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야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NC 다이노스의 감독을 맡고 있다.'''"감독의 야구는 없습니다. 야구장의 주인은 선수이기 때문에 선수가 주인공이 되는 야구를 펼치도록 하겠습니다."'''
현역 시절에는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로 활동했고,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은퇴 후에는 롯데, LG, NC에서 수비코치로 일했으며, 2018 시즌 종료 후 NC 다이노스의 2대 감독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2020년 시즌 기준 KBO 리그 최연소 1군 감독[1] 이자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쥔 역대 12번째 40대 이하 감독[2] 이다.
2. 선수 경력
이동욱, 선수-코치서 기록원으로...야구인생 '장외 2막'[3]
부산 대천중학교[4] 시절에는 평범한 선수라서, 간신히 약체였던 동래고등학교로 진학했다.[5] 이것도 당시 감독과 친분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동래고 시절에도 그야말로 평범한 선수여서 진학할 대학을 못 찾고 애를 먹다가, 고3 막판에 활약하면서 동아대학교에 막차로 입학하는데 성공했다.
동아대학교에 입학한 후 기량이 제법 늘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기도 했다. 물론 당시 국가대표팀은 올림픽에서 최하위에 그쳤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그래도 당시 국대 멤버들을 나열해 보자면 문동환, 최만호, 이병규, 김선우, 진갑용, 조인성, 강혁, 조진호, 임선동, 백재호, 채종국 등 훗날 프로에서 한 번씩 이름을 들어 보았을 선수들이 많았다. 어쨌든 이 때의 경력을 발판으로 1997년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1억 8천만 원을 받고 입단했다.
하지만 동아대학교 시절부터 안고 있었던 무릎 부상으로 입단 첫 해 양쪽 무릎 수술을 받는 등 우여곡절 끝에, 2군에서만 뛰는 선수로 전락했다. 그래도 2군에서 4할을 친 적도 있는 걸 보면 2군 본즈의 기질이 있었던 듯 하다.[6] 가장 많이 출전한 해는 1군 79경기에 나왔던 2002년이었으며, 2할 6푼 8리를 기록했던 2002년을 제외하면 타격도 초라했다. 결국 2003년 10월 10일에 롯데에서 방출당하면서 은퇴하게 되었다.[7]
비록 선수 시절에 특별히 내세울 만한 기록은 없었지만, 2003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사사키 가즈히로에게 홈런을 친 진기록을 갖고 있다.#'''
3. 지도자 경력
[NC 우승] ‘무명 선수→창단 코치→우승 감독’ NC 이동욱의 감격시대
[이영미 人터뷰] “투수 교체? 가끔은 AI한테 묻고 싶기도” 무명에서 최고 지도자로, 이동욱 감독-<1>편[8]
[이영미 人터뷰] “이동욱 갖고 되겠나, 김 감독도 안됐는데” 감독 선임 후 정신 번쩍 들게 한 한 마디-<2>편[9]
3.1. 수비코치 시절
은퇴 후 롯데 구단에서는 명석한 두뇌와 야구 지식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수비코치직을 제의했고, 그도 롯데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른 나이인 31세부터 지도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시 8888577의 정점을 달리던 팀 상황도 만 29세의 평범한 은퇴선수가 프로야구 코치가 되는 길을 열어 줬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실력 + 행운이 겹쳐서 프로야구 지도자가 된 후, 계속 자리를 이어 가고 있다.
2005 시즌 후 코치에서 물러나 전력분석관으로 자리를 옮겨 잠시 롯데 자이언츠의 프런트로 일했다. 프런트 시절에 온갖 잡무를 보았는데, 그 중에는 훗날 NC 다이노스의 첫 홈이 되는 마산 야구장의 불펜을 만드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마산 야구장에 불펜이 없었기 때문에, 4~5시간만에 급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는 LG 트윈스 2군 수비코치로 일했으며, 2011 시즌 후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아 NC 다이노스의 창단 수비코치로 영입됐다.
NC 다이노스 1군 수비코치 시절에는 대체로 호평을 받았다. 송구 트라우마나 실책 때문에 심리치료까지 받아야 했던 내야수 박민우의 멘탈을 다잡아 준 것을 포함해 신생 팀 NC 수비진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 내야수 노진혁에 따르면 박민우를 울게 만들었다고.[10] NC의 1군 수비 코치를 지낸 2013∼2016년간 4년 연속 팀 수비지표(DER) 리그 1위를 달성했다.#
후술하듯이 현장 야구인 치고 드물게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DER(수비효율)이나 UZR과 같은 수치를 강조했으며, 수비 시프트도 조금씩이나마 활용하였다.
