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환/선수 경력

 


1. 아마추어/프로 입단
2. LG 트윈스 시절
2.1. 2009 시즌
2.2. 2010 시즌
2.3. 2011 시즌
2.5. 2013 시즌
2.6. 2014 시즌
2.6.1. 포스트시즌
2.9. 2017 시즌
2.12. FA
3. 국가대표 경력


1. 아마추어/프로 입단


전라북도 군산에서 태어났으나 군산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 문제로 인해 야구를 그만둘 뻔했다가 어쩔 수 없이 서울로 전학을 갔다. 자양중학교 재학 중에 다리를 찢어 포구하는 1루 수비로 유명했던 OB 베어스 출신의 원년 1루수 '학다리' 신경식 당시 감독이 그를 발굴했다.[1]
[image]
[image]
경기고등학교 시절
경기고 재학 시절에는 원래 내야수였으나 경기고의 에이스였던 최원제장충고등학교로 전학가면서 투수도 겸업했다. 마운드에 선 뒤부터는 점차 비중이 투수 쪽으로 옮겨가야 했다고 해야 맞을 듯. 고교야구대회 결승전까지 대부분의 이닝을 소화하며 올라가기도 했다.

고교 무대에서는 허경민(두산), 안치홍(KIA), 김상수(삼성)와 함께 '''1990년생 4대 유격수'''에 포함되었다. 안치홍KIA 타이거즈 입단 후 3루수로 잠시 뛰다가 붙박이 2루수가 되었고 김상수는 초반 활약 이후 간염으로 이탈, 허경민은 당시 두산의 두터운 내야 뎁스를 뚫지 못하는 관계로, 공교롭게 국내에서는 2010년 들어서는 주전 자리가 확실히 고정된 오지환만 유격수로 뛰는 듯했다. 국내외 통틀어서는 이학주도 포함될 듯.[2] 2016년 현재에는 삼성의 김상수와 두산의 허경민 모두 주전으로 자리 잡았고, KIA의 안치홍 또한 군 제대 후 주전 자리가 확고하다.
2008년에는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라이벌인 허경민, 김상수, 안치홍, 박건우과 함께 맹활약을 펼쳐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때 오지환은 주장으로 활약했고 대회 종료후 지명타자 부분에 대회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2. LG 트윈스 시절


2008 시즌 종료 후 실시된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을 받아 계약금 2억 8천만 원, 연봉 2천만 원에 LG 트윈스와 계약하여 입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투수로서 뛰어난 오지환을 투수진 강화를 위해 뽑았다고 생각했으나, 당시 스카우트였던 서용빈[3]은 순수하게 타격 재능만 보고 뽑았다고 한다. 입단 직후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에게 "경기고등학교 때 유격수뿐만 아니라 투수로도 나선 탓에 기본기가 부족하다. 다소 투박하지만 뛰어난 야구 센스를 지녔다."는 평을 들었다.[4] 팀에서는 그 기대치를 반영하여 일본에 진출한 이병규의 등번호 9번을 달아줬다.
[image]
지명 즈음에 자신의 싸이에 쓴 글. 오늘도 졌다. 당시 엘지는 666858의 성적을 찍고 있던 막장팀이었다. 해당시즌 LG 순위는 꼴찌.

2.1. 2009 시즌


2009년에는 주로 2군에서 뛰며 타율 0.312 12홈런 60타점의 괜찮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실책 14개로 1위를 기록하는 등, 수비가 불안했다. 1군에는 확장 엔트리 시행 후 처음 올라왔다.

