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파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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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본격 위아더 잇파츠야.
一発屋.
원래는 프로야구에서 큰 거 한방, 즉 홈런을 노리는 선수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2000년도 이후로는 가수나 작가, 영화감독이나 배우, 개그맨등이 한번 크게 히트친 이후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상황을 일컫는 상황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사회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크게 히트하고는 붐이 사그러든 이후에는 TV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게닌쪽에서 이렇게 불리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방송에서 잇파츠야라고 칭할 경우 게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1]
일반적으로 잇파츠야 게닌의 선두주자로 불리우는 사람은 선뮤직 소속의 댄디 사카노. 2003년 '''겟츠!'''라는 프레이즈와 독특한 포즈로 일세를 풍미했다.
이후로도 여러 잇파츠야들이 등장을 했는데, 그 중 대다수가 핀 게닌인 경우가 많으며, 토크 능력보다는 하나의 확실한 네타[2] 가 국민적으로 인기를 얻어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의 기간동안 인기를 얻었다가 붐이 사그러들면 정말 갑작스러울 정도로 TV에서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인기가 최고조일 때는 하루 수면시간이 2시간이 안되는 경우도 많으며, 많은 잇파츠야 출신들이 '''"워낙 정신없이 여기저기서 영업을 뛰다보니 저녁이 되면 아침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증언할 정도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공연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어느정도 경력이 있는 중견 게닌들이 잇파츠야가 될 경우엔, 이 붐이 사그러들면 이후 TV에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어질 거라는 걸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장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며, '''벌 수 있을 때 벌어둬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고.[3]
대다수의 잇파츠야 게닌들은 토크 능력이나 MC 능력이 일반적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많으며, 설령 이러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브레이크 중에는 메인 네타만을 원하는 방송 관계자들 때문에 능력을 보일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4] 그래도 영업에서는 확실히 해내는 잇파츠야들도 있는데, 이쪽은 자신있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컬러를 잃지 않고 계속 살리면서 재미를 주기때문에 살아남는 케이스다.
상당수의 잇파츠야 게닌이 재적하고 있는 선 뮤직의 경우, 이러한 게닌들도 잇파츠야 게닌이라는 카테고리로서 작게나마 꾸준히 일거리를 얻어주고 있는데, '''그딴건 관계없어!'''로 일세를 풍미했던 코지마 요시오가 '''내년이면 TV에서 사라질 게닌''' 랭킹의 상위를 꾸준히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TV에서 사라지고 있지 않는것도 이런 선 뮤직의 노하우 덕분. 와타나베 프로덕션도 여러 잇파츠야 게닌을 보유 할 정도로 잘 관리해 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연예기획사의 경우엔 그런거 없다. 붐이 사그러들면 이후로는 TV 에서 거의 보기 힘들 정도. 그 요시모토 흥업의 경우도 간사이, 간토를 불문하고 소속 코미디언이 너무 많고 간사이는 요시모토 신희극을 위시한 극단, 라쿠고 쪽까지 손대고 있어서[5] 잇파츠야 관리가 엉망이다. 무디 카츠야마도 2007년 짧은 브레이크 후 얄짤없이 일이 끊겨서 미야기현까지 오디션을 보러 가야 했을 정도.
댄디 사카노 이후로는 잇파츠야 게닌이 붐이 지나면 수입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에, 한창 히트칠 때 번 돈으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마의 가게를 연다거나, 집을 구입[6] 하는 등 이런저런 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TV 아사히의 '시쿠지리 선생-나처럼 되지 마'에서는 잇파츠야 게닌들이 실패담을 들려주면서, 반면교사가 될 말을 많이 들려주기도 한다.
잇파츠야의 개그는 보통 임팩트가 강력한 캐치 프레이즈 한마디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매년 일본에서 주최하는 유행어 대상 상위권에는 그 해 날렸던 잇파츠야의 유행어가 꼭 들어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 순간이 그 잇파츠야 게닌의 피크'''이다. 다음해 유행어 대상이 발표될 즈음 전년도 유행어 대상을 받은 게닌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2. 잇파츠야게닌 일람
- 댄디 사카노 - 잇파츠야의 거장. 언어유희를 이용한 스탠드업 코미디와, 드립후에 항상 "겟츠!"를 외치고 특이한 제스쳐를 취하는 개그로 2003년을 그야말로 접수했던 잇파츠야계의 대표적인 케이스. 내가 아가씨 학교에 ‘서민 샘플’로 납치당한 사건의 애니판의 납치 부분이 겟츠로 바뀌면서, 오프닝과 해당 애니의 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겟츠 제스쳐를 감수 하였다. 리즈시절 때처럼 레귤러에 출연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여러 프로그램들에 약방의 감초처럼 자주 출연하고 있고, 매년 여러 이벤트들과 적지 않은 광고들에 출연하거나, 특유의 캐릭터로 인기를 유지하면서, 잇파츠야로써 성공한 케이스. 자신도 잇파츠야로 불려지는게 자랑스럽다고.[7] 오히려 리즈시절때 바쁘게 일했던 때와는 달리, 직장과 가정이 적당히 유지되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6년부터 일본 맥도날드의 치킨너겟의 새로운 홍보 마스코트인 괴도 너겟츠로 등장하며 광고계에서 본격적으로 다시 브레이크 하고 있는 중이다. 본인은 안의 사람이 자신과 닮은 사람이라고 관계 없다고 주장하지만, 블로그에도 자주 괴도 너겟츠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복장과 얼굴이 영락없는 댄디여서 다들 댄디가 설득력 없는 설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괴도 너겟츠가 상당히 흥했는지 TV나 광고 출연이 꽤 오른 상태이다.
코지마 요시오나 컨닝 타케야마 등, 선 뮤직 소속의 많은 게닌들은 댄디를 존경하는데, 왜냐하면 선뮤직이 오와라이 게닌 사업에서 철수하려다가 댄디가 브레이크 한 덕에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선뮤직의 후배들은 이벤트나 방송에서, 어딘가 모자랄 듯 하면 댄디를 덤으로 자주 데려온다.
- 레귤러 - '맞아맞아 탐험대'[8] 라는 네타로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활동은 거의 없다. 그래도 만자이에서는 상까지 탄 경력도 있는 등 마음만 먹으면 맞아맞아 탐험대 네타를 봉인하고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실력이어서 극장에는 자주 출연하는 중.
- 코우메 다유우(コウメ太夫) - 2006년 자학개그를 편 뒤 "칙쇼~(젠장!!)"라고 외치는 개그로 떴는데, 붐이 사그러든 이후엔 다른 게닌들이 가끔 "칙쇼~"를 외치는 네타 정도로만 쓰이고 있다. 다만 5000만엔의 아파트를 미리 사놓고, 현재도 각 이벤트들에 자주 불려서 생활엔 지장이 없는듯. 그렇다고 항상 재미없는 게닌은 아니어서, 런던부츠1호2호, 오기야하기나 아리요시 히로이키가 레귤러로 나온 방송에서 "코우메 다유우한테 웃으면 은퇴 스페셜" 회에서 칙쇼 일주간 이라는 네타를 선보이며 스튜디오를 초토화 시키기도. 다만 트위터에서 매일 하고있는 "매일 칙쇼"는 재미 없는게 상당한 편이다.
- 쿨 포코 - 떡 집 주인과 제자 기믹으로 떡방아를 때리면서 개그를 하는 콤비. "뭣이~~~?! 저질렀구나!" 가 캐치 프라이즈.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결성하고, 전형적인 패턴을 유지하면서도 깨알같은 재미로 여러 공연에서 활약하고 있다. 브레이크 중이런 얻은 월수입과 현재의 월수입이 별 차이가 없다고 밝혔는데, 지방 CM들에서 출연하며 꾸준히 벌고 있다고 한다. 뭔가 저질러버린 사태 (신칸센 대탈선슛 같은)를 표현하는 "쿨 포코 상태"라는 인터넷 신조어는 이 콤비한테서 나온 것.
- 에스퍼 이토 - 초능력과 컨토션 개그등으로 잘나갔던 게닌. 대개 깜깜한 곳에서의 적외선 몰래카메라 등에서 가방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대개는 이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한때 에가시라 2:50과 라이벌 기믹이 있었을 정도로 주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에가시라에게 있는 말빨이 부족해서 현재는 결혼식의 축하 공연들에서만 활약하고 있다. 이쪽은 아예 결혼 공연에서 빠질수 없는 감초같은 역할을 소화해내고 있으며, 연봉이 2000만엔을 넘는게 부지기수라고. 그러나 2018년 은퇴를 발표하였다.
