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시

 




'''동두천시'''
東豆川市
Dongducheon City
}}}

<colbgcolor=#009944><colcolor=white> '''시청 소재지'''
방죽로 23 (생연동)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하위 행정구역'''
8
'''면적'''
95.66㎢
'''인구'''
94,433명[A]
'''인구밀도'''
981.61명/㎢
'''시장'''

최용덕 (초선)
'''시의회'''

3석

2석

2석
'''도의원'''

2석
'''국회의원'''

김성원
{{{#!wiki style="font-size: 12px"(동두천·연천 / 재선)
'''상징'''
<colbgcolor=#009944><colcolor=white> '''시화'''
황매화
'''시목'''
은행나무
'''시조'''
파랑새
'''지역번호'''
'''031'''
'''홈페이지'''
http://www.ddc.go.kr
'''SNS'''

[image]
'''동두천시의 위치'''
'''슬로건'''
<v|1><rowcolor=#373a3c> [image]
소람이·요람이
<v|1> [image]
아롱이·다롱이
'''마스코트'''
'''동두천시청'''
1. 개요
2. 역사
2.1. 관련 문서
3. 인구
4. 지리
6. 경제
7. 관광
8. 거주 환경
9. 교육
10. 문화
11. 정치
11.1. 관련 문서
12. 군사
13. 하위 행정구역
14. 여담
15. 출신 인물

[clearfix]

1. 개요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 원래는 양주군에 속한 지역이었으나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도시 이름의 유래는 주한미군 동두천기지인 캠프 케이시(Camp Casey)와 턱거리 근처의 캠프 호비(Camp Hovey) 경내 일대를 흐르는 하천의 이름인 동두천.[1] 동쪽으로 포천시, 서남쪽으로는 양주시, 북쪽은 연천군에 면하고 있다. 전방에 속하는 지역으로 군사 시설이 많다.

2. 역사


[image] '''동두천시 행정구역 변천사'''
양주군 이담면
(楊州郡 伊淡面)


양주군 동두천읍
(東豆川邑, 1963)


'''동두천시'''
'''(東豆川市, 1981)'''

고구려 때 내을매현(內乙買縣)이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 사천현(沙川縣)으로 승격되어[2] 견성군(堅城郡, 현 포천시 일대)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 때는 현종 9년(1018) 양주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때는 태종 13년(1413) 양주도호부에, 세조 12년(1466) 양주목에 속한 일담면(一潭面)이었으나, 후에 이담면(伊淡面)으로 개칭되었다.
1963년 양주군 이담면이 동두천읍으로 승격되었는데, 의정부와 비슷하게 원래 있던 면 이름이 그대로 읍으로 승격된 것이 아니고, 면의 중심지인 동두천리의 이름을 따라 개칭된 것이다.[3] 1973년에는 포천군 탑동리(塔洞里)를 편입시켰다. 이후 1981년 7월 1일 시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2월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양주군 은현면 상패리가 편입되었다.
해방 전에는 보산동 일대가 중심이었으나 한국전쟁으로 동두천 일대인 보산동 일대가 폐허가 된 이후 미군이 그 일대에 주둔하게 된다. 전략적 요충지로 인식된 동두천 보산동 일대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그 일대는 미군과 외국인을 위한 위락시설이 집중됐고 민간인의 생활공간은 이보다 남쪽으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현재의 생연동이 새로운 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동두천의 근대 건축물[4]이 대부분 1960년대 이후에 생연동 일대에 집중적으로 조성, 분포돼 있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에 보산동 남쪽 생연동을 중심으로 성장한 동두천의 도시연혁을 그대로 보여준다.
동두천에 주둔했던 미군부대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경제적 궁핍기에 동두천을 여타 지역에 비해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미군을 통해서 유입되는 첨단 서구문화로 국내 여타 도시보다 오히려 앞서 문화적인 풍요를 누리기도 했다. 한 때 동두천과 의정부 일대는 서울의 미8군 클럽과 함께 7,80년대 전성기를 구가하는 대중가수들의 요람이기도 했다.
1998년 11월 내행동과 광암동을 통합하여 불현동을 설치하고, 생연3동과 생연4동을 통합하여 중앙동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동안동과 소요동을 통합하여 소요동으로 변경하였다.
2007년 5월 불현동 인구과밀로 인하여 불현동과 송내동으로 분할하였다.

2.1. 관련 문서




3. 인구


[image]
''' 경기도 동두천시 인구추이 '''
(1970년~2020년)












1970년
60,257명


1975년
59,927명


1980년
60,085명


1981년 양주군 동두천읍 → 동두천시 분리 승격
1985년
68,610명


1990년
71,437명


1995년
71,305명


2000년
72,366명


2005년
78,897명


2010년
90,433명


2015년
97,424명


2020년 8월
'''93,968명'''














2020년은 주민등록인구 통계이며, 그 이전은 인구주택총조사 통계다. 두 통계는 약간 차이가 난다.

