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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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44대 내지 제45대 미국 대통령을 선출하기 위해 2012년 11월 6일 실시된 선거. '''버락 오바마가 선거인단 과반수 확보로 당선이 확정, 연임에 성공했다.'''
2. 주요 이슈
3. 각 정당 별 후보
3.1. 민주당
3.1.1. 민주당 후보
3.1.1.1. 버락 오바마
현직 대통령으로서 프리미엄을 가지고 있는[1]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다시 민주당 후보가 되어 재선에 도전하는 데 사실상 시작부터 확정된 상황이었다. 물론 지난 대선 당시 가졌던 신선함이나 국민적 인기는 많이 사라진 상태지만 2011년부터 진행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도 '1강'이 없는 공화당의 대부분의 후보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민주당으로서도 후보 교체의 필요성도 낮았다. 랜달 테리, 존 울프 주니어 등 일부 보수 성향 군소후보가 몇개 주에서 후보 자격을 얻었지만 자신의 이름값을 높이기 위한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2] 본인도 2011년 4월 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비디오를 통해 재선 도전 의사를 일찌감치 밝혔다.
다만 버락 오바마로서도 마냥 순탄하게 경선을 치른 것은 아닌데 경선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 기록을 공개하라는 식으로 터무니 없는 출생 의혹을 제기한 도널드 트럼프의 영향을 받은 인종차별주의자[3] 들이 조지아 주 프라이머리에서 이를 핑계로 오바마의 피선거권을 박탈(...)해달라는 주장을 해 주 법원 판사가 이 요구를 일축하는 등 모욕을 당하기도 했다.
결국 경선 결과 무난히 '''유효표의 88.9%, 선거인단 3,166명을 독점'''하며 2012년 6월 5일,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되었다. 민주당으로서는 1996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이후 16년만에 현직 대통령의 재선 도전.
3.1.2.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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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가 2011년 4월 4일 재선 출마를 선언했고, 무난히 2012년 1월부터 치러진 201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50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압승을 거두고, 이어진 전당 대회에서 88.9%의 지지를 받으며 재선 도전에 나섰다. 부통령 후보로는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함께 승리한 러닝 메이트이자 현직 부통령인 조 바이든을 지명했다.'''YES WE CAN'''
―공식 슬로건
후보 지명을 위한 민주당 전당 대회는 2012년 9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간 노스 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개최되었는데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지미 카터 및 빌 클린턴[4] 전 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전현직 인사들이 모두 참석해 재선 도전을 축하하며 자리를 빛냈다.
3.2. 공화당
3.2.1. 공화당 후보
3.2.1.1. 밋 롬니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 위원장을 맡았었고, 이제는 공화당에겐 험지가 된 미국 북동부 메사추세츠 주에서 2002년 주지사에 당선되며 스타가 되었던 롬니가 2008년에 이어 다시 한번 대통령 후보 경선에 도전했다. 2011년 6월 2일, 뉴햄프셔에서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에 대해 비판했다.#
재미있는 점 하나는 롬니가 몰몬교를 믿으면서 매우 보수적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공화당의 대선 후보 중에는 가장 중도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후보 중 릭 샌토럼이나 뉴트 깅리치는 티 파티의 지원을 받으면서 극우에 가까운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론 폴은 아예 자유지상주의자로 유명하기 때문. 어찌 보면 레이건 시대 이후 현재의 공화당이 얼마나 오른쪽으로 이동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렇게 얻은 중도파 이미지 덕분에 현재 공화당 경선 후보 지지율에서는 2011년말을 기준으로 안정적인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본격적인 경선이 진행될 2012년 초로 들어와 지지율 1위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2위권과 차이를 여유롭게 벌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안심하기는 어렵다. 또한 중도파 이미지 때문에 대선 후보가 된다면 유리한 점이 있겠지만 오히려 경선에서는 공화당 내 열성적인 지지층을 확보하지 못해 위기에 처할 수 도 있는 상황.
1월 3일 열린 경선의 방향계 역할을 하는 첫 선거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득표율에선 릭 샌토럼에게, 확보 선거인단 수에서는 론 폴에게 밀리며 굴욕을 당했다. 최초 개표 당시는 8표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샌토럼에게 승리해 득표율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발표됐지만 재검표 결과 순위가 뒤집혔다.#
하지만 이어진 뉴햄프셔 주 프라이머리에서 39%의 득표를 올리며 첫 1위를 차지했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에서 깅리치의 상승세에 대패를 당했지만 승부처였던 1월 31일 플로리다 경선에서 다시 46%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1위를 차지해 기세를 잡았다.
