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식호/2009년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총 13명.
총 2명.
총 7명.
총 6명.
1회 대회와 달리 한국 선수들은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1회 대회 4강은 그래도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축구와 같이 대우해줬지만 이후론 절대로 없다는 병무청의 뜻. 다른 스포츠 종목의 국제대회 우승자도 병역 특례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야구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만 병역 특례를 준다.
더불어 한국 대표팀이 받은 배당금과 상금인 30억 원에서 23억원을 KBO가 도용한 것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열불난 선수협이 법정 소송까지 벌여 참가선수들에게 각각 67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 KBO는 까였으나 결국은 잊혀졌다. 이래놓고 선수들에게 이 대회를 나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병역면제도 안되고 대회 나가서 투수들은 컨디션 문제로 리그에서 고전하여 자신의 연봉 관련같은 경제적 손해를 당해야 하는데도 상금까지 멋대로 떼어먹고 애국심을 운운거리며 나가라고 하는 게 문제 아닐까. 이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2번의 WBC 이후로 국내 야구 커뮤니티와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MLB를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NPB에 관심을 가지는 해외야구팬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미국, 일본, 대만, 중남미 국가들의 실력에 '''기가 죽어''' 있었던 야구팬들이 한국야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한국프로야구는 인기를 되찾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 인기 구단들이 다시 백만 단위의 관중을 동원하게 되고, 사회인 야구, 주니어 야구 등 야구를 즐기고 관심을 보내는 야구 인구가 늘어나면서 한국프로야구는 2010년 초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2012년에는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700만 관중까지 돌파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은 야구가 제외 되어서 야구팬들에게는 좀 아쉽긴 했었다. 야구라는 종목이 영국과 브라질에는 인기는 없으나 조금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거긴 축구가 없으면 안되는 국가라서.
하지만 이 황금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내적 발전을 소홀히 한 한국 야구계는 2013년 열린 바로 다음 대회에서 크나큰 실책을 저지르고 또 그 다음 대회에서는 더 큰 참사를 일으킨다.
한화 이글스에게는 어쩌면 악몽 같은 대회. 김인식 팀 감독이 개막 직전까지 국가대표팀을 맡아 이끈다는 것 자체가 한화에겐 엄청난 페널티였다. 개막이 4월 4일인데 대회는 3월 5일부터 24일이었으니, 가장 중요한 개막 직전 한 달 + 대회 준비 기간 동안 감독이 부재한 상황이 되었으니 한화 팀이 제대로 시즌을 준비했을리 만무하다. 결국 4년 간의 5할 승률을 마감하고 '''창단 첫 해 제외 팀 사상 첫 꼴찌'''를 기록했으며, 김인식 감독은 시즌 후 물러났다[1] . 이것이 한화의 비밀번호 '''5886899678의 사실상 시작'''이었다.[2] 선수로는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 정도만 뛰었지만 이 대회에서 맹활약한 김태균과 이범호가 2009 시즌 끝나고 일본 진출하는 바람에 암흑기가 더욱 길어졌다. 물론 WBC만 문제는 아니었으나, 분명히 시즌 준비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명백하고, 팀 주축 선수들이 맹활약함으로서 일본 구단들이 영입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한화에겐 큰 치명타가 된 것이다. 사실 국가대표팀은 전 시즌 우승팀 감독이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성근 감독이 2008 베이징 올림픽 감독부터 고사하면서 2순위, 3순위로 점차 내려올 수 밖에 없었고, 전 시즌 5위에 불과했던 김인식 감독이 과거 국가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이유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아야 했다.[3] 이 대회 이후에는 다시 우승팀 감독(2010년 조범현, 2013년 류중일)이 국가대표팀을 이끌다가 2013년 WBC의 타이중 참사를 거치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다소 회복한 이후 다시 전임 감독 체제로 바뀌었는데 그 첫 감독이 김인식. 2015 프리미어 12의 우승으로 성공적으로 팀을 이끄나 싶던 김인식 감독은 WBC 2017의 고척돔 참사로 다시 물러나게 되었다.
지난 대회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구대성, 최희섭, 봉중근[6] 등 무려 7명의 메이저리거 소집에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 추신수 단 한명의 빅리거를 합류시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06년 초대 대회 홈런, 타점왕 및 대회 1루수 올스타에 선정된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불참 역시 이번 대회의 전망을 어둡게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김태균, 이범호, 김현수(1988) 등의 KBO 소속 타자들은 대회 내내 공포의 타격감을 뽐내었고, 대표팀 유일한 빅리거인 추신수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름 값을 확실히 해냈다.
