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축구
1. 전적
대한민국이 승리한 경기는 '''빨간색''', 일본이 승리한 경기는 '''파란색''', 무승부로 끝난 경기는 '''회색'''으로 표기한다. 또한 개별 문서가 있는 경기는 점수에 '''밑줄'''을 표기하며, 승부차기는 괄호를 사용하여 '''(점수 - 점수)'''로 표기한다.
1.1. 남자
남자 축구는 대한민국이 우세하다. 2019년 12월 18일 기준으로 대한민국 남자 A대표팀은 일본에 '''79전 42승 23무 14패'''의 우세한 전적을 기록하고 있다.
1.1.1. A대표팀
1.1.2. U-23 (올림픽 & 아시안 게임)
1.1.3. U-20
1.1.4. U-17
1.1.5. U-14
1.2. 여자
반면 여자 축구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지는데, 2019년 12월 17일 기준으로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은 일본에 '''4승 10무 17패'''로 열세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먼저 대한민국의 여자 스포츠는 일본에 비해 발전이 저조한 편이다. 농구, 배구, 골프, 핸드볼, 그리고 빙상 종목 쪽은 준수한 편이나, 축구와 야구는 일본에 비해 확실히 저조한 편이다.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은 동아시아 여자 축구의 승점자판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또, 한국과 일본의 여자 축구 리그의 역사도 차이가 나는데, 일본 여자 축구 리그가 1989년[1] 에 설립된 것에 비해 한국의 WK리그는 무려 '''2009년'''에야 설립될 정도로 한국과 일본의 여자 축구의 인기 차가 엄청나다.
1.2.1. A대표팀
1.2.2. U-20
1.2.3. U-17
2. 연표
2.1. 2010년
'''新 도쿄 대첩.'''
평소와는 정 반대로, 양국의 젊은 층은 내심 '''자국팀의 패배를 염원하던''' 경기. 한국의 축구팬들은 중국전에서 3:0으로 패한 허정무가 이 경기에서의 패배를 통해 경질되길 바랐고,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감독인 오카다 다케시가 해임되길 바랐다. 통칭 "개작두 매치".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일본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들에서는 '''목표대로 4강 달성!'''[2] '''비록 4개국 참가지만.''' 같은 코멘트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이겼지만 다들 허정무를 까는 분위기. 그리고 한국팬과 일본팬들이 한 마음으로 뭉친, 어느 의미로 참 기념비적인 시합이다. 오카다는 결과적으로는 경질되지 않았지만.
이 경기에서 일본이 선보인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면 당분간 성인대표팀 경기에서 한국이 지는 모습은 보기 어려울것 같다. 한국은 지난 10여년간 선수들의 체형이 많이 유럽화되었고 조용하지만 꾸준히 발전한 반면 일본은 도쿄 대첩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진바 없는 서글픈 피지컬을 선보였다. 여기에 10년 넘게 지속된 최전방 공격수의 부재...점유율도 더 높았고 열심히 공 돌려가며 기회를 만들었지만 넣어줄 사람이 없으니 한국은 거칠게 피지컬로 밀어 붙이고 위기 상황에선 바로 걷어내면 그만이었다.[3] 앞선 중국전에서 중국선수들의 피지컬에 개발살났던 조용형은 일본 공격수들과 만나자 파워 넘치는 스토퍼로 변신했다.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본선에서 일본이 1라운드 2승 1패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루긴 했다만,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한테 쫄 것 같지는 않다.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평가전 한일전은 2:0으로 승
여전히 일본 대표팀의 체력은 그야말로 안습 수준. 비록 상대가 국대 내에서도 체력 하나만 믿고 간다는 차두리라지만 일본 수비진들은 차두리가 돌파하기 위해 몸을 부딪히자 그냥 나가 떨어져버렸다. 게다가 박지성의 선제골은 '''경기시작 전반 6분만에''' 들어갔으니 참...한국의 체력을 앞세운 압박 축구에 일본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참고로 이날 일본 국가대표 출정식이 열릴 계획이었으나 '''결국''' 연기되었다. 그리고 3년 뒤 이 상황은 한국에 그대로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 오는데...자세한건 최강희호 참조.
여담으로 여기서 그 유명한 산책 세리머니가 나왔다.
그런데 겨우 몇 달만인 2010년 10월 12일 한국에서 열린 한일전 친선 경기에선 일본이 한국을 압도했다. 경기는 일단 0-0으로 겨우 비기면서, 해외 언론이 혼다 케이스케를 칭찬하기까지 했다. 겨우 몇 달전과 정반대의 상황이 되면서 앞으로 일본전이 어찌될지도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지만...겨우 친선경기 1경기 갖고 난리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2010 FIFA U-17 여자 월드컵 결승전 한국vs일본 - 3:3 무승부 후 승부차기로 한국이 '''우승.'''
2:3으로 한국이 지고 있다가, 후반 33분 이소담이 교체멤버로 들어오자마자 동점골을 터뜨리고, 무승부로 만든 후 승부차기까지 가서는 5:4로 승리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정말로 피말리는 순간의 연속으로, 한국의 첫 번째 주자로 나온 이정은의 슛이 히라오 에리의 선방에 걸리면서 시작부터 분위기가 일본 쪽으로 기울었다. 하지만 경기는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법. 곧바로 와다 나오코의 슛이 홈런이 되었고 여민지가 슛을 성공시키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고, 양팀 모두 다섯 번째 주자까지 다 성공한 상태에서 양팀의 운명을 가르는 순간이 왔다.
