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
1. 설명
김일성이 1962년 천리마 운동 당시 선언했던 구호. 이팝, 즉 이밥은 입쌀(멥쌀)로 지은 '흰 쌀밥'을 뜻하며,고깃국은 일반적으로 고기가 들어간 국이 아니라 고기를 끓인 국물, 즉 육수를 말하는거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쌀밥에 고깃국'으로도 알려졌다. 북한의 온 인민들이 쌀밥과 고깃국을 먹고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떵떵거리고 살 수 있게 만들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었다.(1964년에는) 모두가 '''이팝에 고기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1]
실제로 저 발언을 했을 60년대 시기의 북한은 현재의 상황과 비교할 때 '''완전히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목표로 보일 정도'''로 상당히 풍족하게 살았다. 이는 한국에 와서 반공 활동하는 강명도 같은 이조차도 인정하고 조선일보에서 쓴 글로도 나온 바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미군정의 무력함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던 남한과는 달리 일찍이 소련군정의 지도 하에 사실상의 정부기관인 북조선인민위원회를 성립한 후 갖은 개혁과 개선을 실시하면서 국가의 정비가 비교적 잘 되어있었고, 게다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가 중일전쟁을 치르면서 국민당이 이끄는 중화민국과 가까운 한반도 북부 지역에 빠르게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들을 잔뜩 지어 놓았던게 남아있던 탓에 공업 활성화가 비교적 수월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한반도 남부의 경우에는 중국과 거리가 멀고 농지가 많다는 특성 때문에 주로 식량을 생산하는 식량기지로서 이용되다 보니 공업이 활성화되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
이러한 결과로 당시에 북한은 진짜로 인민들이 굶주리지 않았고, 명절에는 빵 같은 것도 두둑히 무상으로 배급해줬다고 한다. 이팝에 고깃국까지는 아니라도 정말로 꽤 좋은 음식들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비록 김일성의 야욕으로 실현된 6.25 전쟁을 통해 전국토가 전쟁터가 되면서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버려서 제로로 돌아가버리긴 했지만 이후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소련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되어서 북한은 한국보다 비교적 부유한 편이였다.
하지만 50년대 말~70년대 들어서 북한이 중공과 소련 사에에서 줄타기하고 독자 노선을 시도해 소련의 지원 감소로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김일성 일가는 인민의 삶의 수준 따위보다는 당장의 자기 기득권 유지가 더 급한 현상이였으니 정치싸움 하느라 인민 지원은 더 멀어졌고, 끝내 김일성 일가 독재 체제가 완성된 이후에는 이미 손 쓸 도리가 없이 망가져있었다. 김일성 일가도 나름대로 이런저런 시도는 해보았지만 뭘 하든 체제유지라는 큰 대전제에서 걸려넘어지다보니 성과가 나올리가 없었고, 때문에 이제는 한국에게 추월당하다 못해 저 멀리 따돌려진 상태이다.
시대가 달라지다보니 저 표현 자체가 구시대적이라 계속 쓰기도 애매하게 된 건 사실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북한에도 기왓집과 비단옷보다 가성비 면에서 훨씬 나은 물건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단 지붕이나 나일론 같은 것만 해도 그렇다. 그 언제 실현될지 알 길 없는 지상'''락'''원이 오더라도 굳이 기와와 비단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앞의 '이팝에 고깃국'은 계속 써도 될 것이다(…).
2. 전개
김일성은 최초 발언 이후 심심하면 이 문장을 되풀이하며 곧 있으면 진정한 지상락원이 올거라며 선전했다. 김정일 또한 김일성의 유훈을 잇는다며 곧 있으면 진정한 강성대국이 되어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현실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각종 정책 실패가 터지고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갈수록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2010년 1월 16일, 김정일이 "인민들 보리밥 먹는 게 가슴아프다"고 했으며 "나는 이제 흰 쌀밥에 고깃국을 인민들에게 먹이겠다"라고까지 했다. 이 헛소리는 북한에서도 쪽팔렸는지 완전히 흑역사화되었다. 특히 김정일의 사치 행각은 김씨 일가 중에서도 제일 심했기 때문에 더욱 비웃음을 샀다.
