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총리

 




'''[image]
'''대한민국 부총리'''
'''
'''大韓民國 副總理'''
'''The Deputy Prime Minister
of the Republic of Korea'''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v|1> [image]
[image]
'''홍남기'''
<v|1> [image]
[image]
'''유은혜'''
1. 개요
2. 현존하는 부총리
2.1. 경제부총리
2.1.1. 경제기획원 장관 겸임 (1963 ~ 1994)
2.1.2. 재정경제원 장관 겸임 (1994 ~ 1998)
2.1.3. 재정경제부 장관 겸임 (2001 ~ 2008)
2.1.4. 기획재정부 장관 겸임 (2013 ~ 현재)
2.2. 사회부총리 (2014 ~ 현재)
3. 폐지된 부총리
3.1. 통일부총리 (1990 ~ 1998)
3.2. 교육부총리 (2001 ~ 2008)
3.3. 과학기술부총리 (2004 ~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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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부조직법 제19조(부총리) ① 국무총리가 특별히 위임하는 사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부총리 2명을 둔다.
② 부총리는 국무위원으로 보한다.
③ 부총리는 기획재정부장관교육부장관이 각각 겸임한다.
④ 기획재정부장관은 경제정책에 관하여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한다.
⑤ 교육부장관은 교육·사회 및 문화 정책에 관하여 국무총리의 명을 받아 관계 중앙행정기관을 총괄·조정한다.
부총리(副總理, Deputy Prime Minister)는 국무총리가 특별히 위임하는 사무를 처리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특정 부처의 장관이 겸임할 수 있으나, 주로 정부의 주요 시책 담당 부서의 장관이 겸임한다. 제3공화국 시절 1963년 처음 제도가 도입되어 사라졌다 부활했다를 반복했다. 대통령국무총리나, 제1공화국 시절의 부통령대한민국 헌법에 규정돼 있었던 직책이지만, 부총리는 헌법이 아닌 법률로 규정된 직책이다. 그리고 국무부총리나 부국무총리 식으로 부르지 않는다.[1]
부총리 앞에 붙는 명칭은 따로 정부조직법에 규정돼 있지 않지만, 박근혜 정부문재인 정부에서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므로 '''경제부총리'''(經濟副總理),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사회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므로 '''사회부총리'''(社會副總理)로 부르고 있다.
제3공화국·제4공화국·제5공화국 시절에는 경제부총리만 두었고, 노태우 정부문민정부(김영삼) 때 통일원 장관이 겸임하는 '''통일부총리'''(統一副總理)를 추가했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이래로 1998년에는 부총리직이 아예 없어지면서 경제부총리와 통일부총리직이 폐지되었으나[2][3] 2000년에 부총리직을 다시 신설하면서 경제부총리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겸임하는 '''교육부총리'''(敎育副總理: 현 사회부총리에 해당)가 신설돼 참여정부(노무현) 때까지 있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과학기술부 장관이 겸임하는 '''과학기술부총리'''(科學技術副總理), 줄여서 '''과기부총리'''(科技副總理)까지 두어 총 3명의 부총리가 있었다. 작은 정부를 표방하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부총리직이 전부 폐지되었으나[4] 박근혜정부 중반 때 현재의 경제·사회부총리 체제가 되었다.
국민의 정부까지는 국무총리 궐위 시 국무총리로 지명된 사람이 국무총리 서리로 대행했지만 참여정부부터는 부총리가 대행한다.
현재 부총리는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이다. 국가의전서열상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유은혜 사회부총리이다.
이외에도 감사원장 또한 부총리급 공무원에 해당한다.

2. 현존하는 부총리



2.1. 경제부총리


특이하게도 국민의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는 서열 1위의 장관으로만 보임되었는데, 그나마도 국민의 정부 후반기에 다시 재경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임하게 되었고, 이명박 정부가 끝나면서 다시 부총리로 승격되었다.