4. 지리


1981년까지도 양주군에 속해 있었지만, 양주시 지역과는 지역색이 다소 다른 편이다. 간혹 양주시 중에서도 동두천시 생활권인 덕정동, 회천동, 은현면, 남면 지역은 동두천에서 출퇴근하거나, 혹은 동두천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있는 편이다.
분지라는 특성과 중앙동과 지행동이라는 좁은 지역에 밀집해서 거주하는 특성상 경기북부임에도 시의 북쪽과 동쪽 남쪽이 산으로 틀어막히고 서쪽은 양주시로 넘어가서 산으로 틀어막혀 있는 지형 특성상 여름철 기온이 높은 곳이다. 최근에는 뜸하지만 강수량이 많은 년도에는 폭우로도 자주 언급된다.
한국 북쪽 지역이면서도 분지 지형 때문에 겨울에는 추운 공기가, 여름에는 더운 공기가 잘 안 빠져나가고 갇혀있어 극단적인 기온이 나타난다. 실제로 기상 예보에 나오는 지역 중 연교차가 가장 심한 지역 중에 하나이다.
동두천 시민들은 지행역 인근 송내지구를 신시가지라고 부른다. 통상적으로 지행역에서 동두천꿈나무정보도서관 까지의 지행로 일대를 신시가지라고 부른다.[5]

4.1. 기후


극한극서의 기온이 나타나는 지역이다. 경기도 북쪽 지역이다 보니 겨울에는 매우 춥고 여름에는 또 매우 덥다. 여름에 더운 이유는 분지 지형으로 인해 산에 둘러싸여 있는 도시 구조로 열이 외부로 나가지 못하고 도시 내에 축적되기 때문에 덥다. 겨울에는 매우 추운데, 서울이 영하 15도 정도로 떨어질 때 동두천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진다. 뉴스에서 가장 높은 기온이나 낮은 기온을 기록한 지역으로 2~3위 권에 이름을 올릴 때가 많다.[6] 1월 평균기온은 -4도이고 8월 평균기온은 24.5도이며, 연평균기온 11.2도이다.
눈과 비도 많이 온다. 특히 여름 장마철에는 비로 인해 동두천을 남북으로 가르는 신천이 범람하여 지대가 낮은 보산동 일대가 수해 피해를 입기도 한다. 2011년 수도권 집중호우 때는 지행동, 송내동 등의 신시가지 일대도 물에 잠겼다.

4.2. 행정구역 통합 논의


[image]
'''■''' 동두천시 '''■''' 양주시 '''■''' 의정부시


5. 교통




6. 경제


동두천동에는 각종 산업단지들이 모여있고 하봉암동에는 마니커가 있다. 그러나 동두천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비스업으로, 특히 군인들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업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도시 전체의 규모로 보면 미미하긴 하지만 농업도 동두천시의 산업중 하나이다. 농업경제인연합회도 존재하고 동두천 통계에서도 수치상으로 잡힌다. ‘소요산자연다믄’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으며 대표 작물로는 채소와 양봉이 있다.#

7. 관광


주요 관광지로는 소요산, 자유수호평화박물관이 있고 매해 여름마다 소요산에서 동두천 락 페스티벌이 열린다.

8. 거주 환경


흔히 미군부대와 주변 상인, 기지촌을 생각하기 쉬우나 1960년대 이후 상봉암동, 하봉암동, 동두천동 지역과 인근 양주시 남면, 은현면, 회천읍 등지에 가죽, 염색, 원단공장 등의 중소규모의 제조업 중소기업이 생기면서 형성된 도시였다. 초창기에는 의정부에 집을 마련하고 동두천으로 출퇴근하였으나 점차 의정부의 지가가 오르면서 동두천으로 밀려나거나 동두천지역에 집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기지촌여성과 미군혼혈아, 고아 이미지가 있지만 다른지역에서 중소기업 공장단지로 흘러들어와 정착한 사례도 꽤 존재한다. 2006년 이후로 본격 개발된 지행 주변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낙후되어 있고, 현재 60대 이상의 고령자의 경우는 거의 타지역 출신 저학력, 저소득층의 비율이 다소 높다.
동두천의 순수 토박이로 불릴 성씨는 동두천동, 안흥동, 소요동 일대의 강릉김씨, 생연동의 남양홍씨, 안동권씨, 내행동의 어씨, 상패동과 은현면 하패리의 김녕김씨, 의령남씨 등 소수이고, 대부분 1960년대 이후 중소기업이 형성되면서 타지역에서 이주한 집안이다. 2017년 기준으로 2~3대 정도 되었으며, 토박이가 적어서 텃세는 거의 없는 편.
지행동지역은 바로뒤 신천 건너편 양주 축산업단지에서 넘어오는 엄청난 악취로 인해서 주민들이 지속적으로 이사를 가고 있다. 동두천동 지역은 옆편 공업단지에서 넘어오는 악취로 인해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동두천시의 행정구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두천시는 해결을 원하지만 양주시 입장에서는 어차피 주변지역은 다 농촌이라 자기네 지역주민들에게는 피해가 없으므로 굳이 나서서 해결할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이다. 과거 양주시가 양주군이었을 때는 동두천’’’시’’’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양주’’’군’’’의 은현면 하패리 지역을 동두천시 도시계획 범위에 포함시켜서 어떻게든 해보려 했으나 잘 안되었고, 그나마도 양주가 시로 승격하면서 불가능해졌고 방치되는 듯 하였으나 최근 양주-동두천 경계지역 축사악취 저감을 위한 협약을 통해 축사 폐업보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동두천 송내동~양주 하패리 간 연결교량 사업 추진을 통해 축사악취가 저감될 것이라고 본다. 신천의 동두천쪽 천변에 산책로를 조성하는 사업을 양주쪽 천변에도 조성하도록 연장하는 것이다.
동두천동에 있는 신창비바패밀리 아파트 단지의 부지는, 원래 논밭이 넓게 펼쳐진 곳이었다. 하지만 전철이 뚫리고 그 부지에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공원하나를 두고 바로 공단이 있는 상태가 되었다. 특히 그 공단에는 염색공장이 많아 공기질이 나쁜 편이었으나 백연저감시설 설치를 통해 공기질을 개선 중이다.

