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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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만드는 법
3.1. 전기밥솥
3.2. 냄비
3.3. 압력밥솥
3.4. 전자렌지 컵밥
4. 대중매체에서의 쌀밥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


멥쌀(입쌀)로 지은 . 이밥[1]이라고도 하며 남한에서 보통 '밥' 하면 주로 이것을 의미한다. 가장 흔하게 먹는다.
멥쌀을 다른 종류의 잡곡 쌀(찹쌀, 보리쌀, 좁쌀 등)에 대비해 부를 때 입쌀이라 하고 입쌀로 만든 밥을 이밥이라 한다. 현대에는 이밥이 기본이라 따로 입쌀이나 이밥이라 하는 일은 많지 않고 그냥 쌀이라고만 해도 대개 멥쌀(입쌀) 가리킨다. 이밥의 사투리로 이팝이 있는데, 경상도, 강원도, 평안북도, 함경도에서 사용한다.
흰 쌀밥이 일반적으로, 도정한 정백미의 경우 비교적 하얗다. 거친 현미로 밥을 해도 쌀밥이지만 백미에 비해 하얗게 나오지 않는다. 같은 쌀밥이지 현미가 들어간 밥은 잡곡 밥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동북아권에서 주로 먹는 자포니카 쌀로 만든 밥은 찰기가 강한 편이고 향은 거의 없으며 쌀알의 길이가 짧은 편이다. 반면 동북아를 제외한 대다수 지역에서 소비하는 인디카 쌀은 찰기가 별로 없고 대신 특유의 향이 있다.

2. 상세


한국의 식단은 주식부식이 확연히 구분되어 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밥이라 하더라도 모두 쌀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밥 짓는 재료로 쓰이는 곡물은 지역에 따라 달랐다.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1827)에서는 "남쪽 사람은 쌀밥을 잘 짓고 북쪽 사람은 조밥을 잘 짓는다"고 하여, 남북의 주식이 달랐음을 시사하고 있다. 북쪽의 주식이 였음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다. 그러나 남쪽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력만 있으면 쌀밥을 먹었다. 물론 농촌에서 춘궁기부터 추수 전까지는 보리밥이나 잡곡밥을 많이 먹었겠지만 쌀밥이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만은 아니었다.
주식은 기본적으로 쌀밥이고 다만 북쪽에서는 조밥을 먹었다는 사실은 국내 기록은 물론 외국인 견문기에도 무수히 많다. 이처럼 조선시대에는 남쪽에서는 보리나 잡곡이 곁들여진 쌀밥이, 북쪽에서는 조밥이 주식이었고 경제력에 따라서도 사정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쌀을 주로 먹는 것은 단순한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벼농사를 지어야 수많은 사람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이다. 18세기 중엽 유럽에서는 밀을 1알 뿌리면 6알을 수확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쌀은 1알을 뿌리면 평균 25알에서 30알 정도를 수확했다. 그러므로 이중환(1690-?)은 <택리지>에서 볍씨 1말을 뿌려 60말을 거두면 살기 좋은 곳이고 40, 50말을 거두는 곳이 그 다음이며 30말을 거두면 살기 힘든 곳이라 하였다. 벼농사는 노동량이 많이 투여되기는 하지만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밀처럼 이포제, 삼포제 농업으로 경작지를 묵혀 두지 않아도 되고 조건이 좋은 곳에서는 이모작, 삼모작을 행할 수 있어 경지 이용도와 단위 면적 당 생산량 모두 높았다. 또한 에는 필수 아미노산이 부족하여 고기를 곁들여 먹어야 하지만, 쌀은 기본적인 영양소가 고루 갖추어져 있어 약간의 영양소만 보충하면 될 뿐이었다. 그러기에 쌀을 재배하여 100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넓이의 땅에 밀을 심으면 75명이 먹고 살 수 있고, 목초지를 만들어 고기를 먹는다면 9명이 먹고 살 수 있다고 한다. 불교나 힌두교 등 고대 인도의 종교가 쇠고기를 먹는 것을 금한 것은, 이 종교들이 발생할 무렵에 인구밀도가 적정선을 넘어서서 육식을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인류학자도 있다.
요즘이야 쌀이 흔하고 잡곡이 비싸서 거의 쌀밥으로 짓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쌀밥은 귀했고 대부분 잡곡을 절반 정도 섞은 밥이었다.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거의 잡곡에 쌀을 약간 넣은 수준이었다. 더 거슬러가면 그것도 없어 만주산 조밥이나 멀건 보리죽이었고 특히 강원도 지역에서는 쌀이 다른 지역보다도 더 귀해서 수수강냉이로 밥을 대체했고 본격적으로 쌀을 맛본 것은 6.25 전쟁 이후로 원조로 들어온 안남미가 보급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래도 국내 쌀 생산량이 소모량을 따라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60~80년대에는 혼식을 강제하기도 했었다.[2] 맛은 없었지만 수확량이 많은 통일벼가 보급되고 쌀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식이 되기에 이른다. 그 이전까지 쌀밥은 부의 상징으로 선호되는 음식이였으나, 요즘에는 역전되어 잡곡밥이 더 비싸고 건강식으로 더 선호받고 있다. 이는 빵에서도 비슷해서 과거에는 부의 상징이였던 흰빵보다 호밀빵 같은게 더 비싸다.
단맛도 있으며[3], 느끼하고 기름지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먹다가 하얀 쌀밥을 먹으면, 쌀밥이 얼마나 미끈미끈하고 부드러운지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도정된 하얀색 쌀밥만 먹으면 비타민B1 부족으로 각기병에 걸릴 수 있'''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20세기 초기만 하더라도 흰 쌀밥을 먹는 것이 부의 척도였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쌀밥을 먹길 선호했다. 심지어는 그것을 위해서 부식을 희생하기도 했다고 한다. 타임슬립 닥터 JIN에서도 잡곡밥을 한사코 거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부터 각기병이 유행처럼 번져서 사회 문제가 되었고, 구 일본군은 부식을 마다하고 무식하게 쌀밥만 고집하다가 많은 병사들이 각기병에 시달리기도 했다.[4] , 감자 및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먹던 서양에서는 드물었던 병. 같은 쌀밥이라도 현미를 섞으면 각기병에 걸릴 위험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위에서 과거시제로 사용한 이유는, 현대에는 백미에 비타민B를 첨가하기 때문. 여담으로 이후에 일본 해군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카레를 도입하여 쌀에 얹어먹는 식으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었고, 이후에 일본의 주식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3. 만드는 법