- 오오니시 라이온 - 뮤지컬 라이온 킹의 1막 종반에 나오는 Hakuna Matata에서 심바가 외치는 프레이즈인 "걱정할 필요 없어!"를 흉내내는 개그로 대표되는, 시키 극단의 모노마네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이 개그의 탄생비화가 재밌는데, 존경하던 선배인 나인티나인이 줄연하는 버라이어티쇼, "메챠메챠 이케테루"의 한 인기 기획인 "오카무라, 오퍼가 왔습니다"의 "시키 극단의 라이온 킹 뮤지컬에 출연" 편을 감명깊게 본 후, 여기서 영감을 받고 본 공연의 배우들의 대사들과 동작을 꾸준히 외울 정도로 해당 뮤지컬을 몇번이고 보면서 연구하였다. 브레이크 한 이후 라이온 킹 공연을 보러가자, 시키 극단의 배우들이 "진짜다!"라고 외치며 감사하였다. 오페라의 유령 같은 다른 뮤지컬들의 모노마네를 할 수 있고, 노래 실력도 충분하고, 농구에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며 나름 돋보이는 곳이 있지만, 개그가 너무 매니악해서 그런지 지금은 인기가 그다지 없다. 그래도 여러 이벤트에 간간히 등장하며 미친 존재감을 발산하는 중. 사족으로 우리동네 예체능 농구편에서 일본 슬램덩크의 팀원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 하타 요우쿠 - 어느 연예인이든 디스를 하는 안타까운 기타리스트 사무라이 기믹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그 뒤로는 거의 잇파츠야의 대표격으로 떨어져 버렸다. 아메토--크에서 선배인 앙가루즈가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다른 특기를 익히던지, 뭔가 내세울 만한 특징을 잡아두라"고 조언을 했지만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저꼴이 났다고 애정어린 디스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 활약지였던 엔타노카미사마에서, 본 항목의 관련 사건사고 문단에 당당히 있을정도로 엄청난 문제아들중 하나였기 때문에 게닌들이 좋은 눈으로 볼 일이 없었다. 결정적으로, 런던하츠의 기획들중 하나였던 "아리요시 히로이키 선생의 진짜 진로 상담"에 출연하였을때, 자신만만하게 죽을 각오로 AKB48를 향해 "당신들이 살아남는 비결은 XX이니까!"라는 숨겨왔던 디스 네타를 선보였는데, 스튜디오의 출연자 전원이 웃기는 커녕 식겁하고, XX부분이 방송에서 검열되었을 정도로 몹쓸 발언을 해버린 까닭에,[9]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버렸다.[10] 최근에는 "이딴곳에 불사조(こんなところにフェニックス)"라는 컨셉으로 유튜브에 영상들을 올리고 있지만, 개그가 너무 재미없어서 비추폭탄을 받고 있다. 마츠모토 히토시는 이를 보고 "불사조가 죽어있는건 처음 봤다"라고 강하게 디스했다. 한 방송에서는 '엄청나게 팔릴 수 있는 악마가 만든 무지개빛 바톤'이 있어서 이걸 갖고 있을 때는 엄청나게 팔릴 수 있지만 이걸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순간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라는 말로 잇파츠야의 신세를 한탄한 바 있다. 본인은 댄디 사카노에게서 바톤을 받아 레이저라몬 HG에게 넘겨 주었다고. 최근에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탁구 개인전 동메달리스트인 미즈타니 쥰하고 닮았다고 인터넷에서 유행하자 거기에 맞춰서 인기를 얻을려고 한다.
- 히비키 - 보케 나가토모의 세일러 복을 입은 돼지 기믹으로 인기를 끌었지만, 주 활동 무대였던 폭소 레드 카펫의 인기가 사그러 든 이후로는 별볼일 없는 콤비가 되었다. 현재는 JVC 켄우드 빅터 엔터테인먼트 산하의 빅터 뮤직 아츠 사무소에 소속중이다.
- 네즛치 - 쇼와 시대 스타일의 만자이로, 2004년 데뷔후 신인상등을 여러번 타며, 브레이크 한 이전에도 유명했던 W코론의 보케. 수수께끼를 내는 만자이로 2010년에 브레이크했다가, 네즛치 혼자만 인기를 얻은것 때문에 츳코미와 사이가 나빠지고 급기야 2015년 해체당해서 혼자가 되었다.[11]
- 놋치 - 1990년대의 타모리의 보캬브라 천국에서 레귤러로 출연하며 이미 인기를 얻었었던 실력파 콤비인 데인져러스의 보케(즉, 이 사람은 정확히는 잇파츠야가 아니라 2번 히트한 셈). 히트친 이유는 단지 버락 오바마와 닮았기 때문.
- 타노싱고 - "러브 주입", "도도스코"등의 게이 네타로 히트를 쳤으나, 남친 폭행, 스태프 갈구기 등 사생활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묻어버린 케이스. 특히 크리스 마츠무라 같은 게이 예능인들을 포함한 게이들 사이에서는 평판을 바닥을 찍고있던건 덤이다.
덤으로 2019년 요시모토흥업의 암(어둠)영업 사건에 대해 조사하던 중, 해당 사건과는 별개로 타노신고 또한 암(어둠)영업에 참여했으며 수단도 상당히 악질적[12] 으로 진행해서 2019년 6월에는 아예 요시모토에서 쫓겨났음이 밝혀졌는데 "암영업 따위 게닌이라면 다 한다"라며 오히려 뻔뻔하게 나오며 빈축을 사고 있다. 안그래도 방송 출연은 힘들어서 프로레슬러 데뷔를 하거나 유튜버로 전환하는 걸 고려하는 중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이 건으로 완전히 연예계에 발붙이기 힘들어졌다.
- 조이맨 - 2008년 특이한 댄스와 노래로 인기를 끌었던 콤비. 시쿠지리 선생에서 밝힌바, 한 멤버가 원래 고학력이라는 걸 어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부족으로 좀 처럼 써먹지 못해 잇파츠야로 전락했다고 하였다. 그래도 타카키가 고학력을 살려서 자신의 트위터에 좋은 말들을 자주 올리면서 6만명 가량의 팔로워를 보유하는 인기를 얻고, 평판도 좋아져서 라이브도 성공적으로 하였다.
- 사카모토짱 - 도쿄대학 수험 계획으로 대 브레이크 했으나, 지금은 단칸방에서 살며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 쵸슈 코리키 - 2005년 프로레슬러 쵸슈 리키 등의 모노마네로 히트한 케이스. 현재는 비만등의 합병증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패러디 레슬링 사무소의 리더로써 활약하고 있다. 사실상 프로레슬러 모노마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 패션 야라 - 정열 오빠 기믹과, 가슴 치기 등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근육 개그맨. 현재는 방송의 프로듀서로써 일하고 있다. 연 수입은 600만엔으로 웬만한 일반인들보단 잘 사는듯.
- 키무라 타쿠히로 - 요시모토 흥업 소속 콤비인 '텐신'의 츳코미로, 2008년 '에로 시낭송'으로 히트했으나 이후 활동이 뜸하다. 시낭송 협회에서 비난이 봇물친것도 기여했다. 방송 출연을 거듭할 수록 점점 더 수위가 세어질 수 밖에 없는 '에로 시낭송'의 특성상 어느순간 재밌다기 보다는 눈살이 찌푸러질 정도가 되자 거짓말처럼 방송이 뚝 끊겨 버렸다. 그의 아버지는 시낭송 협회에도 정식 등록된 아마추어 작가였지만 아들 덕분에 시낭송 협회에서도 제명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2010년대 이후 오히려 파트너인 무카이 세이타로[13] 가 흥하는 중. 요시모토흥업의 암(어둠)영업 사건의 가담자로 확인되어 거의 나락으로 떨어졌으나, 다른 게닌들에 비해 받은 금액이 3만엔 정도로 많지 않아서, 2019년 8월 18일까지 활동 중지를 하고 난 후 복귀하였다.
- 쿠마무시 - 원래 아이돌송 만자이로 활약했던 콤비인데, 2014년 말에 아메토--크의 "베끼고싶은-1 그랑프리"에서 "따뜻하니까~" 네타를 선보인 이후로 대세를 얻었다. 다음해에는 CD앨범까지 발매해서 그해의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특별상까지 탔으나, 그 이후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2017년 수요일의 다운타운에서 열려진 "개사곡 그랑프리"에서 우승하였는데, 1회전에서 불렀던 노래가 잔혹한 천사의 테제의 가사를 바꿔서 "잔혹한 (TV)업계의 테제"를 부르며 인기가 순식간에 식어버린걸 자학네타로써 표현하며 확인사살.