투수진 역시 윤석민, 류현진, 김광현, 오승환 등 지난 대회 이후 급성장한 투수들은 상위리그(NPB, MLB)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투구를 펼치며 한국의 상위 라운드 진출을 견인한다.
결국 이들은 추신수(MLB), 임창용(NPB)를 제외하면 KBO 위주의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빅리거들이 즐비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의 기염을 토해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 준우승까지 이루면서 KBO 출신 선수들의 기량은 재평가되었고, 해외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관심도 역시 매우 높아진다.
이는 훗날 한국대표팀 선수들의 상위리그 진출러쉬로 증명된다.[7]
MLB 진출
- 김태균(지바롯데 마린스)[14]
- 이범호(소프트뱅크 호크스)[15]
- 이대호(오릭스 버팔로스) [16]
- 오승환(한신 타이거즈)[17]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하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1. 코칭 스태프
- 이름 뒤의 괄호 내의 소속팀은 2009년 당시 기준. - 옆은 2024-11-08 08:03:04 기준 소속
- 김인식(감독 - 한화 이글스 감독) - 현 한국 야구 위원회 규칙 위원장
- 김성한(수석코치) - 前 한화 이글스 수석 코치
- 양상문(투수코치 -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 전 LG 트윈스 단장,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
- 이순철(타격코치) - 현 SBS 스포츠 해설 위원
- 류중일(3루코치 - 삼성 라이온즈 2군 수비 코치) - 현 LG 트윈스 감독
- 강성우(배터리 및 불펜코치 - 삼성 라이온즈 배터리 코치) - 현 kt wiz 배터리 코치
- 김민호(1루코치 - 두산 베어스 1군 주루 코치) - 현 기아 타이거즈 1군 수비 코치
2. 선수단
2.1. 투수
총 13명.
- 김광현(SK 와이번스) - 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투수
- 류현진(한화 이글스) - 현 토론토 블루제이스 투수
- 봉중근(LG 트윈스) - 前 LG 트윈스 투수, 현 KBS/KBS N SPORTS 야구 해설위원
-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前 NC 다이노스 투수, 현 NC 다이노스 코치
-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 현 삼성 라이온즈 투수
- 윤석민(전 KIA 타이거즈)
- 이승호(SK 와이번스) 현 상무 야구단 투수코치
- 이재우(두산 베어스) - 前 한화 이글스 코치
- 임창용(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 前 KIA 타이거즈 투수
- 장원삼(히어로즈) - 롯데 자이언츠 투수
- 정대현(SK 와이번스) - 前 롯데 자이언츠 투수, 현 동의대학교 투수 코치
- 정현욱(삼성 라이온즈) - 현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 황두성(히어로즈) → 부상과 부진으로 임태훈(前 두산 베어스)(전 후쿠이 미러클 엘리펀츠 투수 )으로 교체
2.2. 포수
총 2명.
2.3. 내야수
총 7명.
- 고영민(두산 베어스) - 현 두산 베어스 1군 주루코치
- 김태균(한화 이글스) - 前 한화 이글스 내야수
- 박기혁(롯데 자이언츠) - 前 kt wiz 내야수 현 kt wiz 1군 주루코치
-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 이범호(한화 이글스) - 前 KIA 타이거즈 내야수
- 정근우(SK 와이번스) - 前 LG 트윈스 내야수
- 최정(SK 와이번스)
2.4. 외야수
총 6명.
- 김현수(두산 베어스) - 현 LG 트윈스 외야수
- 이용규(KIA 타이거즈) - 현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 이종욱(두산 베어스) - 前 NC 다이노스 외야수
- 이진영(LG 트윈스) - 前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 이택근(히어로즈) - 前 키움 히어로즈 외야수
- 추신수(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현 텍사스 레인저스 외야수
3. 본선
4. 여담
1회 대회와 달리 한국 선수들은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1회 대회 4강은 그래도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축구와 같이 대우해줬지만 이후론 절대로 없다는 병무청의 뜻. 다른 스포츠 종목의 국제대회 우승자도 병역 특례를 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야구는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만 병역 특례를 준다.
