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남·강연정 부부간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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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7년 7월 대한민국으로 남파된 북한 35호실 소속 간첩이자 실제 부부 사이였던 최정남, 강연정[1] 이 서툴게 간첩일을 하다가 3달만에 발각된 사건이다. 실제 부부가 간첩으로 온 것이 특이하게 비춰질 수도 있으나,[2] 1980년대부터는 신분은폐가 쉽다는 장점을 들어 부부 모두 간첩으로 활동시키는 경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1997년 당시 안기부가 파악했던 북한 부부 공작조는 10여개 정도였다고 한다.
2. 간첩단의 구성
최정남은 1962년 5월 평안북도 의주군에서 태어나, 1984년 4월 사리원대 4학년 재학 중 간첩으로 선발되어 1989년 7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강연정은 1969년 10월 평양에서 태어나, 1986년 9월 고등중학교 졸업 직후 간첩으로 선발되어 1994년 8월 노동당에 입당했다. 아버지가 인민군 고위간부인 점과 외모를 인정받아 차출되었다고 한다.
1990년 11월 결혼해 아들 남혁('''남'''조선 '''혁'''명이라는 뜻의 이름)을 1992년 1월에 낳았다. 아들은 남파되지 않고 부부가 체포될 당시 평양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들은 평양 정치학교와 순안초대소에서 10년 가까이 간첩 훈련을 받았다.
- 정치사상학습(정훈교육), 체력 단련, 야전 생존 훈련, 통신 훈련
- 남한 정치 경제 상황
- 남한 표준어 학습
- 남한 교과서, 주간지를 이용한 시사교육
- 남한 TV, 드라마, 뉴스, 오락프로 등 시청각 교육
이들은 1994년 11월부터 베이징, 선양, 연길 등 3차례의 중국 여행을 통해 중국어 실습, 해외 환경 적응 훈련을 받기도 했다.
3. 간첩 활동의 내용
이들이 지시받은 업무는 다음과 같았다.
- 부 업무
1997년 7월 30일 오후 7시쯤 선박으로 남포항을 출발해 해군 작전 지역 밖인 공해상으로 남하, 제주도를 돌아 일본 대마도 부근 공해상에서 거제도로 접근했다. 남포항을 미국 첩보위성이 감시 중이었으나 당시 기술력으로는 공해상으로 나온 뒤 일반 어선과 섞이면 추적이 불가능했다. 무장 안내원 20명, 호송 안내원 3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선박은 8월 2일 밤 9시경 거제도 앞 공해상에서 5t 상당의 반잠수정을 내렸다. 당시 기술력으로는 스텔스 도료를 바른 이 반잠수정을 찾아낼 수 없었다. 거제도 해안에도 레이더기지가 있으나 12마일 밖에서부터는 완전잠수로 항해했기 때문에 레이더 기지에서 포착하지 못했다. 11시경 거제도 해안 500m 지점에서 두 사람은 수중침투장비로 갈아입은 채 반잠수정을 떠났고, 11시 30분경 경남 거제군 갈곶리 해안에 상륙했다.
당시 한국 방첩기관은 해상 침투에 대해서는 마음놓고 있었다. 같은 해 2월 이한영 암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합동수사본부는 암살자들의 입국 경로에 대해 적어도 육상, 해상은 아닐 것으로 보고 공항이나 항만 등 정식 경로로 당당하게 침투했을 것이라고 한참 착각하고 있었다.[3] 위에서 이 모양이니 해상 침투가 굉장히 용이했다.
침투 후 이들은 20일간 경주시, 부산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드보크를 설치하고 현지 적응 훈련을 했으며 8월 23일에는 서울 구로동에 숙소를 마련했다.
이후 고정간첩 심정웅을 6번 만났다. 그는 서울지하철공사에 근무하던 고정간첩으로, 중학생 때부터 북한에 전향한 뒤 유사시 '''서울의 철도망과 지하철망을 파괴'''할 목적으로 40년 가까이 철도업무에 종사하며 잠복해 있던 자였다. 그에게 암호 해독법과 신형 무전기 사용 방법을 교육시켰으며, 조국 통일상을 수상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의 편지를 받아내고 유사시 지하철을 마비시킬 방법을 받아냈다. 그것은 바로 서울지하철의 지하구간에 고이는 물을 퍼내어 개천가 및 한강 등지로 방류조치하는 집수정 장치(물펌프의 일종)에 폭탄테러를 저지르는 방법이었다.[4]
그런데 1997년 10월 21일 정OO씨(35)가 "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으며 북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며 간첩신고를 했다. 정씨는 재야단체인 '울산연합'의 간부로, 이들 2명을 안기부에서 보낸 함정으로 착각하고 자진신고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버린 것이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이런 프락치를 보낸 적이 없었기에(...) 북한 간첩의 소행으로 판단하고, 1997년 10월 27일 오전 11시 30분 울산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서 정씨를 재차 접촉하려던 남녀 2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당시 커피숍에 있던 30여명의 사람들은 모두 안기부 요원들로, 자리 잡고 있다가 일제히 권총을 빼들고 3명을 겨냥했다.