2.2. 2010 시즌


사실상 데뷔 시즌인 2010년, 박종훈 감독 체제 하에 주전 유격수로 발탁되어 개막전부터 선발 출장했고, 심지어 그 경기에서 데뷔 첫 홈런인 쓰리런 홈런을 때려내며 타격 능력을 보였으나 또한 보는 사람 뒷목 잡게 만드는 수비도 보였다. 4월 11일 두산전에서, 김현수의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성 타구를 좌익수 앞까지 따라가 좌익수 작은 이병규와 충돌할 뻔하여 놓친 실책은 일품. 개막 쓰리런의 임팩트 이후 타격감이 하락하여 만년 유망주 박경수와 같은 길을 가게 되나 싶더니만, 점차 타격감을 끌어올려 4월 26일 기준 타율 0.295 2홈런 12타점을 기록하며 조인성과 함께 LG 상승세의 실질적인 주역이었고 특히 시즌 초반에는 신인왕 떡밥까지 돌았다. 수비도 날이 갈수록 안정되고 있었다.
6월 7일 기준으로 타율 0.256, 5홈런 28타점을 기록했다. 특히 '''쓰리런덕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난히 영양가 있는 뜬금포를 많이 쳤다. 다만 BB/K 비율이 1:3인 데다 '''삼진율 3할'''[5]이라는 처참한 선구안과[6] 좌투수만 만나면 데꿀멍하는 '''(35타수 3안타 0.086)''' 고질병은 반드시 고쳐야 했다.
1군 첫 해라고는 하지만 주전 유격수치고는 실책이 너무 많은 게 문제. 하루 빨리 해결이 되어야 김재박-유지현의 라인을 이을 수 있지 않을까. 초반에 벌어놓은 실책들+후반에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나오긴 하는 실책의 결과물로 2010 시즌 실책 1위를 차지했다.[7] 2010시즌을 0.241의 타율과 13홈런 61타점, '''137삼진''', '''27실책''으로 마무리하며, 삼진왕, 실책왕을 모두 차지하고 말았다. 또한 단일시즌 피삼진 137개로 '''역대 한시즌 최다 피삼진 2위'''에 랭크되었다.[8] 그래도 신연봉제 덕분에 '''고작 입단 3년차 만에 억대연봉을 받는 선수'''가 됐다. 물론 4년 간 60이닝 던지고 4승 거둔 투수2009년 6월부터 무승 행진을 이어가다가 야갤의 화폐단위가 된 모 선수에게 성화가 몰리는 덕분에 의외로 오지환은 조용히 넘어갔다.