2018년에는 연초에 부인상을 당하면서 1군에서 잔류군으로 이동했는데, 2018 시즌 NC의 수비 능력이 영 좋지 않게 되면서 이동욱 코치의 능력이 재조명되었다.
3.2. NC 다이노스 감독
2018년 10월 17일에 NC 다이노스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조건은 계약금 2억, 연봉 2억 등 2년 간 총 6억. 자신이 롯데에서 잠시 프런트로 일했을 적에 불펜을 만든 야구장의 소재지를 연고지로 하는 팀의 사령탑에 오른 것이다. 팀의 시작을 함께한 코치로서 그동안 1, 2군을 두루 경험하면서 팀의 사정을 잘 알고 있고, 구단과 선수단 내에서도 뛰어난 소통 능력을 보여주는 등 많은 호평을 받은 것이 좋은 점수로 연결되었다. 또한 2019 시즌부터 NC 구단이 데이터 팀의 비중을 상당히 높이고 있는데[11] , 전술했듯이 코치 시절부터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과 맞아떨어진 것도 한몫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고, 또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는 선임이었지만 17일 새벽 2시부터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고 있었던 박정태가 NC의 신임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소리가 들려오면서[12] 팬들이 한창 구단에 대한 분노를 표하던 찰나, 이를 뒤집고 들려온 선임 소식이었기에 대부분의 팬들은 환영을 표했다. 전준호 코치와 함께 내부 승진 인사로서는 가장 낫다는 것이 팬들의 평.
반면 타 구단 팬들은 이동욱 코치의 감독 선임 기사가 뜨자 도대체 누구냐면서 상당히 어리둥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기간 수비코치를 했지만 직책상 앞으로 크게 나설 것이 없었고, 롯데 자이언츠 선수 시절에도 6시즌 동안 단 143경기에 출전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는 2017년 감독 선임 당시 듣보잡 취급을 받았던 장정석 감독의 선수 시절 출전 수의 1/4 수준이다.
이 때문에 디시인사이드 내 각 팀갤에서는 김태형, 장정석 감독에 이은 듣도보동 시즌 3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이 듣도보동 감독 셋은 모두 취임 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그 가운데 이동욱과 김태형은 우승까지 했다!
감독 선임 이후 엔갤에서 주로 부르는 별명은 이동욱 + 감동님 드립으로 만든 '''욱동님'''. 묘하게도 이름을 거꾸로 한 모양새가 되었다.
선임 인터뷰에서 역동적이고 끈질긴 팀을 만들 것이며, 선수들의 사기와 동기부여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써는 역대 최연소 감독이다.
3.2.1. 2019 시즌
팬들과 구단의 기대 속에 감독으로 선임되었지만, 팀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NC의 직전 시즌이 투타 할 것 없이 전부 바닥을 찍으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꼴찌를 기록한 최악의 시즌이 되어 당장 손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외부에서 전력 보강을 하려고 해도 현재 NC 프런트는 지출에 소극적인 데다가 FA와 외국인 선수 영입도 상한제 도입으로 인해 이전만큼의 효과를 보기는 힘든 상황 속에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나마 2군이 기존에 쓰던 야구장으로 홈을 옮기면서 효율적으로 1군과 2군을 통합 관리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부분. 또한 긴축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구단에서 리그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를 FA로 영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NC는 재도약의 기회를 얻은 것은 물론 이동욱 감독의 2019시즌 구상도 한층 여유가 생겼다.
시즌 초반에는 좋은 성적을 유지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첫 시즌임에도 팀을 순조롭게 잘 이끌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허나 예기치 않은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과 시즌 아웃으로 본인의 처음 구상과는 많이 어긋나면서 시즌이 진행될수록 과연 구단이 뭘 보고 감독으로 선임했나 싶을 정도로 미숙한 경기 운용 능력과 여러 문제점들을 노출하며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반면 9월 이후로는 투수교체나 작전 등에서 적중하는 일이 많아져 예상보다 빨리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시즌 중반과 9월을 비교해 보면 똑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신이 내린 운용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재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는 LG 트윈스에 1차전에서 패하면서 그대로 2019 시즌을 마치게 되었다.
