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제4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김동연
金東兗 | Kim Dong-yeon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출생'''
1957년 1월 28일 (67세)
충청북도 음성군
'''본관'''
경주 김씨
'''학력'''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국제대학교 (법학 야간과정 /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학 / 석사)
미시간대학교 (정책학 / 석사)
미시간대학교 (정책학 / 박사)
'''병역'''
[image] 대한민국 육군 일병 소집해제 (방위병)
'''가족'''
아내 정우영, 슬하 2남[1]
'''약력'''
제6회 입법고시 합격
제26회 행정고시 합격
국회 예결특위 입법조사관
경제기획원 사무관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청와대 재정경제1비서관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기획재정부 예산실장
기획재정부 제2차관
국무조정실장
아주대학교 총장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
'''외부 링크'''

1. 개요
2. 생애
2.1. 청년 시절
2.2. 관료 시절
2.3. 아주대 총장
2.4.1. 2017년
2.4.2. 2018년
2.5. 퇴임 이후
3. 약력
4. 저서
5.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관료, 교육인. 문재인 정부의 첫 경제부총리였다.
엘리트 관료들이 즐비한 기획재정부에서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으로 어려운 가정 환경과 크게 내세울 것 없는 학벌을 극복하고, 서로 사이가 나쁜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 두루 고위 관료를 지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 생애



2.1. 청년 시절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 김동연이 직접 '본인의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의 삶'을 표현한 말이다.
1957년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주했다고 한다.
11세 때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가세가 기울어 소년 가장 역할을 했다. 청계천에 무허가 판잣집을 짓고,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채석장에서 돌을 나르고, 산에 올라 나물을 캐 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이는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그의 가족이 살던 판자촌마저 도시정비 사업으로 헐리면서, 허허벌판이었던 경기 광주 대단지(지금의 성남시 수정구 단대동)로 강제 이주돼, 한동안 천막을 치고 살았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망해도 그렇게 망할 수가 없었다. 학업은 물론 때로는 끼니가 걱정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2년 5월에 쓴 칼럼에선 "세 끼를 온전히 챙겨먹기 어려웠던 시절, 끼니로 자주 먹던 수제비, 외상 달고 됫박으로 샀던 쌀, 몇 장씩 사다 쓰던 연탄"이란 표현으로, 본인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했다.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덕수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졸업 4개월 전인 1974년 11월, 17세의 나이로 한국신탁은행(現 하나은행)에 입사했다. 2011년 9월에 쓴 칼럼에서 "어린 나이에 은행에 들어갔을 땐 우쭐했지만, 고졸 출신이라는 현실의 벽은 높았고 100m 달리기 경주에서 50m쯤 뒤처진 채 출발하는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회고했다. 1977년 국제대학교 (서경대학교 전신)에 진학했다. 같은 해에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방위병 복무와 대학 학업을 병행했다.

