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외교

 




1. 개요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2.2. 북한과의 관계
2.3. 일본과의 관계
2.4. 중국과의 관계
2.5. 이란과의 관계
2.6. 아랍 국가와의 관계
3.1. 영국과의 관계
3.2. 러시아와의 관계
3.3. 독일과의 관계
3.4. 이탈리아와의 관계
3.5. 폴란드와의 관계
3.6. 스페인과의 관계
3.7. 네덜란드와의 관계
4.1. 브라질과의 관계
4.2. 우루과이와의 관계
4.3. 페루와의 관계
4.4. 칠레와의 관계
4.5. 미국과의 관계
5. 반유대주의적 성향?
6. 지역별 관계
7. 관련 문서


1. 개요


아르헨티나의 외교에 관한 문서.
브라질과 더불어 남아메리카 대륙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양대산맥을 자처하며 남미 대륙의 중심국가를 자임한다. 그러나 정작 현실은 백인종 국가라는 자부심을 앞세우며 다른 남미국가들을 깔보고 천하게 여기는 정서가 있어 남미의 다른 나라들과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오히려 타 남미대륙 국가들은 거들먹거린다며 재수없게 생각한다.
물론 정부간의 사이는 정권 성향에 따라서 차이가 있기는 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정권 성향이 비슷하게 가는 경향이 있어서 크게 척을 지는 수준은 아니다. 주변국이라 할 수 있는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와도 역사적인 이유로 앙숙이고 같은 백인국가이자 이웃나라 중에 그나마 사이가 좋은 우루과이 역시 너무 인종차별이 심하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와 같은 안데스 산맥 지역 국가들도 혼혈, 인디오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 무시한다.
냉전 시대에는 군부가 반공을 표방해서 서방세계에 기울기도 했고 서방세계와 공산권 세계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는 제3세계의 비동맹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후안 페론 당시의 행보도 그렇고[1] 같은 라틴아메리카 내의 멕시코가 확실히 친서방임과 달리 자본주의 진영이라기보다는 제3세계에 더 가까운 편이었다.
단, 후안 페론이 쿠데타로 축출된 후 아르헨티나에서 여러 번 쿠데타가 일어나고 대통령도 너무 자주 바뀌고 정치적으로 불안한 편이었다.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1973년부터 1991년까지 자본주의 진영도 공산주의 진영도 아닌 중립국들 모임인 비동맹운동(Non-Aligned Movement;NAM) 정회원국이었다. 1991년 카를로스 메넴 시기에 비동맹운동을 탈퇴했지만 그 후로도 아르헨티나는 비동맹운동의 참관국가(옵서버 국가)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와는 과거 백인 위주 정책 때문에 유색인종인 동양인들을 배척하는 경향이 짙었으나 3국의 경제적,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이후는 조금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2. 아시아



2.1. 대한민국과의 관계




2.2. 북한과의 관계


아르헨티나는 친북은 커녕 아직까지 '''(정작 영국과는 외교관계를 재개했으면서) 북한과의 외교관계 복원에도 나서지 않고 있다.'''[2] 북한 때문에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조차 철저히 거부하고 있는 쿠바와는 대조적이다. 북한과는 1973년에 수교하였으나 1977년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있는 주(駐) 아르헨티나 북한 대사관이 방화사건으로 전소(全燒)되자 북한이 자국 외교관 전원을 북한으로 일방 철수시키게 됨에 따라 아르헨티나도 평양에 있는 주북(駐北) 아르헨티나 대사관의 외교관 전원을 본국으로 철수시키면서 이를 계기로 북한과는 사실상 단교된(공식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이다.
그렇다고 북한과 아르헨티나가 서로 교류도 안 하는 건 아니고 중계무역 등의 방법으로 교류와 무역 등이 이뤄지고 있으며 북한이 아르헨티나에게 관계 재개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2007년에도 관계 재개를 원한다고 메시지를 보냈고 그보다 전인 1990년에도 관계 복원을 원한다고 했지만 하필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메넴이 친미외교를 하던 중이라 관계가 복원되지는 않았다. '''영국과 북한이 수교를 맺은 것보다 더 아이러니한 건 정작 1990년 당시에 포클랜드 전쟁을 치르고 그로 인해 단교한지 10년도 안 지난 영국과의 관계는 재개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아르헨티나 측에서는 공관 방화 사건에 대한 북한 측의 사과와 배상 및 북한이 그동안 먹튀한 곡물 수입 대금 상환 등을 관계 재개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그렇지만 북한측에서는 그냥 묵묵부답인 상황. 아르헨티나와 이란의 경우도 1990년대에 벌어진 유대인 대상 폭탄 테러 사건으로 관계가 썩 좋지 못했으나 사건 재조사에 합의함으로써 관계가 개선되었고 무역량도 늘어났다. 물론 공식적 외교관계도 있고 2000년대 후반 이후로는 원만하게 지내고 있는 편이다. 또 지구 반대편인 북한이 핵실험이네 뭐네 하면서 아무리 국제적으로 문제를 일으켜도 중남미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고 미수교 상태인 지금도 무역, 교류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북한과 수교해봐야 투자가 별로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베네수엘라조차도 한국과 교역이 훨씬 많은 상태라 남미에서 북한의 존재감은 그냥 미미한 상태다. 5차 북핵 이후에는 8월 북한의 핵실험과 인권 침해 규탄 선언을, 하원은 지난 6월 북한 인권 규탄 결의를 각각 채택하였다.#

