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쿠(만화)

 


1. 개요
2. 미디어믹스
3. 배경
5. 설정
5.1. 적면포창
5.2. 오오쿠
5.3. 사회풍속
6. 등장 사건


1. 개요


大奥
요시나가 후미의 순정 계열 대체역사 만화이며 2009년 제13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만화대상을 수상했다. 여러 번 드라마화된 소재이자 원래 여자들만의 공간인 오오쿠를 역사상의 실존인물들을 TS해서 남자들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남자들 소굴이 된 오오쿠에서 권력의 중심에 선 여성 쇼군들의 일대기와 여자들을 둘러싼 오오쿠 속 남성들의 암투, 남자와 여자로서 오오쿠 구성원들과 쇼군이 만들어내는 애정극을 그려나가는 만화.
일본에서 2021년 02월 26일 19권으로 완결되었고, 한국에서는 2020년 09월 25일 18권이 출판될 예정으로 완결이 머지 않았다.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답게 담담한 듯하면서도 깊이 있는 심리묘사가 일품으로, 등장인물들의 젊은 시절부터 늙어가는 모습까지 등장인물들의 일생에 걸친 희로애락과 회한을 담아낸다는 점이 같은 듯하면서도 차별되는 재미를 준다.
요시나가 후미는 1983년판 오오쿠 드라마의 팬이었고, 2003년 버전 오오쿠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 지금이라면 만화로도 그려낼 수 있겠다 싶어 이 작품을 그려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실제로 오오쿠 드라마에서 나왔던 장면이 여럿 오마쥬된다.[1] 스토리 진행 부분까지 오마쥬되므로, 원작 드라마 팬픽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오오쿠를 남자들만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린 건 '''복도에 남자들이 쫙 늘어서있으면… 하아하아''' 하는 망상에서 비롯된 거라 말하는 한편, 오오쿠란 공간 속의 다툼이 애정을 둘러싼 싸움이라기보다 권력을 둘러싼 파벌 싸움에 가깝고, 그렇다면 남자 오오쿠도 가능하겠다 싶어서였다고 한다.
한편 이 작품은 단순히 인물들의 성별만을 바꾸어놓은 것이 아니라 남성이 줄어들고 여성이 주류가 된 SF와 실제 에도시대의 현상을 맞물려 있고, 역사적 사건들 역시 주요 인물들의 성별을 역전시켜놓은 상태에서 그런 상황에 걸맞게 작가가 각색해서 삽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에도 막부가 쇄국정책을 시행한 이유는 남자들이 소수가 된 걸 숨기기 위해서라거나, 겐로쿠 아코 사건의 이유가 남자 다이묘와 여자 다이묘간의 성별상의 차이로 인해 불거진 문제였다고 하거나, 오오쿠는 원래 하렘이 아니라 사병대 조직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거나 등등.
외국인 캐릭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시기적으로 겹칠 조선통신사는 언급도 없다. [2] 조선의 언급이라곤 청나라와 같이 적면포창이 돌지 않는다 정도. 청나라 조차 딱 그 정도로 언급된다. 에도 막부 당시 관례에 따라 네덜란드 상인이 쇼군을 접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는 쇼군이 남자 옷을 입고 오오쿠의 남성들이 막부의 중신들로 위장해서 해결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네덜란드와 달리 최인접국인 조선은 실제 역사상 여성이 주류가 된 일본 사정을 숨길래야 숨길 수 없으니 작가가 그냥 아예 빼버려서 왜란 이후 조선과의 교류가 없는 걸로 설정한듯.