3.2.2. 2020 시즌
[image]
2019년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롯데 자이언츠가 마지막으로 허문회 감독을 선임하면서, 이동욱 감독은 2시즌 연속으로 '''리그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이후 키움 히어로즈에서 갑작스럽게 장정석 감독이 물러났지만, 후임 감독인 손혁도 1973년생이기 때문에 이동욱 감독의 최연소 타이틀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2020년 10월 8일, 키움에서 손혁 감독이 사퇴하고 '''1985년생'''인 김창현이 감독 대행이 되면서, 감독 부임 후 2년만에 자기보다 어린 지도자를 상대방 사령탑으로 만나게 되었다.
2020년 1월 8일, 계약 기간 1년을 남겨두고 2021년까지 2년 간 계약금 1억 원, 연봉 2억 5,000만 원 등 총액 6억 원에 감독 연장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감독 부임 2년 만에 '''꼴찌였던 팀'''을 '''창단 첫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는 KBO 리그 역사상 부울경 연고 프로야구단 최초의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이며, 1992년 롯데 자이언츠의 KS 우승 이래 무려 28년 만에 차지한 부울경 연고 프로야구단의 우승이기도 하다.
3.2.3. 2021 시즌
계약 마지막 해다. 하지만 우승을 한 채로 시즌을 치르기 때문에 심하게 꼴아박지만 않는다면 레임덕 없이 재계약은 무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21년 1월 21일 키움 히어로즈가 1973년생인 홍원기에게 감독직을 맡기면서, '''3년 연속으로 리그 최연소 감독'''이 되었다.
4. 감독 스타일
오랜 코치 생활 동안 여러 감독들과 함께 일한 것에서 배운 것이 많은 듯, 초보 감독이지만 본인만의 뚝심있는 야구를 선보이고 있다.[13]
4.1. 긍정론
4.1.1. 적극적인 데이터 활용
이동욱 감독은 취임 때부터 수비 코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 야구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2019 시즌 구단 내부 데이터팀 자료를 바탕으로 데뷔 후 줄곧 중심 타선에 있었던 나성범을 2번 타순에 올려 공격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박민우-나성범으로 이어지는 1~2번 타순을 짜 4월동안 리그 순위 1위를 마크했던 것이라던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극단적인 수비 시프트를 통해[15] 2019 시즌 NC의 수비 성공률(FPCT·Fielding Percentage)이 0.983으로 두산 SK(0.984)에 이어 리그 세번째의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 등은 감독 데뷔 첫 해에 거둔 성과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2018 시즌 리그 꼴찌 팀을 1년만에 5위를 기록하며 가을야구 막차를 타도록 견인했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기사 구단측에서도 이를 인정해 감독 계약을 1년 연장했을 정도. 2020년에도 이것이 여전히 유효하면서 적극적인 시프트를 바탕으로 2020 시즌 NC의 첫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4.1.2. 코칭 능력
앞서 말했듯이, 수비코치 시절에는 박민우의 고질병이었던 송구 트라우마를 고치면서 리그 최상급 2루수로 만들었고,[16] 2020 시즌에는 만년 백업이었던 강진성과 지난 시즌 10승을 달성한 영건 구창모가 실력을 만개하며 팀 성적을 견인했는데, 특히 강진성의 타격폼 수정을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이 알려지면서[17] 타격 코칭 능력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4.1.3. 철저한 야수 관리
감독 첫 해였던 2019년에는 주전 야수들의 줄부상으로 제 전력으로 싸운 적이 없었다. 허나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백업 선수들에게 기회의 장이 되면서 차기 시즌에 선수층이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내/외야 전천후 유틸리티로 활용했던 김태진이 그 예. 감독 2년차인 2020 시즌에는 첫 해의 경험을 발판삼아 철저한 야수 관리로 6월 말 주전 9명이 모두 규정타석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당 1-2번씩은 선발 포수로 김태군을 내면서 양의지에게 휴식을 부여하는 것과, 나성범을 역시 주당 1-2번씩 우익수로 내면서 십자인대 파열 부상 복귀 첫 해를 무난히 보내게 만들어 주는 것. 