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국주의
영어: American imperialism, American Empire
한국어: 미국 제국주의, 미제국주의, 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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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와서 다른 식민제국들은 모두 해체되거나 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은 반면,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아직도 패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북한, 구 공산권[1] , 중남미,[2] 아랍 국가, 이란 등 반미 성향 국가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다. '''미국 제국''' 또는 '''미제국'''이란 당연히 실제로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멸칭의 성격을 가지는 용어다.
냉전 시기에는 일제의 패망으로 독립한 조선에 들어와 여운형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활동을 전면 부정하고 총독부 행정을 유지하는 한편 친일파들을 그대로 요직에 두어서 민중들의 불만을 샀고,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좌우대립이 일어날 당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제주 4.3 사건과 대구 10.1 사건을 우익들이 무자비 하게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3] 중국 국민당의 선공으로 시작된 국공내전 때는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던 장제스의 국민당을 지원했다.[4][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필리핀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지지를 받자 미국은 이들의 시도를 분쇄했다. 그리스 내전 당시 미국은 그리스 사회주의 세력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우파를 지원하여 반공주의 진영에 남도록 했다.
프랑스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일으킨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한때 자신들의 동맹[6] 이었던 호치민의 요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식민지 전쟁을 수행하는 프랑스에게 전쟁 비용을 지원했고,[7] 1951년에는 전비 80%를 지원해줬다. 베트남 공화국을 공산주의자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을 세워 응오딘지엠 독재정권을 지지했고,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협약에 따라 통일을 위한 총선을 실시해야 했으나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통킹만 사건을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베트남 전쟁을 확전하며 개입했다.
냉전 시기 미국은 반공을 내세워 쿠바의 바티스타 군사정권의 지원을 시작으로[8]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비롯한 중남미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친미 군사정권이 세워지게 한다. 1970년 칠레에서 세계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 아옌데가 정권을 잡자 미국의 닉슨 정부는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도왔고, 그 결과 아옌데는 쿠데타 군대에 맞서 싸우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난 이후 칠레에는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며 공산주의자 색출을 단행한 당일에 경기장에서 최소 3,200명을 학살하며 시작했고, 그가 집권한 기간 동안 최소 3만에서 6만 명이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이는 이후 중남미 국가들에서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게 된 이후,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친미 진영에서 반미 진영으로 돌아서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나 1970~80년대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6개국의 공동 공산주의 척결 운동인 콘도르 작전으로 6만명 정도 되는 남미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잔혹한 고문에 시달렸는데, 이것을 미국 CIA가 지원했다.
냉전 말기에는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그레나다와 파나마를 침공(그레나다 침공&파나마 침공)하여 반미정부를 몰락시키고 친미정부로 교체했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소위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이란에게 무기를 팔고, 그 자금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콘트라 우익 반군을 지원했다.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을 통해 소모사 독재정권을 축출하고 니카라과에 좌파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카터 정부때부터 극우 성향의 군부를 지원했는데, 이들이 콘트라 반군이었고, 콘트라 반군은 로널드 레이건 정권기 CIA의 대대적인 도움을 받아 학살, 고문, 폭행, 강간, 사지절단 등과 같은 악행들을 저질렀으며, 수만 명이 콘트라 반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당연히 로널드 레이건은 이들을 '''자유투사'''로 치켜세웠다. 1986년에는 카다피의 리비아 정권하고 갈등이 있자, 리비아를 공습하여 카다피를 암살하려 했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걸프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개입하여 이라크와 세르비아를 패배시켜 자신의 힘을 세계에 과시하였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이라크 전쟁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이라크의 바트당 정권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고 친미 과도 정부를 수립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때도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여 반미 정권인 카다피 정권을 전복시켰다. 지금도 미국은 미군을 많은 국가들에 주둔시키면서 세계 여러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하던 세계인들, 특히 서유럽인들이 근래에는 막상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자제하면 또 그거대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시리아 내전에 미국이 적극 개입 안 하고 거의 방치하고 있다고 욕을 먹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예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자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 그 예. 물론 유엔 결의 없이 침공했던 이라크 전쟁과 달리, 시리아 내전은 이슬람 레반트 국가라는 인류의 적을 척결한다는 목적이 존재했기에 여러 나라가 격퇴전에 참여해야만 하는 명분이 있었다.[9]
그리고 이것은 2010년대 들어와서 자유주의 성향 유럽인들의 러시아의 국수주의자들이 설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과거 2000년대 네오콘주도의 미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보다 더 높아진 이유도 크다. 알다시피 미국우월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네오콘은 2010년대 이후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세를 잃었고 반면에 러시아가 여러지역에 침투해 세력확장을 하게 되면 판이 더 막장이 될 가능성인 높기 때문이다.
