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트인
사하어: саха[1]
러시아어: Якуты
영어: Yakuts, Sakha
1. 개요
북아시아 북동부 내륙지방의 사하 공화국에 있는 튀르크계 민족. 사하인이라고도 부른다. 야쿠트인들은 같은 튀르크계인 투바인, 카자흐인, 키르기스인, 돌간인과 함께 외모에선 황인종에 속한다. 언어 계통상으로 돌간어를 쓰는 돌간인들과 매우 가까운 편이다. 실제로 돌간어는 야쿠트어와 매우 가까운 관계라서 언어도 거의 통하는 편이다.
2010년 기준으로 약 478,085명의 야쿠트인이 존재하며 미국에는 17,000명대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캐나다에는 4,257명 정도[2] 가 살고있다고 한다. 중국에도 캐나다 절반 가량의 인구가 살고 있다.
2. 시조 설화
야쿠트의 시조는 ‘오노호이’(Онохой)[3]
와 ‘엘레이(Эллей)’이다. 오노호이는 힘이 장사였고, 약탈을 일삼는 강도였다.오랫동안 오노호이의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은 그를 벌하게 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쫓아 나섰다. 오노호이는 식구들과 가축을 데리고 군대를 피해 야쿠츠크 남쪽에 정착하게 되었다.
어느 날 오노호이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약탈과 살해를 일삼다가 사람들에게 쫓기던 거구의 ‘엘레이’와 만나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
엘레이는 오노호이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났다. 오노호이는 엘레이를 사위로 삼고자 두 딸 중 예쁜 둘째 딸과의 혼인을 원했다.
그러나 엘레이는 못생겼지만, 부지런한 첫째 딸과 결혼을 요청했다. 오노호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데 화가 나 엘레이와 첫째 딸을 내쫓았다.
오노호이는 엘레이의 소식이 궁금해 사람들을 보내 알아보게 하였다. 엘레이는 잘 정돈된 풍요로운 마을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정찰을 떠난 사람들은 엘레이가 술잔을 높이 들어 노래를 부르며 기도하자 하늘에서 세 마리의 학이 날아와 그 술을 마시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오노호이는 자신 앞에서 그 의식을 다시 보여 달라고 요청하였다. 엘레이는 기꺼이 그 의식을 올렸고 또 다시 세 마리의 학이 날아와 술을 마시자 모두들 기뻐하며 3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 이것이 최초의 ‘으스아흐(Ысыах)’ 축제였다.
엘레이의 풍요로운 마을을 목격한 사람들은 가축을 이끌고 엘레이의 마을로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오노호이는 자신의 마을을 버리고 사람들이 없는 곳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이 결과 오노호이계 사람들은 야쿠츠크 북쪽에 위치한 ‘남스키 울루스(Намский улус)’ 지방 토착민들의 시조가 되었고, 엘레이계 사람들은 야쿠츠크 동쪽에 위치한 ‘캉갈라스(Кангалассы)’, ‘보로곤(Борогонцы)’ 등지의 토착민들의 시조가 되었다.
동부 출신들은 대부분 부유하고 운이 좋지만, 북부 출신들은 가난하고 어둡다고 전해진다.
3. 역사
원래는 튀르크족이 아닌 예니세이 강 상류에 살고있던 우랄계 사얀-사모예드인이였으나, 주변의 철륵 부족들과 부대끼면서 이에 동화되어 튀르크화되었다. 이후 돌궐 시절에 바이칼 호 남안으로 이주해서 5세기간 정착해 살고 있었지만 부랴트인의 팽창으로 군사적 압박을 받자, 14세기부터 점차 좀 더 북동쪽 레나 강 유역으로 이주하여 그곳에 살게 되었다.[4]
이곳에서는 어웡키족, 에벤족 등 퉁구스계 민족들이 거주하기도 했고 그 외 축치인, 코랴크인 등 축치캄차카어족 민족들과 같이 살면서 이들과 혼혈되었다.
1620년대에 루스 차르국이 야쿠트인들의 영역으로 진입하여 그곳을 합병 및 정착과 동시에 야삭(모피세)를 부과하였다.
1634~1642년 사이에 일어난 이들의 반란을 가까스로 진압하였지만, 계속되는 러시아의 세금 징수는 레나 강의 야쿠트인 및 퉁구스어계 부족들의 대항을 촉발시켰다. 그러자 러시아측의 보이보드은 원주민들이 살던 곳을 불태워버리고 수백명을 죽이는 식으로 대응하였다.[5]
이후 18세기에 들어 러시아는 야쿠트인에 대한 압력을 줄이고, 야쿠트 족장들에게 약간의 특권을 주거나 러시아 정교회 사절단을 보내거나 땅을 준뒤 농업에 관하여 교육시키는 등의 행보을 보였다.
금의 발견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건설은 점점 더 많은 러시아인들을 이 지역으로 끌어들였다. 1820년대까지 거의 모든 야쿠트인들은 러시아 정교회로 개종했다고 하지만, 그들은 샤머니즘적 관습들을 계속 유지했다. 야쿠트 문학은 19세기 후반부터 상승하기 시작했으며, 20세기 초에는 전국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1922년 새로운 사회주의 정부는 이 지역을 야쿠트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명명했다. 야쿠트 반란으로 알려진 적백내전의 마지막 분쟁은 이곳에서 백계 러시아 장교인 미하일 코로베이니코프가 붉은 군대에 대항하는 봉기와 최후의 저항을 이끌면서 일어났다.