2.3. 2011 시즌


박종훈감독이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오지환에게 더 이상의 특혜는 없을 거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개막 후 4경기 치르는 동안 겨우 1경기 출장했다. 타율은 0.000. 신 연봉제로 인해서 본의아니게 부담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상대팀은 줄곧 좌투수를 내보냈고, 박경수가 유격수 역할을 잘해냈으며 김태완의 예상 밖의 선전으로 벤치를 지키게 되었다.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이 없다면 2011시즌은 벤치에서 손가락만 빨다가 끝날 거라는 성급한 예상도 있었다. 좌타자로서 좌투수를 상대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독한 마음을 가지고 연습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9일 한화전에서 위기감을 느꼈는지 5타석 3타수 2안타 2볼넷으로 좋은 타격감을 보였고 볼넷도 2개를 골랐고 커트를 연신 해내는 등 오지환 답지 않게 정교한 모습을 보였다. 좌투수 마일영에게도 깨끗한 안타를 뽑아냈다.
박종훈 감독이 11일자 기사에서 오지환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인터뷰를 했다.
너랑싸움하고싶다 시즌2?
물론 이 인터뷰의 의미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역으로 오지환에게 더욱더 기대가 크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관심이 없었다면 거론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에서도 '''수비 & 좌투수 공략''' 두 가지 명제를 강조해서 인터뷰했다.
오지환이 이걸 좋은 쪽으로 받아들여서 극복을 해낸다면 최고가 될 것이고, "이 분처럼 난 너랑 맞짱뜨고 싶다!"고 받아들인다면 결국 흔하디흔하고 이름 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될 것이었다. 다행히도 생김새완 달리 오지환은 마인드가 훌륭한 편이라 이 분처럼 키보드워리어 짓을 하지 않았다.
괜찮은 타격감과 수비에서도 경기를 많이 치른 상태는 아니지만 꽤 깔끔해졌다.
16일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8회 내야플라이를 놓치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애써 냉정을 유지하는 모습이었지만 추가실점으로 역전당할 상황에 몰렸을 때 거의 울려고 하는 듯한 모습에서 얼마나 자신의 실책에 대한 자책감이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9회 마지막 땅볼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하면서 승리. 여담이지만 이 실책은 오지환의 시즌 첫 실책이었다.
20일 SK 전에서 8회 대타로 나와 이영욱을 상대로 '밀어서' 문학구장을 넘기는 시즌 첫 홈런을 기록했다
27일 롯데 전에서 박종훈 감독의 좌우놀이에 대해 한이라도 맺힌 듯 미친 듯한 맹타를 쳐냈다. 수비에서도 전에 없이 매끄러운 플레이를 펼치며 수비 쪽에서만큼은 의구심을 서서히 걷어내고 있다.
29일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첫 타석 때 타격을 하다가 방망이 끝에 공이 맞으면서 손목이 꺾이는 부상을 당했는데 결국 2주간 2군 크리...이런 유형의 부상이 타자들에겐 의외로 많다. 물론 대부분 감수를 하면서 하는 타자들이 많다. 오지환의 경우는 손목 쪽에 충격이 간지라 아쉬운 대목 [9]
5월 11일 1군에 재등록 되었으나 14일에야 100% 힘으로 타격훈련을 했다고 하니 생각 외로 손목충격이 오래간 셈이다. 윤진호가 수비에서 상당한 능력을 보이며 유격수 자리를 메꿔줬지만 자동아웃수준의 절망적인 타격 때문에 팬들은 오지환의 복귀를 손꼽아 기다렸다. 더군다나 오지환이 빠진 동안 LG타선이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15일날 넥센 히어로즈 전에서 부상 이후 처음으로 대타 출전했으나 삼진으로 물러났다. 다음 주부터 선발 출전을 할 수 있을지는 얼마나 타격페이스를 끌어올리느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그가 합류해야 공격 & 수비 모두 안정된 플레이가 가능하다. 올해의 오지환은 유격수로서도 준수한 수비를 보였다.
그러나 야구관련 커뮤니티들에서 오지환의 부상이 좀 심하다는 카더라가 돌았다. 그래서 11일 오지환을 올리긴 했는데 여태껏 타선에 선발로 넣지 못한 것이라는 속사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두고 봐야 알 듯. 오지환 복귀 때부터 상대팀이 계속 우투수를 선발로 세웠는데도 선발 유격수로 못 나왔다는 게 꺼림칙하긴 하다. 윤진호가 좋은 수비를 보여 벤치에 있었다기엔 설득력이 부족한지라...
결국 그 우려는 현실화되었다. KIA 타이거즈 전에서도 선발 출전했지만 3타수 무안타 3삼진을 당했는데 중요한건 배트도 제대로 못 쥐었다는 것이다. 결국 손등부위에 뼛조각이 발견되어 3개월 동안 결장하게 되었다. 아쉽지만 잘 회복해서 완벽하게 돌아오길 팬들이 바랐다.
복귀 후 팀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어줬다. 좋은 타격으로 타율도 0.292 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갑자기 물타격을 보여주며 타율은 0.220까지 떨어졌고 수비에서도 뇌수비를 저질렀다.
특히 임찬규가 나올 때마다 그의 수비는 빛을 발하는 모습이었다. 9월 18일에는 포구실책으로 차일목의 '''끝내기 만루홈런'''의 테이블세터 역할을 했으며, 10월 1일 임찬규가 선발로 나왔을 때는 '''1사 만루 병살 상황'''에서 '''공을 흘리는''' 치명적인 에러를 저지르는 등 연봉 대폭락이 예상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를 본 사람들은 '''기름손 왕자'''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어쨌거나 2011년 시즌은 좋지 않은 기억만 남긴 채 마감했고, 연봉계약 에서도 찬물을 맞았다. 1억 2백만 원에서 53% 깎인 4천 8백만 원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2.4. 2012 시즌




