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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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소속 정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2020년 현재 제37대 경상남도지사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 정계에 입문해 두 차례에 걸친 선거 패배를 딛고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경남 김해시 을 선거구에서 62.4%의 득표율로 당선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그리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때 경상남도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어 52.8%의 득표율로 당선돼 경상남도지사가 되었다.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경상남도지사이다.[3]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가장 대표적인 친문계 정치인으로 손꼽히며 친문계로부터 새로운 차기 대권 주자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4]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이전부터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수행하였고, 그의 대변인 격으로 활동해 왔다. 대통령 취임식 직전과 직후 김정숙 여사와 운전기사를 제외하고 문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탄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데다 친노계 - 친문계의 정신적 고향인 PK 태생이기에 정치공학적으로 호남과 영남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5] 그러나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되어 피의자로서 수사를 받았으며, 김경수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나 기각되었다. 이후 2018년 8월 24일, 허익범 특검이 김경수에 대해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의 공범으로 선거법위반 적용 및 불구속 기소를 결정했고 2019년 1월 30일,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며 항소 준비 중이다. 도지사직은 법정구속으로 인해 중지된 상태. 그리고 이후 4월 17일에 보석 허가 되어 석방됨으로서 도지사직에 복귀했다.
2020년 11월 6일, 김경수는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2심 재판부 또한 1심과 마찬가지로 댓글조작 시연이 있었고 김경수가 이를 참관, 승인해 댓글조작에 공모한 게 맞다며 1심과 같이 유죄 판단하였다.# 1심, 2심이 일관되게 김경수가 '킹크랩 시연회'를 참관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여 이낙연·이재명 양강 구도에서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던 김 지사가 사실상 낙마하면서 투톱 구도가 굳어졌다 평가된다.#
친문계의 적자이자 차기대권주자로 큰 기대를 받았었지만 여론조작사건에 가담하고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정치생명이 벼랑끝으로 몰린 상황이다.#
2. 상세
1994년 신계륜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2002년 노무현 대선 캠프에 합류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연설기획비서관, 공보비서관을 두루 거쳤고 2006년에는 1년간 수행 비서를 맡았다. 퇴임 이후에도 봉하마을로 내려가 수행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사실을 문재인에게 알린 사람도 김경수 비서관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사후에는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두고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 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2011년 민주통합당에 입당,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으나 현직 의원인 김태호에게 밀려 떨어지고,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으나 새누리당 홍준표 현직 지사에게 밀려 또 다시 낙선했다. 하지만 연이은 낙선에도 포기하지 않고 밑바닥 민심을 다지면서 20대 총선에서 다시 한 번 김해시 을에 도전해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가장 많은 득표율을 거두며 승리했다. 이후 친문계 의원으로서 의정 활동에 전념하며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하다가, 당 지도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지 못한 험지 중 험지인 경남도지사에 다시 도전,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의혹을 정면돌파하면서 과반 이상의 표를 얻으며 경상남도에 최초로 민주당 깃발을 꽂는 데 성공했다.
3. 생애
3.1. 학창 시절
1967년 12월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 용안리에서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 사이에서 4남 1녀 중 장남이자 장손으로 태어났다. 교육열 강했던 어머니는 아들을 괜찮은 중학교에 보내기를 위해 초등학교 6학년인 김경수만 인근 대도시인 진주시로 전학시켰다. 김경수는 친척 집에서 기거하면서 진주천전국민학교, 진주남중학교, 진주동명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년 재수하여 86학번으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 입학하였다.