2. 미디어믹스


  • 드라마CD - 『大奥』極上音絵巻
게재지 『MELODY』와 1권 연동으로 행해진 응모자 전원 서비스를 위해 제작되었다.
  • 1차 영화화 - 오오쿠 <남녀역전> (大奥〈男女逆転〉)
1권을 각색한 영화. 2010년 10월 일본에서 개봉되었다. 주연은 아라시니노미야 카즈나리시바사키 코우, 호리키타 마키, 타마키 히로시 등등.
2006년 공개된 영화 '오오쿠'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DVD 및 블루레이 상품명에는 <남녀역전>을 붙인다.
  • 텔레비전 드라마 - <오오쿠 ~탄생~ 아리코토·이에미츠편>
2~3권을 각색한 2012년 4분기 드라마. 제작사는 일본 TBS. 2012년 10월 12일부터 12월 14일까지 방영. 총 10부작.
위의 1권 영화가 인기를 끌자 프리퀄이 제작 결정되었다. 그것도 드라마와 영화가 동시에. 이에미츠 시대는 에피소드가 많아 호흡이 긴 드라마로, 츠나요시 시대는 여러모로 화려한 면이 있기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로 결정된 것. 주연은 타베 미카코, 사카이 마사토, 타나카 코키 등등. 시청률은 평균 8.6%로 다소 낮았지만, 사카이 마사토와 타베 미카코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카이 마사토가 국내에서도 꽤 유명한 배우인지라 일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제법 알려진 작품.
  • 2차 영화화 - <오오쿠 ~ 영원 (大奧 ~ 永遠) 에몬노스케·츠나요시편>
4~6권을 각색한 영화이다. 2012년 12월 일본에서 위 드라마가 종영될 무렵 개봉.
감독은 오오쿠 <남녀역전>을 맡은 카네코 후미노리이다. 주연은 사카이 마사토,[3] 칸노 미호이다.[4]
아쉽게도 속편은 1편에 비해 흥행하지 못했다고 하며, 그래서인지 이후 에피소드는 영상화되지 못했다.

3. 배경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고 3대째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시대의 1630년부터 일본에는 기이한 전염병인 적면포창[5]이라고 하는 젊은 남성만이 걸리는 병이 떠돌았다. 이로 인해 일본의 남성들은 거의 전멸했고 무가(武家) 다이묘들이 지배하던 일본에도 거대한 변혁이 일어나게 되었다. 결국 여성들이 가문을 잇게 되었고 이는 쇼군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데…[6]

4. 등장인물


항목 참조.

5. 설정



5.1. 적면포창


  • 적면포창(赤面疱瘡/あかづらほうそう)
극중에 등장하는 남자들만 걸리는 가공의 질병. 나물 캐러 산에 갔다가 병든 에게 치명상을 입은 어느 소년이 사망한 뒤 그의 가족과 이웃이 발병하기 시작하면서 창궐이 시작되었다. 이 묘사로 보아 곰에서 시작되어 사람과의 접촉으로 감염된 인수공통전염병. 전염병이자 일본 고유의 풍토병으로, 외국에 병이 나타난 예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인 혼혈이여도 일본에서 태어나면 걸린다. 주로 10대 소년이 걸리지만 드물게 성인 남자가 발병하기도 한다. 적면포창에 걸리면 고열이 난 후에 새빨간 발진이 온 몸에 퍼지고 문드러져서 죽음에 이른다. 치사율은 80%에 달한다. 성인이 되어 걸릴 경우 대부분 경미한 증상에 그치며 치사율은 낮은 편이지만, 매우 이례적으로 31세의 나이에 발병한 환자가 사망까지 간 사례도 있긴 하다. 하지만 적면포창에 걸린 남자들이 2~3일 안에 회복되어 유행에는 이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일본의 남성인구는 급감하여 여성대비 1:5, 안정기에도 1:4 정도에 불과했다.
작중에서 적면포창은 매년 계속 돌지만 그 와중에 도움도 안되는 오오쿠가 문제없이 유지되고[7] 알아서 사는 남성들을 보면, 남자로 태어나도 어떻게든 화를 피해 잘만 살아남고 성인으로 잘 자라나는 인물들은 많은 듯. 어째 클론 생식만 하는 도쿠가와는 안 그렇지만, 남자 이에미츠와 카스가노 츠보네가 평생동안 한 짓을 생각하면 자업자득이다. 아리코토를 포함한 공가귀족이나 황실 쪽 고자들은 절대 안 걸린다.(...)