2.2. 관료 시절


야간학부를 다니는 동안, 은행 합숙소에서 옆방 선배가 쓰레기통에 버린 '고시 잡지'를 보고 관료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전까지는 고시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이후 '''직장과 병행하면서''' 주경야독한 끝에, 1982년 제6회 입법고시와 제26회 행정고시에 모두 합격하는 영예를 얻었다.[2] 훗날 이때를 회고하며 "직장에 충실하면서 공직에 뜻을 두고 준비했다.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문제는 내 시간 만들기였다. 잠을 줄이고 15분 이상의 조각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1983년 '행정공무원'으로는 총무처(現 행정안전부)와 경제기획원(現 기획재정부)[3]에서, '입법공무원'으로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게 됐다. 사무관 수습을 받을 때, 행정고시 동기들은 대부분 서울 근무를 원했지만, 고향인 충북도청 근무를 자원했다. 당시 충북도청 지방과에서 일했는데, 음성군청 근무를 지원한 뒤 그곳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후 경제기획원에서 예산실 사무관과 대외경제조정실 사무관을 거친 뒤,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과 재정경제원 과장을 역임했다.
1988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것도 직장과 병행하면서 얻은 것이다. 그 후에도 자기의 학력을 두고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지고 싶지 않아 미시간 대학교 유학의 길에 올랐다. 발령 이후 선배들이 대학교를 물어, 야간대를 나왔다고 하고 돌아나오는데 뒤에서 말하기를 "요즘은 희한한 대학 나와서 고시 붙어 여기까지 오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장실에서 일을 맡기게 한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직속상사가, 자기와 고시 기수가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사회 경험이라고는 없는 서울대 출신 동료와 은행에서 8년 동안 일한 경력이 있는 야간대학 출신의 자신을 비교하며 서울대 출신 동료를 추천했다는 말을 당연스럽게 자신 앞에서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엘리트주의가 강한 관계, 그것도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던 당시 경제관료계에서 '국제대 출신'이었던 김동연이 겪었을 고충은 안 봐도 눈에 훤하다. 공직에 입문하기 전에도 학력과 관련해 많은 고충을 겪었다.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이름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를 졸업한 직장상사가 바둑을 두는 것을 보고 훈수를 두었다가 뺨을 맞은 일화가 있었다. 그리고 꽤 친하다고 여겼던 직장 동료와 상사와 술을 마시면서, 술주정으로 '야간대학 밖에 못 다니는 놈' 운운을 하며 비하하는 것을 보고 충격에 빠진 적이 있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3년, 3년 9개월이라는 '최단 기간'으로 미시간 대학교에서 정책학으로 석/박사를 취득해 미시간 대학교 기록에 이름을 남기게 된다. 이때 국가장학금과 풀브라이트 장학 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2002년에는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2002년부터 2003년까지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에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활동했다. 또한, 2005년까지 세계은행(WB) 선임정책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5년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으로 돌아온 뒤,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과 재정정책기획관 등을 역임했다. 이때 참여정부에서 발표한 국정마스터플랜 "비전 2030" 보고서 작성을 주도했다.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한국을 삶의 질 세계 10위로 올려놓고, 전체 예산의 40%를 복지분야에 편성해, 전체 육아비용에서 부모의 부담을 37%로 축소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때문에 김동연이 국가에서 복지를 책임지는, 이른바 ‘큰 정부’를 선호한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김동연은 사회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높여 사회적 거래비용을 낮추는 ‘사회적 자본’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비전 2030'을 짤 때도, 정부 공식보고서에 사회적 자본 확충을 핵심적 전략으로 넣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이 당선인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전문위원을 맡았다. 같은 해 이명박 정부 대통령실에서 경제금융비서관을 맡았고, '경제·재정·통화·금융' 분야를 총괄했다. 경기 침체에 적극적 정책으로 맞서는 등,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9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 조직 개편에 따라,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공기업 선진화와 규제 개편 등 주요 정책과제를 수행했다.
2010년 8월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줄이는 등, 이명박 정부의 기조에 맞춰 재정 건전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산실장으로 있을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 차례나 직언을 하면서, '영유아예방접종 지원 확대' 등 다섯 가지 재정사업을 관철한 일화가 있다. 또 예산실장으로 일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예산 정책기조를 다시 점검할 것을 주문하자 여름 휴가를 반납하고 예산안 검토에 집중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외계층인 차상위 이하 가정의 우수 고등학교 졸업생 해외 유학 사업인 '드림장학생'이 당시 예산실장있던 김동연의 작품이다. 사업의 제안부터 예산 편성까지 직접 주도했다. 예산실장으로 있으면서 2조 5000억 원의 재원을 마련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교육희망사다리' 사업에 많은 공을 들였다.