그 뒤 일본의 여섯 번째 주자로 나온 무라마츠 토모코가 마치 2010 남아프리카 월드컵 16강전 일본 대 파라과이의 승부차기에서 고마노 유이치의 슛이 골대를 때리고 날아가는 바람에 일본의 사상 첫 8강을 좌절시켰던 장면이 오버랩되는 듯한 실축을 저지른 것. 이로써 한국의 여섯 번째 주자인 장슬기가 성공시키면 바로 우승하게 되는 상황. 그리고 장슬기의 슛이 골로 연결되면서 한국의 첫 FIFA 주관대회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FIFA가 주최하는 경기에서 최초로 우승'''(여자대회 최초)한데다, 일본과 '''결승전'''에서 만나서 체력을 모두 소진하는 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5 : 4로 승리. 한국 축구계의 역사를 새로 쓴 대단한 경기다. 반면 일본은 FIFA 주관 대회에서 우승 한 번 없이 준우승만 3번째가 됨으로써 콩라인으로 등극했으나 2011 여자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 우승 겸 FIFA 주관 대회 성인대표팀 첫 우승[4] 이라는 금자탑을 쌓으면서 콩라인 탈출.
여담으로, 일본 국대는 이상하게 승부차기에서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다. 2010년 남아프리카 월드컵에서도 앞서 말했듯이, 파라과이에게 승부차기로 무릎을 꿇은 적도 있었고, 한일전도 승부차기가 있었다. 2007년 동남아 아시안컵 3위 결정전이 그 경기였는데, 하뉴 나오다케의 슛이 이운재의 손에 막히는 바람에 한국의 3위가 확정되었다. 2015 아시안컵에서도 예외는 아니라서, 승부차기 끝에 UAE에게 졌다...
예외로, 1992년 현재 A3컵과 같은 대회인 다이너스티컵에서 한국과 2:2로 비겨 벌인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긴 것과, 2007 동남아 4개국 아시안컵에서 호주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승리한 것과 2004 중국 아시안컵에서 요르단을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4:3으로 승리한 적이 있는데 그것도 겨우 이긴 것이다. 그리고 보다시피 U-17 여자 국대에게도 이 징크스가 그대로 이어지면서 우승컵을 한국에게 내주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 2010 AFC U-19 아시안컵 8강전 한국 vs 일본 - 3:2로 한국 승
- 이건 단순한 8강전이 아니라, 2011 FIFA U-20 월드컵 출전권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다. 더구나 2010 AFC U-16 아시안컵 예선 탈락[5] 으로 인해 2011 FIFA U-17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기 때문에 동생들 몫까지 해 줘야 할 상황이다. 이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에 두 골을 내주며 무너지는 듯 하다가 집념으로 이를 악물고 맹공을 퍼부어 세 골을 몰아쳤다. 그리하여 한일간의 공세가 점점 거세진 끝에 3:2 역전승으로 낙착. 이 경기에서 심판이 거의 일본 편을 들어주다시피 했기 때문에 졸지에 일본은 네티즌들로부터 '심판 매수하고도 못 이겼다'는 조롱을 받았다. 그리고 U-19 아시안컵에서 준우승만 6번 한 일본의 첫 우승은 또 2년 뒤를 기약해야 했다.
- 참고로 2년전에도 8강전이 한일전이었고 그 때 한국의 3:0 승리로 한국은 2009 FIFA U-20 월드컵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역시 한국이 승리하며 한국은 2011년 FIFA U-20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으며 5대회 연속 U-20 월드컵 본선 진출하고 일본은 복수의 리벤지를 꿈꿨지만 아 X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2대회 연속 U-20 월드컵 예선 ☆★☆광탈☆★☆로 2년 전의 악몽을 재현했다.
- 2010년 10월 12일 친선경기
- 0:0 무승부
- 시합 직전에 박지성이 무릎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빈자리에 윤빛가람이 투입. 하지만 윤빛가람과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서 뛴 조용형이 좋은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전반전엔 미드필드에서 완벽하게 발렸다. 후반전에 윤빛가람 대신 기성용이 들어오며 한국도 여러차례 찬스를 만들긴 했지만 골로 이어지지 않고 무승부. 숏패스를 통한 점유율 축구를 들고나온 일본이 점유율 면에서는 압도적이었지만 이쪽도 딱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한국에서 이래저래 과소평가 당하던 혼다 케이스케가 맹활약. 후반에는 일본이 올린 크로스가 최효진의 팔에 맞으면서 핸들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 한일전답게 친선경기라는 이름이 무색한 분위기였다.[6] 경기시작 전부터 관중석은 폭죽쇼로 달아올랐고, 일본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가 이어졌으며, 이순신이나 안중근 등이 그려진 걸개가 걸리기도 했다.
2.2. 2011년
2011 AFC 아시안컵 1월 25일 4강전 한국 vs 일본 2:2(전후연장) '''승부차기 3:0패'''(전적상으로는 무승부)
이 경기는 Top 3에 걸린 다음 대회 자동 출전권이 걸린 경기였다. 만일 이기면 결승에서 져도 그냥 자동 출전이지만, 져서 3위 결정전으로 밀려나면 거기서 이겨야 다음 대회 자동 출전이고 지면 국물도 없는 상황. 일본은 4년 전의 복수도 할 겸 자동 출전권을 못 받는 바람에 남아공 월드컵 준비 기간 중 아시안컵 예선을 치러야 했던 기억이 있었고, 한국도 이를 알고 있기에 동기부여는 확실히 되었다.
