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지/두산 베어스 시절
1. 개요
현(現) NC 다이노스 소속의 포수 양의지의 두산 베어스 시절을 정리하는 문서. 양의지는 2019년 NC와 4년 125억에 계약을 맺어 두산을 떠나기 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강민호와 더불어 두산의 '''부동의 주전 포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겸 '''이만수-김동수-박경완-강민호로 이어지는 KBO 리그 최상위 포수 계보의 5번째 주자'''로 활약했으며, 이 시절 양의지는 KBO 골든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 기록만 해도 4회나 갖고 있을 정도로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러브 외에도 2010년 신인왕과 2016년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하면서 두산의 독보적인 선수로 떠올랐으며, 2015년 한국시리즈, 2016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과 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양의지는 30일 목동 넥센전에서 선발 마스크를 썼다. 양의지가 말한 운명의 상대는 넥센 외국인 투수 번사이드. 양의지는 2회 첫 타석에서 번사이드로부터 데뷔 첫 홈런을 때렸다. 6회에는 김상수로부터 홈런 1개를 더 때렸다. 양의지는 그 해 두산의 주전 포수가 됐고, 20홈런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개막 2차전의 깜짝 교체 투입, 3차전에서 나온 첫 타석 홈런, 포수 왕국 두산에서 1군이 가물가물하던 유망주 포수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야구도, 삶도 구름 사이로 순간 비친 햇살에 얼굴이 달라져 보이는, 운명같은 순간을 만난다. 만약 그 장면이 없었다면, 어쩌면 2015시즌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도, 이어진 프리미어 12 대회 우승도 없었을지 모른다.'''
2010년 3월 30일 목동 넥센전, 양의지의 첫 선발 포수 출장 경기를 추억하는 2016년의 기사 #
정수빈에 이어 이 응원가 마저 부를 수 없게 되면서 '''두산만의 남녀구별 응원가는 모두 사라졌다.'''
2. 경찰 야구단
2007년 1군에 딱 '''3타석'''만 나오고 칼같이 경찰청에 입대했다.[1] 여기서 양의지는 자신의 야구인생 최대의 은인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유승안 감독이 경찰청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승안 감독에게 지도를 받으면서 타격능력이 일취월장하게 되고[2] , 경찰청에서 2년 동안 퓨처스리그 정상급 수준의 타격스탯을 쌓아올렸다.[3]
3.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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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시즌 전
퓨처스리그에서의 훌륭한 성적을 바탕으로 당연히 '10시즌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되었다. 당시 두산의 1군 포수진은 준수한 수비력에 반해 극악의 타격능력을 보유한 최승환과 용덕한이었던지라, 팬들은 타격에서 가능성이 보였던 양의지가 1군 백업 포수로 자리잡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전지훈련지에서는 부상으로 인해 김경문 감독의 눈에 별달리 어필하지는 못 했다.
3.2. 페넌트레이스 ~ 포스트시즌
그러나 전지훈련에서 돌아와 시범경기에서 대타로 나와 홈런을 때리는 등 타격능력을 인정받아 개막 1군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첫 선발 포수 출장경기인 2010년 3월 30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양의지의 운명을 바꾸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뜬금없이 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한경기 만에 주전 자리를 확보한다.''' 경기 하이라이트 사실 김경문 감독은 이 경기에서 양의지에게 선발 기회를 맛보게 한 후 2군에서 경험을 더 쌓게 할 작정이었다고 한다. #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은 양의지 본인에게도 홍성흔, 채상병, 최승환, 용덕한의 뒤를 잇는 젊은 포수를 구한 구단에게도 드디어 공격 되는 포수를 보게 된 팬들에게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4]
양의지가 터져줌으로써 류현진, 강정호, 황재균, 차우찬, 이재원 등이 쏟아져 나왔던 황금의 2006 드래프트에서 두산 구단도 나름대로 어깨를 들이밀 수 있게 되었다. 1차지명인 남윤희를 비롯하여 2차 1라운드에서 5라운드까지 민병헌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부도가 났던 아픔을 신고선수 김현수와 8라운드에서 지명했던 양의지가 터지면서 대반전을 이뤄낸 것.[5]
양의지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7타수 2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286, 출루율 .444를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양의지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에서 18타수 6안타 2몸에 맞는 공 1도루 2타점 2득점, 타율&장타율 .333, 출루율 .4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양의지는 2010년 포스트시즌에서 25타수 8안타 2볼넷 2몸에 맞는 공 1도루 2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320, 출루율 .414를 기록했다.