이후 김정은 통치 시대로 오면서 2010년 당시 3년 내로 실현시키겠다고 했다만, 결과는 볼 것도 없이 진짜로 삼대가 망했어요. 김정은이 제 할아버지의 코스프레를 하면서 이 구호도 계속 쓰이는 모양이나, 최소한 김일성 시절이었다면 몰라도 현재 이 문구를 곧이곧대로 믿는 북한 주민은 이제 '''아무도 없다'''고 봐도 될 정도다. '탈북자는 이제 2015년 이후 끼니는 잇는다'#, '40%가 굶는다는 말은 과장 같다.'#라는 주장도 통일연구원, 서울대,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2] 등이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것도 살기 위해 시장을 국가의 탄압을 피하며 뇌물을 바쳐가며[3] 만들다보니 그나마 나아진 것이라는 거다. 배급을 기다리던 충성파들은 진작에 고난의 행군 때 굶어죽었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북한 내에서도 취약계층이라는 말이 2017년에도 있는 것을 보면 국가는 주민들의 영양 공급을 오히려 방해하고 있는 것을 알 수있다. # 곡창지대인 황해도는 2012년 고난의 행군보다 심한 기근을 겪었다고 하는데, 평양으로 가는 수도미, 군대미의 수탈이 원인으로 꼽힌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하였다. # 진보 진영에서도 이런 문제는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2016년 시점에서 북한 주민 1인당 식량배급량은 UN에서 권장하는 배급량의 60%밖에 안 된다고 한다.[4] 그런데도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김씨 삼부자와 그 친인척, 측근들은 '''둘째가라면 숙청할 정도로''' 국가의 부와 자원 자체를 독점하고 있다. 일례로 야간지도를 보면 북한에서 조명이 꺼지지 않는 지역이 평양뿐이다. 특권층의 충성을 유도하기 위해 평양에는 그나마 전기 공급이 이루어지며, 여기서도 각종 선전물의 조명이 밝다. 지방은 더욱 심각하여, 가난한 자강도 같은 경우 압록강에서 사진을 찍으면 밤에는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이라는 글귀와 빨간 선전판만 보인다. # 굳이 이런 사례가 아니더라도 당장 김씨 삼부자의 외제품 사랑을 열거하기만 하면 이 구호가 얼마나 큰 기만인지 알기 싫어도 알게 될 것이다.
김일성의 첫 발언이 있은지 무려 57년이나 지난 2019년에까지 또다시 김정은의 입에서 등장했다고 한다(...). 이것도 3월 초의 말로, 몇 주 있다가 이제는 노동신문이 “'''물과 공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다'''는 강의한 정신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 “'''굶어죽고 얼어죽을지언정''' 버릴수 없는것이 민족자존”이라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자는 당정책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도 했다. 이 주장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돈 떨어진 북한…“물과 공기로만 사는” 나라는 없다, 이제 북한엔 '물과 공기만 마시며' 기다릴 주민은 없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보내기도 했다.
3. 한편 남조선에서는...
한국에서는 지상락원, 강성대국 등과 함께 북한의 실태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할 때 많이 사용한다. 쌀은 남아돌고 고기도 의류도 풍족하기 그지없는 나라에 사니 저런 선전 문구는 유머 소재도 안 되는 수준이다. 사실 70년대 중후반만 되어도[5] 수도권이나 남동 임해 지역, 대구권은 물론이고, 한국 내 대부분의 지역에선(물론 그 당시 사람들은 돈 좀 나갈 각오를 했겠지만) 지금의 북한보다 훨씬 더 많은 육류를 먹을 수 있었다. 저런 선전 문구가 그나마 통할 '''만한''' 곳은 정말 낙후된 시나 군의 변두리 지역밖에 없었으며, 그런 곳조차도 80년대 즈음이면 약발이 다 떨어지게 된다.