9. 교육





동두천시에 소재한 중학교는 모두 6곳이며, 생연중학교, 송내중앙중학교만 공립이며, 나머지는 다 사립이다. 사립 중학교로는 신흥중학교, 보영여자중학교, 동두천중학교, 동두천여자중학교가 있다.
지행동에는 전국에서 2번째로 북쪽에 있는[7] 동두천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공립이고 전원 기숙사제로 운영되는 고등학교이다. 그 외에 고등학교로는 동두천고등학교, 동두천중앙고등학교, 한국문화영상고등학교[8], 보영여자고등학교, 신흥고등학교가 있다. 이 중 외고, 중앙고만 공립이며 나머지는 다 사립이다. 보통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은 공립 중고등학교가 사립 중고등학교보다 많은 편인데, 동두천은 사립 중고등학교가 공립 중고등학교보다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9]
대학교로는 신한대학교 제2캠퍼스(구 한북대학교)가 있다. 하지만 워낙 규모가 작은지라 동두천시의 고등학생들은 대학을 가려면 대부분 타지로 나갈 수밖에 없는 실정. 마침 서울까지 바로 가는 수도권 전철 1호선이 있기도 하니. 그나마 동양대학교 북서울캠퍼스가 동두천역인근 창말고개 주한미군 캠프 캐슬 구 주둔지에 개교하였다.
현재 동두천시에는 보육원이 총 2곳이 있다. 한 곳은 동두천 동안 지역아동센터, 애신아동복지센터이다.
좀 더 자세히 서술하면 위 2곳 보육원들은 영유아~고등학생까지 수용하고 규모가 각각 중형 정도 되는 보육원이며, 요즘 발생하는 보육원 비리(담당 사회복지사의 폭력)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역사가 깊은 보육원이고 나라와 시에서 직간접적인 관리를 받는 보육원이라는 점도 크다. 때문에 지역 대학 사회복지학과의 사회복지사 실습이 종종 있다. 그래도 아동 수가 많다 보니[10], 같은 학교에 같은 반 더 나아가 바로 옆에 친구가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친구일 수도 있으니, 그런 친구가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해해 주자. 다 사정이 있어서 자의가 아닌 부모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서 생활하는 거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고아 문서나 보육원 문서 참조.
이곳 보육원 아동들은 동두천에 있는 학교에 진학하고, 드물게 의정부덕정까지 재학 중인 경우도 있다.

10. 문화


시내 극장은 문화극장(1, 2관), 동광극장(단관)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80, 90년대 시절 근대식 극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문화극장은 응답하라 1988에서 삼양극장으로 촬영된 바 있다. 관람료는 7,000원으로 문화극장은 주말에 한해서 조조할인(일반 영화는 4,000원 디지털 3D는 5,000원)이 있으며 2010년 들어 1관에 디지털 3D 영사시설을 갖춰서 다른 극장에 비해 저렴한 8,000원에 3D 영화를 볼 수 있다. 3D 영화를 보러 이 극장에 처음 방문한다면 3D 안경을 구입해야 하는데 2,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그 대신 보고 나서 회수해가지 않고 영구소유로 가져갈 수 있으며 언제든지 다음에 3D 영화를 보러올때 안경을 각자 지참해와서 보면 된다. 극장측 사정으로 안경이 바뀌었을땐 즉석에서 교환도 해준다. 일부 좌석은 평범한 좌석이 아니라 대형 소파를 두었다. 스크린도 단관극장 치고는 상당히 대형이다. 이 정도면 거의 개념 + 대인배 수준으로 운영 중이다. 덕분에 이름이 알려지고 나서 와칸다 영화관(...) 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인근 연천군 전곡읍, 포천시 등에 있던 극장들이 사라지면서 2000년대 초 두 극장으로 몰리는 손님이 급증했으나, 2006년 전철공사 이후로 도로 빼앗긴 편. [11]
한때 동두천 구시가지인 중앙시장과 구 버스터미널 사이에 동두천 첫 멀티플렉스인 롯데시네마가 들어온다고 해서 두 극장 모두 문닫을 뻔 했지만 2010년 착공 얼마후 시공사 부도로 없던 일이 됐다. 현재 공사장은 유치권 행사중. 그래서 일단 한숨 돌린듯...했으나 2016년 생연동 364-1에 CGV 입점이 확정되고 건축이 진행 중이라 또 다시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수주가 또 먹튀를 하는 바람에 CGV입점이 연기되었다.(...) '''그러나''' 23일 뉴스에 따르면 입점 확정소식이나 2020년 상반기 기준으론 아직 안들어왔고 공사가 진행중이다. 어쨌든 CGV가 입점하면 동광극장도 문화극장도 모두 풍전등화의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 뻔하다.[12]
주요 문화 행사로는 동두천 락 페스티벌이 있는데, 시행 초기에는 규모가 작았으나 점차 국내를 대표하는 락 페스티벌로 성장하였다. 미군부대의 주둔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락앤롤을 가장 먼저 수용한 지역이기도 하다. 사랑과 평화, 신중현 같은 인물들도 동두천 미군부대 공연을 통해 초창기 커리어를 쌓았다. 제법 이름있는 밴드들(파파 로치 등)이 한국까지 와서 내한공연은 안하고 미군 부대 내 위문공연만 하고 가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동두천 락 페스티벌이 태동할 수 있었기도 하다.