전반 23분 박지성이 콘도 야스유키에게 페널티 킥 찬스를 얻어 기성용이 골을 넣었다. 후에 마에다 료이치에게 실점을 하고 승부는 연장으로 흘러갔다. 연장 전반 일본에게 페널티 킥이 주어지고, 정성룡이 혼다 케이스케의 페널티 킥을 막았지만 달려들어온 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실점했다. 연장 종료 직전까지 1:2로 밀려가던 한국은 경기 종료 6초 전 황재원이 극적으로 동점골을 넣으며 환호에 휩싸였고, 경기는 승부차기로 흘러갔다. 승부차기에서 일본은 4골 중 3골을 성공(한 골은 홈런볼)한 반면 한국은 일본 골키퍼에게 2골을 막히고 한 골은 골대를 벗어나면서 '''한점도 얻지 못해 3:0 패배.''' 직전의 환희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어 버리는 순간이었다.[7]
승부차기에서 한국은 비교적 어린 선수들을 먼저 내보냈는데, 이에 대해서 말이 많다. 긴장감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경험자'를 내놓는 것이 승부차기의 일반적인 양상이며, 박지성을 비롯해 경력이 제법 있는 선수를 뒤로 미룬 것[8] 은 이해하기 힘든 처사라는 것. 한일전이니 만큼 엄청난 중압감이 더해졌을 것임을 생각하면...
뭐가 됐든 3:0은 너무 심했다는 의견이 많다. 때문에 DC 등지에서 삼연뻥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결과적으로 승부는 연장전 포함 2:2, 승부차기 3:0으로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덕분에 호전적인 집단 디씨에서는 '''2 + 2 + 3 + 0 = 7''', 그리고 정성룡의 연봉이 '''7억'''이라는 이유로 세븐 갤러리를 신나게 털었다.
참고로, 이 경기는 4강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일본과 호주간의 결승전보다 시청률이 더 높았다.''' 더군다나 한일간의 4강전은 화요일 밤, 결승전은 토요일 밤이었다. 일본의 한일전 관심도를 보여주는 사례.
2011년 8월 10일 친선경기 3:0 완패. 축빠들 사이에선 '''삿포로 참사'''라고 불린다. 이렇게 졌다. 왼쪽 수비수 두 명이 부상으로 실려나갔다.
자세한 내용은 삿포로 참사 참조.
2.3. 2012년
- 2012년 AFC U-19/U-16 선수권 지역예선 (2011년)
- U-19는 지난대회 일본이 8강에서 한국에게 지고 광탈하는 바람에 시드가 내려가서 지역예선부터 1/3 확률로 한국과 같은 조에 묶일 가능성이 생겼고, 결국 한 조가 됐다. U-16은 반대로 일본이 톱시드를 받았지만 지난대회 지역예선에서 광탈한 한국의 시드가 하위권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역시 한국과 같은 조에 묶였다.
- 2011년 9월 14일 U-16 예선 4:2 승.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먼저 치러진 U-16 경기. 경기 시작 5분만에 오카무라 고로에게 실점을 허용해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지만 전반 20분 황희찬의 동점골과 전반 43분 이건의 역전골이 터지며 2:1 승리 상태로 전반 종료. 후반 29분 스기모토 타로에게 동점골을 또 허용했지만 7분만에 유원종이 골을 넣으며 달아났다. 그리고 종료 직전 역전골의 주인공 이건이 쐐기골을 터뜨리며 4:2 승리로 경기 종료되었다. 이로써 베트남전 무승부로 시작부터 왠지 불안했던 한국 U-16 대표팀은 난적 일본을 잡고 본선 진출의 가능성을 높였다. 그리고 다음 경에서 대만을 8:0으로 잡고 홈팀 라오스를 상대로 0:0 무재배를 했지만 캄보디아를 10:0으로 압살하며 3승 2무로 조 2위. 일본을 이겼던 덕분에 당당히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9]
- 2011년 11월 10일 U-19 예선 1:0 승.
태국 촌부리에서 치렀다. 참고로 이쪽은 마지막 날에 치르는 경기다. 그런데 하필이면 첫날 태국한테 0:1로 깨지고 시작했기 때문에 본선행을 위해서라도 일본은 꼭 잡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마지막 경기에서 태국은 3승 1무로 일찌감치 본선 확정에 3전 전패 상태의 대만과 괌은 서로의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광탈인 상황이고 한일양국이 남았는데 G조에 인도네시아가 2승 1무 1패로 버티고 있어서 2승 1무인 일본은 괌이 골셔틀 역할을 해 준 덕에 29골차 이상으로 지지만 않으면 무조건 본선이었던 반면 2승 1패인 한국은 지면 좆망인 상태에 몰렸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한국이 불리한 상황. 전반은 무득점으로 끝나다가 후반 35분 문창진의 결승골을 잘 지켜서 1:0 승리, 한국이 조 2위로 치고 올라가 본선 직행하고 일본도 조 3위 추가 진출권을 받아서 한일 양국이 본선에 동반 진출했다. 참고로, 예선 탈락을 걱정하는 처지였던 한국이 이듬해 치러진 U-19 본선에서 우승했다. 일본은 8강에서 이라크한테 지고 탈ㅋ락ㅋ
-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축구 동메달 결정전 카디프 대첩 2 : 0 승
한일전 축구 역사상 동메달(3위 결정전)을 놓고 겨루는, 여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보기 힘든 사상 최고의, 그리고 최악의 데스매치. ALL or NOTHING.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양국은 2012 런던 올림픽 축구 4강에 진출했고 각각 멕시코와 브라질에게 패배함으로써 한일전을 치루게 되었다. 단순한 동메달 결정전이 아니었는데, 한국 축구 입장에선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따느냐, 일본 축구 입장에선 44년 만에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느냐가 걸린 시합이었다. 이러니 '최초의 메달 매치 한일전'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병역 면제까지 걸려 있어서, 버프 of 버프, 아니 없으면 짜내서라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즉, "승리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10] 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결국, 한국이 박주영의 선제골, 구자철의 추가골로 일본을 2:0 (김보경의 골포스트 맞는 슈팅이 들어갔다면 3:0으로 떡실신 시킬수 있었을텐데...)으로 제압하고 동메달을 따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조별예선에서 스페인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조별리그, 16강 4전 전승의 파죽지세로 4강까지 진출했지만 결국 목메달만 가져갔다. 자세한 경기 내용은 2012 런던 올림픽/축구 동메달 결정전 문서 참조.
