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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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62년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일부리 부산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거창농업고등학교(현 아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농업교육과를 졸업하였다.
2.1. 정치 활동
2.1.1. 비서관 시절
상도동계의 중진 의원이었던 김동영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김동영 의원이 임기 중에 사망하자 서울대학교 강사, 여의도연구소 사회정책실장을 맡았다.
2.1.2. 거창군수 시절
이후 고향인 거창에서 한나라당 소속으로 1998년 경상남도의회 의원, 2002년 거창군수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1.3. 경상남도 지사 시절
2003년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혁규 경남지사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면서 국회의원 출마를 이유로 사퇴하자, 보궐선거를 통해 경상남도지사로 당선된 후 2006년 재선되어 2010년까지 재임하였다. 도지사 첫 당선 당시 만 41세로, 역대 최연소 민선 광역자치단체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경남도지사 3선을 포기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정운찬의 후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었으나, 아내의 관용차 사용을 비롯한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 휘말려 중도 하차했다.# 이때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라는 말을 남겨 인구에 회자되었다.
2.1.4. 김해시 을 국회의원 시절
이로 인해 정치 인생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였으나, 201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경상남도 김해시 을 지역구에 출마하여 제1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기사회생했다. 당시 상대 후보는 국민참여당의 이봉수 후보였는데[3] , 후보 개인의 경쟁력이나 인지도는 김태호에 비해 떨어졌으나 야권 단일 후보로서 야권의 지원을 한몸에 받았고, 특히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거의 상주하면서 선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김태호 대 유시민의 대결이었던 셈. 게다가 김해시 을 지역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있는 곳으로, 친노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그렇잖아도 이 지역에서 내리 재선을 한 최철국 의원은 친노인사였다. 그런 상황에서 당선됐으니 상당한 힘을 받게 된 것.[4][5]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관이었던 민주통합당 김경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비판하며 "민주당이 국민을 홍어X으로 본다." 라는 비속어를 써서 논란이 되었다.
2014년 7월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원래 친이계였음에도 유승민을 비난했고, 신박으로 분류되었다. 당시 정병국[6] , 조해진, 류성걸, 이종훈, 김희국과 같이 친이, 친유로 동시에 분류되는 인사들 외에도 강기윤, 이재오 등 친이계 중진들이 유승민 편을 든 것을 고려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 애초에 친이가 친박과 사이가 좋지 않음을 고려해도 대부분의 친이가 박근혜를 견제하기 위해 당시 유승민을 지지했다.
2.1.5. 제20대 총선 불출마
2015년 8월 3일,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일단 정계 은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는데, 정치인으로는 충분히 야망을 펼칠 수 있는 50대 초반의 나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의중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 일각에서는 대선 도전을 위한 준비라는 추측도 내놓는 중. 다만 불출마 선언 자체는 대권 행보라기보다 다음 총선에서 낙선할까봐 두려워서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지역구인 김해시 을이 워낙 친노 성향이 강해서 야권에 웃어주는 곳이기도 하고, 지역 현안에 소홀했다는 지역 내의 비판여론도 거셌기 때문이다.[7]
2.1.6. 제7회 경상남도지사 선거
이후 별다른 활동 없이 침묵을 지켜오다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김경수 의원이 출마하면서, 2012년에 김경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바 있는 김태호가 자유한국당의 경상남도지사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 '홍준표 색깔 지우기'에 집중하며 선거운동을 했다.
개표 초반 김경수 후보에 5% 이상 앞서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으나, 인구가 많은 창원 성산, 김해 등 동부경남 지역의 개표가 뒤늦게 진행되면서 김경수 후보의 득표율이 치고 올라와 결국 새벽시간대에 역전, 김경수 후보에게 약 10%pt의 큰 차이로 패배하였다. 지선에서 낙선한 자유한국당 후보들 중에서는 그나마 타격이 덜한 편. 몇몇 군데를 빼앗기긴 했지만[8] 그래도 서부 경남에서 승리를 거두면서[9] 나름 선전하였기 때문이다. 선거기간 내내 홍준표와 거리를 두며 상대적으로 지역 밀착형 선거전을 펼친 것도 그나마 타격이 덜한 요인. 물론 개표 초기 몇 시간 동안은 출구조사와 달리 본인이 상당히 앞섰기에 희망고문을 많이 당했을걸로 보인다.본격 시사인 만화에서는 김태호가 동앗줄을 잡고 올라가다가 결국 동앗줄이 끊어지는 걸로 표현했다.
