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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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지가 생기는 곳에 다른 기술과 예술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따라서 농부야말로 바로 인간 문명의 선구자이다.
- 대니엘 웹스터
農夫'''農者天下之大本'''
'''농자천하지대본''' (농업은 세상의 큰 근본이다.[1]
)
1. 정의 및 설명
농사짓는 일을 하는 사람.
인간이 사는 데 필요한 의식주 중 식(食)은 전적으로 이들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으니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산업의 단계 구분 중 원재료 생산에 해당하는 1차 산업을 대표한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 의한 직업코드는 61, 정식 명칭은 '농업 숙련 종사자'. 보통 '농부'라고 지칭하는 논이나 밭에서 곡물이나 채소류 등을 재배하는 유형은 직업코드 611인 '전답작물 재배 종사자'라고 한다.
산업혁명 이전에 '공장제 대량생산'과 '경제성장'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공무원을 제외하고 국가의 동력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직업으로 인식되었다. 당시 농민은 생산력이자 국민 그 자체였다. 한중일에서 쓰이던 이른바 '사농공상', 즉 선비(일본은 무사) - 농부 - 수공업자 - 상인이라는 사회 계급 분류법만 보아도 농민이 낮지 않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2] 그래서 위에 농자천하지대본, 농업은 천하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근본이라는 말이 나왔다. 사람들이 먹는 밥은 결국 농민들의 노고로 만들어지는 법인 것이며 인공식량이 나오지 않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진리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민의 비중은 서서히 낮아져 갔다. 영국의 인클로저 운동이나 한국의 저곡가 정책 등 산업화를 위해 농민이 희생당하는 일도 많았다. 특히 산업이 발달할수록 농촌을 떠나는 사람은 늘어갔고, 현재 세계 곳곳의 농촌은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겪고있다.
과거에는 쌀의 생산량을 근거로 만섬을 거두면 만석꾼, 천섬을 거두면 천석꾼이라 해서 부의 척도로 봤다. 또한 일본에서는 아예 고쿠다카라 하여 쌀을 얼마나 거두느냐를 판별하기도 했는데 이를 근거로 각 다이묘들의 세력을 측정했다. 즉 16만석을 거둔다면 12만석 거두는 다이묘보다 세력이 크다는 논리[3] 아이러니하게도 만석꾼이라는 말의 유래는 직접 농사를 지어서 만 섬의 곡식을 얻는 농부가 아니라 고대 중국 시절 노동에 힘을 들이지 않고 오로지 세금만으로 만 섬의 곡물을 거둘수 있는 광대한 농지를 가진 고위 관료를 뜻하는 말이였다.
2008년 전세계 원자재 값이 폭등, 콩이나 밀 등의 생필품 재료 값도 함께 뛰었고 이는 쌀 빼고는 변변한 자급작물 하나 없는 대한민국에 폭탄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이 일은 국가적으로 농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화석연료가 무한정 나오는 것도 아니고,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인류의 생존을 지탱할 동력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농업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대의 농업이 비료나 농약, 농기계 등에 화석연료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을 볼 때[4] 화석 연료 없이도 많은 수확을 보장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게 안되면 맬서스 트랩에 다시 사로잡힐 가능성이 크다.
2. 오해와 진실
그 실질적인 중요함에 비해 대한민국에서는 전근대적인 이미지로 '''무시'''를 받고 있다. 예로 '''"도시에서 실패하면 시골에 내려가 농사나 지어야지"'''라는 도시 촌놈스러운 말을 들 수 있는데, 이는 농부들을 모독하는 발언으로 농촌과 농업의 현실을 알지 못하면 말아먹기 딱 좋은 행동이다.
