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 챔프
Comic Ch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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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대원씨아이에서 발행하는 격주간 만화잡지.
1991년 12월 5일 창간한 주간 만화잡지. 이 때 이름은 '''소년 챔프'''였다. 많은 독자들, 특히 올드팬들은 소년 챔프로 많이 기억한다. 현재는 이름을 코믹 챔프로 바꾸고 격주간화되었다.[1]
서울문화사에서 발행하는 아이큐 점프와 더불어 90년대 만화잡지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여러모로 소년 점프 포지션이었던 아이큐 점프의 라이벌격이자 일본으로 치면 소년 선데이, 혹은 소년 매거진 급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학산문화사의 찬스가 소년 매거진을 벤치마킹했던 걸 보면 선데이 격 위치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일본 소년 점프의 양대 산맥인 원피스와 나루토를 챔프에서 연재하는 등 일본의 특정 잡지와 성향이 매치되지는 않는다. 아이큐 점프가 드래곤볼을 수입해서 재미를 보고 있을 때, 챔프는 슬램덩크를 수입해서 상당히 재미를 봤다.
한편, 아이큐 점프가 1992년 8월 자매지로 <월간 코믹 점프>(다음 해 3월 '월간 아이큐 점프'로 제호명 변경-95년 3월 폐간)를 창간하자 이에 질세라 챔프는 자매지로 <월간 챔프>를 창간했는데, 95년 9월까지 발행되었다[2] . 이 잡지의 폐간 이후 한동안 비순정 월간만화잡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가 98년 6월 주니어 챔프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2002년 11+11월 합본호를 끝으로 폐간되었고 그 이후 95년 1월 창간된 팡팡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이 잡지도 2006년 10월 폐간되어 현재 대원의 비순정 월간만화잡지는 명맥이 끊어진 상태다.
2013년 9월 1일, 영 챔프가 코믹 챔프 쪽으로 통합되었다. 출판본은 코믹 챔프라는 이름으로 계속 발매되며, 디지털본은 '''챔프D'''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발매된다.
요즘 한국에서 만화잡지를 사는 사람이 드물어 잘 모르겠지만...현재 격주간으로 발매중인 코믹 챔프는 300페이지 이상의 엄청난 두께와 큰 판형에도 불구하고 '''3000원'''[3] 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게다가 광고는 거의 없다.
누가 봐도 적자일 것 같은 이 사업을 하는 이유는 일본 출판사 쪽에서 이런 정기 연재 잡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잘 나가는 작품의 연재 계약을 잘 주기 때문이라는 낭설이 퍼져 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만화잡지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그냥 낭설이라고 치부하기 힘들다.
다만 창간 초창기에는 수백만부에 달하는 일본 주간만화잡지급의 대박까지는 아니었었도 상당히 이득을 냈었다. 90년대 초, '''아이큐 점프가 30만부, 소년 챔프는 14만부 정도'''(#)를 찍어내면서 그 이전까지 만화잡지계의 왕좌 자리를 누리고 있던 보물섬이 쥐고 있던 파이를 빼앗고 만화잡지계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으며, 또한 X세대[4] 가 적극적인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어두컴컴한 대본소에서 보는 불량만화'란 편견을 깨고 만화가 양지로 나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게 잘 와닿지 않을 젊은 세대를 위해 쉽게 설명한다면, 동네 분식점이나 이발소, 미장원 등 고객이 기다려야 하는 형태의 가게에는 스포츠신문과 함께 점프와 챔프를 비치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소년 챔프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당시 연재했던 '어쩐지... 저녁', '협객 붉은매', '미스터 부'는 무려 누계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미스터 부로 전상영이 벌은 돈이 3억이 약간 안된다는데 당시 인세상 100만를 팔지 않으면 이 인세를 벌 수가 없다. 일본 만화 한둘에 목 매달고 전전긍긍하는 잡지는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해서 스캔본의 확산으로 만화잡지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든데다가 간판만화도 하나둘씩 연재가 종료되며 현재는 몇천부 정도 나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특이점으로는 격주간지이다보니 일본 만화의 경우 주간지인 일본 측 점프와 스케줄이 맞지 않아 2회 분량, 즉 2주 분량을 코믹 챔프 한 부에서 연재하고 있다. 책을 사서 보면 2회 분량이 한꺼번에 실려있다. 물론 점프에서 한 주 휴재하면 1회가 실리기도 한다.