더불어 한국 대표팀이 받은 배당금과 상금인 30억 원에서 23억원을 KBO가 도용한 것이 드러나 문제가 되었다. 열불난 선수협이 법정 소송까지 벌여 참가선수들에게 각각 67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정작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 KBO는 까였으나 결국은 잊혀졌다. 이래놓고 선수들에게 이 대회를 나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병역면제도 안되고 대회 나가서 투수들은 컨디션 문제로 리그에서 고전하여 자신의 연봉 관련같은 경제적 손해를 당해야 하는데도 상금까지 멋대로 떼어먹고 애국심을 운운거리며 나가라고 하는 게 문제 아닐까. 이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2번의 WBC 이후로 국내 야구 커뮤니티와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MLB를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NPB에 관심을 가지는 해외야구팬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미국, 일본, 대만, 중남미 국가들의 실력에 '''기가 죽어''' 있었던 야구팬들이 한국야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한국프로야구는 인기를 되찾게 된다.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 인기 구단들이 다시 백만 단위의 관중을 동원하게 되고, 사회인 야구, 주니어 야구 등 야구를 즐기고 관심을 보내는 야구 인구가 늘어나면서 한국프로야구는 2010년 초 중흥기를 맞이하였다. 2012년에는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700만 관중까지 돌파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은 야구가 제외 되어서 야구팬들에게는 좀 아쉽긴 했었다. 야구라는 종목이 영국과 브라질에는 인기는 없으나 조금은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거긴 축구가 없으면 안되는 국가라서.
하지만 이 황금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내적 발전을 소홀히 한 한국 야구계는 2013년 열린 바로 다음 대회에서 크나큰 실책을 저지르고 또 그 다음 대회에서는 더 큰 참사를 일으킨다.
한화 이글스에게는 어쩌면 악몽 같은 대회. 김인식 팀 감독이 개막 직전까지 국가대표팀을 맡아 이끈다는 것 자체가 한화에겐 엄청난 페널티였다. 개막이 4월 4일인데 대회는 3월 5일부터 24일이었으니, 가장 중요한 개막 직전 한 달 + 대회 준비 기간 동안 감독이 부재한 상황이 되었으니 한화 팀이 제대로 시즌을 준비했을리 만무하다. 결국 4년 간의 5할 승률을 마감하고 '''창단 첫 해 제외 팀 사상 첫 꼴찌'''를 기록했으며, 김인식 감독은 시즌 후 물러났다[1] . 이것이 한화의 비밀번호 '''5886899678의 사실상 시작'''이었다.[2] 선수로는 류현진, 김태균, 이범호 정도만 뛰었지만 이 대회에서 맹활약한 김태균과 이범호가 2009 시즌 끝나고 일본 진출하는 바람에 암흑기가 더욱 길어졌다. 물론 WBC만 문제는 아니었으나, 분명히 시즌 준비하는데 있어서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명백하고, 팀 주축 선수들이 맹활약함으로서 일본 구단들이 영입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도 아이러니하게도 한화에겐 큰 치명타가 된 것이다. 사실 국가대표팀은 전 시즌 우승팀 감독이 맡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성근 감독이 2008 베이징 올림픽 감독부터 고사하면서 2순위, 3순위로 점차 내려올 수 밖에 없었고, 전 시즌 5위에 불과했던 김인식 감독이 과거 국가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이유로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아야 했다.[3] 이 대회 이후에는 다시 우승팀 감독(2010년 조범현, 2013년 류중일)이 국가대표팀을 이끌다가 2013년 WBC의 타이중 참사를 거치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다소 회복한 이후 다시 전임 감독 체제로 바뀌었는데 그 첫 감독이 김인식. 2015 프리미어 12의 우승으로 성공적으로 팀을 이끄나 싶던 김인식 감독은 WBC 2017의 고척돔 참사로 다시 물러나게 되었다.
5. 개인 기록
5.1. 타자
5.2. 투수
5.3. 평가
지난 대회 박찬호,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구대성, 최희섭, 봉중근[6] 등 무려 7명의 메이저리거 소집에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번 대회 추신수 단 한명의 빅리거를 합류시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2006년 초대 대회 홈런, 타점왕 및 대회 1루수 올스타에 선정된 이승엽(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불참 역시 이번 대회의 전망을 어둡게하는 요소였다.
하지만 김태균, 이범호, 김현수(1988) 등의 KBO 소속 타자들은 대회 내내 공포의 타격감을 뽐내었고, 대표팀 유일한 빅리거인 추신수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름 값을 확실히 해냈다.