- 토니카쿠 아카루이 야스무라 - 콤비 "암스트롱"의 츳코미로써 신인상도 받은적이 있었으나, 2014년에 콤비를 해산한후 솔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듬해의 R-1그랑프리의 결선에서 선보여 대히트를 친 네타가, 여성 비키니 하의를 거꾸로 입은 상태로, 하의를 다양한 포즈로 절묘하게 가려서 전라로 보이지만 입고있으니 안심하는 네타다. 이걸로 1년간 대세를 얻었지만, 히트친 네타를 봉인하고 이듬해의 같은 대회 결선에서 선보인 네타는 그다지 호응을 못 얻고, 불륜 사실이 드러나며 그 동안에 쌓아왔던 호감적인 이미지가 무너진데다, 후에는 아예 아무것도 안 입고 쟁반 하나로만 그곳을 가려 검열하는 네타로 히트 친 아키라100%[14] 의 등장으로, 안따깝게 잇파츠야로 전락해버렸다. 다만 재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아직은 두고볼 일.
- 8.6초 바주카 - 2014년에 랏슨 고레라이 네타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대히트 를 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문제는 이 듀오는 히트했을 당시 데뷔한지 1년도 안된 그야말로 초짜였던 탓에 게닌으로서의 기본기가 갖춰져있지 않았을 뿐더러 랏슨 고레라이 자체도 흥을 돋우는 네타지, 지속되는 경우 재미 없고 너무 식상해지는 탓에, 비트 타케시는 "바보같은 대학의 축제 무대해서만 할법한 네타", "보고 나서 죽기 직전에 갈 듯 했다" 라는 혹평을 하였고, 아카시야 산마는 "오리엔탈 라디오와 후지사키 마켓 (의 네타) 와 비슷하구만. 배꼈나?" 라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출하면서, 순식간에 인기가 사그러들었다. 게다가 "빨간 옷을 입고 있으니 빨갱이다", "8.6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8월 6일을 의미하는거다" 등, 넷 우익들이 퍼트린 루머들 때문에, 반일 혹은 재일 이라고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렇기에 넷 우익들이 판치는 일본의 위키피디아 에서는, 보통 게닌들의 문서들에는 없을 "평가" (주로 혹평) 문단이 있다.
- 냥코스타 - 핑 게닌으로 전환한 슈퍼 3스케와 앙고라 촌장의 콤비. 킹 오브 콩트 2017 결선 1라운드에서 줄넘기 댄스와 그림을 이용한 충격과 공포의 콩트를 선보이며 1위로 올라왔으나, 첫번째 콩트와 구성이 거의 비슷한 콩트를 최종 라운드에 선보인게 흠이되어 준우승을 한 콤비. 그래도 독특한 캐릭터가 어필하였는지 우승 콤비인 카마이타치 보다 더 주목을 받았지만, 게닌은 못생기거나 가난해야 주목을 받는다는 논란을 빚은 앙고라의 트윗, 부족한 토크력이 화근이 되어 순식간에 사라졌다.
3. 잇파츠야에서 벗어나거나 피한 게닌 일람
[15]
- 아리요시 히로이키 - 잇파츠야에서 부활한 게닌의 전설이자 모든 잇파츠야 게닌의 우상(...). 그리고 자신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주변 방송 관계자들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덕분에 다시 일어선 건 물론이요, 2010년대 일본 방송계의 아이콘 겸 시청률 보증수표로 올라선 케이스. 본인 曰 니하츠야 게닌[16] 잇파츠야가 된 이후 경제적, 심리적으로 고생했고 일이 안 들어오는 고통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재도 정력적으로 일하는 중이다.
- 카츠라 산도 (前 세계의 나베아츠) - 2008년 R-1그랑프리에서 "3의 배수와 3이 들어간 숫자를 말할때만 바보가 됩니다" 라는 독특한 개그로 브레이크하였다. 그 이후로 인기가 줄어 잇파츠야로 전락할 듯 하지만, 사실 1991년 부터 "쟈리즘"이라는 콤비로 활약하며 게닌 인생을 시작하고, 1998년 해체된 이후에는, 본명인 "와타나베 아츠무" 명의로 콩트 작가나 방송작가로써 활약하며, 후지테레비의 대표 방송들인, 타모리의 "와랏테 이이토모!"나 나인티나인의 "메챠메챠 잇키테루!" 등의 방송들의 인기에 기여한 경력이 있기때문에, 오오기리 같은 다른 종류의 개그에도 탁월한 능력을 뽐내며 숨겨진 예능 고참의 실력을 선보이며 잇파츠야 루트는 손쉽게 피했다. 현재는 카츠라 산도 명의로 라쿠고를 하는중.
- 코지마 요시오 - 세간의 인식은 물론이고 본인 역시 '잇파츠야 게닌'으로 말하고 다니지만, 그나마 상대적으로 나은 토크능력과 리액션 능력, 와세다대학을 나온 고학력자라는 간판과 젊은 나이 덕분에 험하게 굴러야 하는 해외 로케이션이나, 지력을 갖춰야 하는 퀴즈방송 등에서 나름 요긴하게 쓰이면서 적지만 꾸준히 출연 중. 잇파츠야 게닌들의 모임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기도 하고[17] , 후에 자신의 기믹을 업그래이드 한 후 2016년 R-1그랑프리에서 준우승했다. 우승자가 너무 막강해서 그렇지, 관객들의 호응은 우승자 못지 않게 얻었다.[18] 근육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면서 다이어트 책도 쓰는등, 오도리의 카스가 토시아키, 나카야마 킨니쿤, 레이저라몬 HG, 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몸짱 게닌 포인트도 있다. 최근 같은 선 뮤직 소속의 여성 탤런트인 베키가 게스노키와미오토메의 보컬과의 불륜소동으로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 소속사가 위태롭게되자 고참으로써 어떻게든 소속사를 살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베키의 어머니와 라인으로 대화를 하는 등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이들 사이에서의 인기도 하늘을 찌르고 있어서, 백화점이나 놀이동산의 공연에 자주 초대받고, 관련 굿즈의 매상도 좋다. 이런 주변을 챙겨주는 책임감에 주변에서 모두 "코지마는 정말 착하고 부지런한 녀석이다"라는 증언[19] 이 나올만큼의 성실성, 타겟을 확실히 잡고 그곳에 주력하는 노력[20] 등이 합쳐져 현재에도 내년이면 사라질 것 같은 게닌 랭킹 상위에 매년 오르지만, 실제 연수입은 1억엔 이상이라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이다.
- 코우라 카즈마사 - 원래 타구치 히로마사와 함께 호리프로소속으로 "텐션"이라는 오와라이 콤비로 1980년대말부터 활약했었지만, 1993년 부터 타구치가 영화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이후, 자신은 극장배우의 길을 걷기로 하면서 콤비 활동을 중단하였다. 같은 사무소였던 이지리 오카다와 함께 공연하는등, 무대에서 활약했었던 코우라는 연극의 각본이나 연출등도 담당하는 동안, 극장에서 선보였던 캐릭터들 중 하나인 "이모아라이자카 계장" 캐릭터로 2008년 R-1그랑프리에 출연한 이후 브레이크 하였다. 춤추고 노래하는 샐러리맨 기믹의 캐릭터로써 선보인 개그들이 인기를 얻고, 뚱뚱한 체격에 비하여 오랫동안 연극에 몸담으며 쌓아온 뛰어난 운동신경과 가창력으로 화제를 얻으며, 후에 엔타노카미사마를 대표하는 인물들중 한명이 되었다. 브레이크 이후 버라이어티 방송에서의 출연은 뜸해졌지만, 원래 활약했었던 극장에서는 자주 나오고 있고, 드라마나 어린이 방송에도 출연하고 있다.