11. 정치


'''21대 총선 동두천시 개표 결과'''
'''국회의원 선거 (동두천시·연천군)'''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서동욱
'''김성원'''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2,325
(47.26%)'''
'''24,305
(51.45%)'''

'''- 1,980
(▼4.19)'''
'''47,856
(59.31%)'''
'''생연1동'''
44.67%
54.29%
▼9.62
56.07
'''생연2동'''
45.64%
53.24%
▼7.59
'''59.52'''
'''중앙동'''
39.76%
'''59.01%'''
▼19.25
57.20
'''보산동'''
41.18%
56.95%
▼15.77
56.71
'''불현동'''
46.26%
52.40%
▼6.14
55.03
'''송내동'''
'''52.09%'''
46.96%
'''△5.12'''
59.28
'''소요동'''
42.03%
56.45%
▼14.43
58.50
'''상패동'''
42.97%
55.58%
▼12.61
58.09
'''후보'''
'''서동욱'''
김성원
격차
투표율
'''거소·선상투표'''
49.75%
45.27%
△4.48

'''관외사전투표'''
57.93%
40.11%
△17.83

'''재외투표'''
80.55%
16.66%
△63.89

'''비례대표 선거'''
'''정당'''





격차
투표율
'''득표수
(득표율)'''
'''16,575
(36.86%)'''

'''14,852
(33.03%)'''
'''3,540
(7.87%)'''
'''2,451
(5.45%)'''
'''2,001
(4.45%)'''
'''+ 1,723
(△3.83)'''
'''47,863
(59.28%)'''
'''생연1동'''
38.92%
32.30%
6.97%
4.98%
4.30%
△6.62
56.07
'''생연2동'''
37.66%
33.50%
7.08%
5.49%
4.10%
△4.16
'''59.52'''
'''중앙동'''
'''44.63%'''
28.89%
6.40%
4.20%
3.64%
'''△15.74'''
57.20
'''보산동'''
41.37%
29.11%
6.67%
5.83%
4.15%
△12.26
56.71
'''불현동'''
36.90%
32.59%
7.48%
5.50%
4.46%
△4.31
55.04
'''송내동'''
33.00%
'''35.73%'''
9.46%
5.81%
4.89%
▼2.73
59.30
'''소요동'''
42.09%
30.74%
6.80%
4.35%
3.64%
△11.35
58.48
'''상패동'''
42.11%
30.81%
6.76%
4.69%
3.42%
△11.31
58.09
'''정당'''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
정의당
국민의당
열린민주당
격차

'''거소·선상투표'''
31.93%
27.74%
4.18%
6.28%
5.75%
△4.19

'''관외사전투표'''
28.11%
35.20%
10.13%
7.18%
6.02%
▼7.09

'''재외투표'''
14.28%
48.57%
2.85%
5.71%
14.28%
▼34.29

'''7회 지선 동두천시 개표 결과'''
'''경기도지사 선거'''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이재명'''
남경필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1,857
(51.37%)'''

'''17,583
(41.33%)'''
'''+ 4,274
(△10.05)'''
'''54.20%'''
[ 펼치기 · 접기 ]
'''생연1동'''
46.28%
46.43%
▼0.14
50.09
'''생연2동'''
49.24%
43.57%
△5.68
'''54.72'''
'''중앙동'''
44.65%
'''47.92%'''
'''▼3.27'''
49.56
'''보산동'''[28]
46.69%
45.85%
△0.84
47.98
'''불현동'''[29]
50.81%
42.19%
△8.62
49.49
'''송내동'''[30]
'''55.51%'''
37.61%
'''△17.90'''
53.71
'''소요동'''[31]
45.40%
47.69%
▼2.28
51.02
'''상패동'''[32]
45.51%
45.38%
△0.13
51.29
'''후보'''
'''이재명'''
남경필
격차

