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선(협궤)
1. 개요
수도권 전철 수인선 이전의 수인선 협궤철도를 말한다.
2. 역사
1937년 7월 11일에 개통되어 수원시에서 안산시, 시흥시(당시 행정구역으로는 화성군, 시흥군)를 지나 인천광역시(당시 행정구역으로는 인천직할시)까지 오가는 대한민국 철도청의 철도 노선이었다. 대한민국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궤간 762mm의 협궤철도였다.
일본인 소유의 조선경동철도주식회사가 운영하는 사철로 경기도 수원군 수원읍에서부터 인천부 용현동[2] 까지 부설되었다. 부설 목적은 일제의 '''식량 수탈'''이다. 주로 경기도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진 소금과 더불어 같은 협궤노선이었던 수려선과 연계하여[3] 경기 동부지방에서 생산되는 곡물까지도 인천항으로 수송해 일본으로 반출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역사 때문에 남인천역 근처에는 지금도 "수인시장"이란 곡물&소금 도매 재래시장이 존재하는데, 사실 남인천역의 원래 역명이 수인역이기 때문에 이름이 그렇게 지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현 42번 국도인 수인로와 달리 수원 ~ 안산 간에서 남쪽으로 우회한다.
8.15 광복 이후에는 대한민국 교통부 산하의 철도국을 거쳐 대한민국 철도청 신설과 함께 이관되어 운영되고 화물수송보다는 여객수송의 비중이 커졌으며,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정책이 본격화되고 1976년에는 자동차전용도로인 수인산업도로가 개통되는 등 교통수단이 다양화되면서 효용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남한 지역[4] 에서 협궤 수인선과 거의 동급의 거대규모 노선임에도 영동고속도로 개통으로 1970년에 사라진 수려선과 달리 1990년대까지 상당히 오랫동안 살아남은 협궤노선이다.
[image][clearfix]사진에서 볼 수 있듯, 선로 상태가 매우 불량했다.
1973년 7월 14일 출발역이었던 경기도 인천시(현 인천광역시) 남인천역이 폐지되며 노선이 인천시 남구(현 연수구) 송도역까지로 단축되었고, 1988년 10월 25일에는 안산선이 개통되어 일리역(현 한대앞역) ~ 원곡역(현 안산역[5] ) 구간을 수인선과 병행하게 되었다. 수인선과 안산선이 병행하는 구간의 기존 수인선 정차역들은 안산선 전철 개통과 함께 역사(驛舍)가 통합되었으며, 안산선 옆에 따로 마련된 승강장에서 승객을 받았다. 다만 환승은 되지 않아서 수인선과 4호선 환승 방법은 표를 별도로 구입하고 갈아타야만 했었다.
1990년대 초반 인천직할시의 남동지구 택지개발사업이 확정되자 1992년 7월 20일에 노선을 소래역까지 단축시키며 선로를 철거했다. 이에 철도청은 지역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고자 선로 철거 직후부터 1993년 12월 13일까지 이 구간에 임시 셔틀버스를 운영하였다. 지역 주민들에게는 이 구간이 철거되는 것이 아니라, 선형을 직선화하기 위해 운행이 잠시 중단된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게다가 임시 셔틀버스임을 사전에 고지했기 때문에, 당시 지역 주민들은 공사가 끝나면 수인선이 재개통할 것이라고 믿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지역 주민들의 믿음은 국제통화기금이 산산조각 내버리고... 이후 수인선의 복선 전철화 및 표준궤화 공사는 약 20년 후인 2012년이 되어서야 마무리된다.
1994년 9월 1일, 수원역 ~ 한대앞역 구간으로 단축되며 사실상 반쪽짜리 노선이 된 수인선 협궤철도는 폐쇄가 기정사실화되었고, 1995년 12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영업한 후 모든 선로가 철거되고 영업도 중지되었다. 다만 소래포구 철교 등 일부 철교 위 구간에는 레일이 그대로 남아 있기도 하다. 소래철교는 운행 중지 후 초기엔 침목 사이에 나무를 덧대 인도로 쓰다가 나중에는 레일 위에 철망을 깔아 사람이 다니게 했고, 안산 삼화교차로 부근 철교는 출입금지로 막아 놓았다.
협궤 수인선이 영업을 중지한 이후에도 열차 몇 량이 2000년대 초반까지 수원역 차량사무소에 한동안 주박되어 방치되어 있었으나 수원역 현대화 공사로 사라졌다. 성포동 홈플러스 근처의 고가도로 밑을 지나가면 풀밭의 폭이 상당히 넓은데, 그곳이 수인선 협궤의 흔적이다. 한대앞역에는 금정 방면 승강장에 과거 수인선 승강장이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에 이미 상당히 소실된 상태인데다 2017년 12월 기준으로 수인선 직결 공사로 인해 철거되어 지금은 볼 수 없다. 참고로 2015년 9월 4일, 수원 ~ 한대앞 구간이 공식적으로 철도거리표에서 삭제되었다.
