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사이어티재단
1. 개요
미국에 본부를 둔 자선 재단. 본부는 미국 뉴욕주 뉴욕시 맨하탄구 West 57th Street, 224에 위치해 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이어서 기부총액이 세계 2위에 달하는 재단이다. 세계 빈곤이나 전염병 퇴치를 목적으로 하는 게이츠 재단과 달리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인권 운동과 난민 구호, 검열 반대가 주 활동이다.
2. 역사
1993년 조지 소로스가 세웠다. 당시 조지 소로스는 너무 규모가 커져버린 헤지펀드, 즉 퀀텀펀드의 장래를 두고 짐 로저스와 갈등하다가 결국 로저스가 퀀텀펀드에서 이탈한 상태였다. 게다가 당시 소로스는 영국 파운드 스털링 공매도 작전을 통해 영국을 골로 보낸 직후였기에, 그야말로 당시 세계에서 공공의 적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그래서 여론 개선을 위해 1993년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을 설립하고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을 구호하는 활동을 했다. 특히 보스니아 전쟁에서 세르비아계(정교회)와 크로아티아계(가톨릭) 양쪽에서 학살당하는 보스니아계 무슬림 구호 활동에 매진하였고, 이 활동을 통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와 라도반 카라지치의 학살극을 전 세계에 폭로[3] 하여 NATO가 유고슬라비아 전쟁에 개입하게 만드는 성과를 냈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이런 활동은 조지 소로스를 보는 세계인의 부정적인 여론을 어느정도 불식시키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8년 롱텀캐피탈 파산 사태와 2000년 IT버블 붕괴로 퀀텀펀드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손실(LTCM때 15억 달러, IT버블 때 70억 달러)을 냈고 결국 퀀텀펀드 내에서 공격적인 투자전략만을 고집하던 스탠리 드러켄밀러(Stanley Druckenmiller)[4] 를 해임, 이후 퀀텀펀드는 보수적인 운용을 하여 안정적인 수익 전략으로 돌아선다. 왜 퀀텀펀드 얘기를 여기서 했냐면, 조지 소로스는 2000년 IT버블 붕괴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이후 급격히 쇠약해지면서 오픈소사이어티 기부 액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조지 소로스는 매년 10억 미국 달러씩 기부하다가 2010년대 들어서는 소로스 본인 재산의 80%를 이 재단에 한 방에 투입하는 등 아낌없이 재산을 쏟아붓고 있다.
2001년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이 터지자 소로스는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을 통해 난민들을 구호하고 문맹퇴치에 힘썼다. 러시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이 독재의 길을 걸으면서 인권탄압을 하자,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러시아 야권 인사에 대한 지원을 하는 데 집중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중국의 인권탄압 이슈가 커지면서 위구르, 티베트, 홍콩 등에 지원 활동을 늘리고 있다. 실제로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이후 조슈아 웡, 아그네스 차우 등이 소속한 데모시스토, 그리고 홍콩 최대 민주파 야당인 민주당과 협력관계에 있다.
3. 투명성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처럼 투명한 재단 운용을 한다고 평가받는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처럼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역시 고액기부 위주로 후원을 받고 있지만,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소액기부도 가능하다. 단, 여기서 소액은 연 1,000달러 이상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자칭(?) 시민단체들이 시민 기부금을 횡령하거나 무단 전용하여 시민단체 인사들 사치하는데 쓰인다고 비판이 많다. 하지만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절대 그렇지 않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의 각종 비용은 철저하게 소로스 일가에서 내는 기부금에서만 충당한다. 소로스 일가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후원하는 금액은 회계처리를 분리하여 100% 목적사업에 쓰일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 그리고 재단 운영회계 역시 미국 국세청을 통해 자료를 제출, 홈페이지에도 관련 사실을 공개하고 있다.
4. 활동
전 세계에서 인권 수준 향상에 노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중동과 중화권 일대이다.
4.1. 중동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설립 이후부터 주 활동 지역이다. 중동의 인권 탄압 실태가 심각하고, 내전이 끊이지 않아 난민도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직접적인 전쟁 난민 구호에 적극 나서고 있으며, 유엔난민기구를 통한 난민촌 건설 및 난민 정착지원에도 후원을 하고 있다.