80년대 후반은 반독재 학생운동이 가장 극렬했던 때로, 먼저 대학생이 된 동창들과 만나면 가끔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재수 생활 동안에는 공부하기 바빠 사회 현실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한 이후 교정에 학생들이 던진 짱돌이 날고, 경찰이 쏜 최루탄이 난무하는 현실을 알게되면서 대한민국 정치에 강렬한 고민을 품게 되었다. 집안의 기대와 공무원인 아버지에 대한 걱정 등으로 많은 번민과 방황을 했지만 나만 출세하자고 조용히 공부만 하는 것은 시대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생각으로 2학년에 올라가면서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인 1989년 총학생회 학술부장 시절 가을 축제 때 ‘북한 바로알기 자료집’을 만들었다가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되는 등 모두 세 차례 옥살이를 했다. 6월 항쟁이 끝난 뒤에는 그해 여름 방학에는 ‘공장활동’(공활)에 참가했다. 수원의 와우공단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를 택했는데 일이 익숙지 않은 그는 입사한 지 며칠 안 돼 쇠로 된 부품의 구멍을 다듬는 작업을 하다가 왼손 검지 손가락을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나중에 군 면제를 받았다고 한다. 한겨레
1996년 대학교 후배이자 동성동본인 부인과 결혼하여 슬하에 2남을 두었다. 사귀던 시절 결혼을 생각할 때 여자친구와는 동성동본인데다 본인은 영남, 여자친구는 호남(전남 신안) 출신이라 집안 어른들께 어떻게 허락을 받아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는데, 막상 부모님은 여자친구를 만나 본 뒤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한다. 아내와 결혼할 때 조건이 정치 일은 해도 절대 출마는 안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년 뒤에 남편이 민주당 국회의원에 경상남도지사까지 될 줄은 아마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3.2. 정치 입문
대학 졸업 후 <리더스 비젼>[6] 의 편집부 기자 생활을 했으나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94년 신계륜 의원실에서 일하던 학교 선배의 "국정감사 기간에만 도와달라"는 부탁으로 여의도에 발을 디뎠다. 어떻게 보면 단기 아르바이트로 정치에 입문한 셈이다. 국정감사 후 신계륜 의원이 정책비서로 같이 일해보자는 권유를 했고, 이를 승낙하면서 본격적인 보좌관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7]
15대 총선에서 신 의원이 낙선하자 15대 국회에서는 유선호 의원실에서[8] , 16대 국회에서는 임채정 의원실에서 근무했다. 2001년 말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된 유선호 전 의원의 요청에 따라 청와대 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나, 태어나기도 전에 휴전선에서 장교로 근무하다가 월북했던 외삼촌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3개월만에 청와대에서 보따리를 싸서 나가야 하기도 했다.[9]
하지만 새옹지마라고, 청와대에서 나온 것이 그를 새로운 만남으로 이끌었다. 이광재의 권유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팀 부국장으로 합류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전략기획팀에서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여준 김경수 보좌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거쳐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 행정관,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대선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안면조차 없는 사이였지만, 참여정부 집권 중반기에는 어느새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이 되어 있었다.
3.3. 노무현의 마지막 비서관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후 가족들과 함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 정착해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보좌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저서인 운명은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그날 새벽, 자고 있었던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김경수 당시 비서관에게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떠났다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상태가 엄중하다는 연락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10] 김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봉하를 떠나지 않고 봉하재단 사무국장,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서이자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로 살면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간 노무현과 함께 공부하는 시간은 큰 행복이었다고 김 의원은 회고했다. 오랫동안 보좌관 생활을 해왔지만 자신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결혼 전에 아내에게 약속까지 했지만 2009년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그는 '바보' 노무현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직접 정치에 뛰어들게 되었다.[11]
3.4. 두 번의 낙선, 그리고 당선
2011년 야권 통합을 추진한 시민운동모임 ‘혁신과 통합’ 때부터 문재인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시작했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했다. 당시 주변에서 2011년 4·27 경남 김해시 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서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이 강했지만 고심 끝에 “꽃이 되기보다는 단결과 연대의 거름이 되고 싶다”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한 국민참여당 이봉수 후보는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본인이 직접 경상남도 김해시 을 선거구에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 새누리당 김태호 후보와 맞붙어 47.88%의 적지 않은 득표율을 얻었으나 아깝게 떨어졌다. 이후 18대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후보의 대선 후보 수행팀을 전두지휘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일했던 사이지만 사실 당시까지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경수 의원의 사이가 딱히 가깝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혁신과 통합'을 시작으로 18대 대선에 이르러서 문 대통령이 김 의원에게 대선 후보 수행팀장을 맡을 정도로 둘은 가까워졌다. 첫 대선 실패 이후 문 대통령은 어딜가나 김 의원과 함께 움직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새누리당 홍준표 후보와 경쟁했지만 이번에는 꽤 큰 표[12] 차이로 낙선했다. 하지만 당시까지 보수세가 강했던 경남이었고 보수계 중견 정치인인 김태호와 홍준표의 전국적인 지명도 등의 차이를 감안하면 선출직 정치인으로서는 신인에 가까운 김경수 입장에서는 선전한 편이었고, 김해시와 창원시 성산구에서는 오히려 홍준표를 앞섰다.
또 이 선거가 이후 김경수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도지사 선거 전부터 "미소천사"라는 전국적 팬클럽이 조직되었는데, 선출직 경험이 없는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였다. 노사모가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16대 총선에서 낙선하긴 했지만 이미 재선 국회의원 경력이 있었다.