- 나스비 - 전파소년 시리즈[21] 의 전설적인 기획이었던 "현상에 응모해서 얻은 것들로만 살아가기" 에서, 1년 3개월 동안 독방에 갇혀있으면서 목표인 총 100만엔 획득에 성공하고, 그동안 써내렸던 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트루먼 쇼를 보는듯한 전개로 세계 각지에서도 주목을 받았다.[22] 해당 기획에서 출연이 끝나고 엄청난 스트레스[23] 로 인하여 자살기도까지 하였지만, 다니고 있던 대학에서 어쩔수 없이 떨어져 있었던 때를 휴학으로 처리해준 교수같이 응원해 준 사람들을 보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결심을 하고, 드라마나 고향의 지역방송에 꾸준히 출연하고, 후에 2016년에 3번의 실패 이후 마침내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 니시오카 스미코 - SM퀸 기믹으로 인기를 끌었고, 어느정도 토크 능력도 있지만 이후 여성 게닌들[24] 의 대두로 묻혀버렸다. 다만 스미코 본인도 인기를 얻으면서 힘들어 하였고, 결정적으로 후지테레비의 27시간 테레비의, 아카시야 산마가 진행했던 한 생방코너에서, 선배들 앞에서 자신의 개그를 선보이려다가 긴장해버리는 바람에, 말문이 막히고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난 후 지상파에서 나오는 일이 없어졌다. 다만 사생활과 이미지는 잘 관리하였기에, 후에 지방방송국과 TV 도쿄의 정오의 정보방송들에서 리포터로써 활약하고 있다. 또한, 마라톤에 출전하며 좋은 기록을 내고, 자신의 요리 레시피들이나 일상을 블로그에 꾸쭌히 올리면서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중. 놀랍게도 Windows/드림캐스트용 게임도 발매되었다.
- 레이저라몬 HG - 레이저라몬의 츳코미 담당.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와 함께 허리를 흔들며 릭 플레어를 연상시키는 "훠~!"로 유명한 게이기믹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가 인기 있을당시 한류붐이기도 해서 나름 우리나라 인지도도 소폭 있는편. 이전같은 게이기믹은 아니지만 모델, 배우, 프로레슬러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그리고 적절하게 게스트로 인지도를 쌓은 RG와 함께 만담가로 전향해 THE MANZAI의 결선에도 진출했다. 다만 현재는 리츠메이칸 대학 출신으로써, 히나단 게닌으로서의 실력을 톡톡히 보고, 독특한 테이스트가 들어간 모노마네등으로 무장한 RG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HG가 완전히 몰락한건 아니다. 준수한 몸매와 운동신경으로 사스케 같은 버라이어티에서 활약하고 있고, 옛날에 HG덕에 RG가 주목받았듯이, RG가 인기있는 지금은 RG덕에 다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해당 문서에도 보이듯이 뛰어난 미술 실력도 갖추고 있어서, 요시모토가 주최하는 (주로 잇파츠야들이 중심인) 이벤트 포스터의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전시회에 작품들을 전시한 적이 있다. 참고로 도시샤대학 상학부와 프로레슬링 동아리 출신으로, 생활협동조합에서 일하다가 코미디계로 전신한 케이스.[25] 아내인 모델 스미타니 안나가 모델 출신인데 사업을 말아먹을 뻔했다(...).[26] 요시모토흥업의 암(어둠)영업 사건의 가담자 중 한명으로 밝혀지고, 받은 금액이 밝혀진 가담자들 중 3번째로 많은 돈을 받았기 때문에[27] 근신처분을 받았으나, 단순히 동료 개그맨의 권유로 뭣도 모르고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데다 회사 내의 끗발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을 지키겠다고 나서면서, 근신처분이 2019년 8월 18일 까지 지속된 이후 복귀하였다.
- 히게남작 - 프랑스 귀족 기믹의 오와라이. 캣치프라이즈는 "르네상스!". 전성기였던 2010년 초부터 잘나갔다가 지금은 별볼일 없는 잇파츠야가 되어버린 케이스. 다만 츳코미역의 야마다 루이 53세는 천체전사 선레드의 주역급 캐릭터인 뱀프 장군과 천장전대 고세이저의 조연급 등장인물인 아마치 쇼이치로를 맏거나, 현재는 팟캐스트 배급형식으로 전환되었지만 나름의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르네상스 라디오를 진행하고, 한때 분카방송의 매주 토요일의 정오 방송인 WEEKEND JUKEBOX를 아나운서 미야자키 노부코와 진행하면서 라디오 패널로서의 능력을 돋보이고 있다. 특히 성우가 아닌데도 뱀프 장군의 역할을 잘 소화하였기에, 해당작품의 인기에 기여하는건 물론, 애니덕들에게 호감가는 이미지를 얻었다. 잇파츠야가 되어도 전성기때 좋은 인상을 남겨서 인기를 유지한 케이스. 히트 후 최초의 칸무리 방송인 "르네상스 라디오"에서는, 특유의 진행력으로 고정 팬들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2017년에는 월간 잡지에서 여러 잇파츠야들의 근황을 적은 칼럼 시리즈가 일본의 잡지 언론의 최고의 영예라고 불리우는 "편집자가 고른 잡지 저널리즘 상"에서 올해의 작품상을 받았다. 보케인 히구치 군은 칼럼 쓰는것 외에 단독으로 할 수 있는게 히구치 커터 밖에 없었지만, 2016년 초에 난데 없이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다고 한다. 그야말로 레알 르네상스.
- 럭키 이케다 - 일본 예능계에서 춤 잘추는 아저씨 기믹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게닌. 방송에는 안나오지만, 작사가나 댄스 안무사로써 대활약중.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요괴워치의 엔딩 곡인 "요괴체조 제1"의 공동작사 및 안무, AKB48의 마음의 플래카드의 안무를 담당하는등 여러 유행곡들의 숨겨진 에이스. 요괴워치의 인기에는 대단한 기여를 한 만큼, 히노신과 함께 요괴화가 된 스태프들 중 한명이기도 한다. (해피씨와 언럭키씨)
- 루- 오오시바 - 일본 예능계에서 외국어가 유창한 아저씨 기믹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게닌. 1990년대 이후 인기가 식었지만, 2007년 시작한 블로그에 가히 보그체나 지큐체를 연상하는 외국어가 섞인 일본어 (통칭 루- 언어)로 작성된 글들이 인터넷에서 입소문을 타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다시 브레이크 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방송 출연이 줄었지만 그 독특한 캐릭터 덕에 감초처럼 등장하는중. 여러 오와라이 지망생들을 위한 강좌에서도 활약하는 중이다.
- 산페이 - 2002년, "산페이 입니다!" 라는 자기소개 개그와 "산페이의 재밌는 이야기"로 대히트. 그 이후 인기가 줄어든 이후에도, 브레이크한 동년부터 시작한 후지테레비의 장수 여행 버라이어티 방송인 "모시모 투어즈"에서, 방송 개시 이후에도 레귤러로 계속 활약하고 있고, 준수한 요리실력도 갖추고 있으며, 도쿄의 루미네 극장에서 열리는 요시모토 신희극에서 호평을 받는 등, 방송에는 자주 보이지 않지만 아직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덤으로 해외축구, 특히 세리에A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연예인들 중 한명인 만큼, 해외 축구와 관련된 방송에는 세리에A 출신 해외파들이 게스트로 나오면 항상 따라 나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실 잇파츠야의 선구자로 선술된 댄디 사카노보다도 1년 전에 큰 인기를 끌었으나 이후 꾸준한 활동으로 보통 잇파츠야로는 분류되고 있지 않다보니 '잇파츠야의 원조'라는 불명예는 벗을 수 있었다.
- 스기쨩 - 콤비 해산후 오랜 기간동안 무명이다가, "아이돌 스기쨩"이란 기믹으로 활동하던 중 답답한 마음에 캐릭터에 맞지않는 와일드한 남성의 면모를 어필하는 개그를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히트해서 일약 인기인이 되었다. 이후 '와일드 스기쨩'의 캐릭터로 "와일드하지~?"가 폭발적인 유행어가 된다. 스기쨩이 떴을 때는 잇파츠야 게닌이 이미 정착되어 있던 시기라 장래를 걱정하며[28] 이런저런 모색을 한 덕분인지, 인기가 사그라들어 전국방송에선 얼굴을 보기 힘들어졌지만 지방방송 및 케이블방송에선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온천여행 칸무리 방송을 갖는 등 꾸준히 활동 중이다. 게스트나 CM출연도 적지 않게 하고 있으며, 어린이 방송에서도 출연하면서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 2700 - 리듬 네타로 데뷔 8개월 만에 제 1회 킹 오브 콩트 결선에 진출했으나, 그 이후 인기가 급격히 떨어져 아르바이트만 하고있었다. 다만 허술했던 캐릭터를 다시 다듬어서 미친 존재감 급으로 끌어올리고, 주력인 리듬네타에 다양성을 넣어서, 자기들만의 고유한 네타로 인기를 다시 얻으며, 2011년 킹 오브 콩트에서 준우승 까지 하기도 하였다. 고정 패널은 아니지만, 무대나 방송에서 게스트로 자주 출연하고 있는중. 요시모토흥업의 암(어둠)영업 사건의 가담자 중 8만엔을 받았던 한 그룹이었으며, 스포츠닛폰의 취재로 다른 곳에서도 암(어둠)영업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무기한 근신처분을 받았으나, 사실이 아닌 오보로 밝혀지고 죄질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2019년 8월 18일 이후 복귀하였다.