5.2. 오오쿠


  • 고나이쇼노카타 (御内証の方, '은밀한 분'이라는 뜻.)
쇼군이 즉위 후 처음으로 합방하는 상대. 작중에서는 미혼인 여자 쇼군의 첫 동침 상대라는 의미로 쓰인다. 오오쿠의 남자들 중에서 고르며, 임무를 마친 후에는 이름 그대로 은밀히 처형한다. 처음에는 '오오쿠의 창시자인 카스가노 츠보네가 이 정법을 만들었다. 고나이쇼노카타는 쇼군에게 밤일을 가르치는 중요한 일을 맡은 동시에 숫처녀인 쇼군의 몸에 상처를 내는 대역죄인이기 때문에 죽어야 한다.'고 설명되었다.
실은 이 정법을 만든 것은 첫 여자 쇼군인 이에미츠(치에)였고, 거기에 '고나이쇼노카타'라는 이름을 붙인 건 그녀의 연인인 아리코토이다. 정법을 만든 진짜 이유는 치에 본인이 원치 않은 첫 경험을 한 것에서 비롯된 트라우마 때문이었다. 치에와 연인이 되기 전의 아리코토였으면 이런 정법을 만드는데 반대했겠지만, 치에의 아픔을 알고는 순순히 그녀의 말에 따랐다.
그런데 쇼군의 첫 남자들 중 실제로 사형당한 건 이에츠나의 고나이쇼노카타뿐이다.[8] 다른 쇼군은 즉위하기 전에 첫 경험을 뗐고 이후 결혼했거나[9], 이미 결혼했거나, 어린 나이에 죽었기 때문이다. 또한 츠나요시가 결혼하기 전에 사귀었던 쿠니히사(아구리)도 처형당하지 않았다. 요시무네가 즉위하기 전까지는 잊혀진 법이었는데, 미즈노가 여기에 잘못 걸려 처형당할 뻔했으나 다행히 요시무네는 미즈노를 공식적으로만 죽은 것으로 처리한 뒤 몰래 풀어주었고,[10] 이런 악습은 내 대에서 반드시 근절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작중에 등장한 요시무네 이후의 쇼군들은 모두 즉위하기 전에 결혼했다.
실제 역사에선 '독립된 자신의 방을 가진 측실'[11] 혹은 '쇼군과 한 번이라도 동침한 여성' 혹은 '쇼군의 남자아이를 낳은 여성 중 일부[12]'를 칭하는 말이라 한다. 8대 쇼군 요시무네는 고나이쇼노카타를 두 명 두었으므로 쇼군의 첫 상대를 칭하는 단어는 아닐 것이다. 고나이쇼노카타를 죽이기까지 하진 않지만, 적당할 때 오오쿠 봉공을 마치고 나가 시집갈 수 있었던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평생 오오쿠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쇼군 일가를 섬기며 살아야 했다고 한다.[13]
  • 오오쿠의 남자는 35세를 맞이하면 쇼군의 침소에 들지 못 한다. '오시토네스베리(お褥滑り, 침소에서 밀려남)'라고 하여 실제로 있던 관습이며 실제 역사에서는 30살 이상의 여성이었다. 쇼군과의 동침은 후계자 생산에 그 목적이 있었으므로 아이를 낳기에는 나이가 많은 여자들은 침소의 소임에서 은퇴하도록 했다고.
  • 오오쿠에 들어오는 남자는 누구나 여자 이름을 새로 받는다.
  • 공식 기록에는 쇼군이 여자임을 숨기기 위해 나이, 체격 등을 속여 적는다.
  • 의외로 오오쿠 안에서는 남색이 호불호가 갈린다. 유노신은 고참들에게 '신고식'으로 겁탈당할 뻔하자[14]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스기시타에게 설명을 들었을 때는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여자들을 생각하면 그런(를 낭비하는) 짓은 못 한다'고 말했다.[15] 에지마 신자부로가 남색한다는 헛소문이 돌자 오오쿠 남자들이 이해할 수 없단 듯이 질색하거나 아오누마가 고유히츠로 채용될 때는 오오쿠의 풍기를 단속하기 위해 '오오쿠 내에서는 다른 이와 함께 씻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동료와 동침을 해서도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고 설명되었다.