그 효과는 나성범의 홈런 커리어 하이 경신, 양의지의 홈런-타점 커리어 하이 경신으로 돌아왔다. 마찬가지로 2020년 NC의 팀 타격 WAR과 주전 선수들의 WAR은 비율 스탯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인데, 그 이유는 바로 주전 야수들의 타석 수가 다른 팀에 비해 월등하게 적기 때문이다. 수비 이닝, 타석 20위 안에 NC 타자들은 단 한명씩만 들어가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철저하게 백업들과 신인 선수들을 기용하였다. 결국 이런 관리를 통해 타자들이 지속적으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고 시즌 막바지에 11연승을 하는 저력을 보여주며 무난히 통합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4.1.4. 혹사 없는 불펜 운용
전임자였던 김경문 감독이 불펜 혹사로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인지, 이동욱 감독은 선발 투수들에게 최대한 많은 이닝을 맡기고 여러 불펜들에게 짧은 이닝을 맡기는 일명 '이닝 쪼개기' 운용을 하고 있다. 다만 2019 시즌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불펜 이닝을 쪼개면서 불펜에서는 쓸놈쓸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약간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선발 투수들에게 최대한 이닝을 맡기면서, 박진우, 배재환, 임정호, 원종현 등의 팀 필승조들의 컨디션 조절을 적절하게 해 가면서 이들이 혹사순위 최상위권에는 들도록 방치하지는 않고 있다.[18] 시즌 초중반 선수 컨디션이 좋을 때 적극적으로 기용해보다가 퍼지면 휴식을 주고 있는데, 일단은 넉넉치 않은 불펜 사정상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 6월 말 기준 불펜 지표가 리그 최하위를 찍었지만 이는 소위 '버리는 경기'에 마지막 투수[19] 가 몇 점을 실점하더라도 '''남은 투수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경기를 맡겨 불펜 자책점 평균을 끌어올린 것이라 정상참작의 여지는 있었다. 어쨌든 이러한 묘한 운영으로 7월에는 필승조를 중심으로 어느정도 불펜이 안정화되기도 했고[20] 8월 중순 2:2 트레이드를 통해 수혈한 불펜자원과 2차 드래프트로 획득한 홍성민의 맹활약, 베테랑 필승조의 부활을 통해 불펜진 성적이 리그 정상급으로 올랐다.
그래도 해마다 승부수를 거는 시즌 후반부에는 이렇게 비축한 불펜 자원을 바탕으로 조용히 쓸놈쓸 야구를 하고 있다.[21] 2019 시즌 추석을 전후로 한 템포 빠른 투수교체로 5연승을 거두며 KT와의 와일드카드 티켓 경쟁에서 승리한 것이나, 2020 시즌 9월 중순부터 퀵후크와 적극적인 불펜 운용으로 필승조의 이닝 소화를 늘리면서 11연승을 이끌어 2위와의 격차를 8경기 이상 벌린 사례가 있다. 시즌 내내 점수차가 얼마가 나더라도 '잡을 경기는 확실히 잡기 위해' 필승조를 투입시켜 쓸놈쓸 야구를 펼치다가 후반부에는 늘 퍼지곤 했던 김경문 감독 시대 NC 필승조들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환골탈태.
4.1.5. 신중한 인터뷰와 조용한 리더십
조용하지만 뚝심있는 이동욱 리더십…무명 지도자에서 우승 감독으로'''밖에서는 ‘왜 이동욱 감독은 자꾸 정보를 숨길까’라고 한다. 선발투수를 밝히지 않고, 부상 선수의 정확한 복귀시점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의 말은 코치 때와 무게감이 다르다. 감독의 말 한마디는 선수를 죽이고 살린다. 이제 2년째인데 하면 할수록 느껴진다. 물론 나도 선수가 잘못하면 속이 상하고 화도 난다. 다만 거기서 표현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부상 선수가 언제 복귀한다? 그렇게 얘기하면 선수는 이 문장에 갇힌다.'''
NC 1위 비결 물으니…"감독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매직넘버·KS, 아직 잘 모릅니다” 승차 8경기 1위에도 말 아끼는 NC 이동욱 감독
‘거침없는 1위 질주’ NC, 소리 없이 강한 ‘이동욱 리더십’이 있다
[SC핫포커스] 감독은 말 아끼지만… NC의 조용한 총력전 이미 시작됐다
감독 첫 해인 2019년에는 선수 부상 관련 인터뷰 때문에 팬들에게 비난을 많이 들었다. 허나 피드백을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2020년에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는 매우 겸손하게, 또 사족을 최대한 달지 않고 간결하게 인터뷰하면서 팬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승장 인터뷰에서도 대개 그날 잘한 선수 칭찬을 하면서 공을 돌리는 데 그치고 본인은 경기 요약을 하는 정도로 간단하고 원론적으로 인터뷰를 끝내는 편이라 군더더기가 없다. 장정석, 조원우 감독과 유사한 스타일.
