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범죄자)
[clearfix]
1. 개요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의 살인자. 병역법 기준 24세였던 2012년 9월에 뒤늦게[2] 대한민국 육군 현역 운전병으로 군입대를 해 육군 제28보병사단에 배치된 뒤 262포병대대에서 977포대 의무대로 전출 후[3] 해당 사건을 일으켰다.
2. 생애
1988년, 경상남도 마산시에서 자영업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는 모범생에 속했으며, 6학년 때는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고,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을 정도로 평범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가 가출하고 난 뒤에는 범죄자의 싹수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소위 노는 아이들과 어울렸고, 조금 껄렁껄렁한 아이들과 자주 놀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종종 싸움을 하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일진' 수준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사회봉사기록도 수 차례 받았다고 한다. 이는 대학 시절까지도 이어졌다. 고교 동창생이나 대학 동창생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허언증과 허세가 심했다고 한다. 허언증과 허세 심한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 방어기제 수단으로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남들 앞에서 존중받고 싶고 타인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고 싶은데 내세울 만한 것이 없을 때 허언증과 허세를 심하게 부린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부산에서 유명한 조폭인 줄 알았다는 동창생들도 여럿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4]
3. 군대 시절
이등병 시절에는 262포병대대에 있었는데 뒤늦게 입대한 탓에 선임들로부터 '''할배'''라 불리며 멸시를 당했다고 본인은 주장했다.[5] 또한 제설 작업을 하다 선임인 황모 상병에게 제설 못 한다고 욕 먹고 연대 '''이등병 캠프에서 연대장한테 이런 부대에서는 못 산다는 마음의 편지를 부쳐''' 977포병대대로 전출 뒤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재배치됐다. 사실 자대 배치 후 다시 전출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좋게 보지 않는 육군의 풍토상 그가 후방 부대에서도 취급이 좋았을 거라 보긴 힘들다.[6]
물론 장교의 경우 단기라 하더라도 다른 부대에서 복무해보고 싶다고 하면 모범장교라 하더라도 전출이 된다. 그래서 특전사에서 중소위들의 전입/전출이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병은 복무일이 장교들보다 짧고, 그 수도 많기에 정말 어지간히 큰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전출되는 일은 거의 없다. 때문에 부대 편제개편 등으로 부대를 옮기더라도 육군에선 병이 부대를 옮겨오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향이 크다.[7]
그래도 열심히 했는지 모범병사 표창을 받은 적이 있으며, 윤일병이 사망하기 직전 그로 인한 특별휴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군 수사기록에 따르면) 윤일병을 향한 가혹행위가 지속된 뒤 그의 가족들이 면회를 오거나 종교활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윤일병에게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제28보병사단 의무병 살인사건을 참조.
4. 끊이지 않는 악행
[image]
윤 일병 살해 후 국군교도소에 수감된 이찬희는 이번엔 동료 수감자들에게도 각종 가혹행위[8] 들과 성희롱[9] 들을 무려 '''8개월간 일삼았다.''' 결국 참다 못한 피해자가 고소하면서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찬희는 또다시 군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관련 기사이유 없이 때리죠. 그니까 먼저 자기가 말을 걸어요. 계속 이름을 불러요. 엄청나게 무서웠죠. '예, 예' 이러면 '내가 X같냐?' 이런 식으로. 또 눈 충혈이 되고 얼굴 시뻘겋게 돼서 목 조르죠. 조르고 때리고. '''윤 일병도 너처럼 똑같이 대답을 안 했다고.'''(궁금한 이야기 Y와 인터뷰한 피해자의 증언)
게다가 그는 국군교도소 안에서 '''나이부심+형량부심'''을 부렸고[10] , 자신이 저지른 가혹행위로 숨진 윤 일병을 모욕하다 못해 유족까지 조롱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재소자가 언론에 이야기를 했는데, 윤 일병을 욕하는 말을 한두 번도 아니고 '''진짜 많이''' 했다고. 목격자는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 같다는 말까지 했다. 또 윤 일병의 어머니가 사형으로 구형되어서 그래도 다행이라는 인터뷰를 했는데, 그 뉴스를 보며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로 욕을 했다고 한다. 목격자가 말하길 'TV 속으로 들어가서 죽일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아래는 피해 수감자가 들은 이찬희의 발언이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윤 일병 사건 주범인 이찬희야. 만나서 반가워.'''
