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이모저모

 


1. 양현종에 대한 말, 말, 말
2. 미담
3. 여담
3.1. 야구 관련
3.2. 인간관계
3.3. 개인 관련
3.4. 기타
3.5. 기행
3.6. 한때 열성 소덕에 탱빠
4. 별명
5. 윤석민과 원투펀치?


1. 양현종에 대한 말, 말, 말


에이스가 되기에는 키가 너무 작다고 했다.

프로 입단후 3cm가 컸다. 그래도 여전히 작다고 했다.

불같은 빠른공을 뻥뻥 던지는데 심지어 그 공에 타자들이 헛스윙을 붕붕 돌려대는데 저렇게 높게 던지면 안된다고 했다.

심지어 제구가 좋지 않다고 했다.

슬라이더로 좋은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도 저래선 안된다고 했다. 체인지업을 던져야 에이스가 된다고 했다.

체인지업을 던졌다. 삼진을 산처럼 쌓아올려도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는 아니라고 했다.

몸이 아파서 성적이 떨어졌는데, 군면제 받았더니 정신이 풀어졌다고 했다.

멘탈이 약한 선수라고 했다. 단지 몸이 아파서 못던진 것 뿐인데 정신을 걸고 넘어졌다.

많은 승수를 올렸더니 평균자책점이 높다고 했다. 여름이면 자책점이 올라간다고 했다. 자책점을 낮췄다.

타고투저의 시대에 2점대 평균자책점으로 리그 평균자책점 1위가 됐다.

그래도 리그 에이스는 아니라고 했다. 에이스라면 이닝을 더 소화해야한다고 했다.

200이닝을 넘게 책임졌다. 그랬더니 이제는 또 좀 이기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20승을 했다.

지금까지 서술한 이야기는 한 투수가 지난 11시즌 동안 수많은 선입견에 맞섰던 이야기다.

그는 양현종이다.

- 2017.10.02 정우영 아나운서 인스타그램

Yang Hyeon-Jong, Tigers sensational Southpaw. (타이거즈의 놀라운 좌완투수, 양현종)

- 무키 베츠2020년 KBO 리그 양현종 소개 멘트


2. 미담


  • 광주동성고에 1억 7천만 원대의 40인승 최신형 성능의 리무진버스를 기증하였다. 광주동성고 야구부 선수들이 인터뷰를 하면 모두 이 버스에 대해 양현종에 감사를 표현했다. 양현종 모교에 버스 기증
  • 팬서비스가 아주 좋은 선수이다. 퇴근길에 다른 선수들은 그냥 쌩하고 가버리는 반면, 적어도 손이라도 흔들어주고 인사를 해준다. 사인 요청도 어지간해선 해주는데 안 해주더라도 최소한 모자 벗고 목례하는 예의는 보여준다. 오랜 KIA 팬이 싸인 받고 싶다하면 "KIA 팬인데 아직도 제 사인 없으신 분이 있나요?"라고 농담할 정도로 사인을 잘 해준다. 2020년 홈 구장 마지막 경기에서 KIA 선수들이 팬들에게 인사를 하지 않아 논란이 되었을때도 국내 선수 중에서 양현종과 박찬호, 그리고 김태진 이렇게 세 선수만 팬들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건넸다.
  • 맷 윌리엄스 감독이 2020 시즌 주장을 정할 때 이례적으로 투수인 양현종을 지정한 이유로, 본인의 훈련이 끝나면 투수조의 훈련을 보며 조언을 계속해주고 투수조의 훈련이 끝날 때 야수조의 훈련이 진행 중이면 본인도 피곤할 텐데 집에 가지 않고 지켜보며 화이팅 하는 모습을 보며 '이 선수는 항상 팀을 위하는 선수구나' 라는 생각을 해 지명했다고 한다.
  • 2017시즌 FA로 해외진출을 추진했고 실제 NPB에서 좋은 오퍼가 들어왔다는 썰도 있었으나[1]KIA 잔류를 결정했다. 이때 KIA는 이미 100억 계약의 최형우와 40억 계약의 나지완과 계약한 상황으로 모기업의 돈을 다 쓴 상황이었다. 양현종은 놀랍게도 1년 22.5억으로 잔류하였다. 김광현이 4년 계약이나 1년을 재활로 다 쉰다 합의했기에 사실상 3년 85억 계약을 한 시장 상황을 봤을 때 최소 100억, LG 트윈스 등이 참전하면 120억(실제로 LG는 양현종의 통산성적의 절반 정도 밖에 안되는 차우찬과 95억 계약을 했다.) 얘기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홈디스카운트로 헐값에 계약한 것이다. 이후 3년간 연봉 22.5억을 줬지만 선수들은 FA시 계약금을 많이 주는 것을 압도적으로 좋아한다. 금리가 아무리 낮아도 화폐가치는 계속 낮아지고 혹여라도 부진 혹은 부상으로 2군에 갔을 시 연봉은 50%가 삭감되기 때문이다.