2.3. 일본과의 관계


인종주의와는 별개로 메이지 유신 이후부터 일본과 수교를 맺었으며,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아르헨티나로부터 군함 2척을 사다가 이 군함으로 러시아를 쓰러뜨린 것이 인연이 되어 우방국이 되었다.
포클랜드 전쟁 당시 미국영국의 무역 중단 요청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르헨티나와 무역을 중단하지 않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과 아르헨티나는 사이가 꽤 좋은 편이었다. 허나 일본이 포클랜드 제도에서 아르헨티나군의 철수를 요청하는 등 영국의 입장을 지지해서 아르헨티나는 크게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2.4. 중국과의 관계


2000년대 이후로는 새로 경제적으로 떠오르는 중국과 관계를 가까이 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실질적인 경제협력, 무역, 교류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사실 2000년대 아르헨티나 경제회복도 중국으로 아르헨티나 산 제품의 수출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크다. 아르헨티나는 2010년 기준으로 '''미국과의 무역규모보다 중국과의 무역 규모가 더 크다'''. 2012년에는 중국과 군사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문제에서 아르헨티나를 지지하고 아르헨티나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에 중국의 우주기지가 설치되고 있다.#
다만 중국의 중화사상식 외교와 2020년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국민들 사이에서 반중감정이 커졌으며 요즘은 중국에서 조금씩 발빼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5. 이란과의 관계


이란의 경우는 1990년대에 벌어진 유대인 대상 폭탄 테러 사건으로 관계가 악화되었고 2006년에는 라프산자니 전 이란 대통령을 테러 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 테러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합의함으로서 관계 개선 기미가 보이고 있다. 이란과의 무역량 역시 증가하여 아르헨티나의 대 이란 수출량이 2007년 2900만 달러에서 2008년 12억 달러로 증가했다. 중남미에서 브라질 다음으로 큰 이란의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2.6. 아랍 국가와의 관계


아르헨티나내에는 수많은 아랍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19세기에 오스만 제국에서 이주한 아랍인들이 이주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도 아랍 국가들과 관련이 깊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도 아랍 국가들과 경제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3. 유럽



3.1. 영국과의 관계




3.2. 러시아와의 관계


한편 반미/반서방 진영의 선도국가 러시아와는 2000년대 이후로 친해졌는데 아르헨티나가 경제적으로 회복되었을 시기가 러시아가 한창 경제적으로 성장했을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적인 교류를 많이 했고, 미국과는 다르게 한참 떨어진 아르헨티나에 무슨 일을 한 전적은 없기 때문에(...)[3]악감정이 덜한 편이고 경제적으로 무슨 압박을 가한다거나 한 적도 없기 때문에[4]아르헨티나 정부 입장에서 외채 등의 문제등으로 관계가 복잡한 미국보다는 편한 관계이기도 하다.
물론 러시아에 대해서는 악감정이 덜하기는 하지만 아르헨티나 내에서도 러시아를 까는 사람은 잘만 까고 다니기는 한다. 주로 극우파들이 친미반러를 주장하고 러시아를 까고 다닌다. 애초에 아르헨티나 언론들 가운데서도 보수적인 언론사의 지분도 상당한데다가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 지역은 우파지지세가 강하기까지 한다.[5]
2020년 11월 17일 ~ 20일까지 아르헨티나에서 러시아어와 러시아와 관련된 축제가 개최될 예정이다.#(러시아어)

3.3. 독일과의 관계




3.4. 이탈리아와의 관계




3.5. 폴란드와의 관계


폴란드와는 매우 우호적이다. 양국은 천주교를 믿고 있고 19세기에 폴란드인들이 아르헨티나로 많이 이주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내에는 폴란드계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3.6. 스페인과의 관계




3.7. 네덜란드와의 관계




4. 아메리카



4.1. 브라질과의 관계



'''사이가 좋지 않다.''' 물론 브라질과는 20세기 초부터 정치ㆍ경제적인 경쟁관계이기도 했기에 사이가 다소 우호적이지 않았으나 현재는 자이르 보우소나루의 집권 후 아르헨에도 중도우파 마우리시오 마크리가 집권해 많이 완화되었다.