감옥에 간 후에도 그의 거짓말하고 허세 부리는 버릇[11] 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자기 어머니는 대학 교수고 아버지는 큰 룸살롱을 운영하고 월 수입이 몇십억이라느니, 프랑스 육군 대학교를 나왔고 벤츠 승용차를 갖고 있다느니, 예쁜 여자 사진을 보여주며 여자친구라고 주장하고, 경찰인데 장인어른이 빨리 나오라고 변호사를 4명이나 선임해줬다느니, 하루가 멀다하고 '여자친구'에게서 보내져 오는 편지들도 있어서 다른 수감자들은 그를 부러워했다고 한다.'''윤 일병 걔도 너처럼 대답을 잘 안했는데 너도 걔 같다. 너도 당해볼래? 너도 걔처럼 해줄까? 걔가 죽어서 내가 지금 이렇게 됐다.'''
그들이 이찬희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그가 2심 재판을 받느라 교도소를 비운 때였다. 서신들을 잘 살펴보니 여자친구에게서 편지가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전부 어머니의 편지였으며, 여자친구가 면회와서 이러이러했다는 이야기를 한 시간 동안이나 한 적도 있는데 교도관들에게 물어보니 교회에서 봉사차원에서 온 것이었고, 자기가 피아노를 10년이나 쳤다고 얘기했는데 정작 교도소 안에 있는 피아노를 쳐달라고 하면 내가 45년 장기수인데 지금 피아노 치면 사람들이 날 뭐라고 생각하겠느냐는 핑계를 대며 '나는 다시는 피아노에 손을 안 대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느니 하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하며 보여주지 않는 등. 그런데 말하는 게 정말 진짜 같았다고 한다.
사실 그는 군대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소위 말하는 관종이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매우 부풀려서 하고(굉장히 오래된 구형 쏘나타를 타고 다녔는데 최신형 벤츠로 각색하는 등), 후배들에게 과시하고 과격하게 대하고, 자기가 잘 나갔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마치 일진이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는 '일진을 하고 싶어했던' 사람에 더 가까웠다고 한다나.
...이 정도면 공상허언증과 조현병의 영역.'''가면'''이 만들어진 거죠. 사실 그 어떤 시기부터 다른 사람한테 공포를 주기 위해서는 그런 악마 가면을 쓰거든요. 안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냥 미약한 존재인데 그거를 보상받기 위해서 '''무서운 가면'''을 일부러 계속 쓰는 거예요. 그러니까 늘 계속 거짓말을 하고, 눈앞에서 거짓말하는 게 밝혀지면 또 다른 임기응변을 통해서 또 하는 거죠.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
다시 군 교도소 이야기로 돌아가자. 자기 인생 이야기도 해주고 일견 착한 형처럼 보였던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쉽게 말해 자기보다 '약해보이는' 수감자가 새로 들어오자 '''본색을 드러냈다'''. 말도 안 되는 사소한 트집들로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이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졌는데, 쉽게 말해 자기가 수감된 원인이 된 그 행동을 그대로 똑같이 반복한 거다. 그나마 그는 몇 달만에 출소를 해서 정말 심각한 일까지는 가지 않았다.
또한 국군교도소 내에서는 라면 취식이 금지임에도 불구하고, 이찬희는 라면을 좋아해 몰래 먹는 건 물론,[12] 흉기로 사용이 될 수 있어 반입이 엄격히 금지된 가위나 손톱깎이도 쉽게 빌리는 등 수감자 관리가 매우 허술했다. 특히 이찬희가 가위를 가지고 들어갈 때 다른 수감자들은 공포에 떨어야 했고, 24시간 계속 경계했다고 한다.(SBS 추가 보도) 국군교도소 안에 진정함(鎭定函)이 있지만 아무도 그 존재를 알려주지 않았을 정도니, 결국 국군교도소 관리 소홀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
기가 막힌 것은 같은 방 수감자들에게 자기 판결문까지 보여주며 억울해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이런 소식들을 들은 윤 일병의 유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뉴스가 나오고 나서 온 가족이 잠을 못 이루고 정말 힘들어했다고 한다. 잊혀질 만하면 드러나는 사건에 가족들은 또 한 번 상처가 헤집어지는 고통을 받고 말았다. 마침내 어머니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이찬희를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에 이른다.관련기사 참고로 윤 일병의 어머니는 이찬희와 유 모 하사를 제외한 나머지 가담자들을 선처해달라는 탄원서를 내기도 했었다.