3. 여담



3.1. 야구 관련


  • 야구를 시작한 계기는 초등학생 시절 급식을 빨리 먹기 위해서. 양현종 "급식 빨리 먹으려고 야구 시작"
  • 기아의 새 야구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의 첫 등판 투수이자 승리 투수이다. 그리고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완봉승을 하면서 포스트시즌 1호 승리 투수+완봉승이라는 기록도 세우게 되었다.[2] 그리고 무등 야구장의 마지막 선발 투수이기도 했다.
  • KIA 타이거즈가 센터 내야수를 보강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때 두산 베어스에서 이대수를 제시하면서 양현종을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양현종은 부진했지만 젊고 2차 1라운드로 뽑은 핵심 유망주였기 때문에 당연히 KIA 타이거즈 프런트와 구단은 펄쩍 뛰며 거절하였다. 물론 두산이 꼭 이걸 성사시키려고 했다기보단 아쉬운 놈이 손해 봐야지란 마인드로 혹시나 해서 찔러본 거겠지만.
  • 2017년 경기에서 급소를 맞은 적이 있다. 다행히 보호대를 착용해서 누구처럼 되진 않았다. 이닝이 끝나고 확인해 보니 타구가 강해 보호대가 찌그러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양현종은 번거롭다고 보호대 착용을 하지 않는 후배들이 많다며 보호대 착용을 권장했다.
  • 2017 시즌부터 새롭게 선보인 얼터 유니폼(러브투게더 2번째 버전, 광복절 기념 유니폼, 홈 최종전 유니폼, 카네이션 유니폼) 첫 번째 이벤트 경기에서 모두 선발투수로 나섰다. 그리고 해당 얼터 유니폼을 입고 나섰던 경기에서 첫 경기인 러브투게더 데이를 제외한 나머지 세 경기에서 내리 연승을 거두었다.
  • 기아 팬덤 사이에서의 인기도는 그야말로 타 선수들과 비교불가능한 수준인데, 기아 구단이 밝힌 2019년 유니폼 판매 순위에서 무려 3만장으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2위부터는 천 단위에서 노는 마당에 혼자서 자릿수가 다르다.
  • 기아 타이거즈 유튜브에서 나온 인터뷰 영상에서 은퇴 후의 자신의 이미지가 정말 열심히 던지고, 지기 싫어하던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해당 인터뷰는 여태까지 양현종의 대외적 인터뷰들과는 다르게 양현종이 정말 편안하게 임한 것이 느껴진다. 양현종의 팬이거나 기아팬이라면 꼭 한번 보도록 하자 영상[3]
  • 가끔 구장 알바(...)를 뛰는 듯 하다.
  • 경기 중 후배들에게 투구 관련 조언을 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데이터 주의)전상현과 박준표에게 투구 조언을 하는 모습. 가장 많이 신경쓰는 후배는 김기훈인 듯.# ## 심지어 함평까지 가서 2군 투수 코치를 겸업하고 있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 최준석에게 약한 편이었으며 만루홈런을 허용한적이 있다.