4.2. 중화권
2014년 홍콩 우산 혁명 이후 주 활동지역이다. 홍콩 민주파 인사들의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을 통해 거액의 후원금을 쏟아붓기로 유명하다.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해서도 비판적이고, 중국의 황금방패 검열 제도도 철폐하라고 한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원래 중국 공산당과 꽌시가 강하다고 평가받았던 조지 소로스는 2018년 이후 중국 공산당과의 관계가 험악하게 변했다. 특히 시진핑 정권은 2015-2016년 중국 증시 폭락 이후 철저하게 중국 인권 운동에 나서는 소로스를 눈엣가시로 취급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에는 오픈소사이어티재단 회장 자격으로 조지 소로스, 상근부회장인 알렉산더 소로스(조지 소로스의 아들)가 참가하는데, 2018년 이후로 시진핑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다. 이미 2016년 다보스포럼때부터 이런 움직임이 보였는데, 소로스가 시진핑한테 악수를 청하자 시진핑은 소로스의 악수를 제의를 공개적으로 뿌리쳐서 소로스한테 무안을 준 바 있다.
싱가포르 역시 리콴유 - 리셴룽 일가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면서 싱가포르 야당들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가 소로스보고 "정권 흔들기를 하지 마라"며 비난한 적이 있다.
4.3. 유럽
동유럽 국가들에서 활동이 많다. 특히 조지 소로스의 모국인 헝가리와 러시아, 폴란드, 루마니아 등이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원래 소로스와의 관계가 좋았다. 소로스는 헝가리의 인권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으나... 1989년 동유럽 혁명 때 민주화 운동가였던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2010년 재집권 이후 '''완벽하게 독재자로 타락했다'''. 덕분에 둘 사이는 아주 험악하게 변했으며,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은 민주파 야당들을 지원하고, 헝가리 정부의 실상을 취재하여 전 세계 언론에 공개하는 등 견제하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역시 소로스에 대한 보복으로 부다페스트에 세울 예정이던 오픈소사이어티 민주주의 연구소(중앙유럽대학)의 설립을 금지했다. 이 연구소는 결국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세웠다.
폴란드에서도 법과 정의당이 독재끼를 보이면서 타락해가자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이 인터넷 검열 반대 활동을 하는 등 인권운동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야권 인사들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4.4. 대한민국
대한민국에서도 군인권센터에 후원을 하고,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한국에서 벌어지는 직장 내 괴롭힘과 직장내 성범죄 문제도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이 주시하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보고서를 발간하는 등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 현장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국세청에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하고 한국에서도 기부를 받고 있다.
서울특별시청에서 운영하는 서울특별시NPO지원센터(홈페이지)를 통해 한국인 직원도 1년에 2번씩 주기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오픈소사이어티재단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은 대략 150명 정도. 한국에는 사무실이 없고 몽골 울란바토르 지사 소속이다. 그래서 한국어 외에 영어 구사능력은 필수이고 중국어나 러시아어, 아랍어 등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주 활동지의 언어를 할 줄 알아야 채용 시에 뽑힌다고 한다.
유해 사이트로 대표되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검열 제도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이다.
4.5. 아프리카
4.6. 남아메리카
4.7. 미국
미국에서도 활동중인데 주로 인터넷 검열 반대운동이나 애국자법 폐지 운동 등을 하고 있다.
[1] 대한민국에서도 활동을 하기때문에 국세청에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을 했는데, 이 때 붙여쓰기로 표기법을 결정했다.[2] 조지 소로스의 아들.[3] 때문에 유고슬라비아 전쟁 때의 학살 동영상은 대부분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직원들이 세르비아군 몰래 촬영하여 보관해뒀던 영상들이 많다. 실제로 유고 내전이나 코소보 전쟁 관련 영상자료도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이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4] 1981년 헤지펀드 시장에 처음 들어온 드러켄밀러는 독자 펀드를 이끌다가 1990년 퀀텀펀드에 합류, 1992년 9월 4일의 파운드화 공매도 작전을 주도적으로 입안했다. 조지 소로스는 드러켄밀러가 입안한 이 작전에 동참하여 영국을 골로 보내버리고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그러나 1998년 LTCM, 2000년 IT버블로 인해 퀀텀펀드가 엄청난 손실을 보자 책임을 지고 작전 입안자인 드러켄밀러는 퀀텀펀드를 떠났다. 이후 드러켄밀러는 투자업계에서는 쫓겨나다시피 은퇴(2001년)했고, 마이크로소프트, 메리어트호텔 등 미국 유력 대기업들의 사외이사를 맡다가 2016년 자기 재산(약 15억 달러)의 3/4인 12억 달러를 오픈소사이어티재단에 기부하고 2017년 완전히 현업에서 은퇴했다. 이후로는 책을 저술하면서 조용히 사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