2012년 1월에 기획재정부 2차관에 올랐다. 기획재정부 2차관이 된 뒤에도 밤늦게까지 일해 기획재정부에서 화제가 됐다.
2012년 4월 여야가 앞다퉈 복지공약을 내놓자,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꼬집으면서 “여야의 공약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김동연은 선거법을 위반 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됐고,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2012년 4월5일 전체 위원회의를 열고, 기획재정부가 정당의 복지공약을 분석해 언론에 밝힌 행위는 '공직선거법 제9조(공무원 등의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선관위는 “2012년 4월 총선이 일주일 남은 시점에서 기획재정부가 정치권의 복지공약을 분석한 일이 유권자의 판단에 부당한 영향력을 미쳐 선거결과를 왜곡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소신 발언이, 2013년 박근혜 정부에서 김동연을 국무조정실장으로 발탁한 데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김동연은 “여야의 복지정책을 점검하니, 재정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워, 추가 증세나 국채 발행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야인이 될 각오를 했는데, 오히려 더 큰 자리(국무조정실장)가 왔다”고 말했다.
2012년 6월, 전체 학생 수가 21명인 강원도의 중학교를 방문했다. 가정 상황이 너무 어려워서 꿈과 희망을 갖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달라는 해당 학교 수학 교사의 편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김동연 차관은 각기 다른 책 21권을 구입해서, 학생 한명 한명의 이름을 쓴 뒤 직접 전달했다. 그리고 본인의 성장 과정을 소개하며 "주어진 어려움을 원망하지 말고 큰 꿈을 가져라. 지금의 어려움은 '위장된 축복'이며 참 행복을 느끼는 단계까지 가려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다독였다.
2012년 12월, 18대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을 노리는 후보들에게 '기득권층에 맞서고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펴는 용기', '선거공약에 솔직할 수 있는 용기', '경쟁 후보의 공약을 수용해 사회통합의 큰 걸음을 떼는 용기', 즉 '진정한 용기'를 주문하는 칼럼을 썼다.
2013년 3월, 막 출범한 박근혜 정부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 받아 초대 국무조정실장으로 임명되었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지명됐을 때, 박재완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은 사석에서 “각 부처의 정책을 틀어쥐고 국정 현안을 조정해야 하는 국무조정실장 자리에 김동연이 최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국무조정실장이 된 뒤, 국정과제 점검체계인 ‘신호등 평가제도’를 만들고 '규제비용총량제'도 도입했다.
2013년 10월, 큰아들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오랜 기간 투병했지만 골수이식을 한 날도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휴가를 썼고, 발인을 마친 날도 오후 사무실로 출근해 국무조정실에서 만든 '원전비리 종합대책'을 직접 발표했다. 하지만 훗날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큰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에 큰 구멍이 난 것 같기도 하다”고 단장의 아픔을 토로했다.
2014년 5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중앙일보에 ‘"김동연의 시대공감" 혜화역 3번 출구’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이번 사고로 많이 아프다. 어른이라 미안하고 공직자라 더 죄스럽다. 2년여 투병을 하다 떠난 큰애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한데 한순간 사고로 자식을 보낸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하니 더 아프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그분들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했는지 그분들 입장에서 더 필요한 것을 헤아려는 봤는지 반성하게 된다. 이번 희생자 가족들도 견디기 어려운 사연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분들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위로를 드리고 싶다. 그렇게 할 어떤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기에 아무 말 않고 그저 따뜻한 허그(hug)를 해드리고 싶다. 그분들에게 닥친 엄청난 아픔의 아주 작은 조각이나마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을 그분들의 힘든 두 어깨를 감싸며 전하고 싶다”
2014년 7월, '가족'과 '건강' 등의 이유를 들어 사표를 내고 관료 공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국무조정실장에서 물러날 때 청와대에서 몇 차례 만류했으나, 1년 4개월 동안 격무에 시달렸다는 점과 아들을 잃은 가족을 돌봐야 한다는 점을 들면서 거듭 사퇴를 요청해, 청와대가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뒤 경기도 양평으로 내려가, 근처의 중고등학교에서 강연을 하거나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국무조정실장에서 물러날 때 신임 사무관들을 대상으로 ‘공직관’에 대한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이 없다면, 진정한 엘리트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 열심히 생각하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공직자들의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30년 동안 주로 예산 전문 경제 관료로 일하면서, 꼼꼼하고 기획력이 뛰어나며 일처리를 깔끔하게 하면서도 상사의 뜻을 잘 헤아리는 타입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정책을 수립하고 개별 정책들을 연계하는 데 뛰어나 기획예산처와 기획재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강한 기획력과 추진력을 보여줬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정책 수립의 마스터’.