슈퍼 화요일에 펼쳐진 10개 주의 경선에서는 7개 주에서 승리하며 사실상 경선 승리의 7부 능선을 넘었다. 특히 북동부 주에서 엄청난 강세를 보여줬는데 오바마를 상대해야할 본선을 생각한다면 긍정적인 신호다. 다만 조지아 주에서는 깅리치에게, 오클라호마와 테네시에서는 샌토럼에게 패하며 공화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남부로부터는 확실하게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이후에도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사실상 대선 후보 자리를 손에 넣었지만 실제 후보 확정은 상당히 늦은 시점에 이루어졌다., 5월 29일 텍사스 경선에서 승리해 58명의 선거인단 지지를 확보해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한 시점에서야 공식적으로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주요 경쟁자였던 깅리치와 샌토럼이 상당히 늦은 시점인 5월 초가 되어서야 경선 중단을 선언했고 고정 지지층을 유지하고 있는 론 폴은 텍사스 경선 시점까지도 롬니 지지를 거부하며 경선 완주를 선언했기 때문.[5]
3.2.1.2. 릭 샌토럼
3.2.1.3. 론 폴
3.2.1.4. 뉴트 깅리치
미국 제 50대 하원의장이자 빌 클린턴 행정부와 21일간 셧다운 등으로 갈등을 빚었던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2011년 5월 11일, 공식적으로 20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가할 것을 선언했다. 원래 1999년 정계 은퇴를 선택하고 공화당 원로로 남아있었지만, 2008년 대선 후를 즈음하여 반 오바마를 내세우며 티 파티 운동을 지지하는 등 정치적 재기를 위해 다시 기지개를 켰다.
초창기 경선 초반 분위기를 좌지우지할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주에서 주로 유세를 펼쳤지만 오바마 행정부의 2012년 대비 연방 예산안에 대해 비판하면서 노령층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제도인 메디케어(Medicare) 예산 확대를 성급히 비난했다가 주류 언론들의 비판 속에 사과해야했고 이 영향인지 선거 캠프 조직원들이 캠프 출범 한달이 채 지나지 않은 6월 9일 대거 사임을 선택하면서 위기에 처했다.
이후 선거 캠프를 재편하고 양독소득세 폐지 및 법인세 삭감 등을 골자로 한 본인의 공약을 발표했고 주로 티 파티 등 SNS와 인터넷을 활용하는 유권자들을 공약하기 위해 노력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반 오바마, 반 민주당 세력을 본인에게 결집시키려고 노력했으며[6] 본인 역시 하루 평균 2~3개 트윗을 남기며 130만이 넘는 자신의 팔로워들에 대해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중순 기준 공화당 경선 전국 지지율 기준으로는 평균 5~9% 대로 밋 롬니, 릭 페리, 론 폴에 뒤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2012년 1월 열린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자유지상주의자로 유명한 론 폴 하원의원에게 패배했지만, 그 영향으로 릭 페리와 허먼 케인이 낙마한 이후 그들의 지지자들을 이어받아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하더니 최고 40%까지 올라와 롬니에게서 1위를 빼앗아왔다.# 경선에서도 21일 열린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 프라이머리에서 40.42%를 득표하며 첫 승리를 거둬 기세를 높였다. 특히 다른 공화당 후보들과 달리 이민 문제에 대해서 비교적 유화적인 편이어서 오바마의 주 지지계층 중 하나인 히스패닉의 표를 뺏어올 수 있는 점 역시 강점으로 손꼽힌다. 다만, 기부금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경선에서 생각보다 일찍 이탈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하지만 1월 31일, 50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어 승부처로 꼽히던 플로리다 경선에서 밋 롬니에게 예상 밖으로 크게 지는 바람에 모멘텀을 상실했다.# 2월 있던 네바다 주 경선에서도 롬니에게 패하면서 깅리치에게 결집해있던 반 롬니 표가 릭 샌토럼에게로 이동해 정작 슈퍼 화요일에는 조지아 주를 제외하고 1승도 거두지 못하면서 사실상 경선 구도에서 탈락하게 됐다.