3.2. 인간관계


  • 양현종은 2008~2009 시즌 동안 칸베 토시오 코치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원정경기 호텔에서까지도 경기가 끝난 후 옥상으로 올라가 훈련을 했다는 사실을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 후로도 칸베 토시오 코치와 인연은 이어져 현재까지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다.[4] 추가로 요즘 어린 선수들은 간절함이나 노력이 부족하다는 말도 같이 했다. 2017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칸베 전 코치를 초대해 122구 완봉승을 거두며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스승에게 제대로 보여줬다.
  • 2008년 용병 호세 리마가 방출되었을 때 매우 아쉬워하며 울기도 하였으며 2010년 5월 23일 호세 리마가 사망하자 미니홈피에 호세 리마와 같이 찍었던 사진을 올리며 그를 애도했다. 시간이 꽤나 흐른 2017년도에도 100승을 거두자 고인인 호세 리마 이야기를 꺼냈다. 정말로 친하게 지냈던 모양. 양현종은 호세 리마에게서 마운드에서의 운영과 자신감, 야구 외적인 행동가짐에 대해서 배우게 되었고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며 다독여줬다고 회고했다. 게다가 양현종은 2008 시즌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팬들에게 정신없이 까이는 등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낼 때인지라 더욱 그런 듯하다.
  • 호세 리마를 각별하게 여겼던 또 다른 사례로 그가 기아에 있었을 때 서로 아버지 아들 할 정도로 친했다고 한다. 양현종이 2010년 6월 2일에 완봉승을 기록했을 때, 인터뷰 중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호세 리마가 생각난다'고 답변했을 정도.[5] 2015년 5월 23일 삼성전에서 134구 선발승을 거두면서 호세 리마를 기리면서 세레모니를 펼치기도 했다.
  • 지금 쓰는 등번호 54번도 원래 입단 동기였던 친구 이준수의 번호였는데, 2008 시즌이 끝나고 이준수가 방출당하자 친구를 위해서 달았다.
  • 2012 시즌 후, 이두환이 KIA에서 뛰어보지도 못하고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모자에 이두환의 이니셜인 DH를 써넣으며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 후 친구 이두환을 기리는 소감을 남겼다.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이두환에게 보낸 쪽지는 덤. 그리고 2019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다시 쪽지를 남겼다.

3.3. 개인 관련


  • 냉철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애교도 많고 장난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 모교인 광주동성고 앞 동성분식에 가끔 출몰한다고 한다.
  • 차우찬만큼이나 정이 많고 착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 야구를 안 했다면 우주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6]
  •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최주환이 그의 초-중-고 1년 선배인데, 프로필상 생일은 겨우 이틀 차이다. 그런데 사실 최주환은 2월 29일 출생이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아들의 생일을 4년에 1번씩 챙길 수는 없으니 등록을 2월 28일로 했다고 한다. 사실상 생일 하루 차이로 선후배가 갈린 것이다.
  • 일상 생활을 할 때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경기할 때는 무테 안경을 쓴다. 조성환의 말을 빌리면, 무테 안경을 착용하면 시야에 방해를 받지 않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 때 안경이 떨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끈으로 머리에 고정시키는데, 뒤통수에서 삐져나온 끈이 마치 꽁지머리같이 보이기도 한다. 색깔도 딱 검은색이라서.
  • [image]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공식 홈페이지에 게재된 프로필 제출용 사진.
안경 착용 이유는 물론 시력이 좋지 않아서였지만, 라식 수술로 시력이 개선된 이후에도 여전히 일상생활이나 경기 중에도 안경을 쓰고 있다. 이유는 안경 안 쓰면 전혀 다른 얼굴이 된다고 해서... 2017 스프링캠프 인터뷰에서 소원 세 개[7]를 다 이루면 다음 시즌부터 안경을 벗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하여 2018 시즌 시범경기에서 처음으로 안경을 쓰지 않고 던졌으나, 경기 내용과는 별개로 반응이 좋지 않아서 시도를 접었다.
  • 그리고 라디오볼에서 언급된 바로는 안경을 착용하고 썬크림을 과도하게 바르는 이유가 "스타성" 때문이라고 한다. 프로야구에서 선수를 상징하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자신은 썬크림과 안경이 그 상징성이라고. 그 외에도 프로야구선수로서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스타성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3.4. 기타