철도박물관 개장 당시부터 수인선에서 쓰던 객차 2량(18011, 18012호) 및 디젤동차(163호)를 옮겨왔는데 이 차량들은 수인선이 아직 운행하는 중이었음에도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특히 수인선 협궤 디젤동차 163호와 그 뒤에 연결된 객차 18012호는 박물관 개장 초창기에 실제로 운행도 가능해서 박물관 구내에 설치된 협궤선로를 따라 박물관을 반바퀴 운행하였다. JSB 일본위성방송에서 촬영한 한국철도 다큐멘터리를 보면 열차 전면부 우측에 차호 3자리가 적혀있는 상태로 철도박물관 구내에서 자력운행하는 모습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철도박물관에 보존된 동차 1량과 객차 2량 외에도 당시 수인선에서 쓰던 차량 일부가 보존중에 있다. 특히 충청북도 진천의 목인박물관에 보존되었던 차량이 인천광역시에 기증되었으며, 인천시립박물관 우현마당에 전시가 될 예정이다.
협궤열차 마지막으로 운행했던 9164 열차는 화성시의 한 식당 카페의 간판으로 쳐박혀 있었다가(...) 이후에 철거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3. 사진과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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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지선으로 운행되던 시절 안산역에 정차한 수인선 협궤열차와(오른쪽) 1호선 중저항 열차의 모습이다(왼쪽). 크기 차이에 주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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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4호선에 포함되었을 때 한대앞역에 정차해 있는 수인선 협궤열차와 4호선 열차의 모습. 전자는 사라졌고 후자는 아직도 저 사진에 나온 도색을 유지한 채 운행 중이다.[6] 수인선 열차의 도색이 초록-노랑 도색인 철도청 최후기 시절 도색을 하고 있는 것과 한대앞역 구내에 부본선이 설치된 것과, 옆에 정차해 있는 4호선 열차를 봐서는 한대앞역이 종착역이 된 이후인 1995년 사이의 모습으로 추정된다.[7]
▲ 수인선 협궤열차시절 유일하게 동차 구동음이 들어간 영상이다
▲ 1991년 안산역 ~ 송도역 구간 답사 영상이다.[8]
1993년 수인선을 다룬 대한뉴스 영상이다. 00:30부터 수인선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9]
1986년 12월 12일에 방영된 대한뉴스 제1623호 영상이다. 수인선 철도 외에 갯벌, 군자염전, 소래포구의 옛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1989년 7월 5일에 방영된 대한뉴스 영상이다. 3:47 부터 수인선 협궤열차가 나온다.
4. 특징
40km/h 전후의 속도[10] 로 인천 ~ 수원 간 편도 구간을 약 1시간 30분~2시간 정도에 주파하였다.[11][12] 초창기에는 혀기형 증기기관차나 일제시대에 도입된 가솔린 동차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1965년 디젤동차가 도입되면서 기존 가솔린 동차를 대체하기 시작하였고, 1972년 수려선의 폐선으로 디젤동차의 여유분이 수인선으로 모두 배속되면서 운행비중이 늘어나게 되었다. 증기 기관차가 퇴역한 1978년 이후에는 디젤동차로만 편성되고 기존 증기 기관차 시절부터 사용되었던 무동력 객차는 탑승수요에 따라 디젤동차에 추가로 함께 연결되어 사용되었다. 디젤동차는 당시 경인선에서 운행하기 시작한 초저항 전동차와 니가타 동차와의 외형이 매우 유사한 관통형 차량인데, 차량의 대부분이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되었고 디자인 철학 또한 유사하다.
열차편의 경우 50석 정원의 좌석을 설치한 객차 및 디젤동차를 여러 대 편성했는데, 과거 탑승수요가 많을 때는 디젤동차 2량에 무동력 객차 2량을 추가해 총 4량으로 정규 편성하여 다닐 때도 있었으나, 1980년대 후반부터 탑승수요 급감으로 디젤동차 2량으로 정규 편성하여 다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주말 한정으로 관광수요가 많을 때는 객차 1량을 추가하기도 했다. 운행편수 또한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일 왕복 7차례까지 운행되었으나, 1980년대부터는 왕복 3차례로 줄어들었다.