2.3. 아주대 총장


[image]
김동연 부총리 후보자의 특별한 총장 이임식, "아주대 15학번"
김동연 '아주대를 떠나도 영원한 아주인이다'
경제부총리 김동연, 진짜 ‘사람 냄새’ 나는 인물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 총장 시절 바꾼 아주대 풍경
국무조정실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나, 2015년 아주대학교 제15대 총장직을 맡았다. 기존에 교수들 사이에서 총장이 선출된 것에 비해 처음으로 추천에 의해 외부 인사로 아주대학교 총장으로 영입되었다. 취임 이후 개방적 소통을 중시했다. 총장으로 취임하고 총장실의 소파를 치우고 회의하기 편한 원탁형 테이블을 들여왔다.
본인도 고졸-야간대를 다니면서 행정고시에 합격한 자수성가한 케이스로서 학생들에 대한 열정이 매우 컸으며, 아주대학교에 여러 파격적인 시스템과 이벤트를 진행하였기에 학생들의 지지가 남다르고, 여러 언론에도 여러 번 등장하였다. 당장 포털에 김동연이라고만 검색해도 취임식부터 총장 재임 시절 했던 업적들, 경제부총리로 내정되어 떠날 때까지 좋은 기사가 수두룩하게 쌓여 나온다
취임식 당시부터 대학 서열, 화려한 캠퍼스 이런 것이 아닌 학생들의 꿈과 도전정신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학교를 운영하였고, 학교를 지금까지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보겠다는 '''Ajou Greart Turning'''을 제시하고 '''제2의 창학, 유쾌한 반란'''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취임 이후에는 후술되겠지만 아래와 같은 이벤트를 시행했다. 취임 첫 해 대동제에서 저녁 늦게 술에 취하신 채로 학생들은 아무도 모르는 교가를 흥얼거리는 모습에 많은 학생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했다고.

  • 파란 학기제
정말 수없이 많이 언론에 등장하였다. 파란이란 아주대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알을 깨고 나온다는 파란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종의 도전학기제이다. 학생들이 모여서 혹은 개인이 한 학기 동안 어떠한 목표를 짜고(예를 들면 이번 학기에는 미니 드라마를 촬영해 보겠다던가) 계획을 제출해서 승인을 받으면 학점으로 인정해주고, 성과에 따라서 수상도 받을 수 있는 제도이다. 당연히 금방 언론을 타고 수많은 대학교에서 벤치마킹하기 시작하였다.
  • After you
이 또한 수많은 언론의 관심과 함께 여러 정재계 인사들의 후원을 받았다. 학생들을 외국대학교로 파견하는 것이나, 본인이 지원하는 것이 아닌 나보다 너 먼저라는 슬로건 아래에 가난하거나 어려운 학생들을 추천하여 보내주는 제도이다. 교환학생제도와는 별개이며 학교의 지원금으로 파견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 Ajou Global Internship
학생들을 BMW, 미국 H-MART, 미국 CKP회계법인 등 해외 인턴쉽을 보내 글로벌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여러 해외기업과 인턴제휴를 체결하였다.
  • Brown bag Meeting
매주 신청한 20여명의 학생들과 함께 봉투에 담긴 빵을 점심으로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학생들의 학교에 바라는 점 혹은 총장으로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벤트자리이다. 기획처장, 교무처장 등도 함께 참석하며 이날 토론 내용과 조치 결과는 매주 학교 사이트에 공개된다.
  • 총장 Book 릴레이!
매주 학교에서 지정해준 책을 읽고서 총장과 학생들이 모여서 토론을 나누는 이벤트이다.
  • 총장 진로 멘토링
총장이 직접 학생들과 만나서 진로에 관한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자리이다.
  • 아주 희망 SOS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학업 중단 위기에 놓인 학생을 도와주는 시스템으로, 김동연 총장 본인도 월급의 상당 부분을 기부해왔다.
  • 인도네시아 조코위도도 대통령 방문
인도네시아의 첫 직선대통령이자 첫 서민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자신과 비슷하게 어려운 환경에서 올라와 성공한 김동연 총장을 만나보고 싶다고 아주대를 방문하였고, 김동연 총장과 조코위도도 대통령과의 대화가 율곡관 대강당에서 이루어졌다. 이날 수백명의 학생들과 고위직 인사들이 참석하였고, 언론에서도 여러번 기사화되었다.
  • 프라임 사업 지원 철회
프라임 사업은 공학 위주의 학과 개편사업으로 대부분의 학교에서 기존의 학과를 철폐하였고, 지원금을 타기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제로 학과 규모를 줄이거나 폐지까지 하면서 지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주대도 프라임사업의 지원금이 큰 만큼 계획을 검토하였으나, 학생들이 반대 의견와 충돌하자 강행이 아닌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것을 존중하여 계획을 철회하였다.
이 외에도 창업경진대회, 독서토론대회 등을 수시로 열고 학생들과 수시로 소통하려 했던 총장으로 취임 때부터 '''갓동연'''이라고 불리며 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 모든 것이 고작 총장 재임 기간을 절반 정도 수행하면서 시행한 것으로 학풍을 크게 바꾸어놓았다는 평. 게다가 총장 재임하면서 받은 연봉의 40프로를 모두 기부하였다고 한다.
2015년 2월 25일 아주대학교 총장 시절 인터뷰에서 “국내 대학에서 A학점은 질문 안 하고 교수에 순응적 학생들에게 돌아가지만, 미국 대학은 교수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는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요즘에는, 외국어 점수 등 ‘스펙’보다는 인생의 ‘스펙트럼’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새누리당에서 "양심적이고 맑은 사람"이라며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천되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고 전해진다.
2016년 7월 17일 아주대학교 총장 시절 인터뷰에서 “기성세대가 ‘나도 젊을 때 힘들었다’고 하는데, 지금 젊은이들은 그보다 훨씬 힘들다. 나 때는 상고 나와서 은행에라도 갔다. 지금 학생들의 고민은 단순히 취업과 진로 문제에 국한된 게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깊다”라고 말했다. 또, 대학생 새내기 시절로 돌아간다면 “금융회사나 공무원 취직 대신, 창업 등 하고 싶은 일을 ‘빡세게’ 찾을 것 같다”고 말했다.