2.5. 2013 시즌


수비 측면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트레이드되어 온 손주인이 주전 2루수로서 안정된 수비를 보여줌에 따라 오지환의 수비 부담이 줄어들었다. 손주인과의 키스톤 호흡도 잘 맞았다.
시즌 초반에는 타격이 안 올라온 모습을 보였지만, 타격이 올라오자 수비가 막장이 되어 구리에서 같이 사는 어떤 축구 팀의 헬수비를 시전했다. 그 절정은 4월 7일 두산전으로, 허경민의 타구를 놓쳐 역전을 허용했다. 그러나 NC와 한화를 만나자 날아다니기 시작, 특히 한화와 3연전에서는 '''3경기 연속 밀어쳐서 홈런'''을 달성. 홈런 2위와 득점 1위로 올라섰다.
5월이 되자 타격감이 좀 떨어지긴 했어도 0.270~0.280 사이에서 타율을 유지하였으며, 권용관이 돌아오면서 체력적인 부담도 덜게 되었다. 6월 10일 기준 성적은 0.281, 6홈런, 21타점, 10도루, OPS 0.809.
4월을 넘어 6월이 되자 김재박 감독이 보았던 센스가 유지현 코치와의 강훈련, 2루 손주인 / 1루 문선재라는 호수비요원들의 도움으로 빛났다. 잔실수가 줄어들고 어쩌다 있을 수 있는 에러들도 다른 선수들이 적당히 커버해줬다.
2013년 7월 16일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팽팽하게 이어지던 연장 11회초, 김사율의 공을 쳐 우측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려 그 날 경기의 결승타와 타점을 기록했다.
다음날인 7월 17일에도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키던 8회초 쓰리런 홈런을 쏘아 올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7월 전반기를 마친 현재 8홈런으로 팀 내 홈런 1위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2010년 기록한 13홈런도 넘어갈 기세다.
7월 2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5타수 3안타 2타점 4득점 2도루로 경기를 지배했으며 1루타, 3루타, 2루타를 차례로 기록해 사이클링 히트의 꿈을 키웠으나 마지막 타석에서 영웅스윙을 하는 바람에 홈런 달성 실패로 사이클링 히트는 아쉽게 물건너갔다.
두산 베어스와의 2013년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 2차전, 3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 4차전은 대타로 출장하여 팀 내 선배인 정성훈이 실책을 연발한 것과는 다르게 깔끔한 수비를 선보였지만, 그에 반해 타석에서는 9타수 무안타 1볼넷 2사구(死球) 1도루 2득점, 출루율 .250으로 부진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하는 바람에 오지환의 포스트시즌 첫 안타는 결국 나오지 못했다.
2013 시즌에는 실책이 많이 줄었다지만 그래도 실책 20개를 기록하여 결국 2위 최정과 1개, 3위 황재균과 2개 차이로 실책왕을 차지하고 말았다.

2.6. 2014 시즌


김기태 감독이 절대 안주하지 말라고 했다. 기대에 비해 성장이 더딘 원인을 그동안 주전 경쟁이 없었던 점에서 찾고 있는 모양이다. 권용관, 박경수, 박용근[10]을 경쟁상대로 붙여서 오지환에게 긴장감을 심어줄 생각인 듯하다. 그리고 오지환은 이번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 바로 아시안 게임이 걸려 있기 때문.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결국 개막 엔트리에서 빠졌다. 김기태 감독은 개막 명단 중 유격수 자리에 권용관박용근을 등록했다. 이후 11일에 임지섭, 김선우등과 함께 1군에 첫 등록되었다.
결국 대부분 팬들의 예상대로 아시안게임 예비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다행인 점은 박경수, 박용근 등 대체 자원이 있기 때문에 LG에게 큰 빈 자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6월 24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7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상대 선발 투수 찰리 쉬렉노히터 경기 때 볼넷 두 개를 얻어서 작은 이병규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출루했다. 하지만 첫 번째 출루 때 도루자를 저질러서 까였다. 오지환은 이날 3타석 1타수 무안타 2볼넷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6:0으로 졌다.
6월까지 득점권 찬스에서 유난히 강한 모습을 보였다. 7월 1일 현재 타율은 2할 7푼 9리인데 득점권 타율은 무려 5할에 가까운 '''4할 9푼 1리'''(7월 1일 게임 종료 후 기준 로 '''1위'''를 기록했다.
7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10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했다. 스코어 0:0인 11회말 2사 3루 상황에서 득점권 타율 1위에 걸맞게 끝내기 안타를 쳐서 이 경기의 MVP가 되었다. 오지환은 이날 2타수 1안타 2볼넷 1희생번트 1타점 을 기록했고, 6월 13일 SK전 끝내기 안타를 포함해 팀의 연장 승부 2승을 만들어냈다.
7월 22일 KIA전까지 타격 부진을 겪다가 수비에서까지 영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자 황목치승과 교체되었다.
7월 30일 계속되는 타격부진과 원래 타석이었던 우타석에 대한 미련을 못버렸는지 2015년도부터는 좌타를 포기하고 우타를 서겠다고 선언하지만 후에 아니라고 밝혔다.
8월 1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9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했다. 스코어 2:2인 3회말에 선두 타자로 나와서 상대 선발 투수인 오재영의 초구에 등을 맞고 말았다. 이 여파로 여전히 스코어 2:2인 5회초 수비 때 황목치승으로 교체됐다. 이날 오지환은 1타수 무안타 1몸에 맞는 공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3:4로 역전승했다.
몸에 맞는 공으로 인한 부상 때문에 8월 2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다.
8월 19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해 1회말 선두타자 서건창 타석부터 시원하게 덕아웃으로 송구를 해주시고 결과적으로 박병호의 40홈런 및 1타점 추가에 기여하셨다.[11] 2회에는 2사 1, 3루에서 2-유간을 지나는 땅볼을 멋지게 잡아 2루로 백핸드토스를 악송구로 만들어 3루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하지만 6회 1사 1, 2루에서 1타점 중전 결승 적시타를 쳐냄으로써 간만에 오지배 본능을 보였다.
9월 4일 두산전에서 선취점을 따내는 솔로홈런을 치며 간만에 좋은 의미로 경기를 지배하나 싶었다. 그러나 6회에 최경철의 2루 송구를 포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고 결국 경기는 3:3 무승부로 끝났다.
9월 7일 6회 1사 1, 2루에서는 김태완의 어중간한 거리의 뜬공을 유격수 오지환이 고의낙구로 더블 플레이를 노렸는데, 이 와중에 2루로 귀루하던 2루주자 송광민이 세이프 판정을 받았다가 비디오 판정 번복으로 아웃되며 이닝이 끝나 버렸다. 오지환의 플레이로 한화는 좋은 기회를 놓쳤다.
10월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9회말 1사 2루에서 손승락으로부터 끝내기 안타를 쳐냈다.
2014시즌 최종성적은 타율 0.262 8홈런 56타점 출루율 0.354 장타율 0.413 OPS 0.788 실책 20개[12]로 마감했다.