4.2. 우루과이와의 관계




4.3. 페루와의 관계


페루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제도 영유권 문제로 영국과 다툰다 싶으면 아르헨티나의 입장을 지지해준다. 하지만 카를로스 메넴 정권 때 페루에콰도르간 국경분쟁이 있었을 때 관련 의혹을 보면 힘이 센 아르헨티나가 약소국 페루와 에콰도르 사이에 양다리를 뻗고 간을 보는 거 같기도 하다.

4.4. 칠레와의 관계


칠레와의 관계도 칠레에서 피노체트 대통령이 물러나고 민주화된 이후로는 칠레 정부가 포클랜드 영유권 문제에서 아르헨티나를 계속 지지하고 있고, 파타고니아 문제도 원만하게 해결되어서 사이가 좋아졌다. 피노체트 시절에는 둘이 앙숙이었으며 특히 영국 공군에 칠레가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공을 개방하고 비행장을 쓰도록 내준 바람에 칠레가 남미 대륙에서 고립되어 버리기도 했다. 이후 칠레가 민주화되고 아르헨티나 군부독재도 퇴진하자 양측 관계가 정상화되었다.[6]

4.5. 미국과의 관계


아르헨티나 국민들 입장에서는 미국에 이를 갈아댈 일이 많았다고 평할 수 있는데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초반에 걸친 군사독재정부 시절에 미국이 군사독재정부를 지원하면서 군부의 만행에 대해서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7]
2000년대 초반의 경제위기 당시에는 국제통화기금이 별 효과도 없는 정책을 아르헨티나에 지속적으로 추진하라고 강요하자 반미감정이 폭발하였고, 2003년 대선에서 승리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대 들어서는 네스토르 자신이 미국과의 관계에 신경쓰기보다는 남미 주변국가들 쪽과 우호관계를 더 맺겠다고 공약한 것도 있거니와 현실적으로도 외채조정과 통상문제가 겹쳐져 있었고, 정권 성향의 차이도 있었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는 소원해졌고, 비동맹노선쪽에 다시 발을 담궈놓았다.
2000년대 들어 남미 대륙 전역에 좌파정당들의 세가 확산되면서 중재도 맡을려고 했는데, 이때는 베네수엘라브라질의 중간노선 정도에 걸쳐있다는 평이 많았다. 대놓고 골수는 아니지만 다만 이때 강경노선을 걷는 베네수엘라나 온건노선을 걷는 브라질과는 다르게 어중간한 노선을 걸었기 때문에 남미 좌파들 사이에서 주도권을 잡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네스토르가 차베스와 룰라와는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이 둘의 급진노선을 그대로 따르던 바보는 아니었고 나름 현실주의자라서 아예 서방을 손절하지 않았다. 이러한 등거리 정책 덕에 되려 경제회복에 어느 정도 성공하기도 했다.
이 추세가 네스토르 대통령 사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대통령 때도 이어져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권이 들어서도 비동맹 노선에 발을 담궜지만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가 집권 후반기때 재정수입의 확충이나 명분세우기의 일환으로 여러 자원 관련 회사들의 국유화를 치밀함없이 강행하다가[8] 스페인 등 여러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관계가 크게 나빠지기도 했고, 버락 오바마가 집권 한 뒤에도 통상문제로 마찰이 빚어져서 미국과의 관계도 별로 진전되지 못했다.
그리고 2015년 대선 이후 마우리시오 마크리 의 중도우파 정부가 들어서고부터는 미국과의 관계가 진전될 듯 싶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로 보호무역정책을 펴면서 먹구름이 핀 상황이고, 아르헨티나인들의 미국 입국조건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도 내놓고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관계가 그리 진전되고 있지는 않고 있다.[9] 다만 베네수엘라 제재와 관련된 사항에 있어서는 공조가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 이 때를 기점으로 아르헨은 베네수엘라를 손절했다.

5. 반유대주의적 성향?