'''거소·선상투표'''
50.00%
38.98%
△11.02

'''관외사전투표'''
62.57%
29.07%
△33.51

'''후보'''
'''이재명'''
남경필
격차
투표율

48.59%
44.47%
△4.12
54.57
'''동두천시장 선거'''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최용덕'''
박형덕
김홍규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21,848
(51.08%)'''

'''17,153
(40.10%)'''
'''3,770
(8.81%)'''
'''+ 4,695
(△10.98)'''
'''54.19%'''

'''19대 대선 동두천시 개표 결과'''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득표수
(득표율)'''
'''19,444
(35.22%)'''

'''15,733
(28.50%)'''
'''12,808
(23.20%)'''
'''3,201
(5.79%)'''
'''3,662
(6.63%)'''
'''+ 3,711
(△6.72)'''
'''69.07%'''
[ 펼치기 · 접기 ]
'''정당'''





격차
투표율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1위/2위)
(선거인/표수)
'''생연1동'''
32.70%
33.19%
21.64%
5.39%
6.45%
▼0.49
62.81
'''생연2동'''
32.78%
30.80%
24.48%
5.13%
6.19%
△1.98
69.13
'''중앙동'''
29.36%
'''37.40%'''
22.80%
4.50%
5.09%
▼8.04
62.37
'''보산동'''[33]
29.52%
36.62%
23.18%
5.16%
5.05%
▼7.10
59.73
'''불현동'''[34]
34.24%
29.75%
23.29%
5.51%
6.68%
△4.49
65.54
'''송내동'''[35]
'''39.89%'''
22.93%
23.03%
'''6.47%'''
'''7.19%'''
'''△16.96'''
'''71.96'''
'''소요동'''[36]
29.51%
35.59%
23.48%
4.84%
5.45%
▼6.08
65.71
'''상패동'''[37]
29.36%
33.99%
'''25.33%'''
5.33%
5.53%
▼4.63
64.98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거소·선상투표'''
26.18%
28.80%
'''33.51%'''
3.66%
5.24%
▼7.33