사실 농사는 상당한 숙련을 요구하는 엄연한 '''기술'''이다. '''땅, 작물, 날씨, 시세, 농기계 등의 폭넓은 지식 + 일정 규모 이상의 땅, 돈과 같은 기초 자본 + 부지런함과 체력[5] + 농사요령 + α''''가 필요하다. 땅과 돈이 있을 경우, 지식이나 부지런함과 체력 등등은 없어도 경험으로 채워지니 5년 이상 고생하면 된다. 농사를 지어 최소한 손익 분기점을 넘기려면 예상외로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제 갓 귀농한 사람이 첫해부터 이익을 보기 어렵다. 심지어 출타 전에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귀향 후 이전의 감각을 되살리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된다. 농업은 공업 못지않게 노하우와 기술이 매우 중요하며 실제 농사 지어보니 '차라리 도시 생활이 낫더라' 하고 다시 역귀향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체력이 정말 중요한데, 기계가 많은 일을 대체해 주었다곤 하나 아직도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하고 정말 힘든 일이다. 집에서 화초 한 개 키우려고 해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을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백만, 수천만 개 키우는 게 바로 농사다.[6]
작물의 종자 종류와 각 작물의 생육환경, 수확 시기, 비료의 성분별 배합비율이나 시비 시기, 약제살포 시기와 분량 등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며, 트랙터나 콤바인이 밭 한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켰을 때 일정 수준 이상의 대처는 할 수 있어야 한다.[7] 시설농업을 경영하는 농부라면 온실의 온도조절장치의 유지 보수, 수경재배 배양액의 제조 등도 기본적으로 꿰차고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대농을 하고 계시거나 혹은 했던, 중장년층, 어르신들과 진지한 대화를 할 기회가 생긴다면 알 것이다. 그들이 겉보기엔 입이 험하고 성실하게 출퇴근만 하고 일처리는 대충대충 하는 것처럼 보여도 뭔가에 대해서 물어보면 이 작물에 이 타이밍에는 비료를 얼마만큼, 짓는 방식과 농산물 거래 방식 및 현 상황에 대해서는 일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훤하게 꿰차고 있는 분들이다.
더욱이 최소한 5년은 수업료를 지불하는 셈 치고 손해를 감수하며 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그 5년이 지났을 때 빚이 '''천만 단위를 넘는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최소 5년 동안 손해만을 보는데 부자가 아니고서야 돈이 어디 있겠는가. 돈 없으면 애초에 농사지을 꿈도 꾸면 안 된다. 그래서 돈 없으면 '시골에서 농사나 지어야지' 하는 발상도 처음부터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게다가 현대의 농업은 고정자산의 비중이 높아지고 기계화가 고도로 진전되고 있기 때문에,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를 경작하는 자영농이 아닌 이상 신규로 농업을 하려면 막대한 자본금도 필요하고 농업 관련 정보나 기자재를 운용할 수 있는 능력도 보유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농기계 값이 천만 단위다. 농기계를 사고 나서 돈이 없는데 수입도 최소 몇 달 뒤에 나오는데 그동안 어떻게 먹고살겠는가. 일반적으로 트랙터 하면 생각나는 커다란 바퀴 4개에 유리가 달려 있고 앞에서 보면 왠지 몬스터 트럭을 연상하게 하는 그 트랙터가 중고가 1천만 원대이고, 좋고 오래가는 것이라면 최소 3천만 원대이다. 거기다 트랙터 하나만 가지고서 농사를 지을 수는 없다. 크게는 콤바인, 대형 이앙기, 작게는 경운기, 관리기, 소형 이앙기, 건조기, 저온 창고, SS기 등 백 단위, 천 단위로 돈 들어갈 농기계가 끝이 없다.