하지만 이후 멤버인 야소시마가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휴업을 하게 되었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남은 멤버인 츠네의 핀 활동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된 지라 임시로 유튜브를 하고 있는 선배의 스탭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쉬지않고 일을 하면서 파트너가 복귀하고 다시 활동가능한 상황이 되면 컴백할 예정인 듯.
- 에도 하루미 - 메이지대학 연극학 전공 졸업 이후 매너 강사를 하다가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아나운서 개그나 매너 강의 개그로는 크게 히트치지 못했다가, 이후 오두방정을 떨면서 옷을 벗어제끼고, 엄지를 추켜세우며 '구~~!'[29] 를 외치는 기믹으로 대성공을 이룬다. 원래 무대배우 출신인데다 개그맨 데뷔당시 나이도 상당했던지라[30][31] 조금 민망한 예풍이 창피하지 않냐는 질문에 "내 동기들과 달리 (나이가 많기 때문에) 나에겐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라고 답한것을 보면, 게닌으로서 전성기를 오래 누리진 못할 거라는 걸 본인도 인지하고 있었던 듯. 단, 이 뒤에는 은퇴전의 시마다 신스케에게 말대꾸를 하거나, 다른 게닌들을 깔보는 스캔들로 조용하지 않은듯.
브레이크가 꺼진 이후에도 작지만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오다 2015년 게이오기주쿠대학 대학원 시스템디자인매니지먼트 석사과정에 입학하였다. 애초에 게닌이 된 것도 갑자기 찾아온 예능에 대한 열정을 참지 못하고 갑자기 전업을 했다고 할 만큼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즐기는 성향인 걸 보면 잇파츠야 게닌이라기 보단 자유롭게 자기 삶을 즐기는 와중에 훈장 하나 단 사람이라고 보일 정도. 후에 일본의 다이어트 회사인 RIZAP에 출연해서, 나이때문에 더부룩 해진 몸에서 살이 빠진 몸매로 탈바꿈한 CM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계진출을 권유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고 하며 이것 역시 찬사 받고 있다.
- 아츠기리 제이슨 - 데뷔한지 1년도 안되어 R-1그랑프리 결승에 진출한 미국인 게닌.[32] 한자의 이상한 점이나 일본어 특유의 표현방식의 이해가 안되는 점들에 대해 "Why Japanese people!?"이라고 외치는 네타로 R-1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하였다. 차세대 외국인 탤런트로써 주목받았지만, 단시간에 브레이크한 게닌 특유의 방송경험 부족 문제가 있었고, 트위터에서 자기 의견을 자주 쓰면서 약간의 논란들도 있었기에 잇파츠야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제이슨은 일리노이 대학교의 IT과로 졸업해 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전직한 경험까지 있는 엘리트인데다, 오와라이가 된 이후에도 현재 테라스카이라는 벤처기업의 국제사업부장으로 겸업하고 있는 엄친아 여서 잇파츠야로 전락할 일은 없을 듯 하다. 오래전 부터 엔타노카미사마등의 버라이어티 방송들을 보고, 후에 일본에서 오와라이로 활약하기 위해 JLPT의 1급시험에서 합격하는 등 여러 노력을 하여, 일본에서 세 자녀의 가정까지 꾸리고, IT업계에서도 벤처기업인 윌게이트에 투자하는 등 활약하고, 마침내 오와라이로써 꿈을 이룬, 그야말로 인생의 승리자이기 때문. 지금도 일본방송협회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 학습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 오리엔탈 라디오 - 2005년 데뷔 해에 리듬 네타인 부유덴 (武勇伝) 네타로 콤비로 결성한지 3년밖에 안되었는데 스타덤에 오른 콤비. 하지만 리듬네타 게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해 히트 친 이후로 활약했던 레귤러 방송들에서 히트 3년후에 모두 떨어지고, 불인기로 잠적하여 여러 잡음이 있었다. 너무 떠버린 바람에 바빠져서 정신이 나간적이 한 두번이 아닐 정도로 피폐해졌던 전적이 있고. 하지만 그 이후 일년간 노력하면서, 각자 부유덴이 아닌 고유의 캐릭터들을 찾은 후 다시 인기를 회복하였다. 보케역의 나카다는 똑똑한 오타쿠 캐릭터, 그리고 츳코미역의 후지모리는 날티나는 껄떡남(チャラ男, 챠라오) 캐릭터를 담당하며 , 여러 주요 방송들에 레귤러 패널로 나오며 다시 잘 나가고 있다. 부유덴 네타 말고도, 콩트나 만자이에서도 기량을 발휘하고[33] 초기의 전성기 이후의 암흑기를 디스하는 자학네타도 열심히 사용하고 있다. 전국 투어도 하고, 후에 나카다의 동생이자 유명한 댄서인 FISHBOY와 동료들과 함께, RADIO FISH 라는 음악 그룹을 결성해서 PERFECT HUMAN 이라는 신곡도 내놓으며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는중. 후지모리는 현재 껄떡남 이미지를 탈피하기위해 드라마에서 의외의 배역을 맏거나, 콩트 등에서 자주 망가지는 역할을 담당하며 이미지 변환도 하고 있고, 나카다는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고학력 스펙과,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음악이나 애니같은 서브컬쳐에서의 높은 덕력[34] 으로 여러 잡학 관련 프로그램과 서브컬쳐 방송에서 활약하였다. 나카다의 의외로 막나가는 성격이 마츠모토 히토시를 트위터에서 디스하며 폭발한게 영향을 끼쳐서 나카다의 텔레비전 출연 빈도가 줄었긴 했지만, 위의 아리요시와 함께 잇파츠야를 탈출한 모범 케이스들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로 나카다는 역사나 사회에 대해 가르치는 유튜버로 전향해 인기를 높이고 있는 중이다. 2차 세계대전의 독소전쟁이 벌어진 전개의 설명을 잘못한게 유명 밀덕 블로거 dragoner에게 지적을 받고, 이슬람교의 탄생비화를 잘못 설명해서 이슬람교 연구자 이이야마 아카리(飯山陽)에게 비판을 받고 영상을 삭제 했으나, 둘 다 저명하지 않거나 평판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 묻히고[35] , 다른 까들[36] 이 똑같은 문제로 극딜하고 있는 사이, 꿋꿋이 어려운 역사나 사회의 요소를 알기 쉽게 설명해내고 있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도 역사 강의 급으로 열정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 카노 에이코 - 나르시스트 호스트 컨셉으로 인기를 끌었던 게닌. 2008년에 히트친 이후로, 위의 코지마와 비슷하게 내년이면 사라질 게닌 랭킹에 늘 상위권에 들었고, 고향인 미야기현의 사쿠라다산신사가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고, 불륜사태 때문에 결혼했던 일반 여성하고 이혼하는 등 여러 문제를 겪었으나, 같은 지역 출신인 게닌 그룹인 샌드위치맨의 도움을 받고, 후에 몰래카메라, 리엑션 개그...라기 보다는 주로 괴롭혀지는 것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면서 아직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같은 마세키 예능사 소속인 선배 데가와 테츠로를 이은 웃음의 신이 선택한 남자로, 런던하츠의 몰래카메라 기획에서는, 스케일의 사이즈에 관계없이 항상 당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자매방송인 아메토--크에서는 데가와&카노 특집으로 엮이면서 자주 같이 나오는중. 런던하츠에서 자주 만나는 아리요시가 잘 챙겨주는 게닌들 중 한명이기도 한다. 위의 코지마와는 "역시 절대로 사라지고 싶지 않은 두 사람" 이라는 라이브 공연 시리즈를 함께 진행하는등 친한 사이. 또한 가문 대대로 신사의 신주여서, 현재 신주로써의 교습을 받으며 이미지 개선을 하고 있는중이다. 그 이후 또 터져 나온 여자문제로 다시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대다수의 반응은 나이를 속이고, 여러 정신적인 문제로 가득한 여성 아이돌 측이라고 하며 복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대다수. 이후 방송에 복귀하며 다시 훼손된 평판을 회복시키고 있다.
