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

 


이름
이석(李錫)
본명
이해석(李海錫)
아명
이영길(李瑛吉)
출생
1941년 8월 30일 (82세)
일제강점기 조선 경성부 관훈정 사동궁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훈동 196)#
본관
전주 이씨
학력
서울 창경초등학교
경동중학교
경동고등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1] (졸업)
종교
천주교(세례명: 바오로)[2]유교(성리학)
가족
부친 의친왕, 모친 홍정순
슬하 1남 2녀[3]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여담
5. 미디어에서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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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의친왕의 10남. 이석(李錫)은 황실 족보 상 이름이고, 본명은 이해석(李海錫)이다.
황실문화재단의 이사장이며, 생존해 있는 고종황제의 손자 중에 유일하게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게 잘못 알려진 건지 언론에서는 그를 "마지막 황손"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4] 스스로를 "대한민국왕자"라고 칭한적도 있는데 대한민국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이건 매우 잘못된 표현이다.

2. 생애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에 입학했다. 스페인어과에 입학한 이유는 "왕실이 존재하는 스페인 공주와 결혼하기 위함"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석이 결혼하려 했던 스페인 공주라는 사람은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누나인 팔라르 공주 (1936 ~ 2020) 또는 여동생 마르가리타 공주일 가능성이 높다.
팔라르는 이석보다 5살, 마르가리타는 이석보다 2살 연상이다. 참고로 팔라르 공주는 1967년에, 마르가리타 공주는 1972년에 각각 결혼했다. 이석의 나이로 미뤄보아 이석은 1960년대 초반 학번인 것으로 보이며 그 당시에는 팔라르 공주와 마르가리타 공주 둘 다 미혼인 상태였다.
황족이라고 하지만, 이미 황실의 모든 재산은 이승만 정권 아래 대한민국 정부의 소유로 몰수되었고, 그나마 남은 재산도 순종황제 사후에 황실의 직계라고 할 수 있는 영친왕과 그 부인 이방자, 그리고 고종의 딸인 덕혜옹주에게 돌아갔다.[5]
생활고로 인해 대학 재학 중에도 DJ 일을 보았고 가수의 길을 걷게 되는데, 미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워커힐 호텔에서도 밤무대 가수를 했다. 이후 방송 MC와 건전가요 가수로서 계속 활동했다. 이때 황족이 광대를 해서 돈을 번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매우 혼이 났다고 한다. 특히 당시 살아 있던 순정효황후에게도 크게 혼났다고 한다. 19세기 말에 태어나서 시아버지인 고종황제와는 다르게 사진 찍는 것까지 싫어했던 순정효황후 입장에선, 망한 황족이라지만 가수 노릇을 한다는 게 곱게 보이지 않았을 듯. 참고로 아버지인 의친왕은 1955년에 사망해서 아들이 가수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고, 당시 채명신 장군은 "아직 미필인 연예인을 징발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 명령에 의해 연예병사로 입대해서 베트남에 파병되었으며 예비역 병장으로 제대했다.
가수가 된 이후에는 "비둘기집"이라는 건전가요를 불러 유명해졌다. 이후 1979년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에 이민을 갔다가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다 공부의 꿈을 포기하고 결국 1989년에 다시 귀국했다.
2005년부터 전주대 사학과강사로 일하고, "황실문화재단" 총재로 전주에서 일하고 있다. 전주시 소유의 승광재[6]에서 가이드를 해주고 얼마간의 사례비를 받고 있다고 한다. 현재 전국을 돌면서 역사 강의를 하고 있다.
2013년 12월 2일 KB국민카드 광고에서 세종대왕 역할을 했다.#
2013년 10월 9일, 채널A쾌도난마에 출연해서 자신만이 황위 계승권이 있는 정통 황손이라느니, 광화문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을 제작할 당시에 모델이 필요하자, 현존하는 황족인 이석을 모델로 삼았다는 언급을 했다.[7] 일본 천황(아키히토)나 아베 신조 총리가 자기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역사가 바로 선다고 하면서, 일본 때문에 사라진 우리나라 황실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8][9] 여기까지면 노인네 망령인가보다 하고 넘어갈 텐데... 명성황후 시간설을 사실인양 방송에서 주장해 버렸다. 정작 본인은 그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밖에도 자신의 초등학교 운동회 때 사동궁 상궁과 나인들이 잔치상을 줄줄이 내왔다고도 회고하는데, 1941년생인 그가 초등학교(국민학교)를 다녔던 시절이 미군정 ~ 정부 수립(1948년) ~ 한국전쟁 기간인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지... 찾아보면 아침 방송 등에서 풀어대는 이러한 썰(?)이 한둘이 아니다. 다른 황손들이 이석을 대놓고 비판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존한 황족 중에 이석이 그나마 제일 웃어른인 탓도 크다.
2018년 10월 재미교포 인터넷 사업가 앤드류 리를 세자로 책봉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앤드류 리는 '조선 왕실의 후손'이라고만 소개되어 있을 뿐, 구체적인 혈연관계를 밝히지 않았다. 2020년에 저택을구입했다고 다시 알려졌다.