2.1.1. 경제기획원 장관 겸임 (1963 ~ 1994)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제3공화국
7대
김유택 (金裕澤)
1963년 12월 17일 ~ 1964년 5월 11일
8대
장기영 (張基榮)
1964년 5월 11일 ~ 1967년 10월 3일
9대
박충훈 (朴忠勳)
1967년 10월 3일 ~ 1969년 6월 3일
10대
김학렬 (金鶴烈)
1969년 6월 3일 ~ 1972년 1월 4일
11대
태완선 (太完善)
1972년 1월 4일 ~ 1974년 9월 18일
제4공화국
12대
남덕우 (南德祐)
1974년 9월 18일 ~ 1978년 12월 22일
13대
신현확 (申鉉確)
1978년 12월 22일 ~ 1979년 12월 13일
14대
이한빈 (李漢彬)
1979년 12월 13일 ~ 1980년 5월 22일
15대
김원기 (金元基)
1980년 5월 22일 ~ 1980년 9월 2일
16대
신병현 (申秉鉉)
1980년 9월 2일 ~ 1982년 1월 4일
제5공화국
17대
김준성 (金埈成)
1982년 1월 4일 ~ 1983년 7월 7일
18대
서석준 (徐錫俊)
1983년 7월 7일 ~ 1983년 10월 9일
19대
신병현 (申秉鉉)
1983년 10월 15일 ~ 1986년 1월 8일
20대
김만제 (金滿堤)
1986년 1월 8일 ~ 1987년 5월 26일
21대
정인용 (鄭寅用)
1987년 5월 26일 ~ 1988년 2월 24일
노태우 정부
22대
나웅배 (羅雄培)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5일
23대
조순 (趙淳)
1988년 12월 5일 ~ 1990년 3월 17일
24대
이승윤 (李承潤)
1990년 3월 17일 ~ 1991년 2월 18일
25대
최각규 (崔珏圭)
1991년 2월 18일 ~ 1993년 2월 24일
김영삼 정부
26대
이경식 (李經植)
1993년 2월 25일 ~ 1993년 12월 21일
27대
정재석 (丁渽錫)
1993년 12월 21일 ~ 1994년 10월 4일
28대
홍재형 (洪在馨)
1994년 10월 4일 ~ 1994년 12월 23일

2.1.2. 재정경제원 장관 겸임 (1994 ~ 1998)


정부
대수
이름
임기
김영삼 정부
초대
홍재형 (洪在馨)
1994년 12월 23일 ~ 1995년 12월 20일
2대
나웅배 (羅雄培)
1995년 12월 20일 ~ 1996년 8월 8일
3대
한승수 (韓昇洙)
1996년 8월 8일 ~ 1997년 3월 5일
4대
강경식 (姜慶植)
1997년 3월 5일 ~ 1997년 11월 19일
5대
임창열 (林昌烈)
1997년 11월 19일 ~ 1998년 3월 5일

2.1.3. 재정경제부 장관 겸임 (2001 ~ 2008)


정부
대수
이름
임기
김대중 정부
초대
진념 (陳念)
2001년 1월 29일 ~ 2002년 4월 15일
2대
전윤철 (田允喆)
2002년 4월 15일 ~ 2003년 2월 27일
노무현 정부
3대
김진표 (金晉杓)
2003년 2월 27일 ~ 2004년 2월 10일
4대
이헌재 (李憲宰)
2004년 2월 10일 ~ 2005년 3월 7일
5대
한덕수 (韓德洙)
2005년 3월 14일 ~ 2006년 7월 18일
6대
권오규 (權五奎)
2006년 7월 18일 ~ 2008년 2월 29일

2.1.4. 기획재정부 장관 겸임 (2013 ~ 현재)


정부
대수
이름
임기
박근혜 정부
초대
현오석 (玄旿錫)
2013년 3월 22일 ~ 2014년 7월 14일
2대
최경환 (崔炅煥)
2014년 7월 15일 ~ 2016년 1월 12일
3대
유일호 (柳一鎬)
2016년 1월 13일 ~ 2017년 6월 9일
문재인 정부
4대
김동연 (金東兗)
2017년 6월 9일 ~ 2018년 12월 10일
5대
홍남기 (洪楠基)
2018년 12월 11일 ~ 현재

2.2. 사회부총리 (2014 ~ 현재)


사실상 옛 교육부총리의 후신. 이명박 정부에서는 부총리가 없었고 이름이 바뀌어서 완전히 이어지지는 않는다.
2014년 5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단행된 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교육·사회·문화 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 직제를 신설했다.[5]
교육부장관이 겸임한다.
정부
대수
이름
임기
박근혜 정부
초대
황우여 (黃祐呂)
2014년 11월 19일 ~ 2016년 1월 12일
2대
이준식 (李俊植)
2016년 1월 13일 ~ 2017년 7월 4일
문재인 정부
3대
김상곤 (金相坤)
2017년 7월 4일 ~ 2018년 10월 2일
4대
유은혜 (兪銀惠)
2018년 10월 2일 ~ 현재

3. 폐지된 부총리



3.1. 통일부총리 (1990 ~ 1998)