  • 로만 콜론이 큰 손을 이용해서 공을 한 손으로 다루는 묘기를 해보면서 양현종에게 해보라고 했는데, 전혀 하질 못하자 로만 콜론이 때리려고 했다. 물론, 양현종은 정말 쫄았다. 참고로, 로만 콜론은 KIA에 오기 전에 마이너리그에서 제이슨 카너스를 폭행 해서 당시에 뉴스에까지 나올 정도로 큰 폭력사건을 일으킨 경험이 있다. 양현종이 위축되는 것도 당연하다.
  • 온라인게임 마구마구에 나오는 자신의 투구폼이 실제와 다르다는 이유로 개발진에 직접 수정을 요구해 2009년 10월 28일 업데이트 때 반영되었다. 기사 보기
  • [image]
2010년 광주MBC의 캠페인인 "무등산을 사랑하자"에 출연했다. 마운드에서 혼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은 제 뒤에 무등산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사가 인상적. 못할 때는 이걸로 더럽게 욕 먹었었다.
  • 한때 양현종이 부진했을 때인 2011-2012 시즌에는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양현종의 사진은 혐짤다. 일단 올리면 달리는 게 욕설. 예를 들면, 이런 짤.
  • [image]
하지만 양현종이 2013 시즌 이후로 각성하면서 지금은 잘생겼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
  • 2014년 시즌이 끝난 후 당시의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함께 배구장에 관중으로 온 모습이 포착되었다.
  • 2015 시즌이 끝나고 유부남 대열에 합류했다. 여자친구와 식만 올리지 않았을 뿐 이미 예비신부와 신접살림을 차렸고 9월 15일에 득녀를 했다. 이름은 '양지온'. 그리고 2017년 8월 23일에는 득남을 했다. 아들 이름은 '양시온'이라고 한다. 또 2018년 12월 4일에 득남을 했다. 셋째 이름은 '양태온'.
  • 이범호에게 꽃을 만들어준 적이 있다. #
  • 2017년에는 모교인 광주동성고 야구부를 위해 버스를 기증했다. 차종은 기아 뉴그랜버드 파크웨이.
  • 20억대 연봉을 받는 입장임에도 옷은 항상 중저가 브랜드만을 고집할 정도로 검소하게 입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에이전트에게도 이보다 더 비싼 옷은 절대 사지 말라고 부탁을 할 정도라고.[8]
  • [image]
    2019 시즌 후 아내와 함께 개그콘서트를 직관하러 갔다가 PD에게 정확히 잡혔다.

3.5. 기행


[image]
'''윤석민을 노리는 날카로운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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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홍은 내꺼 우유빛깔 양현종'''[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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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페즈를 괴롭히는 양현종'''[10]
[image]
'''두피 관리인 양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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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혼삿길 막는 양현종'''(최희섭 옆에 있는 선수가 안치홍이다)
[image]
'''이종범 앞에서 대놓고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에게까지..'''
심지어 김원섭의 딸까지 노리고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이 짤들은 그의 행각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어장관리가 쩌는 남자''', '''마성의 후로게이'''로 낙인 찍혀버렸다.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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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강정호에게까지 손을 뻗는 무서운 후로게이.
약사님도 페로몬을 피하진 못했다.
물론 위에도 언급했듯이 지금은 애아빠라 이런 모습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해맑은 현종이

