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정치
- 동별 단위 각 선거 득표율[1]을 알고 싶다면 처인구, 기흥구, 수지구 항목에서 각각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선관위 홈페이지 기록은 총선 당시 설정된 게리멘더링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밑의 표에서는 실제 행정구역 단위 득표율로 수록함.
1. 최근 개표결과
문재인 득표율 TOP5 [동 단위]
◎ 1위 기흥구 서농동 (50.31%), 2위 기흥구 동백동 (48.53%), 3위 기흥구 영덕동 (48.38%), 4위 수지구 풍덕천2동 (46.03%), 5위 수지구 풍덕천1동 (44.61%)
문재인 득표율 LOW5 [동 단위]
◎ 1위 처인구 원삼면 (27.31%), 2위 처인구 백암면 (27.35%), 3위 처인구 남사면 (28.10%), 4위 수지구 성복동 (30.41%), 5위 처인구 양지면 (34.92%)
안철수 득표율 TOP5 [동 단위]
◎ 1위 처인구 남사면 (25.56%), 2위 처인구 모현면 (25.02%), 3위 처인구 유림동 (24.57%), 4위 처인구 동부동 (24.55%), 5위 처인구 이동면 (24.35%)
안철수 득표율 LOW5 [동 단위]
◎ 1위 기흥구 서농동 (19.93%), 2위 수지구 죽전1동 (20.46%), 3위 수지구 상현2동 (20.67%), 4위 기흥구 동백동 (20.67%), 5위 수지구 풍덕천2동 (20.68%)
홍준표 득표율 TOP5 [동 단위]
◎ 1위 처인구 원삼면 (37.61%), 2위 처인구 백암면 (36.56%), 3위 처인구 남사면 (36.53%), 4위 수지구 성복동 (35.33%), 5위 기흥구 마북동 (28.51%)
홍준표 득표율 LOW5 [동 단위]
◎ 1위 기흥구 서농동 (14.05%), 2위 기흥구 영덕동 (16.62%), 3위 기흥구 동백동 (17.30%), 4위 수지구 풍덕천2동 (18.42%), 5위 기흥구 구갈동 (19.36%)
1.1. 관련 문서
2. 개관
인구가 90만을 넘지만 2012년 19대 총선까진 국회의원 지역구가 3곳 뿐이었다. 물론 이것은 용인의 인구가 너무 단기간에 급증한 점도 있고 국회의원들이 호남과 영남의 의석수를 줄이는것 대신 수도권의 의석수를 인구수에 비해 잘 늘리지 않는 경향이 있던 것도 한 몫했다. 1996년에 27만명 수준이었던 인구가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2015년에는 98만명 수준이니. 잘 모르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데 용인은 20여년 전만 해도 시도 아닌 '''군'''이었다. 오히려 시 승격 당시 용인보다 인구가 적었던 하남이나 구리 같은 도시들보다 늦게 시로 승격되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100만이 넘어가게 되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1곳이 더 늘어 지역구가 '''4곳'''이 되었다.
1990년대만 해도 민자당/신한국당 지지 성향이 강해 보수적인 색채를 띤 곳이었었으나, 시 승격과 함께 기흥구와 수지구의 아파트 로 인해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등 점점 경기도답게 보수색이 약한 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다. 당장 국회의원 선거만 봐도 갑을로 분구된 16대 총선부터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최소 1명씩은 당선되었다. 2012년 18대 대선 때는 박근혜 후보가 274,042표를 가져가면서 254,072표를 가져간 문재인 후보를 근소하게 이겼다. 기흥구는 중소기업 공장들이 많은 편이라 민주당계 정당 우세 성향이 강하지만, 수지구는 분당신도시 및 서울 출신의 이주민 증가의 영향으로, 그리고 처인구는 농촌 지역 및 군부대 때문에 새누리당이 강세를 보이는 편이다. 즉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지역은 민주당계 정당후보가 유리해지고 있는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3. 국회의원 선거
2020년 21대 총선 기준 국회의원선거구는 총 4개로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3대 이후 용인에서의 국회의원 목록은 아래와 같다.