- 2012 U-20 여자 월드컵 8강전
2012년 8월 30일 오후 7시 30분부터 도쿄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지는 한일전. 원래대로라면 여자 축구 강국인 일본의 우세가 예상되기에 일본 측이 열을 낼 이유가 없어 보였지만, 바로 위에 적힌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한일전에서 맛 본 비참한 패배가 자극제가 되었고,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으로 크게 악화된 한일관계로 인해 열기가 폭발했다. 일본 언론은 런던 올림픽의 패배를 거론하며 "복수"를 외치고 있고, 일본인들은 "욱일기를 들고 응원하러 가자"며 기세를 올렸다. 반면 한국 대표팀은 2010년에 개최된 FIFA U-17 여자 월드컵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우승한 바로 그 멤버를 주축으로 "타도 일본"을 외쳤다. 하지만 한국은 전반 8분 선제골을 허용하고 15분에 동점골을 만들어냈으나, 전반 19분, 37분에 골을 먹고 결국 3-1로 패했다. 경기장 곳곳에 욱일기가 잔뜩 걸려있었는데, 일본 서포터측 트위터를 보면 운영 스탭이 욱일기를 내거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고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실랑이가 벌어졌던 모양이다. 계속해서 걸어놓고 있으면 퇴장시키겠다는 등의 경고를 했으나, 결국 관중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강력한 처벌을 내리지는 못한 모양. 한편, 일본팀은 숙적 한국을 3:1로 꺾고 4강에 진출하자 축제분위기였다.
- 2012년 AFC U-16 선수권 조별 리그
이란 테레란에서 2012년 9월 25일 오후 1시(현지시각) 벌어진 경기. 한국은 그 전 경기에서 황희찬(포항제철공고)의 해트트릭에 힘입어 북한을 3:0으로 압살하고 기분 좋은 출발을 한 가운데 일본 역시 사우디아라비아를 2:0으로 꺾은 터라 이 한일전에서 승부가 갈리면 경우에 따라 이긴 쪽이 일찌감치 조 1위로 본선을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운명의 한일전이 시작되었다. 전반 12분 황희찬의 선제골로 분위기를 잡은 한국은 10분만에 오가와에게 동점골을 얻어맞았으나, 그로부터 20분이 채 못 지난 전반 41분 최주용(매탄고)의 골로 다시 달아났다. 얼마 후 전반이 종료되고, 후반전 내내 계속 2:1 상태를 유지하다가 후반 43분쯤에 승부에 쐑기를 박는 고민혁(울산현대고)의 추가골이 터지며 한국의 3:1 승리로 경기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북한 대 사우디의 경기에서 북한이 사우디를 2:1로 격파한 덕분에 한국의 여유로운 8강행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남아있는 사우디와의 경기를 심적 부담 없이 치르게 되면서, 8강행을 위해 북한과 단두대 매치를 해야 하는 일본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허나 그 후 한국과 일본은 각각 사우디와 북한을 이기고 둘다 8강에 올라갔는데,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만난 한국은 승부차기에서 패배하며 U-17 월드컵 진출 자체가 무산됐지만(...) 일본은 결승전까지 가는데 성공하고 [11] , 그 다음해에 열린 U-17 월드컵에서 16강까지 가는데도 성공했다.
2.4. 2013년
- 2013년 동아시안컵 대회
7월 28일에 한국에서 열린 경기이자 2013년 들어서 국대팀으로 처음 벌어진 한일전이었기에 관심이 컸다. 무엇보다 0:3 대패 설욕이 가능한가 했는데...호주와 중국을 상대로 무득점에 아쉬운 모습을 보인 한국 국대팀은 일본의 카키타니 요이치로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으나 윤일록이 동점골을 기록하며 추적하는가 했지만, 결국 90분 막판에 또 다시 카키타니 요이치로에게 또 골을 허용하면서 1:2로 패했다. 결국 2무 1패로 한국은 3위를 기록하고 일본은 2승 1무로 우승을 했다. 13년만에 국대축구경기가 열린 잠실종합운동장에서 벌어진 경기였는데 삿포로 참사에 이어 2연패 및 한일전 4경기 연속 무승(2무 2패)을 기록하게 되었다.[12] 전날, 여자 축구가 일본 축구를 이기면서 불타오르던 그 분위기에 제대로 초를 쳤다.
런던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경기 외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 서포터인 붉은 악마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적힌 대형걸개를 걸어버린 것. 이것도 박종우의 독도 세레머니와 마찬가지로 FIFA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행동인지라 주최측에서 철거를 지시했으나, 이를 이유로 붉은 악마측에서는 응원을 보이콧 해버렸다. 한국의 홈그라운드 경기였음에도 일본측의 응원소리만이 들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또한 일본 서포터측에서도 욱일기 응원을 펼치려다가 주최측의 제지로 성사되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런던 올림픽에 이어 이번에도 경기 외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한국 서포터인 붉은 악마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적힌 대형걸개를 걸어버린 것. 이것도 박종우의 독도 세레머니와 마찬가지로 FIFA 규정에 위반될 소지가 있는 행동인지라 주최측에서 철거를 지시했으나, 이를 이유로 붉은 악마측에서는 응원을 보이콧 해버렸다. 한국의 홈그라운드 경기였음에도 일본측의 응원소리만이 들렸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 또한 일본 서포터측에서도 욱일기 응원을 펼치려다가 주최측의 제지로 성사되지 않았다는 모양이다.