- 의: 한국의 섬유 및 섬유소재 관련 기술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수준이다. 품질은 우수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해, 명품이나 맞춤 의상이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입을 옷을 구하기는 엄청 쉽다. 건국 초기 후진국 시절부터 잠재력이 우수했던[6] 한국의 섬유 산업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한국이 향후 발전을 기대하는 분야는 세계적인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함께 성장이 가능한 패션 산업인데 이쯤 되면 북한은 아예 쳐다보는 것도 불가능한 정도이다.[7] 비단옷은 물량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반들반들한 재질 특징으로 인해 쪽팔려서 못 입고 온갖 재질의 옷이 널려 있으며 실용성을 원한다면 고어텍스라는 엄청 훌륭한 재질도 갖추고 있다.
- 식: 먹는 부분을 보면, 이팝은 영양가가 별로 없다면서 오히려 잡곡밥, 현미밥을 먹고[8] , 고기를 우린 국물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생고기를 매일매일 푸짐하게 먹고 산다. 그것도 갈비니 삼겹살이니 부위별로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9] 도시의 번화가는 물론이고 시골 읍내에 가도 넘치는 것이 고깃집과 치킨집이요, 급식·학식·구내식당·편의점 도시락·심지어는 노숙자 무료급식에도 쌀밥과 고기가 나오는 지경이고, '잘리면 치킨이나 튀겨라'라는 농담이 돌고 있으니 말 다 했다. 거기다 먹다 남은 음식물들을 버리는 부담이 없어 음식물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될 정도다
덤으로 한국 노동자가 최저임금만으로 불과 두세 시간 일해서 받는 돈으로 갈 수 있는 고기 뷔페에선 고기를 무한정 먹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많이 먹는 걸 선호하는 것도 아니고 고기뷔페 고기는 질기고 냄새나고 더부룩하다고 선호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평범한 북한 주민의 입장으로는 기절초풍할 일. 게다가 널려 있는 게 김밥이라서 쌀밥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데다 고깃국 따위는 쳐다도 안 보고 삼겹살이 질려서 오히려 채소 요리를 먹는 형국이다. 더군다나 2020년이 들어선 지금은 음식의 서양화 즉, 비만 인구가 많아져서 걱정인 정도로 많이 먹을 수 있으니 말 다 했다.
- 주: 주거 면에서 보면 북한의 날림공사와는 비교가 불가능하게 좋은 주거시설이 많아서, 못사는 사람도 최소한 북한 기준으로는 호화주택으로 느껴질 주거시설에서 살게 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2020년대에 들어 내집마련이 매우 힘들다는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수도권에 경우 극심할 정도지만, 수도권 바로 밑에 위치한 천안시만 가도 서울 집값의 1/3수준 가격의 집이 수두룩 하다. 물론 다른 지방도 많이 올랐다.
각 지역의 부촌끼리 비교해보면 서울 강남구와 부산 마린시티 평당가 차이는 최대 7000만원까지도 차이가 날 정도이다. 오히려 일부 지방은 미분양되어 썩혀지고 있는 신축 아파트가 즐비하여 건축회사들이 수익성이 없어 집을 안짓고 있을 정도이다. 단순히 건물을 튼튼하게 잘 짓는 것을 넘어, 21세기에 들어서부터는 건축물의 디자인이나 거주자의 건강 같은 요소에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물론, 건설 자재들의 성분을 꼼꼼히 분석해서 관련 업체를 규제하는 등 돈이 더 들더라도 인체에 안전한 소재들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건물에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한 것이 좋은 예이다. 친환경 소재는커녕 철근 콘크리트에 넣을 철근이 없어서 각목 따위를 대신 집어넣어 주택을 부실하게 짓는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삼성물산이 세계 최고층 건물들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타이페이 101, 부르즈 할리파를 시공할 정도로 건설 기술도 세계적인 수준이다. 게다가 남한에서 기와집 같은 건 흉가나 전통문화 보존을 위한 한옥마을 아니면 보기 힘든 수준이 되었고[10] 타워팰리스 같은 곳에 사는 게 그나마 잘산다 소리 듣는 수준이다.