아르헨티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유대인이 많은 나라이다. 유대인 수는 세계 5~7위권, 아메리카에서는 2~3위권에 해당하고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단연 최고이다. 유대인 수는 통계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수는 20만 명에서 40만 명 가량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메리카에서 유대인 수는 미국에 넘사벽으로 많고 그 다음으로 캐나다 또는 아르헨티나에 많다.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유입 경로도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19세기에서 제2차 세계 대전에 이르는 기간 사이에 중유럽이나 동유럽에서 건너온 아슈케나짐 유대인의 후손이다. 이러한 아르헨티나의 유대인 공동체는 그 역사도 꽤 깊고 규모도 상당하여 아르헨티나 사회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반유대주의 국가라는 의혹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상당수의 나치 잔당들이 남미로 도망쳐왔는데 특히 이 나라로 많이 도망쳐왔으며 후안 페론 정권 당시에도 이들을 숨겨주기까지 했다고 한다. 1990년대 메넴 대통령이 재직하던 당시 유대인 공동체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테러가 두 차례 발생하여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등 큰 충격을 준 바 있는데 헤즈볼라와 이란이 관계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 테러에 대한 조사는 어물쩍 넘어가고 말았다. 그 뿐만 아니라 2010년 12월 6일, 아르헨티나는 팔레스타인을 독립국가로 공식 승인함으로서 이스라엘을 대놓고 디스했다. 다만 2010년 12월~2011년 3월까지 아르헨티나 뿐만 아니라 다른 남미 국가들도 팔레스타인을 승인했기 때문에 이렇게 따지면 남아메리카 전체가 반유대주의라고 볼 수도 있는 여지가 있다만...
여기엔 잘 안 알려진 부분이 있다. 오스만 제국 말기에 돈을 벌러 이 지역에 왔다가 제국이 전쟁에 휩싸여 돌아가지 못하게 된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 등 아랍권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의견이 있다. 이들이 돈을 벌고 재력을 쌓아 칠레 및 아르헨티나 상층 계급에서 중요한 한 부분이 되다보니 이스라엘이 더 못마땅해 보이는 것이라 카더라.[10] 전 대통령 메넴만 해도 시리아계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을 승인하고 이스라엘을 디스했다는 일을 관장하는 정부 부처가 외무부인데 2010년 6월 취임한 외무부장관 엑토르 티메르만은 유대인이다. 하지만 반유대주의 항목을 보면 모든 해외의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좋게 보는 건 절대 아니며 오히려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유대인들도 상당히 있다.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쪽 사람들도 많지만 유대인도 많기 때문이다.

6. 지역별 관계



7. 관련 문서


[1] 나치의 남미 도주 당시 페론이 나치 잔당을 숨겨줬다는 정황이 있다.[2] 애초에 이건 니카라과베네수엘라, 에콰도르, 볼리비아도 마찬가지인 상황이며 이들 나라조차도 한국과의 관계를 더 우선시하지, 북한은 듣보잡으로 그냥 무시한다. 북한은 이들 나라에 뭘 투자할 만큼 돈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3] 사실 소련 시절에 아르헨티나 공산당에 지원을 내보낸 적이 있기도 했다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실 큰 영향을 끼친다거나 하는 수준은 결코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후안 페론과 그 이후의 군부독재 세력들이 반공을 표방해 공산당을 엄청나게 탄압한것도 있는 데다가, 좌파 세력들이 급진시민연합이나 페론당 쪽으로 많이 간 것도 있기 때문에 정통 좌파세력은 별개의 정당연합을 구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리 세가 크지 못하다.[4] 사실 1990년대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했을 시절에 러시아도 경제적으로 사정이 별로였던 시절이었다. 러시아는 1998년 한국의 IMF 위기 다음으로 두들겨맞아 모라토리움 선언을 했다. 그 다음 타자는 인도네시아의 국가부도였다.[5] 사실 시대에 따라서 다르다만 2000년대 중후반 이후로는 거의 우파의 본고장이라고 할 정도로 성향이 고착화되어서 마크리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떨어진 상태에서도 집권 우파연정의 지지율이 여전히 높은 상태다.[6] 포클랜드 전쟁 당시 남미 국가들 대부분이 아르헨티나 편을 들었다. 심지어 아르헨의 숙적이라는 브라질조차 아르헨티나 편을 들고 영국을 비난했으며 결국 영국-브라질 관계도 서먹해져 버렸다.[7] 애초에 비델라가 일으킨 아르헨티나 쿠데타를 지원한게 미국이었다.[8] 다만 볼리비아에콰도르 등지의 국유화 조치와 다르게 별 효과는 못보았다. 인프라 투자가 미비했기 때문이다.[9] 아이러니한 사실은 마크리 본인은 한창 기업가였을 시절에는 트럼프와 절친한 관계였다는것이었다(...)[10] 다만 메넴은 2기 집권기 이후로 친 이스라엘 성향으로 돌아선 까닭에 현지 아랍계 이주민들로부터 욕을 왕창먹었다. 물론 1990년대말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정치, 경제혼란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욕을 왕창 먹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