요원들이 덮치자 여 간첩은 "여보, 여보…"란 외마디 소리를 냈고, 남 간첩은 별다른 반항 없이 수갑을 받았다. 최정남과 강연정은 한국 현실에 어두워서인지, 정모 씨가 대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했는데도 이를 모르고 다시 약속장소에 무방비로 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체포 후 이들의 증언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민주민족혁명당 사건이다.
여간첩 강연정은 수사 도중 독약 캡슐을 물고 자살했고, 최정남은 전향 이후 국방부 정보본부에서 북한 정보 분석업무를 맡고 있다는 NHK의 기사가 2006년도에 나온바 있다.# 김현희가 최정남을 전향시키기 위해서 만난 적이 있다는 증언을 한 적도 있다.
3.1. 실수
이들이 간첩으로 3달 가까이 활보했지만 특별한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후술되어있듯 이들은 남한 관련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모양인지 어설픈 실수를 많이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실수 몇 가지를 보자면...
- 버스 잔돈 꺼내는 법을 모름: 둘은 8월 3일 경남 거제도에서 마금산 온천행 버스에 올라 1천원을 내고 요금 960원을 제외한 잔돈 40원을 받으려 한동안 서 있었다는 것. 그러나 다른 승객들이 운전사 옆의 잔돈 통에서 돈을 꺼내 가는 것을 보고 순간 당황했고, 운전사가 계속 주시하는 것 같아 불안에 떨었다고 진술했다.
- 생리대와 아기 기저귀를 구분하지 못함: 강연정은 마금산 온천 앞 슈퍼에서 아기 기저귀를 생리대로 잘못 알고 구입하는 등, 2차례나 아기 기저귀를 샀다고 한다.
- 메밀국수 먹는 법을 모름: 10월 22일 즈음 여의도 빌딩 지하 식당에서 판으로 된 메밀국수를 주문하고는 면을 간장 소스에 적셔 먹는 방법을 몰라 간장 소스를 메밀국수 위에 붓는 바람에 소스가 국수판 밑으로 흘러 바지를 다 적시기도 했다.[5]
- 대한민국 말투 사용 미숙: 대한민국 출신 교관에게 교육받기는 했으나, 대한민국 말투에 자신이 없어 식당에 가서도 대화를 하지 않고 서로 멀뚱멀뚱 쳐다본 적이 많았다. 97년 8월 중순에는 최정남이 식당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다가 "젊은 사람이 말투가 이상하다"는 면박을 받았고, 강연정이 급히 남편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질책했다.
4. 무기 및 장비
이들은 전국 각지에 드보크를 설치해 간첩 장비를 은닉했다. 당시 안기부가 밝혀낸 6개의 드보크에서 체코제 권총 3정, 실탄 170발, 독총, 독약 앰풀 등 인명 살상 장비 (10종 205점), 무전기, 난수표 등 기타 간첩장비 (총 54종 284점)을 발굴했다. 장소는 경주시 민속공예촌 야산, 서울시 관악산,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장군봉 체육공원 등이었다.
- 파카 만년필 독총: 1995년 개발된 당시 최신 장비. 외견상으로는 파카 만년필처럼 생겼지만, 내부에는 탄환, 화약, 뇌관이 숨겨져 있다. 탄환은 1.8cm 길이로 브롬화 네오스티그민 독극물이 함유되어 있다. 만년필 뚜껑을 2회 돌려 밀면 총알이 발사된다. 실험 결과 3m 거리에서 7mm 나무판자를 관통했다.
- 볼펜 독침: 볼펜 끝을 몸에 대고 누르면 독침이 튀어나와 피해자가 즉사한다.