그후 절치부심 끝에 밑바닥부터 김해시 을 지역구에서 활동을 했고 민심을 얻어가는 데 성공했다.[13] 2012년 선거 때는 사실상 본인도 김해를 잘 알지 못했을 때 출마했다면 2016년 선거에서는 차원이 다른 상황에서 선거에 임했다고 할 수 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 이만기[14] 후보를 꺾고 무려 62.4%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민주당 후보들 중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당선되었다.[15] 김해시 갑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현역 의원 민홍철 후보가 재선에 성공하고, 함께 실시된 김해시장 재보궐선거 및 시의원 보궐 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허성곤이 당선되면서 더불어민주당이 김해시에서 완승하기도 했다.
당선되고 난 뒤 민홍철 김해 갑 국회의원 당선자, 허성곤 김해시장 재선거 당선자, 김종근 김해시의원 보궐선거 당선자, 동시에 낙동강 벨트에서 살아남은 양산시 을의 서형수 당선자와 함께 봉하마을로 가서[16] 노무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봉하마을은 20대 국회부터 김해 갑에 속해있지만[17] 원래 김해 을 지역구였고, 김경수 의원의 뿌리 깊은 연고 때문에 아직도 다양한 행사 때 김경수 의원이 주최측의 역할을 맡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인수위원회를 대신할 국정자문위원회에서 기획분과를 맡았다.
3.5. 경상남도지사 재출마, 당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전부터 더불어민주당의 가장 유력한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선출 때문에 원내 제1당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김경수를 제외한 현역 의원들 중 몇몇 의원들에겐 불출마를 권고했다는 썰이 있다.[19][20] 다른 곳은 몰라도 3당 합당 이후 보수의 텃밭으로 변해버린 경남에서 민주당계 정당 후보가 선택을 받았다는 건 정치적으로 엄청난 의미가 있는 일이기에, 필승 카드로 보았던 김경수의 출마를 위하여 구태여 현역 의원을 내보내지 않아도 될 만한 곳에서는 출혈을 내지 않으려 했던 것.[21]
더불어민주당 지지세가 약한 서부 경남에 위치한 고성군에서 태어났고, 또 서부 경남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진주시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서부 경남을 공략하기에는 이만한 적임자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김경수 본인 스스로 출마 의사가 전혀 없다고 직접 말하기도 했고 또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 지 이제 겨우 2년 조금 넘은 초선 의원이라 지지층 사이에서도 "김경수가 유력한 승리 카드라는 점은 인정하나, 본인이 자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내보내려 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컸다.
2018년 4월 2일,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경남도지사 단일 후보로 추대되었다. 자유한국당에서는 2012년 총선 때 김해시 을에서 맞붙었던 김태호 전 지사가 출마하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면서 6년 만에 리턴 매치가 성사되었다. # 4월 19일 공식 출마 선언을 했는데, 원래는 오전에 경남 진주에서 출마 선언을 하기로 예정되었지만 드루킹 의혹으로 오후로 미룬 뒤 4시 30분 국회 정론관에서 출마 선언을 하였다. 한편, 출마 선언을 미룬 걸 두고 몇몇 기자들은 불출마하기로 했다는 오보를 내기도 했다.[단독]‘댓글 여론조작 파문’ 김경수 의원, 경남도지사 선거 불출마
5월 3일 부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고 14일 본인도 참석한 본회의에서 처리되었다. 5월 17일 캠프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선거 운동은 5월 31일부터 시작했다.
출구조사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16%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왔음에도 개표 초중반에는 김태호 후보가 50%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앞서면서 이변이 연출되나 싶었지만, 밤 11시를 기점으로 따라잡기 시작하면서 개표율을 20% 넘긴 시점에서 결국 역전에 성공했다. 개표 초반 김태호 후보가 앞섰던 것은 경남에서도 특히나 보수세가 강한 서부 지역을 먼저 개표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마침 김경수 지지율이 높은 창원시에서 개표기가 고장나는 등의 문제로 수작업으로 개표하느라 늦어진 점도 작용했다. 선거 개표의 자세한 내용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지역별 결과/동남권 문서 참조.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당선된 최초의 경남도지사'''이며 친문 핵심 인사로서 당원들의 지지도도 압도적이기 때문에 드루킹 사건이나 경남도정에서 이렇다 할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명실상부한 20대 대선의 잠룡이자 문재인 대통령의 후계자로 부상했다'''고 할 수 있다.# 김경수 본인은 JTBC와의 인터뷰에서 '''더 큰 정치'''에 도전할 뜻이 있냐는 질문에 "더 큰 정치 부분은 제가 져야 할 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경남도민들께서 저한테 주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답했다.
무소속의 깃발을 들고 경남도지사에 도전해 성공한 후보가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주목을 받은 바가 있었지만, 김경수는 아예 민주당 깃발을 들고 나가서 한국당이 경남에 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후보를 상대로 예전의 패배를 설욕하면서 승리하였다. 실로 무시무시한 성과를 낸 것.[22]
당선 다음날인 15일, 여의도에서 열리는 민주당 광역단체장 당선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거제, 통영, 고성, 사천, 남해, 하동, 진주, 의령, 함안 9개 시군[23] 을 돌며 민생 현안을 점검하였다.