3.1. 전기밥솥


1. 쌀을 물로 서너 번 씻어준 후 최소 30분 이상 불린다.[5]
2. 물양은 쌀이 잠겨서 손등 언저리까지 차오르는 양을 기준으로 하고[6] 전기밥솥에 내솥을 안친다[7].
3. 취사 버튼을 누른다.
4. 완성되면 약간을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인 후 밥을 주걱으로 뒤적거려서 위와 아래가 고르게 수분이 전달되게 한다.

3.2. 냄비


1. 전기밥솥 조리법의 1,2와 같다.
2. 센불에 올려서 냄비의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 [8] 약불로 줄인후 대략 10~20분 정도 가열한다.[9]
3. 뜸을 들인 후 주걱으로 뒤적거리거나 혹은 그냥 먹는다.

3.3. 압력밥솥


1.압력밥솥도 위의 1,2와 같다.
2.압력밥솥을 불에 안치고 증기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불을 최대한 약하게 줄인다. 누룽지를 원하면 1~2분 정도 불을 줄이지 않고 좀 더 기다린다.
3.그 상태로 10분 정도 뜸을 들이고 불을 끈다.

3.4. 전자렌지 컵밥


1. 계량컵에 2/3 정도의 불린 쌀을 담는다.
2. 물량은 검지 한마디 정도로 넘치게 담은 후 컵의 바닥과 입구에 작은 접시를 받쳐서 물이 넘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한다.
3. 3분 정도 돌린 후 접시에 흘러내린 넘친 물을 다시 컵에 붓고 1~3분 가량 돌린다.[10]
4. 1분 정도 뜸을 들인 후 내용물을 확인해봐서 제대로 되었다면 완성.
불조절과 뜸조절이 추가되는 압력밥솥은 난이도가 껑충 뛰어오른다. 가마솥밥은 밥의 로망[11].
요새는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밥도 많이 나와있다. 상표명이지만, 보통 싸잡아서 햇반이라고 한다. 그리고 전자기기에 의존할 필요도 없이, 자체 화학반응으로 가열하는 발열도시락도 있다.
참고로, 물 양을 잘못 조절하면 너무 진 밥이 되거나, 혹은 이 되는 수가 있다(…). 밥을 짓는 것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만 밥만 몇십 년 한 어머님들도, 심지어 그걸로 먹고 사는 요리사들도 밥맛을 늘 같이 내는 게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계량기를 이용해 매번 정확히 재고 일정한 화력을 정확히 출력하는 레인지를 이용한다 해도 미묘하게라도 밥맛이 매번 다른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12]
바리에이션으로 누룽지, 누룽밥, 노란밥이 있다. 자취생들의 필수 코스라 할 수 있는 식단이다. 밥을 해놓고 오래 먹지 못하면 누렇게 뜨기 때문이다. 맛도 퍽퍽해지니 이미 지은 밥은 오래 두지 말고 빨리 먹자. 그나마 이를 예방하려면 시간이 많을 때 잔뜩 밥을 한 후 한 주먹씩 뭉쳐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그리고 나서 먹을 때마다 꺼내서 전자렌지에 데워 먹으면 햇반 못지 않다. 전기밥솥은 취사보다도 보온에 더 많은 전기를 쓰니, 절전을 위해서라도 취사 때만 밥솥을 쓰고 남은 밥은 냉동했다가 데워 먹자.
응용법으로는 콩밥 콩나물밥 밤밥 팥밥 버섯밥 등이 있다. 밥을 지을 때 해당 재료들을 같이 넣고 지으면 된다.