창간 초창기에는 TV 광고도 방영하였고 챔프의 인기작 중 일부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개봉하기도 하였다.[5] 애시당초 대원동화가 1987년에 떠돌이 까치와 달려라 호돌이를 시작으로 자체제작을 시작한 이래 아기공룡 둘리 일부 회차,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등 인기 만화영화의 제작까지 맡으며 상당한 노하우를 쌓아올린 상태였고. 당시 맹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창훈을 기용하여 맹구 캐릭터 그대로 활용하여 찍은 광고와 아동용 극장영화를 도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TV만화영화와 극장판 만화영화를 만드는것은 달라서 극장판 만화영화의 경우에는 흥행성적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독고탁 극장판을 만든 적이 있었으니 노하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영화계에서 불황의 시기였기도 했다. 광고는 TV뿐만 아니라 대원에서 배급하던 비디오에도 중간 광고로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없었던데다가 90년대 중반에 나온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지원도 TV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 애니메이션쪽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다보니까 TV애니메이션화가 된 작품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로 마법사의 아들 코리와 검정고무신 정도가 고작이다.
이른바 기존의 유명한 스타 작가진들이 대거 포진해있던 아이큐 점프에 비해[6] 고행석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형 작가들의 작품이 없어 창간 이후 약 1년간은 판매량에서 점프에 밀리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런 작가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사 자체적으로 신인작가 공모전을 분기별로 열어 많은 신인작가들을 발굴했고, 이 때 데뷔한 신인작가들은 90년대 초중반 소년챔프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작가들과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코믹 챔프/연재중인 작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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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블로그
대원씨아이에서 발행하는 격주간 만화잡지.
2. 상세
1991년 12월 5일 창간한 주간 만화잡지. 이 때 이름은 '''소년 챔프'''였다. 많은 독자들, 특히 올드팬들은 소년 챔프로 많이 기억한다. 현재는 이름을 코믹 챔프로 바꾸고 격주간화되었다.[1]
서울문화사에서 발행하는 아이큐 점프와 더불어 90년대 만화잡지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여러모로 소년 점프 포지션이었던 아이큐 점프의 라이벌격이자 일본으로 치면 소년 선데이, 혹은 소년 매거진 급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학산문화사의 찬스가 소년 매거진을 벤치마킹했던 걸 보면 선데이 격 위치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유일 뿐, 일본 소년 점프의 양대 산맥인 원피스와 나루토를 챔프에서 연재하는 등 일본의 특정 잡지와 성향이 매치되지는 않는다. 아이큐 점프가 드래곤볼을 수입해서 재미를 보고 있을 때, 챔프는 슬램덩크를 수입해서 상당히 재미를 봤다.
한편, 아이큐 점프가 1992년 8월 자매지로 <월간 코믹 점프>(다음 해 3월 '월간 아이큐 점프'로 제호명 변경-95년 3월 폐간)를 창간하자 이에 질세라 챔프는 자매지로 <월간 챔프>를 창간했는데, 95년 9월까지 발행되었다[2] . 이 잡지의 폐간 이후 한동안 비순정 월간만화잡지와는 거리가 멀었다가 98년 6월 주니어 챔프를 창간했는데 이 잡지는 2002년 11+11월 합본호를 끝으로 폐간되었고 그 이후 95년 1월 창간된 팡팡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이 잡지도 2006년 10월 폐간되어 현재 대원의 비순정 월간만화잡지는 명맥이 끊어진 상태다.