당연히 한국에도 빈민층은 존재한다. 하루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도, 경제난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흙수저니 헬조선이니 하는 단어는 애초에 생길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빈민층, 심지어 노숙자라도 대한민국에선 일단 그들을 위한 각종 제도적인 사회 안전망이 활발히 작동하기 때문에 최소한 굶어서 죽을 일은 정말 거의 없다. 애초에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빈부격차 등 사회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게나 잘산다는 영미권과 EU 또한 빈민이 차고 넘친다. 사회 안전망이 확실한 북유럽은 최소 굶어 죽을 걱정은 안 할 정도지만 이런 나라라고 문제점이 없는 게 전혀 아니며 여기도 불황의 늪을 빠져나갈 수 없던지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아예 문제없다고 공언하는 나라는 북한(...)뿐인데, 즉 이건 거짓말일 뿐이다.실제로, 2016년 12월 KDI가 내놓은 연구자료에 따르면 북한 전체의 1인당 GDP(PPP 기준)는 최대 1,361달러 정도로 추측되는데 이는 2017년 7월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150만여 원 정도에 불과하다. 기사 심지어 평양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들은 1,200달러대, 즉 140여만 원 정도에 머물고 있다.
평양도 사정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게 평양의 1인당 GDP는 대략 2,715달러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의 환율 기준으로 대략 300만 원 안팎에 불과한 수준이다. 한국의 2017년 시간당 법정 최저임금이 주휴수당 미포함 시 6,470원, 주휴수당 포함 시에는 시간당 7,764원이니 근로기준법 기준으로 1개월간 법정 근로시간인 209시간에 맞춘 임금만 받아도[11] 약 162만 원을 받으니 남한의 1개월 최저임금이 북한의 평균 1인당 GDP보다 더 높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더구나 2018년에는 최저임금이 7,530원, 주휴수당 포함 최저임금은 9,036원이라 이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게다가 중견급 이상 기업에서 평양의 1인당 GDP에 해당하는 300~330만 원 정도를 세전 월급으로 받는 경우는 이미 허다하며 세후 월급으로 그 수준 혹은 그 이상을 받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 GDP로 비교해 보면 2019년 IMF 통계 기준 한국의 1인당 GDP는 31,430달러, PPP 기준으로는 2017년 기준 39,446달러다. 같은 PPP 기준으로 비교하면 북한 전체와 무려 29배, 평양과 비교해도 무려 14.5배나 차이 나는 것이며 명목 기준 GDP조차도 한국의 1인당 명목 GDP가 이미 평양의 1인당 PPP 기준 GDP보다 10배 이상이나 크다.
여기에 의식주를 넘어 문화생활 분야까지 비교해 보면 남북 간 차이는 처참할 정도로 벌어진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 영화와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문학 등의 외국 문물을 마음껏 누릴 수 있고 해외 여행객 수도 매년 신기록을 돌파하는 와중에, 북한은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하면 문화생활, 여가 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수준이니까. 그나마 해외 문화의 경우는 오직 김씨 일족만 마음껏 누릴 수 있을 뿐, 어지간한 간부나 돈주들조차 해외 문화를 잘못 맛보기만 해도 반동으로 몰려 인생을 종칠 수 있는 곳이 북한이다.