5.3. 사회풍속


  • 적면포창으로 인해 남성인구가 급감하고, 그로 인해 여자가 남자의 일까지 대신 하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남녀의 성 역할이 바뀐 것이 아니고, 가사노동을 하면서 바깥일(농사나 상업, 정치나 가문 계승 및 상속 등)까지 여자가 맡아 하게 된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제 2차 세계대전기의 미국의 사회상을 떠올려 보면 된다. 남성들이 징병되자 그 부족한 자리를[16] 메꾸기 위해 여성이 동원되었고, 그 덕분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가속화됐다.[17] 처음에는 일할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여자가 대신 하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차츰차츰 남자의 일을 여자가 잠식하게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3대 정도가 지나자 점점 여성이 가업을 잇거나 후계자가 되는 것을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남자는 아기씨를 지닌 보물로 취급받게 되어 남자아이는 적면포창에 걸릴까봐 집안에만 두고 아무 노동도 시키지 않고 떠받들어 모셔 키운다. 장성하면 종마로서 씨를 팔다가 비싼 지참금을 받고 장가를 들어 가계에 보탬을 준다. 이런 사회에서 남자들은 젊었을 때는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연애에서 높은 경쟁력을 지니나, 아내가 임신을 하지 못하면 씨가 없다는 이유로 이혼당하기도 하고 힘없는 노인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고려장. 그나마 귀족이라면 늙어도 험한 꼴까진 안 당하지만 가난한 백성일수록 심하다. 애초에 남자는 집 밖으로 나다니기 힘들기 때문에 몸을 파는 것 아니면 할 수 있는 일이 학자 정도밖에 없다.
후대로 갈수록 사회의 주축을 여성들이 맡으면서 조금씩 성 역할이며 남녀의 성적 지위가 바뀌어가며, 적면포창 창궐 시작으로부터 100년 이상이 지나 남녀 성비가 동등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완전히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뒤로는 아예 여존남비 사회에 가까워져간다. 남자 요리사가 여초사회에서 승진에 차별을 받기도 하고[18] '역시 남자는 책임감이 없다'는 시선을 받거나, '역시 권력 있는 여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남자의 꿈이다', '어디서 남자가 정치를!' 같은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 남성상위사회의 잔재는 남아서, 여자가 남자 이름을 쓰는 관습이 남았다. 특히 가문을 잇는 여자는 정부에 신고할 때 남자 이름으로 등록해야 한다. 남편의 존재는 기록하지 않거나, '처 아무개' 식의 여자 이름으로 기록한다.
  • 성비의 완전 붕괴로 혼인제도 역시 붕괴했다. 남편을 맞이한다는 것은 귀중한 존재인 남자를 독점하는 것이므로 결혼하려면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 한다. 때문에 결혼은 상급 무사 계급이나 유복한 상인 등의 전유물이 되었다. 다이묘쇼군 등 신분이 높은 무사는 정실 외에 측실을 둘 수도 있지만, 가난한 하급 무사나 공가는 결혼할 남자를 쉽게 구하지 못 한다.
  • 결혼을 하지 못하는 여자들은 유곽에서 남자를 사거나[19], 아들을 무사히 키운 집에 사례금을 내고 씨를 사야 했다. 때문에 서민은 물론 무가, 공가에서도 가난한 집안은 돈을 받고 아들을 파는 일이 흔하다. 미즈노 가문처럼 아들을 팔지 않는 집은 드물고, 유노신처럼 가난한 여자들에게 공짜로 씨를 주는 사람 또한 드물다.
  • 남자가 드물다보니 바깥세상에서는 여자 둘이서 부부처럼 사는 경우도 많다.
  • 당연한 얘기지만 요시와라에서도 남창을 팔고 있다. 이에미츠 시대까지는 요시와라 유곽도 남자의 감소로 인해 유녀를 살 사람이 없어 쇠퇴하였고, 대신 남자를 매춘부로 팔긴 했으나 노인이나 건강하지 못한 남자들(성병 환자나 다른 일을 할 수 없어 내몰린 유랑민, 정신장애인까지)만 남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를 간절히 가지고 싶어하는 하층민 여성들은 어쩔 수 없이 요시와라를 이용했다.[20] 이에 쇼군 이에미츠는 오오쿠에서 정리해고를 실시, 해고당한 남자들을 요시와라에서 강제로 일하게 함으로써 가격을 내리고 여자들에게 건강한 남성을 공급하는 곳으로 부흥시킨다. 또한 무술 실력이 뛰어난 이들에게 돈을 주어 감시역으로 보냈다. 이후로는 남성 매매춘이 점점 일반화되면서 요시와라도 다시 부흥한다. 에도의 서민들은 대부분 결혼 대신 요시와라를 이용하는 듯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도 하기 힘든 듯.
  • 적면포창으로 남자의 수가 극히 줄어든 것을 숨기기 위해 쇄국령을 실시했다. 외국에서 일본의 실태를 알고 침략을 시도할 우려가 있기 때문. [21] 표면적인 구실은 기독교 배척과 막부에 의한 해외교역 독점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둘러댔다. 실제 쇄국령과 시마바라의 난은 이에미츠가 33세 때 한 건데 여기선 31세에 죽었고 애초에 여기 나오는 남자 이에미츠는 정치는커녕 막부에 도움도 안될 정도로 무능했기에 여자 이에미츠가 한 걸로 나온다. 유일하게 외국인이 머무를 수 있는 곳인 데지마에는 남자나 남장한 여자만이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들만 난학을 배울 수 있도록 정했다.
  • 남녀역전 사회의 진실을 안 요시무네는 매사냥 등의 무예를 무사들에게 장려하고, 에도 소방대 대원을 창설하는 등, 남자의 무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실시한다. 덕분에 그동안 집에 갇혀 살 수밖에 없던 남자들이 의욕이 생겨 직접 일을 지원하게 된다.
  • 현실에도 매춘은 보통 여성이 몸을 팔지만 남창도 존재하듯이, 드물게나마 남자가 여자를 사는 경우도 있었다. 이에츠구 시절에는 오오쿠의 남자들이 절에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연극을 보고 배우를 사는 일이 흔했다. 또한 나가사키 마루야마쵸에는 네덜란드인 남자를 위한 유곽도 많았다. 네덜란드인의 안식일인 '존타크'에는 유곽 남자들도 밖에 돌아다닐 수 있었는데, 이는 일본의 실상을 네덜란드인들에게 숨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다만 이는 정말 흔치 않은 케이스인지 가부키를 보던 에지마는 유녀가 나오는 장면에서 '저런 세상이 어딨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 남성의 숫자가 극히 적은데다 경제권을 모두 여자들이 쥐고 있다 보니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은 잘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남성이 여성을 때리는 것이 무도하다는 감각도 후대로 갈수록 점점 사라져서, 츠나요시의 말년쯤 되면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여성들이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 근친성폭행을 저지르거나 후배직원에게 성관계를 강요하기도 한다.

