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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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명
'''주식회사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株式会社テレコム・アニメーションフィルム
Telecom Animation Film Co., Ltd.
창립일
1975년 5월 19일
본사
일본 도쿄도 나카노구 나카노 3쵸메 31-1
자본금
10,000,000 (2019년 3월 기준)
직원
67명
품목
애니메이션 제작 외
웹사이트
https://www.telecom-anime.com/
1. 개요
2. 관련 인물
3. 대표작


1. 개요


일본애니메이션 제작사.
도쿄 무비의 당시 진취적인 기상의 야심가 명물 사장으로 유명한 후지오카 유타카가 일본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 상황에 한계를 느끼고, 미국과 세계 진출을 꿈꾸며 해외합작을 위한 초당 16프레임 이상 ~ 24프레임까지 쓰는 풀프레임 애니메이션을 그릴 수 있는 애니메이터를 육성하기 위해 1975년에 창립한 자회사이다. 그동안 도쿄 무비의 하청을 받아서 애니메이션 실제작을 하던 A 프로덕션은 1976년에 신에이 동화로 독립하고, 도쿄 무비도 도쿄 무비 신사(新社)로 사명을 바꿨다. 도쿄무비 신사는 2000년에는 현재의 TMS 엔터테인먼트로 개명했다.
1978년 3월 대규모로 신입사원을 모집해서 천 명이 넘는 지원자에서 애니메이션 경험이 없는 43명의 직원을 뽑았다. 이들의 교육 담당은 츠키오카 사다오와 오오츠카 야스오가 맡았다. 츠키오카 사다오는 4월부터 이들의 초기 교육을 하면서 함께 실험적 단편 한 편을 완성하고 텔레콤을 떠났다. 문제는 츠키오카 사다오가 채용시 조건으로 기성의 아니메에 때묻지 않는 사람을 뽑는다면서 될 수 있으면 기존의 애니메이션을 아예 본 적도 없는 사람 위주로 뽑았다. 그리고 가르치기를 자네들은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터다. TV 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입을 해 놨다. 그래서 후임으로 교육을 담당했던 오오츠카 야스오가 이들을 회상하기를, 기술은 없는 것들이 프라이드는 높아서 TVA를 만드는 애니메이터는 밑으로 깔보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출전: 오오츠카의 자서전 작화 땀투성이(作画汗まみれ)) 1979년에 신에이 동화에서 이적해 온 오오츠카 야스오는 신입사원 교육을 위해서라는 명분과 현실적으로는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창 방송중이던 자사의 대표 시리즈 루팡 3세(2기 TV시리즈)에 도중 투입했다. [1] 72화는 아마츄어티가 너무 나서 작화붕괴 수준이다. 그나마 오오츠카 야스오가 날새서 작화수정을 한 것이 그 정도다. # [2]
오오츠카 야스오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작품의 질을 올리고 다른 애니메이터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미래소년 코난 때 눈여겨봤던 애니메이터를 불러 들였다고 한다. # 이때 공급된 인력이 같은 신에이 동화 소속의 타나카 아츠코, 하라 케이코. 닛폰 애니메이션토미자와 노부오, 시노하라 마사코. OH 프로덕션의 토모나가 카즈히데, 탄나이 츠카사, 야마우치 쇼쥬로 등이었다.
오오츠카 야스오, 타나카 아츠코, 토모나가 카즈히데, 탄나이 츠카사, 토미자와 노부오, 시노하라 마사코가 참여하는 에피소드는 작화가 좋다.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만들고 실전에서 구른 140화 이후는 매우 뛰어난 작화를 보여준다. [3] 이 2기의 텔레콤 회와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명성으로 루팡 3세 시리즈 팬 중엔 텔레콤이 참여하지 않은 루팡은 안 본다는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이다. 2기에서 텔레콤이 참여한 에피소드는 캐릭터의 얼굴이 1기 때 작화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화가 2기와 너무 달라서 방송국에서 143화의 납품을 거절하기도 했다.