3. 평가


방송인이자 미국에서 돌아온 1990년대 이후부터 주구장창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부르짖었기 때문에, 황족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래서 언론에서 자주 인터뷰를 했고, 그래서 심지어는 이 사람을 황위 요구자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10] 그러나 만일 황실이 복원되더라도 이 양반의 황위 계승권 순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황실 복원을 주장할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선이 많았다.[11]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실 복원 주장을 계속해서 활발히 해오고 있는 인물이다. 비운의 대한제국 황실에 대한 동정심인지, 공화국 시대에 황실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에 대해 언론에서 그다지 디스하진 않으나,[12] 전주 이씨 내부에서도 대부분 이런 부류를 "정신나간 사람들", "시대 착오적 사람들"이라고 보기도 한다.[13][15] 황실 복원 주장에 대한 비판은 대한제국 황실 복원#s-6 문서 참조.
이석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크게 이석의 황실문화보존회[16]와 갈등 가능성이 있는 구황실 단체로는 대동종약원[17], 전주 이씨 종친회, 대한제국황족회 등이 있다.
드라마 궁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때 쯤 여론의 관심에 자극받아서인지, 2006년 9월 25일에 대한제국황족회가 대한제국 존속 당시 작위를 받았으며 현존하는 의친왕의 자녀들 중 가장 나이가 많던 이해원을 88세의 나이로 30대 황제에 추대했다. 관련 기사 - 한겨레 : 대한제국 황위 이해원 옹주 승계… ‘여황’ 대관식 거행 물론 이것은 정식 승계가 아닌 일종의 쇼에 불과했고, 이를 통해 여론의 지원을 얻어보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당시 소식을 들은 대동종약원, 전주 이씨 종친회, 황실문화보존회는 반대의 논평을 냈다. 어찌보면 오히려 '궁'의 출현이 대다수의 스토리 팬들에게 실상을 파헤치게 하면서 애매모호했던 것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한다.
BBC 코리아의 인터뷰에 등장 했는데, 영상에 싫어요 수도 적지 않고 댓글들의 여론이 꽤나 싸늘하다.
특히 영상 중반부 쯤에 군인 출신으로 보이는 남성이 경북궁의 왕좌를 보고 황실을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18] 이석은 '당신은 역사를 아는 사람이 어떻게 도둑놈이 앉았다고 그러냐' '나 고종황제 손자다.' 도둑놈이라고 하면 어떡해 임금을' 라며 분노 했는데, 이 때문에 댓글 여론이 완전히 등을 돌렸다. 역사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당시 황실이 얼마나 무능하고 부패 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며, 그런 황실을 비난한 사람이 다름 아닌 일선에서 국가에 헌신한 노병이기 때문이다.[19] 물론 이석 본인도 베트남 전쟁 참전 경험이 있으나, 그렇다 할지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출생신분을 내세운 점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또한 고종에 대한 발언도 욕을 하든 찬양을 하든 개인의 자유이기에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어떻게 임금을 욕하냐" 라는 것은 개인 자유에 대한 침해다. 고종을 찬양하더라도 그건 고종 개인의 업적에 대해서 찬양받아야지 임금이라는 이유만으로 찬양받는건 절대 제대로 된 사고라 할 수 없기 때문.