덕분에 취재기자 입장에서는 기사 소스를 잘 주지 않아 소위 '재미없는' 인터뷰 대상으로 통한다.[23] 감독으로서 자신을 돋보이게 할 만한 발언도 이동욱 감독에게선 좀처럼 듣기 어렵다. 2020년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떤 야구를 꿈꾸는가'라는 질문에 '감독의 야구는 없습니다'라고 답변을 했을 정도이니. 반대 팀이 감독부터 단장까지 온갖 워딩을 뿌려대며 언론플레이를 할 때 이동욱 감독은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묵묵히 정석적인 인터뷰만을 하고 있다.
4.1.6. 형님 리더십
[NC 정규시즌 우승] '밥 무러 가자' 마음 읽는 감독, 이동욱'''144경기를 하다보면 선수 한 명 때문에 지는 경기가 있다. 그럴 때 감독이 ‘누구의 실책 때문에 졌다. 그게 패인이다’라고 하면 선수에겐 정말 치명적이다. 내가 그걸 경험해봤다. 너무 큰 상처였다. 예전엔 그런 질책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지도자가 되면 절대 질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경험한 아픔을 선수에게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NC 창단 첫 우승] 이동욱 감독과 아이들, 강진부터 10년 동행의 따뜻한 결말
[NC 창단 첫 우승] 선수가 납득할 때까지…이동욱 ‘아버지 리더십’
[NC 정규시즌 우승] 이동욱 감독 "누가 내게 '사람 복 있다' 하더라"
'NC 그 자체'인 이동욱 감독, 무명에서 우승팀의 리더로
[NC 우승①]‘형님’으로 일궈낸 창단 첫 우승…이동욱의 전성기는 만 46세부터
[NC우승] "큰 형처럼 친근해" 이동욱 감독 전성시대, 활짝 연 형님 리더십
이동욱 NC 감독의 삼촌 리더십…감독실 냉장고도 '활짝'
NC 창단 멤버로 2011 시즌 후 김경문 감독의 요청으로 팀 초대 수비코치를 맡았고, 강진시절부터 팀을 이끌어왔다. 그래서 팀의 역사를 함께한 박민우, 노진혁, 나성범, 강진성, 원종현, 김진성 등의 선수들과는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막역한 사이이다.[24] 평소에도 선수들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고 질책보다는 격려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며[25] 현역 시절 야구를 빨리 관뒀던 경험이 있기에 부진한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았고 그만큼 심리 상태에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창단 때부터 함께 한 선수들은 이 감독을 '큰 형과 같다'고 입을 모은다. 2012년 창단 첫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전체 9순위)로 입단한 프랜차이즈 스타 박민우는 "감독님의 가장 큰 장점은 큰 형처럼 친근하다는 것이다. 코치 시절에도 편해가 대해주시고, 고민에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감독이라는 역할이 코치와 달라 예전과 똑같이 하실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신다"고 했다.
나성범 역시 "감독님은 선수들과 오랜 기간 같이 해오셨다. 선수들을 너무 잘 알고 편하게 대해주신다. 아무리 감독님이라 해도 편한 대화를 만들어주신다"고 밝혔다. 올해 주장을 맡은 양의지는 "사랑의 리더십이다. 선수들을 믿어주고, 사랑으로 대한다. 믿고 맡겨주신다"고 했다.
2020 시즌을 앞두고 두 번째 FA 계약을 체결한 박석민도 인터뷰[26] 에서 '''"감독님께서는 인간적으로 다가와 주시고 소통도 잘해주신다. 저도 지도자를 꿈꾸는데, 제가 생각하는 좋은 지도자상에 일치하시는 분이다. 이런 감독님과 오래 하려면 선수들이 성적을 내야 한다"'''라 말했다.
비록 선수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팀의 창단부터 함께 한 코칭스태프 일원이자, 정통성과 소통을 강조하며 팀을 이끈 그의 지도력은 NC가 최하위로 추락한지 2시즌만에 정규시즌 우승으로 도약하는 성과를 기록했다. 이로써 KBO의 일명 3대 듣동님(나머지 둘은 두산 김태형, 키움 전임 장정석)은 모두 한국시리즈 진출 기록을 세웠다.