이윽고 1980년부터는 이 회사가 창립하게 된 이유인 세계 시장 진출을 위한 대작 리틀 네모를 본격적으로 만들기 위해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세계명작극장을 만들고 있던 타카하타 이사오와 그 팀 멤버인 미야자키 하야오, 콘도 요시후미, 야마모토 니조, 카타부치 스나오(미야자키의 연출 보조) 등을 불러왔다. 사운을 건 리틀 네모는 기획과정에서 시간이 걸렸고 도중에 리틀 네모를 만들기 위한 사전 연습 개념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4]명탐정 홈즈[5],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꼬마숙녀 치에같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리틀 네모 제작 과정에서 잦은 트러블이 생겼고 기획에 반기를 든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이 제시한 기획안을 회사가 받아주지 않자 1981년에 텔레콤를 떠나 프리랜서 시절을 거쳐 1985년에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했다. 리틀 네모의 감독으로 예정이었던 타카하타 이사오도 미야자키와 함께 텔레콤을 퇴사했다. 작화감독 콘도 요시후미는 토모나가 카즈히데와 공동으로 리틀 네모의 파일럿 필림(1984)도 만들기도 했는데 도중에 다시 닛폰 애니메이션으로 돌아가 세계명작극장을 만들다가 1987년에 지브리에 합류한다. 오오츠카 야스오와 토모나가 카즈히데는 끝까지 리틀 네모 제작에 참여했고 텔레콤 애니메이션에 계속 남아있게 된다. 오오츠카 야스오는 리틀 네모 제작이 완료된 후로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제작 현장에서 떠나 텔레콤 기술고문으로 일하면서 애니메이터를 위한 통신강좌 아니메 쥬쿠(アニメ塾)를 주최해서 후배 교육 양성에 힘썼다. 그리고 리틀 네모는 흥행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야심가 후지오카 유타카는 모든 책임을 지고 사장직을 사임하고 회사를 떠났다.
이후로는 슈퍼맨, 배트맨, 형사 가제트, 타이니 툰, 애니매니악스, 욕심쟁이 오리아저씨, 곰돌이 푸, 다람쥐 구조대 같은 미국 애니메이션과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을 주로 하청 제작했다. 2000년대부터 워너 브라더스가 인건비 절감을 이유로 하청을 한국으로 돌리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경우가 늘었다.
작화에 있어서는 츠키오카 사다오, 오오츠카 야스오, 토모나가 카즈히데 같은 실력파 애니메이터의 제자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어 일본 최고급으로 꼽힌다. 특히 풀 애니메이션에 대해선 일본 최고의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다. 고난이도 작화 (회전, 자동차, 총기, 무술 액션)를 간단히 소화해내기로 유명하다.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이 하청으로 참여하면 작화의 질이 크게 뛰어오른다. 이마이시 히로유키야스히코 요시카즈는 텔레콤은 실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회사이며 일본 애니메이터 최고의 명성이자 등용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로는 드물게 에미상을 수상한 회사이다. [6] 그럼에도 한국에선 루팡 3세가 인기를 별로 못 끌었기 때문에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다. 다만 2000년대 초반에는 제작진의 세대 교체 과정이 있어서였는지 이 때 제작한 작품들은 작화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후타코이.
그러나 작화 전문 스튜디오이므로 작화 기술력은 뛰어나나 연출이나 촬영 쪽에 인맥이 적어 자체 제작 작품은 영상미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7] 캐릭터의 움직임이나 선화의 질은 매우 뛰어난데 전체적으로 영상미가 뭔가 허전한 경우가 많다. 특히 신의 탑에서 이런 문제가 극대화되었는데 그래서 한국에선 실력없는 3류 회사 정도로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오히려 연출과 촬영을 보완해주는 다른 회사의 하청 작업을 할 때 뛰어난 질을 보여주는 제작사이다.
그 외에도 원작이 있는 애니메이션 중 일부는 극심한 캐릭터 붕괴가 일어날 정도로 각색이 심한 경우가 많다. 전국 바사라 Judge End신의 탑이 그 예로 두 작품 모두 작화 질은 좋지만 연출과 각본에서 크게 비판을 받았다. 특히 한국에서는 한국 웹툰 원작인 신의 탑 애니판의 결과물이 미흡하게 나왔기 때문에 텔레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졌다. 다만 이건 사노 타카시 감독 개인의 문제이다. 저거 두 개 다 사노 타카시 감독 작품이며 다른 작품에선 그러한 경향이 없다. [8]
호소다 마모루가 이 회사 출신 중 퇴사한 프리랜서를 기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튜디오 지브리와 작화 스타일이나 타이밍이 비슷해지기 때문에 호소다 마모루 작품을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명한 스타 원화가는 대부분 남성이지만 예전부터 여성 스태프가 많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츠키오카 사다오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오타쿠를 다 쳐내니까 자연스럽게 8할 이상 여자만 남았으며 오오츠카 야스오도 "가보니까 거의 다 여자만 있었다." 라고 회고했다. # 지금도 절반 정도는 여성이라고 한다. #