지금과 달리 용인은 원래 촌이었기 때문에 공화당-민정당-민자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정당의 텃밭이었다. 1대 총선과 2대 총선에서는 무소속 민경식, 류기수가 당선, 3대 총선에서 자유당의 신의식이 당선되었다. 4대 총선에서 민주당 구철회, 5대 총선도 민주당 김윤식이 당선되면서 성향이 바뀌는 듯 했으나, 박정희 정권 들어서 6대 총선, 7대 총선, 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 서상린이 당선되면서 여권의 텃밭이 되었으며 9대 총선, 10대 총선에서는 중선거구제 2등 당선의 혜택으로 5선에 성공한다. 11대 총선, 12대 총선은 민주정의당 정동성, 13대 총선, 14대 총선, 15대 총선에서는 민주정의당-민주자유당-신한국당의 이웅희가 3선 국회의원을 하며 전형적인 농촌선거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 승격 이후 도시화가 진행된 이후에는 민주당계 정당이 강세를 보였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보수정당과 끝없이 각축을 벌였으며, 16대 총선 이외에는 단 한 번도 민주당계 정당이 이긴 적이 없다. 이는 현 처인구 지역은 아직까지 농촌 지역이 많아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가 높으며, 수지구는 분당에서 넘어왔거나 은퇴 후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 보수정당에 지지도가 높다. 16대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의 남궁석 후보가 갑 지역구에서 당선되고 새천년민주당의 김윤식 후보가 당선되었는데 민주당계 정당이 37년 만에 당선자를 내었다. 그러나 나중에 김윤식 의원은 한나라당으로 이적하였 고, 남궁석 의원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탄핵 역풍이 분 17대 총선에서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1:1로 무승부를 거두었고, 민주당계 정당이 참패한 18대 총선에서는 2:1로 한나라당이 이겼다. 특히 젊은 인구 유입층이 많은 기흥구에서도 참패했다. 다만 도농복합 지역인 처인구에서는 통합민주당이 승리하는 이변이 일어났는데, 이쪽도 사실상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의 표 분산으로 어부지리로 이긴 것으로 봐야 한다. 참고로 처인구 선거구에서 분산된 여권 표를 합산하면 '''60%''' 가까이 나온다.
19대 총선에서는 개리멘더링 결과 기존 처인구/기흥구/수지구 선거구가 각각 갑/을/병으로 바뀌었으며, 이 과정에서 갑구에는 기흥구 마북동과 동백동이 편입되었고, 대신 을구에는 수지구 상현2동이 편입되었다. 선거 결과 갑구(처인구)와 병구(수지구)는 새누리당, 을구(기흥구)는 민주통합당이 이기면서 여전히 2:1로 보수정당의 강세가 지속되었다.
1개 선거구가 늘어난 20대 총선에서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2:2로 비겼다. 용인 갑에서는 새누리당 이우현 현직 의원이 재선에 성공했고, 용인 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현직 의원이 재선, 용인 병에서는 새누리당 한선교 현직 의원이 4선, 용인 정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후보가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국민의당이 새로 생기는 바람에 기존 새누리당 표 일부가 국민의당 표로 이탈했기 때문인지 새누리당 당선인들의 득표율은 모두 45% 이하에 머물렀고, 오히려 국민의당이 생기며 더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었던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들은 모두 득표율 50%를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1대 총선에서는 4개 선거구가 유지되었지만, 인구수 제한이 생긴지라 선거구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갑 선거구는 그대로 유지했으나 을 선거구의 경우 정 선거구에서 동백3동이 들어오게 되었고, 병 선거구와 정 선거구는 각각 상현 2동과 죽전 2동을 맞바꾸게 되었다.
21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3:1로 민주당계가 앞서나갔다. 용인 갑에서는 미래통합당 정찬민 후보가 원내 진입에 성공했고, 용인 을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김민기 현직 의원이 3선, 용인 병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현직 의원[22] 이 재선, 용인 정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후보가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현 선거구 인구수를 보면 갑 선거구가 25만 3천명, 을 선거구가 24만 4천명, 병 선거구가 28만명, 정 선거구가 26만명을 기록하고 있어서 병은 이미 상한선에 근접했고 인구 증가세를 보면 갑과 정도 4년 후에는 상한선에 근접할 가능성이 높아 여러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4년 후인 22대 총선에서는 5개 선거구 분할이 불가피해 보인다.