'''관외사전투표'''
44.39%
16.20%
21.67%
8.29%
8.77%
△22.72

'''재외투표'''
'''53.09%'''
11.52%
16.05%
4.94%
13.17%
△37.04

'''후보'''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
격차
투표율

32.07%
31.77%
23.64%
5.83%
6.02%
△0.30
68.23

'''경기도 동두천시 국회의원'''
동두천시·양주군
동두천시·양주시
동두천시·연천군
13대
14대
15대
16대
17대
18대
19대
20대
21대
이덕호/초선
민주정의당
임사빈/초선[13]
민주자유당
목요상/3선
신한국당
목요상/4선
한나라당
정성호/초선
열린우리당
김성수/초선
한나라당
정성호/재선
민주통합당
김성원/초선
새누리당
김성원/재선
미래통합당
-[14]
'''경기도 동두천시장'''
1기(95~98)
2기(98~02)
3기(02~06)
4기(06~10)
5기(10~14)
6기(14~18)
7기(18~22)
방제환/초선
민주자유당
방제환/재선
한나라당
최용수/초선
한나라당
최용수/재선[15]
한나라당
오세창/재선
무소속
오세창/3선
새정치민주연합
최용덕/초선
더불어민주당
오세창/초선[16]
무소속
군사도시답게 전체적으로는 보수 성향이 강하기는 한데 표심을 종잡기 힘든 측면이 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같이 붙은 지역의 표심을 따라가는(...) 경향도 보인다.[17]
소선거구제 시행 이후로 국회의원선거구는 양주시(양주군)와 지역구가 묶여있었으나 20대 총선부터 양주시가 단독 선거구가 되고 동두천시는 연천군과 합쳐졌다. 2000년까지는 새누리당 계열이 우세였으나, 2004년 열린우리당의 정성호 후보가 당선되면서 민심이 변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이 때도 동두천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5%P차로 앞섰기에 여전히 판세는 다르지 않았지만, 2008년 선거에서는 오히려 박빙의 표차로 통합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앞서면서 동두천시의 보수 성향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게 했다. 이 때 양주시에서 지난 선거 때와 반대로 한나라당 김성수 후보가 동두천시의 열세를 만회하면서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이 탈환하긴 했지만. 그리고 2012년에는 민주통합당 정성호 전 의원이 동두천시에서 무려 '''11% 차이로 이기고''' 양주시에서도 이기면서 8년만에 의석을 탈환한다. 전통적인 보수강세지역에서 접전지역으로 변모되는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양주시에서 분리 독립되에 연천군과 지역구가 묶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59.2%를 득표한 박근혜 후보가 40.4%를 득표한 문재인 후보에게 앞섰다.
시장 역시 민선 1~3대 내내 새누리당 계열이 절대 우세였는데 1995년1998년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한나라당 방제환 시장이 당선되었고, 2002년2006년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최용수 시장이 당선되었다.
그런데 최용수 시장이 비리 문제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으면서 2007년 재보궐선거가 치러졌고, 2006년 선거 때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출마했던 오세창 후보[18]무소속으로 당선되면서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다. 비리 문제로 얼룩졌던 전임 시장들에 비해 시정을 큰 탈 없이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2010년에도 무소속 간판으로 재선에 성공한다.[19] 그리고 2014년에는 마침내 새정치민주연합에 복당하여 3선 고지를 밟게 되었다.
지역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간의 알력 다툼 때문에 이따금씩 홍역을 앓는 타 지역과 다르게 이 곳은 민주당계 정성호 의원과 오세창 시장의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 실제로 2007년 재보선 때는 정 의원이 오 후보에게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라는 권유를 했고, 2010년 선거 때는 지역위원장 자격으로 공천권을 갖고 있던 정 전 의원이 무소속 오시장을 배려해 민주당의 무공천을 주도했기 때문. 2014년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공천 논란이 있을 때는 정 의원이 자당 출신 무소속 후보의 출마를 막기가 아무래도 어렵기 때문에 오 시장의 당선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결국 공천 방침이 확정되고 오 시장이 입당한 후 정 의원이 공천을 시켜줬다. 여하간 오 시장과 정 의원간의 사이가 좋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며 동두천시의 여러 정책에 있어 플러스 요인이 될 듯. 다만 이런 밀월 관계도 지역구가 나뉘어진 20대 총선부턴 보기 힘들게 되었다. 정성호 의원은 단독선거구가 된 양주시에 출마해 당선되었으며, 20대 총선부터 합쳐진 동두천시-연천군 선거구는 새누리당 김성원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유진현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를 6.72%차로 이겨 그동안 보수정당 우세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해볼만한 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이전보다 높아진 상황이 되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문재인은 3개 동, 홍준표는 5개 동에서 1위를 차지했다. 숫자로만 보면 홍준표가 우위인 것을 보면 동두천은 여전히 수도권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보수세가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동두천에서 가장 발전한 곳은 지행역을 낀 송내지구 인근인데, 이곳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약 40%의 득표를 하면서 승리를 견인했다. 동 단위에서는 5개동에서 홍준표 후보가 1위를 가져가 3개동에서 1위를 한 문재인 후보를 앞섰으며, 투표율이 69%에 그쳐 전국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기존에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찍어왔던 보수층이 대거 투표를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국 평균보다 무려 8%나 낮은 투표율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간의 차이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는 것은,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민주당 입장에선 결코 쉽지 않은 구도가 될 것임을 의미한다. 문재인 후보와 홍준표 후보, 안철수 후보가 각각 앞선 지역은 다음과 같다.
  • 동두천시 : 문재인 19,444(35.22%) > 홍준표 15,733(28.50%) > 안철수 12,808(23.20%)
    • 1위 - 문재인 : 송내동(39.9%), 불현동(34.2%), 생연2동(32.8%), 관외사전투표(44.4%), 재외투표(53.1%) (3개동 + 관외사전 + 재외투표) / 홍준표 : 중앙동(37.4%), 보산동(36.6%), 소요동(35.6%), 상패동(34.0%), 생연1동(33.2%) (5개동) / 안철수 : 거소/선상투표(33.5%)
    • 2위 - 문재인 : 생연1동, 중앙동, 보산동, 소요동, 상패동, 거소/선상투표 (5개동 + 거소/선상) / 홍준표 : 생연2동, 불현동 (2개동) / 안철수 : 송내동, 관외사전투표, 재외투표 (1개동 + 관외사전 + 재외투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우위를 점했다. 이 지방선거는 동두천시에서 여러 모로 의미있는 선거였는데, 3선에 성공한 오세창 시장의 12년 지역 운영을 마치고 새로운 시장을 선출하는 선거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최용덕 시장도 오세창 전 시장과 같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었으며, 도의원도 더불어민주당이 차지했다. 시의원은 더불어민주당 3석, 자유한국당 2석, 무소속 1석[20]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전통적으로 접경지역인 동두천, 연천, 포천 지역은 보수 성향이 강하고 보수의 텃밭으로 불렸다. 그러나 동두천시는 이 지방선거로 더 이상 보수의 텃밭은 아니며, 정치인의 행보에 따라 정치 지형이 변할 수 있다는 동두천 시민의 민심을 보여준 유의미한 선거였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역 국회의원인 미래통합당 김성원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서동욱 후보를 8% 차이로 꺾긴 했으나 동두천 한정으로는 51:47로 접전 양상을 보였고 같은 선거구로 묶인 연천군에서 김성원이 크게 승리하면서 당선을 확정지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약우세를 보인 송내동을 제외한 모든 동에서 김성원이 이겼으나 중앙동과 보산동을 제외하면 대부분 10% 안팎의 접전이였다.