4.2. 부정론
4.2.1. 비효율적인 선수 기용
2019 시즌 그의 뚝심있는 야구 스타일은 대부분 결과물이 없는 고집으로 끝났다. 대표적인 예가 2019년 6월 20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최승민과 이인혁을 동시에 데뷔 첫 선발 라인업으로 내보낸 것. 스윕패의 위기에 몰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내보낸 것에 대해 팬들은 선발 매치업도 밀리니[27] 감독이 시작부터 경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는데, 결국 2-14로 깨지면서 스윕패를 당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동욱 감독은 "이런 선수들이 이럴 때 뛰어야 한다"고 주장. 이인혁이 조쉬 린드블럼을 상대로 홈런을 때려내며 절반의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두 선수들은 수비에서도 기본적인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등 실패에 가까운 기용이었다.[28]
납득이 가지 않는 선수기용의 또다른 예로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던 구창모만 믿고 키스톤과 센터라인을 죄다 백업으로 기용했다가 잇따른 수비실책으로 구창모가 조기강판의 수모를 겪은 2020년 6월 25일 kt와의 더블헤더 2차전을 들 수 있다. 이날 비가 오면서 유독 내야수비에서 에러가 많았는데, 경기가 타격전으로 흘러가자 경기 중반에 주전선수들을 대거 교체선수로 투입했지만 불펜 싸움에서 밀리면서 패배하고 말았다. 불펜이 난타당해 수비시간이 길어지면서 스타팅으로 내보낸 백업선수들보다 정작 후반에 교체된 주전 멤버들이 비를 더 오래 맞고 경기에 뛰게 된 것이다. 물론 위닝 시리즈를 챙긴 상태에서 에이스 구창모를 믿고 야수들을 기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쓸데없이 선수들만 낭비하고 소득은 없었다.
본인의 뚝심 내지 고집은 투수 운용에서도 드러난다. 2019 시즌 초반 1군 경험이 전무한 김영규를 선발진에 합류시켰던 이유는 "릴리스포인트가 좋고 템포가 빠르다"는 점이 근거였는데,[29] 김영규는 시즌 초반 부상을 당한 구창모의 대체자로 등판해 선발로만 4승을 거두며 히트 상품으로 거듭났지만 이내 구속과 제구, 이닝 소화 등에서 선발투수로서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패전조 수준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동욱 감독은 여전히 김영규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고 하이 레버리지 상황에서도 김영규를 내보냈다가 팀을 패배로 몰더니 2019년 8월 14일 대전 한화 이글스전에서는 2-5로 뒤진 6회 무사 만루 상황에서 좌타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루친스키 다음으로 좌완 김영규를 올렸다가 제라드 호잉에게 만루포를 얻어맞았고, 경기를 다 넘겨준 상황에서도 남은 이닝을 모두 소화시켰다. 일부 팬들은 자신이 발굴해낸 유일한 자원이 김영규밖에 없어 그 유일한 선수를 활용해서 업적 쌓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억측을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김영규는 프로 경력이 적은 젊은 투수고,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완봉승을 거뒀기 때문에 비난을 일삼던 팬들은 뻘쭘해졌고, 또 2020 시즌 김영규가 5선발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주저없이 바로 최성영으로 선발투수 자리를 교체한 것을 보면 이는 팬들의 망상에 가까운 듯 하다.
4.2.2. 과도한 경기 개입
타격과 관련된 리그 데이터들을 무시하고 이루어지는 기계적인 좌우놀이, 타자의 타격 능력이나 주자의 주루 실력을 고려하지 않는 작전 남발 등에서 팬들에게 지적을 받곤 한다. 작전 구사가 팀의 주루 수치를 깎아 먹고 있는 수준으로, 2019년 8월 말까지 팀의 도루 성공률은 64.3%로 1위와 10%p 넘게 차이나는 압도적 꼴찌이자 팀 역사상 가장 낮은 기록[30] 을 기록하기도 했다. 2019 시즌 NC의 타격-주루 성적이 들쑥날쑥[31] 하면서 순탄치 않은 시즌을 보낸 것도 이동욱 감독이 비난받는 데 한 몫을 했다.