3.6. 경상남도지사 직무수행
3.6.1. 2018년
법률상 공식 임기가 시작하는 2018년 7월 1일에 재난안전대책회의를 열었다. 본래 7월 2일 공식 취임식을 행할 예정이었으나, 태풍 쁘라삐룬이 한반도에 접근하자 취임식을 취소하고 국립 3·15민주묘지와 창원 충혼탑을 참배하고 경남도청에서 취임 선서를 하며 약식으로 취임 행사를 진행했다.
8월 15일, 리얼미터의 첫 민선 7기 시도지사 직무수행 지지도 조사에서 9위를 기록했다.
9월 10일,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에서는 3계단 내린 12위를 기록했다.*
이번 두 번의 조사에서 다른 부울경 광역단체장이 13위, 15위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그나마 선방한 셈이다. 하지만 허익범 특검이 김 지사를 드루킹과 공범으로 인식하고 기소하는 등 도정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놓여져 있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지지도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10월 8일, 취임 100일을 맞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여러 소회를 밝혔다. 이날 방송에서 사실 지사 출마 생각이 없었고 박원순 서울 시장(!)에게 경남지사 출마를 직접 권유했었다거나, 드루킹과의 대질 심문에서 드루킹이 언론에서 다룬 이야기에 묵비권을 행사했다거나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었다. 김 지사는 드루킹 특검 활동 중 이야기를 하면서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가 나오는 와중에 뉴스공장에서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내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눈에 띄는 지자체장'이 있냐는 질문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꼽으면서 이재명 지사는 스몰딜, 체감형 정책을 아주 잘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여러 논란이 있는 이 지사는 일종의 동병상련이라면서 이 지사에 쏟아지는 논란에 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지사는 친문계 당원들이 가지고 있는 이 지사에 대한 높은 반감과 공격성에 우려한듯 경선에서 받았던 상처들은 이제 서로 보듬어주고 싸우지 말아야 한다며 자신의 팬카페인 ‘김경수와 미소 청년’ 회원들과 당원들에게도 당부했다.
김경수 지사의 도정 100일을 돌아보면 당초 김 지사가 취임하면 적폐청산에 상당한 비중을 둘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김경수 도정'은 경제·민생 행보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물이 투자 유치와 일자리 창출, 제조업 혁신 밑그림 구상, 서부경남 KTX의 국가 재정 사업화다.
특히 짧은 시간에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인 게 바로 투자 유치다. 김 지사는 지난 2일 서울에서 열린 투자유치설명회에서 한국남부발전 등 17개 업체로부터 3조 998억 원의 신규투자와 4220명 고용 투자협약을 끌어냈다. 지난해 열었던 수도권 투자유치설명회 때의 실적[24] 보다 4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그리고 김 지사의 대표 공약이자 서울과 거제를 2시간 교통권으로 좁혀줄 서부경남 KTX 추진을 위해 KTX 사업이 민자가 아닌 국가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혔다. 이런 가운데 김 지사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그 답변을 받아냈다. 서부경남 KTX는 사업비가 무려 5조 원대에 달해 국가 재정사업으로의 전환만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다. * 다만, 예산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 승인과 사업 조기 착공을 위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예타 조사 면제에 대한 다른 시·도의 견제는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는 상태다. 더군다나 울산 외곽순환고속도로 건설이나 새만금개발사업도 해당 지자체가 예타 조사 면제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짧은 기간임에도 투자 유치나 일자리 창출에서 성과를 냈는데, 대통령과 가까운 실세 정치인이 단체장으로 당선된 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10월 8일, 세 번째로 시행된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에서 14위를 기록하며 이전 12위보다 2순위 추락하였다. 같은 부울경권 광역단체장도 나란히 15위, 16위를 기록하며 부울경권 단체장들은 좋지 못한 시작을 보이고 있다. #
11월 9일,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에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허태정 대전시장을 제치고 2단계 오른 12위를 기록했다.
12월 11일, 리얼미터 시도지사 지지도 조사에서 2계단 오른 10위를 기록했다.
신년맞이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는 1계단 하락한 11위(49%)를 기록했다. #
3.6.2. 2019년
2019년 리얼미터 첫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10위를 유지했다.