2.1.7. 제21대 총선
재선 경남지사, 험지인 김해에서 국회의원 재선 경력 등으로 자유한국당의 대선주자급 인물로 분류되기 때문에 중앙당에서는 차기 총선에 PK에서 판세를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PK 험지로 분류되는 김해시 을 지역이나 창원시 성산구 혹은 부산광역시 북구·강서구 갑 등 파급효과가 큰 지역에 전략공천 이야기가 나오는데, 김태호 본인은 지난 지선에서도 선당후사의 정신을 보인만큼 이번 총선에는 험지 출마 의사가 없다고 한다.
결국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의 텃밭이자 자신의 고향인 거창이 포함된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지역구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자유한국당 중앙당에서는 중진 험지 출마론을 내세워 대립했다. 2020년 3월 5일 홍준표와 함께 미래통합당 공천에서 컷오프당했고, 링크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는 현역 강석진[10] 후보에게 밀렸으나, 결국 강석진 후보를 꺾고 8년만에 원내 복귀에 성공했다.
2.1.8. 제21대 국회
21대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한 후에, 7월 20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위기를 맞았으나 9월 25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9월 17일, 국민의힘에 복당을 신청했지만 3개월 째 계류 중이다. 결국 연내 복당은 무산되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전봉민 의원이 편법 증여 및 부친의 기자 매수 시도 논란으로 탈당하고 다수 의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할 상황에 처하는 등 개헌저지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홍준표, 윤상현 의원[11] 과 함께 복당을 허용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21년 1월 7일 국민의힘에 복당하였다. 다만 국민의힘 지역구 당협위원장직을 맡고 있던 강석진 전 의원 역시 재신임받아 김 의원이 복당하더라도 차기 지방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적어졌다.
3. 소속 정당
4. 여담
- 나이를 감안해 보면 알겠지만, 키가 굉장히 크다. 또래 정진석의 184cm보다도 크며, 키가 160 중후반대인 홍준표와 서 있을 때는 머리 하나가 더 있는 수준이다. 이는 미래통합당에 키 187cm의 김웅이 들어오면서 갱신되었다.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유세를 하면서 구순이 되신 아버지께서 고향에 내려와 일을 해야 보람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왔다는 말과 함께, 자기 때문에 욕을 먹으셨다며 울기도 했다. #
5. 선거이력
-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도의원,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 선거를 두루 거치면서 6전 6승을 기록했으니 나름 선거의 왕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 경남이 보수 후보가 유리한 곳이라고는 하지만 마지막에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김해는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를 기점으로 민주당 강세지역이 되었고, 실제로 2018년 선거에서 패배할 때는 김해에서는 상대 후보인 김경수에게 몰표를 줬다.
- 그리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선거에서 패배를 맛보며 선거의 귀재라는 별명도 반납하게 되었다.[22]
- 그나마 패배한 자유한국당 주자 중에서는 가장 선전한 편이지만, 최초로 민주당에게 경남지사를 헌납한 인물이라는 불명예도 같이 얻게 되어 버린지라 국회의원은 할 수 있을지언정 당권이나 대권 같은 더 큰 정치행보에 나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23] 물론 이때 판세가 워낙 보수가 궤멸하다시피 한 상황이긴 했다.
