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훈장
Орден «Победа»[1]
Order of Victory
전승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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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승훈장은 소련의 무공훈장에 속하지만 그 성격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승을 축하하는 기념비적인 훈장이다. 1943년 11월 8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Президиум ВС СССР)의 법령에 따라 의해 제정되었으나, 훈장의 외형과 리본, 그리고 착용법 등의 제반사항은 1944년 8월 18일 법령에 의하여 확정된다. 수훈자는 모두 군인이며 소련에서 두번째로 적게 수여된 훈장이다.[2] 전승훈장은 모든 면에서 특별하게 취급되었으며 소련의 훈장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는데, 리본도 다른 훈장보다 컸다.
전승훈장은 소련 훈장의 순차에 포함되지 않는다. 훈장 자체가 영구결번이다. 다만 억지로 순차를 부여한다면 '최고의 무공훈장(Высший военный орден)'으로 정의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훈장들을 전인민훈장/무공훈장으로 구분할 때는 무공훈장 카테고리의 가장 첫번째로 분류한다. 그런데 모든 훈장을 한번에 나열할 때는 '무공훈장' 카테고리보다 무조건 선행하는 레닌훈장, 10월혁명훈장이 존재하여 전승훈장을 이들의 다음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으며, 레닌훈장이나 10월혁명훈장 모두 무공으로도 수여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아예 모든 훈장들 중 최고 훈장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건 사무적인 문제이며, 실제 명예나 위엄은 전승훈장이 다 씹어먹는다. 다만 영웅칭호와는 법적 분류가 달라서 상응시킬 수 없다. 영웅칭호는 '칭호'이며 훈장이나 메달이 아니지만, 전승훈장은 '훈장'이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영웅칭호가 훈장보다 우선한다.
러시아에서 이 훈장이 그려져 있는 간판 등을 보았을 때, 러시아어를 하나도 못한다고 하더라도 일단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과 관련이 있다고 찍으면 거의 100%이다.
2. 수훈 대상과 사유
이 훈장은 전쟁이 아직 진행중이던 1944년에 노농적군에서 가장 중요하게 활동한 3명의 원수들에게 한 차례 수여되었고, 나머지는 1945년의 전승 이후 대대적으로 수여되었다. 외국인 수훈자도 존재한다. 수훈자는 모두 군인이거나 군주이다.
* '''수훈 대상'''
이벤트성 훈장이라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총 수훈자는 17명이며, 이 중의 한 명의 수훈이 취소되었다. 첫 번째 수여는 아직 전쟁 중이던 1944년 4월 10일에 있었는데, 게오르기 주코프,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이오시프 스탈린 원수에게 수여되었으며,[3] 훈장 일련번호상의 1번은 주코프가 수훈했다. 훈장의 이름 대로, 모든 훈장은 소련이 나치 독일에게 승기를 잡은 1944년, 그리고 전승의 전후로 1945년에 수여되었다. 스탈린의 경우는 2회를 수훈한 3명 중 하나인데, 사실 2번째 훈장의 수훈 사유는 '''대독승전'''이다. 그러니까 노농적군 최고 사령관의 신분으로 '대표'격으로 받은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전쟁 당시의 개인적 위훈으로 2회를 받았다고 할만한 사람은 게오르기 주코프와 알렉산드르 바실렙스키 둘뿐이다.* '''수훈 사유'''
* 노농적군의 전황을 근본적으로 전환한 성공적인 지휘
1978년 2월 20일,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자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주석이자 소련 국방부 장관이자 소련군 원수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에게 이 훈장을 수여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당연히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독소전쟁 당시 전선군 사령관도 아니고 스타프카에 근무한 것도 아니니 수훈자격에 미치지 못하여 논란이 될 수도 있었으나, 애초에 전시에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는 훈장을 줄 때 수훈규칙을 명확하게 지키던 것이 아니었다. 원래 지휘관에게 수여하도록 제정된 수보로프훈장 등을 민간인에게 수여한 경우도 있고, 전승훈장도 미하이 1세의 사례 등 그냥 정치적 선물로 제공된 전례도 있어서 흐지부지되었다. 다만 새로 훈장을 만든 것은 아니고 기존에 있던 '20번' 훈장을 수여하였는데 이것은 만들었지만 수여되지 않은 훈장이었다.[4] 그리고 1989년 9월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훈장 규범에 따른 브레즈네프의 훈장박탈' 명령을 재가하여 브레즈네프의 수훈을 취소하였다.[5]
소련의 무공훈장들은 적기훈장을 제외하면 리본이 달려있지 않은데, 약장은 있다. 전승훈장은 원래 1945년 제정된 전승예복 차림일 때는 제복의 벨트가 둘러지는 위치(허리)에서 위쪽으로 12센티미터에서 14센티미터 정도를 이격하고 가로 일렬로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나, 소련군의 제복들이 추후 테일러드 재킷형태에 드레스셔츠 차림으로 변경되고 훈장 정장들(메달바)을 옷깃을 따라 배치하게 되면서, 훈장들이 많아지면 허리까지 내려와 전승훈장의 자리가 안 나오게 된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제복 왼쪽 가슴의 바깥쪽에 부착하도록 지정되었다. 약장 패용시에는 다른 약장들과 연결하지 않고, 모든 약장들의 묶음 위로 특별히 1센티미터의 이격을 두고 따로 패용하는 것이 규칙이었으나 수여자들의 약장 묶음이 너무나도 많아서 이것은 잘 지켜지기 힘들었다.