2019년 1월 29일 서부경남 KTX 건설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으로 확정됐다. 경상남도의 대표적인 숙원 사업 중의 하나가 이제야 첫 삽을 뜨게 된 터라 경남 전역에서도 환영 일색이라는 듯하다. * 이 희소식에 김경수 도지사와 민주당 경남도당 위원회는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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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술할 드루킹 사건의 1심 판결에 따라 바로 다음날 1월 30일 법정구속되면서 직무가 정지되며 경상남도부지사가 약 3개월간 도지사직을 대행하였다. 4월 17일에 일단 보석 결정을 받고 나와 78일만에 경남도청에 출근, 다시 도정에 복귀했다.
6월 27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2019년 상반기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 39%, 부정 39%를 기록했다. 작년 하반기에 비해 긍정 평가가 10% 감소하고 부정 평가가 17% 늘었는데 상기한 법정구속으로 인해 짧지 않은 기간동안 도지사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데다가, 경남권에서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영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10월 3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지역균형발전 전략에서 기존의 기초자치단체 중심의 지역 특화라는 낮은 차원에서 벗어나 부산 등 광역시 등을 중심으로 한 광역생활권(메가시티) 전략을 제시했다.# 기존의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역별 특화 전략이 역으로 특화 기능을 제외한 그 외 모든 중심 기능(회계, 법률, 컨설팅 등)의 수도권 집중을 유도한 경향이 있다고 분석하면서 지방에도 일정 규모의 광역생활권이 조성되어야만 자생력 있는 지방 분권이 가능하다고 본 것.
3.6.3. 2020년
2월 중순부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자 자치단체별 대응이 중요한 상황이 되었는데 인접한 신천지발로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폭증하는 상황이라 TK 자치단체들과 협조하면서 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편, 감염병 확산으로 인한 후유증 조기 극복을 위한 재난기본소득# 및 9월 신학기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최근엔 이런 적극적인 모습에 따라 다시 지지율이 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3월 8일, 도청 브리핑에서 광역자치단체장 중 처음으로 전국민을 상대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했다.#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지속으로 실업자가 증가하고 동시에 소비 심리가 차갑게 얼어붙으면서 영세 자영업까지 타격이 심해지자 임시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이런 김경수 지사의 의견에 동조해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주장하였고# 결국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 반영되어 긴급재난지원금이 지급되었다.#
2020년 5월 경제부지사였던 문승욱 경남 경제부지사가 국무조정실 차장(차관급)으로 영전하면서 다시 한번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공직자를 경상남도 경제부지사로 임명하였다. 이번에 임명된 부지사는 박종원 전 산업자원통상부 중견기업정책관으로 반도체디스플레이과장 시절 일본과 무역분쟁에 맞서 산업보호에 두각을 보여 영전한 것으로 보인다.
2020년 6월까지 공약 이행율이 무려 '''94%'''에 달한다! 140개 이행과제 중 완료는 34개, 실행 중은 97개이다. 그래서인지 지지율도 소폭 상승한 48.7%로 나왔다. 높은 편은 아니지만 작년 이맘때쯤 20~30% 선에서 허우적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상승한 것. #
전에는 메르스, 이번에는 코로나를 거치며 경남지방의 확진자들은 음압병동이 부족해 부산까지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등 의료난이 심해지자 홍준표가 폐업시킨 진주의료원을 부활시키기로 했다.
7월 13일, 미래통합당 경남 지역 의원들과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각하며 경남의 발전을 위해 힘써달라며 함께 회동을 가졌다. 이를 정례화 할 생각도 있는 듯 하다.#
7월 14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김경수 지사의 지지율은 54%가 나와 취임한지 2년만에 과반을 돌파했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등 이슈 선점과 높은 공약 이행율이 극적인 반등을 일궈낸 원인으로 보인다.#
7월 28일, 2기 경상남도 경제혁신추진위를 출범시켜 경남형 그린 뉴딜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2기 위원회는 경남도의 산업 경제분야 정책 자문기구로서 비대면·디지털 사회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고, 과제 발굴과 정책 제안을 하게 된다.#
7월 29일, 2021년도 정부예산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를 방문했다. 주요 공약중 하나였던 부전-마산 전동열차부터 제조현장 디지털 전환 센터 등 총 2,672억원을 정부 예산안에 포함시킬것을 건의했다. #
8월 15일을 기점으로 특정 종교 단체 및 극우 성향 단체를 중심으로한 광화문 집회를 기점으로 코로나19의 2차 웨이브 우려가 커지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 여권 일각을 중심으로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관련한 제안이 속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현재 단계에서 지원금을 지급할 경우 오히려 방역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유보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긴급재난지원금 선별지급과 관련해서 현재 선별지금이 힘든 이유는 국민의 데이터를 각기 다른 부처에서 관리하여 혼선이 온다는 점을 지적하며 통합 데이터 센터의 건립을 제안했다. 선별지금이냐 아니냐를 두고 정치적 공방만을 주고받는 와중에 적절한 대안을 제시했다.
