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구 갑
1. 소개
서울특별시에서도 민주당계 정당 강세 지역인 동북권 벨트 중 하나인 강북구지만, 이 지역은 우이동과 수유동의 영향으로 보수주의가 만만치 않은 지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20대 총선부터 보면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단 걸 보여준다. 현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천준호 의원이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 편의상 성북구가 신설(1949년)된 이후의 국회의원부터 서술한다.
3. 역대 선거 결과
3.1. 15대 총선
새정치국민회의가 승리하긴 했지만, 민자당에서 갈라져 나온 표가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이 당시 서울의 많은 지역구에서 민주당에서 분열된 표로 인해 많은 민주 계열 후보들이 낙선한 걸 생각해 보면 매우 이례적인 결과이다.
3.2. 16대 총선
3.3. 17대 총선
현역 3선인 김원길 의원은 2002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민주당을 탈당해 '후단협'을 만들어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다가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되자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후단협 출신[9] 의 한나라당 인사인만큼 탄핵 역풍도 제대로 받았다. 참고로 이 지역은 제16대 대통령 선거때 서울에서 노무현이 가장 많은 득표를 한 곳이다.
열린우리당에서는 오영식 전 의원이 출마했다. 전대협 의장출신으로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해 당선되지 못했지만, 김영진 의원이 농림부 장관으로 가면서 의원직을 승계받았다. 그러나 2003년 열린우리당으로 가기 위해 탈당하면서 이미 의원직은 잃은 상태였다. 전직 국회의원이지만 비례대표였던만큼 지역에서는 정치 신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인지도는 낮지만 신선함을 어필했고, 여당 후보로서 주민들에게 정책 공약을 어필했고, 탄핵으로 인한 호재도 받았다.
새천년민주당에서는 박겸수 전 서울시의원이 출마했다. 서울시의원 재선에 구청장 후보로도 나서 인지도가 있었고 교통전문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랫동안 이 곳에서 조직을 다진만큼 경쟁력이 있었다. 따라서 표가 갈리는 오영식 후보도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영식 후보는 김원길 후보를 10% 차이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3.4. 18대 총선
현역인 통합민주당 오영식 의원이 재선을 노리고, 한나라당에서는 정양석 수석 부대변인이 출마했다. 정양석 후보는 호남 출신으로 민주정의당 중앙사무처 공채로 들어와 국회 정책연구위원과 의원국장, 기획조정국장 등을 지냈고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총선 기획단장을 맡은 만큼 친이명박 세력으로 분류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획실장 출신의 김서진 창조한국당 후보도 출사표를 던졌다.
이 지역은 야당 텃밭으로 불리지만,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북한산국립공원과 인접한 탓에 재건축·재개발을 위한 고도제한 완화 및 경전철 건설 등 지역개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탓에 5층 이하 20m 이하로 건물 높이에 제한이 걸려 있는 지역이니만큼 고도 제한 완화는 지역 숙원 중에 하나였다. 오영식 후보는 "우이동에서 신설동까지 연결되는 경전철 공사 착공비를 올해 예산에 반영하는 등 지역개발을 위해 힘을 쏟았다"며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중앙정치에서 경륜을 쌓은 사람을 다시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양석 후보는 "고도제한 완화 등 숙원 사원을 이명박 대통령 때 풀지 못하면 해결이 안 된다"며 "힘있는 여당 후보만이 지역을 살릴 수 있다"고 받아쳤다.
선거는 접전으로 진행되었고, 고발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정양석 후보는 오영식 후보 측의 사무국장이 당원에게 현금 20만원을 건냈다고 주장했고, 오영식 후보측은 허위 사실이라며 오히려 선관위가 정양석 후보측을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고 반박했다.
접전 끝에 한나라당 정양석 후보가 오영식 후보를 3.6%차이로 제치고 당선에 성공했다.