4. 대중매체에서의 쌀밥


한국의 창작물에서는 대개 마님이 돌쇠에게 주는 음식으로 등장한다.
춘향전에 나오는 옥반(玉飯)이 흰쌀밥의 미칭이다. 새하얗게 윤기나는 모습이 마치 백옥으로 만든거 같다는 얘기.
만화에서는 항상 작은 밥공기에 동그랗게 쌓여진 모습(일명 '고봉밥')으로 등장한다. 아무래도 그리기도 간단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모양이라서 추측된다. 또한 요리만화나 구시대를 배경으로 한 만화 등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로 쌀밥만 등장한다.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는 작중내내 일본군 병사들이 반찬도 없이 흰쌀밥만 주야장천 먹어대는데, 당시 고립된 일본군의 열악한 보급상황을 반영한 것.
막장판타지에는 밥 로스의 패러디 캐릭터인 '쌀'''밥 로스'''구이'가 등장 . 러브라이브에서는 하나요가 밥을 좋아한다. 프리티 시리즈에서 유메카와 유이가 잘 짓는다

5. 여담


밥하면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모습이 이 쌀밥이지만 정작 이러한 쌀밥을 대중적으로 먹게 된 건 고작 40년이 채 안 된다. 그리고 40년만에 쌀밥이 더 싸졌다
애당초 이라는 먹거리를 만들려면 솥이 필요하며 이러한 가마솥이 민초들에게 널리 보급되는 시기가 고려 중기에 들어서야 대중화 되었다.(원래 중세기에선 밀농사권에서도 빵이 아닌 죽이 주식이었다.) 이 밥조차 주 재료는 쌀이 아닌 잡곡이며 추수하는 가을에나 가끔 쌀을 조금 섞은 게 고작...
이밥에 고기국과 비슷한 서양식 표현으로 '흰 빵에 버터'라는 표현이 있다. 요즘이야 흔하지만 옛날엔 서민이 그렇게 먹기는 힘들어서라고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bread n butter'라는 영어 숙어는 '밥줄, 생계수단'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대전액션게임용어로는 국민콤보를 의미한다. 'bread n butter' 보다 다운그레이드된 극한의 열악함, 혹은 가성비를 표현하는 숙어로는 'bread n water', 즉 '빵과 물'이 있는데 이는 중세~르네상스기에 반항적인 자식이나 부하들에게 내리는 형벌 중 하나였던 '가둬놓고 빵과 물만 주기.'에서 유래했다.
경기도 이천시는 쌀밥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2군 훈련장이 이천에 있는 두산 베어스 팬들은 1군에 올라와서 못 하는 선수에 대해서는 "이천쌀밥이나 먹어라"라고 조롱하는 경우가 많다.[13] 그리고 2군 선수들은 1군서 활약을 못하고 질 좋은 이천쌀이나 축낸다는 의미에서 '''쌀벌레'''라 부른다.
짬밥에 대비해 나이를 뜻하기도 한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밥과 관련된 언어가 많다. 가족을 식구(食)라고 지칭하기도 하고 더부살이 하는 가족 일원을 군식구라고 하거나 옛날에 손님을 맞이할 때 식객이라고 지칭하거나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를 한솥밥 먹는 사이라고 하는 등 어지간한 관계에서 밥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안부인사를 할 때도 "밥 먹었는가?"라고 한다. 이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자기가 밥 먹는 걸 왜 남이 상관하는지 몰라서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만나서 친목을 다질 때도 "밥 한끼 하자"라는 말을 잘 사용한다. 괄시를 받을 때도 찬밥 먹는다는 묘사가 있다.
조선 사람의 쌀밥 사랑에 관해 서유문의 무오연행록(戊午燕行錄)에 한 일화가 전한다. 조선 중기 4대 문장가를 일컫는 말인 월상계택 중 월사 이정구가 1599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재상의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그의 집에 가니 마침 재상은 공무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돌아가려는 이정구를 그대로 보내면 실례가 된다고 생각한 집안 사람이 그를 붙잡아 주찬을 대접하였는데, 이정구는 이를 먹고도 식사 전이라며 돌아가려고 했다. 이대로는 대접이 변변찮았다는 것이 될까 싶어 집안 사람은 다시 그를 붙잡고 떡이며 과일이며 여러 차례 음식을 내왔지만, 이정구는 그걸 다 먹고 그때마다 식사 전이라며 돌아가려고 했고, 결국 오전 내내 음식을 먹고도 이정구는 식사 전이라며 숙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집에 돌아온 재상이 이 일을 알고, 조선 사람은 쌀밥을 먹지 않으면 굶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미리 집안 사람에게 말해두지 않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 '''밥심'''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는 신진대사가 원활하고 근육량이 많은 젊은 층에 비하여 노화로 인해서 체력소모가 심해짐에 따라 허기를 견디기가 힘들어질 때 자주 하는 말인데, 밀가루나 전분으로 제조한 음식보다는 순수한 밥을 선호하게 되는 일이 많다.
기운을 내는 데에도 제일 먼저 거론되는 음식이기도 하다. 기운이 빠진 환자들이 링거를 선호하는 일이 많은데 단순히 포도당액인 경우 비싼 링거보다 밥 한그릇이 더 유용하다고 권장하는 의사들도 있다.
밥을 끓일 때 나오는 물이나 숭늉이 소화작용을 도와주기도 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예로부터 쌀이 주요한 식량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마다가스카르폴리네시아인들이 아시아에서 이주해 올때 쌀을 가지고 들어온 곳이기 때문에 특히 즐겨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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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식으로...
북미쪽 백인 가정에서도 주식으로 쌀밥을 먹는 가정들이 가끔 있는데, 동양인들처럼 밥과 여러 반찬과 같이 먹는 식이 아니라 덮밥 식으로 밥 위에 고기볶음이나 각종 요리를 얹어서 먹는다. 그 이유는 이들이 보통 접하는 동양식 음식은 프랜차이즈점에 파는 덮밥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프렌차이즈점에서 동양식을 먼저 접한 백인들이 제대로 된 식당에 갔을 때와의 반응이 상당히 다르다.
터키, 스페인 등 유럽에서도 쌀밥을 먹는데[14] 튀기거나 구운 감자와 같이 쌀밥을 먹는, 한국인이 보기에는 괴상한 조합이 나오기도 한다.