3.6. 한때 열성 소덕에 탱빠


2009 시즌 두산 베어스와의 개막전에서 공연하는 소녀시대태연을 보고 침을 질질 흘리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혔고, 그 이후 기자를 통해 싸인을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image]
태연은 양현종에게 사인 외에 '''10승 달성~!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파이팅!!'''이라는 문구를 써 주었는데, 이 사건이 기사로 나가자 이강철 투수코치에게 엄청나게 털렸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팀 선배들도 엄청나게 놀려댔다고.
'''그리고 진짜로 10승을 달성했다.''' 무려 12승을 기록, 팀도 우승시켰다. 그해 다승왕은 아쉽게 놓쳤는데 다승왕이 된 사람은 동 시즌 14승 투수인 아킬리노 로페즈였다.
게다가 KBS N SPORTS 야구 프로그램인 야생야사에서는 '자신의 10승 달성과 팀 우승은 태연 덕분'이라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제대로 소덕 인증한 셈.
11월 9일에 열린 우승 축하행사에 소녀시대가 초대가수로 왔으나 막상 '''양현종이 감기 몸살을 앓는 바람에''' 병원에서 뒤늦게 와 선수들이 앉은 앞자리도 아닌 먼 발치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출연했던 출발 드림팀에서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구에요?" 라는 질문이 나오자 태연을 언급한 후 태연에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image]
디시인사이드 태연 갤러리국내야구 갤러리에 태연이 출연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열성적으로 시청하는 모습이 올라와 진성 탱빠 인증에 성공, 뭇 갤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하였다. 이런 건들로 인해 그에게 붙은 별명이 '''양소퀴.''' 이후 다른 인터뷰에서는 최희로 이상형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그러나 본인은 가정을 꾸리고 가장이 된 이후로는 상기한 일들 모두를 스스로 상당한 흑역사 취급한다. 2017년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그게 언제적 일이냐면서 결혼도 했고 애도 있으니 이제는 그만 언급해 달라고 한다. 영상 해당 발언은 1분 42초 부터.