- 자살용 독약 앰풀: 액화 청산가리가 들어있어 깨물면 조금만 들이마셔도 사망한다. 립스틱, 만년필 뚜껑 등에 숨겼다. 다른 곳에 숨긴 것은 모두 안기부에서 찾아냈으나, 여간첩이 자신의 항문에 숨긴 것은 미리 찾아내지 못했다. 접선 전 독약 앰풀을 통째로 먹은 뒤, 잡히고 나서 볼일 보러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대변에 섞여 나온 앰풀을 깨물어 먹어서 자살한 것이다. 감시 중이던 안기부 요원이 황급히 앰풀을 빼앗았지만, 전술 한 대로 조금만 들이마셔도 사망하기 때문에 죽었다.[6] 이 사건 이후 국가정보원에서는 내시경을 전공한 내과 의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 체코슬로바키아 제 CZ-83 권총: 언론에는 MOD83이라고 보도되었지만(슬라이드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총기 모델 작명 방식에 따르면 CZ-83이 맞다. 32 ACP 탄 14발을 장전할 수 있다. 1995년까지는 북한 간첩들은 벨기에제 25구경 베이비 브라우닝 권총이나 브라우닝 하이파워를 썼는데 이 총기들이 노후화 되어 CZ-83을 도입한 듯 하다. 사격 장면이 포함된 뉴스 영상. 부부 간첩 단이 고정 간첩 고영복과 심정웅 사건과 연계되었기에 해당 뉴스에서 그 장비를 찾아볼 수 있다.
- 개량 메모리식 무전기: 전자 기억식 고속 송신 장치가 내장되어 있어 무전기를 오래 작동시키지 않아도 한 순간에 송신할 수 있어서 추적이 어렵다. 송신 가능 거리가 길어 집안에서도 북한에 보고할 수 있다.
- 보고용 비밀 서신: 시약 처리된 비밀 서신용 종이를 일반 편지지 위에 올려놓고 일반 펜으로 쓴 뒤 다시 약품으로 처리하면 된다. 1995년까지는 비밀서신용 약을 펜으로 찍어 써왔다.
5. 기타
MBC의 타임머신에서 "그 부부를 모르면 간첩"(113회, 2004년 3월 14일 방송분.)이라는 제목으로 코믹하게 재현했다. 대한민국의 TV를 보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등 힙합 음악이나[7] 김흥국의 "아, 응애에요" 같은 유행어를 따라한다든가 홍어회 등 대한민국에서도 호불호가 격렬히 갈리는 음식을 이남화 교육의 일환으로 애써서 먹으려고 하는 장면이 백미다. 하지만 사건의 연도는 199X년으로 검열 처리했다.
6. 같이 보기
[1] 당시 남편 33세, 아내 28세. 둘 다 현재 살아 있다면 50대에 접어들었을 것이다.[2] 실제 1970년대 이전에는 부부를 모두 내려보내면 귀순하기 쉽다는 이유로 한 명을 북한에 놔두고 변절하면 처형하는 식으로 활동했다.[3] 강릉무장간첩사건 발생이후 육상이나 해상통로로 침투하기 힘들어졌다는 것이 1차적 판단근거였다.[4] 이 사건을 취재 보도한 조선일보의 보도자료. 심정웅은 최정남, 강연정이 체포된 직후 역시 체포되어 199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전향하여 1999년 8.15 특사에서 감형, 2000년 8.15 특사에서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5] 이걸 가지고 간첩이라고 의심받기에는 모호한 점이 있다. 실제로 메밀 국수 처음 먹는 한국 사람들도 위와 같은 실수를 하기 때문. 90년대 기준으로 메밀국수가 그렇게 대중화된 요리도 아니었다.[6] 1987년 11월 29일에 일어난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의 범인 중 김승일(하치야 신이치)도 이 앰풀을 깨물어 즉사했다. 김현희(하치야 마유미)는 이 앰풀을 입에 넣었지만 곧바로 빼앗겼기 때문에 죽지 않은 케이스.[7] 북한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연변 지역을 통해 알음알음 남한 노래가 들어왔다고 하지만 트로트나 포크 송 위주(나훈아, 조용필 같은)였고, 힙합 장르는 매우 생소한 음악이라고 한다. 사실 남한에서도 중, 장년 층들이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 랩 부분을 음악을 처음 듣고는 "이게 뭔 노래야? 왜 이렇게 가사가 빨라?"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으니 북한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이 당연지사. 남한 한정으로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힙합 음악도 젊은층들 사이에서 익숙해졌지만, 지금도 북한은 힙합 장르를 낯선 음악으로 보는 모양이다.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에서 지코가 문화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해서 공연했는데, 무슨 클래식을 듣는 듯 조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