11.1. 관련 문서



12. 군사


8.15 광복을 기점으로 60여년간 주한미군의 본거지가 된 도시[21]로 '''시 총 면적중 절반에 육박하는 48%가 군사보안지역이었다.'''
[image]
절반 가량이 군사보안지역이니만큼 그 외 지역의 개발 정도가 낮아지고 시의 경제 또한 미군에 의존하는, 즉 외국인 의존도가 큰 지역이었다. 특히 캠프 케이시 정문 코앞인 보산역 주변은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미군 및 필리핀인[22] 관련 편의시설이 엄청나게 많으며,[23] 훈련기간 중이라면 시도 때도 없이 A-10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툭하면 도로에서 K1 전차 편대가 질주하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다. 종종 들리는 밀덕들에겐 눈이 즐거운 지역이 될 수도 있다.[24]
주한미군에서 군가족에게 영외거주를 적극 권하면서 주한미군들의 가족들이 동두천 아파트단지에 많이 살게 되었는데, 미국이라는 동네 자체가 아파트보단 단독주택 문화에다가 파티문화 & 애완견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에 한국의 아파트 주민들과의 충돌이 자주 벌어지자 보다 못한 동두천시가 한미 아파트 주민들간의 우의를 다지는 잔치까지 열었다 카더라.[25]
하지만 2006년 이후 미군 부대들이 단계적으로 평택으로 이전함에 따라 반환된 기지를 중심으로 택지개발이 이루어지며 1990년대까지의 안습한 역사를 뒤로 하고 점차 인구와 재정자립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위도상으로도 꽤나 북쪽[26]이라 제28보병사단의 본부와 제8기동사단의 일부 부대가 동두천에 있다. 옆의 양주시 은현면이나 남면 지역은 제25보병사단 위수지역.

13. 하위 행정구역


[image]
시 부지의 절반 이상이 미군 부대 주둔지였다는 특성 상 경기도 내에서는 상당히 찾아보기 힘든 주거지역 분산형태가 나타나는데, 미군 부대 주둔 이전 시의 중심지는 위 지도의 소요동, 상패동, 보산동 세 동이 겹쳐지는, 동두천천(개울)과 신천(개천)의 합류점이었지만(현 동두천동), 미군 부대가 현 보산동과 동두천동에 걸쳐서 도시 중앙에 자리잡게 됨으로써 도시 남쪽과 북쪽과 동쪽이 끊어지고 이지역에 거주하던 대부분의 주민은 그 당시 사람이 거의 거주하지 않던 현 중앙동과 상패동 및 외곽으로 이주하면서 동두천동은 규모가 작아져서 현재의 모습으로 축소됐고, 주거지역이 밀집형태가 아닌 구석구석 점처럼 분산해있는 매우 독특한 형식으로 변하였다.[27] 외부지역 사람들이 볼때 동두천시 동두천동이라는 시 이름이 두 번 들어가는 행정구역을 매우 낯설어하는데 이것은 동두천이라는 지명이 원래 시의 중심 거주지역이었던 수도권 전철 1호선 동두천역이 있는 동두천동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시 중심지였던 동두천동은 지금은 공업단지가 위치하고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은 적게 변했는데, 지금 동두천의 제일 번화가인 지행동 지역은 이전에는 논밭이랑 하우스밖에 없던 농지였던걸 생각하면 상전벽해가 따로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 전쟁 이후 미군 부대 주둔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지역이다.

13.1. '''생연1동, 생연2동, 중앙동'''


관할 법정동은 생연동(일부)이며, 행정동 불현동에서도 생연동(일부)을 관할한다. 생연1동에는 동두천시청, 동두천중/고교, 동두천여중, 문화영상고가 있고, 생연2동에는 동두천 신천초등학교 사동초교, 세아프라자, 큰시장, 양키시장이, 중앙동에는 구 터미널, 도심광장, 중앙시장, 동광로가 있다.

13.2. '''불현동'''


관할 법정동은 생연동(일부), 광암동, 탑동동, 지행동(일부)이다. 인구는 27,571명.[A]
대략 지행동의 동쪽, 생연동의 남동쪽을 포함하고 있으며, 경원선 기준으로 동쪽에 해당한다. 동두천종합운동장, 동두천외고 등이 있으며 포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13.3. '''송내동'''


관할 법정동은 송내동, 지행동(일부)이다. 지행동 서쪽을 포함하고 있으며, 신시가지를 형성하면서 빠르게 개발되고 있다. 동두천터미널이 있다.

13.4. 보산동


관할 법정동은 보산동, 걸산동이다.

13.5. '''소요동'''


관할 법정동은 동두천동, 안흥동, 상봉암동, 하봉암동이다. 인구는 8,798명.[A]
미군 주둔 전까지만 해도 동두천의 중심지였으나 지금은.. 동양대학교 동두천캠퍼스, 동두천일반산업단지, 소요산이 있다.

13.6. '''상패동'''


동두천시의 동 중 유일하게 법정동과 행정동이 일치한다. 신한대학교 동두천캠퍼스, 제28보병사단 사령부가 있다.

14. 여담


시인 김명인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시집 중 하나가 동두천(1979, 문학과지성사)이다.
문명 5 한국 DLC에 등장하는 도시이다. 아무래도 제작진이 미국인들이다 보니 주한미군들을 저격해서 동두천을 넣은 듯.
이곳에서 소형 라디오로 라디오를 들으려면 경기북부지역이 거의 그렇듯이 수신상태가 좋지 못하다. 그나마 2010년에 생연동에 중계소가 설치된 SBS 파워FM을 100.3MHz로 들으면 깨끗하게 잘들려서 다행이지 그 외에는 국방FM, KBS 제1라디오가 잘들리며 나머지 관악산에서 송출되는 전파는 수신상태가 영 좋지 않다 그래도 바깥에서 수신할때 음성은 잡음사이에서 들리지만, 실내에서 들으면 답이 없는 수준. 그래서 가게에서 들리는 라디오방송 중 십중팔구는 SBS 파워FM이 들린다.