6. 관련 문서



[1] 입쌀로 만든 밥이라고도 하며, 조선을 건국했던 이성계의 밥이라고 해서 이밥이라는 설이 있다. 이성계의 역성혁명때 조준정도전이 주도한 토지개혁의 결과물인 과전법을 통해 고려말의 수많은 소작농을 자영농으로 만들어준 성과로 인해 이성계가 우리 쌀밥먹여준다고 이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 이성계의 밥 설.[2] 몇가지 상황이 겹쳐 있었기 때문에, 혼식뿐만 아니라 대신 밀가루를 사용하는 분식을 정책적으로 강제했다. http://theme.archives.go.kr/next/education2010/food02.do [3]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쌀은 탄수화물이므로 결국 포도당이 된다. 설탕같은 단맛이 아닌 과 같은 느낌의 은은한 단맛을 느낄 수 있다. 엿이 다름아닌 쌀의 당을 농축해서 만드는 것이니, 맛이 비슷할 수밖에. 밥이 입 안에서 침으로 분해되면서 나오는 당분이 단맛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제대로 씹지 않으면 단맛을 느낄 수 없다. 밥을 입에 넣고 침과 잘 섞어 천천히 오래 씹어주면 확실하게 단 맛이 난다. [4] 다 그런건 아니고 해군은 덜했다. 하지만 해군이 덜했기에 육군은 많을 수밖에 없었다.[5] 요즘은 씻어나온 쌀도 있는데 이 경우는 안 씻어도 된다.[6] 내솥의 눈금을 보고 양을 맞추는 가정도 있다.[7] 밥은 '안치다'라는 동사를 사용한다. 발음이야 같겠지만 앉힌다고 쓰지 않는다. '앉-[座, to sit\]'과의 의미적 연관성이 희박해졌기 때문.[8] 이 때 넘칠 위험이 있으니 냄비 앞에 쭉 대기타고 있는 게 좋다. 괜히 가스불에 올려놓고 인터넷 삼매경에 빠지지 말자[9] 냄비에 닿은 쌀 부분이 노릇노릇해질 때를 기다려도 좋다.[10]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적당히 조절이 필요하다[11] 허영만식객에서 전기밥솥 추방운동을 벌이고 싶다는 바람을 쓴 바 있다. 어릴 적에 먹던 가마솥밥이 그립다고. [12] 쌀의 품종, 햇수, 작황에 따라 쌀 상태가 전부 달라져 물을 머금는 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쌀의 상태에 따라 물의 양을 미묘하게 조절해야 하는데 쌀을 맨눈으로 본다고 이게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알 리가 만무하다.[13] 그런데 LG 트윈스 역시 이천시에 2군 훈련장이 있다보니 LG팬들도 비슷한 말을 쓰곤 한다.[14] 물론 주식은 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