이로 인해 국군교도소의 허술한 수감자 관리에도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수감자 관리를 헌병 간부들이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헌병 병들이 관리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찬희가 다른 수감자에게 위협하고 소리 지르고 욕하는 상황이었는데도, 심지어 창문 너머로 피해자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그냥 지나갔다고 한다.
병 입장에서 보면 의무 복무를 하는 상황이고 권한도 별로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찬희를 관리하려고 하지 않았음이 명백한데, 어떤 분야에서든지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징계를 받는 등의 관리 책임을 뒤집어써야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들도 쉽게 건의 등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별다른 조치 없이 그냥 말로만 '그러지 마라,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라'고만 하고 돌려보내면 그뒤로 더욱 심하게 당할까봐.
원래 이런 문제 때문에 교도병은 수감자와 적극적으로 접촉하지 않고 직접적인 관리는 부사관급 이상의 교도관이 맡게 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발생한 수감자 중에 병 계급으로 이찬희처럼 초장기형을 받은 사례가 없다보니까 이런 내무부조리가 묵인되어버린 측면도 있다. 사실, 명목상 적극적인 접촉은 부사관이 하게 되어 있지만 교도소 내에서 적지 않은 통제를 근무병이 직접 해야 하기 때문에 헌병의 경우도 재판 진행상황 같은 중요한 건에 대해 대화를 하지 않을 뿐이고 충분히 수용자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한다.
이외에도 이찬희를 국군교도소 혼거방에 수감한 것부터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징역 35년이면 양형 기준상 아무리 관대하게 잡아도 28~30년은 교도소에서 지내야 하니까, 사실상 중간 출소가 가능하다는 것 빼고는 무기수나 다를 바가 없다. 보통 수감 기간이 구속 기간을 포함한다는 것을 감안한다.
수감 중에 이런 짓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이상 형량이 증형되었으면 증형됐지 결코 감형되지는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그의 형량은 전술한 35년에서 최소 1년이라도 늘어난다는 가정하에 결국 그는 1988년 생인 관계로, '''미국식 엄벌주의'''를 정면으로 도입해 '''교도소가 진짜 포화상태가 되지 않는 한 적어도 2050년이 되기 전에는 어지간해서는 석방될 일이 없을 것'''이다.
현재 유기징역의 상한선이 늘면서 법조계에서는 무기수들의 가석방이 봉쇄되는 걸 막기 위해 장기 징역의 가석방 기준을 현재의 80% 안팎에서 50~60% 정도로 완화하고 무기수도 과거처럼 가석방 자격 부여 시점에서 +10년이 아니라 그냥 자격이 부여되면 가석방을 시켜주는 쪽으로 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찬희처럼 대형 사고를 치는 자들 말고 얌전히 지내는 자들의 경우다.
그런데 국군교도소 수감자는 사형수[13] 와 장교나 장기부사관, 군무원 정도를 빼면 전원 1년 6개월 이하의 실형을 선고받은, 즉 단순 폭행사범이나 가혹행위범, 성추행범 혹은 중대한 군기 위반 행위자 등 소위 '잡범'이다. 이들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데다 어쨌건 빨간줄 긋더라도 빠른 사회 복귀가 가능하기에 막나가기 어렵다는 점을 이찬희가 악용했다는 것이다. 원래 장기수는 미래가 거의 없기 때문에 교도관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형수가 그나마 1998년 이후 교도소 내에서 통제가 되기 시작한 게 역설적이지만 사형 집행이 동결되고 나서 이들이 사형은 당하지 않지만 교도소에서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고 고분고분해진 뒤의 일이고, 무기나 20년 이상 받은 수감자들이 되려 흉악 범죄를 저지른 조폭들이 감히 건드리지도 않는 악질인 경우가 많다.
방장도 이들을 손대지는 못하고 그냥 사고 못 치게 막는 수준이며, 대부분 독방에 수감되고 교도관들도 일반 수감자들과는 태도를 달리한다. 그 흉악범들도 두려워하거나 꺼리는 존재인데, 잡범들을 가둬 놓는 교도소 혼거방에 넣었으니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뻔하지 않을까? 이찬희는 그야말로 '제왕처럼 군림'했다고 한다.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으로 확인되긴 했지만 지적장애가 없었다고 해도 결국 똑같이 당했을 것이다. 별 볼 일 없는 찌질한 허세쟁이 나부랭이가, 폐쇄적인 군대라는 조직의 특수성 때문에 제왕처럼 군림하며 폭군이 되어 더욱 그 폭력성과 거짓말을 증폭시켜 갔던 것이다.