투수진 역시 윤석민, 류현진, 김광현, 오승환 등 지난 대회 이후 급성장한 투수들은 상위리그(NPB, MLB) 투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투구를 펼치며 한국의 상위 라운드 진출을 견인한다.
결국 이들은 추신수(MLB), 임창용(NPB)를 제외하면 KBO 위주의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빅리거들이 즐비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준우승의 기염을 토해낸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이번 대회 준우승까지 이루면서 KBO 출신 선수들의 기량은 재평가되었고, 해외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관심도 역시 매우 높아진다.
이는 훗날 한국대표팀 선수들의 상위리그 진출러쉬로 증명된다.[7]
MLB 진출
- 윤석민(볼티모어 오리올스) [8]
-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9]
- 류현진(LA 다저스) [10]
- 이대호(시애틀 마리너스)[11]
-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2]
- 임창용(시카고 컵스)[13]
NPB 진출- 김현수(볼티모어 오리올스)[9]
- 류현진(LA 다저스) [10]
- 이대호(시애틀 마리너스)[11]
-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2]
- 임창용(시카고 컵스)[13]
- 김태균(지바롯데 마린스)[14]
- 이범호(소프트뱅크 호크스)[15]
- 이대호(오릭스 버팔로스) [16]
- 오승환(한신 타이거즈)[17]
[1] 정확히는 계약 만료. 재계약을 안했을 뿐이니 사퇴나 경질은 아니었다.[2] 포스트 시즌 실패를 기준으로 비밀번호를 짜기에 5부터 시작하지만, 5위를 찍은 해도 5할 승률은 넘겼으며, 4위 삼성 라이온즈와 한 경기 차이였으니 실패한 시즌은 결코 아니었다. 문제는 그때도 스멀스멀 나오던 망함의 냄새가 2009 WBC를 거쳐 폭발하며 꼴찌로 추락한게 문제지.[3] 김인식 감독은 2002년 처음 감독을 맡아 2002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으며, 김재박이 감독이 된 후 2004 아테네 올림픽 예선도 통과하지 못하자 다시 감독직을 맡아서 2006 WBC를 이끌게 된 것이다. 이후 김경문을 거쳐 다시 WBC 감독을 맡았다.[4] 이범호와 대회 공동 1위[5] 대회 1위[6] 단 2005 시즌의 봉중근은 메이저리거 등판이 전무한 마이너리거 신분이었다.[7] 하지만 이들 중에서 크게 성공한 인물은 류현진, 오승환, 이대호 정도다.[8] 실제로 계약을 했지만, 마이너 리그에서만 뛰며 메이저리그 데뷔에 실패했다. 이 후 2015년 원 소속팀 KIA 타이거즈 복귀[9] 2016년 ~ 2017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활약했다. 주로 외야 플래툰 맴버로 기용되며 규정타석 진입에는 실패했다. 이후 2018년 국내 복귀 후 LG 트윈스 계약[10] 2013년 ~ 2019년 LA다저스에서 활약했다. 한국인 최초로 2018시즌 월드시리즈에 선발등판한 것에 이어, 2019시즌 아시아인 최초로 MLB ERA Leader 및 올스타전 선발 등판을 경험하며 세계 최고의 투수중 한명으로 도약했다.[11] 2016년 시애틀 마리너스에서 1B/DH 플래툰 자원으로 단년간 활약했다. 2017시즌에도 영입을 원하는 빅리그팀들이 존재했으나 2017년 전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복귀[12] 16년 ~ 1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마무리투수 또는 필승조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부상과 향수병이 겹치며 2019시즌 도중 로키스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13] 2013~2014년 시카고 컵스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시즌 대부분을 재활과 마이너리그에서 보냈다. 메이저리그 기록은 2013년의 6경기 등판이 전부였다.[14] 2010년 ~ 11년. 2년 계약이었으나 1년만 반만 퇴단 이듬해 전 소속팀 한화 이글스로 복귀[15] 2010년 ~ 11년. 김태균과 같은 2년 계약이었으나 첫 해 빼고 2군 생활 후 11년도 1월 국내로 복귀 KIA 타이거즈 계약[16] 2012년 ~ 13년. 2년 계약 후 14년 ~ 15년 소프트뱅크 호크스 입단[17] 2014년 ~ 15년까지 한신 타이거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포스팅 시스템으로 인한 진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