3.3. 평가
결국 2010년 시즌은 0.267의 타율과 20홈런 68타점을 기록하며 마쳤다. 큰 스윙을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맞는 순간의 임팩트가 뛰어나며 부드러운 스윙으로 홈런을 만들어 내는 타자다. 선구안과 체력적인 부분만 나아진다면 다음시즌 또한 기대될 만한 성적이자, 연봉이 2400만원인 선수로서는 실로 놀라운 성적이다. 그 성적으로 2010년 신인왕 기자단 투표에서 92표 중 79표의 압도적 득표로 신인왕에 올랐다.
그리고 사람들이 은근 안 알아주는데 양의지도 5경기 연속 홈런의 주인공이다.[6][7]
무엇보다 2010 시즌 양의지의 성적이 고무적인 것은 프로 첫 풀타임 1군에 주전 포수라는 중책을 맡아 시즌을 보내며 부침을 겪으면서도 지속적인 실력 업그레이드로 부진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집중력과 스타성 또한 훌륭하다는 점이 강점이다. 2군행을 앞두고 격려 차원에서 한 출장이었던 첫 선발 포수 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때려 주전 자리를 쟁취해낸 것, 여름을 거치면서 체력저하로 스탯이 계속해서 하락하였으나 5경기 연속 홈런으로 반전을 이뤄낸 것, 시즌 마지막 두 경기에서 연속홈런을 쳐내 기어코 20홈런을 채워낸 것 등이 그러하다. 이 20홈런으로 양의지 본인은 신인 포수 최초이자 아직까지도 유일한 20홈런, 그리고 이에 자연히 따라온 신인 포수 최다 홈런[8] 타이틀을 획득했고, 두산은 2010년 시즌 5명의 타자가 20홈런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9]
다만 도루저지 능력이 떨어지는 탓에 팬들 사이에선 '타격 되는 채상병'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가끔 다른 팀 팬들도 이 부분을 지적하며 신인왕 자격이 안 되는 형편없는 선수로 평가하기도 하지만 사실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도루저지율은 2010시즌을 기준으로 8개 구단 주전 포수 중에서 중하위권 정도. 물론 훌륭하다고 못하겠지만 그렇게 형편없는 수준까진 아니다. 의외라면 의외. 사실 도루저지보다 더 큰 문제는 포구, 블로킹, 송구 등 전반적인 수비스킬이다. 같은 팀 용덕한, 최승환은 물론이고 그 강민호의 초년병 시절보다 떨어진다는 평가도 있었다.
2010년 프로야구 신인왕. 채상병, 최승환, 용덕한 등 수비력은 준수하지만 공격력이 멘도사 라인을 넘나드는 백업급 포수들로 로테이션을 돌리던 두산은 2010년 프로야구 시범경기에서 양의지를 적극적으로 출전시켰는데 이 때 양의지는 경찰청에서 배운 안정감있는 투수 리드를 선보였고, 타석에서도 맹타를 휘두르며 2008년 김현수, 2009년 고창성, 이용찬에 이은 '''화수분 야구'''의 후속타를 보여주고 있다.
4. 2011 시즌
본인의 첫 풀타임 시즌을 마친후 스프링캠프에서 수비를 중점으로 연습했다.
2011 시즌부터는 주전자리를 확실히 굳히면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는 2011년 상무에서 복귀한 김재환이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부상때문에 2군에 내려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최승환과 용덕한같은 백업포수들이 양의지의 기량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랬었을 수도 있다. [10] 하지만 그 해 2군에서 복귀하는 유망주 최재훈이 있었기 때문에 주전 경쟁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가장 놀라운 기량 향상은 도루저지 부분. 지난시즌 33개의 도루를 잡아 0.248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하였으나, 2011년에는 지난시즌의 두배가 넘는 74개의 도루저지(리그 1위)를 기록하였으며, 도루저지율 역시 0.408(리그 2위)로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양의지는 풋워크가 빨라졌고, 공빼는 동작이 간결해졌고, 어깨 통증이 없어졌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포수로서 투수 리드나 블로킹은 당시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타격 면에서도 비록 홈런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어든 4개[11] 를 쳤지만 , 113개의 안타를 쳐서 '''3할''' 타율(0.301)을 기록하는 등 정교함은 향상되었다. 소포모어 징크스 등을 감안한다면, 타율 등에서 이러한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무난히 해주는 편이었다.