한국어: 미국 제국주의, 미제국주의, 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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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현대에 와서 다른 식민제국들은 모두 해체되거나 식민지의 대부분을 잃은 반면,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아직도 패권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게 남아있다. 북한, 구 공산권[1] , 중남미,[2] 아랍 국가, 이란 등 반미 성향 국가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다. '''미국 제국''' 또는 '''미제국'''이란 당연히 실제로 식민지를 보유한 제국이라는 용어가 아니라 멸칭의 성격을 가지는 용어다.
2. 냉전
냉전 시기에는 일제의 패망으로 독립한 조선에 들어와 여운형이 조직한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위원회의 활동을 전면 부정하고 총독부 행정을 유지하는 한편 친일파들을 그대로 요직에 두어서 민중들의 불만을 샀고, 모스크바 삼상회의 이후 좌우대립이 일어날 당시 그 과정에서 일어난 제주 4.3 사건과 대구 10.1 사건을 우익들이 무자비 하게 진압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3] 중국 국민당의 선공으로 시작된 국공내전 때는 부정부패가 극에 달하던 장제스의 국민당을 지원했다.[4][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필리핀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지지를 받자 미국은 이들의 시도를 분쇄했다. 그리스 내전 당시 미국은 그리스 사회주의 세력들을 소멸시키기 위해 우파를 지원하여 반공주의 진영에 남도록 했다.
프랑스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일으킨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 한때 자신들의 동맹[6] 이었던 호치민의 요구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반공주의에 입각하여 식민지 전쟁을 수행하는 프랑스에게 전쟁 비용을 지원했고,[7] 1951년에는 전비 80%를 지원해줬다. 베트남 공화국을 공산주의자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을 세워 응오딘지엠 독재정권을 지지했고,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협약에 따라 통일을 위한 총선을 실시해야 했으나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통킹만 사건을 일으켰다는 명목으로 베트남 전쟁을 확전하며 개입했다.
냉전 시기 미국은 반공을 내세워 쿠바의 바티스타 군사정권의 지원을 시작으로[8]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비롯한 중남미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친미 군사정권이 세워지게 한다. 1970년 칠레에서 세계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 아옌데가 정권을 잡자 미국의 닉슨 정부는 이를 전복시키기 위해 피노체트의 군사 쿠데타를 도왔고, 그 결과 아옌데는 쿠데타 군대에 맞서 싸우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옌데 정권이 무너지고 난 이후 칠레에는 피노체트 정권이 들어서며 공산주의자 색출을 단행한 당일에 경기장에서 최소 3,200명을 학살하며 시작했고, 그가 집권한 기간 동안 최소 3만에서 6만 명이 그런 죽음을 맞이했다. 이는 이후 중남미 국가들에서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루어지게 된 이후, 많은 중남미 국가들이 친미 진영에서 반미 진영으로 돌아서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특히나 1970~80년대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우루과이, 파라과이, 칠레 6개국의 공동 공산주의 척결 운동인 콘도르 작전으로 6만명 정도 되는 남미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실종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잔혹한 고문에 시달렸는데, 이것을 미국 CIA가 지원했다.
냉전 말기에는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는 그레나다와 파나마를 침공(그레나다 침공&파나마 침공)하여 반미정부를 몰락시키고 친미정부로 교체했다. 1980년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소위 이란 콘트라 스캔들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이란에게 무기를 팔고, 그 자금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콘트라 우익 반군을 지원했다. 1979년 산디니스타 혁명을 통해 소모사 독재정권을 축출하고 니카라과에 좌파정권이 들어서자, 미국은 카터 정부때부터 극우 성향의 군부를 지원했는데, 이들이 콘트라 반군이었고, 콘트라 반군은 로널드 레이건 정권기 CIA의 대대적인 도움을 받아 학살, 고문, 폭행, 강간, 사지절단 등과 같은 악행들을 저질렀으며, 수만 명이 콘트라 반군에 의해 학살당했다. 당연히 로널드 레이건은 이들을 '''자유투사'''로 치켜세웠다. 1986년에는 카다피의 리비아 정권하고 갈등이 있자, 리비아를 공습하여 카다피를 암살하려 했었다.