- 테츠 앤드 토모 - 영업 게닌으로써 활약하며 일반 오와라이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는 콤비. 빨강, 파랑 츄리닝을 입고 난데다로~(어째서지?)로 유명한 음악개그를 했다.[37] 그래도 다른 잇파츠야에 비하면 TV출연은 없지만 매년 100번 이상의 영업(대학 축제나 각 지방 축제등)을 뛰면서 먹고사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아예 영업 게닌으로써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으며, 매년 연봉이 1억엔(!)을 넘는게 다반사라고.[38] 난데다로- 말고도 성대모사를 기본으로 한 노래 개그등 여러 동감할만한 소재들로 개그를 하고있고, 지방 사람들이 친숙해할만한 요소들까지 꼼꼼히 확인해 각 지역 입맛에 알맞는 개그도 만들어 내고 있다. 최근 자신들이 꿈꿔왔던 앨범도 발매하며 호평을 얻고있다.
- 츠부야키 시로 - 토치기벤으로 "자신이 짜증났던 일들"을 말하는 공감개그로, 90년대 인기를 얻었던 후지TV의 방송 "보캬브라 천국"의 스타로 떠올랐으나, 해당 방송이 종료된후 사망설까지 나올정도로 인기가 떨어졌다. 다만 소속사가 호리프로인 만큼, 잇파츠야로써 라이브에 꾸준히 출연했었고, 2000년대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TV 아사히의 "웃음의 금메달"에 출연해서 다시 브레이크를 하였다. 해당 방송이 종료된후 또 인기가 줄었지만, 81 프로듀스의 도움으로 성우 데뷔를 하며, 여러 방송들의 나레이터로써 실력을 인증받고, 쓴 소설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등 아직도 밝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줄씩 네타를 쓴것도 쏠쏠한 재미를 주고있다. 같은 사무소의 선배인 사마~즈가 좋아하는 후배여서, 모야모야 사마~즈나 사마~즈×사마~즈 같은 방송들에서는 마에세츠[39] 나 게스트로 자주 모습을 보인다. 사마~즈와 술자리에서 즐겁게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 킨타로-。- 30세에 늦은 데뷔로 마에다 아츠코 등 여러 아이돌의 모노마네로 브레이크를 하였지만, 현재는 전성기의 인기에 비해서는 많이 줄었다. 닮은것 외에도 웃기게 표현하는게 모노마네의 기본적인 요소의 하나인데, 이것때문에 AKB 극성 빠들에게 살해협박까지 받을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에 마에다 아츠코나 AKB48로 부터 인정을 받고, 어차피 아리요시 히로이키, 톤네루즈의 이시바시 타카아키 등의 대선배들도 절찬을 받아왔었고, 오히려 킨타로의 모노마네를 좋아한다는 AKB 팬들도 늘어나며 이미지 회복을 하였다. 후에 점점 다른 유명인들의 모노마네를 하기 시작해 레퍼토리를 늘리며, 새로운 모노마네 탤런트로 부상하고 있고,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가 집을 떠난 불행한 인생때문에 접었었던 댄서를 향한 꿈을 이루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원래 게닌이 된 킨타로에 대해선 처음에는 반대했었으나, TV에서 자주 보게되어 행복하다고 하였다. 레귤러로 출연하는 방송들도 있고, 무대에서도 자주 활약하고 있으며, 소속사인 쇼치쿠예능의 새로운 간판 스타가 되기도 하였다.
- 후지사키 마켓 - 리듬네타인 '라라라라이 체조'를 히트시켰으나 얼마 안 있어서 TV 출연이 뜸해졌었다. 하지만 리듬네타의 사용빈도를 과감히 줄이고 만자이나 콩트 개그를 늘리려는 피나는 노력을 한 후, 웬만한 잇파츠야들 하고는 다르게, 간사이를 중심으로한 지방 방송들에서 자주 출연하고, 여러 만자이 대회에서 우승하는등 기사회생을 하였다. 후에 2015년 킹 오브 콩트 결선에 진출 하고 최종 라운드까지 가는등, 드디어 잇파츠야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이후 데뷔 1년도 안 되어 리듬 네타로 히트한 8.6초 바주카에게 2015년 1월 "리듬네타는 마약이다. 조심해."라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잇파츠야 시절의 흑역사 등으로 자학 개그도 하면서 여러 잇파츠야가 될 징조가 보이는 콤비들을 갱생하려는 노력도 하는중. 멤버인 토키는 tv에서 라라라라이 체조를 하는 장면을 볼때 마다 트위터에 멍때리는 사진들을 올리는데 표정 하나하나가 걸작 급이다. 2017년 타사키가 대장암 판정을 받아 수술을 받았고, 비트코인에 돈을 날려서 슬럼프에 빠졌으나, 후에 회복 후 열심히 활동중이다.
- 고☆져스 - 새로운 도전으로 성공하며 일반 오와라이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나가고 있는 핀 게닌. 지구본에 있는 지역들, 도시들, 나라들을 이용한 언어유희 네타를 선보이는 우주해적 기믹의 게닌. 십년 가까이 늘 같은 형식의 개그를 해서 식상해질듯 하지만, 자신이 직접 진행하는 유튜브 게임 채널이 20만명이 넘는 구독자들을 기록할 정도로 대학생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며 브레이크 중이다. 이미 <폭소! 레드카펫> 등의 오와라이 방송들에서 출연하며 인기를 끌었기에 호감도도 상당하기 때문에비추는 거의 받지 않는다. 이렇기에 학교 문화제에서는 다른 영업 게닌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출연할 정도. 물론 더 힘쎈 학교들에게 인기있는 게닌들을 빼앗겨버려서 할 수 없이 고르는 케이스가 빈번하지만, 그래도 인기있는건 무시할 수 없다.
- 밤비노 - 2014년 킹 오브 콩트 1라운드에 선보인 콩트의 리듬네타 "단손"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이듬해 단손 컨셉으로 무대나 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등, 리듬 네타를 메인으로 하는 게닌들이 다 그렇듯이 잇파츠야 크리로 갈듯 했지만, 단손으로 인지도를 유지하면서도 뒤에서 새로운 리듬 네타들을 만들며, 2015년 킹 오브 콩트에 결선 진출 후, 새로운 리듬네타[40] 로 후배인 코로코로치키치키페퍼즈에 이어 준우승 까지 해냈다. 이후 방송에서의 출연 빈도를 알맞게 유지하고 있고, 도쿄 진출에 성공하며 무대에서 많은 호평을 받고 있는중. 최근에는 보케인 후지타와 츳코미인 이시야마 둘다 득남하면서 축하를 받고 있다.
- 일본 에레키텔 연합 - 2014년에 선보인 "다메요~ 다메다메~" 를 외치는 안드로이드 애인과 그 곁에있는 늙은이 콩트로 히트친 여성 콤비. 물론 브레이크한 이후인 2016년에는 방송 출연도가 확 줄었지만, 유튜브에 진출후 15만 정도의 구독자를 보유하며 어느정도 인기는 살리고 있다. 다만 소속사인 타이탄이, 한때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만담가인 같은 소속사의 나카이 히데카즈가 음란죄와 불륜으로 인하여 몰락한 이후로, 새로운 오와라이 유망주를 발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드디어 빛을 본것이 일본 에레키텔 연합인 만큼, 소속사 차원에서 푸쉬해주며 단독 라이브 공연도 열어주고 있는 덕에 아직은 희망이 있는 케이스다.
- 무디 카츠야마 - '오른쪽에서 온 물건을 왼쪽으로 넘기는 노래(右から来たものを左へ受け流すの歌)'가 2006년에 브레이크했으나 2008년 이후로 TV 출연이 줄어들었다. 원래 "아이스크림"이라는 만자이 콤비로써 활약하며 데뷔 3년째에 신인상도 탄 경력이 있지만, 카츠야마 홀로 인기를 얻는사이 잘 챙겨받지 못했던 파트너가 삐져버리는 바람에, 2010년에 해체되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는 미야기현으로 주 활동처를 옮기고 지방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리포터[41] 부터 착실히 맡으면서 평판을 다진 다음, 2018년에는 지방방송국에서 5개 프로그램을 맡는 코미디언으로 다시 부활하였다. 그리고 잇파츠야가 겪는 에피소드 자학개그[42] , 인스타그램의 슈르한 사진으로도 인기를 얻으며 모델 일 의뢰도 받는 동시에 LINE 스티커도 출시하는 중. 요시모토 흥업의 암(어둠)영업 참가자 중 한명으로 밝혀져 근신 처분을 당하는 등 다시 일이 꼬였다가, 받은 금액이 3만엔으로 적은 편인데다 그저 동료 게닌의 권유로 별 생각없이 참가했다는 것이 밝혀져서 2019년 8월부로 다시 근신이 해재되어 활동을 재개했다.