5. 기타
- 롯데 선수 시절 마산 야구장에서 훈련을 하는데, 한 마산아재가 외야 뒤쪽을 가리키면서 “저기 아파트 하나 올라간단다. 집 하나 사두라”고 말했다고 한다.[32] 그러자 이동욱 감독은 “에이, 제가 마산에서 살 일이 있겠습니까”라고 답을 하면서 넘겼으나 그 아파트가 지금 묵는 자택이 됐다는 썰이 있다.# 그런데 마산야구장 외야 쪽에는 아파트가 없으니 약간 와전된 이야기인 듯 하다. 창원 메트로시티는 외야가 아니라 3루 쪽 내야 한참 뒤편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산호동 쪽에 5층짜리 상가아파트는 몇 개 있다. 어쨌거나 옛 마산이 고향은 아니지만 자신이 프런트로 일하면서 마산 야구장에서 불펜을 만들고, 또 그 곳을 연고지로 하는 신생 프로야구팀의 창단 코칭스태프로 합류하여 감독으로 첫 우승도 안겼으니, 본인한테 옛 마산은 인연이 매우 크다.
- 갓동님만큼은 아니지만 덕아웃에서 세레머니나 리액션이 크다. 혹자는 덕아웃에서 응원하는 마산아재 아니냐고 할 정도. 아무래도 부임했을 때 꼴찌를 한 팀을 이끄는지라 일부러 이런 행동으로 선수단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하는 듯 하다. 팬들도 이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33]
- 그럼에도 감독이라는 자리다보니 겉으로 내색하지 못하고 혼자서 리액션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 손민한 투수코치와는 유년 시절부터 절친이다. 초등학교는 서로 달랐지만 야구부 감독끼리 친해서 합동훈련을 자주 했었고, 중학교를 같이 나왔고, 입단 전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함께 나갔으며, 롯데와 NC에서도 같은 팀에서 선수와 선수, 코치와 선수, 감독과 코치로 함께 있었다.
- 말을 할 때 부분이라는 말을 입버릇으로 자주 한다. 팬들도 인터뷰에서 매번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우승 이후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하는 말마다 부분으로 끝냈기 때문. 이광용의 옐로우카드에서는 이동욱 감독 특집 제목을 이동욱 감독 특집인 부분①으로 잡아줬고, 이후 kt wiz 이숭용 단장이 나온 편에서 이숭용이 부분이라는 말을 할때마다 이동욱을 오버랩 시키는 등 반쯤 개그 소재로 써먹고 있다.
6. 연도별 기록
7. 역대 감독 성적
[1] 정식 감독으로 한정했을 때 최연소 감독이다. 감독대행까지 포함하면 키움 히어로즈 김창현 감독대행이 85년생으로 최연소다.[2] 세는나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1호는 김영덕(1982년 우승 당시 47세), 2호는 김응용(1983년 우승 당시 44세), 3호는 강병철(1984년 우승 당시 '''39세(!!!)'''), 4호는 백인천(1990년 우승 당시 49세), 5호는 이광환(1994년 우승 당시 47세), 6호는 김인식(1995년 우승 당시 49세), 7호는 김재박(1998년 우승 당시 45세), 8호는 선동열(2005년 우승 당시 43세), 9호는 류중일(2011년 우승 당시 49세), 10호는 김태형(2015년 우승 당시 49세), 11호는 김기태(2017년 우승 당시 49세)다.[3] 2005년 12월 기사로 롯데 기록원 일을 막 시작했을 때 나온 기사다.[4] 대천중학교 야구부 동기가 손민한이다. 중학교 외에는 서로 다른 학교를 다녔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죽마고우라고 하며 애틀랜타 올림픽에도 함께 나간 사이다. 결국 이 인연은 훗날 NC 다이노스에서 코칭스태프로 한솥밥을 먹는 배경이 된다.[5] 동래고등학교는 예전부터 야구보다 축구로 더 유명한 학교였다. 김호, 김호곤, 최용수 등 유명한 축구인들이 이 학교 출신. 야구선수는 문동환이나 박정태 정도만 배출한 학교였다.[6] 2020년 강진성에게 타격 폼 변경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도 2군에서는 4할을 친 적이 있다."라는 말을 했는데, 한 엔갤러가 1999년에 4할을 친 적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7] 공교롭게도 '''10월 10일'''과 악연이 있는데, 롯데에서 방출 통보를 받은 날과 롯데 코치직 해임 통보를 받은 날이 모두 10월 10일이라고 한다.[8] 영상[9] 영상[10] 관련 기사[11] 기존 데이터 팀과 스카우트 팀을 데이터팀으로 통합했다.