4. 여담


  • 가정적으로 평탄하지 못해서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기 때문에 부인이었던 사람이 4명이다. 첫째 부인 독고정희와의 사이에서 탤런트 이홍(1971년생)을, 이혼 후 둘째 부인 김진옥과의 사이에서 도예가 이진(1976년생)을, 셋째 부인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장녀 이홍은 연예인으로 데뷔한 적이 있고 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차녀 이진은 도예가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두 딸은 언론을 통해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아들은 차녀 이진보다 3살 아래이며 컴퓨터를 전공한 걸로 추정된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 차녀 이진의 인터뷰 기사 그런데 쾌도난마에 출연했을 때 아들이 있냐는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 2019년 12월 전주시에서 별 다른 법적 근거 없이 '황실 관련 콘텐츠 지원' 명목으로 연 9천만원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 논란이 되었다. 이 지원금의 대부분은 이석 황실문화재단 이사장의 강의료와 활동비, 재단의 물품구입비와 홍보비 등으로 쓰이고 있다. 또 한옥 민박인 '승광재'를 무상으로 제공, 이 이사장이 활용토록 하고 있다. 평일 7만원, 주말 11만원인 이곳의 숙박료는 재단이 관리한다. 전주시는 "2010년부터 시작한 '황손과 함께 하는 전통문화 체험'은 엄연한 문화적 활동인 만큼 '문화예술진흥에 관한 조례'를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5. 미디어에서


  • 1995년 KBS에서 단막극 인간극장으로 이석의 삶을 다룬 4부작 드라마 <왕자의 노래>를 방영했는데 뮤지컬 배우 박철호가 이석 역을 맡아 연기했다.

6. 관련 문서


[1] 현 서양어대학 스페인어과[2] 아버지를 따라 영세를 받았지만 현재는 성당을 잘 나가지 않는다.[3] 언론을 통해 셋째 부인에게서 아들 1명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나 쾌도난마에 출연했을 때 아들이 없다고 발언했다.[4] 이를 언론에 따져물었을 때 단순히 마지막 황손 앞에 '대한민국에 거주하는'이 생략된 것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5] 이것 때문에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방자 여사가 박정희로부터 다른 황족을 도우라는 명목으로 받은 자금을 이방자 자신의 자선 활동에만 썼다고 비판한 일이 있었다. 실제로 해당 자금의 목적이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6] 전주 이씨조선 왕조 설립 이전의 사저,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7] 근데 이건 진행자가 은근 유도를 한 부분이며, "동상 제작자가 세종대왕 초상화에 나온 용안이 유약한 느낌이 들어 고민할 때 텔레비전에 나온 이씨를 보고 동상의 형상을 만들어 갔다"는 내용이다.[8] 우리나라가 일본의 사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히 옳다. 그러나 사죄를 받는 주체가 자신이어야 한다는 건 시대 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거기다가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팔아댔으니 더 문제.[9] 이것도 헛소리다. 사실 일본은 적어도 자기들이 멸망시킨 대한제국 황족들을 그래도 후우(厚遇)하긴 했다. 그런데 정작 자기 조상 이성계고려 왕씨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살아남은 개성 왕씨의 후손들이 보면 혀를 찰 지경.[10] 이건 언론 탓도 크다. 툭하면 "마지막 황족 이석" 혹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후손"식으로 보도를 했으니.[11] 만일 황실이 복원된다면, 논란이 있지만 일단 이구의 양자 이원이 1순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의친왕계만 따진다고 해도 6남 이곤의 후손이 황위 계승권 상위를 차지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12] 사실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다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유야 현 체제로도 그런대로 굴러가는데 굳이 황실복원을 할 이유도 명분도 없으니까 언론도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것들을 내보낸다.[13] 특히 이석의 바로 위의 이복형인 이갑은 이석에게 "황손이 스스로 이름을 파는 추태를 부리지 말고 정신차리라"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14] 전주 이씨의 시조는 이한이라는 사람인데 이 이한의 17대손 중 하나가 태조의 4대조인 이안사이며 이안사의 4대손들 중에서 하나가 태조이며 태조의 19대손 중 하나가 고종이다.[15] 애시당초 전주 이씨는 대한민국 인구의 5%에 달하는 260만명의 대본관이다. 이들이 다 황실의 일원이라는 인식이 있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다.[14][16] 과거 이 단체 이름은 황실재건XXX.[17] 황세손 이구의 입양된 황사손 이원이 현재 존재하며 대한제국 황실의 직계는 서열상으로 바로 이 사람이다.[18] '옛날에 도둑놈이 앉았던 자리야 저기가. 청와대랑 똑같다.' 라고 비난했다. 다소 정치색이 섞여 있고 과격한 발언이긴 하지만 구 황실의 무능함을 지적한 것 자체는 결코 틀린 발언이 아니다.[19] 참전용사 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진위여부를 확인 할 수 없지만 판문점 DMZ 문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있는것으로 보아, 판문점이나 비무장지대 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것으로 보인다. 판문점과 비무장지대는 북한의 숱한 대남도발과 사건사고에 노출 되어 있는 위험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