군 문제도 없고, 나이도 어린 편이어서 부상이나 '''실은 2010~2011년이 내 평생의 커리어하이임ㅋ''' 같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장기간 두산의 안방마님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12]
5. 2012 시즌
6. 2013 시즌
7. 2014 시즌
8. 2015 시즌
9. 2016 시즌
10. 2017 시즌
개막 시리즈에서 시즌 첫안타를 오간도의 속구를 가격해 만든 2점 홈런으로 장식했다.
삼성과의 3연전부터 타격감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Sk와의 3차전에서는 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하나는 쓰리런,하나는 솔로 홈런.2루타도 있었다.
4월 말까지 쓰러져 가는 타선의 감초 역할을 해주고 있으며 폭투를 신들린 듯이 잡아내고 있다.김재환, 에반스와 함께 몇 안되게 수준급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중심타선을 이끌고 있다. 4월 29일 기준으로 14경기 연속 안타로 신들린 타격감을 선보이는 중. 작년과는 다르게 찬스에서 강해진 모습. 2루타도 많이 생산하고 있다.
2017년 5월 19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9회에 대타로 나와 좌익수 플라이를 기록한 바 있다. 안타성 타구였지만 버나디나의 다이빙 캐치로 플라이가 됐고 이 플라이 타구에 3루 대주자 조수행이 태그업하지 못하는 뇌주루를 보여주자 헬멧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팀은 7:6 9회 최주환과 에반스의 홈런쇼를 벌이며 대역전극으로 승리.
6월 25일 박세웅에 사구를 맞아 손가락 미세골절상을 당해 일본에서 재활을 했고, 딱 한 달 만인 7월 25일 1군에 복귀했다.[13]
7월 27일 kt와의 수원 원정경기에서 7회초 대타로 나와 심재민을 상대로 2점홈런을 날렸다. 시즌 10호로 2014년 이후 4년연속 2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부상 복귀 이후 타격감이 계속 죽을 쑤고 있다. 스탯도 많이 까먹은 상황.
8월 22일 SK전에서 8회초 2사 1, 3루 기회에서 오재원 대신 대타로 출전했으나 땅볼로 물러났다. 그리고 양의지의 기용으로 두산은 야수를 전부 소모하며 지명타자 닉 에반스가 3루로 가고 양의지는 투수 김강률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김강률은 9회초에 타석에 들어서서 적시타를 때려냈다(...).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타격감이 올라오지 않으면서 시즌 성적 타율 0.277 OPS 0.814 14홈런 67타점을 기록했다.
10월 26일 KIA와의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결정적인 수비미스로 1점을 헌납해 팀을 패배로 몰아넣었다. 마지막 타석에서 7연속 파울을 치고 11구째에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되면서 경기는 그대로 종료.
10월 28일 KIA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도 삽질을 하며 팀의 패배에 일조한다. 특히 8회 2사 1,3루에서 초구 우익수 플라이로 물러나는 것이 백미.2차전에선 11구까지 물고늘어지더니 바로 양대충모드 복귀하고 말았다. 한국시리즈 4차전 까지 14타석 13타수 무볼넷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한국시리즈를 망치는 중.
게다가 4차전 장승현도 하지 않았을 어처구니 없는 타격 방해로 경기를 또 말아처먹었다. 2:0으로 끌려가고 있던 6회 2사 1,2루 상황에서 잘만하면 역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기회를 날려먹기도 했고...