기본적으로 속도나 서비스를 중시하는 노선이 전혀 아니다 보니 당연히 완행열차 수준으로 운영되었고, 1984년부터는 비둘기호 등급으로 배정되어 폐선되기 전인 1995년까지 운용되었다. 노선운임도 이러한 등급에 맞추어 저렴한 수준이었는데, 1990년 기준 기본운임 160원에 수원 ~ 송도 간 운임이 370원 정도로 당시 서울 지하철 기본운임이 250원 정도였으니 얼마나 저렴했는지 알 수 있다. 매표는 안산역, 송도역 등의 주요역 5개역에서는 철도청 소속 역무원들이 상주하여 직접 매표를 하였으나, 예외적으로 소래역, 고잔역 등의 일부 역들은 대한민국 철도청으로 부터 매표금의 10%를 마진으로 받는 조건으로 그 지역에 사는 개인이 매표를 대행하기도 했다. 이 외의 나머지 역들은 역무원도 배치되지 않는 간이역 수준이었기에, 해당 승객들은 일단 열차에 탑승하고 열차 내에서 차장이 직접 매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일반 표준궤 노선과 달리 노반과 철로의 관리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고, 무엇보다 협궤철도라 차체의 폭이 좁아 승차감은 영 좋지 않았다. 위의 동영상에서 보이듯 열차 운행 시에는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마냥 좌우로 엄청 심하게 흔들려서 서서 가는 경우엔 고역이 따로 없었다.[13] 게다가 좁은 차체 탓에 좌석도 좁아서 겨우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간격에서 마주보고 앉아있는 형태였다.[14]
소래철교를 비롯한 일부 구간은 해안가가 바로 옆에 있어 갯벌과 염전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전망은 좋았다고 소문난 노선이었고, 거기에 더해 수도권과 가까우면서도 낙후된 곳을 지나갔기 때문에 여러 사진작가들의 주요 기행테마가 되어왔다.
동차의 화장실이 '''비산식'''으로 되어 있다.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배설물이 그냥 '''선로로 바로 떨어지는''' 방식을 비산식이라 한다. 흔히 철도박물관에 통일호나, 탕엥에서 제작한 무궁화호 등 옛 열차를 보면 '''정차중 사용을 금함''' 이라는 글씨가 써져 있는데, 플랫폼 앞 선로에 배설물이 쌓이게 되어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에게 불편을 주게 되기 때문에 금지했기 때문이다.
5. 몰락
과거에는 이용객이 적지 않던 노선이었으나, 1970년대 이후 도로교통의 발달로 수요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기존 인천 시점이었던 남인천역을 비롯해 인천 도심 통과 구간들이 연달아 폐선되면서 인천과 수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일부 잃게 되어 효용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이후 1980년대부터는 간척사업 등으로 경기도 내 해안들이 매립되면서 서해안 포구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주 이용객이던 어패류를 운반하던 어민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채소를 도시에 내다파는 부녀자와 통학생 그리고 주말 나들이 관광객들만이 이용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 때부터는 이용객 수치 또한 줄어들며 하루 평균 3백여 명 수준에 그치는데다 그마저도 50% 할인 대상인 65세 이상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매표 수입은 하루에 겨우 6~7만 원 정도로 하루 열차 연료비인 15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연간 수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하였다. 이미 당시 대한민국 철도청은 만성 적자운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터라 1980년대부터 여러 차례 수인선의 폐선을 고려해 왔으나, 현지 주민들의 반발 등으로 무산되다가 결국 1990년대에 철도청이 공사 전환의 계획이 확정되면서 부터 수인선 협궤철도의 폐선과 관련된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된다. 수인선의 완전폐선은 통과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심할 수밖에 없었고, 수인선 노선 자체만 보면 잠재수요가 어느 정도 있다는 결론이 나면서, 완전 폐선이 아닌 기존 협궤철도 폐선 후 표준궤 복선으로 재 부설하여 수도권 전철로 운영하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혔다.
협궤 당시의 수인선 상태가 어땠는지 체험해 보려면, 762mm궤간으로 달리는 일본 미에현의 산기철도 호쿠세이선이나 욧카이치 아스나로 철도 또는 도야마현의 쿠로베 협곡철도를 타보자. 전자는 내륙 쪽 노선이라 바다는 못 본다. 쿠로베 협곡철도는 협곡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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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행 막바지 당시의 수원의 한 건널목. 수원역 남쪽 세류동(덕영대로 세평지하차도 앞. 사진을 자세히 보면 세평지하차도가 보인다)에 있었다(위치).
1994년 9월에 단축된 후에도 끝까지 남아있던 한대앞역 ~ 수원역 구간도 결국 1995년 12월 31일 마지막 운행을 하고 1996년 1월 1일 자로 영업중지되었다. 이렇게 해서 협궤철도 수인선은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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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행 마지막 날 동차에 붙은 현수막
수인선이 영업거리표상 철도거리표에서 아예 삭제된 적은 없지만[15] , 순수 협궤철도로만 따지면 폐선은 맞다.