- 히로시 - 2004년 자학개그로 인기를 끌었고, 인기 최고조이던 시절엔 월 4000만엔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43] 특유의 은둔성 때문에, 방송 제작진들이 이상한 시선을 보이기 시작한 이후로는[44] TV에서 점점 사라졌다. 현재도 자신의 트위터에 자학 개그를 올리고 있다. 인기가 떨어지면서 자학개그의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가, 자신의 취미인 캠프를 살려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 독특한 치유성으로 은근히 인기를 얻으면서, TV 아사히 산하의 케이블 채널의 여행 방송의 단독 레귤러로 채택되어서, 세계 여기저기로 기차 여행을 하며 다시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2010년 11월부터 다시 방송에 등장하면서 토크력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단독공연도 자주 다니고 있으며, 책도 내기도 했다. 2018년에는 카페도 열었고, 이후로도 여러 방송에서 여행 패널로 활약중. 그리고 2020년 유튜브 100만 구독자를 달성하였다.
4. 잇파츠야가 사는 법
히트 친 시기에는 워낙 인기인이라 여기저기 불려 나가지만, 짧은 기간에 워낙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슬슬 질리기 시작하는 시기(빠르면 3~4개월, 늦어도 6개월째 쯤엔 끝물이라고 본다)가 되면 이후의 행보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보통 잇파츠야 게닌이라면 TV에 나오는 동안은 거의 똑같은 소재만 반복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 시청자들에겐 인기 네타 외의 부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방송 관계자들도 그 부분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다른 능력(MC능력이나 토크능력, 히나단에서의 대응력 등)에 대해선 신경도 쓰지 않으므로, 인기가 사그라든 이후에는 거의 불려지지 못하는게 일반적.[45]
이런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잇파츠야 게닌들이 여러가지 대책을 생각해 놓았는데, 아메토--크의 '''원조 '지금이 제철'이란 소릴 들었던 게닌'''의 회에서 이런 대책들이 소개된 적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은데
- 인기가 있을 때, 가능한 한 다양한 방송에 출연해서 내가 이런것도 가능하다는 점을 어필하라.
- 신뢰할 수 있는 프로듀서에게는 철저하게 잘 대해라. 결국 인기가 사그러든 이후에도 자길 써 주는 사람은 충고나 조언을 아끼지 않는 프로듀서들이다.
- 무슨 일을 시켜도 싫은 얼굴 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 임하라. 쓰기 편한 게닌으로 인식되면 이후에도 일거리는 꾸준히 들어온다.
- 현재 밀고있는 개그 소재 이외의 특기를 발휘할 기회가 있으면 철저하게 어필할 것. 해당 취미분야에 대한 방송이 있으면 불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 능력있고 말빨 되는(=이후 뜰 수 있는) 후배를 포섭하라. 후배 덕분에 방송에 출연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 자신이 고향, 또는 자신의 개그가 잘 먹힌 지방 방송국에 자신이 주연인 방송을 만들어 둬라. 지방 정서상 한번 연을 맺어두면 꾸준히 기용해 준다.[46]
- 어린이 방송을 절대 무시하지 마라. 어린이 방송 자체도 꾸준히 출연할 기회가 되지만 아이와 함께 보는 어머니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다.[47]
실제로 위의 잇파츠야 게닌 탈출자들이나 언급되지 않은 잇파츠야 출신들 중에 어느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친분을 맺어둔 프로듀서 덕분에 간간히 방송에 출연하며 명맥을 잇거나, 특정 특기로 고정 방송을 따 내거나, 지방 방송국에서 간판방송을 갖고 있는 경우들인 경우가 많다.[48]
워낙에 잇파츠야 게닌들의 명멸이 빈번한 일본의 연예계이다 보니, 퀴즈 방송 등에서는 인기가 사그라든 잇파츠야 게닌들을 모아서 히트했던 연도 순으로 정렬하는 퀴즈를 내기도 한다.[49] 일본에서 퀴즈 프로그램 수입으로 먹고 사는 퀴즈 헌터들에게 있어 사실상 예능계 문제은행의 필수요소급 취급을 받는데, 워낙에 수가 많고 개월수를 따져서 정확하게 정렬해야 하는 구조상 상당히 난이도 높은 문제로 분류된다.
간사이권 코미디언들의 경우 도쿄진출에 실패하고 잇파츠야가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는 그냥 요시모토 흥업의 존재로 인해 마켓쉐어가 보장된 간사이로 돌아가서 잘 먹고 잘 사는 게닌들도 많다. 물론 배수의 진을 친 경우에는 아예 도쿄로 거주지를 옮기고 간사이에서 맡은 프로그램도 하차하지만.[50]
위에서 소개된 잇파츠야 게닌의 대부분은 단발성 핀게닌의 네타나 짤막한 콩트를 전문으로 다루었던 니혼TV의 프로그램 엔타노카미사마에서 스타가 된 케이스가 많다. TV방송이 아닌 극장에서 라이브 공연 등으로 간간히 지명도를 올리던 게닌들이 TV에 진출할 수 있는 성지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 실제로 엔타노카미사마가 한창 뜨던 당시에는 각 방송사에서 너도나도 잇파츠 개그방송을 그러나 엔타노카미사마가 시청률이 저하하면서 점점 인기가 사그러들더니 2010년 종영하게 되자 다른 방송사에서도 개그 방송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자연히 잇파츠야 게닌들이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는 기회도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현재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핀게닌이 설 수 있는 무대는 연 1회 개최되는 R-1그랑프리 정도이다. 2010년대 이후로 이렇다할 신생 잇파츠야가 떠오르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51]
5. 같이보기
[1] 간혹 원 히트 원더를 잇파츠야라고 표현하기도 한다.[2] 토크 능력이 떨어지는 코미디언이 많은 것은 코미디언의 능력 외에 일본의 코미디업계를 둘러싼 환경과도 연관이 있는데, 정치, 사회 관련 소재를 풍자한 토크보다는 이러한 '네타'가 인기를 끄는 것이 일본 코미디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 부작용인지는 몰라도 코야부 카즈토요, 타무라 켄지 등이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의 발언을 TV나 라디오서는 할 수 없으니 SNS나 간사이 로컬 프로그램에서 직접적, 혹은 우회적으로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3] 아메토--크의 잇파츠야 관련 회에서는, 당시 초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스기쨩이 선배 잇파츠야들에게 조언을 들을 때 MC들이 "캐릭터 잊지 말라고"라며 여러번 주의를 줄 정도로 진지하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하는 등 절실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6년 새롭게 뜬 20년차 게닌 나가노의 경우도 오와라이 용 옷은 한 벌이지만 공연은 하루에 몇개씩 뛴다고 밝혔고 휴식시간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에따른 수입의 변화는 작년의 100배 이상이다고 전했고 동료들이 좀 쉬라고 하지만 벌 수 있을 때 벌어야만 한다고 했다.[4] 잇파츠야 출신으로 재기를 달성한 아리요시 히로이키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는데, 아메토--크에서 막장 별명을 지어주는 캐릭터가 크게 먹혀 이후에도 타 방송에서 별명 지어주는 사람으로 호평받고 있을 때 '''이러다간 그냥 별명이나 붙여주는 기계로 끝나고 만다'''라는 생각에 적정한 타이밍에 별명 캐릭터를 졸업하면서 토크력, MC능력등을 어필함으로서 롱런할 수 있게 되었다.[5] 게다가 라쿠고는 한참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 진입이 어렵다.[6] 일본에선 보통 월세를 사는게 일반적인데, 수입이 줄어들 것이 뻔하니 아예 월세 걱정없도록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월세가 비싼 편이라 직주근접성을 고려해 아예 도쿄에 집을 사는 방법이 싸게 먹힌다고.[7] 사마~즈는 사카노를 오고쇼 (쇼군의 태상왕격의 위치) 배우라 부르며 아직도 군림하는 게닌이라고 칭찬하였다.