밭에 농약을 칠 때도 1000평 2000평 같은 부업 정도의 소형 농가라면 등짐펌프나 동력 살포기로 하루 종일 개고생하면 어떻게든 된다지만 농사로 제대로 돈을 벌려 한다면 당연히 1만 평은 우습게 넘어가고 논농사의 경우 10만 평이 훌쩍 넘어가며 이만한 범위를 혼자서 혹은 부부끼리 둘이서 일을 하려 하면 기계를 안 쓰고 제때 일을 끝마치기에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온다. 약을 치는 것도 다 정해진 시기가 있으며 그 시기를 놓치면 아무짝에 소용없는 헛짓거리인데 한정된 시간 내에 1만 평이 넘는 밭에 등짐펌프나 살포기 하나 들고 다 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양을 줄이는 것은 그냥 난 돈 벌 생각 없고 그냥저냥 입에 풀칠만 하면서 지인들과 나눠먹을 거라는 소리 나 마찬가지다. 실제로도 시골에서 소농을 하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너무 나이가 들어 몸이 따라주지 못해 땅을 다 팔아치우고 자식들 혹은 이웃들과 나눠먹을 용도로 대충 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농을 안 하고 고수입을 벌어들이는 농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란 소리다. 결국 농사로 안정적인 고수입을 바라보려면 어마어마한 시간, 돈, 체력을 갈아 넣어 반드시 대농을 해야만 하는데 이 와중에는 또 부실한 성능으로 효율적인 일처리를 하지 못해 억대에 근접하는 농기계를 구비할 일도 반드시 생기기 마련이고 실제로 대농을 하는 농가에 가보면 대형 트랙터, 콤바인, 이앙기 값이 죄다 억대에 근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8]
물론 농산물 종류에 따라 일부는 없어도 되기는 하지만 당연히 필요 없는 것보다 필요한 농기계가 더 많다. 심지어 대형 농기계의 경우 부속품 가격도 백만 단위. 뭐, 한 번 사놓으면 오랫동안 쓰니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그 외에도 돈이 또 미치도록 깨진다.
사람을 고용해서 농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번 돈의 상당 부분이 사람 고용하는 인건비로 들어간다. 시골에서 고용할 때 일당만 주는 게 아닌 2~3끼 식사에 새참까지 다 사주고 해야 되기에 더 비싸다. 일당 자체도 꽤 비싼 데다 요즘은 일용직이라도 월 8일 이상 근무 시 4대 보험 가입이 의무인 건 덤. 일이 상당히 고되기에 새참 역시 비싸며, 새참으로 빵, 튀김, 음료를 엄청 먹는데 양이 거의 식사와 맞먹는다.
게다가 기술적인 부분 말고도 영업채널도 꿰고 있어야 한다. 즉 가락동 도매시장이나 강서 도매시장의 어느 중도매인과 직접 계약을 할 것인가, 농업회사법인이나 영농조합법인 같은 농업 법인을 설립하여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농협 채널을 이용할 것인가의 의사결정과 실천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농작물을 판매하는데 소량이면 시장에서 팔면 되지만[9] , 크게 할 경우 도매시장이나 농협과 계약을 해서 하는데, 도매시장에 할 경우 과일을 본인이 선별을 하고[10] 박스를 사서 포장을 하고[11] 개인 차량에 실어서 도매시장에 가서 직접 물건을 내리지 않으면, 돈을 운송료, 포장비, 박스 값 등등 엄청 가져가고, 그렇다고 농협과 계약을 해서 한다 해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도매시장 값의 반 조금 더 된다.[12] 그리고 도매시장의 경우 인맥도 크게 작용한다. 정리하면 '''사람을 고용해서 하는데 도매시장에 과일만 가져다주면 손에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다.''' 농부도 엄연한 개인사업자라 내가 생산한 상품(농산물)의 판로를 개척해야 돈을 벌수 있는 것이다.
경제 관련 지식도 꿰고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농부들은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고 1년에 한번, 많으면 두세 번 큰 대금을 지불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지출은 당연히 매일 꼬박꼬박 나갈뿐더러 농사라는 게 큰 변수가 많기 때문에 현금이 필요하면 한 달만 버티면 되는 다른 사회인들보다 현금 관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대부분 농사하다가 손해를 크게 보는 사람들은 자연재해나 그런 여타 상황 외에도 현금 관리가 부실하기 때문에 더 큰 손해를 본다.
그것뿐만 아니라 천재지변 등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수입이 심각할 정도로 크게 좌우된다. 비가 많이 와도 병충해 피해가 심각해져서 작물의 60~80%를 버려야 하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인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반 이상을 버리고 나머지도 상태가 개판이 되면 돈이 안 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갈아엎는다. 특히 고추는 습도가 높으면 탄저병에 걸려서 가지에 달린 채로 썩어들어가고, 따놓은 것들도 말리는 도중에 썩어들어가는 꼴을 보기 십상. 이런 상황에서 손해를 안 보려면 옵션 계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종류의 계약은 그야말로 헐값에 가깝다. 배추가 산지에선 2천 원도 안되는 값에 거래되는데 시장에선 만원 가까이 나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고.