2.4. 경제부총리



2.4.1.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 장악력 등의 점을 사서 청와대 정책실장에 기용된다는 여러 하마평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장관급을 지냈다는 점에서 불가능하지 않냐는 시각이 있었다.
2017년 5월 21일, 예상을 깨고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에 내정되었다. 인선 배경으로 "거시경제 통찰력과 조정 능력 겸비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이며 "소년가장 출신으로 누구보다 서민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는 경제 사령탑"이므로 "위기의 한국경제를 이끌어갈 경제 수장으로서 최적임자로 평가"했다고 청와대는 밝혔다. 경제부총리로 임명되면서 아주대학교를 떠나게 되었고 학생들의 반응은 축하한다와 더 오래하길 바라셨는데 너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주대학교 역사상 가장 지지를 많이 받은 총장으로 기억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6월 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이 되었다.
2017년 7월 25일 열린 경제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눈이 붉게 충혈되고 입술에 물집이 잡힌 모습으로 참석하였다. 결막염에 걸렸다고. 피로가 누적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들인지라 얼마나 장관을 갈아넣었으면 저렇게 되느냐는 반응이 꽤 있다. 취임 직후부터 기재부 공무원들에게 토요일 업무 관련 카톡 금지 지시 등을 내리며 휴식시간을 보장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정작 본인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는 듯. 8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제 개편과 예산 편성 때문에 매일 야근하는 세제실, 예산실 직원들에게는 9월 초 국회에 법안과 예산안을 제출한 뒤에 휴가를 꼭 가라고 당부했다.
김동연 "토요일 카톡 금지..나부터 주말 사무실 안 나온다",17-06-21,머니투데이
충혈된 눈, 부르튼 입술...경제부총리 김동연의 '고단한 행군',17-07-25,이데일리
8월 9일, 성과 미흡 부처 사업에 들어가는 11조 예산에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당연히 진행 중인 사업이 부실하다고 말하는 부처는 없는 만큼 기재부와 각 부처 사이의 기싸움이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정부 정책 집행 예산 확보를 위해서는 거의 전 부처가 구조조정의 아픔을 함께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내년 예산안을 물적 투자를 축소하고 복지와 일자리 투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 정책 수립 면에서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동안과 달리 예산안 편성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듯하다.
8월 14일, 경제 현안 간담회에서 북한 때문에 요동치는 금융시장 불안에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심할 경우 시장 안정화 정책을 취할 것 이냐는 질문에 급격한 변동에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시장에 맡겨두며 모니터링에 충실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현재 24시간 국내 시장뿐 아니라 국제, 외환시장 상황을 긴밀히 모니터링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새롭게 발표한 건강보험 개편안을 언급하면서 관계 부처와 재정당국 협의를 통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기초생활보장 확충안에 대한 재원 대책이 마련돼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2013년에 백혈병으로 아들이 사망했는데, 이때도 평소처럼 일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 때문에 '아들이 죽어도 열심히 일하는 워커홀릭'이라는 말이 퍼졌다. 이에 대해 김동연은 '당시 국무조정실장으로서 도저히 일을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하며 워커홀릭이라고 불리는 게 칭찬이라고 해도 죽은 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말했다.
8월 16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금리 문제는 금융통화위원회, 한국은행의 고유 권한이며 정부 당국자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최근 청와대 김현철 경제보좌관이 부동산 가격 급등과 가계 부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현 금리를 지적하면서 채권 금리가 급등하자 이를 해소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정기적 만날 예정이라고 말하면서, 정책 공조의 의지를 강조했다.
8월 17일, 세무관서장 회의에 참석해 한승희 국세청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동연 경제 부총리는 국정 과제 수행을 위한 재정 수입 확보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조세 정의 구현을 위해 지능적 탈세나 대기업 세금 탈루에 철저히 대응 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역외탈세와 고액·상습체납에 대한 대응도 강화해 '성실납세가 최고의 절세(節稅)'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라고 당부 했다.
8월 23일,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 "법인세를 올렸을 때 기업 경제활동에 미치는 영향을 잘 유념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규제완화 등에 신경을 써서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의) 부정적 효과가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8월 24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저출산 문제를 지적하며 회의 끝난 후 기자 간담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 앞날을 밝게 보기 힘들다고 말하며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통신비 등 강제성 있는 생계비를 낮춰 실질적으로 가처분 소득이 늘어나도록 하는 대응 방안을 소개했다. 그리고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기재부는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전담하는 '인구구조과'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8월 25일, 경제 정책 수립에 경제부총리가 소외됐다는 지적을 신경 쓴 듯, 문재인 대통령이 경제 부처 업무보고에서 "오랫동안 다닌 익숙한 길을 버리고 한 번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는데도 김 부총리 지휘 아래 잘 해주고 있어 매우 고맙다"고 말하며 김동연 부총리를 높이 평가했다. 이 자리에서 김 부총리는 올 하반기 핵심 정책으로 혁신 성장으로 꼽으며 그 일환으로 신 기술과 서비스에는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규제 샌드박스' 를 추진 하겠다고 밝혔다.
9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성장 경제정책 포럼에 참석해 우리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김 부총리는 이번 강연에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시대와 상황에 패러다임이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채식주의자 소설의 '왜 다른 것을 틀리다고 표현할까.' 라는 문구를 인용하며 야당 의원들의 발언을 우회적으로 꼬집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격적인 종교인 과세 실행에 앞서 종교계 인사들을 만나며 우려를 달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개신교를 제외한 종교 단체들은 납세는 당연한 의무라며 적극 협력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10월 15일, 한중 사드 갈등이 극심한 상황에서 중국으로 날아가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을 성사 시키는 쾌거를 이루면서, 곧바로 미국으로 가서 美 재무부를 설득해 환율조작국 지정을 막는 기염을 토했다.선물 안고 귀국하는 김동연…"美·中 급한 불 껐다, 환율조작국 피했다. 그리고 김 부총리가 워싱턴 출장에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들과 국제통화기금(IMF)ㆍ세계은행(WB) 등 글로벌 경제를 주도하는 인사들이 만나 우리 경제를 둘러싼 악재들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는 데 주력한 것이 IMF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로 상향 조절한 것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분석도 나와 그 동안 존재감 없다는 지적을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무디스는 북핵 도발 속에서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를 유지하는 등 해외 기관의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주요 경제 전략에 민간 기업 위주의 혁신 성장을 주요 축으로 설정하면서 혁신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김 부총리의 입지가 더욱 커졌다.
10월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감에서 혁신성장 전략과 관련해 “쥐를 잡는 데 고양이 빛깔이 희건 검건 상관없다. 이전 정부나 과거 정책을 차별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12월, 취임 6개월 맞았다. 취임 초기 장하성 실장, 김상조 위원장 등 흔히 말하는 정권 실세에게 이래저래 밀려 존재감이 없다는 지적이 있었으나, 17년 경제 성장률 3% 달성이 확실시 되고 본 문서에서 적혀 있는 것처럼 미국의 환율조작국 우려, 중국의 사드 보복과 통화스와프 연장 등 난제도 뛰어넘었고, 수출 호조로 경제상황도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내년 예산안에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이는 대신 일자리와 복지 등 인적 투자를 확대하는 소신을 확실히 담아내면서 서서히 경제부총리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2.4.2. 2018년


1월 16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라디오 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김어준은 뉴스공장 측에서 먼저 요청했다고 하는데, 정작 김 부총리는 그런 요청은 못 받았다고 한다. 김 부총리 측이 먼저 요청했다고. 출연해서 한창 진행되고 있는 이슈인 암호화폐, 최저임금 인상, 보유세 인상 관련에 대해서 답했고, 현재 논란 중인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의 지분을 19.91% 보유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수장으로서 관련한 질문에 답했다. 반응이 좋았는지 이후 격월 간격으로 뉴스공장에 출연하고 있다.