- 그런데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패를 한데다, 대권주자급 거물들인 오세훈, 나경원, 황교안 등도 낙선하여 미래통합당의 인재난이 심해진만큼 총선에서 당선된 김태호가 대권주자급으로 상승할 확률이 높아졌다. 이미 박근혜 정권 때도 후순위이긴 하나 대권주자로 거론됐었는데, 앞으로는 유력 주자 중 한명이 될 가능성이 있는 편이다. 현재 야권 내 유력 주자인 홍준표만 해도 17대 대선 때부터 대권 주자로 거론된데다, 17~18대 대선에선 후순위였으나, 19대 대선부턴 유력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한만큼 김태호 또한 앞으로는 유력주자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비록 경남도지사 출신들이 대선에서 낙마하는 징크스가 있긴 하나, 만약 김태호가 차후 대통령이 된다면 이 징크스가 드디어 깨지게 되며, 역대 대통령들 중 경남도지사 출신으론 최초이자 지자체장 출신으론 두번째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그로 인해 과연 김태호가 차후 징크스를 깨버리고 대통령이 될 것인지를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6. 둘러보기
[1] 상산 김씨 집성촌이다.[2] 제학공파 29세손 鎬(호) 항렬을 쓰고 있다.참조[3] 민주당에서 전 국세청 차장 곽진업을 내세웠으나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패했다. 사실 민주당에선 김경수에게 출마를 권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김경수는 유시민과의 관계를 생각해서인지 출마를 포기했다.[4] 반대로 유시민 대표의 대권 가도는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되었으며, 문재인 말고는 차기 대선에서 이길 사람이 없다는, 소위 '문재인 대망론'이 떠오르게 되었다.[5] 유시민 뿐만 아니라, 이봉수도 완전히 잊혀져버렸다.[6] 조해진, 류성걸, 이종훈, 김희국과 달리 정병국이 친유로 분류되던 시기는 2016년 이후 바른정당 창당 시기이다. 이전에는 친유보다는 남원정, 친이 출신 소장파로 분류되었다.[7] 결국 20대 총선에서는 그를 대신해 이만기 교수가 새누리당 후보로 나섰으나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에게 더블스코어로 밀리며 낙선했다. 현역의원인 김태호의 지원을 업고도 더블 스코어로 패했다는 것은 그만큼 김태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8] 하동군, 진주시, 마산회원구, 고성군에서 김경수에게 졌다. 특히 고성군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이 당선되었다. 다만 고성군은 민주당 지지세가 높아져서 민주당을 보고 찍었기 보다는 고향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백두현 후보의 인물론과 도지사 후보로 나선 김경수 밀어주기 정서에서 민주당 후보를 쭉 밀어준 것에 가깝다.[9] 물론 엄밀히 말해서 사실상 김태호의 텃밭인 합천, 함양, 거창, 창녕 등 일부지역에서만 압승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적어도 40%이상 김경수 후보가 득표했다. 그리고 밀양, 통영, 사천, 함안에서는 이기기는 했지만 중간에 역전도 혀용하는 등 찝찝하게 이겼다.[10] 민선 3~4기 거창군수 출신으로 김태호가 경남지사 출마를 위해 거창군수 직에서 사퇴하면서 궐석이 된 자리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바 있다. 이후 20대 총선에서 이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1] 21대 총선 당시 탈당했던 국민의힘 출신 당선자 중 복당이 허락된건 김태호 의원 이전에는 권성동 의원 뿐이었다.[12]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13]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4]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5] 공천 탈락에 대한 불복으로 탈당.[16] 2004.5.19: 사퇴(경남도지사 선거 출마)[17] 전임자 김혁규 사퇴[18] 역대 민선 최연소 광역자치단체장[19] 전임자 최철국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20] 7번의 선거 중 첫 낙선[21] 2021.1.7 국민의힘 복당[22] 같은 당의 남경필 前 경기도지사, 서병수 前 부산광역시장, 김기현 前 울산광역시장도 역시 김태호 前 경남도지사와 똑같이 2018년에 패배하기 전까지는 전승을 기록했으나, 이번 선거로 네 사람 모두 선거 이력상 사상 첫 낙선이 기록되었다. 다만 정계은퇴를 한 남경필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21대 국회에 복귀하였다.[23] 김두관 現 국회의원(양산시 을)이 5회 지방선거때 국무총리 후보자로 영전한 김태호를 대신해서 나온 이달곤 후보를 꺾고 당선된 적이 있긴 하지만, 당시 김두관은 무소속으로 출마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