11월 25일 도에서 경고를 했지만 진주시에서 각 통장들끼리 제주도에 연수를 갔다가 코로나 확진으로 인해서 진주시에 코로나 긴급 2단계를 발동하였다.
전국 최초로 동물병원 진료비 표시제와 진료비에 대한 부가가치세 폐지를 경상남도에서 시행하기로 하였다. 경남지사 관저에 사는 길고양이를 키우던 중 한마리가 아파 수술을 하는 일이 있었다. 여기서 지사는 반려동물의 진료비가 상당히 부담이 된다는 것을 들었고 이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우리나라의 진료비는 비싼 편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부가가치세 10%가 붙고, 무엇보다도 동물병원과 반려인의 소통이 부족해 병원마다 비용이 다르다는 편견과 오해가 생겨 자율표시제로 이를 해결 할 수 있을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부가가치세를 없앤다는건 반려동물은 사치품이 아닌 소중한 가족으로서 정부도 대한다는 의미가 된다. 진료비 표시항목은 다음과 같다. 초진료, 재진료 등 기본진찰료, 심장사상충과 같은 기생충 약, 종합백신, 방사선, 초음파 치료 등 주요 20개 진료가 10월 1일부터 창원지역 70여개의 동물병원에서 시험적으로 먼저 표시된다.
3.6.4. 2021년
1월 8일, 갤럽 주관 2020년 후반기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긍정 55%, 부정 28%를 기록하며 9위에 올랐다.# 주요 언론에서는 2심 재판 결과에도 불구하고 취임 1년을 즈음해 기록했던 최저치 39%를 기록했던것과 비교해 이례적인 상승세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안정적인 코로나19 대처와 함께 모처럼만에 찾아온 조선업계의 회복세, 묵묵하게 현안을 조정해나가는 모습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월 4주차 부울경의 정당지지율이 민주당 34.5%, 국민의힘 29.9%으로 역전하는 현상이 일어났는데 이에는 김경수 지사의 역할이 컸다는 평.
1월 19일, 화상회의로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아동학대 및 돌봄 정책에 대해 건의했다.#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 사건 등으로 인해 입양 및 아동 학대 문제가 국민적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 실무를 담당한 지자체장 입장에서 여러 의견을 밝혔다.
4. 사건사고 및 논란
- 대학교 3학년인 1989년 총학생회 학술부장 시절 가을 축제 때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 홍보책자인 ‘북한 바로알기 자료집’을 만들었다가 국가보안법 상의 이적표현물 제작 반포 혐의로 구속되었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90년 3월 20일에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자격정지1년을 선고하였다.
- 1991년 9월 9일 경찰청 보안국은 이적단체 민족해방활동가 그룹의 핵심 조직원으로 활동하여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김경수의 구속영장을 신청하였다.# 민족해방활동가 조직은 1988년 2월 김일성 주체사상에 따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NLPD) 혁명론을 추종하고 주체사상을 학습했으며#,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지향하면서 조직하였으며, 이들은 일정한 장소에 모여 '김일성 신년사', '항일무장투쟁사' 등을 학습해왔다. 또한 60여차례의 각종 시위를 주도하였으며, '전진하는 동지' 등 유인물 40여종을 제작 및 배포하였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992년 5월 29일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한번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자격정지1년를 선고하면서 김경수는 모두 세 차례 옥살이를 했다.
4.1. 여론조작 관련
4.1.1. 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9년 1월 1심에서 '드루킹 댓글조작 공모' 사실을 인정했고 업무방해죄로 징역 2년을 선고하고 김경수를 법정구속하였다. 또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였다. 김경수는 업무방해죄로 징역형 또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 중 하나라도 확정되면 도지사직을 잃고 그 형의 확정일부터 10년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그래서 1심에서 업무방해죄 관련해서는 집행유예 없이 실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집행유예 징역형이 나온 이상 상급심에서 모두 무죄가 나오지 않고서는 도지사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심 직후 법정구속돼 4월 17일까지 서울구치소 독방에 수감되어있었다. 기사
'''김경수 경남 도지사의 입장문'''}}}{{{#!wiki style="text-align: center"
그리고 이후 4월 17일, 항소심서 보석 허가되어 법정구속 77일만에 석방됐다.#재판 과정에서 밝혀진 진실을 외면한 채 특검의 일방적 주장만 받아들였다. 특검의 물증 없는 주장과 드루킹 일당의 거짓 자백에 의존한 유죄 판결은 이해도, 납득도 하기 어렵다. 재판장이 양승태 대법원장과 특수관계인 것이 이번 재판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주변에서 우려했다. 그럼에도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진실이 있는데 설마 그럴까 했는데 우려가 재판 결과 현실로 드러났다. 그동안 저를 믿고 응원해준 모든 분께 깊이 감사 드린다. 다시금 진실 향한 긴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실체적 진실 밝히기 위한 과정을 이어갈 것이며 진실의 힘을 믿는다.