4. 별명


한창 방화를 해대던 시절에는 숨만 쉬어도 별명이 양산되는 수준이였다. 에이스로 거듭난 지금은 대투수라는 가장 대중적인 별명과 야갤의 붉은청룡, 갸갤에서 부르는 붕개나 안쪼, 양쪼가 가끔 나오는 것 빼고는 거의 사장되었다. 이 당시 양산된 별명으로는 아래와 같다.
  • 운현종: 2010 시즌의 폭발적인 타선 지원과 기록되지 않은 각종 행운으로 16승을 달성하며 붙은 별명이다.
  • 햄종이: 햄스터+현종이. 움짤로도 만들어졌다. 양현종 햄스터 드립이라 불린다. 이 때문인지 여러 야구만화에서는 햄스터로 묘사된다.
  • 막내딸: 아무리 방화를 해도 지역 프랜차이즈 출신에 팀 역사상 몇 안되는 좌완 선발형 파이어볼러였기 때문에 코칭스태프, 팬들 모두 애지중지해서 생긴 별명. 보통 모지리 막내딸로 불린다.
  • 양소퀴: 소덕이라서.
  • 퀄뭐: 조범현 감독이 질책하자 그래도 퀄리티 스타트했다며 개드립 시전. 이에 열받은 조 감독이 '퀄뭐?'라고 답해 그대로 양현종의 별명이 되고 말았다.
  • 안경쪼다: 이걸 줄여 안쪼라고 한다.
    • 양쪼: 안쪼의 파생형.
  • 붕괴: 2011년 4월 3일 광주 삼성전에서 양현종이 볼넷쓰리런을 기록하자 다음 중계에 양현종 붕괴라고 떠서 생긴 별명이다.
    • 붕개: 붕괴 + X새끼. 사람으로 거듭난 2013 이후로도 붕괴하는 기미가 보이면 갸갤은 붕개로 뒤덮힌다. 이후 KIA의 토종 프랜차이즈 투수 라인인 윤석민, 양현종, 한승혁은 각각 석개, 붕개, 슝개의 개자 돌림 별명이 붙게 되었다. 익숙해진 나머지 잘할 때도 붕개로 불린다.
  • 내이투: 2011년 7월 31일 광주 넥센전에서 4이닝 4실점하자 스포츠조선에서 내가 이런 투수란 말인가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
  • 어둠의 피쳐: SK전 6이닝 2실점하자 어려운 팀을 구하는 어둠의 피쳐라는 기사가 뜨면서 생긴 별명이다.
  • 지온이: 양현종의 딸(첫째) 이름이다. 파생형으로는 '큰지온이'가 있다.
  • 그 외에 양모지리, 양시구, 양삼밀, 볼넷쓰리런[11], 양볼넷, 붕개나이트, 양민폐, 양멸망, 양현종말, 선크림귀신, 가부키 배우, 임동귀신, 양폭탄, 미백의 안경남[12] 등.
갸갤에서는 2013년 시범경기 직후부터 한 야갤러가 "양현종 대투수님 올해는 정말로 부활하실거 같지 않냐?" 식의 꾸준글을 도배하며 '''대투수님'''이란 별명을 밀었는데, 이후 양현종이 정말로 리그 최고의 토종 투수가 되면서 어지간한 기아팬 커뮤니티에서는 주로 대투수, 머투수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2017 시즌 대활약과 함께 해설위원, 선수, 팬들의 대투수 언급이 잦아졌다. 못하면 비틀어서 '소투수'라 부르기도 한다(...).
야갤 계열 커뮤니티에서는 '''붉은청룡'''이라는 별명이 쓰인다. 야갤에서 한 어그로가 관심을 끌 목적으로 유명 야구선수들에게 오글거리는 억지 별명을 밀며 개념글을 주작했는데[13] 그 중 거의 유일하게 흥한 별명. 당연하게도 청룡은 이름부터가 이미 푸른색인데 '''붉은''' 청룡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작명을 당당하게 밀어서 그 병신스러움에 오히려 유명세를 탔다.
흔히 붉은청룡갑, 줄여서 청룡갑, 붉청갑 등으로 불리며 이젠 야갤에서 투수 떡밥이 돌 때마다 붉은청룡이 안 나오면 야갤러들이 댓글로 붉은청룡갑은 어딨냐며 아우성치는 수준이 되었다. 하도 인기가 좋아서 타자 관련 주작을 할 때도 꼭 사진이 들어가는 야갤스타. 2019년에는 아예 검은백호, 하얀현무, 푸른주작 병맛 사신도를 만들었다.[14] 야갤이나 해야갤 등 디시인사이드에서만 많이 쓰이고 디씨 밖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 별명이었으나 비디오머그에서 이 별명을 인용하면서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이후 야갤의 야, 코를 붙이는 문화에 힘입어 야은코룡이라는 파생형도 간혹 쓰이는 편.
이에 몇몇 키움 팬들은 이 별명을 응용하여 양현에게 붉은청, 대투 등의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젠 보통 좀 오그라드는(...) 대투수라는 별명은 기아 타이거즈 갤러리 같은 곳에서나 주로 쓰이고, 타 갤이나 해야갤에서 쓰일 때는 보통 (그들만의)대투수라는 식으로 반쯤 비꼼을 섞어 부르는 별명으로 자리잡았다. 보통 친근하게 부를 땐 붉은청룡을 더 많이 써서, 사실상 KBO 전체 팬덤을 통틀어 가장 많이 쓰이는 별명은 붉은청룡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방송에 쓰기엔 좀 진지하지 못한 분위기 때문에 방송 등 오피셜한 자리에서는 KIA의 대투수같은 별명이 쓰이고,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별명.
2020 시즌에는 다른 선발투수들이 3점대 ERA를 찍는 와중에도 아직 ERA가 4점대였을 때가 있어 5선발이라는 드립도 생겨났다. 본인도 이를 알고 있다. 사실 시즌 초만 해도 단순 농담으로 쓰는 말이었는데[15] 도저히 반등할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팬들이 제발 좀 쉬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부진이 이어지자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아예 '대만 국적의 괴투수 야옹 후옌 주옹', '빨간 안경', '그 안경'으로 부른다. 다행히 시즌 중후반 반등에 성공하며 이 별명은 사용 비율이 줄었다. 공교롭게도 어느 팬이 '문어지지마요 양현종'이란 플랜카드를 들고 오자마자 반등에 성공하면서 '문어좌'라는 별명도 추가.
특이하게도 일본 5ch 스포츠 스레에서는 '우호홍구'(ウホホング) 라는 별명이 있다. 2016 시즌 FA 자격을 얻고 해외진출을 추진할 때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입단이 유력해지자 "하필이면 요코하마라니 우헝헝"이라는 국내 반응이 일본으로 그대로 퍼졌기 때문. 훗날 요코하마 출신의 투수 조 윌랜드가 KIA로 입단하게 되자 "대신에 우호홍구 줘" 라는 반응도 나왔다.
참고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양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성이 양씨이기도 하고 중국의 前 쇼트트랙 선수 양양을 닮아서 그렇다.