1월 2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4차산업혁명과 혁신성장 업무 보고'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을 강조했다.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은 노르웨이의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던 "소냐 헤니"가 관행이었던 검정 스케이트와 긴 치마 대신, 하얀 스케이트와 흰색 미니스커트를 착용하고 올림픽 3연패와 세계선수권 10년 연속 제패를 기록한 데 착안한 것이다. 이런 사례를 들어, 안 가본 길이지만 가야할 길인 ‘혁신의 길’을 가야한다고 제안한 것. 김 부총리는 미래 변화가 급진적이고 파괴적이며 융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이런 상황에서는 '하얀 스케이트식 혁신'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전망한 것.
2월 9일, 캐나다에 이어 스위스통화 스와프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스위스는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기축통화국으로 분류되며, 스위스가 기축통화국인 아닌 국가와 통화 스와프 체결은 맺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계약 성공의 공과 함께, 김 부총리와 이주열 한은 총재가 통화스와프 계약 체결 합의 사실을 공동으로 발표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가운데, 거시경제정책의 중추인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시장안정을 위해 공조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평도 나오고 있다.
3월 8일에는 부산대학교에 와서 강연을 했다. '사회적 자본'에 대한 강연이 인상깊었다.
5월 9일 취임 1주년을 맞아 뉴스공장에 또 출연. 월간 부총리 한다 그래놓고 안 한다고 김어준에게 까였으나 G20 참석하는 훌륭한 분이라고 용서를 해줬다. 문재인 정부의 1년을 평가하며 비트코인, 국제경제 등 여러 분야를 다뤘다.
5월 10일, 정부 출범 1년을 맞아 문재인 정부의 1년을 평가했다. 지난 1년간의 경제 성과로 '3%대 성장률 회복'을 첫손에 꼽았다. '기업'에서 '사람'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다만 경제 성과가 국민의 피부에 와닿지 않은 점을 반성했다. 특히 일자리의 경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노동시장 구조 개선이나 혁신인력 양성 측면에서 갈 길이 많이 멀다고 본다"고 말했다
5월 17일, 썰전에 출연해 지난 1년간 경제부총리로 일하면서 느낀 소감과 지금까지 이룬 성과와 아쉬운 점들에 대해 설명했다.
7월, 기획재정부 예산실 직원 200여 명에게 '사상 첫 집단 여름 휴가'를 부여했다. '''하지만, 정작 본인 휴가는 챙기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김 부총리의 강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보통 5월부터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9월까지, 밤낮 없이 격무에 시달려 여름 휴가를 꿈도 꾸지 못한다. 그래서 김 부총리는 2018년 8월 첫째 주까지 여름휴가 일정을 잡지 못하다가, 둘째 주가 돼서야 9월 초까지 '하루씩 휴가를 쪼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2017년 문단에도 있지만 2017년에 김 부총리는 여름휴가 중 경제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는 등 업무를 봤다.
7월 12일,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서 우려를 표하며 소득주도성장에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
7월 18일,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 체감 효과가 미흡하다며 고개를 숙이면서 재정보강과 내년 대규모 확장 재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8월 6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삼성전자를 방문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정문 앞으로 나와 김 부총리를 환대했다. 이 부회장의 환대를 받은 김 부총리는 방명록에 "우리 경제발전의 초석 역할을 하며 앞으로 더 큰 발전 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김 부총리는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는 어디까지나 기업 고유의 판단문제라고 강조하면서 "일자리가 20만개 이상 나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 삼성전자가 결정해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10월 3일, 심재철 의원의 정부 재정 정보 유출 논란을 두고 국회 대정부질문 중 심 의원과 설전을 벌였다. 국가 재정 최고 책임자로서 불법적인 재정 정보 유출이 상당히 불쾌했는지 그간 보여온 온화한 모습을 잠시 접어두고 강하게 공세를 취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심 의원과 설전을 벌이면서 과거 심 의원 역시 본인이 지금 문제 삼고 있는 주말 중 업무추진비 사용 사실이 있다고 공개했다
그리고 자유한국당 김광림 의원과의 질의 중에는 계속되는 고용지표 악화에 머리를 숙이며 “가슴에 숯검댕이를 안고 사는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동시에 최저임금과 관련해 “업종별 차등화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논의됐지만 부결됐고, 지역별 차등화는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와 저희(기재부)가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고용지표 악화와 관련해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시한 적 있다고 한다
11월, 김 부총리의 경질이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 입문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오로지 능력만으로 정권의 성격에 관계없이 중책에 기용된 이력과 흙수저에서 부총리 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이라는 스토리 등 정치권에서 탐낼만한 자산이 많아 여야의 영입 경쟁이 시작되었다는 후문도 흘러나오고 있다. 더 나아가서 자유한국당에서는 김 부총리를 '현 정부와 각 세운 경제부총리'로 포장해서 차기 대선주자군에 포함시키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해졌다.
이러한 야당의 반응에 더불어민주당에는 “김 부총리를 보수 진영에 빼앗겨선 안된다”는 위기감이 감돌며 현 정부에서 김 부총리를 더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을 잘 알고 있고 경제 전문가인 김 부총리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면 우리가 받는 타격이 너무 크다”며 “김 부총리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기용하든지 해서 그런 우려 자체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김 부총리의 향후 거취를 둘러싸고 여야의 영입경쟁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사건으로 인해 자유한국당이 김 전 부총리를 영입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졌다.[4]
11월 9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새로운 경제부총리로 지명되었지만, 바로 취임하는 게 아니라 내정자 인사청문회도 거쳐야 되고 대통령 인가까지 시간이 걸리며 2019년 예산안도 있어서 김동연은 여전히 바쁜 상태. 2018년 마지막 G20 회의인 아르헨티나 회의까지 수행할 예정이다. 덕분에 국회 예결특위, 예결소위 등등 찾아다니고 각종 행사들 찾아다니느라 퇴임 시즌에도 바쁘기 그지 없다. 그 와중에 유류세 인하 정책이 성공해 2주 만에 148원이 떨어졌다. 퇴임 맞이 미담 기사들도 나오는 중.
홍남기 내정자 인사청문회가 12월 4일에 열리니 그 후에 퇴임할 듯. 그리고 2019년 예산안이 와장창 되고 있고 선거제도 개편 등으로 민주당, 자유당과 바미당, 민평당, 정의당이 대립하는 등 국회가 연말스럽지 않게 핫한 정치논리로 사방팔방 돌아가고 있어서 홍남기 내정자 청문회 보고서가 불채택, 아니 아예 잊혀져버려서 퇴임이 점점 미뤄지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서울 방문 때까지 재임하고 있을...줄 알았는데 12월 7일 오후 11시 55분에 홍남기 내정자 보고서가 채택되어 퇴임할 수 있게 되었다. 12월 7일 오늘 예산안과 온갖 위원회 안건들이 밀려서 새벽 가까이에도 회의중인데 2019년 예산안 통과 책임지고 퇴임하게 되었다. 이임식은 12월 10일.
12월 10일 당일에는 따로 이임식을 가지지 않고 기자간담회로 퇴임사를 대신 했으며 정식 이임사는 기획재정부 홈페이지에 올렸다.