2.5. 2014년
- 2014년 AFC U-16 챔피언십 8강전 2-0 승
이승우: "저희는 뭐 저희 플레이에 맞게 저희가 준비한 거를 하면, 일본 정도는 뭐 가볍게 이길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이승우 문서 참조. 한국이 초특급 유망주인 바르셀로나 유스 선수 이승우의 두 골 에 힘입어 일본에 2-0으로 승리, U-17 월드컵행 티켓을 따내면서 일본을 광탈시켰다. 이날 하프라인부터 드리블로 골키퍼까지 재쳐버린뒤 넣은 이승우의 골은 단연 압권.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축구 토너먼트 8강전 1-0 승
한국이 U-23 대표+와일드카드로 나온 반면 일본은 전원 U-21 대표로 나왔고, 홈 이점도 있는 한국은 90분 내내 일본을 몰아붙였다. 허나 마무리 과정이 심각하게 안습했던 한국은 후반 막판까지도 일본의 골문을 못 열고 있었다... 허나 후반 40분 일본의 페널티박스 안에서의 공중볼 경합에서 일본 수비수가 이종호를 뒤에서 내리 찍어준 덕분에 페널티킥을 얻고, 장현수가 킥을 성공, 위의 U-16팀에 이어 일본을 또 한번 광탈시켰다. 한국의 이광종호는 그 이후로도 승승장구해서 결승에서 북한을 꺾고 금메달을 따는데 성공했다.
- 2014년 AFC U-19 챔피언십 조별예선 1-2 패
서명원, 황희찬, 김신, 김건희, 백승호 등 공격라인만큼은 역대 최고라고 평가받았던 한국은 조별예선 첫경기에서 베트남을 6-0으로 이겼지만 두번째 경기에서 중국을 상대로 졸전 끝에 0-0으로 비기고, 1승 1무에 조 1위 상태로 세번째 경기인 일본전을 맞게 됐다. 첫경기에서 중국에게 2-1로 패한 일본은 두번째 게임이었던 베트남전에서 3-1로 승리했지만 여전히 조 3위,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무승부만 해도 무조건 U-20 월드컵의 출전권이 걸린 8강전에 올라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승부를 노린듯한마냥 소극적으로 나온 한국은 시작하자마자 당연하게 거센 공격으로 나온 일본에 경기 내내 밀리고, 일본의 에이스 포워드인 미나미노에게 두골을 헌납하며 2-1로 패배한다. 중국은 마지막게임인 베트남전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넣고 1-1로 무승부를 기록해서 조 2위를 사수, 결국 이번엔 예전 대회들과는 반대로 일본이 한국을 광탈시킨 셈이 되었다... 한국의 실망스러운 2014년 월드컵 대참사 후 위의 U-17세대와 U-23세대가 호성적을 내고 성인대표팀도 슈틸리케호로 재편성 후 좋은 내용을 보여주면서 분위기가 좋아지던 한국 축구계에 단번에 찬물을 끼얹은 셈. 담당 감독인 김상호는 당연하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중이고[13] 팬들은 위에 나온 수많은 유망주들이 세계무대를 경험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워하고 있는 중이다. 반면 일본은 그동안 이 연령대에서 그들을 끝없이 괴롭혀왔던 한국에게 제대로 복수를 하고 진짜 오랜만에 U-20 월드컵에 진출하는게 매우 유력하게 된 셈. 하지만 그래도 일본이 U-20 월드컵으로 가는일은 없었다. 한국과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낸 일본은 이어지는 8강전에서 북한에게 승부차기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역시 일본은 이 레벨에서는 한민족 팀들과 뭔가 마가 낀듯.
2.6. 2015년
- 2015 동아시아컵 남자부 2차전 1-1 무승부
두 팀 모두 유럽파 등 최정예 멤버는 제외하고 동아시아 리그 출신들(한국), J리그 출신들(일본)로만 구성하였기에 전반적으로 답답한 승부가 펼쳐졌는데, 주도권을 한국이 잡긴 했지만 일본 역시 만만찮은 상대였다. 결국 전반에 한골씩 주고받은 뒤에는 한국이 장악하고 일본이 간혹 역습을 펼치는 모양새가 이어지다가 무승부로 마무리가 됐다.
한편 이 경기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주전을 빼고 1.5진급으로 경기를 벌이면서 어느 정도는 실험 목적도 있음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점은 할릴호지치 감독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 2015 동아시아컵 여자부 2차전 2-1 승
2.7. 2016년
경기 시작 전, '''일본은 우승 자판(JAPAN)기'''라는 개드립을 대한축구협회가 공식 응원구호로 지정할 정도로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낙관적인 분위기가 짙었다. 사실 일본은 지난 경기들을 무패 돌파했고 최소 실점까지 달성하여 결승에 오르기는 했지만 대체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고, 운에 상당히 의존한 감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실력차는 극명한 상황이었다.'''수비로 일낸다'''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듯 우리나라 대표팀은 전반전부터 공격과 수비가 잘 조율된, 그야말로 이상적인 축구를 하며 일본을 압도했고, 전반 20분, 권창훈의 선제골과 후반 2분, 진성욱의 멋진 터닝슛으로 2:0으로 점수를 벌리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대한민국의 낙승을 점쳤고 우리나라 중계 및 해설진들 역시 일본 축구를 조롱하는 것을 넘어 아예 걱정까지 할 정도로 설레발을 먹었다.