4. 지방선거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도지사의 경우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가 176,468표를 득표하며,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147,321표)에게 자그마치 29,000여표 가까이를 앞섰다. 하지만 보수 텃밭이라고 보기는 뭐한게 득표율로 따질 경우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가 54.9%를 득표하며 45.01%를 득표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에게 약 10%p 정도 앞섰다. 수지구와 처인구는 김문수 56 대 유시민 43으로, 기흥구는 김문수 51 대 유시민 48의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보통 텃밭이라는 기준을 60%로 잡는게 보통인데, 김문수는 텃밭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적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당시 경기도 7대 도시들(수원, 성남, 안양, 안산, 부천, 고양) 중에서 보수 성향이 강한 건 사실. 김문수에게 그 다음으로 표를 많이 준 성남(약 10,600표)이나 상대편 후보인 유시민에게 가장 많은 표를 준 안산(약 12,100표)이나 1만여표를 겨우 넘긴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도시들은 몇 천표 이내의 접전을 벌였다. (다만 오히려 당시 경기지사 선거에서 판세를 가른 것은 경기 동북부의 소도시와 경기 4군들이었다. 경기 동북부 인구를 다 합쳐도 경기도 인구의 10%가 될까말까 한데 그곳에서 10만표 이상을 앞섰다.) 심지어 성남은 보수 정당 지지세가 강한 편이었던 분당구를 끼고 있었음에도 만표 격차를 겨우 넘겼을 정도였다. 반면, 용인시장선거에선 민주당 김학규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는 과거 여당 소속이었던 전임 서정석 시장이 무소속으로 나와 보수표가 분산되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역별로 자세히 살펴보면, 수지구는 분당신도시에 대등하는 보수 강세 지역이고, 처인구도 농촌 지역이 많다는 특수성 때문에 한나라당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보내 주었다. 위에 언급한 도지사 선거를 예로 들면 처인구에서 김문수가 벌린 표차가 9,700표쯤 되는데 그 중 면 지역에서 벌린 표차가 7,000표 가까이 되었다. 반면 기흥구는 민주당계 정당 지지 성향이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24]
2014년 열린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시의원과 도의원 모두 새정치민주연합 당선자를 더 많이 낸 지역이 되었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남경필 200,219표(50.92%) > 김진표 192,961표(49.08%)로 남경필 후보가 우세했으나, 지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처럼 여야 각 후보가 3만 표 정도만큼 큰 차이를 보이진 않고 약 7천여 표 정도로 격차가 좁혀졌으며, 득표율 면에서 보면 경기도 전체 득표율에 근접한 수치가 나왔다. 그리고 용인시장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정찬민 후보가 새정치민주연합 양해경 후보와 무소속 김상국 후보(새누리당 소속이었으나 공천 결과 불복으로 탈당 후 단독출마), 김학규 후보(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으나 당내 전략공천에 불복해 무소속 출마. 웃긴 건 자신이 전략공천을 받길 원해서 공천신청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를 제치고 당선되었다. 처인구에서의 새누리당 몰표와 정찬민 당선인이 기흥구 출신이라는 점에서 야권 성향이 강한 기흥구에서도 제법 높은 득표를 얻은 것이 승리의 원인으로 분석됐다. 또 양해경 후보가 용인 출신이 아니었고 야권 후보가 분열된 이유 등도 있다. 하지만 양해경 후보와 김학규 후보의 득표수를 합하면 정찬민 후보보다 많았기에, 야권 단일화가 성사되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도 있었다.
2018년 열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바람을 타서 더불어민주당이 그야말로 압승을 거두었다. 다만 지난 2014년 선거에 비하면 생각보다 큰 압승까지는 아니었다. 도지사 선거에서는 처인구 53:40, 수지구 52:40, 기흥구 56:37 이었는데 이는 경기도 전체인 56:36과 비교해보면 기흥구 정도만이 비슷했을 뿐 대부분 지역에서는 남경필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 비해 선전했다. 다만 남경필 후보의 경우 지난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었던 처인구 일대에서의 지지가 많이 떨어졌다는 점이 있다. 시장선거는 더 치열했다. 백군기 53%, 정찬민 41%였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온 이유로는 정찬민 후보가 시장 재임 시절 생각보다 일을 잘해왔다는 점, 그리고 백군기 후보가 용인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도의회 선거는 더불어민주당이 싹슬이했고, 시의회에서도 18:11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를 했지만, 차기 총선에서의 안정적인 승리는 장담할 수 없는 지역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역대 용인시장과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관선 군수였다가 초대 시장이 되었고 곧바로 펼쳐진 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당선되었던 윤병희가 1998년 재선이 되었으나 비리로 인해 곧바로 시장직을 잃었고, 부시장이었던 예강환이 당시 여당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공천을 받고 곧바로 3대 시장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2002년 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았던 이정문에게 밀려나게 된다. 이후부터 선거에는 현직 용인시장은 자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게 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는데 2006년 선거에서는 이정문이, 2010년 선거에서는 서정석이, 2014년 선거에서는 김학규까지 무려 3회 째 이어져오는 전통이 되었다. 자업자득. 그리고 1대부터 6대까지 모든 시장이 비리에 하나 둘씩은 연루되었고 2015년 10월 김학규 전 시장도 구속기소가 됨에 따라 민선 용인시장은 죄다 구속기소됐다는(...) 진기록도 세우게 된다. 이후 정찬민 시장이 비리 기소는 없이 평범하게 낙선으로 퇴장(...)하면서 기록은 깨졌다. 후임 백군기 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긴 했으나 벌금 100만원을 안 넘겨 직은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