2013년 9월 1일, 영 챔프가 코믹 챔프 쪽으로 통합되었다. 출판본은 코믹 챔프라는 이름으로 계속 발매되며, 디지털본은 '''챔프D'''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발매된다.
3. 기타
요즘 한국에서 만화잡지를 사는 사람이 드물어 잘 모르겠지만...현재 격주간으로 발매중인 코믹 챔프는 300페이지 이상의 엄청난 두께와 큰 판형에도 불구하고 '''3000원'''[3] 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 중이다. 게다가 광고는 거의 없다.
누가 봐도 적자일 것 같은 이 사업을 하는 이유는 일본 출판사 쪽에서 이런 정기 연재 잡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잘 나가는 작품의 연재 계약을 잘 주기 때문이라는 낭설이 퍼져 있는데, 가격도 가격이지만 현재 한국에서 만화잡지의 위상을 생각해보면 그냥 낭설이라고 치부하기 힘들다.
다만 창간 초창기에는 수백만부에 달하는 일본 주간만화잡지급의 대박까지는 아니었었도 상당히 이득을 냈었다. 90년대 초, '''아이큐 점프가 30만부, 소년 챔프는 14만부 정도'''(#)를 찍어내면서 그 이전까지 만화잡지계의 왕좌 자리를 누리고 있던 보물섬이 쥐고 있던 파이를 빼앗고 만화잡지계의 양대산맥을 이루었으며, 또한 X세대[4] 가 적극적인 소비층으로 떠오르면서 '어두컴컴한 대본소에서 보는 불량만화'란 편견을 깨고 만화가 양지로 나오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게 잘 와닿지 않을 젊은 세대를 위해 쉽게 설명한다면, 동네 분식점이나 이발소, 미장원 등 고객이 기다려야 하는 형태의 가게에는 스포츠신문과 함께 점프와 챔프를 비치하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소년 챔프만 한정해서 말한다면 당시 연재했던 '어쩐지... 저녁', '협객 붉은매', '미스터 부'는 무려 누계 '''100만부'''가 넘게 팔렸다. 미스터 부로 전상영이 벌은 돈이 3억이 약간 안된다는데 당시 인세상 100만를 팔지 않으면 이 인세를 벌 수가 없다. 일본 만화 한둘에 목 매달고 전전긍긍하는 잡지는 결코 아니었다. 그렇지만 2000년을 기점으로 해서 스캔본의 확산으로 만화잡지 자체가 사양길에 접어든데다가 간판만화도 하나둘씩 연재가 종료되며 현재는 몇천부 정도 나가는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특이점으로는 격주간지이다보니 일본 만화의 경우 주간지인 일본 측 점프와 스케줄이 맞지 않아 2회 분량, 즉 2주 분량을 코믹 챔프 한 부에서 연재하고 있다. 책을 사서 보면 2회 분량이 한꺼번에 실려있다. 물론 점프에서 한 주 휴재하면 1회가 실리기도 한다.
창간 초창기에는 TV 광고도 방영하였고 챔프의 인기작 중 일부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개봉하기도 하였다.[5] 애시당초 대원동화가 1987년에 떠돌이 까치와 달려라 호돌이를 시작으로 자체제작을 시작한 이래 아기공룡 둘리 일부 회차,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등 인기 만화영화의 제작까지 맡으며 상당한 노하우를 쌓아올린 상태였고. 당시 맹구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이창훈을 기용하여 맹구 캐릭터 그대로 활용하여 찍은 광고와 아동용 극장영화를 도맡아 제작하기도 했다. 그러나 TV만화영화와 극장판 만화영화를 만드는것은 달라서 극장판 만화영화의 경우에는 흥행성적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독고탁 극장판을 만든 적이 있었으니 노하우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시점이었고, 1990년대 초중반은 한국영화계에서 불황의 시기였기도 했다. 광고는 TV뿐만 아니라 대원에서 배급하던 비디오에도 중간 광고로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애니메이션 쿼터제가 없었던데다가 90년대 중반에 나온 국산 애니메이션 제작지원도 TV 애니메이션보다는 영화 애니메이션쪽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다보니까 TV애니메이션화가 된 작품은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로 마법사의 아들 코리와 검정고무신 정도가 고작이다.