1920년대 후부터 1930년대 후반까지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으로 인해 야쿠트인들은 조직적으로 박해를 받았는데, 이 기간 동안의 기아 및 영양실조로 야쿠트 총 인구가 1926년에 "240,500명", 1959년에는 "236,700명"으로 감소했으나 1972년에 이르러선 다시 인구가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4. 문화
대부분의 투르크인들이 중세시대부터 이슬람화되어 이슬람을 믿는데 비해 많은 야쿠트인들은 샤머니즘을 신봉한다. 하지만 러시아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회를 믿거나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무신론자가 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외모는 러시아인들과 생판 다르지만, 정교회 세례명을 이름으로 쓰고 성씨도 러시아풍이기 때문에, 이름만 보고는 러시아인과의 구별이 어렵다. 언어는 사하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러시아 소속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야쿠트인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안다.
4.1.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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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하게도 신년을 두 번 맞이하는데, 여름에 개최하는 "으스아흐"가 바로 그 신년 중 하나이다. 사하 공화국의 영토 대부분은 북극권이면서 내륙지역에 속한 탓에 겨울에 -60°C까지 내려가는 혹한의 기후를 가지고 있다. 야쿠트인은 혹한의 겨울을 견뎌내며 따뜻한 여름을 고대하게 되는데, 오랜 겨울을 끝내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큰 축제를 열어 건강과 안녕을 기원한다.
한국의 풍속과 비슷한 면이 몇 가지 있다. 연장자가 7명의 처녀, 9명의 총각들과 함께 축제를 여는데 연장자는 먼저 불의 정령과 땅의 정령에게 쿠므스를 뿌리며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고수레를 외치며 음식을 던지는 행위와 유사하다.
으스아흐는 태양신 숭배와 풍요를 기원하는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하절기 축제의 기원은 중앙아시아의 스텝지역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 사하인들은 가축과 짐을 싸들고 끝없는 스텝을 유목하였다. 그래서 이들 축제는 같은 튀르크 계열인 투바인, 알타이인, 타타르인, 바시키르인의 하절기 축제와 공통점이 있다. 으스아흐 축제는 6월 말에 열리고 이 날을 새해로 삼았다.
의식이 끝나고 나면 축제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둥글게 원을 그리며 ‘오수오하이(Осуохай)’라는 춤을 춘다. 이 때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이어 부른다. 이 또한 한국의 강강술래와도 매우 유사한다.
4.2.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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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했듯이 추운 기후인데다가 북극과 가까운 곳이기도 해서 생고기를 먹는 식습관이 발달했다.
대표적인 음식으로 "스트로가니나(строганина)"라는 생선회인데, 주로 레나 강 등지에서 잡은 송어, 연어를 얼려서 만든 날생선 요리이다.
야쿠티야의 추운 겨울 날씨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은 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대로 얼어버리게 되는데 야쿠트인은 이렇게 얼어버린 생선을 날 것으로 먹는다. 생선 꼬리 부분을 잡고 직각으로 세운 후에 꼬리부터 칼질을 하면 생선살이 동그랗게 말려 나오는데, 이것을 소금에 찍어 먹는다.
이외에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지방 섭취 또한 많이 하는데, 주로 말이나 순록의 비계를 날것으로 먹기도 한다. 야쿠트인도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우유를 마시는데 소보다는 가축으로 키우는 말과 순록의 우유를 주로 마신다. 순록 우유는 소에서 짠 우유보다 지방이 풍부하고, 단백질이 흡수가 잘 되고, 맛이 더 좋다고 한다.
4.3. 가옥
전통가옥은 겨울과 여름에 주거하는 양식으로 구분된다. 겨울에는 흙을 바른 통나무집에서 살고, 여름에는 다른 유목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우라사(ураса)’라고 불리는 원추형 천막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 가옥 주위에는 가축우리와 곡식을 보관하는 장소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매우 추운 곳임에도 온돌과 유사한 난방 문화는 발전시키지 못했다. 대체로 방 한가운데 불을 지피거나 벽난로를 땠으며, 가족들은 벽 한구석에 설치된 침상에서 생활했다. 현대에는 다른 러시아인들처럼 대다수가 아파트에 산다.
4.4. 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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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입는 사하 전통의상은 두꺼운 외투, 목이 긴 장화, 머리 전체를 덮는 털모자가 특징적이다. 우선 외투로는 주로 순록 가죽으로 만든 한 겹 혹은 두 겹의 두꺼운 옷을 입는다.
외투에 별다른 장식을 하지 않는 단순한 남성용 외투와 달리 여성용 외투에는 가죽을 조각내어 무늬를 만들거나 은, 실 등으로 장식을 하여 입는다. 한겨울에도 외투 밖에 은으로 만든 장신구를 착용하여 멋을 내기도 한다.
야쿠티아 지역은 늪이 많은데, 1년의 대부분이 동토지만 여름에 녹으면서 늪지를 이룬다. 이 때문에 모기가 늪지에 번식하고 그곳에서 서식하는데, 이는 사하인들과 순록들에게 매우 귀찮으면서도 적지 않게 위험하다. 때문에 모기를 쫓기 위해 손잡이가 달린 말꼬리 모양의 "데이비이르(дэйбиир)"라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모기가 들끓기 시작하면 이 데이비이르(дэйбиир)를 늘 지니고 다녔다. 데이비이르는 주로 말총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