2. 관련 인물


  • 애니메이터 츠키오카 사다오 (月岡貞夫) -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전설적인 애니메이터. 제자 키우는데 소질이 있어 텔레콤 애니메이션에 풀프레임 애니메이션 기술을 전수했다. 교수 활동을 위해 퇴사. 이후 예술성이 짙은 작품이나 광고 등 주로 단편을 만드는 작가로 활동했다.[9]
  • 애니메이터 오오츠카 야스오 - 2010년대까지 왕래하면서 기술 전수를 담당.
  • 애니메이터 토모나가 카즈히데 - 회사 간판 애니메이터. 현 이사.
  • 애니메이터, 연출가 토미자와 노부오 - 루팡 3세 전문 연출가. 현 이사.
  • 애니메이터, 연출가 야노 유이치로 - 에미상 수상 애니메이터.
  • 애니메이터 요코보리 히사오
  • 애니메이터, 연출가 코이케 타케시 - 프리랜서이나 Lupin The Third 시리즈 제작을 같이한다.
  • 애니메이터, 연출가 사노 타카시
  • 애니메이터, 연출가 무라타 마사히코
  • 애니메이터, 연출가 하나이 히로카즈 - 아트랜드 출신. 2010년대 후반부터 텔레콤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괴롭히지 말아요, 나가토로 양 감독
  • 애니메이터, 연출가 미야자키 하야오 - 리틀 네모 사건으로 퇴사. 자신의 작품을 만들 때 텔레콤에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다.
  • 애니메이터 콘도 요시후미 -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퇴사.
  • 연출가 타카하타 이사오 -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퇴사
  • 애니메이터 타나카 아츠코 - 자세한 정황은 불명이나 퇴사로 보인다.
  • 연출가 카타부치 스나오 -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퇴사
  • 애니메이터 탄나이 츠카사 -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퇴사
  • 애니메이터 사다모토 요시유키 - 입사 후 얼마 안 가서 문제를 일으키고 퇴사. 이후로도 텔레콤 애니메이터를 만나면 도망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 애니메이터 아오키 야스나오 - 입사 후 얼마 안 가서 퇴사.
  • 애니메이터 우츠노미야 사토루 - 입사 후 얼마 안 가서 퇴사.
  • 애니메이터 시노하라 마사코 (篠原征子) - 미야자키 하야오의 소녀 캐릭터 얼굴을 그려주던 애니메이터. 스튜디오 지브리로 이적 후 2015년 사망.
  • 애니메이터 타나카 타츠유키 - 입사 후 얼마 안 가서 퇴사. STUDIO4℃ 소속.
  • 애니메이터 이타가키 신 - 6년 간 일하고 퇴사.
  • 애니메이터 쿠도 마사시
  • 애니메이터 마키하라 료타로 - 퇴사.
  • 애니메이터 하마다 타카유키 - 퇴사.
  • 애니메이터 타키구치 테이이치 (滝口禎一) - 퇴사 후 ufotable로 이적. 이후로도 텔레콤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 애니메이터 니시미 쇼지로 (西見祥示郎) - 대표작 철콘 근크리트. STUDIO4℃로 이적.
  • 애니메이터 하치자키 켄지 (八崎健二) - 에미상 수상 애니메이터. 퇴사 후 TMS 엔터테인먼트로 이적. 이후로도 텔레콤 작품에 자주 참여한다.
  • 애니메이터,연출가 마스다 토시히코 (増田敏彦) - 에미상 수상 애니메이터. 퇴사. 이후로도 텔레콤 작품에 자주 참여한다.
  • 애니메이터 아오야마 히로유키 - 에미상 수상 애니메이터. 퇴사.
  • 애니메이터 우에다 히토시 - 입사 후 얼마 안 가서 퇴사.
  • 여기 소개되지 않은 인력도 개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대부분 실력파이다.

3. 대표작



3.1. 루팡 3세 시리즈


TMS 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하는 회사 대표 시리즈. 모든 작품은 아니고 아래의 작품에 참여했다.