아주 드물게 농산물값이 폭등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이미 농사가 흉년으로 작살난 상태라서 팔 수 있는 물량 자체가 아예 없다. 당연하지만 아무 이유 없이 폭등 할리가 없기 때문.
물론 천운이 따라주어 특정 농산물 가격이 폭등한 상태에서 본인이 해당 물량을 많이 쥐고 있다면 로또가 따로 없긴 하다. 그래서 미국이나 호주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들의 말 중에 '''"진정한 도박을 하고 싶다면 카지노로 가지 말고 농사를 지어라."'''라는 말도 있다.
3. 인물
3.1. 농부 출신 유명인
- 강기갑
- 김순권
- 김정호 - 농업법인 (주)봉하마을 대표. 20, 21대 경남 김해시 을 국회의원이다.[13]
- 시모 해위해[14]
- 안성덕
- 오토 폰 비스마르크[15]
- 한태조 고황제 유방
- 한열조 소열황제 유비
- 유유[16]
- 정운천[17]
- 명태조 주원장
- 전철민[18]
3.2. 별명이 농부인 이들
유래는 씨앗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
유래는 역시 C를 뿌리고 다니는 사람.
- 레벨 업이나 골드 획득을 위해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 곳에서만 계속 사냥을 하는 온라인 게임 유저
이러한 행위 자체는 농사라고도 부른다.
나서스의 Q 기술은 Q로 적을 죽일 때마다 위력이 강해지는데, 그것을 위해 미니언을 착실히 잡는 것을 '농사를 짓는다'고 빗댄다.
타이베리움을 행성에 심어놓고 타이베리움이 행성을 모두 잠식하면 그걸 수확하러 오기 때문에 우주 농부라 불린다. 이런 선량한 농부들을 Nod와 GDI는 무참히 박살내고 쫓아낸다. 해당 문서에서 자세한 내막을 참조할 것.
"뼈에서 살을!"이란 대사가 "벼에서 쌀을!"이라고 왜곡되어버린 덕에 붙은 별명. 사실 농부보다는 농민군주로 주로 불린다.
실제로 벼농사를 짓는 농부며, 농사철에 따라 방송시간이 유동적으로 바뀐다.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던 2000년대 초반 이후로는 작품을 만든다는 소식보다 부모님 일손을 도와서 길러낸 감을 출판사에 보내줬다는 소식이 더 많이 들리면서 본업이 농부고 작가는 취미라는 의미로 팬들 사이 사용되는 별명이다.
별명이 타농부다... 실제로 작중에서 농사를 짓는 모습이 나왔으므로 아래 창작물에서의 농부 항목에도 포함.
시골틱한 외모 덕에 붙은 별명. 농부 후안은 바리스타입니다 광고 덕분에 더욱 흥했다. 고대 엔하위키 시절에는 독자항목은 없고 아예 농부 항목에 버젓이 리켈메를 설명하고 있었다.
'리퍼'라는 말이 '수확하는 자'라는 뜻이다.
3.3. 창작물에서의 농부
원래 군인이 되기전에 카즈미가 운영하는 농장의 농부들이였다.
- 난다 난다 니얀다 - 타이거맨
- 노기 와카바는 용사다 - 시라토이 우타노
- 드래곤볼 - 농부(드래곤볼), 손오공
- 마블 코믹스 - 타노스
-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타노스(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 보이 프렌드(베타) - 호다카 나츠키
- 워크래프트 시리즈 - 농부(워크래프트 시리즈)
- 에밀 크로니클 온라인 - 농부(에밀 크로니클 온라인)
- 단간론파 3 -The End of 키보가미네 학원- - 반다이 다이사쿠
작품 내외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농부의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기관에서 농업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캐릭터의 원본인 실제 인물이 만년에 문단을 떠나 농사를 지으면서 살았다는 점을 그대로 캐릭터 설정에 반영했다. 그래서 대사 곳곳에서 농사 관련 이야기가 자주 나오며, 취미도 밭일하기.