- 서울고등법원은 2020년 11월 2심에서 김 지사의 댓글 조작(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보석 중이었으나 법정에서 구속되지는 않았다.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공직선거법에 무죄를 선고하는데 피고인의 보석을 취소할 일은 아니라고 의견을 모았다"라고 법정 불구속 이유를 밝혔다.
4.2. 무허가 가족묘 관련
조선일보 기사 아버지가 고향인 고성군에 정부의 허가 없이 가족묘를 조성한 일이 있다. 이는 "가족묘지나 문중묘지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해당 묘지를 관할하는 시장 등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4조 3항에 위배된다.
다만 김경수 본인은 '''전혀 죄가 없다.''' 본인이 아닌 아버지가 한 일이며 일반인도 많이 저지르는 실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묘지에 관한 법률이 정비되기 전에는, 그저 누구 땅의 소유이든 상관없이 풍수지리상 좋은 곳이 있으면 그 자리에 고인을 매장했으며 그 이후로 가족들이 이곳에 묘지를 형성하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후보 본인은 문제를 파악한 이후 최대한 빠르게 조치한다고 하였다.
4.3. 유재수 게이트 관련
청와대 민정실이 유재수에 대한 감찰을 무마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친문인사들이 청와대 감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정황이 포착되었는데, 이들 중엔 김경수도 있었다. 김경수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 함께 근무한 바 있으며 백원우 민정비서관에게 “감찰을 받고 있는데 억울하다고 하니 잘 봐달라”고 부탁이 전해진다. 또한 백원우를 통해 감찰 진행상황까지 파악한 뒤 유 전 부시장에게 '(금융위) 국장 자리를 계속 수행하는 건 어렵다'는 답을 줬다고도 한다. #
5. 여담
- 병역은 사실상 면제인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다. 본인이 밝히기를 대학생 시절 공장에서 검지손가락을 다쳐 손가락 접합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라는데, 어차피 김경수는 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여러 번 구속됐었으므로 정상적인 군복무를 하진 못했을 것이다. 친구들은 구속을 당하고 군면제를 받았지만, 본인은 군면제를 받고 구속을 당해 약간 억울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 1988년 8월 30일,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 위반으로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하였고, 그래서 1988년 12월 21일 특별사면 되었다.
- 애창곡은 유진표의 '천년지기'(트로트).
- 소문난 애처가로, 한때 아내와의 러브스토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서울대 선후배 관계로 대학 시절 서로 호감을 가지고만 있었으나, 사회에서 다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연인 관계로 발전. 동성동본[25] , 영남-호남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반대해오던 친인척들을 끝내 설득하며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도 비슷한데, 자신은 영남 출신인데 배우자는 호남 출신인 점과 부부가 서로 같은 대학 출신으로 연애결혼을 했다는 점이다. 이 밖에도 안철수 부부, 홍준표 부부, 김문수 부부도 영-호남 부부이다.
- 6.13 지방선거 당시 김해시 광역의원으로 김경수 지사와 이름이 같은 37세의 후보가 출마하여 득표율 67.0%로 당선되었다. 이 동명이인도 민주당 소속이다. 그 외에 경기도 가평군, 충청남도 공주시, 경상남도 창원시에서는 동명의 한국당 기초의원 출마자들이 있었으며, 가평을 제외한 모든 후보가 당선되었다.
- 7회 지방선거의 SBS 개표방송인 2018 국민의 선택의 바이폰 중 '달과 함께'에 등장했는데 이게 꽤 유명했다. 바이폰 영상.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재인 대통령과 관련이 깊은 친문 계열 후보들의 상황을 전한 것. 배경음악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의 주제가인 달빛의 전설이었다. 이 때 김경수는 맨 첫번째에 등장했는데, 등장 포즈가 마치 진짜 마법소녀마냥 너무나 강렬해서(...) 이목을 끌었다. 이후의 비하인드 뉴스 인터뷰에 따르면 아내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단다.