2012년 5월 2일, 공식적으로 경선 포기를 선언하며 물러났다.# 다만 다른 어떤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3.2.2. 여론 조사
3.2.3. 최종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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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해 52.1%를 득표해 선거인단 1,575명을 확보한 '''밋 롬니''' 전 주지사가 전당대회를 통해, 2012년 8월 28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다.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는 위스콘신 주에서 활동하는 폴 라이언 하원 의원이 지명되었다.'''BELIEVE IN AMERICA'''
―공식 슬로건
4. 본선
4.1. 주요 이슈 및 진행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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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양당 후보 지명 직후)
거기다 롬니로서는 예상치못한 악재가 9월 하나 더 터졌는데, 17일 진보 성향 잡지 '마더 존스'에서 롬니가 선거 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연 비공개 행사에서 소위 '''"47% 발언"'''[8] 이라며 극단적인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 이 영향으로 롬니 본인의 중도파 이미지가 박살(...)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은 물론이고 덕분에 반사이익을 본 오바마와 롬니의 지지율 격차 역시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블룸버그에서는 사실상 미국 대선은 이 시점에서 끝났다는 분석을 밝힐 정도였다.
- 10월 초 (1차·2차 토론 이후)
1차 토론 직후 롬니의 지지율이 크게 상승하고 오바마의 지지율이 약간 하락한 바람에 두 후보의 지지율이 급작스럽게 오차범위 이내까지 붙거나 일부 여론 조사에서는 역전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토론 패배로 오바마에 대한 중도층의 믿음이 살짝 흔들린 반면, 승리 가능성에 절망하고 있던 공화당 지지층이 롬니가 오바마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자 결집해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역시 능수능란한 오바마 대통령답게 2차 토론회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위기를 진화했다.# 1차 토론 때와 달리 공세적으로 나와 롬니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며 주도권을 잡은 덕에 롬니는 횡설수설하다 토론회를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바이든 부통령 역시 그 사이 열린 부통령 후보 토론회에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 폴 라이언을 상대로 토론회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이미 승리 가능성을 본 공화당 지지세가 결집한 탓에 효과가 크지는 않았고 이후로도 한동안 오차범위 내에서 오바마와 롬니가 동률을 이루는 여론조사가 연속으로 발표되고 있었다. 다만 이 시점에도 접전지 여론 조사에서는 오바마가 롬니를 앞서고 있었다.
- 10월 말 (3차 토론 이후)
군의 현대화와 유지비용 증가를 고려하면 자연스럽게 단순 구식 전력의 머릿수는 감소할 수 밖에 없다. 오바마는 바로 "함선수만 줄어들었냐? '''총검과 군마도 줄어들었다.''' 전투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롬니는 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은 바다에서도 비행기가 내릴 수 있는 배인 '''항공모함'''과 바다 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원자력 잠수함'''이라는 걸 운용한다."며 날카롭게 반격했다. 총검과 군마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현 국방정책을 방어하면서 상대를 현대 국방에 대해 전혀 이해가 없는 사람(그래서 통수권자가 되면 안될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 롬니는 여기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침묵하면서 이 프레임을 그대로 뒤집어써버렸다. 3차 토론회 직후 오바마의 우세를 선언한 사람이 53%, 롬니의 우세를 선언한 사람이 23%로 조사되면서 롬니의 상승세가 빠르게 꺾여 토론회 후 여론조사 결과가 다시 오바마의 근소한 우위로 돌아섰다.
- 허리케인 샌디 강타
4.2. 대선 여론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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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1. 경합주 지지율
5. 결과
개표 결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유효 선거인단 수의 과반 이상(61.7%)를 확보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전국 단위 출구 조사 결과 의외로 오차 범위 내 격전이 예측되었고 남부 주를 중심으로 개표가 시작된 초반에는 롬니를 상대로 전국 득표율과 선거인단 수에서 모두 밀리면서 시작했지만 플로리다와 북동부 경합주(오하이오, 버지니아 등)에서 차례로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가 예측되면서 결과가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까지는 전국 단위 득표에서는 아직 롬니가 앞서고 있었지만 이후 캘리포니아, 뉴욕 등 민주당 우세주의 결과가 오바마의 압승으로 나오면서 전국 단위 득표율에서도 오바마가 과반을 확보해 안정적으로 재선을 결정지었다.
