어려움.[58] 북구의 사례와는 달리 동구의 구획은 비교적 깔끔하나, 7,80년대식 폐건물이 존재하는 경우 및 구식 주택이 혼재됨.[59] 대전에서는 거의 90%가 택지지구로 구성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여서 실제로 대전에서 달동네 찾기는 모래사막에서 바늘 처럼 매우 어렵다.[60] 춘천시는 북한강과 소양강에 둘러싸고 있어 개발이 제한되었고, 두 강들이 상수원 보호 구역에 해당되는 강이라서 이 일대의 재개발은 거의 하지 못했다.[61] 여기도 마찬가지로 6.25 전쟁 당시에 피난민이 유입되면서 형성된 피난촌이 대부분이지만 1960년대 이후로 부산과 마찬가지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생긴 곳도 있다.[62] 목포시는 개발을 호남선 연선 동편에 집중하는 바람에 호남선 연선 서쪽에는 달동네를 자주 볼 수 있다. [63] 여수시도 마찬가지로 주로 여천일대를 개발하는 바람에 역시 달동네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64] 대부분은 아파트가 들어서도 도로가 정비되며 대중교통이 더 가까이 연결되어 주거지역이 쾌적해진 정도지만 일부 지역은 산의 절반을 날려 버리고 평지로 만들었다든가 하는 곳도 있다. 가령 신림동 달동네 일부 지역이 그렇다.[65] 군부대 이전의 한국전쟁기에는 거제포로수용소가 이곳에 있었다. 전후 거제도로 이전.[66] 동해남부선 거제역에서 이곳으로 들어서는 인입선이 존재했었다.[67] 다른 건물들은 노후하긴 하여도 두류동이 택지지구로 계획된 곳이다 보니 상당히 질서정연하게 건물들이 배열되어 있었으나 이 구역만 길들이 꼬여 있다.[68] 다만 여긴 예전에 주택지역이 아닌 장미아파트라는 오래된 아파트가 있었다.[69] 현대건설이 아파트 브랜드를 현대홈타운에서 힐스테이트로 바꾼 이후에는 범박동 현대홈타운도 범박 힐스테이트로 바뀌었다.[70] 현재는 메데진의 에스컬레이터에 캐노피가 설치되어있다.#[71] 게제콘두는 뜻은 밤(gece)에 지었다는 뜻이다. 말그대로 밤에 공무원 몰래 집을 조금씩지어서 만든거. 일단 집을 지으면 이슬람 윤리관상 강제로 추방하고 밀어놓는건 불가능한지라.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전기, 수도도 알아서 깔아준다. 이게 터키 대도시에 게제콘두가 늘어난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