6. 등장 사건


사건의 전모가 나온것은 아니고, 오오쿠를 만든 카스가노 츠보네의 아버지가 아케치 미츠히데의 가신이었던 탓에 가신들은 역적으로 죽고 그 가솔들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며, 카스가노 츠보네 또한 겨우 6살의 나이로 도망길에 오른다.[22] 작품의 시대배경이 3대 쇼군 치세에서 시작하는데 2대 쇼군, 1대 쇼군(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창업기와 치세, 관백(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통일과 치세와 가문의 몰락, 아케치 미츠히데의 모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회상의 후일담 형식으로 나온다.
설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키라 요시히사가 여자라거나 로닌 47명 중 42명[23]만 남자라거나. 낭인들의 처벌 또한 논란이 되는데, 그 이유가 낭인측이 민심을 얻은 탓도 있지만 남자가 귀한 시기에 42명에 이르는 남자를 사형시키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발생해서 였다. 결과적으로는 사형이 아니라 명예를 지켜주는 방향으로 할복 처리된다. 그리고 이 사건의 영향으로 남자가 가문의 대를 잇는 일은 완전히 금지된다.
  • 생류연령(生類憐令/살생금지령)
흔히 개를 죽이지 말라는 법으로 알려진 법. 츠나요시의 아버지인 케이쇼인이 손녀가 병으로 일찍 죽고 츠나요시가 더 이상 후계자를 낳지 못하는 것에 절망에 빠져서 자신이 쇼군의 아버지가 될것을 예언한 승려에게 빌어서 얻은 개를 해치지 말라는 답변을 듣고 퍼뜨린 법령이 되었다.
남자가 급감한 것(= 군사력 약화)을 외부에 숨기기 위해 외국과의 교류를 제한한 것으로 묘사한다. 명분은 기독교의 전파를 막는 것.
에도의 70%가 불타고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큰 사건인데 큰 불이 났다 정도로만 묘사(...)했다. 남자들이 죽어가는 마당에 그런(....) 화재 따위는 별거 아니라는 내레이션은 덤. 불에 탄 건물은 싹 밀어버리고 새로 도시계획 짜서 재건한다.