3.5. 19대 총선
현역인 새누리당 정양석 의원과 민주통합당 오영식 전 의원의 리턴매치가 성사되었다. 18대 총선에서 당선된 정양석 의원은 경력 허위기재로 고발되었으나 8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아 의원직은 유지했다.
야권 성향의 지역인만큼 이명박 정부의 심판론이 거론되었다. 또한 이때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으로 뜨거웠던 상황이었다. 오영식 후보는 "현 정권은 민생경제를 파탄시킨 무능 정권, 측근비리 부패 정권, 사회적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끌지 못한 불통 정권"으로 규정하고 정권 심판을 강조했다. 또 부족한 고등학교 수를 늘리고 시립전용 도서관을 신설하는 등 교육 인프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노인 인구가 많은 지역인만큼 노인종합복지관도 2배로 확충하개 복지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겠다고 밝혔다. 오영식 후보는 "교육과 복지는 원래 새누리당 것이 아니다"라며, "이명박 정부 4년 동안 4대강에 예산을 쏟아 부으며 복지 예산은 삭감하지 않았느냐"고 비판했다.
정양석 후보는 "중앙에서는 민간인 불법사찰 논란을 두고 여야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지만 정작 지역구 서민들에게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문제"라며,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는 북한산 순례길 완공과 노인복지종합관, 경로당 등 복지시설 확충 등을 이뤄낸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이를 위해 지난 4년간 149억원의 예산을 강북구로 확보한 점을 강조했다. 자신이 재선하게 되면 더 많은 예산을 따와 교육환경 개선에 집중투자하겠으며, 18대에서 고도제한 완화는 성과가 없었지만 재선된다면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선거 결과, 오영식 후보가 7.35% 차이로 정양석 후보를 제치고 다시 여의도로 복귀했다.
3.6. 18대 대선
문재인 후보가 4000여표 차이로 박근혜 후보에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동별로 보면 수유2동, 우이동에서는 박근혜 후보가 승리했고, 번1동, 2동, 수유1동, 3동, 인수동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다.
3.7. 20대 총선
현역인 더불어민주당 오영식 의원은 당의 486 주자로 서울특별시당 위원장과 최고위원을 역임하였으나, 동작구 을 전략공천에 대한 연판장 주도로 지도부와 마찰이 있었고 2015년 11월 문재인 대표의 '문.안.박 공동지도부 구상'이 최고위와 사전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퇴하기도 했다. 결국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었고, 이에 오영식 의원은 지도부의 뜻을 받아들이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은 18대 총선에서 이미 한 번 당선 된 바 있던 정양석 후보를 단수 공천하여 일찌감치 선거 준비에 나섰고, 국민의당은 해당 지역구 시의원 출신이자 정통민주당의 간판을 내걸고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었던 김기옥 후보와 강북구청 근처에서 변호사 일을 하는 이승훈 변호사를 경선을 붙여 김기옥 후보를 조기에 확정지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후보자 등록 며칠 전까지 후보를 공천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11] 결국 박원순 키즈로 불리며 도봉 을 공천을 노리던 천준호 후보와 19대 때 비례대표를 지낸 김기식 의원 간에 경선에서 천 후보가 승리하여 공천이 대충 마무리 된다.
그러나 천 후보나 김 의원 모두 강북구 갑에 지역 공천을 우선적으로 신청한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공천을 받지 못한 채 더민주의 마지막 남은 서울 공천을 받기 위해서 오다 보니, [12] 이미 18대 때 이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양석 후보나 이 지역에서 시의원을 지낸 김기옥 후보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오영식 의원이 천 후보를 서포트 해주면서 조금씩 지지도를 얻기 시작한다.