이후 후반 초반까지 파상공세를 받아내던 일본은 후반 15분부터 역습에 특화된 선수들을 잇따라 투입했는데 대회 내내 선보였었던 이 매크로 용병술은 또다시 적중하여 결국 21분 경에 교체 투입된 아사노 타쿠마가 만회골에 성공했으며, 만회골을 넣은지 '''1분도 안 되어''' 우측에서 날아온 크로스를 야지마 신야[14] 가 달려오며 맞힌 헤더로 눈 깜짝할 사이에 경기를 원점으로 돌려버렸다. 이 때 잠시 한 눈 팔거나 다른 채널로 돌렸던 시청자들은 점수판을 보고 방송사고로 오인하거나 축구에도 '''2점슛'''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카더라.
그래도 다들 '''설마 지겠어?''' 란 생각을 '''했었으나...''' 후반 35분경, 만회골을 넣었던 아사노 타쿠마에게 또다시 역습 당해 역전골까지 쳐먹히면서 한국 대표팀은 '''단 14분 동안''' 3골을 연달아 실점했다.[15] 와 이런 만화에나 나올 법한 대역전극에 충격 받은 대표팀은 어떻게든 다시 따라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려는 모습은 있었으나, 선수들 힘이 다 빠져 크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했다. 일본 선수들 이름으로 말장난을 하며 무사태평하던 중계진들 역시 크게 당황해 말을 더듬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16]
패배의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의 전술을 제대로 분석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한 점이었다. 일본은 대회 기간 동안 항상 후반을 노리는 역습 위주의 축구를 구사했고 실제로 절반이 넘는 골을 후반 혹은 연장전에서 기록하며 꾸역꾸역 올라왔다. 이는 '''후반 중반 이후부터 체력이 방전되는 기존의 일본 축구선수들과는 달리 후반, 그리고 연장까지도 체력이 넉넉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표팀은 2골을 먼저 득점했음에도 불구, 수비진 및 3선 라인을 지나치게 끌어올리고 신나게 공격하며 수비를 등한시하는 등 과욕적으로 경기를 운영했고, 후반에 일본이 항상 하던대로 역습에 특화된 선수들을 투입하는 것을 보고도 전술을 수정하지 않다가[17] 비슷한 패턴으로 3연속 실점하게 된 것이다.
세계 최초 올림픽 8회 진출이란 대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전에서 일본에게 잘 하다가''' 3골을 내리 내어주며 패배한 점에선 비판을 받을만 하며, '''설레발은 필패'''라는 공식은 만고불변의 진리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경기가 되었다.
여러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은 축협 및 감독의 경기전 언플과 어이없는 참사급 패배에 분통해 하고 있으며, '''도하 쇼크'''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욕설을 포함한 댓글수는 미친듯이 증가하고 있다. 기사
2.8. 2017년
- 2017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남자부 3차전 4-1 승
2.9. 2018년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축구 여자 축구 4강 1-2 패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축구 남자 축구 결승 2-1 승
2.10. 2019년
- 2019 FIFA U-20 월드컵 폴란드#s-7.1.1 16강 1-0 승
-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 여자부 3차전 0-1 패
-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남자부 3차전 1-0 승
일본은 중국전과 홍콩전에서 총합 7득점 1실점이라는 막강한 공격축구를 보여준 반면 한국은 공격전개가 좋아도 결정력이 안 좋아 단 3득점 밖에 올리지 못해 일본이 이길 거라는 비관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깽판을 치기도 했다. 일반적인 중론은 한국이 우세하긴 한데 조직적인 일본의 역습에 고전할 수 있다 정도.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경기 내내 한국은 일본을 상대로 늘 효과를 보았던 전방 압박 전술을 꺼내 일본의 공격작업을 방해했고 일본은 하프라인을 넘기도 버거워하다가 전반 27분에 황인범의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을 허용하며 경기 내내 끌려다녔다. 슈팅 3개, 유효슈팅 0개라는 끔찍한 빈공 하에 지난 대회처럼 한국의 우승 제물이 되버려 여자축구 우승으로 기뻐하던 일본 팬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건 덤이다.
한국은 이 경기를 통해 황인범, 나상호가 폼이 올라오면서 붙박이 주전임을 다시 증명해냈고, 고집이 있다고 평가받던 파울루 벤투 감독의 유연성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여자축구의 패배를 확실하게 복수해주면서 여론을 우호적으로 되돌리는데도 성공했다.
3. 풋살
풋살 문서에도 나오듯이 일본은 이란과 더불어 아시아 최강급 풋살 강호다. 한국도 10여년전에는 아시아 풋살 챔피언십 준우승도 하고 아시아 강호급이긴 했지만 이제는 약체로 추락했다.
풋살 챔피언십에서 한일전 대회가 이뤄진 건 2001년 이란에서 열린 2회 대회 3,4위전. 한국은 2-1로 일본을 이기며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2년 대회부터 한국이 4위, 일본은 2위를 거둔 뒤로 성적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4년 8강을 마지막으로 토너먼트도 넘지못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02년부터 4회 연속 준우승을 거두더니만 2006년 대회는 그동안 이란이 모조리 우승을 독식하던 이 대회에서 첫 우승을 거뒀고 2012년 대회도 우승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2008년부터 조예선 꼴찌로 계속 광탈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12년만에 이 대회에서 한일전이 치뤄졌다. 2014년 5월 1일 베트남에서 열린 AFC 제13회 아시아 풋살 챔피언십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에게 무려 0:12로 대참패를 거두면서 이 대회 참가 2번째 최다 실점패(최다 실점은 2012년 이란에게 조예선에서 1-14로 패했다)를 당했다. 뭐 경기전부터 일본은 아시아 풋살에서 상위랭킹인 반면, 한국은 중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대패가 예상되긴 했다. 참고로 한국 풋살 대표팀은 같은 조의 우즈베키스탄에게 0-3,키르기스스탄에게 1-4도 패하면서 조 꼴찌로 일찌감치 광탈했다.