6. 선거 이력
7. 소속 정당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1] 학창시절은 경남 진주시에서 보냈다.[2] 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 24세손, 수로 72세손 '洙'자 항렬이다. 막장 유튜버였던 김윤태는 그의 아들뻘이고 다른 당 소속이었던 김무성 국회의원은 그의 아버지뻘이다.[3] 2019년 현재 국회의원인 김두관 전 경상남도지사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야권 단일화 이후에 당선되고 나서야 더민주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사례로 처음부터 민주당계 당적을 달고 출마한 김경수 경남지사와는 과정이 다르다.[4] 친문 유력 정치인들은 추미애, 홍영표, 전해철, 최재성, 박범계, 임종석, 김태년 등 많이 있지만 5선 추미애를 제외하면 대부분 3선 정도의 의원들이고, 그 추미애 또한 이재명을 컷오프시키지 않았다는 점에서 극렬 친문들의 비토를 받고 있는 반면, 민주당 최초의 경상남도지사인 김경수는 그 극적인 상황들로 인해 친문의 직계 후계자로 자리매김했다.[5] 2018년 시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층인 친문이 가장 선호하는 차기 대권 후보임은 틀림없다.[6] 지금은 사라진 30~4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월간지였다.[7] “전두환 군부 독재정권 하에서 국회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싶었다. 그러나 국감 기간 직접 겪어본 국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국회에서 하는 일이 통쾌하고 보람도 컸다.”(김경수, <사람이 있었네>,2014)[8] 유선호 의원이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김부겸 후보에게 패해서 낙선.[9] 다른 곳도 아니고 국민의 정부에서 그런 이유로 잘랐겠나 싶겠지만, 그만큼 청와대에서 근무하기 위해서 신원이 철저해야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10] 2012년 초 문재인이 출연한 힐링캠프(SBS)에서도 후반부에 자막으로는 봉하마을에서 연락왔다는 식으로 표현되었지만, 음성으로는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 김경수 비서관이라고 직접 실명까지 언급했다.[11]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는 본인이 모신 문재인의 이야기와 굉장히 비슷하다. 괜히 그가 친문의 장자로 대우받는 것이 아니다.[12] 353,795표(22.8%p)[13] 낙선 후 지역 마을 회관에 회갑연이 열리면 귀신같이 찾아가 어르신들이랑 부대꼈다고 한다. 처음에는 민주당 사람이라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지만, 나중 가서는 볼도 꼬집고 술도 얻어마시는 등, 그야말로 밑바닥 민심을 긁어모았다고 한다. 그 결과 지역구 내에서는 '우리 경수'라고 불린다고. 이는 김경수 뿐 아니라 박재호, 전재수 등 부산, 경남지역 민주당계 정치인들의 특징으로, 오랜 세월동안 한 지역에서만 기반을 다진 지역밀착형 정치인들이 대부분이다.[14] 당시 현역이었던 김태호 의원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상대가 이만기로 바뀌었다. 이만기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당계 정당인 열린우리당으로 출마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낙선하였고, 이후 한나라당 - 새누리당 계열로 자리를 옮겨 출마한 것이다.[15] 2위는 대구 수성구 갑에서 62.3%의 득표율로 당선된 김부겸 의원인데, 득표수로만 따지면 김부겸 의원이 1등이라고 전해진다.[16] 이들만 간 게 아니라 경남권에 나섰던 이들 및 당직자들도 함께 갔었다고 한다. 다만, 2년 전에 눈물을 흘리면서 갔던 김영춘 부산진구 갑 국회의원 당선자는 이번엔 다른 부산 당선자 4명과 함께 참배했다.[17] 현재 민홍철 의원 지역구가 김해 갑이다.[18] 좌우에는 김해 을 재보궐선거 당선자 김정호 의원, 부인 김정순 씨가 서 있다.[19] 실제로 전남도지사 선거 출마를 시사한 이개호 의원이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20] 이번 민주당의 당헌 당규에는 「선출직 공직자가 임기를 4분의 3 이상 채우지 못하고 다른 선거에 출마할 경우 경선 득표수의 10%를 감점한다」는 조항을 신설해 현역 의원의 지선 출마를 억제했다.[21] 결론적으로는 인천광역시장에 박남춘 의원, 충청남도지사에 양승조 의원이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2018년 재보궐선거에서도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어 의석 감소는 없었다.[22] 김태호는 경남 출신에 7차 지선 전까지 경남에서 치뤄진 여섯 선거에서 모두 당선된 만큼 경남에서만큼은 자기 기반을 확실히 갖추고 있던 강자 중에 강자다. 게다가 경남은 3당 합당 이후 민주당에게 사지였다가 그나마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경합 지형으로 돌아선 상황이었다.[23] 거제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약한 서부 경남으로 분류되는 지역이다.[24] 투자 유치 금액 9,100억 원·인력 고용 1141명[25] 둘 다 김해 김씨였다고 한다.[26] 더불어민주당의 20대 총선 당선인들 중 최고 득표율을 기록. 2018. 5. 3. 의원직 사퇴, (경남지사 선거 출마)[27]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