다만 한국은 땅값이 워낙 지랄 같아서 전세 내지는 월세로 살아가는 사람이 과반수인 건 있다. 하지만 그나마도 온수, 냉난방, 인터넷 등 달려 있을 건 전부 달려 있고, 북한처럼 정전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은 절대로 아니다. 그리고 그걸 제외하면 옷도 너무 넘쳐나서 북한 기준으로 보면 최고급 재질의 의류가 남한에서는 매우 흔해서 개나 소나 다 입고 다니며 음식은 북한에서는 상상도 못 할 온갖 산해진미들이 쌓이고 널렸다. 심지어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쫓겨나면 한다는 짓부터가 치킨집을 차린다고 할 정도이다.
'''결국 남한의 평범한 서민이 북한의 어지간한 고위급 간부보다도 훨씬 더 안정되고 넉넉한 생활을 누리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12]
4. 기타
학계 정설은 아니지만, 조선시대의 연간 소 도축 두수를 분석해 오히려 조선시대에 쇠고기를 더 많이 섭취했다는 주장이 있다. 1인당 연간 4kg가량의 쇠고기를 소비했다는 것인데, 이는 '''대한민국'''에서도 '''1995년''' 이후에야 달성한 수치이다.주간동아, 이밥에 고깃국은 조선시대 일상이었다 심지어 우리보다 경제성장이 빨랐던 '''일본'''조차도 '''1986년'''에야 달성한 수치다[13] . 비록 신분과 재력의 차이가 있었을 것은 감안해야 하겠지만.
5. 관련 문서
[1] 문화어는 사이시옷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발음은 동일하게 '이:파베 고기(ㄷ)꾹'으로 한다.[2] 이 기자는 아예 국제기구가 식량난을 과장하여 후원금을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이런 기관의 주장에 동조하지 말고, 대북 지원도 일방적으로 베푸는 식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시장을 통해 한류 컨텐츠 등 민감한 정보가 유통되고, 거기다 '서비차'라는 것이 등장하여 이들이 바치는 뇌물로 여행증 제도가 무력화 되기도 한다. 그런데 주민들은 배급을 기다리면 목숨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장사에 몰두하니 못 막는 것이다.[4] 그런데 사실 북한에서도 현재 배급'''만''' 먹고 사는 사람은 거의 남아있지 않기는 하다[5] 꼭 선진국 단계에 갈 필요없이, 최빈국에서 개발도상국 단계로만 넘어가도 의식주와 같은 기초적인 생활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70년대 중후반 한국은 이미 최빈국 단계를 뛰어넘어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신흥공업국으로 인정받고 있었다.[6] 개발도상국 시절 주요 수출품 중 하나가 섬유 제품이었을 정도이다.[7] 어느 정도인가 하면 북한 장마당에서 은밀하게 팔리는 한국산 의류는 고가로 거래되는데다 북한 상류층이 혼수 때 필히 마련해야 하는 것들 중 하나가 한국산 한복일 정도.[8] 가격도 그 취향 따라 이팝보다 잡곡과 현미가 비싸졌다고 말이 많다. 심지어 범죄자에게 주는 식단이 콩밥이었는데 이마저 콩이 비싸서 잡곡 없는 100% 흰 쌀밥으로 바뀐 지경이다.[9] 탈북자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고기 구경조차 힘들다 보니 고기 부위를 지칭하는 말은 거의 모른다고 한다.[10] 이마저도 북한의 그 것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데 잘 정비된 한옥은 건축 방식만 한옥이고 내부는 현대화되어 있거나 내부까지 전통적 건축 방식으로 지어도 여러 편의 설비들을 갖춰놓는 등 실제 주거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다. 게다가 청운효자동, 삼청동, 가회동, 사직동에 있는 한옥은 강남 못지않게 비싼 편이다.[11] 법정 근로시간인 209시간을 기준으로 임금을 지급할 시에는 주휴수당을 제외하고 임금을 지급하면 불법이다.[12] 실제로도 탈북민들 역시 현재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모든 생활양식이 "당간부들이 누리는 것보다 더 좋다"라고 할 정도다.[13] 다만 일본은 일식의 특성상 고기보단 채소나 생선을 주로 먹음을 감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