반면 일본은 이 대회 결승까지 올라 아시아 최강이나 풋살에서는 세계적인 수준급 강호(이란은 풋살 월드컵 4강에 2번이나 진출한 유일한 아시아 나라다. 2016 풋살 월드컵 8강전에서는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까지 승부차기 끝에 이겼다.)로 알아주던 이란과 비겨 승부차기 끝에 우승하면서 2연패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니 한국이 저렇게 크게 질만했다는 걸 보여준 셈.
투자나 관심도에서 한국과 다르게 풋살에 열정을 기울여 갈수록 발전되어가며 FIFA 풋살 월드컵 본선도 여러번 진출해 16강 토너먼트도 오른 일본과 달리 한국 풋살 대표팀의 존재와 관심도가 적고 모르는 이가 많은 현실이다. 단지 풋살을 하면서 그냥 축구인데 작은 골대, 작은 면적 공간에서 적은 인원으로 하는 미니 축구 게임으로 알고 넘어가는 것일 뿐 하긴 축구나 풋살이나 스케일이 조금 더 커지고 작아진 것을 제외하면 큰 틀은 거의 흡사한 종목이다 보니 따로 구별을 잘 두지 않아 그런 면도 있다.
4. 클럽 축구
아무래도 클럽축구 한일전은 국대경기가 아니라서 비중이 적어보인다. 게다가 외국 선수가 같이 활약하며 일본 팀에 한국선수가 얼마든지 뛰기에 한국선수 골로 한국 팀이 지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21] 그래서 한일전으로 많이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은 한국과 일본 클럽축구 자존심도 걸려있고 2006년부터 아시안 챔피언스리그를 한국과 일본 클럽이 번갈아 우승(2006년 전북, 2007~8년 일본, 2009~10년 포항과 성남 우승)하면서 신경을 쓰여서인지 언론에서도 신경(한국보단 되려 일본이 더 열폭하곤 했다. 2007~8년 우라와와 감바가 피파 클럽월드컵에서 3위를 거두자 2006년 대회에서 겨우 5위(?)를 한 전북보다 일본 클럽이 우위라고 자뻑하는 글을 신문에 싣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포항이 똑같이 3위를 거두자 입다물었다.)을 쓴다.
2010년에는 한국 클럽 4팀 전원이 16강에 오른 점을 두고 일본에서도 더 신경을 쓰고 반대로 2011년에는 일본 클럽 4팀 전원이 16강에 오르자 이번이야말로 일본의 우승 탈환이라는 투로 크게 보도하기도 했다.(그러나 이번에도 8강까지 전원 탈락) 반대로 한국에선 아챔리그 중계도 하지않으며 좀 방송이나 언론이 무시하는 대조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2011년 9월 27일 전북 현대 모터스가 이동국의 4골에 힘입어 6:1로 세레소 오사카를 크게 이길 당시 한 개념없는 전북 서포터의 일본어 걸개가 문제를 일으켰는데 일본 대지진을 축하한다는 글을 일본어로 써붙여넣었다. 세레소 측 항의로 얼른 내리게 했지만, 결국 일본 축구협회까지 항의하였고 결국 장본인이 사과글까지 올렸지만 일본의 정치적 여러가지로 사죄하지 않은 점을 들먹이며 이 사람을 옹호하는 의견도 보인다.
AFC 챔피언스 리그 세레소 오사카 VS 전북 현대
2011년 한일전 클럽축구 대결에선 한국이 압도적인 우세 및 완승을 거둔 셈이다. 참고로 전북이 거둔 6:1 일본 클럽 대승은 2000년대 아시안 클럽컵에선 최고 한일전 골득점차.(다른 대회에선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컵 2006년 대회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가 J리그 우승팀으로 올라온 감바 오사카를 이천수의 해트트릭으로 6:0으로 이긴 게 최고 골득점차)
2012년에는 전번도 준우승팀인 전북 현대 모터스가 가시와 레이솔에게 1:5, 0:2로 대패하면서 탈락하고 한국은 2팀이 탈락하고 일본은 3팀이 16강에 오르면서 우쭐거리나 했더니 울산 현대가 일본 클럽과 2승 1무를 거두고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거두면서 2채널을 비롯한 일본 축구 사이트에선 또 일본이 클럽축구에서 한국에게 밀렸다고 하는 자조적인 반응을 보였다.
2016년에 전북 현대 모터스가 우승한 이후로 K리그가 ACL에서 힘을 못 쓰고 그 사이 2017년에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18년에 가시마 엔틀러스가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K리그도 한물 꺾인 게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2020년, 외국인 용병도 없이 대회에 참가한 수원 삼성이 16강에서 2019시즌 J리그 우승팀인 요코하마 F. 마리노스를 3:2로 꺾은데다 8강에서 만난 빗셀 고베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싸움을 보여주어 큰 주목을 받았고, 무엇보다 울산 현대가 2012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무패 우승을 차지하여 K리그의 ACL 왕좌를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22]
우승횟수에서도 차이가 심하게 나는데 K리그는 2020년까지 우승 12회, 준우승 6회인데 반해 일본은 우승 7회, 준우승 4회다. 심지어 K리그는 80년대에 경비와 일정문제로 아시아 대회에 7년간 불참하는 패기를 보여주기까지 했고, 결승이 한일전일 경우 진적이 단 한번도 없다.