[12] 이 썰을 최초로 보도한 스포츠동아 기자가 부산 출신, 동래고 출신, 롯데 내야수 출신이라는 소스만 듣고 박정태로 지레짐작해서 쓴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이 있다. 묘하게 두 사람의 공통점이 많다.[13] 담당기자 인터뷰[14] 2020년 7월 16일 뉴스.[15] 예를 들자면 3루수가 1루수와 2루수 사이에 배치해놓는 라이트 시프트. 2020 KS에서 김재환을 이렇게 막아 타율을 4푼에 못미치게 하였다.[16] 대표적인 입스 극복 사례라 야구계에게 꾸준히 언급되는 이야기. 데뷔 초기 박민우가 공을 잡고 1루로 던지려다 보면 덕아웃이 보여서 큰 압박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시 수비코치였던 이동욱의 해결책은 '그럼 다른 곳을 보자', '마음의 압박감을 다르게 풀자'는 식으로 문제의 실마리를 풀었다. 영상[17] 레그킥을 버리게 하기 위해 '''“나처럼 선수 생활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며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고 한다.#[18]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불펜들이 너무 못해서(...) 혹사할 건덕지도 없다.[19] 6월 25일 창원 KT전 더블헤더 2차전 홍성무 '''10실점''', 6월 27일 잠실 두산전 김영규 '''7실점'''.[20] [IS 대전 돋보기] NC의 '불펜 쪼개기'…적중한 이동욱 감독의 승부수[21] [창원 브리핑] 승부수 던졌던 이동욱 감독 "베테랑 불펜들이 도움 된다"[22] 2020년 7월 8일 뉴스.[23] 허나 수비코치 시절에는 기자들에게 친절한 취재원이었다고 한다. 간단한 질문에도 한참 시간을 들여 정성스럽게 대답해주는 코치였으며 사석에서도 유쾌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감독이 되고 난 후 갖는 공식 인터뷰 자리에서는 코치 때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엠스플 이슈] ‘1위 사령탑’ NC 이동욱 감독은 왜 ‘예언’을 하지 않을까[24] “19살 까까머리가…” 세월 흘러 중심이 된 박민우, 기특한 이동욱 감독 [스토리 베이스볼] 이동욱과 NC, 3300일의 성장기… 시즌 1 해피엔딩 임박 [SC핫포커스] "잘 짜인 고리" 이동욱 감독, 9년째 제자들과의 특별한 동행[25] 송명기 깨운 이동욱 감독의 문자 “안 좋을 때 동기부여, 그게 감독 몫” [창원 프리토크]NC 송명기 일으켜 세운 이동욱 감독의 문자 소통법 "그게 감독의 몫" 마이크라이트 스마일친구 일화[26] '다시 NC맨' 박석민 "4년의 부진은 내 잘못, 우승 간절하다" [일문일답] 박석민의 진심 "오직 우승 목표…감독님과 오래 함께하고 싶다"[27] 당시 양 팀의 선발 투수는 5선발 박진우와 리그 MVP로 유력하던 조쉬 린드블럼.[28] 옆 동네 롯데 자이언츠의 조원우 전 감독이 일요일 경기에서 '아직 승부처가 아니다'는 발언과 함께 백업급 선수들을 클린업에 넣었다가 욕만 바가지로 먹는 게 아직 3년 전임을 생각해볼 때 시작부터 포기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 비판받을만한 점. 게다가 조원우는 올드스쿨 야구관을 계속 드러내며 욕을 먹다 임기 도중 잘렸지만, 최소한 인터뷰로는 거의 욕을 안 먹는 편이었다.[29] 2018년 마무리 캠프부터 이미 감독이 차기 선발감으로 꼽았다.[30] 세이버상 도루 성공률이 70%가 안되면 오히려 득점에 방해가 되는 수준이라고 한다. 즉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나은 수준이라는 것.[31] 2019 시즌 NC는 홈런이 압도적인 리그 1위인데, 병살도 리그 1위, 희생타도 리그 2위를 기록했다. 홈런이 많은 만큼 작전도 많고, 루상에 주자가 있을 때 공격을 감행하면 병살로 죽는 확률도 제일 많고, 그걸 방지하기 위해 번트작전을 구사하면 엉뚱하게 홈런을 쳐서 점수를 내는 식이다. 대타성공률도 리그 꼴지, 도루갯수와 성공률도 하위권이다.[32] 한일합섬이 1999년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가면서 마산 양덕동 공장 터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고, 이동욱의 선수 생활 말기가 2000년대 초반이기에 시점 상으로는 대략 맞다.[33] ###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