또한 약장 패용시에도 전승훈장 정장을 부착할 수 있으며, 약장 패용시에는 전승훈장의 기본 패용법상의 자리가 충분히 나오므로 역시 허리 기준으로 12-14센티미터 정도를 위로 이격하여 왼쪽 가슴의 안쪽 부분에 패용한다. 기본적인 부착법이 그렇다는 이야기. 다르게 달고 있는 경우도 있다. 수여자들 계급이 깡패이기도 했을 뿐더러, 전승훈장을 받을 만한 사람들은 전승훈장보다 상위급인 '영웅칭호'도 2회 수훈은 기본인 사람들이라 지켜지기 어려웠다. 영웅칭호는 약장도 없으며, 모든 훈장(약장)의 '''맨 위에 패용'''하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이다.[6]
2.1. 수훈자 목록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크레믈린 벽에는 전승훈장 기념명판이 있다. 총 수훈자는 17명이고, 2회 수훈자는 3명이며 총 수여횟수는 '''20회'''이다. 훈장은 총 19개가 수여되었다. 목록은 수여 순서대로 나열한다.
소련군 소속 수훈자들의 계급은 거의 소련 원수였고 사후 훈장을 박탈당한 브레즈네프도 원수였다.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 티토, 롤라-쥐미에르스키 같은 외국인 수훈자도 모두 원수 계급이었지만, 안토노프는 유일하게 상급대장이었다. 대원수까지 올라갔지만 사실상 군인이기 보다는 군 통수권자에 가까웠던 스탈린을 제외한 다른 원수들이 야전 사령관이었던 것과 달리, 이 사람은 참모총장 업무를 주로 맡았던 바실렙스키와 함께 스타프카에서 근무한 참모차장이다. 그리고 국왕이었던 미하이 1세는 전쟁 말기에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루마니아를 지배하고 있던 독재자 이온 안토네스쿠를 축출하고 추축국 진영에서 연합국 진영으로 전환시켜준 데 대한 정치적 선물로 수훈한 사례에 속한다.
전승훈장 수훈자 중 세기가 바뀐 뒤에도 생존해 있던 루마니아 국왕 미하이 1세가 2017년 12월 5일 타계하면서, 전승훈장 수상자는 모두 고인이 되었다.
2.2. 수훈 예정자
- 이반 체르냐홉스키(Иван Д. Черняховский) 상급대장(Генерала армии)은 전승훈장 수훈자로 지정되었고, 1945년 2월 23일에 원수 계급을 부여받고 수관성장과 함께 수여될 예정이었으나 동년 2월 18일 폴란드에서 사망하여 취소되었다.
- 1966년에 소련에 내방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에게 전승훈장 수여가 계획되었으나 취소되었다.
3. 형태
상징성이 매우 큰 훈장이라, 만들 때도 돈을 아끼지 않았고 다른 훈장과는 비교도 안 되는 섬세함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1943년부터 훈장의 디자인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오각별 형상으로 한다는 것을 큰 틀로 잡고 세부적인 부분들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여러가지의 계획안이 있었다. 그러다가 병참총국(Главный интендантский управление) 기술위원회 수석 디자이너였던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Александр И. Кузнецов)의 도안이 채택된다. 그는 이미 조국전쟁훈장을 디자인했었는데 전승훈장도 '''조국전쟁'''훈장과의 연속성을 살리기로 하여 훈장의 기본적인 형태가 정립된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오각별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별 뒤의 후광으로 역오각형의 빛줄기를 묘사한 형태가 된다. 훈장의 가운데 부분에는 원래 블라디미르 레닌과 이오시프 스탈린의 초상화 부조를 넣을 계획이었으나 스탈린은 1943년 10월 25일에 제출된 이 안을 거부하였으며, 영예훈장의 도안에도 사용된 크렘린의 '스파스카야 탑(Спасская башня)'을 넣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고 그대로 이루어진다. 1943년 10월 29일, 스탈린은 다시 제출된 몇 개의 새 도안들 중에서 아래쪽에 '승리(Победа)'라는 글자가 세겨져 있는 첫번째 도안을 고른다. 훈장의 디자인 확정까지 쿠즈네초프는 15개 이상의 도안을 제출했다.