[1] 대표적으로 케이쇼인이 에이코인을 따라온 승려로 등장하고 츠나요시의 아구리, 야스코 모녀덮밥(물론 만화에서는 부자이며 이름도 쿠니히사, 사다야스로 개명됐다) + NTR는 야사에 불과한데 드라마에서 이 야사가 채택되어 방영되었기에 이 만화에서도 그대로 나온다.[2] 외국이 침략해 올 우려 같은 헛소리들을 하는 걸 보면 어쩌면... 그러나 작가는 역사에 충실하게 했다고 답했다. 심지어 요시무네 시기 전까지 '''전란이 그립다'''는 정신나간 발언들이 퍽하면 나온다.[3] 드라마 오오쿠 ~탄생에서도 주연을 맡았다. 드라마에서는 마데노코지 아리코토(오만노카타) 역을, 영화에서는 에몬노스케 역을 맡았는데, 원작에서 에몬노스케와 아리코토의 외모가 닮았다는 설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외모만 닮았고 성격은 전혀 다른데, 사카이 마사토는 이 둘이 서로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도록 상당한 열연을 펼쳤다.[4] 사카이 마사토칸노 미호는 영화 개봉 후 2013년 결혼했다. 오오쿠~탄생~ 의 주연인 타베 미카코도 오오쿠에서 오라쿠 역을 맡은 쿠보타 마사타카와 열애중이다. 극중 커플이 실제로 맺어진 것(...) [5] 포창이란 천연두를 말한다. 천연두와는 관계가 없지만 완치가 어려운 중증의 전염병이기에 따온 이름이 붙은 듯.[6] 다만 일본 황실은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7] 오히려 남자가 너무 많아서 쫓아낸 경우들이 있다.[8] 그나마 그 역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오오쿠 밖에 있는 처자식을 위해 스스로 자원했으니 아주 억울한 죽음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쇼군의 침소에 관한 일은 기밀사항이므로 바깥에는 알려지지 않고 병사로 처리되어 가족들도 연좌되지 않으며, 유족은 지위도 높아지고 적잖은 위로금도 지급되기 때문.[9] 이 법을 만든 이에미츠는 본인이 성폭행당해 원치 않는 첫경험을 하기도 했고, 이에미츠 시대까지는 남성이 대를 잇는 가부장적 사회라 여성의 순결을 중시하는 관념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후 세대는 여성이 대를 잇는 일이 반복되면서 대 이을 애를 낳는 게 더 중요하니 누구하고 자든 상관없는 시대가 되어 혼전순결을 지킬 사람이 없어진다. 스기시타가 이 법에 대해 알고 나서 '애초에 쇼군이 즉위하기 전에 남자 하나 안아보지 않았을 리가 없는데 언어도단인 법이다' 라고 말했던 것이 이 관념 차이를 보여준다.[10] 요시무네도 이런 규칙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기에 순전히 미즈노가 마음에 들어서 간택한 것이었는데, 그래서 정법을 알게 된 후 매우 미안해한다. 결국 살려준다.[11] 오오쿠의 여성들은 둘에서 여섯 명 정도까지의 인원이 같은 방을 썼다. 쇼군의 측실이 되었다 해도 아이를 낳거나 특별히 옮겨주지 않는다면 거주지는 그대로였다. 그러므로 자신만의 방을 가진다는 건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였다.[12] 이 경우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은 여성이 대상이라고도 하지만 해당하지 않는 케이스가 더 많다.[13] 이건 고나이쇼노카타라서 차별대우하는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것이다. 오오쿠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중급 이하의 자리에 있을 경우 쇼군의 잠자리 상대를 하지 않았다면 일을 그만두고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급의 자리에 있거나 한 번이라도 쇼군의 잠자리 상대를 한 경우 결혼도 재혼도 불가능했다. 고나이쇼노카타는 측실이므로 당연히 나갈 수가 없는 것.[14] 허를 찔러 빠져나온 후 자기에게 허튼짓을 하면 칼부림을 하겠다고 협박해서 몸을 지켰다.[15] 그래도 유노신은 오츄로로 승진한 후 스기시타에게 '저런 예쁘장한 애들이라면 여자 대신 안고 싶어하는 마음도 알 것 같다'고 말한 적은 있다. 얼마 안 있어 오오쿠를 떠나 소꿉친구랑 결혼하게 됐지만.[16] 교사, 기술자, 운전기사, 야구선수 등의 갖은 직업을 여성들이 했다.[17] 단 오오쿠에서는 여성 사회진출을 묘하게 막고 있다.[18] 현실에서도 가정요리가 아니라 남초 주방에서 전문 요리인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차별을 받기도 한다.[19] 하룻밤의 유흥이 아니라, 대를 잇기 위한 씨내리 같은 것이다. 물론 유흥을 위해 요시와라를 찾는 여자들도 흔하다.[20] 사적으로 아들 등에게 매춘을 시키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하층민이 사기에는 너무 비싼 가격이었다고 한다.[21] 의외로 일본은 역사 속에서 꾸준히 한반도 및 대륙세력의 침략을 걱정해왔다. 백제가 망했을 때도 나당연합군이 그 기세를 몰아 조선까지 쳐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고 이것이 개혁정책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22] 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에 곰보가 있던 탓에 가족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지 못하던 처지였으나 힘든 도망길에 가장 의젓한 모습을 보여주어 가족들에게 인정 받는다.[23] 아사노 가(家)는 무를 숭상하여 가신들에게 양자를 들여서라도 남자가 대를 잇게 해서 가신들이 대부분 남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