3.2. 자체제작



3.3. 하청 작품



3.3.1. TMS 엔터테인먼트



3.3.2. 스튜디오 지브리



3.3.3. 매드하우스



3.3.4. 선라이즈



3.3.5. 본즈



3.3.6. 그 외



3.3.7. 워너 브라더스



3.3.8. 월트 디즈니



3.3.9. 그 외 미국 하청



[1] 70화를 전후로 조금씩 투입했으며 7월 1일부터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작화 작업이 시작되고 제1기생은 동화로 투입되었다. 후반부 명작이라 불리는 텔레콤 참여 에피소드는 칼리오스트로가 끝난 뒤 참여한 것이다.[2] 이들 신인들이 참여한 72화, 82화, 84화, 105화는 그래서 2기 스태프 중 코다마 켄지가 수정해야 했다.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제작에 참여한 이후의 143화는 캐릭터 디자인 겸 작화감독였던 키타하라 타케오도 수정을 포기해 버렸는데, 방송국에서는 '루팡의 얼굴이 다르다'면서 방송을 한 번 거부당하는 사태마저 생겼다. 다만 143화는 탄나이 츠카사가 작화감독을 하고 텔레콤의 에이스가 참여한 에피소드로 작화가 매우 뛰어나며 그림체가 달라서 거부당한 것이지 작화가 구려서 거부당한 것이 아니다. (아래의 출처 문장에서도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작화에 가까워 거절당했다고 했지 작화에 문제가 있다는 구절이 없다.) 前シリーズでキャラクターデザイン、作画監督を担当した大塚康生は、『TV第2シリーズ』の企画内容を知り、素直には喜べなかったという。彼も、劇場映画作品への参加を東京ムービー社長から誘われ、シンエイ動画からテレコムへと宮崎同様に移籍していたが、劇場版第1作『ルパン三世 ルパンVS複製人間』では製作がすでに進行していたため、監修名義でほとんど何もしなかった。宮崎駿が監督を務めた第2作『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には作画監督として参加している。TV版には、原画の下請けを担当するテレコムの、新人アニメーターの教育係として参加している。大塚は、第72話「スケートボード殺人事件」にて、人手不足を補うため久々に作画に参加、前シリーズ風のルパンたちを描く。このテレコム作画回は新作スタッフによってすべて本シリーズの顔に修正された。その後もテレコムが作画を担当した第82話「とっつぁん人質救出作戦」、第84話「復讐はルパンにまかせろ」、第99話「荒野に散ったコンバットマグナム」、第105話「怪奇鬼首島に女が消えた」まで本シリーズのデザインに基づいた修正が施された。だが、その後もキャラクターデザインを尊重しない作画が続いたため、北原は修正を放棄してしまう。第143話「マイアミ銀行襲撃記念日」からは修正がなされず(『TV第1シリーズ』や『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に近い作画)、前述の「ルパンの顔が違う」と局側から一度は納品拒否される事態が生じたのはこのためである。[3] 애니메이션 평론가 오구로 유이치로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담당하지 않은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회도 작화가 좋아 추천한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 오히려 이 애니에서 작화가 안 좋다는 소리가 나오는 에피소드는 대부분 TMS측 작화이다.[4] 원래는 오오츠카 야스오가 감독을 맡을 예정이었지만, 닛폰 애니메이션에서 빨강머리 앤을 만드는 것에 싫증이 난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 자리를 자청하고 뛰어들었다.[5] 미야자키가 연출을 맡은 에피소드는 다른 TVA가 1편 당 셀화가 3천 장 정도인거에 비해 8천 장 이상을 사용했다.[6] 애니메이터 4명 공동 수상[7] 영상의 질은 작화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건 작화 전문 제작 회사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다.[8] 한국 애니메이션 팬들은 작품에 문제가 생기면 애니메이션 제작사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애니메이션 감독 쪽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더 많다.[9] 원래는 만화가 데즈카 오사무의 제자였는데 데즈카 오사무의 원작 나의 손오공을 토에이 동화에서 서유기(1960)으로 제작하면서, 토에이 동화로 이시노모리 쇼타로와 함께 출장을 가서 바쁜 데즈카 오사무를 대신해서 인물 설정 등을 그리고 설명하는 일을 했는데, 집이 극장을 운영해서 애니메이션의 필름을 직접 봐서 제작 원리를 알고 있었던 츠키오카는 애니메이션이 본인 적성과 재능에 맞는 것을 알고 애니메이터로 전직을 한다. 오오츠카 야스오는 츠키오카는 신입 시절 그 실력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버금간다고 칭찬했다.[10] 이 2기에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테레코무(=텔레콤)(照樹務)이라는 가명으로 각본을 직접 쓰고 연출도 한 145화와 155화(마지막화)가 있는데 극장판급 퀄리티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