의외로 클럽전적은 비슷하다. J리그 출범이후 공식전적은 2013년 현재 105전 42승 25무 38패 164득점 159실점이며 ACL만 국한했을때, 28승 16무 27패 109득점 111실점으로 거의 막상막하다.
[1] 남자 리그인 J리그보다 4년 먼저 설립되었다.[2] 오카다 감독은 월드컵에서의 목표가 4강 진입이라고 발언했다.[3] 결승골과 쐐기골은 모두 일본의 공격이 실패한 상황에서 들어간 카운터 어택이었다.[4] 피파 주최 여자대회에선 북한(2008 U-17)과 남한(2010 U-17), 일본(2011)이 여자 월드컵을 각각 우승해서 3번 우승을 거둔 거와 달리 남자 대회에선 아직까지도 1989년 U-17 월드컵 축구 스코틀랜드 대회 우승을 거둔 사우디아라비아가 유일하다.[5] 원래 U-16은 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한국의 AFC U-16 아시안컵 예선 광탈은 이변이라고 쳐주기도 뭐하다. 위키백과의 이 항목과 이 항목을 보면, U-19쪽 예선은 본선 진출팀이 거의 상위 시드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U-16쪽은 본선 진출팀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6] 조석은 자신의 축구웹툰에서 이 상황을 두고 '친선과 대혈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이 오묘함'이라고 적절히 표현했다.[7] 당일 언론에선 '축구라기엔 너무 거대한 드라마'라며 미친듯이 띄워줬다.[8] 물론 박지성의 경우는 고교 전국대회 때 승부차기 실축으로 팀의 패배를 경험한 이후로는 가급적 승부차기를 안한다고 밝히긴 했지만...[9] 일본 4승 0무 1패 (12점) / 한국 3승 2무 0패 (11점) / 라오스 3승 1무 1패 (10점)[10] 참고로 한국이 준결승에 진출하면서 해외에 이 병역 관련 문제가 알려져, 이와 관련된 주제가 꽤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전세계적으로 축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이야기.[11] 하지만 일본도 한국처럼 우즈베키스탄에게 승부차기로 우승컵을 내줬다.[12] 더군다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2000년 이후 홈 개최 A매치 한일전에서 승리가 없다(!). 마지막 승리의 장소도 바로 잠실. 하석주의 골로 1:0으로 승리했고, 그 하석주가 전남 드래곤즈 감독이 되는 동안 무승행진...[13] 베트남전 대승 후 남은 중국전이나 일본전 중 한 게임에서는 승부를 걸었어야 하는 상황에서 두게임 다 수비적으로 소심하게 임했고, 5일 안에 3게임을 해야 했던 정신나간 스케쥴 와중 선수들 로테이션도 거의 돌리지 않았다! 결국 베트남전 선발라인업에서 절반을 바꾸며 적절하게 로테이션을 돌린 일본에게 체력이 방전된 한국 선수들은 스피드와 체력면에서 당연하게 밀렸고, 마지막 20분동안 제대로 된 슛마저 한번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패배했다...[14] 현재 우라와 레즈 소속으로 할릴호지치 일본 감독이 눈여겨보는 젊은 측면 공격수이다. [15] 그동안 우리나라는 일본에 비해 피지컬적으로 우수하여 몸싸움이나 스피드에서 지지 않는다고 자부해 왔다. 문제는 아사노 타쿠마는 당시 소속팀이던 산프레체 히로시마에서 특급 조커이자 해결사로 기용될 만큼 득점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맞먹는 단거리 스피드와 탄탄한 피지컬을 갖춘 선수이다. 후반들어 체력이 급속히 방전된 우리나라 선수들에게 아사노의 존재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실제로 아사노에게 먹힌 점수 모두 우리나라 수비수 2~3명을 스피드와 몸싸움으로 이겨내고 얻어낸 득점이라 더욱 치욕적이었다.[16] 특히 '''애국 애설'''로 이름이 높던 SBS 배성재/박문성 해설진이었기에 당시 당황한 해설진들의 모습을 더욱 체감할 수 있다.[17] 당시 신태용 감독이 목소리를 높여가며 전술 지시를 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공격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하느라 우리나라 선수들의 체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전술을 수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다.[18] 실제로 여자축구팀이 일본에게 패한 후 이민아는 슛 포 러브를 통해 "꼭 이겨달라"고 주문했고, 지소연은 "복수해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19] 황희찬은 득점 후 박지성이 했던 산책 세리머니를 재현하였다.[20] 단, 황인범의 경우 이미 군인신분이었으므로 전역 처리.[21] 가장 최근으로 2011년 대회에 유일하게 일본 팀으로 아시안 챔피언스리그 8강까지 오른 세레소 오사카에 김보경이 뛰고 있는데 김보경이 8강전 1차전 세레소 안방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4-3으로 전북 현대 모터스를 이기자 매국노라는 비난(?)까지 올라온 바 있다. 그리고 김보경은 2차전에선 시작 10분도 안돼 부상으로 코뼈를 크게 다치고 2주 정도 치료를 위해 실려나갔고 결국 세레소 오사카는 이동국에게 해트트릭까지 내주면서 대패했다.[22] 울산과 고베의 4강전에서 VAR 판정에 납득을 못한 일본축구협회 회장과 빗셀 고베의 회장이 AFC에 제소하는 해프닝도 있었으나,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생억지 수준의 항의였기에 AFC 측에서 이 제소를 각하하였다. 자세한 사건의 내용은 이곳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