2.6.1. 포스트시즌


10월 19일 창원 마산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로 출장했다. 팀이 스코어 8:2로 앞선 8회초 1사 1, 2루 상황에서 상대 7번째 투수 이혜천을 상대로 안타를 쳐, 생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안타를 쳤다. 하지만 이날 6타수 1안타 1득점에 그치며 2013년에 이어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한 타격을 이어갔다. 팀은 1회초에만 6점을 뽑아 스코어 13:4로 대승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승 1패로 앞선 10월 25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했다. 1~3차전까지 2번타자로 출장했지만 15타수 2안타 1볼넷으로 매우 부진하여 이날 7번타자로 타순이 조정된 것도 모자라, 스코어 0:0인 2회말 무사 만루에서 포수 플라이로 아웃되어 엄청나게 까였지만, 팀이 스코어 1:4로 앞선 6회말에 선두 타자로 나와 안타를 치고 출루하여 득점을 올린데 이어 스코어 3:6인 7회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2타점 적시타를 때려 쐐기점을 올림과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포스트시즌에서 타점을 기록했다.
오지환은 이날 4타수 2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활약했고, 팀은 7회말에 7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하는 등 선발 전원 안타를 기록하며 스코어 3:11로 대승을 거두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2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오지환은 2014년 준플레이오프 1~3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2번타자,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로 출장하여 수비에서는 준수한 활약을 했지만 타석에서는 19타수 4안타 1볼넷 2타점 3득점, 타율&장타율 .211, 출루율 .250으로 비교적 부진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매우 부진했지만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양상문 감독은 오지환을 '키플레이어'로 지목하였다.
오지환은 넥센 히어로즈와의 2014년 플레이오프 1, 3, 4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7번타자, 2차전은 선발 유격수 겸 9번타자로 출장하여 수비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타석에서는 13타수 2안타 2볼넷 1득점, 타율&장타율 154, 출루율 .267로 부진했다.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오지환은 2014년 포스트시즌에서 32타수 6안타 3볼넷 2타점 4득점, 타율&장타율 .188, 출루율 .257로, 2014년 포스트시즌 10타석 이상 출장한 LG 선수들 중 가장 낮은 타율, 장타율, 출루율을 기록했다.