오전에 기자간담회를 가지고 오후에 혁신성장본부 간부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에 서울정부종합청사에서 전 직원 일동과 인사를 마치고 (정문을 나가는 중에 김부겸 장관과 잠깐 만나 인사를 나눴다) 자기 소유 차를 운전하며 퇴임했다. 퇴임 시 자차운전으로 퇴임한 부총리는 역대 최초.

2.5. 퇴임 이후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 사건과 관련한 논쟁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로. 이에 대해 검찰은 김동연 전 부총리와 신재민 전 사무관 모두 무혐의로 처분하였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는 김동연을 영입해 총선에 출마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한다. 출마할 경우 정우택 자유한국당 전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충북 청주시 상당구가 유력하다고. 하지만 김 전 부총리가 총선에 출마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전망도 있다. #
2019년 6월 29일, 제주 서귀포에서 중소기업중앙회가 주최한 '2019 중소기업 리더스포럼'에서 '유쾌한 반란'이란 주제로 폐막강연을 했다. 강연에서는 계층이동 단절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모두 김동연을 영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였지만, 전부 거절하고 결국 미국의 미시간대에서 초빙교수로서 강단에 서기로 결정했다. #
본인은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지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러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돕고 있다. 기획재정부에서 자신과 함께 일했었던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2차관(경기 이천 후보)과 김영문 전 관세청장(울산 울주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았다고 한다. # 또한 기재부 출신이 아닌 후보들 중에서는 정태호 전 대통령비서실 일자리수석비서관(서울 관악을 후보)를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고, #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장관(대구 수성갑) 지원에 나선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 그러나 이 4명 중에서 정태호 전 일자리수석만 당선되었다..
이런 행보 때문인지 8회 지선에서 3선을 채워 출마할 수 없는 이시종 충북도지사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설도 있다.[5]
2020년 7월, 미래통합당에서는 "국회 안에서는 김동연을, 국회 밖에서는 윤석열을 당의 대권주자[6]로 밀자"라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 김동연 전 부총리의 입지가 상당히 올라간 터라 꼭 통합당은 아니어도 다음 선거에서 최소한 광역단체장 이상을 노려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에 서울시장직[7]까지 공석이 되면서 그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다양해졌다.
거기다 애시당초 김동연 전 부총리는 본인이 스스로 "저는 문재인 정부 초대 부총리"라고 밝히며 당시 자유한국당의 영입 의사를 일찍이 일축한 적이 있고#, 상기한 바와 같이 21대 총선에서 정태호 의원, 김부겸 전 장관 등 민주당의 여러 후보를 지원하는 등 민주당과 가까운 행보를 3년 가까이 지속한 상황이라 미래통합당 입당을 자신의 차후 행보로 선택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8]
2020년 9월 21일에 자신이 설립한 '소셜 임팩트 포럼'의 출범식을 열었다. # 대선을 1년 반 남짓 앞둔 상황에서도 야당에 대선후보군이 너무 없자 윤석열 검찰총장과 함께 다시 한번 야권 대권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다만 윤 총장의 지지세가 야권 내 독보적인 1위를 달릴만큼 압도적이므로 대선보다는 범야권 무소속 후보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도전하여 차차기 대선를 노릴 가능성도 있다.
2021년 1월에는 여당의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면서,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군에 있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토심리를 완화하고 중도층의 표심을 잡기위해 여당에서 김동연 차출론이 다시 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박영선 중기부장관의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1월 18일 불출마를 시사했다.
다만 정치 의사가 없는 것이 아니기에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양당의 후보 경선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3. 약력


  • 2002.10.03 - 2005.08.09 : IBRD 프로젝트 매니저
  • 2005.08.10 - 2006.06.29 : 기획예산처 전략기획관
  • 2006.06.29 - 2007.03.05 : 기획예산처 산업재정기획단장
  • 2007.03.05 - 2007.11.20 : IBRD 대한민국 정부 파견관
  • 2007.11.22 - 2008.02.22 :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
  • 2008.02.22 - 2008.06.24 : 청와대 재정경제1비서관
  • 2008.06.24 - 2009.01.20 :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 2009.01.20 - 2010.08.16 :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 2010.08.16 - 2012.01.08 : 기획재정부 예산실 실장
  • 2012.01.08 - 2013.03.01 : 기획재정부 제2차관
  • 2013.03.02 - 2014.07.22 : 국무조정실장
  • 2015.02.04 - 2017.06.06 : 아주대학교 총장
  • 2017.06.09 - 2018.12.10 :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4. 저서