그리고 안산 ~ 오이도 구간마저 표준궤가 되어 4호선으로 넘어갔다.[16]
'58년간 달리던 협궤열차, 수원역에서 마지막 기적 울려' MBC뉴스
열차 자체가 니가타 디젤동차나 비둘기호 시리즈 같이 복고풍, 빈티지 디자인의 극치를 달려 많은 한국 철도 동호인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6. 수인선의 부활: 전철화 및 재개통
복선전철화를 이유로 수인선은 무기한으로 영업중지에 들어갔지만, 예산 부족과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전철화 공사는 티스푼 공사를 면치 못하였다. 그러다 2012년 6월에 오이도역부터 송도역까지 전철화 공사를 완료하여 수도권 전철 수인선으로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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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에서 운행하는 코레일 351000호대 전동차. 사진이 찍힌 곳은 소래철교로, 오른쪽에 도보로 쓰이는 곳은 구 소래철교이다. 현재는 분당선과 직결되어 분당선 전동차와 같은 도색으로 바뀌었다.
송도역부터 인천역까지는 2016년 2월 27일에 개통하여 수인선의 명맥을 다시 이어가게 되었다. 2020년 9월 12일 오이도역에서 수원역까지 개통되어 폐선 25년 만에 수인선이 완전히 부활하게 되었다. 오이도역부터 한대앞역까지의 구간은 안산선과 같은 선로를 공유하고 수원역을 종점으로 하던 분당선과 직결 운행을 시작했다.
[1] 촬영일자는 1995년 12월 28일, 마지막 운행 3일전이다.[2] 현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3] 수원역을 거치지 않고 수려선과 수인선을 직결하는 삼각선도 존재했다.[4] 북한에는 아직 협궤가 많이 남아있다.[5] 이 때 원곡역이 안산역 근처로 이전하였다.[6] 다만, 466편성은 행선판이 롤지에서 LED로 바뀌었다.[7] 철도청 역삼각형 CI가 출범하며 기존 파란색 도색에서 초록-노랑 도색으로 바뀐 게 1994년이고, 수인선 한대앞역은 시종착역이 되기 전에는 부본선이 없는 1면 1선 구조였다. 그리고 서울교통공사 4000호대 VVVF 전동차가 도입되고 안산선이 수도권 전철 4호선에 포함된 때는 1994년이며, 서울교통공사 차량이 낮 시간대에 안산선에 들어온 것은 1995년 여름부터이다.[8] 일본 모 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로 1991년 당시 교통부 및 철도청으로부터 정식 협조를 받아 제작되었으며, 한국 외에도 중국, 태국 등 아시아 각국의 철도노선을 답사하는 시리즈물로 제작되었다.[9] 1분 3초부터 나오는 곳이 소래포구이다.[10] 디젤동차 스펙으로는 최고속도가 105km/h였지만(4호선 서울교통공사차량보다 스펙이 좋다), 협궤선로 특성상 노반 및 철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정차역 문제로 이 속도까지 내긴 어려웠다. 참고로 40km/h라면 철티비 열심히 밟아도 낼 수 있고 로드바이크를 타면 금방 나오는 속도다.[11] 과거 남인천역까지 전 구간 운행되던 1973년까지만 해도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됐다.[12] 2020년 9월 12일 직결된 수인분당선 시간표 상에는 인천 ~ 수원 간 소요시간이 1시간 10분이다.[13] 영상에서 손잡이가 나오는 부분을 보자.손잡이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좌우로 심하게 흔들린다.[14] 현대의 경전철보다도 좁다! 물론 경전철의 궤간 규격이 표준궤이므로 열차 규격도 그에 맞춰서 협궤보다 넓은 것이 당연하긴 하다.[15] 오이도-송도 구간 '복선화 후 재개통'이 되어 영업정지선인 수원-한대앞 협궤 구간과 표준궤 복선전철화 된 오이도 ~ 송도 구간이 한동안 영업거리표에 공존하다가, 2015년 9월 수원 ~ 한대앞 협궤구간 삭제와 송도 ~ 인천 간의 영업거리표 반영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현재는 수인선 복선전철 완전개통으로 수원 ~ 한대앞 구간이 부활하였다.[16] 원래 안산 ~ 오이도 구간은 수인선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사업이었다. 다만 단독으로 운행하기에는 너무 짧은데다 4호선 말고 직결할 노선도 없어, 4호선에 편입한 것으로 보인다. 차후 수인선 완전개통되어 4호선 구간인 오이도-한대앞 구간이 노선 공유구간으로 바뀌어 수인선 전동차도 다니게 되었다. 거기에 어천삼각선까지 완공되면 해당 구간에는 '''인천발 KTX'''까지 다니게 된다. 물론 초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역은 무정차 통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