2.7. 2015 시즌


[image]
스탯티즈 기준 공격+수비 종합 war이 6.573 유격수 리그 1위지만 공격 war은 4.44로 유격수 리그 2위다.[13]


2.8. 2016 시즌


[image]
2016년 8월 9일 문학 SK 전에서 신재웅을 상대로 생애 첫 만루홈런을 때리는 순간
연습경기에서 부상을 입어 시즌을 조금 늦게 시작한 뒤 전반기 내내 타율이 1할대까지 추락하여 이천에 다녀온 이후 후반기 맹타를 휘두르며 히메와 채은성이 후반기 주춤한 사이 후반기 LG의 공격을 이끈 선봉장이었고 잠실 첫 유격수 20홈런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2.9. 2017 시즌


지난 시즌 종료 후 경찰 야구단에 지원하여 입대하려 하였지만 문신 문제로 인해 무산되면서 어쩔 수 없이 올 시즌 종료 후 입대하게 된다. 올 시즌은 오지환을 대체할 유격수를 발굴하는 과제로 인해 출장 경기 수가 지난 해에 비해 줄어들 가능성이 꽤 있다.
강승호가 유격수 수비에 약점을 보이며 2루수로 손주인의 백업이 됨에 따라서 이번 시즌도 유격수로 대부분의 경기에 출장하고 있다. 오지환이 잘 치는 날에는 팀도 잘하고 오지환이 삽질을 하는 날에는 팀도 삽질을 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6월 들어 완전히 스윙폼이 무너져 버리면서 거의 대수비 수준으로 추락해 버렸다. 7경기 연속 삼진 7경기 11삼진으로 거의 공을 맞추지도 못한다. 얼마나 투수들에게 만만히 보였는지 LG에게는 배팅볼 투수 수준인 이보근이 같은 곳으로 똑같은 공을 3번 던져서 헛스윙 3번을 유도해내 삼구삼진을 먹여버리기도 했다.
현재 볼넷이 아니면 출루조차 못하는 상황.
2016시즌 초중반에도 한창 부진했었으나 2군에 내려갔다가 올라온 후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던데다 2군에 내려갔다 올라온 타자들이 이천매직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선수 개인이나 팀을 위해서라도 2군에 갔다 오는게 좋아보인다.
그래도 7월 12일 SK와의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는 등 팀이 역전승을 이뤄내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7월 21일 삼성전에서 역전 적시타를 쳤지만, 그 이후에 정찬헌(?)의 2타점 적시타와 이형종과 김재율의 백투백 홈런에 묻히고 말았다.
7월 25일 넥센전에서 이병규의 838삼진을 뛰어넘어 840삼진을 기록했다. 어마어마하다.
8월 4일 발목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거기서부터 오지환의 2017 시즌은 잊으면 좋을 듯하다. 시즌을 앞두고 30홈런을 치고 골든글러브를 받고 싶다고 했지만, 홈런은 단 8개 밖에 못 쳤다..[14]
최종 성적은 107경기 타율 0.272 91안타 8홈런 39타점 47득점 10도루 출루율 0.362 장타율 0.407. 전체적으로 커리어 로우였으며 거기에 이종범의 유격수 실책 기록을 넘어 버리고 말았다.

2.10. 2018 시즌



논란도 많았고 그만큼 욕도 많이 먹기 시작한 시즌. 물론 전에 욕을 안 먹던 건 아니었지만 폭발적인 안티를 생산해내기 시작했다. 안티팬도 팬이라면 천만이상의 예비역들의 주시를 받는 독보적인 팬층이 있는 셈. 시즌 후 김하성, 이정후, 최민창과 같은 훈련소(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해 군사훈련을 받았다.[15]

2.11. 2019 시즌


[image]
6월 4일 kt wiz전에서 쿠에바스 상대로 통산 두번째 만루홈런을 칠 때.(시즌 5호)


2.12. FA


2019 시즌이 끝나고 FA 자격을 얻었으며, 4년 40억에 잔류했다.

2.13. 2020 시즌


시즌초에는 지명수비 소리를 들을 정도로 타격에서 부진하다가 점점 페이스를 끌어올려 데뷔 첫 3할과 150안타를 달성하는 등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으나, 정규시즌 순위 2위를 결정지을 마지막 2경기에서 하위권 팀을 상대로 실책과 만루찬스 무산으로 팀이 4위까지 내려가는 원인이 되어 팀에게나 본인에게나 아쉬운 마무리가 되었다.