3. 현대
소련이 해체되고,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미국은 걸프 전쟁,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개입하여 이라크와 세르비아를 패배시켜 자신의 힘을 세계에 과시하였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 된 후에는 이라크 전쟁과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일으켜 이라크의 바트당 정권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고 친미 과도 정부를 수립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대통령 때도 리비아 내전에 개입하여 반미 정권인 카다피 정권을 전복시켰다. 지금도 미국은 미군을 많은 국가들에 주둔시키면서 세계 여러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난하던 세계인들, 특히 서유럽인들이 근래에는 막상 미국이 군사적 개입을 자제하면 또 그거대로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시리아 내전에 미국이 적극 개입 안 하고 거의 방치하고 있다고 욕을 먹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예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고 발표하자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 그 예. 물론 유엔 결의 없이 침공했던 이라크 전쟁과 달리, 시리아 내전은 이슬람 레반트 국가라는 인류의 적을 척결한다는 목적이 존재했기에 여러 나라가 격퇴전에 참여해야만 하는 명분이 있었다.[9]
그리고 이것은 2010년대 들어와서 자유주의 성향 유럽인들의 러시아의 국수주의자들이 설치는 것에 대한 경계심이 과거 2000년대 네오콘주도의 미 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보다 더 높아진 이유도 크다. 알다시피 미국우월주의적 성향을 보이던 네오콘은 2010년대 이후 미국 내에서도 상당히 세를 잃었고 반면에 러시아가 여러지역에 침투해 세력확장을 하게 되면 판이 더 막장이 될 가능성인 높기 때문이다.
4. 같이보기
[1] 물론 구 공산권 국가들은 공산주의 포기 이후 일부 소련 구성국, 현재 미중 패권 경쟁을 하고 있는 중국 정도를 제외하면 이제는 대부분 친미, 반러로 돌아섰다. 또 이제 허구한 날 미제 승냥이니 간나새끼니 뭐니 하면서 욕해대는 북한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러시아나 중국 같은 반미 국가들도 대놓고 미제라 비난하지는 않는다. 쿠바는 아직까지 공산주의를 유지하고 있으나, 오바마 정부 시기 미국과 관계를 개선했다. 쿠바의 공산화 이전의 역사를 보자면 제일 미제로 피해를 가장 많이본 피해국중 하나이기도 하다 1950년대 까지 미국산 자본으로 인해 나라가 개판이 되었다.[2] 다만 이들은 대놓고 미국을 적대하면 국익에 피해가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놓고 미국을 적대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2020년에 들어선 미국과의 관계를개선해야할 이유들이 생기고 있다.[3] 친일세력 재기용은 미국 본국의 입장이라기 보다는 맥아더와 하지가 제멋대로 처리한 것에 더 가깝긴하다. 이들, 특히 존 리드 하지중장은 동아시아 정세, 통치술, 심지어 한국에 대해서도 무지했으나 군 행정상 편의로 한국에 군정사령관으로 부임했다. 그는 해방정국~미군정기 당시 만연하던 좌익 민족주의 세력의 확대를 경계했고, 미군정 수립 이전부터 존속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위시한 독립군 계열이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경우 대부분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임정, 독립군이 약하게는 미군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거나 심하게는 좌익 민족주의~공산주의 세력과 결탁하여 소련과 유착할 것을 경계했다. 이에 하지 중장을 필두로 한 군정청은 임시정부 세력의 정통성을 부정하여 세력을 일소하고, 정당창당을 사실상 자율화해 정당이 난립하는 정국을 조성하여 좌익 민족주의 세력을 꺾었다. 중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미-소간의 알력다툼, 신경전이 심화되자 미군정청은 최소한 단독정부를 수립할 남한의 좌익세력이라도 일소하기를 바랬고, 이에 부합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행보를 묵인(내지는 용인)했다.[4] 다만 국민당 지원에는 나름 쉴드칠 여지가 있는 것이, 미국과 중화민국은 일본에 맞서 싸운 동맹이었다.[5] 러일전쟁 승전, 1차세계대전 승전을 계기로 동아시아의 축이자 열강으로 성장한 일본은 국제연맹 회원국임에도 팽창주의적 행보를 이어나가며 만주와 중국에 대한 침략야욕을 보였다. 영국은 영일동맹을 바탕으로 이를 지지하였으나 미국은 오히려 대서양의 영국, 태평양의 일본에게 포위당할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되었고 이는 일본의 팽창 저지와 미군의 해군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각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과 전간기 각국의 건함경쟁으로 이어진다.[6] 호치민의 베트민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에 맞써 싸웠다.[7]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프랑스가 미국을 오히려 협박한 점도 있다. 미국이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하면 프랑스는 바로 소련과 손을 잡겠다고 협박한 것.[8] 오히려 이는 쿠바가 공산화 되는데 기여를 하고 말았다...[9] 지중해 요충지에 있는 시리아의 내정에 간섭할 겸 터키, 이란, 요르단,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스라엘 등 여러나라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