또 10월 30일에 열린 5차전에서는 2말 1사 23루 득점 찬스에서 3-1 볼카운트에 어이없는 파울플라이를 선보이더니, 6초 2사 2루 이명기 의 안타후 김재환의 송구를 못받아버리면서 [14] 경기의 종지부를 찍어버리는 7대 0의 스코어를 만들어버렸다. 이후 두산이 6점을 따라가다 1점 차로 패해 우승을 내준 것을 감안하면 너무나 뼈아픈 대목. 이 날 첫 멀티 히트를 기록하긴 했지만 결국 도중에 대주자 박세혁으로 교체되면서 양의지의 2017년은 끝이 났다. 양의지의 한국시리즈 성적은 16타수 2안타 타율 0.125라는 참혹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초라하게 마감했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에서야''' 2안타를 때렸지만 너무 늦은 활약이었고, 시리즈 내내 수비에서의 삽질로 김재호와 함께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15] 작년의 MVP이자 영웅이 불과 1년만에 역적으로 몰락하면서 양의지의 2017년 한국시리즈는 악몽으로 기억될 듯 하다. 사실은 허리부상을 안고 뛰느라 몸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인도 기사에서 스스로를 탓하며 아쉬워 했다. 더불어 양의지는 원래 NC에 약하고 KIA에 강했는데 두 번의 한국시리즈에서는 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4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다. [16]
11. 2018 시즌
본인의 또 한번의 커리어하이 시즌이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정든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
12. FA
2018시즌 종료 후 데뷔 첫 FA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는데 대어라 할 선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이번 FA에서 두말할것 없는 시장의 최대어. 아무리 두산이라도 양의지가 빠져나가면 손실이 크기 때문에 반드시 잡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한편 롯데 구단에서 양의지를 잡겠다고 직접 언급함으로써 선전포고를 한 셈이 되었다.
NC 다이노스도 양의지 쟁탈전에 공식적으로 참전했다. 예전에 96억을 주고 박석민을 영입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역시 유력한 후보 중 하나.
한화 역시 영입후보로 떠올랐으나, 올 시즌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자 보다 확실한 지원을 위해 양의지를 영입하려 했으나 한용덕 감독이 아직은 우승 전력이 아니라는 이유, 또한 이전에 두산에서 양의지의 백업으로 뛴 최재훈을 배려하여 만류함으로써 공식적으로 완전히 발을 뺐다.
2018년 11월 19일 정식으로 FA를 신청하였다.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롯데의 양상문 감독이 내부 육성에 초점을 맞추겠다며 살살 발을 빼면서 NC와 두산의 2파전으로 좁혀지는 분위기였으나 2018년 11월 26일 양상문 감독은 취임식 인터뷰 도중 아직 양의지 영입철수를 단정한 것은 아니라고 밝히면서 계속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불안한 두산 팬이나, 답답한 롯데 팬, 기대를 하고 있는 NC 팬을 위해서라도 확실한 답안이 필요해 보인다. 양의지 영입에 몰두하다보니 이렇게 된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2018년 11월 27일 기준 두산, 롯데, NC 세 팀만 확실하게 계약을 완료한 외인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일단 여러 매체에서는 두산 vs NC 2파전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NC가 포수인 크리스티안 베탄코트를 외국인 선수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기사가 나왔다.# 사실 NC가 양의지 입장에 뛰어든다고 하는 기사를 보면 '''포수를 보강하겠다'''고 했지, '''양의지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게 성사되면 양의지 영입은 없는 일이 된다.[17] 물론 확정된 것은 아니며, 윌린 로사리오처럼 포수 외 다른 포지션이 가능한 멀티플레이어 자원이기는 하지만 이로 인해 NC가 발을 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때문에 대부분 잔류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나 2018년 12월 6일 SBS 스포츠뉴스에서 NC가 양의지와 협상에 들어갔다는 기사가 나왔다. 