5. 윤석민과 원투펀치?


KIA 팬들이 가장 바라는 '''우완 에이스 윤석민-좌완 에이스 양현종의 선발 원투펀치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 양현종의 포텐이 터진 2009년부터 살펴보면 양현종이 12승 투수를 하며 잘 나갈 때 윤석민은 정작 2009년에 초반 부진했다가 후반부에 호투를 이어나갔다. 실상 이 시즌은 구톰슨-로페즈의 용병선발 듀오가 더 대활약해서 기아를 우승까지 이끌고 갔으니.
2010년에는 양현종이 나올 때마다 팀의 연패를 끊고 승리를 챙기면서 다승그룹에 이름을 올리는(!) 무려 16승을 거두었다. 김광현이 17승을 기록해 다승왕은 놓쳤지만 기아의 에이스 역할을 수행했던 반면에 윤석민은 SK전에서 승리가 날아가며 락커룸에서 자해 부상을 입어 2군행, 이후 복귀 후에는 불펜 투수로 뛰며 롯데전에서 연속 사구 사건을 일으키며 바람잘날 없는 시즌을 보냈다. 결국 그 해 아시안게임에서 국가대표에 뽑힌 양현종은 금메달로 병역면제를 받고 다음 시즌 기분 좋게 시작하나 했는데...
2011년, 둘의 처지는 정반대가 되는데 윤석민이 무려 17승을 따냈고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며 정규시즌 MVP까지 받는 등 완벽하게 부활하여 리그를 대표하는 오른손 선발투수로 이름을 날린 반면, 전해 다승그룹에 있던 양현종은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대차게 말아먹었다. 아시안게임 이후 몸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투구 밸런스가 실종된 게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2012년에는 윤석민은 전년도의 특급 투수같은 면모는 보여주지 못했고 불운도 겹치긴 했으나 일반적인 A급 투수의 모습은 보여주었고, 양현종은 계속 부진한 모습을 이어갔다.
2013년에는 양현종은 겨우내 단내나는 훈련으로 좌완 에이스의 면모를 회복하는 듯했으나 결국 후반기를 말아먹으면서 추락. 양현종은 부상 후 선동열의 무리한 복귀 앞당기기로 말아먹었다고 평가 된다. 그리고 윤석민은 타이중 참사에 어깨 문제 등으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말았다. 특히 후반기에 윤석민은 사실상 강제로 마무리로 전환하지만 마지막 경기까지 별 재미를 못 보았다. 결국 둘 다 사이좋게 안 좋은 한 해를 보내버려 반비례 징크스는 깨진 셈. 무엇보다 2014년부터 윤석민은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 반비례 관계는 따지기도 애매해졌다.
2014년 윤석민미국의 AAA에서 10경기 연속 피홈런 기록을 세우는 동안, 양현종은 기아의 토종 에이스로서 위엄을 보였다.
2015년 윤석민기아로 리턴한 후, 마무리를 하게 되며 두 투수가 함께 선발로 터지는 모습은 보기 힘들 전망이다. 사실상 둘 다 잘 해주는 시즌이라고 할 수 있다. 양현종, 윤석민 둘 이 각각 WAR 1, 2위다. FIP는 중간에 합류해서 표본이 적은 에반을 제외하고, 윤석민이 팀내에서 1위고 양현종은 선발 에이스로서 잘 해주고 있다.
2016년에는 양현종은 200이닝을 돌파했으나 시즌 막판에야 10승 투수가 되는 등 불운의 에이스가 되었는데 마무리 알바를 마치고 선발투수로 복귀한 윤석민은 시즌 초부터 어깨 부상으로 드러누우며 얼굴도 거의 볼 수 없다가 2017년에는 수술로 사실상 전반기에는 출장을 하지 못하게 됐다.
2017년에는 양현종은 그야말로 커리어 하이, 20승이라는 어마무시한 승수를 찍고 완봉승을 비롯해 한국시리즈에서 큰 활약을 하고 '''리그 MVP'''까지 된 반면 윤석민 어깨 수술을 받은 뒤 재활하며 복귀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결국 2017년 복귀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기사가 나오며 먹튀의 정점을 찍었다.
2018년에는 드디어 윤석민이 복귀했으나 선발로 몇 경기 출장하여 거하게 털린 이유로는 계투 및 마무리로 전환하며 이번 해도 두 투수의 선발 공동 폭발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2019년에는 윤석민이 선발로 복귀한다는 발표가 났으나 스프링캠프 기간 중에 어깨통증이 재발하였고 결국 시즌이 끝날 때까지 나오지 못했다. 한편 양현종은 평균자책점 2.29를 기록하여 리그 1위를 달성하였고 WAR 역시 투타 종합 리그 1위의 위엄을 달성하며 대활약을 보였다.
결국 윤석민이 2019년 시즌 후 은퇴를 선언하면서 윤석민과의 원투펀치는 이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만 남게 되었다.