  • <있는 자리 흩트리기>

5. 기타


  • 둥글둥글한 성격이면서도 합리적이고 추진력이 강한 ‘외유내강'형 인사로 평가된다.
  • 성완종의 금품 제공을 거부한 '공직자 두 명 중 한 명'이다.[9]
  • 36년 전 공직에 입직해서 사무관 시절 사용하던 '공무원 명패'를 경제부총리로 일하고 있는 지금도 가지고 있다
  • 2011년 덕수고등학교 총동창회로부터 '장한 덕수인상'을 받았다.
  • '스스로 공직생활에서 물러나야 할 때'에 대해서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여기서 '감사할 줄 알고 물러설 때를 아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리고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비전이 없어질 때, 일에 대한 열정을 느끼지 못하고 문득 무사안일에 빠지자는 유혹에 굴할 때, 문제를 알면서도 침묵할 때' 등을 공직에서 물러나야 할 때라고 밝혔다.
  • 머니투데이에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국회의원 155명과 보좌진 190명 등 345명을 대상으로 18개 부처 장관의 업무 수행 평균 평점을 맺긴 결과, 5점 만점에 3,38점으로 '관료 출신' 장관으로 조명균 통일부 장관에 이어 2등, 전체 5등을 차지했다. '동업자 가산점'이 있는 현직 국회의원 장관들을 제외하면 전체 2등이다.
  •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7년 9월 22일 전자관보를 통해 공개한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에 따르면 김동연은 부인, 차남과 함께 21억 6769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 본인 명의로 경기 의왕 내손동 아파트 전세 5억 5천만 원, 서울 송파구 문정동 사무실 분양권 8천만 원, 예금 7억 5647만 원을 신고했다. 부인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아파트 5억 8800만 원, 삼성SDI 주식 964만 원, 2010년식 소나타 960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차남은 예금 1억 136만 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차남이 보유한 예금 비고란에는 ‘장남 사망 시 수령한 보험금 차남에게 전액 증여(증여액: 8798만 원, 증여세 완납)’이라고 적혀 있다.
  • 다음은 김동연의 친척 중 한 명이 말한 내용이다. "그분이 행정고시에 합격해 충북 음성군에 근무할 당시 우리 집에 머무셨어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인데 한방에서 함께 생활했습니다. 늘 선한 성품으로 영어를 비롯해 공부를 가르쳐 주시곤 하셨어요. 그분은 책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책벌레였습니다. 한번은 서울 구경을 시켜 준다고 하시기에 따라나섰어요. 당시만 해도 버스를 타고 비포장 길을 따라 덜컹거리면 3시간이 넘게 가야 했는데 가면서 말을 한마디도 안 하시는 겁니다. 책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더라고요"
  • '유쾌한 반란'이 본인 주요 좌우명 중 하나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관료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유쾌한 반란'이라는 '열정 & 낙관적 자세'를 들었다. 국무조정실장 시절 대학 강연에서도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감을 얻는 방법으로 ‘유쾌한 반란’을 제시했다. 당시 강연에서 “처한 환경과 어려움부터 시작해 자신, 나아가 사회에 건전한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연은 2017년 8월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면서,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뒤집는 것이 반란”이라며,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을 통해서 '유쾌한 반란'을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동연의 페이스북 페이지 배경사진에는 여전히 “‘유쾌한 반란’ 김동연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 1994년도 만취한 자신을 태운 택시기사와 택시 요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던 중 폭행을 저지른 적이 있다. 물론 경미한 단순폭행이고, 기소유예[10]로 잘 마무리된 듯 하다. 사건의 마무리를 살펴보면, 결국 김동연 후보자가 택시비를 낸 것으로 밝혀졌고, 택시기사가 원인제공자임이 드러났다.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이 명목상 질의를 했으나, 별 시시한 걸로 문제를 삼았다며 오히려 네티즌들에게 욕을 먹었다.


[1] 장남2013년 10월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2] 첫 해에는 두어 문제를 수정을 하지 못한 채 답안지를 제출해 1차에서 아쉬운 점수 차이로 낙방하고, 두 번째 해에서는 국민윤리와 헌법은 점수가 양호했으나 세 번째 시험인 행정법 시험이 끝난 뒤 실수로 답안지를 가방에 넣고 점심을 먹으러 가는 바람에 실격처리가 되었다. 시험 감독관이 부정처리를 할 수도 있었으나 답안지 표지에 시험문제를 푼 것이 증거가 되어 단순경고만 받고 풀려났다고 한다.[3]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사무관[4] 신재민의 의견에 반박의 가까운 의견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자유한국당에서도 김동연 전 부총리를 비판했다.[5] 그러나 민주당에선 충북지사로 유력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있기 때문에 노 실장이 출마 의지를 피력한다면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노 실장이기에 김 전 부총리는 후보가 될 가능성이 낮다.[6] 현실 정치 경험이 부족한 두 인물 같은 경우에 단번에 대권주자로 올라서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일 수밖에 없다. 굳이 간다고 해도 종국에는 다른 후보들을 위한 들러리로 이용될 여지가 많다.[7] 다만 서울시장은 대한민국 선출직 공무원 중 넘버2에 해당될 정도로 요직인데다가, 김 부총리가 민주당이든 통합당이든 어느 정당에 가든 우상호오세훈, 안철수 같은 강력한 경쟁자를 맞닥들여야 하므로 단기간 내 지지세력 형성에 성공하지 않는 한 스스로 피할 가능성도 있다.[8] 참여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던 김장수한나라당으로 입당하고 비례대표에 당선되면서 안팎으로 비난을 받은걸 생각하면, 미래통합당으로 입당하기에는 지극히 부담스러운 상황이다.[9] 다른 한 명은 "노대래" 前 공정거래위원장이다.[10] 죄는 죄지만 기소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작은 사건일 경우 이 처분이 내려진다. 전과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