이 와중에 이찬희는 피해자 중 한 명을 맞고소한 사실이 밝혀졌다. 기사. 하지만 당시 목격자들은 전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고, 심지어 같은 방 수감자에게 허위 진술까지 요구한 것이 밝혀졌다. 그나마 수감자들의 양심 수준이 내부고발자를 부대 막내보다 못하게 취급하는 인간들보다는 나은 편이었는지 아무도 응하지 않았다.
고소당한 피해자는 지적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피해자의 지능이 떨어져서 대응을 제대로 못한다는 말도 있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 내몰리면 지능이 낮건 높건 피해자의 심리 상태가 되면서 결국 이찬희 같은 악마들에게 당하게 되어 있다. 즉 피해자가 지능'''도''' 낮아서 대응을 못하는 것이지, 지능'''만''' 낮아서 대응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이 건도 황당한 것이 그가 국군교도소에 들어갈 당시 피해자의 지적 장애를 처음 파악한 것이 피해자의 국선변호사였다. 주먹구구식 입대 검사 탓에 입대 시 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은 물론 교도소 입소 전의 복무 기간 중에서도 복무 부적합자임을 파악하지 못한(혹은 은폐한) 것이다. 물론 진짜 지적 장애인은 아니고 경계선 지능으로 추정되지만 적응을 못 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사
군인권센터의 브리핑에 따르면 언론에서 말한 피해자는 총 3명이지만, 군인권센터 자체 조사에서 2명이 추가로 피해를 입은 사실이 드러났다. # 누군지는 조사해 봐야 알 수 있지만 이찬희와 같은 방을 쓰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이찬희는 독방으로 이감된 상태다.
2015년 10월 28일, 국방부 검찰단은 이찬희를 교도소 내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상습폭행, 강요) 등의 혐의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 기소했다. # 검찰이 기소한 죄명은 총 7가지이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상습 강요, 강제추행, 위력행사 가혹행위, 모욕, 무고, 강제추행 미수, 상습 협박'''... 군 검찰은 이찬희에게 30년을 구형했다. 이대로 형이 확정되더라도 윤일병 사건과 이번 사건을 결합하면 최대 50년형 선고도 가능하다. 관련기사.
다만 군검찰이 구형한 형량이 이찬희의 죄질을 감안해도 일반 사회의 형량과 괴리가 상당히 심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길어야 35년에 10년 정도 추가되어 통합 선고하는 걸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가석방 기준도 3분의 1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 일부에서는 이찬희가 가석방 대상이 아니라고 하는데, 형량이 확정된 뒤 새로 받았다면 맞는 말이지만 이찬희는 기존 형량이 확정되기 전에 새로운 혐의로 다시 기소된 거라 재판을 다시 하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
2015년 12월 30일, 1심 보통군사법원은 국군교도소 동료들에게 폭행과 가혹행위를 한 혐의를 인정해 이찬희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본래 35년형을 선고받았으므로 38년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셈. # 이는 30년에서 크게 감형된 것이다.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보다 많이 감형한 이유에 대해서 "이찬희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며 모욕과 협박 등 혐의에 대해서는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를 제출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보다는 사실상 통합심리해야 할 상황에서 어차피 35년이 사실상 확정된 이찬희에게 추가할 수 있는 형량은 길어야 15년이고 그것도 현실적으로 기존에 선고된 법정 최고형이 42년이고 그마저도 계획적 강도살인으로 법적 죄질은 이찬희와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그 이상의 형량 부과에 부담이 큰 상황에서 사실상 형식적인 처벌을 내렸다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일단 2심은 통합심리하게 되었다.
결국 2016년 8월 25일 대법원에서 징역 40년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공범 병사들은 징역 7년, 그를 형님으로 떠받들며 가혹행위에 동참한 하사는 징역 5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현재 이찬희는 대법원에서 징역형이 확정된 후, 육군에서 제적되어 교정본부 산하 교도소(즉, 군 교도소가 아닌 민간 교도소)에 수감되어 복역 중이다.
5. 기타
웹툰 뉴 바이블 50화에서는 이찬히라는 이름으로 실제 사건처럼 국군교도소에서 사건부심으로 동료 수감자들에게 갑질을 할려고 하나 갑자기 동료 수감자들이 우르르 나가면서 교환죄수라는 명목으로 들어온 제이의 제자들에게 자신이 후임에게 했던 가혹행위를 그대로 당하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제이에게 목숨을 구걸하나 결국 뚝배기가 깨지면서 사망한다.