생계를 위해서 농사일을 하는 듯 하다.
원래 농부였으나, 우연히 버드닉 웨이브를 맞고 제트맨으로 싸우게 되는 인물이다. 해적전대 고카이저 28화에서 후일담이 언급되는데, 무농약 채소 인터넷 판매로 유명한 사장이 되었다고.
- 천수의 사쿠나히메 - 사쿠나히메, 타우에몬
- 쿠키런 - 당근맛 쿠키
- 템빨(판타지 소설) - 피아로
- 포켓몬스터 - 하푸우, 아킬
- 피전트
- KOF 시리즈 - 료 사카자키
- 타노스
-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시리즈의 농부.
3.4. 기타
- 노무현 - 제 16대 대통령. 퇴임 후 농부이자 봉하마을 이장으로 말년을 보냈는데,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상 감투쓰고 뭔가를 맡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므로, 그가 했던 일은 소작농에 가까웠다. 정치적 동지였던 김정호가 대표로 있었던 영농법인 봉하마을 소속 소작농이라 보면 된다.
[1] 者는 '사람' 말고 '것'으로도 해석하므로 農者는 농사짓는 사람뿐 아니라 농사짓는 것 전체를 뜻한다.[2] 물론 당시엔 인구 대부분이 농부라, 수공업자나 상인이 천대 받는 수준이었지 농민에겐 딱히 특권 같은 건 없었지만.[3] 물론 이것도 일부는 오차도 있는데 1만석이 안 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다이묘로 인정해주기 위해 다이묘를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도인 1만석으로 인정해주는 사례가 있기 때문 이 경우는 농업이 아닌 다른 경제적인 이유가 컸다.[4] 특히 미국과 같은 대규모 농업의 경우에는[5] 고대부터 논밭일은 상당한 중노동이다.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된 현대 사회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6] 무한도전에서도 벼농사 특집 도입부에서 출연진들이 무조건 땅만 넓으면 좋은 것이라 여겨서 마을 이장님에게 엄청난 면적의 땅을 임대 받았는데, 막상 시작하자마자 지쳐서 결국 임대 받은 땅 크기를 줄여달라고 이장님께 하소연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7] 초기엔 이런 걸 자주 물어봐야 하기 때문에 농촌 생활의 기본은 이웃과 잘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대문이 바로 옆에 달린 옆집이라도 인사 한 번 안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도시 생활에 익숙한 도시민이 이런 농촌식 라이프스타일에 빨리 녹아들 리가...[8] 이분들 중엔 어마어마한 농기계 값에 들어갈 돈에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자가용을 다 팔아치운 분들도 꽤 많은데, 시내나 타지에 나갈 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옆 동네에 놀러 갈 때는 대부분은 경운기, 간혹 트랙터나 콤바인을 자가용 삼아 타고 놀러 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9] 그렇다고 잘 팔리는 건 또 아니지만...[10] 선별하는 것도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또 먹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외관이 조금이라도 안 좋은 것들은 상품성이 없으므로 본인이 먹든지 버리든지 한다.[11] 포장하는 것도 요령이 있다, 포장할 때 같은 물건이라도 과일 같은 경우 배치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12] 실제로 도매시장까지 직접 모든 걸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농협의 두 배 정도 나올 때가 간혹 있다.[13] 실제 농부로 있었던 기간은 10년 남짓 정도밖에 안된다. 나머지 생애는 청와대 비서관과 시민운동가.[14] 겨울전쟁에 참전하기 전에는 본래 농부였던 사람이다 이후 저격수로 직업변경[15] 경영 능력이 모자랐던 아버지 대신 8년간 농장을 관리했다.[16] 유송의 창건자로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농부 출신 황제다. 그래서 유송을 세운 후에 궁궐 내에 자신이 쓰던 농기구들을 전시한 박물관을 세워서 후손들에게 군주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지라고 했지만, 유의륭을 제외하면 유송 왕조 내내 명군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17]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국산 키위를 참다래라고 이름을 붙여서 브랜드화한 사람이다.[18] 더 히든 소속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