[8] あるある探検隊[9] 그 아리요시도 "너무 깠네..."라는 코멘트를 날리며 씁쓸하게 웃었다.[10] 검열되어서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병 혹은 문춘이라고 외쳤다고 추정되고 있다.[11] 이게 어느 정도냐면,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코미디언 중 가장 사이가 나쁜 콤비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불만은 다른 사람이 부추겼다고.[12] 알려진 바로는, 일단 총원 13명의 개그맨이 관련된 사건에서 주동자는 한명이고 나머지 멤버들은 주동자의 권유로 참여했다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타노신고는 바로 그 주동자 급의 소행을 더 나쁜식으로(출연료로 고액을 요구하거나 후배들에게 참여를 강요하거나 하는 식) 했다고 한다.[13] 오덕 기믹의 핀 게닌으로 대활약 중이고, 가가가 문고의 라이트노벨인 게닌 데스티네이션 (芸人ディスティネーション)도 썼다.[14] 그러나 아키라100%도 방송에서 중요부위를 노출하는 등 공연음란행위를 하여 PD가 양복을 입고 BPO로 갈 뻔했다. 이마다 코지는 "출연시 항의전화가 계속 걸린다"라고 코멘트했으며, 라쿠고계에서도 쇼텐의 카츠라 우타마루, R-1그랑프리 심사위원 카츠라 분시는 아예 직접적으로 디스했다. 동서 막론하고 대선배에게도 안 좋은 평을 들은 셈.[15] 이게 농담이 아닌 게, 코미디언들 중에서 좋은 평판을 얻어 성공하는 사람을 보면 똑똑하거나 고학력자인 사람이 상당수 있으며, 코미디계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똑똑해야 성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코미디언들이 지속적으로 네타를 작성하고 무대를 꾸며나가며 토크 및 방송, 행사능력으로 먹고 살게 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지식, 센스와 통찰력. 한국의 잇파츠야라고 할 수 있는 김경민이 마리텔 22화에서 한 "개그맨은 멍청해야 된다"라는 식의 발언이 문제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직종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이자 지적 수준에 대한 모독. [16] 일본어로 2를 '니'라고 발음한다.[17] 옛날에 시마다 신스케가 진행했던 버라이어티 퀴즈쇼 핵사곤에, 잇파츠야팀으로써 같이 출연한 하타 요오쿠와 친하다. 댄디 사카노는 존경하는 선배로써 해당 팀으로 들어오게 하는등 두말할 것 없이 친하다.[18] 당시 우승자인 헐리웃 자코시쇼는 "과장된/너무 힘이 들어간 모노마네"로 스튜디오의 스테프와 MC인 아메아가리 결사대를 포함하여 전원 초토화 시켰다.[19] 결혼 후로도 그 흔한 불륜 루머 하나 없고, 사치를 한다는 소문도 없이 오히려 부모님께 5천만엔을 드렸다거나, 2천만에 넘는 가게를 장만해 드렸다는 등의 미담만 나오는 중이다.[20] 현재는 주로 아이들도 볼 수 있는 개그를 지향하며 영업을 하는 중인데, 그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각종 자격증까지 땃을 정도라고 한다.[21] 아리요시가 나온 방송이기도 하다.[22] 24시간내내 온라인 스트리밍(...)을 하고 그걸 한국에서도 시전했다.[23] 마지막에 방으로 된 세트장을 수만명의 방청객 앞에서 해체했다. 당연히 나스비는 멘붕.[24] 단, 소속사인 와타나베 프로덕션의 선배 여성 게닌들로부터는 많은 도움을 얻었다. (야시로 유우, 이모토 아야코 등)[25] 레이자라몬 콤비는 도시샤대-리츠메이칸대 정기전 포스터에 등장한 적이 있다.[26] 그래도 다시 잘 돼서 연수입 6억엔까지 다시 올라왔다.[27] 미야사코 히로유키가 100만엔, 타무라 료가 50만엔, 레이저라몬 HG가 10만엔을 받았다. 나머지 게닌들은 10만엔 이하이고, 대부분 3만엔씩 받았다.[28] 위에 언급된 아메토--크에서 뭔가 어필할 수 있는 특기가 필요하다라는 이야기를 듣자 "저 캠핑 관련 자격증 있어요!"라며 야외 로케등에 강한 면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하기도 했다.[29] Good 을 느끼하게 발음한 것[30] 배우로서는 데가와 테츠로, 웃쨩난쨩과 동기다. 실제로 거의 20살 가까이 차이나는 나이어린 선배 개그맨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대를 하며 선배대우를 했지만 데가와에게만은 동기처럼 대했고, 데가와도 배우동기로서 대해줬다고[31] 에도의 동기 중 한명은, 자기 모친이 장난삼아 "나도 NSC한번 들어가 볼까?"라는 농담에 "엄마처럼 나이든 사람이 NSC에 있겠수?"라며 대꾸했는데, 입학식날 보니 자기 모친과 동갑인 에도가 있어서 당황했다는 에피소드를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NSC에는 가끔 늦은 나이에도 게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라고.[32] 후술한 대로 방송인이 주업이 아니다.[33] 특히 만자이는 데뷔 반년만에 M-1 그랑프리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한 경력이 있다. 그것도 부유덴 네타가 나오기 전에.[34] 특히 신세기 에반게리온 오덕이다. 오덕검증을 하는 퀴즈프로그램에서 팬들도 고뇌할 법한 문제들을 전부 맞추며 정식 에바덕후 게닌으로 인정받았다.[35] dragoner는 넷 우익이나 자위대에 비판을 하기도 한 인물이지만 대중에서 그렇게 주목 받는 인물이 아니다. 이이야마 아카리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향한 강한 비판을 하는 학자이나, 극우잡지 WiLL에다 칼럼을 개재한 적이 여러번 있었고, 트위터에서 페미니스트들과 입헌민주당이나 일본 공산당의 인물들을 비롯한 진보 인사들의 트윗들을 인용 리트윗해 비판하고, 이렇게 하여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공격을 유도하는 짓을 매일같이 해대고 있으며, 이에 대해 비판하는 까들의 트윗들을 인용 리트윗 하고 바보같이 비판하는 말투로 다시 써서 폄하 하고 있다. 극우 유튜브 채널에서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다, 2020년 이후로는 악명높은 DHC TV에도 출연하기 시작하였다.[36] 특히 주간문춘 같은 황색언론이나 마토메를 중심으로[37] 이 네타는 에가시라 2:50이 북한을 방문할 때 현지 주민들 앞에서 피로하게 된다.[38] 2010년 가량엔 아예 새로 집을 지었다. 구입한게 아니라 신축 가옥을 아예 새로 올렸다는 것! 영업 자주 뛰는 게닌을 다룬 방송에선 반 농담삼아 "사실 이렇게 방송에 나오는게 우리에겐 오히려 손해다"라고 발언할 정도.[39] 방송 수록이 시작되기 전에 관객들의 흥을 돋우는 역할.[40] 1라운드에는 마술사와 개, 2라운드에는 안마[41] TBC의 '소레이케 미미조'라는 프로그램의 라디오카 리포터를 맡았다.[42] 전국방송에서는 TV 아사히의 '시쿠지리 선생'에서 선보인 적이 있다.[43] 일본의 평균적인 회사원 월급이 25~30만엔 사이라고 한다[44] 브레이크중 갑자기 방송에 안 나오겠다고 선언한 뒤 일이 끊겼다.[45] 특히 일본의 경우 미국과는 다르게 스탠드업 코미디 시장이 발달하지 못하여 수입에서 방송 및 행사진행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그나마 선술한 와타나베 아츠무나 유병재 같은 방송작가 출신이라면 프로그램 구성에 참여하여 수입을 얻을 수 있지만.[46] 무디 카츠야마의 오리콘 인터뷰에 따르면, 도쿄에서 브레이크한 적이 있던 코미디언들이 지방 방송국에서도 좋은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덧붙여서 일이 끝나고 나서는 주변에 인사를 많이 하며, 개그의 내용에도 신경써서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막말 등 비하 개그는 안 한다고.[47] 이는 학습지, 학원 회사들이 쓰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하는 어머니들을 공략하는 것. 한국에서도 보니하니라는 유사 케이스가 있다. [48] 특히 칸사이 로컬 방송국의 경우, 도쿄에 안 나와도 고급 맨션이나 고급 차를 살 수 있을 정도. 허나 이것도 문제(?)가 있는데, 적응 문제로 인해 간사이에서 성공하는 게닌들 중 상당수가 도쿄로 진출할 생각을 안 한다(...).[49] 코지마 요시오가 이 컨셉으로 잇파츠야 게닌들을 모아 2010년대부터 공연을 열기도 한다. [50] 그래서 간사이권 게닌들은 도쿄진출을 하더라도, 간사이 및 서일본 지역에서 하는 로컬 프로그램 한두 개쯤은 남겨 두기도 한다. 문화 차이 등으로 실패사례가 너무 많았기 때문.[51] 사실 잇파츠 네타뿐만 아니라 지상파 전체에서 점점 개그 네타 프로그램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는 현재의 한국 개그계와 동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