통일원 장관이 겸임했었고, 1998년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고 대통령 직속의 국토통일원이 통일부로 변경되면서 부처서열 2위로 들어오게 된다. 국민의 정부는 초기에 부총리가 없었기 때문에 과거 부총리가 보임되었던 재정경제부와 통일부의 서열을 맞춰주기 위해서 생긴 일.
이후 2001년에 부총리가 보임되었지만, 재경부, 교육부에 보임되면서 교육부의 서열이 2위로 오르고 통일부가 서열 3위로 내려갔다.
정부
대수
이름
임기
노태우 정부
초대
최호중 (崔浩中)
1990년 12월 27일 ~ 1992년 6월 25일
2대
최영철 (崔永喆)
1992년 6월 26일 ~ 1993년 2월 25일
김영삼 정부
3대
한완상 (韓完相)
1993년 2월 26일 ~ 1993년 12월 21일
4대
이영덕 (李榮德)
1993년 12월 22일 ~ 1994년 4월 29일
5대
이홍구 (李洪九)
1994년 4월 30일 ~ 1994년 12월 16일
6대
김덕 (金德)
1994년 12월 24일 ~ 1995년 2월 21일
7대
나웅배 (羅雄培)
1995년 2월 22일 ~ 1995년 12월 20일
8대
권오기 (權五琦)
1995년 12월 21일 ~ 1998년 3월 2일

3.2. 교육부총리 (2001 ~ 2008)


본래 문교부/교육부 장관은 부총리급이 아니었으나, 2001년 개각에 맞춰 부총리직을 부활시키면서 재정경제부와 더불어 부총리가 보임되었다. 교육부 장관이 부총리가 되면서 기존 서열 2위였던 통일부의 서열이 내려갔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겸임했었다.
정부
대수
이름
임기
김대중 정부
초대
한완상 (韓完相)
2001년 1월 29일 ~ 2002년 1월 28일
2대
이상주 (李相周)
2002년 1월 29일 ~ 2003년 3월 6일
노무현 정부
3대
윤덕홍 (尹德弘)
2003년 3월 7일 ~ 2003년 12월 23일
4대
안병영 (安秉永)
2003년 12월 24일 ~ 2005년 1월 4일
5대
이기준 (李基俊)
2005년 1월 5일 ~ 2005년 1월 10일
6대
김진표 (金振杓)
2005년 1월 28일 ~ 2006년 7월 20일
7대
김병준 (金秉準)
2006년 7월 21일 ~ 2006년 8월 8일
8대
김신일 (金信一)
2006년 9월 20일 ~ 2008년 2월 5일

3.3. 과학기술부총리 (2004 ~ 2008)


과학기술부 장관이 겸임했었다. 2004년,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라는 국정과제 실현을 위해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임명했다. 따라서 참여정부는 유일하게 부총리가 3명이었다.
이후 과학기술부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교육부와 통폐합되었다가 박근혜 정부 시기에 미래창조과학부로 부활했고 장관의 서열도 2위로 정해졌지만, 교육부 장관이 사회부총리로 승격되면서 미래창조과학부의 서열이 내려가면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부총리가 아닌 서열 3위의 장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정부
대수
이름
임기
노무현 정부
초대
오명 (吳明)
2004년 10월 18일 ~ 2006년 2월 9일
2대
김우식 (金雨植)
2006년 2월 10일 ~ 2008년 2월 28일

[1] 한국의 부총리는 국무총리가 하는 일을 모두 도맡아서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국무총리가 하던 업무 일부 분야를 전문적으로 위임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역할이다. 그래서 부총리들의 통칭도 업무에 따라 경제부총리, 사회부총리 식으로 불리지, 국무총리와 한 쌍으로 엮이는 국무부총리 같은 명칭이 쓰이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애초에 한국에서는 국무총리 자체가 대통령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직위이기 때문에 다시 국무총리 직위의 보조적 직위를 둘 필요성이 크지 않다.[2] 대신에 국토통일원에서 통일부로 바뀌면서 정부부처 서열을 다시 정할 때에 통일부의 서열이 상당히 올라갔다.[3] 같은 시기에 정무장관(특임장관)도 폐지되었다.[4] 대신에 특임장관이 생겼다.[5] 2014년 5월 말에 직제가 신설됐는데 5개월여가 지난 11월에 부총리가 임명된 것은 정부조직법의 국회 통과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원래는 김명수 전 한국교원대 교수가 부총리로 내정됐지만 제자 논문표절, 신문칼럼 대필, 연구비 부당 수령 등의 의혹에 휘말려 결국 낙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