훈장의 배경은 백금이고 전체를 174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하며, 오각별의 각 꼭지점 부분은 루비로 장식한다. 가운데에는 붉은 광장과 크렘린 성벽 등이 도안되어 있는데, 그림 위에는 '소련(СССР)'이라는 국호가, 그림 아래에는 붉은색 에나멜로 채색된 '승리(Победа)'라는 명판이 있다. 월계관과 붉은 광장 부분은 금으로 만들고 배경은 부른색 에나멜로 채색했다. 훈장의 전체 크기는 72밀리미터이고, 가운데 그림이 부조된 원의 지름은 31밀리미터이다. 훈장 전체의 무게는 78그램이며, 각 구성성분은 백금이 47그램, 금이 2그램, 은이 19그램이 사용된다. 5개의 루비는 하나 당 5캐럿이며, 훈장에 사용되는 다이아몬드의 총량은 16캐럿이다. 전승훈장은 총 22개가 제작되었으며, 그 중에 3개는 수여되지 되었다. 1945년을 기준으로, 전승훈장의 제작비용은 1개당 3,750파운드 스털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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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장의 리본은 다른 훈장들의 것과 달리 46밀리미터의 너비를 가지고 있으며, 그 자체로도 이 훈장의 위엄을 드러내는 상징이다. 전승훈장의 리본은 다른 무공훈장들의 약장과 그 의미를 포괄하며 다음과 같은 뜻을 지닌다.
전승훈장은 원래 나사를 사용하여 제복에 부착하는데, 변종이 있다. 바로 옷핀이 달린 형태였는데 레오니트 브레즈네프에게 이런 형식으로 개조된 훈장이 수여되었으며,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경우에도 모든 영국의 훈장이 옷핀 형태라는 이유로 옷핀으로 개조되었다.
3.1. 행방
이 훈장의 오리지널 소유는 소련군 관련 수집가 사이에서도 세계구급 이상향이다. 수여자가 전 세계에 17명 밖에 없는데다, 대부분이 박물관에 있으므로 진품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꿈이고, 레플리카는 생산되고 있다.
4. 관련 문서
[1] 러시아어 단어 'Победа'는 '승리'라는 뜻이지만, 대문자로 사용될 경우 대개 독소전 전승을 말하는 고유명사로 굳었다. 이 외에 비슷한 것은 'Октябрь'로, 보통은 10월 이라는 뜻이지만 대문자로 사용하면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을 뜻하는 고유명사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다.[2] 첫번째는 소련군 대조국공로훈장 1급으로, 총 '''13회''' 수여되었다.[3] 이들은 전부 1945년에 한번씩 더 수훈한다.[4] 처음에는 브레즈네프에게 레오니트 고보로프에게 수여되었던 13번 훈장을 수여하려 했다가 결국 주인이 없는 훈장을 수여했다. [5] 우스갯소리로 차라리 루즈벨트가 받아야 된다는 얘기가 있지만, 이 훈장은 군인에게 수여하는 것이므로 받을 수 없다. 미국 대통령은 미군의 총사령관이기는 하지만, 군사계급을 보유하지 않으므로 수훈대상자가 되지 못하며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도 마찬가지다. 다만 군주의 경우에는 국가원수이면서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군사계급(보통 해당국 최고 계급)를 가지므로 수훈에 문제가 없다. 실제로 미하이 1세는 루마니아군 원수(Mareșal) 계급을 가지고 있었다.[6] 기사의 '주코프' 사진 참조. 3개의 영웅칭호 밑에 2개 붙은 약장이 전승훈장 약장이다.[7] 스탈린(x2), 코네프, 톨부힌, 고보로프, 메레츠코프, 안토노프, 티모셴코[8] The Dwight D. Eisenhower Presidential Library, Museum and Boyhood Home. 명칭에서 알 수 있다시피 아이젠하워 생가와 그 주변에 건립된 기념 도서관 및 박물관을 묶어놓은 시설이다.[9] 미하이 1세의 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