단 한 번 공표된 여론조사 결과, 놀랍게도 이 지역 정치에 처음 입문한 천 후보가 2위를 달리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선거 판세가 이 이상 뒤집히는 일은 없었다. 출구조사에서 정양석 후보와 천준호 후보가 오차 범위 내 접전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으로[13] 개표 결과 정양석 후보가 단 한 번의 역전도 허용하지 않으며 무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당선되었다. [14]
3.8. 21대 총선
선거 등록 직전까지 후보도 없던 4년 전과는 달리,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세 명의 예비후보가 등록해서 치열한 경선을 치룰 전망이다. 4년 전 선거에서 컷오프 당했던 오영식 전 의원, 4년 전 선거에서 낙선한 천준호 지역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비서실 문화비서관 출신 남요원 등의 싸움이 벌어질 전망으로 보여진다. 아무래도 4년 전 선거 때 강북지역에서 보수정당이 이긴 세 곳[15] 이기에 이 곳의 출마가 더 정당성이 있으며 승리도 무난하리라고 보는 듯 하다.
자유한국당은 아무래도 현역 의원인 정양석 후보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예비후보에는 전 당협위원장인 양재성 씨만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예상대로 미래통합당으로 당 통합을 한 뒤, 정양석 후보를 공천했다.
민중당에서는 공동대표인 김은진 씨가, 혁명당에서는 김건영, 최승환 후보가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그 외에도 무소속 선계선 후보도 등록했다.
그 외 정당들은 아직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정양석 후보 간 1:1 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경선에서 오영식 전 의원이 공천될 경우, 정양석 의원과 세 번째 리턴 매치(역대 전적 1:1)가 될 것으로 보이며, 천준호후보가 공천될 경우, 정양석의원과의 리턴매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3월 3일 4차경선 결과를 통해 천준호 후보의 승리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정양석-천준호 리턴매치가 확정되었다.
선거 결과 천준호 후보가 약 18%차로 여유있게 승리하였다. 여담이지만, 정양석 후보도 이 지역구에서 출마한 이래 최다 득표를 받았다.
여담으로, 국가혁명배당금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지역구 중 하나이다.
[1] 현재의 강북구 지역(당시 고양군 숭인면)은 1949년 서울로 재편입되면서 신설 성북구 관할로 들어갔다.[2] 강조된 부분이 현 강북구 갑 지역(번3동은 강북구 을)이다.[3] 현재의 인수동과는 별개의 동이다.[4] ='''번동, 우이동, 수유동'''[5] 1973년 7월 1일부로, 미아동, '''번동, 수유동, 우이동''', 창동, 월계동, 쌍문동, 상계동, 중계동, 도봉동, 방학동, 공릉동, 하계동이 도봉구로 분구되어, 국회의원 선거구도 이에 맞게 종전의 성북구 선거구에서 도봉구 선거구로 분구되었다.[6] 1980년 8월 27일에 사직하였다.[7] 기존의 도봉구 갑은 창1~5동을 받는 대신 쌍문1동과 쌍문3동을 제외한 쌍문2동, 쌍문4동과 방학1~3동, 도봉1·2동을 도봉구 을로 이관했다. 사실상 도봉구 을 선거구를 새로 분구한 셈.[8]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 결과가 노무현으로 정해지자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한나라당에 입당.[9] 후단협 링크를 보면 알겠지만, 김원길은 단순한 후단협의 일원이 아니라, 후단협의 핵심이자 주도자였다.[10] 재외국민, 부재자 득표수 및 타후보 득표수 제외[11] 공천을 받겠다고 들어온 후보가 한 명도 없었다.[12] 김기식 의원은 마포구 을을 노렸다는 찌라시가 있다.[13] 정양석 38.4 對 천준호 35.7, 김기옥 후보는 25.9%를 기록[14] 참고로 한강 이북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후보는 도봉구 을의 김선동, 중구 - 성동구 을의 지상욱 후보와 함께 셋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세 지역은 각각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경쟁력이 없고 국민의당이 후보가 출마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이는 같은 선거에서 김성태를 제외한 비강남3구 지역인 한강 이남 서울 지역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15] 나머지 두 곳은 각각 도봉구 을과 중구 성동구 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