김택진 구단주가 직접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2018년 12월 7일자 뭐니볼에서 밝혀진 바로는 두산과 NC가 모두 양의지에게 최종 오퍼를 넣었다고 한다. 며칠 내로 결정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8년 12월 9일 희망더하기 자선야구 경기에서 양신팀 선발로 나섰고 2이닝 동안 나섰으며 7회 대타로 나섰다. 이에 대해 양의지는 "에이전트를 통해 다 맡겨놓은 상황이며 잘 되는 상황이다"라며 말을 아꼈다. ‘FA 최대어’ 양의지, 행선지는? “에이전트에 다 맡겼다”
[1] 양의지가 군대에 갔을 때 채상병, 최승환, 용덕한 등이 주전을 오갔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양의지가 진작에 포텐을 터뜨렸으면 08-09시즌중 한 번쯤은 우승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2] 실제로 양의지의 간결한 타격폼은 현역 시절 빙그레 이글스의 주전 안방마님이었던 유승안 감독의 폼을 빼닮았다. 스윙폼 움짤 [3] 당시 퓨처스리그 기록을 보며 설레던 두산 팬들은 경찰철의 홈구장이 미니구장으로 유명한 벽제 야구장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며 애써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리고 2군에서 뽑아낸 훌륭한 기록이 꼭 1군으로 이어진다고도 볼 순 없고... [4] 다만 지난 시즌까지 1군 주전경쟁을 했던 최승환, 용덕한이나 상무와 경찰청의 주전포수로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있는 김재환, 최재훈에게는 재앙일 수도. 김재환을 군대로 보내며 전역을 손꼽았던 팬들은 이제 김재환을 1루로 전향시켜야 하지 않나 진지하게 고민했다. 일단 2011시즌 종료 직후 최승환이 한화로 팔려가며 그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2012년 시즌 중에 용덕한도 결국 롯데로 가 버렸다.[5] 여기에 두산팬들은 2차 6라운드에서 지명했던 최주환이 제대하기를 기다렸다. 원래 최주환은 타격은 몇 년 전부터 2군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으나 두산의 막강한 내야 뎁스 사이에서 돌글러브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1군에서 중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경찰청에 입대해서 4할에 육박하는 타육과 7할에 근접하는 장타율을 찍고 있으니 제대하면 중용하지 않을 수 없을 듯. 거기에 경찰청에 가서는 유격수를 보면서 대륙간컵에서도 오지환을 밀어냈다! 흠좀무. 전역 이후에는 2루에는 오재원이라는 벽이 존재하고 3루나 유격수 자리는 수비가 영 좋지 않아서 백업 대타 요원으로 주로 나오다가, 2017시즌 들어서 드디어 포텐이 터지려는 모습을 보여줬다.[6] 하필이면 10시즌에는 '''9'''경기 연속홈런의 이대호가 있기 때문이다. 홍성흔도 이대호보다 먼저 5경기 연속홈런을 때리면서 신기록 달성을 하느냐 마느냐로 잠시 이슈였는데 양의지도 그랬다는 것이다. 당시 해설조차도 이대호나 다른 사람들땜에 묻혔다고 말해버렸다.[7] 게다가 10시즌엔 강민호도 강민호(3할 23홈런)지만 포수계의 신기록 '''3할1푼7리'''에 28홈런 107타점이라는 넘사벽 '''10' 조인성'''이 탄생해버리는 바람에... 지못미.[8] 종전 기록은 다름아닌 1999년 두산 홍성흔의 16개.[9] 김현수, 이성열(이상 24홈런), 최준석(22홈런), 김동주, 양의지(이상 20홈런)[10] 최승환과 용덕한 같은 경우에는 투수리드 나 수비면에서는 양의지보다 '''다소''' 앞서지만 공격력에서 상당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11] 2011 시즌 양의지의 홈런 기록은 6월 10일 잠실 SK전 만루홈런, 6월 17일 대전 한화전 투런홈런, 8월 2일 잠실 KIA전 솔로홈런, 8월 23일 문학 SK전 투런홈런.[12] 이 일은 현실이 되었습니다.[13] 민병헌은 안정적으로 복귀하려면 8월 초로 잡아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민병헌 또한 예상보다 일찍 돌아왔다.[14] 김재환이 때마침 전진수비 하고있어서 타이밍 상으로는 아웃이었다.[15] 그래도 3대 역적 중 끝까지 믿음의 야구를 펼친 김태형이나 웃기만 했던 김재호에 비하면 덜 까이는 편이다.[16] 만약 이 때 골든글러브 수상했다면 이승엽의 7년 연속 수상 기록 타이를 이루었을 것이다[17] 이런저런 이유로 외국인 타자를 전담포수로 영입한 경우가 여태껏 없었기 때문에 다들 양의지라고 생각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