[1] 출생일이 국군의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대한민국 국군 역사상 최악의 범죄가 된 사건 중의 하나를 일으킨 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2] 2012년이면 그의 동갑내기들은 거진 예비역 1~3년차다.[3] 의무병은 간호학과 재학생이나 보건 계열 재학생들을 우선 선발하지만, 의무대에 배치되는 운전병은 전공과 상관이 없다. 그래서 이찬희가 의무대 운전병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4] 이런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찬희의 친동생 증언에 의하면 친구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진짜 조폭인 아버지를 둔 사람의 경우 웬만하면 자신의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해 봤자 좋을 것이 없는데 당연하다.[5] 더불어 이 와중 한 선임에게 '''배때지를 쑤셔 죽이고 싶다'''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끔찍한 폭언까지 했다는 증언도 있는데 물론 나이 가지고 놀림당한 게 원인이라 해도 그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6] 특히나 이 경우는 극도로 악질인 것이 '''본인이 이등병 때는 언어적 갈굼 하나로 소원수리를 적어냈는데, 짬먹고 나서 본인이 그 몇백 배는 더한 극악무도한 짓을 한 것이다. 군필자들은 알겠지만, 이런 경우면 진짜 답이 없다. 한 마디로 본인이 대우 받을 짓도 안 하면서 짬대우를 원하는 것을 넘어 인간 말종짓까지 한 것이다.'''[7] 반면 해군은 6개월 이상 함정이나 격오지 등에서 근무한 수병들에게 근무여건이 좋은 후방 육상부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인사이동 기회를 제공하고(육상부대 행정병이나 복지시설 관리병 등은 대부분 이렇게 6개월 이상 함정 등에 있다 발령온 수병들이 맡는다.), 함정의 퇴역이나 부대 개편 등으로 인한 이동도 잦은 편이라 중간에 부대를 바꿨다고 문제아 취급 하는 일은 없다. 드물지만 본인과 다른 부대원들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군함이 북한군에게 피격되는 바람에 인사이동된 사례도 있다. 회사로 따지면 본인은 모범사원인데 회사가 망해서 다른 회사에 팔리는 바람에 생판 모르는 부서로 재배치가 된 것과 같다. 대한민국 해병대의 경우 과거 해병대 폐지로 인해 해군 보병으로 편입되는 역사마저 있었다.[8] '''피해자의 목을 조르기, 1.5L짜리 음료수 병으로 때리기, 볼펜으로 찌르기, 수감자 3명에게 옷을 다 벗긴 채 화장실에 무릎을 꿇게 하고 소변을 보는 행위, 섬유유연제를 입에다 대고 먹으라며 뿌리는 행위 등. 참고로, 이거 윤 일병한테도 그대로 혹은 거의 엇비슷하게 했던 짓들이다.'''[9] 자기 음경을 보여 주며 성희롱을 했고, 잘 때 옆에 와서 만져달라고 강요했다.[10] 출처는 SBS 단독 보도. 단, 형량부심은 민간 교도소에서도 흔하다. 조폭 방장들이 왜 사형수, 무기수, 10년 이상 장기수들은 터치를 하지 않는지 생각해 보자. 갑질도 잃을 것이 있는 사람 상대로나 가능한 거다.[11] 사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예전부터 아버지가 조폭이라는 허세를 계속 부려왔다.[12] 사실 사식을 몰래 반입해 먹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교도소 환경이 그리 좋지 않고 음식의 다양성도 제한되기에 이런 위반은 생각보다 흔한 편이고, 특히 장기수들이 신경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어차피 인생 끝장난 장기수가 교도소 규율을 얌전히 따를 거라 기대하는 것부터가 무리다.[13] 군형법상 군인에 대한 사형은 총살형밖에 없으며, 사형수는 원칙적으로 미결수 신분이라는 점, 군형법은 사형 집행은 소속 군 참모총장 또는 군사법원 관할관이 지정한 장소에서 군인의 전통적인 사형 방법인 총살형을 집행하는 군형법 3조 조항 때문에 군인 신분의 사형수는 병.간부던 해당 군인의 신분을 막론하고 국군교도소에 수감한다. 그리고 사형수는 독방 수용이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