이른바 기존의 유명한 스타 작가진들이 대거 포진해있던 아이큐 점프에 비해[6] 고행석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대형 작가들의 작품이 없어 창간 이후 약 1년간은 판매량에서 점프에 밀리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런 작가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사 자체적으로 신인작가 공모전을 분기별로 열어 많은 신인작가들을 발굴했고, 이 때 데뷔한 신인작가들은 90년대 초중반 소년챔프의 전성기를 열었다.
이 공모전을 통해 데뷔한 작가들과 대표작은 다음과 같다.
- 이명진 - 1회 대상 수상자 '어쩐지 저녁', '라그나로크'
- 박상용 - '행복은 선착순이 아니잖아요', '점핑'
- 손희준 - 최연소 입상자. '배틀 하이랜더', '불사신 배틀러'
- 이태호 - '블랙 코브라'
- 양재현 - '외로운 검객', '열혈강호'
- 박찬섭 - '뱀프 1/2'[7]
- 형민우 - '열혈 유도왕전', '태왕북벌기', '프리스트'
- 서영웅 - '굿모닝 티처'
- 고병규 - '출동 먹통 X'
- 김태환 - 'VIVA 9'
4. 연재중인 작품
코믹 챔프/연재중인 작품 참고.
5. 연재 종료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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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국내 만화
- 008 위기일발
- 666과 777
- 강호패도기
- 검빵맨
- 검정 고무신
- 고물의 지독한 전쟁
- 괴담이설
- 굿모닝! 티처
- 국립자유경제고등학교 세실고
- 귀문출사
- 나이스 콤비
- 나인 헤븐스
- 네오큐라 오레곤
- 노노보이
- 다크 에어
- 따끈따끈 아메리카노
- 당신은 천사에게 맞아본 적이 있나요
- 대마왕
- 도사 개호조
- 도어
- 동이열전
- 또또의 비밀여행 [8]
- 똥가리와 낙지스
- 드라큐라 오리진
- 라그나로크 (연재중단)
- 레이븐
- 레지스 시리즈
- 마고
- 마법사의 아들 코리[9]
- 마법학원 아테나
- 마제
- 몽다리
- 무한 지구정복 간지고
- 묻지마 가족
- 미스터 부
- 밀림왕
- 바이오솔져 가이
- 방공호
- 배틀데커
- 배틀 하이랜더
- 베이비 사우르스 돌리
- 불사신 배틀러
- 브라보 고도치
- 블랙 터치
- 블랙 코브라
- 비 본 어게인
- 빠삐용의 후예
- 사랑의 학교[10]
- 사마공달의 난중일기[11]
- 삼국장군전 1부[12]
- 소마신화전기
- 슈팅
- 스쿨 아이스
- 스트리트 화이터 III
- 심연의 카발리어
- 아바타르
- 아빠의 전쟁
- 아이언 스틸
- 야뇌 백동수
- 야호
-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 (약칭 어쩐지…저녁)
- 에어조단
- 에일리언 헌터
- 용열이
- 웨스턴 샷건
- 인생은 강호[13]
- 작은 조각가의 배려
- 젓가락 행진곡
- 점핑
- 쥬신
- 천둥번개
- 천둥 벌거숭이
- 클레타
- 킹덤 오브 좀비[14]
- 체인지가이
- 체크메이트
- 짱[15]
- 태권특급
- 태왕북벌기
- 태풍의 공격수
- 파랑새 2010
- 파스칼
- 파이스트
- 파이트 볼
- 파이팅 브라더
- 파인애플
- 풍운
- 프리스트
- 플라잉 타이거
- 행복은 선착순이 아니잖아요
- 화이팅 바람이
- 허리케인[16]
- 헤비메탈6
- 협객 붉은매 2부
- 휴대퐁조이
- PEN
- VIVA 9
5.2. 일본 만화
※ 초창기 4대 수록작은 ★ 표시.