[1] 아예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 계약이 확정됐다는 오보까지 뜰 정도였다.[2] 포스트시즌 1호 등판은 헥터 노에시였지만 그 경기에서 패했다.[3] 은퇴 후 자신의 이미지 이야기는 4분 8초에서 언급된다.[4] 칸베 코치는 아직도 호사방등의 기아 커뮤니티의 팬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데 이 시기에 꽃을 피웠던 투수진이 가히 엄청나다. 유동훈 곽정철 손영민 이범석 등등.[5] 양현종은 이 답변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6] 3분 10초쯤에 나온다.[7] 한국시리즈 우승, 좌완투수 신기록, 둘째 아이[8] 사실 이것도 와이프가 하도 닦달해서 이 정도일 가능성도 있다. 즉 원래 옷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신경쓰는 듯.[9] 임태훈과는 벨트를 빌려주는 등 상당히 막역한 사이다.[10] 참고로 당시 로페즈의 나이는 이대진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11] 하지만 모 팀에서 이를 뛰어넘은 볼넷 그랜드슬램이 터졌다.[12] 2019 프리미어 12 도중 일본에서 붙여준 별명.#[13] 사신 김광현, 대부 최형우, 마이스터 이용규 등등. #[14] 김상수가 왜 주작이냐면 동생이 음원 사재기로 차트를 주작해서.[15] 작년 시즌에 8점대 ERA를 기록했다가 점차 각성하여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한 적이 있다. 초반에 부진해도 어차피 후반에 살아날 것을 알고 있으니까 팬들도 5선발을 농담으로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