2.14. 2021 시즌




3. 국가대표 경력



3.1.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경기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3
2
1
0
0
0
0
2
0.500
0.667
0.500
1.167
0
1
1

자카르타 게임에 참가하는 선동열호에 차출되었다. 오지환 본인 커리어에서 첫 A대표팀 입성. 하지만 막상 뽑혔음에도 단 3타석에만 들어섰다. 그 이유는 백업이었던 것도 있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열악한 수도사정으로 인한 장염[16]때문도 컸다.

[1] 그리고 프로 입단 후 이 둘은 다시 한 팀에서 만나게 된다.[2] 이학주시카고 컵스 산하 싱글 A팀 피오리아 치프스에서 118경기를 유격수로 소화했다. 2010년 시즌 기록 .282 타율에 3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공격력과 주루는 인정받았으나 34개의 실책을 저지르는 등, 수비는 아직 개선해야 했다. 관련자료. 2011년에는 맷 가르자 트레이드에 엮여 탬파베이 레이스로 옮겨서 마이너리그 최고수준(베이스볼 어메리카 전체 94위.) 유격수 유망주이자 2011 탬파 마이너리그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3] 당시 서용빈은 갓 일본 연수를 마치고 와서 2008년부터 스카우트 일을 하고 있다가 2008 시즌 중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4] 김상수는 김응용 사장, 선동열 감독으로부터 제2의 이종범이란 소리를 듣고, KIA의 안치홍은 조범현 감독으로부터 타격 재능은 팀 내 최고라는 소리를 들은 것에 비하면 수수한 평가다.[5] KBO 통틀어서 규정타석을 채우면서 삼진율 3할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2000, 2001 시즌의 톰 퀸란밖에 없다. 퀸란은 리그 최고 수준의 3루 수비력과 리그 최고의 뜬금포(당시 퀸란은 삼진/볼넷/홈런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를 장착하고 있었기는 하다.[6] 단 출루율이 1할 가까이 높았던 2010년 기록을 볼 때 선구안보다는 컨택트 능력이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공은 보는데 못 맞춘다. 그래도 2013년 현재는 많이 개선되었다. 2015년에는 타격폼 수정으로 볼삼 비율이 슬슬 반으로 맞출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봤다.[7] 강정호가 2위를 차지했다. [8] 2000년 톰 퀸란의 173개가 역대 1위이다.[9] 데드볼이 아닌 공을 치다 가장 끔찍한 부상을 당한 사례도 있다. 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인 하라 타츠노리가 그 좋은 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전설적인 마무리 츠다 츠네미의 돌직구를 쳤다가 오른팔 뼈가 아예 부서져 나갔다. 타격 후 하라의 오른팔은 너덜너덜해지고 고통 속에 뒹구는 모습은 지금도 회자 될 정도. 결국 이것 때문에 회복 후 타격폼까지 바꿔야 했다. 지금이야 하라 타츠노리 본인도 허허 웃으며 말하지만 당시엔 웃을 일이 아니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경우는 번개 맞을 확률이긴 하다.[10] 2014 시즌부터 외야를 겸업한다. 시범경기에서도 외야수로 출장하고 있어서 주전 경쟁자라고 보기보다는 백업 역할이라고 보는 게 더 맞다.[11] 4번타자 박병호가 2사에 나와 홈런을 쳤으니 실책이 없었으면 타석 자체가 성립되지 않음.[12] 리그 2위다. 1위는 송광민.[13] 1위는 4.94의 김하성이다.[14] 사실 시즌 초반에는 홈런 페이스가 매우 좋았으나 4월 이후로 타율과 홈런 갯수가 떡락하더니 8월이 되면서 부상을 당하고 시즌을 날렸다.[15] 그 와중 훈련은 열심히 해서 훈련소장 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이정후는 열외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정황상 2018년 준플레이오프에서 당한 어깨 부상 때문인 듯.[16] 수도 상태가 최악이라 사용하지 말고 양치도 호텔 생수로 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는데 이를 제대로 듣지 않고 수도를 사용하여 장염에 걸렸다고 한다.더 문제는 다른 몇 명의 선수들도 그랬는데 이게 알려진 직후 10개 구단 팬들로부터 죄다 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