15. 출신 인물



[A] A B C 2021년 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1] 연천에서 동두천으로 오다가 우측에 보이는 하천은 동두천이 아니고 신천이다. 동두천은 평화로로 올 경우 동두천역을 지나 미2사단 캠프 케이시 후문 버스정류장을 지나면 바로 있는, 왼쪽으로 골프장(미군 골프장) 같은 곳이 보이는 교량이 동두천을 지나는 것이고, 강변로로 올 경우 안흥교와 산단을 지나 마을을 통과하면 다소 긴 교량이 있는데 교량에 진입하자마자 동두천을 통과한 후 신천 하안을 교량으로 지나 상패교로 간다.[2] 경상남도 사천과는 이름만 비슷하고 상관은 없다. 사천현은 동두천 중 탑동, 광암동 일부를 제외한 전 지역, 구 이담면과, 묵은면과 현내면 등 양주 은현면 일대[3] 동두천이란 지명은 세조 12년(1466) 양주목 승격 후 가정자리(柯亭字痢)를 하천이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있어 동두천(東頭川)이라 고쳐서 부르다가 표기가 동두천(東豆川)으로 변한 것이다.[4] ‘문화극장’, ‘동광극장’이 대표적[5] 반대로 큰시장부터 문화극장 쪽은 구시가지로 부른다[6] 여름에는 대구광역시, 홍천군이, 겨울에는 철원이나 대관령이나 연천 등이 1,2위를 차지한다.[7] 강원도 양구군강원외국어고등학교보다는 위도가 약간 낮다.[8] 舊 동두천여자상업고등학교(약칭 동두천여상)(1973~2000), 동두천정보산업고등학교(약칭 정산고)(2000~2009)[9] 이러한 경우는 손가락에 꼽힌다. 사립 중학교가 공립 중학교보다 많은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상 동두천이 유일한 편이며, 사립 고등학교가 공립 고등학교보다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케이스는 경기도 평택시, 충청남도 예산군도 이에 해당된다.[10] 약 40~50여명, 중고등학생은 대략 20명[11] 2010년대 중반 들어 포천 송우리와 연천 공설운동장 근처에 영화관, 공연장 등이 생기기는 했다.[12] 2021년 1월 기준 건물에 CGV 간판만 덩그러니 달려있고 건물 내부에는 영화관 이외에도 아무것도 입점하지 않은 텅 빈 상태이다.[13] 95.6.10 의원직 사퇴(경기도지사선거 출마)[14] 잔여 임기 1년 미만으로 재보궐선거 미실시[15] 07.3.5 시장직 사퇴(뇌물수수로 수감)[16] 07.4.25 재보궐선거[17] 양주와 한 선거구였을 때는 민주당 우위다가, 연천과 한 선거구가 되자 보수정당 우위가 되었다.[18] 그런데 사실 오세창 현 시장은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국민신당 후보로 출마했었다. 결과는 3위였지만.[19] 이 때도 민주당은 동두천시장 공천을 하지 않았다.[20] 더불어민주당 성향이다.[21] 이후 주한미군의 모체격이던 미 8군이 평택시로 옮기며 사실상 그 쪽으로 대부분이 옮겨졌다.[22] 서로 주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인지 한국에 사는 인물들은 한국, 중국, 러시아인들이 많지만 이 시는 미군에 의존하게 된 영향 탓에 같은 영어권 국가이면서 한국에 비교적 많이 사는 필리핀인들이 미국인과 비교적 소통이 원활하기 때문.[23] 카투사들을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슈퍼마켓도 있고 아예 '''내국인''' 출입금지인 클럽도 수두룩하며 미군 전투식량도 군사지역 밖의 ''''양키시장''''이라고 불리는 애신시장에서 구할 수 있지만 자칫 잘못 헤매다간 ''''홍등가''''에 들어갈 수도 있는만큼 혼잡한 곳이니 조심해야 한다.[24] 이런 특성 때문에 2002년경 반미열풍이 불 때는 인기 사극이었던 허준의 주인공인 허준(전광렬)이 난데없이 동두천에서 김갑환 기합소리를 내면서(…) 저공비행하는 치누크에 올라타 미군을 개발살내는 '동두천습격사건'이라는 플래시가 돌던 적도 있었다.(...) [25] 미국인 가정에선 개를 키워도 40kg 이상 되는 대형견을 주로 키우는데다 미국자체가 파티문화가 발달해서 한번 모이면 최소 30명은 기본이다. 그게 아파트와 맞지 않는 게 많아서 소음도 심하고 아이들은 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미군가족이 지나가면 개 때문에 겁을 먹고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26] '''백령도, 개성'''과 동위도이다.[27] 동두천 사람도 친구가 중앙동/지행동/송내동 말고 다른곳 산다하면 어디인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