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권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강동구 을)
제13~15대
김중위

제16대
심재권


제17대
이상경
제18대
윤석용

제19·20대
심재권


제21대
이해식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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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제19대 후반기
나경원

제20대 전반기
심재권


제20대 후반기
강석호


<colbgcolor=#004ea2> 이름
심재권(沈載權)
출생일
1946년 8월 15일 (77세)
출생지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現 삼례읍)
본관
청송 심씨 인수부윤공파 참봉공파
혈액형
O형
가족
부인 정명숙, 슬하 1남
최종 학력
모나쉬 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
병역
면제(고령)
소속 정당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6, 19, 20
현직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이사
약력
제16, 19 ~ 20대 국회의원
전 시민일보 사장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위원장
외부 링크
블로그
1. 개요
2. 생애
2.1. 정치 활동
3. 논란
4. 여담
5. 선거 이력
6. 소속 정당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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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

2. 생애


1946년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현 삼례읍)에서 태어났다.
대표적인 민주화운동가, 학생운동가 출신. 배명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무역학과에 재학 중일 때 민주수호전국청년학생연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서울대 동기이자 친구 김근태와 함께 서울대 학생운동을 이끌던 주요인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 한국 대표 노동운동가 출신 자유통일당 정치인이라는 스테레오 경력으로 유명한 김문수가 젊은 시절 처음으로 민주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한 인물이다.[1] 1970년 강의 시작 전 강의실에 들어가 후배들에게 연설하였는데, 이 때 심재권을 보고 매료된 신입생이 바로 김문수. 김문수의 회고로는 강의시간 직전에 강의실에 자신있게 들어와 "후배 여러분들은 머리 좋아 일류대학 들어와 입신양명하는 게 중요한가? 일류대학에 출세하러 왔는가?”라고 외치던 심재권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반해서 마치 어둠 속의 빛을 본 것 같았다고. 직후 김문수는 심재권을 따라 서울대 민주화운동 동아리 중 하나였던 '후진국 사회연구회'에 가입하면서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대신 김문수가 학생운동보다 노동운동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만든 계기는 김근태였다고 한다. 학생운동 동아리에 들어간 다음해 김문수에게 공활을 가자고 처음 말한 선배가 김근태였기 때문.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3학년에서 제적되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에는 유신 반대 투쟁을 하다가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었다. 1980년에는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출옥 후 호주로 망명하였다.

2.1. 정치 활동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한국당 김중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도전장을 내민다. 맞상대였던 한나라당 김중위 의원이 1986년 국회 법률사법위원회 간사로 재임했을 때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에 관해 "나는 부천 경찰서 사건의 희생양이라 주장하는 권인숙[2] 씨의 정신감정이 우선해야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당시 거세게 몰아쳤던 시민 단체의 낙선운동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낙선운동의 효과로 김중위 의원은 당선 실패, 심재권은 설욕에 성공한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총재 비서실장, 기획조정위원장, 사무총장 대행, 대표비서실장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총재비서실장으로 있던 2001년 11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서를 대독하기도 했다.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 때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이상경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상경과의 공천 경합에서 승리하여 통합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윤석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새누리당 정옥임 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재입성 후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통상위원회 간사를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42,096표(득표율 41.2%)를 득표하여 새누리당 이재영 후보와 국민의당 강연재[3]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6월 13일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이해식 전 강동구청장에게 경선에서 패배하면서 출마가 좌절되었다. 고령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정계은퇴가 될 것으로 보인다.

3. 논란


2013년 "김정은에게 정중한 예(禮) 를 갖추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었다. # 이에 대해 본인은 "김정은 개인에 대해 정중히 예를 갖춰야 한다는 게 결코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기본적으로 남북 간 신뢰구축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그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우리 정부가 북측에 대해서도 사적으로는 무슨 표현을 하든 공식 문건에서만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

2020년 초, 더불어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가 진행한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20% 명단이란 찌라시가 돌았다고 알려져있다. # 관련하여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문자·카톡으로 가짜뉴스를 받으면 사무실로 보내달라”는 문자를 보냈다는 기사.

4. 여담


  • 추미애 전 당대표와 공통점이 많다. 서울 지역구 국회의원 중 가장 오래 전인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6회 연속 출마한 인사는 둘 뿐이다. 다만 5승 1패를 기록한 추미애와 달리 3승 3패로 반타작했다. 또한, 둘 다 열린우리당 분당에 참여하지 않고 당 잔류를 선택했으며, 민주당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유이한 현역의원이다. 추미애는 불출마, 심재권은 낙천으로 21대 국회내 민주당에서 노 대통령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현역의원은 볼 수 없을 예정이다.[4]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강동 을

30,416 (32.36%)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42,997 (48.43%)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17,087 (16.40%)
낙선 (3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0,147 (39.44%)
낙선 (2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51,451 (54.17%)
당선 (1위)
재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2,096 (41.15%)
3선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6 - 2000
정계 입문

2000 - 2005
당명 변경

2005 - 2007
당명 변경

2007
합당[5]

2007
대통합민주신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07 - 2008
입당

2008
합당[6]

2008 - 2011
당명 변경

2011 - 2013
합당[7]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8]

2015 -
당명 변경

7. 둘러보기








[1] 심재권이 같은 상과대 5년 선배였다.[2]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더불어시민당의 비례대표 3번으로 등록하였다.[3] 2016년 12월 4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더불어민주당문재인을 상대로 막말을 하여 물의를 빚은 사람이다.[4] 다만 이 때 같은 새천년민주당 잔류파 중 노무현 탄핵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의원이 21대 국회에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모두들 예상하겠지만 그 의원은 바로 이낙연.[5] 중도개혁통합신당과 신설 합당.[6] 민주당과 신설 합당.[7]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8]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