- 3X3 아이즈 ★
- 고스트 스위퍼 ★
- 나루토
- 데스 노트
- 디펜스 데빌[17][18]
- 마법소녀 비비안
- 멋지다 마사루
- 미래일기[19]
- 미소라
- 바쿠만
- 봉신연의
- 빅 오더[20]
- 사무라이 8
- 샌드랜드
- 슬램덩크 ★
- 아이실드 21
- 요자쿠라 일가의 대작전[21]
- 유희왕
- 출동! 119구조대
- 카츠!
- 크로스 게임
- 타이의 대모험 ★
- 파이어 펀치
- 프리티 페이스
- 하트기어[22]
- 학규법정
- AREA D
- H2
[1] 사실 말이 주간 잡지였지 창간 초기엔 격주간이었다가 본격적으로 라이벌인 아이큐 점프와 경쟁하면서 1992년부터 주간으로 전환했었지만, 제호 변경과 함께 다시 격주간으로 회귀한 셈.[2] 93년 2월부터 격주간으로 변경된 보물섬이 94년 8월 월간지로 환원한 동시에 제호명을 <빅보물섬>으로 변경시키면서 95년 1월호부터 일본 만화 모모이로 사바스 (<빅보물섬> 연재 당시 제목은 '고스트 보디가드')를 수입하는 등 개방적인 형태로 변화한 것도 있었으나 같은 회사에서 또 다른 비순정 월간 만화잡지 팡팡을 창간(95년 1월)하여 입지가 좁아져 폐간된 것으로 풀이되는데 '월간 아이큐 점프'의 폐간 사유도 '월간 챔프'와 비슷한 이유로 풀이됐으며 <보물섬>은 96년 1월호부터 처음 제호명으로 환원했다[3] 그나마 이 가격도 영 챔프와 통합 후 2000원에서 가격을 인상한 것이다.[4] 보통 언론에서 386세대 바로 다음 세대(소위 말하는 '397세대')를 지칭하는데, 학술적으로 엄밀한 정의도 아니고 이제는 실생활에서도 잘 쓰지 않는 표현이다.[5] 스트리트 파이터의 패러디물인 거리의 무법자와 일본도 안했던 실사 드래곤볼 등을 제작했다.[6] 아이큐 점프 창간 당시 참여했던 작가진을 보면 80년대 한국 만화계를 대표하는 스타 만화가들이 상당수였다. 이현세, 이상무, 황미나, 김철호, 김형배, 장태산, 김영하 등등..[7] 특이하게 데뷔는 챔프에서 했는데 첫 장편 연재는 점프에서 했다.[8] 스노우 브라더스의 해킹롬중 이 만화의 캐릭터들을 차용해서 개조한 국산 해킹롬이 있다(...).[9] 챔프코믹스의 첫번째 단행본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다.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것도 이 작품.[10] 이원복의 원작을 이상철 화백이 재구성한 작품이다.[11] 배금택 화백의 흑역사 Y세대 제갈공두의 파일럿급 작품이다.[12] 2부를 기약하고는 있지만 과연 가능할지...[13] 영 챔프에서 옮김[14] 이 만화를 끝낼 때 챔프 편집부의 실수가 하나 있었는데, 최종화가 연재된 호 표지에도, 그 앞전호 예고에서도 최종화라는 언급을 하지 않고 급종료시켰다!!! [15] 코믹 챔프에서 처음부터 연재한 만화로선 최장기 연재작. 1996년부터 2014년까지 18년간 연재하였다.[16] 김성모 화백의 초기 역작인 그 작품 맞다.[17] 작가는 윤인완, 양경일로 한국인이지만 소년 선데이에서 연재하므로 여기에 수록[18] 언제부터인가 호당 1화씩 실리고 있다. 좋아하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골룸한 일.[19] 중간에 내렸다[20] 중간에 내렸다[21] 중간에 내렸다.[22] 중간에 내렸다.