오바마의 승리로 빌 클린턴 이후 '''3번 연속으로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는데 이색적인 면으로 이번 대선은 1944년 이후 68년만에 처음으로 '''양당 후보가 모두 군 경력이 없는''' 대선이었다. 군 복무 경력이 큰 정치적 자산이 되는 미국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 오바마 대통령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영예로운 기록을 많이 남긴 선거였는데 '''유색인종 최초로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명예와 함께 4번의 대선에서 모두 과반 득표를 넘겼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68년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출신으로 연속 두 번의 선거에서 전국 득표 50%를 넘긴 대통령이자 1952-1956년 대선에서 승리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이후 56년만에 처음으로 두 번의 투표에서 득표율 51%를 넘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플로리다, 아이오와, 오하이오에서 민주당이 이긴 마지막 선거이다.
반면 롬니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하나 남겼는데,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가 본인이 상원의원을 지냈던 테네시 주에서 패배한 이후로 12년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주에서 패배한 대선 후보가 되었다.[11] 특히 무려 23.14%p 차이로 패배했는데 본인의 정치적 기반에서 이렇게 큰 차이로 패배한 건 무려 185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한다고. 반면 오바마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일리노이를 16.87%p라는 큰 격차로 지키면서 승리의 발판으로 만들었다.
5.1. 접전지
현직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는 접전지 중 지난 대선때 획득했던 노스 캐롤라이나와 네브라스카 2구를 잃었지만 그 외 북동부, 북서부의 전통적인 텃밭을 대부분 지키면서 재선에 성공했다. 단 지난 대선에 비해 몬태나, 사우스다코다, 노스다코다 등 주요 중부 지역 주에서 공화당 후보와의 격차가 벌어지고 2008년 탈환하며 주목받았던 노스 캐롤라이나와 인디애나를 동시에 잃은 건 안타까운 부분. 물론 2008년 대비 상실한 지역 대부분이 원래 공화당 우세 지역이었으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감으로 잠시 오바마를 선택했던 지역이기 때문에 이것이 전체 판세를 뒤집을만한 영향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승부처는 다름 아닌 29명이 걸려있던 '''플로리다'''였다. 원래 경합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번에는 조지 W. 부시와 앨 고어가 붙었었던 2000년 대선 이후 가장 적은 격차로 승부가 갈렸다.(0.88%p) 플로리다가 개표되던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전국 득표와 선거인단 확보수에서 모두 열세인 상황이었지만 플로리다에서 승리자로 예측된 직후 오하이오, 버지니아 등 다른 경합주에서도 승리가 확정되면서 개표 초반 열세를 뒤집고 우세로 전환해 이후에는 계속 앞서나갔다.
6. 여담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1] 현직 대통령으로서 마지막으로 재선에 실패한 케이스는 19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2] Pro-Life 성향의 랜달 테리는 임신 중절 수술을 비난 하기 위한 광고를 TV에 게재하기 위해 후보 등록을 하기도 했다.[3]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속칭 버서(Birther)라고 부른다.[4] 이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실적을 수치로 제시하면서 "이것은 산수입니다!("It's Arithmetic")라는 명연설을 남겼는데 이것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5] 2008년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존 매케인은 3월에 후보 지명이 확정되었다.[6] 훗날 이 전략을 본받아 극단적으로 활용해 대선에 승리한 사람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7] 2012년 공화당 경선 당시 롬니가 후보로 확정될 때까지 여론조사 상 1위만 무려 5명이 바뀌었다는 걸 기억해보면 당연하기도 하다.[8] 마더 존스가 공개한 영상에서 롬니는 "오바마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47%의 미국인들의 지지에 의존한다", "이들은 정부가 자신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의료보험과 먹을 것, 주택 등 모든 것을 지원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으면서, 세금은 전혀 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걱정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봐야 한다고 설득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주옥같은 발언을 연이어 날렸다.[9] 하원 선거구 별로 승리한 자가 해당 선거구의 투표인단을 가져간다. 상원 몫인 2석은 다른 주처럼 승자가 독식한다.[10] 하원 선거구 별로 승리한 자가 해당 선거구의 투표인단을 가져간다. 상원 몫인 2석은 다른 주처럼 승자가 독식한다.[11] 메사추세츠 주 개표 결과 오바마 60.65% vs 롬니 37.51%, 롬니는 전직 메사추세츠 주 주지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